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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박씨 종친 청년회장 사기 사건의 내막

대통령과 손잡고 찍은 사진의 위력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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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 청년회장, “박정희 대통령이 ‘근혜’ 도와주라고…” “‘지만’이는 나 보면 도망가”
⊙ 박지만 EG회장, “누군지도 모른다”
⊙ 부동산 사기 피해자들, 사기·횡령 혐의로 고소
⊙ 2년6개월 수사 중이라는 검찰, “자료가 방대하다” 설명만
⊙ 박씨 청년회장, “검찰 수사로 진실 밝혀질 것”
박근혜 대통령과 박씨 대종친 중앙청년회 회장.
  2014년 12월 말 기자는 서울시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지하 다방에서 박○○(63) 박씨(朴氏) 대종친(大宗親) 중앙청년회 회장을 만났다.
 
  박씨 성(姓)은 밀양, 고령, 고성 등 70여 본관(本貫)이 있다. 박씨 후손 남녀들은 설령 서로 본관이 다르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는 관습이 있다. 모든 박씨의 뿌리가 신라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박씨 대종친회는 박혁거세에서 시작한 500만 박씨 후손의 종친회(宗親會)를 표방한다. 박씨 중앙청년회는 박씨 후손 가운데 65세 이하를 회원 자격으로 한다.
 
  당시 기자를 만난 박 회장은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나요.
 
  “한나라당 대표할 때부터 만났어. 거의 같이 다니다시피 했어.”
 
  —박 대통령과 전화하실 수 있나요.
 
  “(대통령 휴대폰 번호를 보여주며)여기 한번 봐봐.”
 
  —대통령과 어떤 관계인가요.
 
  “(박 대통령은)우리 집안의 둘째 집이야.”
 
  —박지만 EG회장(대통령 남동생)을 아시나요.
 
  “‘지만’이는 나 보면 도망가, 무서워서.”
 
  —박지만 회장을 만나 조언도 하나요.
 
  “언제든지 보는데…. 항상 그러지(조심하라고). (내가)어른이니까. ‘지만’이는 누구하고 말하는 것을 싫어해. 말을 잘 안 하는 사람이야.”
 
2009년 7월 박씨 중앙청년회 제2차 청년대회에 당시 박근혜 의원이 보낸 축사.
  당시 기자는 박 회장의 주장을 황당하게 느끼면서도, 종친회 고위 간부라는 직책으로 볼 때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인물이었다. 그 이후 기자는 박 회장의 행적을 주목했다.
 
  자료 조사부터 시작했다. 인터넷에 ‘박○○’과 ‘박근혜’ 두 키워드를 이용해 검색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축사를 찾을 수 있다. 2009년 7월 11일 박씨 중앙청년회는 제2차 박씨 청년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행사에 축사를 보냈다. 축사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존경하는 종친 여러분, 고양대군 30세손 박근혜입니다. 제2차 박씨청년대회가 열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중략) 우리는 같은 뿌리, 피를 나눈 한 가족입니다. 저에게도 종친 여러분께서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 주셨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늘 함께해 주신 가족이었습니다. (중략) 박○○ 회장님과 박씨 청년 여러분 모두 하나가 되셔서, 선조들의 높은 정신과 유산을 현대와 후대에 더욱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확인 결과 2009년 9월 제2차 박씨 청년대회에 당시 박근혜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여러 단체에 축사를 보낸다. 많은 경우 비서들이 작성한다. 설령 축사에 박 회장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박근혜 의원이 박 회장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대통령과 본관 달라
 
  박 회장은 대통령의 친척이 아니다. 박 회장의 본관은 밀성인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본관은 고령이다. 굳이 따지면, 신라 박혁거세에서 시작한 한 뿌리이지만, 이미 신라시대부터 줄기가 갈라져 성(姓)만 같다고 보는 것이 맞다. 본관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2014년 기자는 일단 취재를 보류했다.
 
  당시 기자가 박 회장을 주목한 것엔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는 과도하게 연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역대 정권에서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기자는 최근 박씨 종친회 주요 인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대학교수 한 명이 찾아왔어요. 인수위에 참여하고 싶다며 추천서를 부탁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박씨라는 이유만으로 찾아왔어요. 왜 찾아왔는지 생각해 봤어요. 제가 과거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남들 보는 데서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일정에 대해 말씀 드린 것이었는데 소문이 금방 퍼지더라고요. 사실 대통령이 저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이력서 가지고 와서 취업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 연줄 가운데, 단연 최고는 대통령이다. 박 회장을 통해, 기자는 우리 사회에 연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探究)해 보고 싶었다.
 
  기자가 박 회장의 행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0월초 박씨 종친회 간부로부터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박 회장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과시하며, 종중(宗中) 부동산 사기 사건을 일으켰어요. 피해 규모가 150억~200억원에 달해요. 박 회장은 2005년 밀성박씨 참의공파, 2008년 부마공파 회장이 되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회장 지위를 상실했어요. 그럼에도 종중 땅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 있어요.”
 
  부동산 문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종중은 많다. 회장 자리를 놓고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심할 경우 주먹다짐까지 하는 일도 있다.
 
  기자는 제보 사건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우선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박 회장이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강조했고, 상당수 피해자들이 이러한 과시(誇示)를 믿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박 회장의 정치적 배경’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기자는 좀 더 구체적인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 10월 말 지방 모처에서 부동산 사기 피해자를 만났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박 회장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2013년 종중 총회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죠. 박근혜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선거 당시 위촉장을 받고, 큰 공을 세워서 향후 집안을 위해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다고 하던가요.
 
  “대통령과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어요. 사진을 보고 우리 집안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나 싶어, 사진을 자식들에게 보여줬어요.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고 하니, 가문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2013년 여주, 양평 소재 종중 땅 20만평을 팔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평당 10만원 하는 땅을 7만원에 팔겠으니, 매수자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평당 5000원의 용역비를 약속했고요. 적극적으로 매수자를 소개해 줬습니다.”
 
  —종중 땅을 파는 것이 왜 문제가 됐나요.
 
  “박○○ 회장 측은 계약금을 받고, 부동산 등기를 해 주지 않았어요. 계약금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같은 땅을 이중 삼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팔았죠. 땅을 소개해 준 저로서는 피해가 극심했어요. 계약금을 책임지라는 요구에 시달렸습니다. 처음에 박 회장 측은 땅을 싸게 판다고 소문이 나면 안 되니 여주, 양평에는 땅을 판다고 소문 내지 말라고 했어요. 사건이 발생한 직후 알아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여주, 양평 종중들에게 비슷한 사기를 쳤어요.”
 
  —형사 고소를 통해 해결하면 되지 않나요.
 
  “피해자가 수십 명에 달하고, 피해액은 150억~200억으로 추산됩니다. 몇몇 피해자가 2013년부터 경찰, 검찰에 고소를 했는데, 이상하게 아직까지 수사 중입니다. 박 회장의 정치적 배경 때문에 법에 호소해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이 많아요. 상황이 이러니 형사 고소보다, ‘종중 땅을 팔아서 계약금을 돌려주겠다’는 박 회장의 말만 믿고 수년 동안 기다리는 종원이 많은 것이죠.”
 
  제보자들은 박 회장이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상하게 피해자들은 문제의 사진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자가 보기에 해당 사진이야말로 박 회장의 가장 큰 힘이었다.
 
 
  대통령과 손잡고 찍은 사진
 
  기자는 문제의 사진을 입수했다. 사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다만 해당 사진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대통령과 박 회장이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상당히 친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은 〈시사(時事) 대한화보(大韓畫報)〉 2009년 9월호에 실린 ‘신라 천년 역사의 뿌리 朴씨를 만나다, 박씨 중앙청년회 박○○ 회장’이라는 제목의 박 회장 홍보 기사에 첨부됐다. 해당 잡지는 박씨 종친회에 광범위하게 배포됐다. 많은 박씨 종중들이 해당 사진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유이다.
 
  잡지의 사진에는 찍힌 장소와 시간에 대한 설명 없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중앙청년회 상임위원회의에 참석 후 박○○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였다〉고 설명돼 있다.
 
  사진 촬영의 배경이 궁금해 종친회 간부에게 문의한 결과, 2008년 신라호텔에서 박씨 종친회 임원진과 당시 박근혜 의원이 식사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이었다. 행사에 참석했던 종친회 간부는 “식사도 함께 했고, 같은 박씨 친족인데 손을 잡고 찍으면 좋겠다고 건의해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박 회장 본인은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할까. 10월 말 기자는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죠.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저에게 그러셨어요. ‘임자 지금 뭐하고 있어. 근혜 좀 도와줘.’”
 
  —꿈에 나타났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냥 들어. 너무 또렷하고 선명해. ‘근혜 좀 도와 줘.’ 야 참 희한한 일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근혜가 나에게 왔어. 사진 찍자고. 홀연히 나타났어. 같이 밥 먹자고.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이야기했어. 아버지(박정희 대통령)에게서 지시를 받았다고. 직접 이야기했어. 진정성을 느끼신 것 같아. 그 이후로 (대통령이)나를 소중하게 생각했어.”
 
  박 회장의 설명을 듣고, 기자는 황당하다는 생각에 말문이 막혔다. 정말 대통령과 박 회장은 무슨 관계인가. 취재를 계속했다.
 
 
  박지만 EG회장, “누군지도 모른다”
 
  혹시 박 회장과 대통령 집안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박 회장이 박지만 EG회장을 잘 안다고 주장했던 말들이 떠올라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11월 초 기자는 박지만 회장의 휴대폰에 문자로 주요 의혹과 박 회장의 주장을 설명하며 해명을 요청했다. 박지만 회장은 다음 날 비서를 통해, 본인의 입장을 알려 왔다. 전화로 알려 온 입장은 이렇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날 일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것을 조심하고 있어요. 혹시 주변 사람들 가운데, 박 회장과 아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친척도 아니고)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름 팔고 다니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편지도 오고 그러는데,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있어요. 확실히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
 
  박지만 회장 비서는 추가로 이렇게 덧붙였다.
 
  “회장님을 만나자는 사람이 많은데, (신분을)확인하고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만나지 않아요. 특별한 일이 있거나 관계가 있으면(만나죠). 친분이 있는 분들도 가끔 찾아와요. (박지만 회장은)새로운 사람은 절대 안 만나요.”
 
  이렇듯 대통령의 동생은 박 회장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박 회장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단지 사진 한 장으로 신뢰를 얻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 다른 사건이 있지 않을까.
 
  확인 결과 박 회장이 무엇인가 만만찮은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상당수 박씨 종중들은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 회장의 비리를 제보하는 투서(投書)를 했지만, 박 회장은 무사했다’는 소위 투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많은 박씨 종중 간부들은 투서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면서도, ‘박 회장이 투서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은 공통적으로 알고 있었다.
 
  투서 사건은 무엇인가. 기자는 종중 간부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조각을 맞춰 나가던 중, 사건의 당사자를 확인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폐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며 기자와의 접촉을 망설였다. 기자는 “진정 대통령을 위하는 길은 일이 더욱 커지기 전에 밝히는 것이다”며 간곡히 만남을 호소했다. 10월 지방 모처에서 만난 박씨 종중 간부는 기자에게 허심탄회하게 당시 기억을 들려줬다.
 
  —사건이 시작된 배경을 설명해 주세요.
 
  “2012년 9월에 경주 숭덕전(崇德殿)에 박근혜 후보가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어요. 대제(大祭)에 참여하고, 원로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일정이었죠. 그런데 종친회 어른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후보에게 오면 큰일 난다고 전하라는 것이었죠.”
 
  —왜 내려오면 안 되나요.
 
  “당시 박 회장과 박○○ 두 세력이 서로 조직을 동원한 상태였어요. 서로 후보에게 접근하려 한 것이죠. 둘이 충돌하면 종친회 망신이니까요.”
 
  —후보에게는 어떻게 연락했나요.
 
  “9월 23일이 대제였어요. 17일 후보 개인 이메일로 오지 말라고 전했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나요.
 
  “바로 다음 날(18일) 2명이 저의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이름은 밝힐 수 없습니다.”
 
  —후보 비서 출신인가요.
 
  “네.”
 
  —후보 개인 이메일로 보냈는데 왜 비서가 오나요.
 
  “바쁘시니까, 비서들이 확인한 것이 아닌지….”
 
  —사무실을 찾아와서 어떤 일을 했나요.
 
  “내려오면서 ‘찌라시’를 가지고 와서 사실 확인을 요청했어요.”
 
 
  박 회장 투서 입수
 
  기자는 당시 가지고 왔다는 찌라시 사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전 종인에게 고함, 아! 조상님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 숭조 이념이 덕목이고 자랑이었던 우리 종중이 어쩌다 파렴치한 범죄 집단의 사유물이 되었는지 한탄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현재 회장이라고 자칭하는 박○○은 ①특수 강도죄 징역 7년 형무소 복역 ②절도(도둑)죄 징역 1년 6개월 등등…. 전과 7범 악질 범죄자가 회장이 되어서 그 추종자들과 공모하여 종중 재산을 불법으로 처, 동생, 자식들에게 등기한 자들을 응징하고 처단하지 않으면 우리 종중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가 다시 회장 출마라니 말이 된단 말입니까? 이 자들과 공모하여 종재를 자기 재산처럼 240여 필지 30여만평(시가 약 100억대)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공모하여 나눠 먹고 그것도 모자라 재실, 묘막 시제답까지 불법 매도하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종인 여러분! 천인공노할 이들의 범죄행위를 응징하고 퇴출합시다. 2011년 10월 28일 종재 수호대책위원회〉
 
  해당 자료는 2011년 종중 회장 선거 당시 뿌려진 전단이었다. 박 회장의 전과(前科) 등을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다.
 
  —후보 측에서 찌라시를 가지고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숭덕전 대제 참석과 관련해 보고하기 위해 박 회장과 박○○이 누구인지, 어떤 이유에서 충돌이 우려되는지를 기술해야 하니까요. 찌라시 내용 중 박 회장의 전과에 대해 확인을 요청해서 아는 범위에서 확인해 줬어요.”
 
  —전과는 사실인가요.
 
  “본인도 부인 못하잖아요. (박 회장이)왜 옛날 일을 꺼내냐며 젊은 시절의 한때 실수라고 이야기했어요.”
 
  —(비서들이)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했나요.
 
  “저의 사무실 컴퓨터로 오후 2시에 내용을 정리해 대외비 형식으로 캠프에 이메일 송부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어떤 일인가요.
 
  “당일 오후 7시에 후보 비서로부터 문자가 왔어요. ‘안 가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어요. 7시에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잖아요. 이상했던 것은 문자가 오기 전 그러니까 7시 이전에 박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니가 어떻게 그런 보고서를 보낼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죠. 저희 사무실에서 보내서, 제가 보고서를 보낸 것으로 알더라고요.”
 
  —보고서가 유출된 것이네요.
 
  “그렇죠.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몰라요.”
 
 
  투서 사건 이후 오히려 박 회장에게 힘 쏠려
 
지난 2007년 3월 25일 고령 박씨 종친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상관 없음.
  전과(前科)는 과거의 일이다. 이를 비판의 주된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대선 후보 근처에서 마치 측근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전과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종중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러 약점은 박 회장과 경쟁관계에 있던 박○○ 측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했다. 둘은 대선이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박씨 종중의 대표라는 자격을 얻어 선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경쟁했다. 아마도 박○○ 측은 전과 등의 과거 이력이 공개되면, 박 회장이 제거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박 회장은 상대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시점에 오히려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박씨 종친회에서 박 회장의 입지는 더욱 강해졌다. 따라서 박씨 종중들은 무엇인가 배경이 있으니,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사실 박씨 종친회는 후보와 무관한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도 해임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박씨 종친들은 박 회장이 대통령의 신임 등으로 투서에도 자리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기자가 박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겨울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무렵이다. 당시 서울시 여의도동 국회 앞에 위치한 대하빌딩 710호에는 박씨 중앙청년회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원래 청년회는 단독 사무실이 없었다. 2012년 8월 여의도 사무실 입주는 선거운동이 목적이었다.
 
  2012년 11월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에 기자는 박씨 중앙청년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에는 박근혜 후보 사진이 걸려 있고, 직원들이 빨간색 새누리당 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전화로 박근혜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등 누가 보아도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한 조직이었다.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박 회장은 기자에게 자신은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 국민행복네트워크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씨 중앙청년회는 어떤 활동을 했을까. 기자는 선거 당시 중앙청년회에서 간부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박모씨를 10월 말 만나, 그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2012년 8월 여의도에 청년회사무실 개소를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박 회장입니다.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서 했어요. 원래 청년회는 별도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역삼동 종친회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는 형식이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박씨 종중도 있을 것인데, 반발은 없었나요.
 
  “성씨가 틀렸다면, 아마 주먹다짐을 했을 거예요. 종중 일이라는 것이 그래요. 싫으면 안 나오면 그만이죠. 같은 박씨인데, 싫으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죠.”
 
  —조직은 대선 캠프 누구의 지시로 움직였나요.
 
  “홍○○, 유○○ 양쪽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청년회 사무처장으로부터 매일 후보 일정이 문자로 왔어요. 18명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모든 일정을 따라갈 수는 없었고, 거점 지역만 따라갔어요. 일찍 유세현장에 가서 지지자들이 후보에게 너무 몰려가지 않도록 에스코트를 하고, 함께 환호했어요. 또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펼치기도 했어요.”
 
 
  박 회장, “500만 박씨 도움으로 당선”
 
  당시 청년회에서 활동했던 박씨 종중들은 공통적으로 나름 당선에 공헌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박 회장 역시 회장으로서 비슷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박 회장은 2014년 12월 말 기자를 만나,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름 공헌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내용은 이렇다.
 
  “500만 박가(朴家)들이 열심히 도와줘서 당선되었다고, 김○○, 유○○, 홍○○ 모두 인정을 했어. 이번 선거는 무조건 지는 선거였지만, 박가들 때문에 승리한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지. (선거 당일 투표하러)나중에 나온 표가 젊은이들 표라고 생각해서(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박가들 표였다고 인정을 했어. 나는 대선 끝나고 그 사람(대통령) 근처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다들 이렇게 나처럼 살아야 해.”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종친도 있다. 최근 기자를 만난, 박씨 종친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온갖 잡놈들이 후보에게 달라붙는데, 후보가 이름은커녕 얼굴이나 기억하겠어요? 다 자기 착각인데, 자신이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선거가 끝난 후에 취업 등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아요. 선거 후 냉정하게 연락이 끊어졌어요. 박 회장이 ‘청와대에 이미 명단 넘어갔다’는 둥 이야기한다는데, 말이 안 되죠.”
 
  “조용히 살고 있다”고 말하는 박 회장의 발언을 이해하려면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기자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캠프를 취재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박근혜 캠프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러한 한탄을 했다.
 
  “후보가 자기 캠프를 믿지 않아. 캠프에 오지도 않아. 이번 선거는 후보 혼자 뛰는 거야.”
 
  후보가 자신의 선대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당시 기자에게 “나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 혹은 “직접 전화를 건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직접 후보에게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비서와 전화 통화하는 정도였다. 이상하게 후보 비서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후보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자가 최근에 만난 박씨 청년회 간부 역시 아직까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대통령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었어요. 연락하면 안○○이 받았어요. 박씨 청년회 일정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협의했어요. 후보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다고 생각했어요.”
 
  분위기가 이러니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후보 비서진과 소통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대선이 끝난 후, 이들은 평소에 받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관계 단절은 냉정하게 이뤄졌다. 기자가 만난 박씨 청년회 간부 역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들의 관계는 선거 기간 필요에 의해 잠시 연락하는 사이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선거가 끝난 후 자연스럽게 대선에 공(功)이 있는 사람을 챙겨 줘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자리를 바라는 수요가 많았다. 그러나 자리를 차지한 경우는 많지 않다. 여의도에는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홍○○은 도망 다녀. 홍○○이 선대위에서 핵심 역할을 했잖아. 대선 후 대통령에게 챙겨 줄 사람 명단을 가져갔어. 말도 못 붙였어. 그러니 대선 때 자기 밑에 있던 사람들 볼 면목도 없으니, 만나지도 못하고 도망 다니는 것이지.”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박 회장은 본인이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불러 주는 곳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박 회장의 여의도 청년회 사무실에는 유력 정치인들이 들락거렸고, 어찌 되었건 대선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박씨 종중들이 박 회장을 믿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배경을 믿고, 박 회장에게 부동산 계약금을 넘긴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박 회장의 자기 과시에 상당히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대부분 박씨가 회장이었던 박씨 참의공파, 부마공파 종중들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박씨 종중으로, 박 회장으로부터 종중 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약금을 건넸다가 돈을 날린 경우가 많다.
 
 
  성남지청에 2년6개월째 머물고 있는 사건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제가 된 박 회장 비방 전단.
  기자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취재 중 공교롭게도 검찰이 2년6개월이 넘도록 박 회장 사건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3년 4월 밀성박씨 참의공파, 부마공파 종중원 4인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박 회장을 “종중 재산 77억원을 ‘횡령’했다”고 고소했다. 논란은 아직까지 검찰이 기소, 불기소 등 결과를 내놓지 않고 수사 중이라는 것이다. 과연 검찰이 3년 가까이 결론을 내지 않고 수사만 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가능한가.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은 고소 사건이 접수되면, 가능하면 60일 안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만일 60일이 넘게 되면 부장검사 혹은 수사과장에게 수사 상황을 보고한다. 사건이 미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또 검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을 가능하면 빨리 처리하려 한다. 고과(考課)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 범죄 혐의를 고소해 죄가 있으면 ‘기소’를 해서 법원의 결정에 따르거나, 죄가 없으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린다. 보통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은 자신이 고소한 사람이 분명히 죄가 있는데,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고 하소연한다. 만일 검찰의 결정에 승복하지 못할 경우, 재정신청(裁定申請) 등의 차선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검찰이 결론을 내리지 않고 무한정 시간을 끌면 어떻게 되는가. 기자가 형사 전문 변호사 등에게 문의한 결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만일 검찰이 시간을 끌다가 공소시효를 넘기게 되면, 소송 등으로 검찰 책임의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시효를 유지하면서 계속 수사하고 있다며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경우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아가 검찰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왜 결론을 내리지 않는지 물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마치 대법원에서 검토할 것이 많다며 수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과 같다.
 
 
  고소인, 박 회장 계좌 확보해 검찰 제출
 
  2013년 4월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제소한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사건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박 회장이 종중 부동산을 싸게 판다고 종중원들에게 접근했어요. 망설이는 박씨 종친에게는 VIP(대통령) 전화번호를 보여주며(지위를 과시하며), 믿으라고 했어요. 실제 믿고 계약한 경우가 있어요. 이렇게 해서 계약금을 받고, 등기 이전을 해 주지 않고 버티는 경우가 상당해요. 계약금도 돌려주지 않고요. 저희가 볼 때 정확한 피해액은 알 수 없지만 150억~200억 정도로 추산해요. 이렇게 마련한 돈 가운데 77억원을 개인 용도로 ‘횡령’했다고 2013년 성남지청에 고소한 것이죠. 횡령에는 신라호텔 결혼식 비용 1억여 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면 되겠네요.
 
  “그 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제 3년이 되어 갑니다. 검사가 5번 바뀌었어요. 우리 측 변호사가 끝없이 찾아가 제발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검찰이 박 회장을 기소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는 사이 박 회장은 지금도 종중 부동산을 팔고 있어요.”
 
  —그렇다면 ‘횡령’ 혐의가 아닌, ‘사기’죄로 고소하지 그랬습니까.
 
  “저희가 박 회장의 농협계좌 15개와 기업은행 계좌 9개를 확보했습니다. 검찰에 저희가 확보한 24개 계좌 입출금 내역을 모두 넘겼어요. 사기 혐의는 당사자 간의 갑론을박이 생기니까, 박 회장을 처벌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어요. 계좌를 통해 종중 돈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하면 금방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증거가 명확하니까요. 그런데도 검찰은 결론을 내지 않고 있어요. 저희는 혹시 전관변호사를 안 써서 그런가 싶어 전관변호사까지 고용해서 부탁했어요.”
 
  —검찰이 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박 회장은 사기로 마련한 돈을 24개 계좌를 이용해 수차례 회전시켰어요. 그 다음에 여러 용도로 사용했고요. 그 가운데 농협 두 계좌를 통해 박씨 중앙청년회 자금을 집행했어요. 박 회장은 사실 십여 년 동안 이렇다 할 수입이 없었어요. 결국 사기 친 돈을 중앙청년회 운영비로 사용했는데, 그중 상당액이 대선 기간에 쓰인 것으로 추측돼요. 저희 입장에서는 검찰이 박 회장 사건이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확대될 것을 걱정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검찰의 입장은 무엇인가. 우선 검사가 5번 바뀐 부분은 맞다.
 
  확인 결과, 중간에 ‘이○○ 검사→김○○ 검사→이○○ 검사’로 변한 것엔 사연이 있었다. 2014년 10월 성남 판교 환풍기 사고로 이○○가 사건 해결 특별팀으로 이동하면서 김○○ 검사가 사건을 잠시 맡게 되었다. 김○○ 검사는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고, 다시 이○○ 검사가 사건을 맡게 되었는데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5년 2월 검찰 정기인사로 현재 사건은 박○○ 검사가 맡고 있다.
 
  가장 의문이 든 부분은 처음에 사건을 맡았던 공○○ 검사가 2013년 8월 검찰 조직을 떠난 것이다. 검사는 보통 정기인사 시즌에 옷을 벗고 개업한다. 상식적으로, 하던 일은 마무리하고 조직을 떠나는 것이 모양이 좋기 때문이다. 기자는 우선 변호사로 개업한 공○○ 전 검사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박 회장 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을 아십니까.
 
  “아, 종중 사건이요. 그게 아직도 안 끝났어요?”
 
  —갑자기 자리를 떠나, 외압 등이 의심된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그건 아닙니다.”
 
  —왜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했나요.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하니, 제가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자가 느끼기에 본인도 아직까지 사건이 끝나지 않은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한 성남지청의 입장은 무엇인가. 기자가 성남지청에 문의한 결과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으며, 의견이 있으면 (사건 당사자가)제출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기자가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담당 검사는 ‘사건이 길어져 미안하지만, 양측이 제시한 자료가 너무 방대해 시간이 더 필요하며, 판교 사고 등으로 검사가 자주 교체되어 인수인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청구한 구속영장 ‘검찰 기각’
 
박 회장이 2012년 대선 당시 사용한 명함.
  적극적인 수사는 검찰보다 경찰에서 이뤄졌다. 2015년 5월 박 회장으로부터 토지 계약금 8700만원을 받지 못한 박모씨는 박 회장을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양평경찰서에 고소했다.
 
  양평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또 다른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양평서에 가서 이런 질문을 했어요. 검찰도 해결 못하는 사건을 이런 시골 경찰서에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담당 수사관이 그러더군요. 그래요? 제가 한번 해 볼랍니다.”
 
  양평경찰서는 10월 30일 박 회장의 구속영장을 검찰에 청구했다. 피해액을 변상하지 않은 점과 주소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사건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담당 여주 검찰은 영장을 기각했다.
 
  공교롭게도 박 회장은 영장심사 하루 전인 29일 고소인을 만나 계약금을 모두 변제했다. 담당 검사는 30일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갚았는지를 물었고, 피해액 변제를 확인했다. 또 박 회장은 10월 25일 성남시로 주민등록지를 옮겼다. 영장집행을 막기 위해 치밀하게 대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구속영장을 심사한 검사는 피해액이 변제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양평경찰서의 영장을 기각했다.
 
  현재 해당 사건은 여주지청이 다시 조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들은 뭉쳐서 고소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성남·여주·광주 등에서 산발적으로 고소를 진행시키고 있다. 박 회장은 수사 상황을 지켜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피해액을 변상하며 구속 등을 피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 회장 본인은 종중 부동산 피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기자는 박 회장에게 반론(反論)을 요청했다.
 
 
  박 회장, “계약금은 종중 일에 사용”
 
  10월 말 기자는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 커피숍에서 박 회장을 만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왜 종중 땅을 종원들에게 팔았습니까.
 
  “나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라, 종원들의 총회 결정 등 절차를 밟고 진행한 것입니다.”
 
  —계약금을 받았으니, 등기 이전 절차 등을 마무리해 주면 문제가 없지 않나요.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종중 땅을 노린 불순한 세력이 저에게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어요. 복잡한 법률 문제로, 해 주고 싶어도 못해 주는 것이죠.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통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약금을 돌려주면 되지 않나요.
 
  “받은 돈은 모두 종중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돌려주고 있습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했나요.
 
  “제실(祭室) 공사비, 소송비 등으로 사용했어요.”
 
  —그렇다면, 피해자들에게 계약금은 어떻게 돌려줄 생각입니까.
 
  “제가 이번에 종중 회장 선거에 다시 출마합니다. 회장이 되어서 해결해 줄 예정입니다. 종중 땅을 팔아서 돌려줄 생각입니다.”
 
  —전과(前科)가 많다는 투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요?
 
  “(부인하지 않고)그것은 나중에 대응할 것입니다.”
 
 
  박 회장, “‘지만’이나 정윤회보다 내가 핵심”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 박지원 의원이 박원순도 있고 박영선도 있는데, 왜 박근혜만 지원하느냐고 항의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복지의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어요.”
 
  —대선 기간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박씨 중앙청년회 회비, 박씨 유지(有志)들의 성금(誠金)으로 충당했습니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나요.
 
  “속 답답하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에 있으니 답답하죠.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이해관계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있어야 위정자(爲政者)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죠. 친박 핵심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야말로 친박이죠. 지만이나 정윤회보다 핵심이죠.”
 
  현재 박 회장 부동산 사기·횡령 사건은 검찰, 경찰에서 수사 중이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어느 정도 사건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소위 말하는 ‘배경’을 중요시 여기나. 나아가 ‘배경’에 기대려 하나.
 
  소위 ‘배경’의 꼭대기에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조그마한 흔적이 가지는 힘에 기자는 당황했다.
 
  기자의 판단에 정말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實勢)라면, 숨죽이며 자신을 숨기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나아가 박 회장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대부분의 사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연결된 흔적들은 박 회장이라는 인물에 큰 힘을 실어 줬다. 과연 실체는 무엇인가. 하루라도 빨리 검찰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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