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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전문기자의 苦言

영화 〈히말라야〉를 통해 본 한국 산악계의 불편한 진실

글 : 안중국  전 월간산 편집장·북한산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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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의 관객 수는 그간의 산악영화들 관람객 숫자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가 實話를 표방하는 바람에 몇 가지 사실이 아닌 것들도 국민 태반이 진실로 믿어버리게 됐다.
  산악영화 〈히말라야〉의 관람객 수가 700만명을 넘어섰다. 그간 한결같이 죽을 쑤어온 것이 산악 등반을 소재로 한 영화였기에 산악인들 간에는 제대로 된 ‘대박’ 산악영화가 오랜 바람 중의 하나였다. 그간 흑백영화 〈마운틴〉부터 시작해 〈케이투(K2)〉 〈빙우(氷雨)〉 〈남극일기〉 〈아이거북벽〉 등 적잖은 산악 소재 영화들이 제작됐지만 대박은커녕 바닥을 기는 수준의 관객 동원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한국 산악영화의 경우, 〈빙우〉는 산악인 이야기를 다루었으되 수박 겉핥기식 스토리로 실망을 줬다. 〈남극일기〉는 뭐랄까, ‘억지 구겨 넣기’ 식으로 비장감을 그려내려 했기에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관객 100만명도 넘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말, 존 크라카우어라는 기자의 논픽션 저술로 서구 사회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를 바탕으로 만든 외화 〈에베레스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산악인들 중엔 몇 번을 거듭해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도 있었지만 국내 흥행에는 처참하다 할 만큼 실패했다.
 
 
  ‘16좌 완등’을 중요한 모티브로 다룬 영화 〈히말라야〉
 
  영화 〈히말라야〉의 관객 수는 그간의 산악영화들 관람객 숫자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지 않을까 싶다. 산악인에 대한 극적인 미화로 산악인에 대한 이미지도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며 반기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100% 좋기만 한 예는 역시 아닌 듯하다. 이 영화가 실화(實話)를 표방하는 바람에 몇 가지 사실이 아닌 것들도 국민 태반이 진실로 믿어버리게 됐다. 칸첸중가 등반 중의 살 떨리는 급경사 빙벽 장면이나,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기 위한 휴먼원정대의 구성 과정 등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이 관계된 산악인들의 말이다. 영화의 긴장도나 탄탄한 스토리 구성을 위한 그 정도의 과장이야 십분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스토리 전개의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한 ‘세계적 위업 16좌 완등’을 강조한 데는 문제가 없지 않다.
 
  영화도 영화려니와 요즈음 온라인상에서 영화 〈히말라야〉를 검색해 보면 거의 어김없이 ‘엄홍길’과 더불어 ‘16좌’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에 재를 뿌리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산악 등반 전문기자 출신으로 ‘16좌 완등’ 문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14개도, 16개도 아닌 23개가 있다. 핵심 봉우리 주변의 위성 같은 봉까지 합쳐서 23개다(견해에 따라 이 수치는 좀 달라지기도 한다). 이 23개 봉우리 중 주장 격으로 솟아 다른 봉들을 거느리고 있는 14개를 산악인들은 ‘8000m 14좌’라 불러왔다.
 
  ‘8000m 14좌 완등’은 한동안 세계적 산악인들이 너도나도 먼저 이루어내려 레이스를 벌였다.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인류 최초로 완등자가 되었고, 그 후 무산소 완등, 최단기간 완등 같은 여러 기록이 8000m 14좌에서 쏟아졌다.
 
  엄홍길은 2001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8000m 14좌 완등에 성공한 뒤 위성봉 중에도 독립성이 다소 강한 편인 얄룽캉(2004년)에 이어 로체샤르(2007년)를 오르고 나서 ‘세계 최초 16좌 완등’을 선언했다. 엄홍길의 16좌 등정 기록을 마라톤에 비유해 보면, 여러 선수가 숨가쁘게 달린 뒤 순위를 매긴 규정 거리 42.195km에서 몇 킬로미터쯤 더, 이를테면 50km쯤까지 혼자 더 뛴 것과 비슷하다. 최초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14좌보다 2개 더 올랐으니 더 힘들었을 ‘성과(成果)’인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는 2개 더 보태어 16좌 완등을 산악인들의 목표로 삼자고 주창하는 것도 물론 안 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세계적 산악인들이 16좌 완등을 향해 경쟁했는데 거기서 엄홍길이 1등을 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된다. 메스너부터 시작해 쿠쿠츠카, 로레탕 등 14좌 레이스에서 1, 2, 3등을 한 산악인은 물론 지금까지 30여 명인 14좌 완등자 중 누구도 얄룽캉과 로체샤르까지 포함한 ‘16좌 완등’을 이루려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홍길의 ‘16좌 완등’과 허영호의 ‘3극점 7대륙 최고봉 등정’
 
2007년 7월 18일, 로체샤르 등정 이후 국내 언론과 인터뷰할 당시의 산악인 엄홍길.
  그런데 2007년 엄홍길의 16번째 8000m 고봉(高峯)인 로체샤르 등정 이후 국내엔 그 의미가 크게 왜곡되어 전해졌다. 도올 김용옥씨가 쓴 칼럼이 대표적인데, 그는 이렇게 썼다.
 
  “알피니스트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히말라야 완등은 16좌가 되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어 왔다. 위성봉이지만 얄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가 주봉으로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16좌의 전설을 달성치 못했다.”
 
  ‘어느 누구도 달성치 못했다’고, 마치 여러 사람이 이루려 한 가운데 엄홍길이 최초로 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강호동이 진행했던 MBC 〈무릎팍도사〉는 한술 더 떴다. 엄홍길이 등장할 때 이 프로그램은 ‘세계 산악계 공인 최초’라는 자막을 큼직하게 띄웠다. 국제 산악계가 공인하기는커녕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포함한 16개 8000m 거봉을 ‘알프스 3대 북벽(아이거·마터호른·그랑조라스)’과 같은 것으로 엮은 이 용어는 유명한 산악사이트, 간행물 어디에서건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14좌(14 8000 Meter Peaks)’뿐이다.
 
  한때 산악인들 사이에서 ‘칼날 기자’라 불리던 스포츠 전문매체 기자가 있었다. 등정 관련한 속보 기사를 쓸 때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능선’을 남발해 붙은 별명이다. 자기가 글을 쓰는 대상이 대단한 존재이거나 희귀한 사례여야 기사가 주목받기도 하고, 또 일반 독자는 산악등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해 그렇게 과장을 일삼았던 것 같다. 엄홍길의 16좌 등정에 대해서도 이렇게 ‘칼날 기자’ 역할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히 ‘칼날 기자’들만의 책임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등정자 본인이든, 그 주변의 누구이든 과장된 정보를 주었구나 싶은 심증이 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 산악인들 중 태반이 그런 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거 한국의 대표 산악인이었던 허영호.
  과거 한때 한국의 대표 산악인이었던 허영호의 경우, 1998년 ‘동계 백두산 최초 등정’이란 타이틀의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그의 주연으로 제작·방영한 적이 있다. 겨울 백두산 동계 등반은 이미 일제 때 원로 산악인 김정태가 이루어낸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사실은 산악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할 정도다(그는 허영호가 대원으로 참여한 마칼루 원정대의 단장이기도 했다). 백두산 동계 등반은 허영호가 가기 몇 해 전에도 두어 번 이루어진 바 있다. 1992년 초 필자가 선후배들과 같이 나가 장백빙폭 초(初)등반을 이룬 데 이어 얼어붙은 천지 빙원을 거닐었던 기록은 《조선일보》 1면이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 속에서 허영호는 내레이터로서 마치 최초라는 듯한 뉘앙스로 여러 번 코멘트했다. ‘동계 백두산 최초 등정’이란 타이틀이 방송사만의 온전한 책임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허영호의 고향 소백산 자락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3극점 7대륙 최고봉 등정’으로 돼 있다. 하지만 3극점(남극·북극·에베레스트 頂上)과 7대륙 최고봉 중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이 겹친다. 그러므로 정확히 표현하자면 ‘2극점 7대륙’, 혹은 ‘3극점 6대륙’이라 해야 한다. 대중은 잘 모를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우물우물 과장된 수치로 기록한 것이겠다.
 
  허영호는 엄홍길 이전 가장 유명한 한국 대표 산악인이었다. 그가 1995년 3극점 원정 중 마지막 극점인 남극점 도보탐험 때 당시 그를 후원했던 한 언론사는 ‘세계 최초 3극점 시도’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보다 1년여 전에 이미 노르웨이 탐험가 ‘얼링 카게’가 ‘3극점 도보 도달’을 마쳤다. 사전 정보 수집이 치밀함을 스스로 자랑해 왔던 허영호나 한국 유수의 언론사가 오랫동안 원정을 준비하며 그런 사실도 정말 몰랐던 것일까.
 
  그 뒤로도 몇 번 납득하기 어려운 오보(誤報)가 나갔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8년 강모라는 작가가 쓴 아동도서 《탐험가 허영호》에도 ‘세계 최초로 3대 극지에 도달하는 대기록’으로 쓰였다. 그의 저술을 그대로 믿고 외국에 나가 자랑스레 얘기했다가 망신을 당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거짓, 양심선언으로 점철된 前例
 
세계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꿈꾸었던 오은선. 하지만 그녀는 칸첸중가 등반에 대해 거짓 등정 의혹에 휘말리며 곤욕을 치렀다.
  등정을 못 한 것이 거의 틀림없어 보이는데 등정했다고 우긴 사례는 일일이 꼽기 민망할 만큼 많다. 1984년 은벽산악회의 안나푸르나 동계 최초 등정, 한국산악회 합동대의 에베레스트 서릉 등정, 대구경북연맹의 초오유 등정, 허영호의 로체 단독 등정 등에 대한 의혹이 대표적이다. 나중에 안나푸르나 동계 초등은 중앙봉 등정으로, 한국산악회 합동대의 에베레스트 서릉 등정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대구경북연맹의 초오유는 등정 대원이 나중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들 또한 태반이 이런 거짓 등정 의혹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는 세계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꿈꾸었던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반이다. 오은선의 등정 주장은 거의 판박이처럼 비슷한 타(他) 등정자들의 정상 사진과 그녀의 것이 너무 다르다는 점, 정상에 다다르려면 반드시 지나야 할 지점들에 대한 설명을 첫 기자회견 때 전혀 하지 않았고 사진도 없었다는 점, 안개 속에 지친 상태로 올랐다는 정상 전 마지막 구간에서의 등반 속도가 날씨가 좋은 날 컨디션이 좋았던 남성 산악인들의 기록보다 더 빠르다는 점, 동행한 셰르파 한 명이 실은 정상 전에서 돌아섰다고 폭탄선언을 한 점 등 여러 가지로 보아 인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대한산악연맹이 ‘등정 불인정’ 발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오은선 자신은 분명 정상에 섰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등정 시도 당시 그녀는 몹시 지쳐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고 안개마저 짙게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등반을 도와서 등정을 이룰 경우 등정 보너스가 약속돼 있었을 셰르파가 정상 전의 적당한 곳에서 ‘여기가 정상’이라고 그녀를 속였을 수도 있다. 당시의 셰르파 3명 중 한 명이 “사실은 등정을 하지 못했다”고 폭탄선언을 한 이면에는 모르긴 몰라도 등정 보너스 분배 문제가 얽혀 있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이런 등정 시비는 한국의 대표 산악인 엄홍길도, 고인(故人)이 되었지만 박영석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들은 한국 최초의 8000m 14좌 완등자를 엄홍길로 알고 있지만 권위 있는 유명 산악사이트들에는 박영석이 세계 8위로, ‘엄홍길 9위’보다 앞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엄홍길은 1993년 시샤팡마, 1995년 로체 등정이 의혹에 휘말리자 확실한 인정을 받기 위해 이 두 봉을 재(再)등정했는데, 그가 2001년 시샤팡마 등정을 마치기 3개월여 전 박영석이 먼저 14좌 완등을 마무리해 버린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에서는 물론 엄홍길이 한국 최초이자 8위인 것으로 대사 속에 녹이고 있다. 이런 순위 다툼은 두 사람 간의 영예 문제로 국한시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16좌 등정을 ‘세계적 위업’이라며 “여러 유명 산악인들과 경쟁 끝에 엄홍길이 1등 했다”는 식의 과장이나 거짓은 두고두고 한국 산악사의 흐름을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엄홍길에 뒤이어 8000m 14좌를 완등한 한왕용, 김창호, 김재수, 그리고 오은선까지도 종종 “16좌는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때마다 설명하자니 꼭 시기하는 것 같아서 곤혹스럽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앞으로는 질문이 훨씬 잦아질 것이다.
 
 
  등반 대상지 자체의 난이도를 더 중요시
 
  엄홍길은 무려 네 번이나 도전한 끝에 로체샤르 등정에 성공했고, 2003년 등반에서는 정상을 150m 남겨둔 지점에서 후배 대원 2명을 눈사태로 잃기도 했다. 그런 고난의 등반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국제 산악계에는 황금피켈상이라는, 산악의 금메달로 치는 시상(施賞)제도가 있다. 일본은 여성도 이 상을 받은 이가 있지만 한국은 본심 후보조차 오른 경우가 없다. 이는 한국의 등반 사조가 14좌 레이스에 이어 ‘세계적 위업 16좌 완등’이란 백일몽에 휘둘린 데 따른 영향이 크다. 국제 산악계는 이런 수치적 성과에서 떠나 등반 대상지 자체의 난이도를 따지는 방식의 가치 체계로 흐름이 넘어간 지 오래다.
 
  영화 〈히말라야〉의 엄홍길 대장이 휴먼원정대 구성을 결심한 장면에서 나오는 “세계적 위업 16좌 완등은 어쩌실려구요?”라는 대사는 “필생의 소원인 로체샤르 등정은 언제 하시려고요?”라는 정도로 바꿔도 영화가 주는 감동의 깊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허구가 아닌 실화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들어가버린 데 대해 오로지 제작사 문제일 뿐이라고 하면 ‘엄대장’답지 않다고 본다.
 
  실화라고 한 까닭에, 적극적으로 영화를 챙겨본 수백만여 명의 관객들 간에는 물론 온라인을 통해 온 국민에게 이 영화는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가 대히트를 치면 대개 주연배우가 주목을 받지만 영화 〈히말라야〉를 통해서는 엄홍길이 단연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 거의 모두는, 위대함과 깊은 인간애를 동시에 지닌 산악인 엄홍길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오로지 나만의 성취감을 위해 2개 더 올랐고, 누구도 경쟁적으로 16좌를 하려 한 적이 없으니 과장하지 말아달라”고 겸손히 밝히면 외려 칭찬이 되돌아올 것이다. 2007년 엄홍길의 16좌 등정 휘몰이 당시, 14좌를 완등한 어느 산악인이 “뒤통수 맞았네요”라고 한 말은 자기가 누릴 여지까지 싹쓸이해 간 선배에 대한 섭섭함을 표현한 것이겠다. 엄홍길은 이런 후배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더불어 한국 산악계의 앞길도 틔워주어야 한다. 한때 엄홍길은 강연에서 “14좌 플러스 2좌”라고 겸손히 밝힌 적이 있다.
 
 
  이 글을 쓴 이유
 
  등반은 무보상의 행위라고 하지만 등반과 생계가 구분된 산악인들에 한해 유효한 말이다. 그들은 어렵사리 번 돈으로 등반비를 마련해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대상지를 찾아 오르고, 친구들과 감동을 공유하는 것으로 끝낸다. 그러나 등반 성과, 혹은 등반을 통해 얻는 명성이 곧 수익과 직결되는 ‘프로페셔널 산악인들’에게 등반은 무보상의 행위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프로페셔널 산악인 간의 경쟁적 상황에서 등반이나 탐험 성과에 대한 거짓 포장은 남의 것이 되어야 할 영예와 그에 따르는 부(富)를 가로채는 도둑질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8000m 14좌 완등’을 둘러싼 경쟁에서 “등정 사진이 없으면 아예 올랐다고 주장하지 말라”는 식의 명확한 등정 증명이 요구되었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20여 년 전 엄홍길이 8000m봉 등정을 7개인가 마쳤을 때 그의 친구 전 모씨가 “홍길이 등반비가 부족해 후원을 권하는 홍보전단이 필요하다”며 필자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14좌의 영광을 함께하십시오’라는 헤드라인의 글을 써준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한국인 중에도 8000m 14좌 완등자가 한 명 나와주기를, 그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엄홍길이 그 영광을 한국인과 더불어 누려주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그보다 2개 더 많을지언정 ‘왜곡된 16좌’의 영광은 결코 아니다.
 
  몇 해 전 필자가 《월간산》 기자였던 시절, 누군가의 거짓등정 여부를 좀 집요하게 따지고 들자 “왜 나만 갖고 이러는 거냐”고 항변해 잠시 말을 잊었던 적이 있다. 어느 구석이든 터무니없는 왜곡과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그래도 내가 선 자리의 진실이라도 가려내 밝혀야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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