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밀양 성폭행 사건, 강지원·신의진의 회고

성폭력에 가려진 가정폭력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본질은 ‘미성년자 학대’
⊙ 피해자, 아버지 폭력에 극도로 공포
⊙ 피해자, 정情에 집착한 애착장애
⊙ 경찰 비밀수사 약속 어겨 2차 피해 발생
⊙ 가해자 처벌보다 치료 개념으로 접근해야
  2004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발생했던 ‘밀양 성폭행 사건’은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끝없이 이야기되고 있다. 영화, 케이블 드라마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12년이 지났다. 법적 절차도 끝났다. 재수사 등 추가 조치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사건이 계속 화제가 되는 것은 2004년 1월부터 그해 11월까지 밀양, 창원, 울산 출신 고등학생 100여 명이 최모양(당시 13세, 울산 모 여중 3학년)을 집단 성폭행했고 연루자 중 3명만 10개월 미만의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실에 대중이 분노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인터넷에 가해자들의 얼굴 사진을 끝없이 유포시키는 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영화 등을 통해 해당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사건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창작된 영상 작품이 전부 사실인 양 믿으면서 사건의 실체에선 점점 멀어지는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해당 사건이 우리 사회에 건네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건의 변론을 맡은 강지원 변호사는 4월 말 서울 서초동 식당에서 기자를 만나 “경찰들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당시 사건을 무료 변론했다.
 
  밀양 사건에서 신의진 의원(당시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해자 심리치료를 맡아 피해자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이다. 5월 초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건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신 의원은 “우리 사회가 해결을 못 한 사건이라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 변호사와 신 의원의 설명을 통해 밀양 사건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정리했다.
 
 
  ‘성폭력’에 가려진 ‘가정폭력’
 
  아버지에게 맞을까 극도로 공포
 
2004년 밀양 성폭행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뜨거웠다. 사진은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밀양 성폭력 사건 수사 촉구 시위. 사진=조선일보
  성폭행 피해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초기 어이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수사를 하던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너희가 밀양 물 흐린다”고 이야기하는 등 상식 밖의 일이 계속됐다. 이러한 인식이 생긴 것은 사건의 특수성 때문이다. 첫 성폭행은 강제로 이뤄졌으나, 그다음 십여 차례 성폭행은 전화 등으로 피해자를 불러내 이뤄졌다. 자발적으로 가해자를 찾아갔다는 인식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피해자 최양은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변호를 맡았던 강 변호사의 증언이다.
 
  ―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특수한 가정환경을 이해해야 해요.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폭력을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에게 계속 맞아서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누군가 강하게 이야기하면 혹시 매를 맞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했죠. 가해 학생들이 성폭력 동영상을 공개한다고 하고, 집으로 쳐들어간다고 하니 두려웠던 것이죠. 아버지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될까 가장 두려웠던 것이죠. 폭행당할까 봐.”
 
  ― 아버지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어머니와 이혼을 해서 아이 셋을 아버지가 키웠죠. 아들 한 명에 딸 두 명이었어요. 최양을 주로 때렸어요. 다른 아이는 덜 때렸어요. 누나로서 대표해 맞은 것이죠.”
 
 
  ‘가정폭력’에서 시작
 
  강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성폭력 사건’ 이전에 ‘가정폭력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사건이 가정폭력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었다. 사건 직후 피해자의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신의진 의원 역시 비슷한 설명을 했다.
 
  ― 사건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어린이 성폭력은 학대와 함께 이뤄져요. 90%가 그렇죠. 성폭력은 학대·방임과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관심이 성폭행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밀양 사건은 기본적으로 미성년자 학대 사건입니다.”
 
  ― 피해자 가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어머니가 19세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해서 결혼을 했어요.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었고요. 엄마는 피해자가 7세 때 이혼했고요.”
 
  ― 피해자의 심리상태는요.
 
  “애착 장애가 있었어요. 학대를 계속 받다 보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잘해주면 끌려요. 강간을 계속 당하는 심리죠. 당해도 집보다 낫다는 것이죠. 사람의 정(情)에 상당히 집착해요. 성폭행을 당하면 그 순간은 괴롭지만 그 이후에는 또래와 함께 놀잖아요. 어릴 때부터 학대를 받아서 사회성 발달이 낮고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매우 낮아요.”
 
  ― 유독 아버지가 피해자만 때렸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도망간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아이만 패는 것이죠.”
 
  ― 피해자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나요.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었어요.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죠. 치료를 해야 하는데 퇴원을 시켜야겠다고 고모·고모부와 함께 병원을 찾았어요.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어요.”
 
  ― 치료가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강간 피해보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맞았던 것이 오히려 심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때리고 어머니는 이혼했죠. 아버지, 어머니 모두 이 아이를 거부한 셈이죠.”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경찰 비밀수사 약속 지켜지지 않아
 
  사람들이 분개하는 것은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때문이다. 수사관이 성폭력 가해자 40여 명을 세워놓고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를 지목하라고 이야기하는 등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 국민적 공분을 샀다. 강 변호사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알려주세요.
 
  “피해자가 경찰에 처음 신고한 것은 사건 발생 열 달 후입니다. 피해자 이모가 신고를 했어요. 피해자가 우연히 만난 이모에게 자기 상황을 알린 것이죠. 신고를 하면서 절대로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요. 경찰에게 단단하게 다짐을 받았죠. 이것만 지켜졌어도, 지금처럼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 어떠한 문제가 있었나요.
 
  “‘밀양 물 다 흐려놓는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수사 담당자가 노래방에서 도우미에게 이런 험담을 늘어놓은 것이죠. 공교롭게도 피해자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일하는 도우미 친구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것이죠. 그래서 알려진 거예요. 그뿐이 아니에요. 저희가 여성 경찰이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남성 경찰이 수사를 했어요. 이런 조사는 녹화조사를 해야 해요. 피해자에게 계속 고통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면 안 되니까요. 그러나 그런 시설도 없었습니다.”
 
  ― 피해자에게 가해 학생을 지목하라고 했다는데 상황이 어떠했나요.
 
  “당연히 원웨이미러(한쪽에서만 보이는 유리)를 이용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가해자 수십 명을 세워놓고 여성 피해자 보고 누가 성폭행했는지 고르라고 했어요. 십여 차례 수십 명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그 자체가 심각한 인권침해였습니다.”
 
 
  피해자의 후유증
 
  생활비 500만원 지원한 고(故) 최진실
 
2004년 밀양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여론화됐다. 특히 10~20대 청소년들이 적극 참여했다. 당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시위에 나선 청소년들.
  많은 사람은 밀양 사건에 분개한다. 그러나 가장 고통받았을 피해자 최양의 상태와 후유증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다. 최양은 사건 이후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실질적인 구제는 강 변호사가 맡았다.
 
  ― 사건 이후 피해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언론에 보도되니 난리가 났어요. 일단 피신시켜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탈출을 제안했죠. 딸 둘을 어머니와 서울로 이주시켰어요. 처음에 피해자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어요. 제가 교육청에 가서 ‘이런 학생을 받아주는 곳이 학교다’라며 항의했어요. 결국 한 고등학교로 전학했어요.”
 
  ― 서울 생활은 어떠했나요.
 
  “살림살이 없이 도망 나온 것이죠. 먹고살 수가 없었어요. 당시 제가 최진실 사건을 무료로 맡고 있었어요. 안티 최진실 카페가 있었는데, 왜 부자에게 공짜로 변론을 해주냐고 난리였어요. 제가 최진실씨에게 천만원을 준비하라고 했어요. 500만원은 성폭력상담소 지원비로 보내고 나머지는 피해자 어머니에게 보냈어요. 최진실씨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흔쾌히 응했어요.”
 
  ―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해자 최양이 다니는 학교로 가해자 학부모들이 쳐들어왔어요. 탄원서에 도장 찍어 달라고요. 이러다 보니 학교에서 다 알게 되잖아요. 결국 다닐 수 없게 되었죠.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아 신의진 교수(세브란스 병원)에게 입원을 부탁했어요. 무료로 진료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합의금 나눠가진 아버지와 고모
 
  ― 학교를 그만두고 피해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아이가 알바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러다 편의점 돈에 손을 대는 사고가 있었어요. 결국 재판을 받았어요. 동정여론도 있고 해서 6개월 심리치료를 받았어요. 트라우마가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폭식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었어요.”
 
  ― 치료를 계속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모와 고모부가 병원으로 찾아왔어요. 친권자(아버지)의 동의를 받았다며 애를 데려가려 했어요. 친권자라 내줄 수밖에 없었죠. 돈 받으려고 그런 건데 가해자들로부터 5천만원의 합의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돈을 아버지와 고모가 나눴어요. 피해자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고요.”
 
  ― 어머니와 피해자는 서울에서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했나요.
 
  “서울에 아무런 기반이 없잖아요. 경찰 수사상의 잘못을 근거로 국가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어요. 2심까지 가서 6천만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피 같은 돈 아니겠어요. 그래서 확실하게 피해자에게 전해줘야겠더라고요. 어머니에게 집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러면 돈을 주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집을 얻었더라고요. 확인하고 6천만원을 전달했죠.”
 
 
  2차 피해 유발한 경찰 수사
 
밀양 성폭행 사건은 영화, 드라마로 제작됐다. 밀양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한공주〉 포스터.
  이러한 과정을 보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시 피해자를 치료했던 신의진 의원에게 피해 상황을 물었다.
 
  ― 피해자 치료는 어떻게 되었나요.
 
  “우울증에 자해를 많이 했어요. 손에 상처를 내고 그랬어요. 상처 난 부분을 계속 뜯었어요. 일단 약물치료를 했어요. 충동도 조절하고 잠도 푹 잘 수 있도록 했어요. 2~3주 입원하면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데 고모가 쫓아와서 치료를 마치지 못했어요.”
 
  ― 고모가 퇴원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병원에 입원하면 전력(前歷)이 남는다며 퇴원을 강요했어요. 고모가 아이에게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 피해자가 치료에 집중을 못 하더라고요.”
 
  ― 2차 피해(성폭력 이후의 피해)는 없었나요.
 
  “경찰 조사 과정 자체가 2차 피해를 유발해요. 경찰 조사 과정에 문제가 많아요. 제가 다른 경찰 조사 과정을 많이 지켜봤는데 경찰이 이상하게 가해자 성기 사이즈를 물어요. 형법상 삽입이 중요해서 그런가 봐요.”
 
 
  처벌보다 치료
 
  강 변호사와 신 의원은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피해자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변호사는 “나 역시 피해자와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잊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피해자가 인터넷 등으로 자신 관련 뉴스를 계속 보고 있을 텐데 자꾸 좋지 않은 일을 떠올리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 역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관심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강력한 ‘처벌’만을 강조하는데 처벌보다는 ‘치료’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가해 남성도 처벌이 아닌 치료가 필요하다”며 “피해자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처절하게 고민하도록 치료해야지 과도하게 몰아세우면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잃는다”고 설명했다.⊙
조회 : 12745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9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