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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한국 대학의 明과 暗

글 : 최연홍  서울시립대 은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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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적으로 특수대학원 교수는 週 9시간 강의 어려워, 행정학 교수가 시사영어도 강의하면서
    법정 강의 시간 메워
⊙ 필요 이상으로 학과 나뉘어 있어
⊙ 대학도, 사회도 토론 없어
⊙ 기술학교·직업학교로 전락한 대학, 古典的 대학으로 돌아가야

崔然鴻
⊙ 74세.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美인디애나대 정치학 박사.
⊙ 美위스콘신대 조교수, 올드도미니언대 부교수, 미시시피대 교수, 美 국방장관실 환경정책보좌관,
    워싱턴대 교수,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수 역임. 연세대 재학 중 《현대문학》으로 등단.
⊙ 저서: 시집 《정읍사》 《한국行》 《최연홍의 연가》 《아름다운 숨소리》 등.
모 여대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벗어 던지며 축하하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1996년 9월, 내 나이 55세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미국 유학생으로 한국을 떠나느라 어쩔 수 없었던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씻기 위한 나의 소원이 하늘에 닿아, 서울시립대 객원교수로 귀국할 수 있었다. 3년 후 나는 서울시립대 정교수가 되었다. “58세에 한국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면 한국 대학 역사에 남을 일”이라고 서울대 교수가 한마디 할 정도였다. “거의 불가능한 임용절차를 어찌 해냈느냐”며 그는 의아해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서울시립대 김진현 총장이 대학교수 출신이 아닌 언론인 출신이어서 그런 ‘예외적인’ 임용이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 한국 대학이 얼마나 변했는지 잘 모르지만, 55세나 58세에 한국에서 대학교수가 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성의 차별, 나이의 차별, 인종의 차별은 불법적이지만 실제 존재하고 있다. 조금 심한 나라가 한국이고 조금 더 심한 사회가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서울시립대를 떠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서울시립대 출신 제자가 서울대 공과대학 핵변화에너지연구센터 교수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이제 한국 대학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시립대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를 한 그가, 나와 함께 환경정책을 공부하고, 대학원 시절 내 연구 과제를 도운 인연, 특히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찾기에 골몰했던 우리 인연이 자랑스럽다.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의 교수가 되기 어렵거늘, 어찌 ‘국내 박사’가 한국 최고의 명문 대학에서 행세할 수 있단 말인가.
 
 
  임용 과정의 불필요한 서류들
 
  1999년, 서울시립대는 일간 신문에 환경정책을 가르칠 교수를 공개경쟁으로 채용하겠다는 광고를 냈다(내가 앞서 3년간 객원교수로 가르칠 때는 이런 절차가 없었다). 거기에 나는 응모했다. 응모자는 대학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그동안의 대학교수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나의 모교(母校)인 연세대학에서 성적증명서를 떼 와 제출했다. 접수서류를 점검하던 서울시립대 행정처 직원이 졸업증명서가 빠졌다고 했다. 그 성적증명서에 졸업증명의 기록이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다시 연세대에 가서 졸업증명서를 떼어 와 제출했다. 성적증명서 안에 졸업 날짜가 다 적혀 있어도 졸업증명서가 따로 필요한 이유를 나는 모른다.
 
  미국의 대학에도 연락해 성적증명서·학위증명서를 등기우편으로 받아 제출했다. 그다음 구비서류는 그동안 발표한 논문들이었다. 대학 도서관을 찾아가 미국의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하나하나 복사해 제출했다. 지난 5년 동안 발표한 논문들을 따로 구분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다음에는 한 시간 환경정책 강의를 하는 ‘시험’이 있었다. 내 ‘시험 강의’를 듣는 이들은 동료 교수들이었다. 1972년 처음 위스콘신대학에 초청을 받고 그곳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시험 강의를 한 적이 있지만 그 후 한 번도 시험강의를 요구받은 적은 없었다.
 
  미국 대학의 경우, 서류 전형으로 3인을 선정, 인터뷰하는 간단한 임용 과정만 있을 뿐, 성적증명서를 제출하라거나 발표한 논문들을 제출하라는 등의 요청을 하지 않는다. 한국 대학은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거기 있었다.
 
  미국의 명문 예일대학에서 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눈감아준 서울의 한 대학은 서울시립대 임용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졸업증명서도 팩스로 보내는 사기꾼들이 가득한 사회. 청와대 ‘백’이 있어서 일체의 임용 과정이 가짜 팩스 하나로 끝나는 대학. 두 개의 다른 대학이 존재하는 나라. 그 나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종 학위도 없는 좌파(左派) 인물을 정치적으로 서울시립대 교수직에 임명한 사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권력이 뒤에 있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되는 나라. 대학도 예외가 아니란 말인가.
 
 
  특수대학원의 차별
 
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필자로서는 일반대학원과 특수대학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진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강의 모습(이 사진은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나를 정교수로 임용한 대학원은 도시과학대학원이라는 ‘특수대학원’이었다. 한국에는 일반대학원과 특수대학원이 존재한다. 일반대학원은 낮에 공부하는 전업(專業)학생들의 대학원이고, 특수대학원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대학원, 한마디로 특수대학원은 서자(庶子) 취급을 받는 대학원이요, 일반대학원은 정통 대학원이다. 정말 웃기는 체제다.
 
  그런 차별이 미국에는 아예 없다. 미국의 도시에 있는 대학·대학원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의 대학·대학원이 정통이고, 시골의 대학·대학원은 낮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다닌다. 과목당 2학점과 3학점으로 차이를 두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는 낮 수업이 과목당 3시간이고 밤 수업은 과목당 2시간이다. 일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는 과목당 주(週) 3시간 강의에 3학점이 주어지고, 특수대학원에서는 과목당 주 2시간 강의에 2학점이 주어진다. 일반 대학·대학원 교수는 3과목, 주 9시간 강의를 맡는다.
 
  그러나 특수대학원 교수인 내 경우엔 3과목을 가르쳐도 6학점. 그렇게 되면 ‘죄인’이 된다. 주 9시간을 채워야 정상업무를 수행한 교수가 되는데, 9시간을 메울 수가 없다. 나는 죄를 씻기 위해, 학부 과목을 하나 더 가르치든가 아니면 일반대학원의 방재(防災)공학과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특수대학원의 방재공학도 한 과목 2학점이라, 8시간 강의밖에 안 돼서 경위서를 쓰곤 했다.
 
  문제는 모두 내게 있었다. 내가 서울 시립대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특수대학원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환경공학 교수가 防災공학도 가르쳐
 
  다행히 일반 대학생·대학원생들에게 환경정책을 가르쳐 9학점을 채우거나 영문학과에서 문학이나 시사영어를 가르쳐 9학점을 채우곤 했다.
 
  특수대학원 교수진은 모두 학부 교수들이 ‘시간강사’로 채워지고 있어서, 다른 분들에게는 내가 겪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특수대학원이 한국 대학에 존재하는 한, 주경야독하는 대학원생들에겐 차별대우가 행해지고 있다.
 
  이런 차별대우는 21세기 한국 대학에 불필요한 것이며 전통 농경사회의 유물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특수대학원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일반대학원 교수나 대학생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방재공학과는 내가 환경정책을 가르칠 때 새로 생긴 학과였다. 한국도 지진방재에 눈을 뜰 때여서, 나는 전에 어깨너머로 공부했던 안전관리를 가르칠 수 있었다.
 
  내가 미국 국방장관실에서 일했을 때 내 옆방이 안전관리 담당관실이었다. 미국에서 행정학을 가르칠 때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경찰(법과 질서), 소방(화재, 자연·인위 재난)이 있어서, 재난관리가 아주 생소하지는 않았다. 방재공학과에서 내가 중요하게 가르친 대목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행복의 추구였다. 바로 시민의 생명, 재산 보호, 행복의 추구가 민주주의 행정의 기초라고 강조했는데, 다수(多數)의 제자들이 환경과 방재공학의 접목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사회과학 전공인 내가 영문학과에서 한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한국적 상황’에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주저할 때, 한 영문학과 교수가 “영문학 전공자도 미국에서 영어로 시집을 간행한 분이 없다”고 말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입센과 골딩에 대해 논문을 쓴 행정학자
 
  한국 대학은 분업(分業)이 필요 이상 발달되어 있었다. 행정학과가 있고 도시행정학과가 있는 기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행정학 안에도 조직관리론, 인사행정론, 재무행정론, 무수한 분업이 되어 있어서, 좋은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점도 있지만, 미국 대학에는 그런 고도의 분업현상은 지금도 없다.
 
  행정학 교수 다섯이면 학부·대학원 설립 자격이 된다. 한국의 행정학과에는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리고 학위 논문으로 무엇을 썼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게 간주된다.
 
  미국에서 행정학을 정치학의 한 분야로 공부했고, 정치학도 사회과학의 한 분야라고 배운 나에게, 한국 대학의 분업은 불필요하게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행정학을 크게 바라보는 안목이 절대 필요하다.
 
  서울공대 원자력연구센터에 행정학 출신의 학자가 등용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분업이 이루어진 만큼 종합(綜合)과 총합(總合), 통합(統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의 세계가 모래밭에 지은 성(城)과 같다. 공학자들 속에 정책학을 전공한 학자도 필요하다. 내가 환경공학자들 속에서 환경정책을 공부한 학자로 살았던 관료생활이 내게 참 좋은 경험을 주었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가 좋은 본을 보인 사례가 된다.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던 시기에 나는, 입센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본 환경정책이라는 학술논문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을 통해서 본 인간의 심리와 조직이론, 리더십이란 학술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런 논문은 한국에서 중요하게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분업이 학문을 모래알 유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할 정도다.
 
  대학 당국은 교수가 존경받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것이 한국 대학의 발전 척도로 대두하고 있었다. 미국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교수들은 특별 보너스를 받았다.
 
  한국 대학이 세계적 대학으로 상승하기 위한 조치지만, 모든 대학교수가 연구를 최고의 과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부 중심의 대학에서는 가르치는 일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대학원에서는 연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대학교수가 연구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해서는 대학의 본분을 다할 수 없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들의 본분은, 가르치는 일, 연구하는 일, 전문 분야의 사회봉사 등 세 가지다. 대학별로 그 세 가지 일에 중요도나 무게를 어떻게 나눌지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50:30:20퍼센트로 나누는 과제가 논의되어야 한다. 서울대학이 연구 중심 대학원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바로 그런 논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대학이 가르치는 일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
 
 
  연구와 연구비
 
다수의 교수는 그들의 연구과제를 생각하면서 연구실에서 매일같이 살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립대 연구실의 모습(사진=서울시립대).
  연구는 연구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수들의 연구비 남용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연구는 대학원생들이 하는데 결실은 대학교수가 독점한다는 비판은, 한국에서 은퇴한 필자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교수들은 연구비를 유용해서는 안 된다. 교수들은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한국 대학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연구비는 연구의 목적이 타당성, 절실성, 사회성을 갖춰야 하고, 연구의 접근, 방법론이 적절하게 준비되었는가에 따라 연구기관에서 책정한다.
 
  나는 서울시립대 10년 동안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운영,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 운영 계획, 환경정책의 성공과 실패, 수자원 관리, 유역 관리에 관한 연구를 했다. 나는 연구비를 유용하지 않았다. 연구 제안, 연구결과의 정리, 논문의 준비, 모두가 내 몫이었다.
 
  그러면 연구 조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은 자료를 수집하고 내가 쓴 논문을 타이핑했다. 그 일이 그들이 수행한 가장 큰 일이었다. 나는 일반대학원 교수가 아니어서 조교를 둘 수 없었기 때문에 환경공학부의 학생과 토목공학과 학생의 부분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들은 자료 수집과 내 글을 타이핑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이 없었다.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연구결과를 그들에게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교수들은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쓸 때 대학원 박사 학위 과정의 조교들에게 맡긴다. 논문을 발표할 때 교수들이 무임승차한다는 말은 사실 그 속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리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교수가 그들의 연구과제를 생각하면서 연구실에서 매일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도출이 어려운 백성
 
2003년 7월 22일 부안군에서 열린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립 반대 집회. 한국에서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합리적 토론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물이용부담금을 토의하는 한강 유역의 강원도, 경기도, 충청북도, 인천시, 서울시 자문회의에 참여했다. 이런 일은 교수가 해야 할 사회봉사 일이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모이고 헤어져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인천은 인천 바다 청소 비용도 내라는 식으로, 논의는 끝이 없었다.
 
  나는 그 모임에서 “미국의 헌법이 1787년 13개 주 대표 55명이 필라델피아에 모여 2주 만에 성취한 법이고, 그렇게 한 나라를 세웠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합의가 어려운가”라고 물었다. “합의 도출이 굉장이 어려운 백성”이라고 한탄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지나는 포토맥강 유역의 수자원 관리, 미국 서부 사막을 흐르는 콜로라도강 유역 관리,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주를 거치는 델라웨어강의 유역 관리 사례들을 잘 소개했지만, 각 지자체 자문위원들이 막무가내로 자기 주장만 거듭하다 보니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환경부가 입법제안을 하게 되었다.
 
  석탄발전 다음으로 원자력발전에 크게 의지하는 한국이 당면한 문제는 안전관리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찾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였다. 나는 미국의 경우 고준위,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을 따로 제정해 갖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한국도 그렇게 입법조치를 취해서 먼저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을 제정할 필요를 역설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주 시민들의 동의로 월성에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우여곡절 속에서 내가 경험했던 고통은 상당히 컸다. 진도에 갔다가 몇몇 진도 주민들에게 포로가 되어 새벽이 되어 풀려난 사건도 경험했다. 부안군수가 당한 고통에 비해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들은 “왜 당신은 진도와 무슨 원수가 져서 진도의 섬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제안했느냐”며 “다시는 진도대교를 건널 수 없노라”고 협박을 했다.
 
  “나는 부산, 울진, 영광 원자력발전소의 폐기물을 육로가 아닌 해로로 운반할 때 진도 밖의 작은 섬이 적당하다”고 대답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평화로운 의사소통은 불가능해 보였다.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내 전문 분야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과제였다. 모두들 “내 뜰 안에는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에너지 자원이 없는 한국은 원자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핵폐기물 처분장을 찾기까지는 더 이상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환경단체들은 나를 ‘반(反)환경주의자’로 몰아갔다.
 
  내가 가르치던 대학원 학생들 가운데 환경단체 간부가 몇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강한 반원자력주의자들이어서 학문적 토론은 어려웠다. 한 제자는 한국 국민 모두가 자기처럼 16평짜리 아파트에 산다면 원자력이 필요 없다고 말해서, 나는 그래도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수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돈을 받는 ‘시민단체’?
 
  난지도에 소규모 골프장을 만드는 결정을 그 당시 서울시 환경과장인 제자가 고생해서 제안했는데 다수의 환경정책 제자들이 무조건 골프장 건설은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그렇게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썼지만, 어느 신문사에서 싣기로 했다가 취소할 정도였다.
 
  다수의 환경단체들은 그들의 수입원이 정부기관이다. 정부의 돈을 받는 단체가 어찌해 ‘시민단체’인지 나는 모른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돈이 주 수입원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에 재정적으로 의지하면서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니까 막강한 환경단체장이 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모순 덩어리가 시민단체들이었다. 잊을 수 없는 더 큰 모순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는 정책공약을 내놓았는데, 환경단체들이 모두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은 그 당시 대부분이 좌파적 색채를 강하게 보이고 있었다.
 
  환경단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상향(理想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연의 보전, 환경의 보호는 인간의 경제적 활동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지, 일반통행이 되어선 안 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바로 자연보전과 환경보호, 경제활동의 안배, 균형을 말한다. 원시적 동굴에 살고 있다면 가능할 자연의 보전은, 오늘날엔 꿈같은 환상이다.
 
 
  대학의 不在, 토론의 부재
 
  대학은 토론의 장(場)이어야 한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한 나라의 지성인들이다.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나이나 학문의 경륜은 다르지만 상식 위에서 지성적인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은 교수의 강의만 듣기를 원하고 있었다. 대학원 세미나는 토론의 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된 토론이 어려웠다.
 
  그 이유는 교수에 대한 존경·존중 때문일까? 생각을 주고받는 토론이 사제(師弟) 관계를 손상한다고 보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토론이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고 전개되면서 새로운 사상이 나올 수 있고 생각과 생각의 중간지대를 찾아갈 수 있다. 스승은 제자가 자기를 모방하기보다 스승의 생각을 넘어가기를 원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바로 그런 말이다.
 
  ‘대학’이란 ‘위대한 배움’이란 뜻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공자(孔子)와 제자들의 대화 관계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는데, 스승을 넘어서는 토론의 진수에서 현대의 대학 과제가 주어진다.
 
  대학은 천하, 세상을 바라보는 공부의 방이어야 한다. 출발은 자기 마음 수양에서부터 가족, 이웃, 사회, 나라, 세계로 나가는 구도자의 길이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직업 찾기의 전(前) 단계, 기술학교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의 사명은 다시 고전적(古典的)인 대학을 찾는 것이다. 고전, 인문학(人文學), 신학(神學)이 대학이 공부하는 기초학이었는데, 어느새 기술학교, 직업학교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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