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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兪炳彦 변사 1년여, 한국의 검시제도 개선되나

“검시 관련법 만들고, 법의학 전공의에게 현장 권한 줘야”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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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武鉉 대통령 사망 때 경찰, 국과수 검시 요청 안 해… 대통령 사망 사건 ‘변사’ 처리 해프닝
⊙ 연평균 3만5000여 건의 변사 발생… 법의관 숫자는 40명에 불과
⊙ 법의학계, 미국식 법의관(ME) 제도 혼합한 일본의 감찰의무원 제도 선호
⊙ ‘유병언 변사체 사건’으로 놀란 검찰과 경찰, 국과수와 365일 현장출동하는 시범사업 전개
지난해 7월 25일 오전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추정 시신 부검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과수 측은 시신의 신원이 유 전 회장은 확실하지만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세모그룹 유병언(兪炳彦·당시 73세) 전 회장이 반 백골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된 지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유 전 회장은 지난해 6월 12일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 별장에서 2km가량 떨어져 있는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변사체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분석을 했고, 40일 만인 7월 22일 변사체는 유병언 회장이라고 관할 순천경찰서에 통보했다. 송치재 휴게소 인근 별장 ‘숲속의 추억’과 금수원 내 유씨 작업실에서 확보한 두 개의 유병언 DNA 시료와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유병언이 밀항해 해외에 있다”는 ‘유병언 괴담’과 함께 일부 야당 의원, 일부 시민들은 국과수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경찰은 유씨 시신을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 재부검을 실시했고, 지난해 7월 25일 서중석(徐中錫) 국과수 원장은 “독극물 분석과 질식사, 지병, 외력에 의한 사망 여부 등을 분석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과수는 “의혹을 완전히 풀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18일 만에 반 백골화가 가능하며, 추정 신장, 왼쪽 손가락 끝 마디 뼈 결손, 치아 및 DNA 분석 결과 변사체의 주인공이 유씨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24일 국회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이 유 회장 시신 현장사진을 들어 보이며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과수 발표 직후에도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는 ‘국과수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57.7%, ‘국과수의 발표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4.3%에 불과했다. 서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단순변사로 매장처리될 뻔한 변사체를 유전자 분석으로 신원확인을 한 국과수를 격려하지는 못할지언정 비전문가들의 의혹제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국과수를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법의학계 원로인 문국진(文國鎭)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은 “경찰이 40일 만에 죽은 채로 발견된 유병언을 노숙자 변사 사건으로 처리하면서 초동수사가 엉망이 됐던 것”이라면서 “검시를 담당하는 검찰, 경찰, 의사, 판사는 초동수사 실패라고 하며 서로 몸사리기 바빴다”고 했다. 문 명예회장은 “언론은 애꿎은 국과수만 때리는데, 죽은 지 40일이나 지나 홀랑 썩은 것을 갖고 국과수가 무슨 재주로 사인(死因)을 규명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의 법의관 제도만 도입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데, 답답한 노릇”이라고 했다.
 
  —검시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변사체 검시는 국민의 죽음에 대한 국가적 감시입니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한 엄중한 사법행위이기도 하지요. 정확하고 공정한 사인규명으로 국민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검시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검시 내용을 보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검시 집행은 검사가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검사 수에 비해 변사체가 많아 집행을 경찰관에게 위임하는 바람에 실제로 검시 집행 책임자는 경찰관인 셈입니다. 그런데 검시 업무 성격상 의사의 검안(檢案)을 반드시 받아야 해요. 결국 검시 실무는 의사가 하고 있습니다.”
 
 
  檢視와 檢屍의 차이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검사(檢事)가 주체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는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을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의 독자적 판단만으로 부검을 할 수 있습니까.
 
  “부검은 검사나 경찰관, 의사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반드시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합니다. 검시가 이처럼 지휘(검사), 집행(경찰), 실무(의사), 부검 결정(법원) 등 네 곳에 나눠져 있어요. 그렇다 보니 검시의 원래 목적 수행은 잊은 채 자기 책임 모면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검시(檢視)는 죽음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위해 사체 및 그 주변 현장까지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말하며, 검시(檢屍)는 검시(檢視)의 과정에 포함된다. 검시(檢屍)란 죽음에 대한 의학적인 판단을 위해 주로 사체에 행하는 검안(檢案)과 부검(剖檢)을 포함한 검사다. 검안은 시체를 손괴하지 않고 사망을 확인하고 개인 식별을 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이고, 부검은 사망의 종류 및 사인을 가려내기 위해 시체를 해부해 검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사망하는 숫자는 25만명 정도로 이 중 15%인 3만6000명이 변사자라고 한다. 변사자 3만6000명 중 검사의 부검 여부 결정에 따라 3분의 1인 1만2000명 정도만 국과수 등 전국 대학병원에서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인구가 2000만명인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의 경우, 국과수에서 부검이 이뤄지는 사체는 연간 3500건 정도다.
 
  일단 변사체가 발생하면 경찰의 현장 감식반이 출동해 초동수사를 벌이고 시체를 병원 영안실로 보낸다. 이후 공의(公醫·내외과 의사로서 현지 경찰이 무보수로 임명한 현지 의사)가 와서 검안을 한 뒤 검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법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공의들은 변사자의 몸에서 나는 부패한 냄새를 농약 먹은 것으로 오인해 ‘자살’로 검안하는 일까지도 생기곤 했다고 한다.
 
  최영식(崔永植)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지금도 직접 부검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사체는 의료 전문가인 법의관들의 눈에 의해 부검 여부가 결정돼야 하는데, 의료 비전문가인 검사의 눈으로 부검 여부를 결정하면 자칫 억울한 죽음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면서 “그나마 검사가 직접 현장에 나가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는 10% 미만이고(2014년 검사의 직접 검시율 4.1%), 대부분의 사건은 사법 경찰관들이 처리하고 있어 변사체의 사인을 밝히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서는 법의관이 사건발생 현장에서부터 사체에 대한 모든 검시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검시체계는 반쪽짜리입니다. 현장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현실은 법의관이 사건 현장에 가지 못하고 사진설명만 보고 부검을 하니까요. 현장을 가본 것과 안 가본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1992년 6월 12일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은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시 욕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모녀의 사인 규명의 열쇠는 사망 시각이었지만 국과수가 부검한 날은 사건 이튿날인 6월 13일 오전. 이미 사체는 시강(屍剛·사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뻣뻣해지는 것)과 허벅지에 약간 남은 시반(屍斑·피가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가라앉아 생긴 자줏빛 반점) 측정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경찰 측에서 준 사진도 촬영시각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해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법의관들이 현장에서 사체를 검안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정년 보장된 미국 법의관들, 책임감 강해
 
광복 후 처음으로 1976년 고려대 의대에 법의학교실을 개설한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
  이 때문에 문국진 명예교수는 법의관 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문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지금 우리가 겪는 모순을 이미 겪으면서 일찍이 법의관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검시의 모든 과정을 법의학 지식과 경험이 있는 법의관 한 사람에게 전담시켜 그들이 경찰과 함께 변사 현장에서 검시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했다.
 
  1976년 고려대에 법의학교실을 처음으로 연 문국진 교수는 1970년 국과수 법의과장을 물러나 전 세계 법의관들이 선망하는 뉴욕대 의대 법의학교실로 1년6개월간 연수를 떠났다. 뉴욕대 의대 법의학교실엔 법의병리학자 찰스 노리스(Charles Norris) 등 당대의 법의학계 석학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문 교수는 그곳에서 선진 시스템을 눈으로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 교수는 뉴욕의 법의관이 경찰과 함께 변사 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검시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뉴욕은 뉴욕시의 독립기구로 법의관 사무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법의관을 ME(Medical Examiner)라고 부른다. ME 제도는 187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시작했으며, 1917년 뉴욕주는 검시(檢屍)의 모든 과정을 법의학 지식과 경험이 있는 법의관 한 사람에게 전담시켰다.
 
  —미국 법의관들은 한국의 법의관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ME 시스템은 전문적으로 훈련된 의사가 변사자에 대한 검시 업무를 전담하는 제도로, 법의관은 독자적으로 현장조사로부터 검안과 부검은 물론, 필요한 경우 증인심문까지 실시하면서 변사 사건을 주도적으로 처리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임기제가 아닌 정년제라 자기 직책에 프라이드를 갖고 천직처럼 여깁니다. 따라서 책임감이 강하지요.”
 
  문 교수는 “뉴욕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법의관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모든 권한이 ME에게 집중돼 있었다”며 “‘ME 라인’이 쳐 있으면,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차를 우회해서 가야 할 정도였다”고 했다.
 
  —우리는 왜 법의관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겁니까.
 
  “한국 법의학자들의 실력은 세계적인데, 관련 제도는 아직 미흡합니다. 2005년 당시 유시민(柳時敏) 의원이 ‘검시제도 개선안’을 발의한 적이 있었으나, 17대 국회 내내 해당 기관들의 주도권 다툼으로 표류하다 회기를 넘기면서 자동 폐기됐습니다. 국회 율사(律士) 출신 의원들이 제도 도입에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대응했죠. 이제야 관심을 갖는다는데 지켜봐야겠습니다.”
 
 
  경찰, 盧武鉉 대통령 검시 국과수에 요청 안 해
 
지난해 11월 3일 최영식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이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고 신해철씨의 시신 부검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법의학자들은 검시체계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2009년 5월 23일 발생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사망 사건을 꼽는다. 검찰과 경찰은 5월 23일 낮 12시20분부터 30여 분간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 지하 1층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노 대통령 시신에 대한 검안을 실시했다. 강희락(姜熙樂) 당시 경찰청장은 국과수 측에 ‘현장임장(現場臨場)’을 요청했고, 국과수는 법의학팀 부장을 위시해 3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현장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검안은 검경 관계자와 허기영(許基永) 부산대 법의학교실 교수, 노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鄭宰星) 변호사만 입회했다. 5월 24일 사인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던 경찰은 유가족들이 반대함에 따라 부검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1차 검시기관인 국과수는 사체와 현장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고,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도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일국의 대통령 사망 사건이 졸지에 ‘변사 사건’으로 처리되고 만 것이다.
 
  박의우(朴宜雨) 건국대 의대(법의학) 교수는 “노 대통령 변사 사건은 두 가지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국과수의 검시가 수사기관의 선택에 따라 의뢰를 받을 경우에만 수동적으로 검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공개된 겁니다. 둘째로는 법의관 육성과 처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입니다. 당시 경남북과 부산 지역을 담당하는 국과수 남부분소에는 근무 희망자가 없어 법의관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지 경찰은 평소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 부검을 의뢰하고 있었고, 대통령 사망 사건 또한 부검은 의과대학에서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죠.”
 
  영미법계(英美法系)의 국가는 부검을 전담 직책인에게 의뢰하고 있는 ‘전담 검시제도’인 데 반해, 대륙법계(大陸法系) 국가는 ‘겸임 검시제도’로 검시 전담 직책을 가진 사람이 없이 관련 직종의 공무원이 검시 업무를 겸하게 하고 있다. 전담 검시제도로는 영국, 미국 일부 주, 싱가포르 등이 시행하는 검시관 제도(Coroner System),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법의관(ME) 제도가 있다.
 
  이에 비해 겸임 검시제도는 독일, 일본, 한국, 인도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 수사기관인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검시를 지휘하며, 모든 변사 사건은 일단 수사당국에 신고돼 검시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범죄와 관련되거나 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당국의 요청에 의해 법원의 허가로 부검이 시행된다.
 
  특히 일본은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행정부검과 사법부검을 이원화해 대도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감찰의(監察醫·미국의 ME의 변형)를 두고, 이들이 소속된 감찰의무원(監察醫務院)이란 조직에서 주로 행정부검(범죄와 관련이 없는 이상 사체 부검)을 담당하고 있고, 사법부검(범죄와 관련 있는 변사체 부검)은 대부분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담당하고 있다. 지방의 경우, 행정부검이나 사법부검 구분없이 경찰공의 또는 지역의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처리한다.
 
 
  日本의 감찰의무원 제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검시는 제도적으로 변사 현장이 수사 초기에 검시 의사에게 개방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부검은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고 사건 발생 후 최소 1일 이상이 지나 실시되고 있다. 사법경찰관의 현장임장→검사에게 발생 보고→검사의 부검 지휘→검증영장 신청→검사의 청구→법원의 영장 발부 등의 멀고도 먼 절차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초기에 범죄현장에 접근 못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변사체도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 이틀이 지난 상태다. 부검의는 영안실의 냉장고를 거친 뒤 벌거벗은 차가운 주검의 모습으로 변한 변사자를 처음 대면하게 되고, 담당 경찰을 통해 검시조사 상황에 대한 정보를 귀동냥하면서 장님 코끼리 더듬듯 부검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의 변사체를 주고 사망시각을 알아내라는 것은 그야말로 ‘점을 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검 수요는 해마다 늘고 있고 부검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국과수 법의관들은 연간 5400여 건(서울·경기 3500건)의 부검 업무를 소화하느라 현장 검안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1인당 연평균 216건에 달하는 수치다. 이 정도의 부검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법의관이 300~400명 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평균 3만5000여 건의 변사 사건이 발생하지만 법의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23명을 비롯해 서울·연세·고려·경북·조선·전북·전남대 등 법의학 전공 교수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 등 40여 명에 불과하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들도 권일훈·김광훈·이상용·조갑래·한길로 박사 등 7~8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서울,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등 권역별로 소수만 활동하고 있을 뿐이어서 극히 제한된 일부 사건만 검안할 수 있다.
 
  촉탁부검도 2008년 이전에는 건당 25만원을 지급했으나, 2009년부터는 기본 30만원에 재료비 5만원을 합해 3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국과수는 부검 1팀당 법의관 1명, 법의조사관 2명, 형사사진 담당관 1명 등 4인이 한 팀을 이뤄 검시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미국의 경우, 부검 1건당 약 3000달러, 우리 돈으로 300만~400만원을 계상한다. 이 정도라야 조직검사와 약·독물검사, 인건비와 건물유지비 등 사무실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청의 의견대로 촉탁의 부검비를 50만원으로 인상할 경우, 국과수 비용부담이 크게 늘어나 검시 업무가 와해되거나 촉탁부검 자체가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박의우 교수는 “부검 비용은 현실화하되 국과수의 인력과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곳과 자체 부검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과는 비용을 차별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 검시 보조 인력 보충 위해 경찰검시관 채용
 
뉴욕주의 법의관(Medical Examiner)이 부검할 사체를 결정해 발가락에 태그를 달아놓은 모습. 대륙법계인 한국과 달리 영미법계인 미국은 법의학 과정을 이수한 의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한다(위).
미국 네바다주 와슈 카운티의 수석 법의관 엘렌 클라크(Ellen Clark) 박사(왼쪽)가 검시보조원과 함께 부검할 사체를 옮기고 있다(아래).
  경찰은 현장 검시를 제대로 하려면 법의관이 현재의 4배 이상인 160여 명 정도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시신 1구의 평균 검시 시간을 9시간으로 잡으면 부검의 1명이 하루에 살펴볼 수 있는 시신은 많아야 2구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관은 의대생들이 기피하는 직종이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과수도 1955년 설립 이후 57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법의관 정원 23명을 채웠을 정도다.
 
  국과수가 인력을 늘릴 수 없다 보니 경찰청 한기민(韓基玟) 당시 총경이 2005년부터 경찰검시관(구 법의조사관) 150여 명을 경찰 일반직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안을 기획했다. 이들은 검안을 할 수 있지만 초동수사를 마친 뒤 검사에게 제출하는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 권한이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를 경찰검시관이 작성한 ‘변사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법 17조에 따르면, 치과·한의사를 포함한 의사만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다.
 
  이숭덕(李崇德) 서울대 의대 교수는 “경찰검시관들은 동네 의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들로, 검안의를 대신해 이들로 100% 대체하는 것도 제도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종합병원 의사라도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부검을 할 수 없듯 경찰검시관이든 동네 의사든 검안의 역할을 하려면 법의학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영식 소장은 법의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법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배출되고 있지 않은 점을 들었다.
 
  “정종섭(鄭宗燮) 안행부 장관이 ‘국과수 중장기 로드맵’으로 2020년까지 직원 500명(법의관 80명, 현재 25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박신양 주연의 법의학 드라마 〈싸인〉 방영과 가수 신해철 사망 사건 등 사회 이슈가 되는 사건들 부검으로 법의학에 대한 홍보가 상당히 되긴 했습니다만, 돈벌이가 되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이가 적습니다. 심지어 법의학을 의료계의 ‘3D 업종’으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국과수에 여성 법의관 4명을 포함해 젊은 의학도들이 법의학도가 되겠다며 의대에 지원하는 모습에 그나마 위안을 받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국과수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해 진도군민이 기증한 진돗개 ‘진돌이’도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과수 직원들에게 ‘펫 세러피(Pet Therapy)’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국과수에 채용되는 의사는 대개 임상병리나 해부병리를 전공한 의사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법의학 전문의 과정이 있는 대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의학자가 되는 길은 좁다. 의대(6년)를 졸업하고 병리학 전문의(5년)를 따고 법의학교실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문국진 교수가 초석을 놓은 법의학교실이 현재는 전국 의대 41곳 중 12곳에 있다. 현재 법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숫자는 대략 70~80명, 고려대 법의학교실 창설연도를 기준으로 보면, 지금까지 오는 데 35년이 걸린 셈이다.
 
 
  유시민법
 
노무현 전 대통령 시신이 안치됐던 경남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의 영안실 모습. 노 전 대통령 시신은 사진의 5호 시신 보관함에 안치됐었다(왼쪽). 2009년 5월 23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 지하 1층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경호원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오른쪽).
  1960년대 후반부터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일어났고, 형사소송법·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등에 흩어진 관련 규정을 아우를 수 있도록 검시 관련 독립적인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2003년 12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소위 세원청(洗寃廳) 법안으로 불리는 ‘사인확인기관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해 공청회를 열었고, 2005년 유시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일명 유시민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본격화했다.
 
  특히 유시민 의원이 발의한 ‘유시민법’은 ▲정부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검시관의 자격을 의사에서 법의학 교육과정 수료자 등으로 확대 ▲검시대상을 법률사항으로 규정 ▲검시관의 현장접근성 보장 등을 골자로 하는 것이었지만, 국회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와 함께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행정검시 활성화 및 무연고 시체처리 방안에 대해 검시를 행하는 자의 호칭, 법률 제정 필요성, 법의관 인력양성, 국과수 및 법의학교실 처우개선 방안 등에 관해 각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유시민법은 검시관 양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이 법에 따라 대통령령이 정하는 행정기관에 검시관을 두도록 하고 있다”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법률(제27491조)처럼 체계적 열거는 하고 있지 않지만, 교통사고·보험사고·업무상 재해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망 사건에 대해 사망자 유족이 요청하는 경우 검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진일보한 입법 태도”라고 했다.
 
  대전경찰청 유동하 경정은 그의 논문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충남대, 2010)〉에서, “현재 검시제도 개선 방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첫째, 검시위원회의 설치와 검시기관의 소속 문제”라며 “검시위 소속 문제는 경찰과 검찰 내부 갈등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법의관의 자격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법의학회와 병리학회가 서로 ‘숲과 나무를 못 본다’ 갈등을 빚고 있다”고 했다.
 
박의우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유 경정은 “검시 관련 문제의 심의·의결 기관으로서 검시위원회를 보건복지부나 국무총리 산하에 두어 정책을 결정케 하고, 자치단체 산하에 검시기관(국과수)을 둬 운영한다면 이상적이라 판단된다”면서 “감정기관(국과수)이 수사기관(검찰)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법의관은 미국식 ME로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과수의 의견이 모이고 있고, 이를 위해 대학에 법의학 인력양성을 위해 ‘법의학 전문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국민권익위 주관 의견수렴회의에서는 국과수를 경찰청으로 이관하고, 검시위원회는 법무부(법의관의 임면과 육성 담당) 쪽으로 잠정합의를 도출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현장부서와 기획부서의 이원화를 꾀한 것이다. 1994년 당시 심재륜(沈在淪) 대검강력부장은 전국 수사기관에 배포한 소책자 《김기웅 (순경)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에서 검시제도의 개선방안을 제시하면서, 검사가 검시를 직접 담당하는 현행 우리나라의 ‘겸임검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검시 권한을 법의학 전문의에게 부여하는 미국식 전담검시제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의우 교수는 “현재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방자치단체에 검사기관을 두고 수사기관과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는 방안”이라며 “장기적으로 검시기관의 소속을 자치단체에 두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현행 국과수를 검시기관으로 입법화하고, 각 의과대학의 법의학교실의 해부 가능한 교수를 법의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숭덕 교수는 “검시 관련 법률은 반드시 제정해야 하고, 검시 대상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만 한다”면서 “인력과 자원이 불충분하다면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 국과수와 현장출동 체제 갖춰
 
유병언 변사체 논란 이후 검찰이 변사체 검시와 관련한 제도정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1월 13일 대검찰청이 전국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와 국과수 법의관이 참여하는 법의학 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사진 중앙이 김진태 검찰총장, 김 총장 오른쪽이 이정빈 자문위원장(단국대 석좌교수), 오른쪽이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전남대 의대 교수)이다.
  지난해 ‘유병언 변사체’ 초동 대응 논란으로 궁지에 몰렸던 검찰과 경찰이 변사체 검시와 관련한 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는 등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검찰은 국내 최고 수준의 법의학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대검찰청은 검사장(차관급)이 주도하는 과학수사부를 신설한 데 이어, 지난 1월 13일 전국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24명과 국과수 법의관 2명 등이 참여하는 법의학 자문위원회(위원장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를 출범했다. 대한법의학회 회장을 지낸 이정빈 단국대 법대 석좌교수가 자문위원장을 맡고 박의우 건국대 교수, 이윤성 서울대 교수, 이상한 경북대 교수, 신경진 연세대 교수, 김유훈 국과수 법의관 등 국내 최고 수준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사의 변사체 직접 검시비율이 이전 4%대에서 두 배에 달하는 8% 안팎의 비율로 오르는 등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법의학 자문단을 통해 주요 사건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중요 변사 사건이나 범죄의 의문이 있는 변사 사건 등 필요한 경우에 위원의 자문을 받을 예정”이라며 “직접 검시 사건 중 약 10%에 해당하는 300건에 대해 법의학 자문위원의 자문을 받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는 국과수·법의학계와 공동으로 구체적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 예컨대 변사 사건 현장 검시 때, 미국의 법의관(ME)처럼 검사는 물론이고 법의학자도 함께 현장에 가는 시스템을 구축해 보자는 것이다.
 
  경찰청은 국과수, 대한법의학회와 함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주변(서울 8권역) 경찰서를 중심으로 ‘국가검안시범사업’을 발족했다. 경찰청은 지난 3월 1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양천-구로-강서 경찰서 관할지역(서울과학수사연구소 인근)을 대상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변사 사건에 대해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내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365일 변사 신고에 대응하고 있다. 시범사업팀은 지난 2월 27일 발생한 화성 엽총 난사 사건, 4월 5일 시흥 시화호 토막시신 발견 사건, 5월 13일 내곡동 예비군 총기 난사 사건 등에 출동해 즉시 검안과 긴급부검을 실시했다고 한다.
 
  김형석 전남대 의대 교수(법의학)는 “시범사업은 콜센터를 운영해 변사체를 전수 검안하고 있다”면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법의학 전문의들이 현장에 투입됨으로써 경·관·학 협력뿐만 아니라 억울한 변사체들이 훨씬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인구 150만명에 달하는 서울연구소 인근 지역을 8권역으로 나누고 24시간, 365일, 30분~1시간 이내에 도착해 검안 직후 수사관과 유족에게 검안서를 즉시 발행해 주고 있다”며 “검안과 부검을 연계해 장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등 반응이 상당히 좋다”고 했다.
 
  공적 검안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법의학교실 교수는 강신몽 가톨릭 의대 교수(전 국과수 소장), 이숭덕 서울대 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대 의대 교수, 유성호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회 이사), 박성환 고려대 의대 교수(법의학회 이사), 이기범 아주대 의대 병리학 교수 등이다.
 
  김형석 교수는 “법의학 전문의들의 현장투입을 통해 검찰-경찰과의 검시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되고, 유족들이 부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는 등 국가 검시체계가 모범적으로 구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이 좋은 사업을 어떻게 지속성 있게 유지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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