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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의료 지원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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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인종 구성부터 문화까지 다른 마다가스카르
⊙ 아프리카미래재단과 대한세포병리학회 소속 의료진, 현지 의료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진단 관련 강의 진행
⊙ 조선시대 신문에 마다가스카르 근황 자주 보도, 63년간 프랑스 식민 통치 받아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의 국립대학병원 전경. 이곳에서 지난 1월 25일부터 3일간 대한세포병리학회 소속 병리과 전문의와 임상병리사들이 자궁경부암 검진과 관련해 강의를 진행했다.
  인명을 두고 성명학이 있듯, 지명에는 지명학(地名學·Toponymy)이 있다. 성명학으로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기 힘들 듯, 지명학으로도 기껏해야 과거의 단편적인 몇 가지 사실 정도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라는, 자못 낭만적으로 들리는 국명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도 얼마 없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쓰며 모가디슈(Mogadishu)라는 소말리아의 항구와 혼동해 지명을 잘못 기록한 것이, 마다가스카르로 발음이 약간 바뀐 채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 정도다. 여기에 동명의 애니메이션에서 뉴욕의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이 안착한 섬이자, 88서울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를 슬프게 한 나라라는 등 별 도움 안 되는 정보만 머리에 넣은 채 지난 1월 23일 마다가스카르로 향했다.
 
 
  여성 중심의 모계 사회 전통 남아 있어
 
   여정은 길었다. 먼저 방콕으로 간 다음 케냐항공으로 갈아타고 나이로비로 갔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향한 곳이 바로 안타나나리보. 마다가스카르의 수도다. 비행시간만 약 18시간, 공항 대기시간까지 치면 24시간이 넘게 걸렸다. 현지에선 흔히 타나라고 부르는 안타나나리보와 한국의 시차는 6시간이다.
 
  여정의 목적은 의료 협력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타나의 국립의과대학병원에서 병리과 전문의와 전공의, 임상병리사로 이뤄진 35명의 교육생들에게 자궁경부암 진단법과 슬라이드를 염색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12명의 의사들과 병리기사가 하나의 팀으로 모였다. 전체적인 사업의 진행은 아프리카미래재단(Africa Future Foundation)과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 활동 중인 이재훈 선교사 측이 맡았다. 아프리카미래재단은 아프리카에서 10년 가까이 의료와 교육 분야의 지원사업을 해온 비영리단체다. 에티오피아,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전역의 13개 나라에서 의료 협력 활동을 하고 있다.
 
  타나 공항에 도착하자 이재훈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 선교사도 의사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6년부터 마다가스카르(이하 마다)의 병원에서 근무하며 의료 선교를 해왔다. 현재는 FBDB(Fiainana Be Dia Be)라는 비영리 법인을 현지에 세워 오지 진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이태석상(賞)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발급받는데,담당하는 직원들이 모두 여성들이었다. 공항 경찰 중에도 여자가 꽤 많았다. 이 선교사에게 이유를 묻자 ‘여성들이 더 똑똑하고 도덕적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마다가스카르는 전통적으로 모계 사회라고 한다. 한인 교포가 운전하다가 골목에서 아이를 친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는 현장에서 죽었고, 운전자는 구속되었는데, 사고 경위를 알게 된 아이의 가족이 경찰서로 찾아왔다고 한다. 가족들 중 여성 다섯 명의 서명을 받아왔고, 운전자는 바로 풀려났다고 한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데 여성의 권한이 절대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문화적으론 아시아권
 
마다가스카르 보건복지부와 타나 국립대학 측도 이번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오른쪽부터 최재걸 고려대 교수, 하승연 가천대 교수, 권건영 계명대 교수.
  숙소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공무원 연수원이었다. 공항을 벗어나자 파란 하늘과 함께 허름한 집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바삐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들, 길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런데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다. 보통 ‘아프리카’ 하면 생각나는 짙은 초콜릿 색깔의 피부색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쪽 사람들에 가깝다. 실제로 마다가스카르의 인종 구성을 보면 동남아시아인과 동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섞여 있다. 특히 오랫동안 타나를 거점으로 마다를 지배했던 귀족층, 메리나(Merina)족은 보르네오섬의 사람들과 유전적 동일성을 보인다고 한다.
 
  날씨도 아프리카 하면 흔히 떠올리는 날씨와 달랐다. 낮에도 그리 후덥지근하지 않았고, 새벽에는 담요가 필요할 정도로 온도가 내려갔다.(마다는 남위 12도와 26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가 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일정은 꽤 빡빡했다. 도착 다음날인 25일 이른 아침부터 강의 시작이다. 짐을 풀고 숙소 앞 골목을 돌아봤다. 한국으로 치면 ‘공항동’에 해당할 동네였다. 집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는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예닐곱 살쯤 돼 보였다. 뭘 하나 봤더니 작은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마다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다. 가게마다 쌀과 잡곡을 늘어놓고 파는 광경이며, 머리에 짐을 이고 다니는 행인들의 모습이 친숙했다.
 
  동행한 의료진 대부분은 병리전문의로서 대한세포병리학회의 회원이다. 병리 의사는 조직 검사와 세포 검사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진단해, 임상 의사에게 진료와 치료를 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암세포를 찾아내고 병기를 판정하는 식이다. 세포 병리 검사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해 암이나 질환 정보를 판단하는 검사다. 대표적인 세포 병리 검사로 자궁경부암 검사가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실력을 갖춘 의료진만 있으면 현미경과 슬라이드만으로도 가려낼 수 있는 암이 바로 자궁경부암이라는 말이다.
 
 
  비용 대비 효과 큰 병리 분야 협력
 
  의료 봉사 하면 흔히 오지로 들어가 진료를 하는 걸 떠올린다. 이번 팀은 간이 진료실이 아닌 강의실을 택했다. 일종의 ‘원포인트 레슨’인 셈이다. ‘자궁경부암 조기검진사업’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고려대 의대 교수이자 아프리카미래재단의 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최재걸 교수는 “병리과 관련 의료 협력은 고가의 장비 없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의 설명이다.
 
  “질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영상의학, 병리, 진단검사의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영상의학과를 제대로 꾸리려면 CT나 MRI 기계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해요. 진단의학검사실도 첨단 장비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비하면 병리과는 비싼 장비보다는 전문성이 더 중요한 분야거든요. 한마디로 들이는 비용 대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의료 협력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는 “가난이 걷히면 드러나는 게 암”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007년부터 몽골 등 저개발국가에 들어가 조기암검진 사업 정착을 지원해 왔다. 이번 여정의 일원이었던 최기영 서울대 교수와 정순희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 하승연 가천대 교수, 노미숙 동아의대 교수도 몽골에서 이미 현지 의료진과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됐음에도 이번 의료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한번 의료 지원 사업을 시작하면 적어도 5년은 진행해야 합니다. 점차적으로 단계를 올리는 식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해요. 1차 목표는 현지에 병리학회가 구성되도록 돕는 겁니다. 현지 의사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지요. 최종 목표는 조기암검진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저개발국가에 나오면 흔히 현지 교수진이나 의료진으로부터 ‘연구실의 노후 장비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받곤 해요. 그건 현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몽골에서 이미 시행착오를 겪었거든요. 병원에 고가의 장비를 기증했는데 얼마 후에 가니 기계를 안 쓰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현지의 전기 사정이 안 좋아서 기계가 금방 고장 나 버린 겁니다. 아프리카도 사정은 마찬가지지요. 무조건 장비를 지원하기보다는 조기암검진 사업이 정착되도록 도와야겠구나 생각한 이유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마다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는 병리과 의사가 두세 명에 불과해요. 마다에는 독특하게도 병리 전문의만 열 명이 있습니다. 병리과 전공의는 15명이고요. ”
 
  첫날 수업은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진행됐다. 박재복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자궁경부암 진단에 대한 강의와 함께 용석중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의 폐암 진단 강의가 이어졌다. 용 교수는 호흡기내과 전문의다. 강의를 경청하는 의료진 35명의 눈빛은 진지해 보였다. 모두 현장에서 현재 근무 중인 병리과 소속의 전문의와 전공의, 임상병리사들이었다.
 
 
  단기적 시혜 말고 장기적으로 도와야
 
마다가스카르는 인종 구성이나 문화적 특성 면에서 아시아권에 속한다. 공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 뒤편으로 외양간이 딸려 있는 집이 보인다.
  첫날 저녁 식사는 정남현 목사의 사택에서 했다. 정 목사는 마다의 유일한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3년 전 가족과 함께 안타나나리보로 건너왔다. 마다에는 교민이 150여 명 거주한다. 이 중 약 30명이 선교사다. 나머지 교포 중에는 은퇴 후 이민을 온 이도 있고, 마다와 한국을 잇는 사업을 하는 이도 있다.
 
  정 목사는 “구걸의 대물림을 끊으려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마다에서는 공립초등학교까지는 무상교육입니다. 학용품 명목으로 한 학기에 3만 아리, 우리 돈으로 약 1만1000원가량의 돈이 들어가지요.(아리는 마다의 화폐 단위다.) 그런데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길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 중 또랑또랑해 보이는 아이를 보고 한인 교포가 학교에 가기 위한 물품을 사주며 ‘학용품비를 다 대줄 테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라’고 하면, 그 다음날 아이의 가방이며 교복을 다 팔고 다시 구걸을 내보낼 정도예요.
 
  단기 봉사자들이나 관광객들이 저개발국가에 가서 불쌍하다며 동정심으로 아이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쥐여주는 게 그 순간엔 좋을지 모릅니다. 긴 기간 체류하며 협력사업을 진행하는 이들에게는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돈을 받아본 사람은 그다음부터는 일을 하려 하지 않거든요. 자신의 자식들도 학교를 안 보내고 구걸하도록 시킬 정도니까요. 제가 한번은 동네 이웃 주민들에게 빵을 무료로 나눠준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수백 명이 몰려왔어요. 빵이 다 떨어져서 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요. 그 후로 한 달을 고생했습니다. 집에 돌을 던지고, 벽에 똥칠을 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후로는 다른 식으로 지원 사업을 합니다. 이곳 아이들이 기초체력이 약해요. 유소년 축구팀을 만들었어요.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지만 축구 실력은 별로거든요. 어머니 축구단도 운영 중입니다. 여성들에게 축구 훈련을 시키니, 그 가정을 알게 되더군요.”
 
  마다의 인구는 2012년 기준으로 2200만명가량이다. 이 중 90% 이상이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계 10대 빈국에 속한다. 빈부 차가 매우 크고 1인당 GDP도 낮지만, 실질적인 구매력환산지수로 살펴보면 소득 통계가 나타내는 것만큼 빈곤하진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 상황이 불안해서인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란다.
 
 
  19세기 말 조선 언론이 주목한 ‘마도’
 
  첫째 날이 이론 강의였다면, 둘째 날은 실습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현미경과 국립의과대학병원의 현미경을 총동원해 직접 슬라이드를 관찰하는 식이었다. 강의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영어로 진행됐다. 사실 마다에서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쓴다. 물론 주로 교육받은 계층 안에서 쓰인다. 일반 사람들은 현지어인 말라가시어를 주로 사용한다. 강의 내내 영어로 대화가 오갔지만, 이미 의학용어나 명칭을 서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순조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듯했다.
 
  프랑스어 외에 프랑스 식민 통치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막간을 이용해 타나 거리를 돌아보며 든 생각이다. 병원 옆에는 꽃시장이 있었다. 시장을 둘러보며 상인들에게 간단한 불어로 말을 걸어보니 대답하는 이도 있지만 전혀 대답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마다는 1897년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63년 후인 1960년에 독립했다. 시기는 다르지만 한국과 얼추 비슷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마다를 잘 모르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이 나라에 관심이 매우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발행된 신문의 기사를 검색해 보면 마다 혹은 당시 표현으로 ‘마도(馬島)’에 대한 기사가 꽤 여러 건 등장한다.
 
  기사를 읽어보면 조선시대 지식인 계층들은 마도가 식민 통치를 받게 될 건지, 그렇게 되면 마도와 그 국민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 건지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특히 《한성순보》는 창간호인 1883년 10월 31일자에서부터 마다의 최근 소식을 비교적 길게 실었다.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지금 프랑스가 馬達加斯加(마다가스카르)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사기가 이미 두드러졌다. 대저 마다가스카르는 곧 아프리카주 동안(東岸)에 위치한 한 섬나라로, 프랑스에서 그 서북부를 차지하려 한 지가 지금까지 수년이 되었으나 마다가스카르 섬 왕이 이를 불응해 왔는데, 금년 5월에 프랑스 군사가 서북부의 모든 항구에 포공(砲攻)을 가하여 마다가스카르 섬의 동부(同部)인 타마타브(多麻多富·Tamatave)를 점령하였다. 그러므로 마다가스카르 섬의 온 국민이 다 분개해 하였으나 나라의 대소(大小)와 세력의 강약(强弱)이 다르고, 또 프랑스 군사도 내지(內地)까지에는 진격해 오지 않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 섬 정부에서 곧장 싸움을 벌이지 않고, 다만 프랑스 파리에 사신을 보내 프랑스의 까닭 없이 침략해 온 것을 힐책하였지만, 프랑스에서는 끝내 군사를 철수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근보(近報)에 의하면, 마다가스카르 섬의 군사가 타마타브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군사 5백명을 습격·살해하고 그 진영을 탈취했다고 하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 나라가 무기(武器)로써 서로 맞설 날은 금명간에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황성신문》 《독립신문》 《매일신보》 등 각 매체들은 경쟁적으로 마도의 소식을 전했다. 앞으로 조선이 어떻게 될지 어떤 단서를 찾고 있었으리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매일신보》 한 매체에만 마다에 대한 기사가 500여 건 실렸을 정도다.
 
 
  한때 학교에서 주체사상 가르쳐
 
황대현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팀장이 현지 임상병리사들에게 슬라이드를 염색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과 마다는 1962년 수교했고, 1972년 마다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단교했다. 마다는 한국이 아닌 북한을 택했다. 마다에서는 김일성과 북한이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는 ‘주체사상’을 가르쳤고, 대통령 경호실장도 북한 출신 인사가 맡았을 정도였다. 북한 무술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한때 마다에는 태권도 도장도 있었다. 이재훈 선교사는 정부 인사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북한 출신 경호실장을 마주친 적이 있단다. 눈빛이 형형해 놀랐다고 이 선교사는 말했다.
 
  현지 교민들 말을 빌리면, 마다와 북한이 갈라진 계기 중 하나도 문제의 그 경호실장이었다. 1991년 8월 타나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경호실의 과잉 진압으로 학생 2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2공화국이 무너지고 1993년 민주정인 제3공화국이 들어섰다. 한국과 마다가 재수교한 것도 바로 그해다.
 
  같은 시각 병원 내 병리검사실에서는 황대현 분당서울대병원 병리팀장이 실습 지도를 했다. 현지 임상병리사들에게 시약을 만들어 세포를 염색하고 슬라이드를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기영 서울대 교수가 기자에게 자궁암 검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자궁암 검사는 기본적으로 선별(스크리닝)검사입니다. 임상병리사들이 세포를 검사하고 분석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의심되는 검체를 선별하면 병리 의사가 진단을 하지요.”
 
마다가스카르의 특산품

 
  마다가스카르의 특산품으로는 바닐라콩과 병풀이 있다. 바닐라콩의 주요 수출국은 우간다와 멕시코, 마다가스카르인데, 마다가스카르의 생산량이 전 세계 바닐라콩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다. 바닐라콩이 없으면 안 되는 음료수가 있다. 바로 콜라다. 마다가스카르에도 코카콜라 공장이 있다.
 
  호랑이풀이라고도 불리는 병풀(Centella asiatica)도 마다가스카르의 특산품이다. 상처 재생이나 아토피 치료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서약품이 생산해 판매하는 ‘마데카솔’이 바로 이 병풀 성분을 이용해 만든 제품이다. 마다가스카르산 병풀만을 이용한다.
 
  이 외에도 사파이어와 니켈 등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사파이어의 경우, 전체 공급량의 절반가량을 마다가스카르에서 공급하고 있다.
 
  올해 안에 대사관 개설 예정
 
쌀이 주식인 나라라 쌀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점심시간 즈음 김필우 공사가 강의 현장을 찾았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12월 공관 개설을 위해 김 공사를 타나로 파견했다. 공관 개설 배경에 대해 김 공사는 ‘이미 공관이 있어야 했던 나라’라고 설명했다. 김 공사의 말이다.
 
  “나라의 규모로 보나 잠재력 어떤 면에서 보든 있어야 할 곳이었지요. 최근엔 암바토비 니켈광산 투자건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고요. 이곳에 나와 있는 외교관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못사는 게 미스터리인 나라라고요. 갖춘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여전히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아프리카에는 무력분쟁으로 가난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나라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아시아 문화권에 속하고요. 조상숭배 문화가 있고, 업보(카르마)를 믿는 나라이면서,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개발 협력 경험이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대사관을 개설한 후 만약 코이카(KOICA)까지 들어오면 우리나라가 이 나라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마다는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전체 58만7000km2에 달하는 영토에 티타늄, 크롬, 니켈, 석탄 등 다양한 자원이 묻혀 있다.(마다는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지정학적 중요성도 상당하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중간 기항지로서 인도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등이 마다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다. 특히 일본은 자이카(JICA)를 통해 지속적으로 원조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할 때
 
  문득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을 때, 권건영 계명대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권 교수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받은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스칸디나비아 3국(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을 언급했다.
 
  “6·25전쟁 당시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의료진이 큰 활약을 했습니다. 휴전 후 이 세 나라의 지원으로 서울에 중앙의료원이 설립됐어요.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입니다. 한국 의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우리도 이제 그때 받은 만큼이라도 다른 나라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시 세 나라는 해마다 150만 달러를 공동으로 모아 병원을 운영했다. 당시 화폐 가치를 고려해 보면 엄청난 금액이다. 중앙의료원은 동양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병원이었다. 전 세계 정상 수준이라 평가받는 한국 의료 기술의 뿌리에는 먼 타국에서 온 ‘대가 없는 선행’이 있었던 셈이다.
 
  셋째 날의 일정은 윤무열 성곤무역 대표의 강의로 시작했다. 병리학 연구 장비의 최신 기술 동향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시험’ 시간이 이어졌다. 전체 강의 내용을 학생들이 얼만큼 이해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였다. 이 결과가 향후 다른 프로젝트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정순희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학생들의 강의 이해도가 높아서 깜짝 놀랐다”고 평가했다.
 
  강의실 밖에서는 치과의사인 김기홍 하안치과 원장이 마다의 치과의사들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마다의 치과 진료 수준을 파악하고, 어떤 형태의 협력이 가능한지 의논하기 위한 자리였다. 참석한 의사 중에는 한국에서 온 치과의사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차를 달려 온 의사도 있었다. 마다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는 치과의사는 단 두 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이들 치과의사들이 낮에는 대학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지만 밤에는 개인 진료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날 참석한 치과협회 회장의 한 달 월급은 320달러라고 했다. 전체 프로그램을 마치고 아프리카미래재단과 마다가스카르 보건복지부, 타나 국립의대, 이재훈 선교사가 이끄는 FDBD가 한데 모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향후 의료 협력을 지속,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재훈 선교사의 부인 박재연 선교사는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심정이었는데, 이제 희망이 보입니다. 마다 전역에는 2만여 개의 마을(District)이 있어요. 저희는 오지에 주로 들어가는데 1년에 10개 지역밖에 못 갑니다. 이런 속도로는 한 마을을 한 번씩만 들어가도 2천 년이 걸린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기르려고 해요. 앞으로는 병리 분야와 함께 임상 분야 교육도 진행하는 게 목표입니다.”
 
  강의를 들은 현지 의료진과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들은 거듭해서 의료 협력 프로그램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자의 현장으로 흩어져 자궁경부암 퇴치를 위해 노력할 터다.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에 안착한 씨앗이 벌써 자그마한 싹을 틔우기 시작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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