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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추적

아파트 지을 땅 안 사는 삼성 래미안, 왜?

‘래미안 신화’의 산실, 주택사업부 작년 말 빌딩사업부로 흡수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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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서 재개발·재건축 시장 수주 최근 3년간 1건
⊙ 국내 최초 2000년 ‘래미안’ 론칭 후 품질과 기술 경쟁력으로 아파트 브랜드 시대 열어
⊙ 이상대 전 부회장을 비롯 ‘래미안 신화’의 주역들 모두 삼성물산 떠나
⊙ 최근 두 차례 그룹 최고위층에 주택사업 활성화 방안 보고했으나 부정적 반응 얻어
⊙ 삼성물산 측, “수주 잔고 처리 과정에서 신규 수주 안 하는 것일 뿐”
지난 2013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삼성물산 래미안 이스트파크 모델하우스 아파트 견본주택 전시장을 찾아 단지 모형을 살펴보고 있는 소비자들. 삼성물산은 2000년 래미안 브랜드 출시 후 브랜드 선호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을 검색해 보면 지난 3월 31일자로 등록한 삼성물산의 〈2014년 사업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는 ‘국내 건설시장 현황 및 전망’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렇게 씌어 있다.
 
  〈2014년 국내 건설시장은 공공, 민간 모두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 주택이 2007년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 전년 대비 18% 증가한 107조5000억원입니다. (중략) 민간 부분은 전년 대비 21% 증가한 66조8000억원으로 분야별로는 토목이 전년 대비 17% 감소한 8조2000억원, 주택을 포함한 건축은 전년 대비 29% 증가한 58조6000억원 규모입니다.〉
 
  2014년 건설시장 현황을 분석한 후 2015년 국내 건설시장 전망을 이렇게 내놓고 있다.
 
  〈공공, 민간 모두 2014년 수준을 유지하며 2014년 대비 2% 증가한 110조원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건설시장 규모는 2007년 128조원으로 최고 정점을 기록한 후 2013년에는 91조3000억원까지 감소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삼성물산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건설시장은 2013년을 저점(低點)으로 이듬해인 지난해에는 급격한 상승세를 기록했고 금년에도 상승세를 점치고 있는 것이다.
 
  정작 국내 건설시장에서 주택시장의 확대를 점치면서도 삼성물산은 국내 주택 건설시장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 보고서가 만들어지던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기존의 주택사업부와 빌딩사업부를 통합했다. 정확히 말하면 빌딩사업부가 주택사업부를 흡수통합하는 형식이었다.
 
  삼성물산의 〈2014년 사업보고서〉에는 건설산업의 특성 및 개요를 설명하는 항목도 있다. 다음은 그 개요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건설산업은 발주처에 따라 크게 민간과 공공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상품별로는 상업·업무용 빌딩, 공장 등을 생산하는 건축사업,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생산하는 산업이자 타산업의 기반시설을 생산하는 토목사업, 에너지·석유화학·발전 플랜트 및 저장시설, 송·배전시설 등을 생산하는 플랜트사업과 아파트 등을 생산하는 주택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택사업을 빌딩·공장 등을 건축하는 건축사업과 동등한 별도 항목의 상품으로 구별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사업을 건축사업의 한 부분인 빌딩사업 부문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2012년에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에서 2000년 출시 후 지난해까지 브랜드 가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래미안 신화’의 주역들인 부사장 이하 12명의 임원들을 일시에 내보냈다. 이런 일은 업계 초유의 일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삼성물산 판 12·12사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때 1300명에 이르던 주택사업 부문 정규직 직원들의 숫자도 900명에서 1000명 사이로 대폭 줄어들었다. 인원 축소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건축과 관련한 기술직 직원들의 주업무도 빌딩사업과 관련한 부분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신규 수주를 ‘기피’하는 까닭
 
서울 래미안 마포 웰스트림.
  단순히 조직개편 문제만을 놓고 삼성물산이 주택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런 징후는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주택사업의 핵심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신규 수주에 전혀 나서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3년 동안 서울 지역에서 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해 단 1건의 수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는 단 한 건도 수주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재개발·재건축 수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수주를 ‘기피’하고 있다는 정황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6차 아파트 재건축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신반포 6차 아파트 재개발 조합 측은 원래 두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으나 조합원 97%의 반대로 시공계약을 해지, 삼성물산 측에 수의계약을 제안했지만 삼성물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단지는 지하철 3, 7,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 인접한 이른바 초역세권으로 부근에 반포자이 등이 재건축 후 입주해 대치동과 압구정동을 대체하는 신흥부촌으로 떠오른 지역이다. 이런 노른자위 땅 수주를 거부한 것이다.
 
  이 밖에도 방배동 재개발·재건축 사업에도 삼성물산은 주민들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입찰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요즘 분양열기가 뜨거운 위례 신도시 사업에도 초기에 경기도시공사와 참여했지만 그 뒤에 있었던 3차례 택지 분양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재개발·재건축 분야의 국내 최고였던 삼성물산의 이런 움직임은 아파트 분야 최초의 브랜드이자 고객만족도 1위를 자랑해온 ‘래미안’ 브랜드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물론 삼성물산 측은 ‘래미안’ 브랜드의 소멸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 관계자의 말이다.
 
  “저희가 사업 수주를 많이 안 하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저희가 수주 안 하는 이유는 이전에 수주했던 물량이 13조원 정도 됩니다. 기존의 물량들을 최대한 관리하면서 빨리 분양사업을 하는 게 저희로서는 급선무거든요. 그중 사업이 잘 안 되고 지지부진한 것들은 정리도 했고, 저희 사업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년 2조원씩 매출액이 아파트 쪽에서 발생하고 있고요. 분양도 1년에 1만 가구씩 공급하고 있습니다. 단지 신규 수주를 공격적으로 안 하는 것을 가지고 혹시나 래미안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 하는 해석을 일부에서 하는데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올해는 전혀 신규 수주가 없었죠?
 
  “신규 수주는 최근 3년 들어서 서울 강남 쪽에 우성아파트 수주 한 건 외에는 없습니다. 올해는 현재까지 신규 수주가 없습니다.”
 
  삼성물산 전 주택 임원들이 보는 시각은 이 삼성물산 건설 부문 관계자의 말과 다르다. 그들의 말을 종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때 이상대 부회장 시절에는 재개발·재건축 잔고 물량을 30조원씩 가져갔습니다. 건설사 중 재개발·재건축 보유 물량이 1위였죠. 항상 당시 기준으로 5년치 공사 물량은 확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9년 말에 정연주 부회장이 대표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실적을 유지했어요. 그것도 수도권 중심으로 수주 활동을 벌였는데도 그 정도 잔고를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잔고가 소진되는 2020년에는 주택사업을 접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주택건설 시장 상황에 밝은 한 중견 건설업체 회장도 “삼성물산이 잔고 처리 과정이라서 신규 수주를 않는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삼성물산이 앞으로 주택사업을 접을 것이라는 것은 시장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물산 외에 주택건설 시장에서 손을 떼려는 대형 건설사가 더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삼성물산이 주택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래미안을 접는다는 의미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 건설업체 회장은 지금도 수도권과 부산 등지에서 주택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2017년 주택사업 철수?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아파트의 주방 모습.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1위 고수를 위해 삼성물산은 빌트인 채택 등 한발 앞서 나가는 공법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또 다른 삼성물산 전직 간부의 말도 전 주택 임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이 전직 간부는 삼성물산의 주택사업 부문 철수를 2017년으로 보고 있다는 점 정도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삼성물산이 재개발·재건축 신규 수주를 안 하고 있는데요.
 
  “안 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거예요. 회사가 정책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봅니다. 수주를 하려면 해당 지역이나 비용, 전망 등에 대한 심의를 사전에 하게 되는데 아예 수주 심의를 못 하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수주한 물량들만 소화하고 있는 겁니다. 수주 심의 분위기가 그랬어요. 제가 듣기로는 2017년까지 주택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분위기가 생긴 겁니까.
 
  “정연주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2010년 초부터라고 보면 됩니다. 정 부회장은 회사의 부실이 주택PF 사업 때문이라고 줄곧 언급했고 주택사업을 회사 부실의 주 원인으로 몰고 간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주택사업에서 민원이 많이 밀려오니까 민감하게 반응했죠. 제 생각에는 민원이 자꾸 생기니까 주택사업을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해외사업에 치중했는데 그때 경력직들을 많이 뽑았습니다. 사람을 미리 뽑아놓아야 해외사업을 수주하면 바로 인력 투입이 가능하다고 봤던 거죠. 당시 우스개로 ‘삼성물산에 공채로 들어오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도 경력으로 들어오기는 지팡이만 짚을 수 있어도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많이 뽑았죠. 그렇게 정 부회장 부임 후 연 1000명 수준으로 총 3000여 명을 뽑았는데 그게 경험 부족 및 역량 부족으로 해외사업의 수익 구조가 악화하면서 현재 삼성물산 구조조정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겁니다. 특히 후배들에게 안타까운 점은 그 혹독했던 IMF 당시에도 간부급 중심으로 인력구조 조정이 있었는데 현재는 임원은 물론 사원급까지 혹독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다른 건설업체들이 주택 경기 활성화에 대비해 경력사원 채용에 나서고 있는 상황과 대조를 이룹니다. 삼성물산의 후배들은 경쟁사를 씁쓸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까지는 매년 매출 2조원에 1만 가구씩 공급하고 있다는데요.
 
  “지금까지는 그래 왔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앞으로는 그게 안 되는 거죠. 신규 수주가 없으면 잔고가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앞으로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담당 부서도 없어질 테고요.”
 
  —과거에도 신규 수주를 안 하던 때가 있었습니까.
 
  “제가 삼성물산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꾸준하게 수주했고, 그때는 각 건설사마다 신규 수주를 위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죠. 우리는 재개발·재건축 프로모션에 90%를 집중했어요. 재개발·재건축은 우리 돈이 안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자체 택지 개발을 하려면 돈이 들어가잖아요. 땅을 매입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면 캐시 플로(cash flow)가 나빠질 수도 있죠.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땅을 우리 돈으로 살 필요가 없어요. 사업만 시작하면 위치에 따라서 분양성이라든지 이런 게 안전하니까요.”
 
  —그렇다면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도 사라지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20만이 넘는 기존 래미안 가구주들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어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건설업체들은 주택사업 확장 중
 
삼성건설이 시공한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에 친환경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브랜드도 ‘래미안 아파트’다.
  삼성물산이 재건축·재개발 분야에서 신규 수주를 하지 않고 있는 반면 다른 건설업체들의 신규 수주를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다.
 
  수도권에서 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해 삼성물산과 경쟁을 벌였던 GS건설은 2014년 재개발·재건축 수주고가 2조464억원이었다. 올해는 1월과 2월 두 달 동안에만 지난해 수주고를 넘는 2조3886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3년 해외사업 부실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GS건설은 지난해 주택사업 호조에 힘입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더 적극적으로 주택사업에 뛰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1조1810억원을 수주했던 롯데건설도 올 들어서만 서울 광진구 자양1구역 등 4곳에서 1조3712억원의 수주고를 기록해 이미 작년 수주고를 넘어섰다.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아파트 사업을 해오던 중소 건설사들도 대형 건설사의 전유물이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미건설, 반도건설, 호반건설 등의 중소 건설사들은 재개발·재건축 분야 경력직 직원을 새롭게 채용하고 조직정비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대형 건설사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우건설도 금년 초 주택사업 부문을 작년보다 강화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동안 주택사업본부 내에서 1개 팀으로 운영해 온 도시정비사업팀과 주택사업팀을 각각 2개 팀으로 늘리고 인력도 보충한 것이다. 과거부터 주택사업에 주력해 온 대림산업은 그동안 전무급이 맡아온 건축사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승격하는 등 주택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다른 건설사들의 이런 움직임을 모를 리 없다.
 
  삼성물산도 국내 주택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두고 금년 들어 국내 주택시장 참여 활성화를 두 차례 정도 건의했지만 그룹 최고위층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이런 이유로 현재까지 단 1건의 신규 수주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최고위층이 부정적 반응을 보인 이유 중 하나로 ‘잦은 민원 발생’ 등과 주택사업 리스크 등을 들었다고 전직 임원들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건설 부문 관계자는 “그 내용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과 관련해 시중에는 제일모직 건축 부문과의 통합설, 삼성엔지니어링과 통합 후 분리설, H그룹으로의 매각설 등 다양한 설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전직 임직원들은 이 과정에서 그동안 삼성물산 경영층이 주택사업을 축소해 왔음을 근거로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래미안 신화’ 만들어지기까지
  앙드레 김을 실내 디자인에 참여시키기도

 
삼성물산 래미안 로고.
  1998년 IMF 이후 삼성은 주택과 개발 분야의 대규모 부실을 조기에 정리하기 위해 건설을 건설 부문과 주택개발 부문으로 분리하고 주택개발 부문장에 이상대 부사장(훗날 삼성물산 부회장 역임)을 임명했다. 당시 이 부사장은1998년 12월 주택개발 부문을 강남사옥에서 용인시 기흥에 있는 삼성기술연구소로 이전했다. 그때 내건 구호가 ‘흑자 내서 서울 가자’였다고 한다.
 
  기흥으로 사옥을 이전한 후 인력구조 조정과 함께 당시 대규모 부실을 이룬 주택 및 개발 부실사업을 조기 정리했다.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 부사장은 당시에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레드오션이라며 꺼리던 재개발·재건축 부문으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경험 및 역량 부족으로 재개발·재건축 수주전에서 7연패를 당한다. 이후 자체 진단을 통해 조직 및 인력을 보강한 후 현재 반포 래미안인 당시 반포주공 2차 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서 승리한 이후 연전연승을 일궈냈다. 삼성물산은 조직정비를 통해 갖추게 된 최강의 영업력으로 매년 30조원 가까운 재개발·재건축 물량을 잔고로 가져가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다른 건설업체들이 삼성물산과의 수주전 경쟁을 기피할 정도로 삼성물산은 한동안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최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상대 당시 부사장은 영업력을 갖춘 후 품질 향상을 위한 기술 드라이브를 걸어 2000년 초에 국내 최초로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래미안 출시 이후 다른 건설사들도 푸르지오, e편한 세상 등의 브랜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아파트 브랜드 시대를 선도한 것이다.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래미안은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1위, 고객만족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아파트에 브랜드명을 주자는 주장은 마케팅 쪽에서 먼저 제안했다. 브랜드명은 제일기획이 브랜드메이저와 대행을 했다. 처음 브랜드명을 정하는 과정에서 래미안은 후순위로 밀려났고 영어명의 여러 브랜드명이 거론됐다. 다른 브랜드명이 탈락하면서 래미안이 브랜드로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그룹 고위 임원들 사이에서는 “데미안은 알아도 래미안은 모르겠다”는 비아냥에서 “삼성자동차의 SM5처럼 넘버를 붙이자”는 의견도 나왔다. 현대건설이 지으면 현대아파트, 대우가 지으면 대우아파트 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브랜드 선호도 1위, 고객만족도 1위를 지키기 위해 삼성물산은 친환경아파트, 유비쿼터스 아파트 등을 한발 앞서 이끌었다. 특히 아파트에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깔아줌으로써 국내 인터넷 환경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고객 불만 최소화를 위해 주택사업 수익 4000억원 중 800억원을 AS에 쏟아부은 해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실내 디자인의 색조 등을 고급화하기 위해 패션디자이너였던 앙드레 김을 참여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업계 최초로 건설사 내에 주택 전문 인테리어 조직을 만든 것도 삼성물산이었다.⊙
 
  민원이 많은 주택사업이라 접는다?
 
래미안강동팰리스의 모습. ‘래미안’ 브랜드 출시 이후 삼성물산은 같은 브랜드로 20만 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공급해 오고 있다.
  삼성물산 현직 간부도 같은 예상을 했다. 그와의 문답이다.
 
  —‘래미안’ 브랜드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그런 이야기가 떠도는 것은 사실입니다. 걱정들도 많이 하죠. 그런데 그것은 주택사업부의 일부 인력들이나 정확히 알고 있는 사항이라서 제가 거기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할 입장은 아닙니다.”
 
  —최근에 주택 담당 전무가 경질되고 그 자리에는 처음 상무를 단 분이 책임자로 왔다고 하던데요.
 
  “물러나신 분은 최근 물의를 야기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택 부문 책임자가 전무에서 초임 상무로 바뀐 것도 주택사업부의 위상 축소를 방증하는 것 아닐까요.
 
  “외부에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겠죠. 전무가 하던 일을 상무에게 맡겼으니까요.”
 
  —소비자를 위해서도 ‘래미안’ 아파트는 계속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택 건설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경영진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분들이 의사 결정을 하시는 분들한테 왜곡된 정보를 주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주택 부문 참여 활성화 방안을 그룹 최고위층에 두 번이나 건의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사실 그런 보고가 그룹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부서의 직원들이 기대를 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상품개발 부문에서 일했던 또 다른 전직 간부는 “지금까지 20만 가구 이상을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로 분양했고, 그만큼의 고객을 갖고 있는데 그 고객들을 위해서도 쉽게 그 브랜드를 버려서는 안 된다”면서 “삼성이 후발 주자로서 선발 주자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한 대표적 상품이 애니콜에 이어 래미안인데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그 의미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품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다시 주택 쪽에 메리트 내지는 필요성이 대두되면 사업 방향이 바뀌지 않겠나” 하는 낙관적 전망을 덧붙였다.
 
  그의 바람대로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는 지속될지 모르지만 기구와 인력 축소, 주택사업에 대한 그룹 최고위층의 부정적 인식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아파트 산업을 선도하던 ‘래미안 신화’는 막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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