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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慘事 1주기 - 수습 과정 총점검

“잘못해 큰 사고 났는데 수습도 잘 못 했다”

정리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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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長官, 진도에서 유가족 마음 얻은 것 외 한 게 없어… 장관 보좌하기 위해 공무원 60여 명
    현장에 상주
⊙ 海警 해체, 短點이 더 많아… 관료화된 국민안전처로는 긴급 재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 해수부에서 해양교통관제센터 분리… 오히려 항만사고 가능성 커져
⊙ 재난 구조는 공격적이어야… 지금으로서는 事故 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鄭有燮
⊙ 61세.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스웨덴 세계해사대 해운학석사.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과·수산정책과 과장, 국립해양조사원장,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역임. 現 인하대 겸임교수 및 새누리당 인천 부평갑 당협위원장.

[편집자 주]
정유섭 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2014년 4월 16일 아침 8시경,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로부터 반년 이상 대한민국은 ‘세월호 후유증’을 앓았다. 정치권은 물론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 사회는 마비상태에 빠졌다.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검찰은 2014년 10월 세월호의 불법증축, 과적(過積), 운항미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났다며 청해진해운 오너와 가족, 회사 관계자 그리고 해양수산부 공무원, 해운 유관기관 관련자 등 총 399명을 입건, 154명을 구속했다. 현재 관련자 100여 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정유섭(鄭有燮)씨도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2007년 9월부터 2010년까지 3년간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있었던 그는 인천지검 조사를 받았고 가족들의 금융계좌까지 조회 당했다. 정씨는 ‘해수부 마피아’라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 이후 죄인처럼 지냈다고 한다. 재직 이후에 발생했지만, 여객선의 입출항 보고, 운항관리규정교육, 여객선 승선지도 등을 맡고 있는 해운조합이 제대로 관리·감독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해양·해운 분야 전문가인 정씨는 오는 4월 세월호 참사(慘事) 1주기를 즈음해 관련 책을 낼 계획이다. 그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제대로 된 대책인가를 제대로 기록해 놓아야 세월호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초고(草稿)를 정리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慘事) 이후 대한민국은 한동안 ‘세월호 후유증’을 앓았다.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를 언급하면서 ‘침몰’이라는 용어를 쓴다. 잘못된 용어 선택이다. 세월호는 3일 가까이 물속에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 침몰의 경우 배가 가라앉으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세월호는 외부적 요인 없이 그냥 넘어갔다.
 
  나는 5000t이 넘는 배가 그냥 전복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전복’이란 소형의 배가 풍랑이나 운항실수로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인데, 그럴 경우 에어포켓도 생길 수 있다. 큰 배들은 대부분 선체 하부에 밸러스트 워터, 우리말로 평형수를 가지고 있어 전복될 수가 없으며 기울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는 해양상식에서도 벗어난 대형선 ‘전복 사고’이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장기간의 수사와 조사를 거친 검찰과 해난심판원의 발표가 맞을 것이다. 사고원인 수사결과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청해진해운의 경영행태는 비정상적이었고, 선원들의 근로여건은 열악했으며, 세월호는 운항할 때마다 매번 과적을 했다. 이런 비리를 왜 감지하지 못했고 왜 내부고발자가 없었고 사회적 감시 기능이 작동을 안 했는가. 그 많은 해양공무원, 사법기관, 정보기관은 무엇을 했나. 언론, 시민단체는 관심을 두지 않았나. 나부터 반성한다.
 
 
  국민감정 이유로 船齡 제한한 정부
 
2014년 11월 18일 해양경찰청은 세월호 후속 대책으로 전격 해체됐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조치라는 주장이 늘고 있다.
  야당과 언론은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여객선 선령(船齡)을 2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한 것이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주장이다.
 
  당시 여객선 선령을 연장한 것은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는 취지였다. OECD 회원국 중 어느 나라도 선령으로 여객선 취항을 제한하는 국가는 없다. 선진국들은 철저한 선박검사 시행 후 선령에 관계없이 운항시킨다. 중국만 선령을 따지는데, 카페리의 경우 30년이다. 국제협약(해상인명안전조약 SOLAS 74/78)도 여객선을 선령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오래된 선박보다 구조가 잘못된 선박이 침몰한다. 퀸메리호나 퀸엘리자베스호는 40년 이상 무리 없이 운항했다. 100년 가까이 된 고색창연한 여객선도 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해난사고 통계를 보아도 해난사고는 대부분 선원의 운항과실로 발생하며 선령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
 
  세월호 후속대책의 하나로 해양수산부는 여객선 선령 제한을 25년으로 환원했다. 그러면서 국회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세월호 사고와 선령은 직접적 관계가 없지만 국민감정을 고려해서 선령을 다시 강화하겠다’라고. 오직 국민감정만을 고려해서 여객선 선령을 제한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기형적인 해운조합의 운항관리 업무
 
  해운업자의 협동조직으로 출범한 한국해운조합은 선원 임금채권보장기금 운영, 연안여객터미널 관리 등을 수행한다. 해운조합의 당연한 업무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업무가 하나 있다. 바로 여객선 안전운항 관리업무다. 해운조합이 극구 꺼리는 일이지만 정부가 강제로 떠맡긴 일이다.
 
  내가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부임한 2007년에 이미 운항관리자는 55명으로 줄어 있었고 예산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운항관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진다. 해운조합은 해운업자의 단체이므로 해운선사가 상전이다. 결국 을이 갑을 단속하는 셈이다.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렇게 불합리한 운항관리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정부가 예산에서 운항관리 비용을 전부 부담해 줄 것을 매년 요구했다. 업무를 정부에서 다시 가져가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당시 국토해양부 간부들은 철도나 도로에만 관심이 쏠려 있어 해양안전업무 개선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해경은 사고 초기 왜 허둥댔나
 
  사고 후 해경은 허둥댔다. 훈련이 전혀 안 돼 있었다. 해경청장 등 지휘 책임이 있는 누구도 세월호 선장을 직접 호출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것도 불가사의하다. 사고 발생 후에는 항상 초동 대처가 중요한데 해경은 매번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2007년 12월 태안의 허베이 스프리트호 원유유출 사고 때에도 오염 피해를 줄이기 위한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해경은 위험하다는 핑계로 기름이 다 새나올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쐐기로 구멍을 막는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의견, 바지선을 허베이 스프리트호에 대어 기름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다 묵살되어 피해는 천문학적이 되어버렸고 그 고통은 아직도 주민들에게 남아 있다.
 
  이번에도 많은 아이디어가 현장책임자에게 전달되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기중기선을 이용해 배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 선수 구멍 뚫린 바우스러스트에 쇠사슬을 넣어 예인선으로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 조선소 플로팅 도크를 빌려와 세월호 밑에 끼워넣는 방안, 배를 지렛대 원리로 들어올리는 방안 등…. 그런데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재난구조는 공격적이어야 한다. 공격적으로, 임무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구조대원의 자세라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 정신이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해보기나 했어’가 정말 필요한 것이 재난현장이다.
 
  136일 동안 진도 현장을 지킨 이주영(李柱榮) 당시 해수부 장관은 훌륭한 공직자란 칭송을 받았다.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공직자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 장관이 많은 고생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사고 수습을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이 장관이 현장에서 유가족의 마음을 얻은 것 외에 실제로 한 것이 무엇이 있나. 정작 세월호 해결에 필요한 주요 사항은 진척시키지 못했다. 이 장관은 사고 발생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다는 원죄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해수부 일상 업무는 마비되었다. 진도에 간 장관 보필을 위해 공무원 60여 명이 파견됐다. 그래서 몇 가지 문제도 발생했다.
 
  대형사고가 났으면 사고 수습을 위해 한 달 이내에 장관을 바꿔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색 종료 때까지 아무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면 무슨 현상이 벌어질까. 사고 당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유가족들을 상대할 때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저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고 유가족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사고에 원죄가 없는 사람들로 새로운 진용을 구성해야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고 수습을 할 수 있다. 새로 임무를 맡은 사람들은 유가족이나 국민들에게 사고 수습의 타임테이블을 제시할 수 있고 유가족을 설득할 수 있고 유가족과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다. 사고 수습은 원칙적으로 100일 이내에 조치의 대부분을 처리해야 한다. 수습이 늦어지면 ‘사고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 이슈가 되고 유족의 피해는 커져 간다. 이번에 수습이 늦어지면서 사고와 관련 없는 진영논리로 서로를 비난하고 대통령에 책임을 요구하는 데까지 비약하고 말았다. 잘못해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수습까지 잘못되었다.
 
  세월호 사고 수습은 시신 수습, 선체 인양, 책임자 처벌, 손해배상, 재발방지대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책임자 처벌은 검찰이, 시신 수습은 해경청장 등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으나 나머지는 해수부 장관이 해야 하는 일이다. 현장 담당은 국장급이면 충분했다.
 
  시신 수습을 위한 수중수색을 100일 이상 한 것도 무리였다. 수심과 맹골수도의 조류를 생각하면 수중수색 방식은 물리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었다. 9월 이전에 선체를 인양해서 시신을 수습했어야 하는데 유가족을 설득하지 못했다. 원죄를 진 사람들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실제 업무를 담당한 사람은 “누군 할 수 없어서 안 한 줄 아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미흡했다.
 
  서해페리호 사고 때에는 침몰 5일 후에 선체 인양 준비 지시를 했고 인양 선체에서 몇 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책임자 인사조치도 지체없이 실행했다.
 
 
  국민안전처는 屋上屋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9일째인 2014년 4월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한 이주영(가운데 왼쪽)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가운데 오른쪽) 당시 해양경찰청장이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실종자 구조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항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법 개정으로 해경은 사라지고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가 출범했다. 해경 해체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
 
  세월호 이전 해경은 육상의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의 역할을 바다에서 동시에 수행했다. 그런데 경찰과 방재 기능이 혼재하다 보니 권력 기능이 서비스 기능을 압도하게 됐고 업무 중점이 경찰 기능에 치우쳐 방재 기능을 소홀히 했다.
 
  새로 만든 국민안전처는 총리실 산하에다 처장을 장관급으로 두고 그 산하에 해양경비안전본부, 소방방재본부를 뒀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장책임자의 대처능력인데, 현장강화가 아니라 ‘머리 조직’만 자꾸 만든 셈이다. 현장경험자 위주의 조직이 아닌 탁상행정 인원만 늘린 것이다. 지금의 국민안전처 조직이라면 다시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났을 경우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
 
  국민안전처는 소방방재청 전체 기능, 해양경찰청의 해안경비·안전 및 오염방제 기능, 안전행정부의 안전·재난·비상대비·민방위제도 그리고 해양수산부 해양교통관제센터(VTS)를 통합해 출범했다. 그런데 VTS를 해수부에서 분리한 것은 뚱딴지같다. VTS의 주요 기능은 항만에 출입항하는 선박들을 컨트롤하는 것으로 항만운영에 있어서 두 눈에 해당한다. 두 눈을 뽑아내고 항만운영을 안전하게 하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식의 제도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공항에 관제탑이 있듯이 항만에 해양교통관제센터가 있는 것인데, 이를 해수부에서 분리함으로써 항만운영의 위험도가 상당히 커졌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조직과 인원만 늘어나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검찰은 2014년 10월 6일 “세월호의 불법증축, 과적(過積), 운항미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났다”며 청해진해운 오너와 가족, 회사 관계자 그리고 해양수산부 공무원, 해운 유관기관 관련자 등 총 399명을 입건, 154명을 구속했다.
  관료들은 안전대책을 만든다는 미명하에 조직과 인원만 늘려 놓았다. 옥상옥 기관인 국민안전처를 만든 것도 그렇고, 행안부가 행자부와 인사혁신처라는 두 개 부처로 나뉜 것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인원과 승진 자리만 늘려 놓았다.
 
  정부가 직접 여객선 안전관리를 하거나 공단에 맡긴다고 여객선 안전을 철저하게 확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정부가 철저히 감시해서 과적(過積)·과승(過乘)을 막겠다고 하지만 사실 사업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너무나 많다. 차라리 다른 선진국이나 다른 업종에서 하는 방식을 따르는 것은 어떨까. 민간기업 스스로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이 정부가 직접 안전관리를 하는 것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과적·과승을 하거나 만재흘수선을 지키지 않는 업체를 적발하면 과징금, 영업정지, 면허취소 등 행정벌점을 엄격하게 부과해 스스로 과적·과승을 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방식이 대다수 나라가 채택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직접 안전관리를 하겠다고 나서면 불필요한 행정조직을 증설하고 인원을 확충해 예산을 낭비하고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규제나 양산하게 될 것이다. 항공산업의 경우도 항공사 스스로 안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정원통제와 과적통제를 하고 있으며 정부는 위반사항이 적발되면 강력한 제재를 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20여 년 전 인천지방해운항만청 해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무렵 군산 앞바다에서 서해페리호 사고라는, 사망·실종자 292명의 인명피해를 낸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의 중대한 원인 중 하나가 정원 초과라고 알려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해페리호 사고 이후에도 여객선사들은 여전히 정원 초과로 운항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지도점검을 하고 경고를 해도 정원 초과의 악습은 반복되었다. 어느 일요일 하루 날을 잡아 연안부두에 직접 나가서 여객선 입항인원을 점검했다. 시범케이스로 2배 이상 정원을 초과한 여객선에 대해 선장의 면허를 취소해 하선시키고 여객선사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의 과징금을 물렸다. 그리고 전(全) 여객선사에 앞으로 정원 초과로 적발되면 가중처벌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이후에는 정원 초과가 거의 없어졌다.
 
  물론 보통사람들은 서해페리 사고 후 선박이 정원을 초과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꼭 그렇지는 않다. 화물을 많이 실으면 만재흘수선 이하로 떨어져 복원성에 위험을 초래하지만 사람은 정원을 초과한다고 해도 선박의 복원성에 직접적 위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6·25 때 흥남부두 철수나 2차 대전(大戰) 시 케르크 철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찬다고 해서 배가 침몰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승객은 정원의 절반밖에 안 되었으나 화물을 과적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평형수를 뺀 것이 주요 사고 원인이었다.
 
 
  비상대응팀 상설화해야
 
2014년 11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총리 산하 장관급 기구로 1차관, 2본부, 4실 체제로 구성돼 있다. 소속 기관은 중앙 119구조본부, 중앙해양특수구조단, 중앙소방학교,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 등 총 12개다. 그러나 긴급 재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기동성이 떨어지고 옥상옥(屋上屋)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 중추기관에 비상대응팀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골든타임은 흘러가고 있는데 현장책임자가 우유부단하여 제대로 결정을 못 하고 실행을 못 하면 중앙의 지시가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비상대응팀에는 매뉴얼과 규정을 뛰어넘어 긴급한 상황에서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비난이 언론 등 각계각층에서 자제되어야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다.
 
  이러한 ‘선조치 후보고’ 체계는 사고 발생 초기 단계에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 이번 세월호 사고의 경우에 비상대응팀이 있었다면 사고 초기에 선장과 직접 통화함과 동시에 현지 구조책임자와도 연락하고 해경구조대뿐만 아니라 119구조대·해군특수단까지 다 출동 지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비상대처의 장애물은 피해 규모를 100에서 50으로 줄여놨어도 매뉴얼에 없는 조치를 했다가 추후에 받을 책임추궁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를 들면 2006년 수원 화성 서장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압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은 지붕을 들어내고 공격적으로 화재 진압에 나서 불길을 잡고 서장대의 전소를 막았다. 그런데 소방대원들은 문화재를 함부로 다뤘다고 비난을 받았다. 그때의 비난에 대한 기억이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때 공격적으로 진압을 하지 못해 숭례문 전소를 막지 못했다고 본다. 공격적으로 진화해 피해를 줄인다면 나중에 비난받거나 문책을 받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청장이 적극적 대처를 하지 못한 것도 적극적 대처가 잘못되었을 경우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는 해상사고이기 때문에 해수부 장관에게 모든 수습 책임이 있었고 수난구조법에 의거 중앙구조본부장은 해양경찰청장이었다. 그런데 당시 현장책임자나 해경청장은 우왕좌왕만 했다. 누가 컨트롤타워고 누가 현장 지시권한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보고만 받으려 했지 구체적 지시는 없었다. 지시라고 해봐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구조하라’는 추상적 지시만 있을 뿐이었다. 국민안전처 같은 정규 규격화된 조직으로는 레드테이프(관료조직의 형식주의를 의미)에 걸려 기민한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사건 전(前)의 대한민국과 후(後)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언급했고 해경 해체와 정부 조직개편을 추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세월호 참사가 제도상의 문제였을까. 선박안전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는 분명히 존재했다.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다.
 
  우리는 어려서 교육단계부터 국민 안전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만 했지 실제 교육현장에서 안전교육은 귀찮은 교육으로 인식되어 형식에 치우쳤다. 안전의식에 관해 아직도 우리는 멀었다. 재난기관 종사자들은 이번에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기업들은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이 교훈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이미 많은 대책이 나왔다. 잘 된 대책도 있고 엉뚱한 대책도 있다.
 
  지도층부터 솔선수범과 자기희생, 생명존중의 시대정신을 살리자. 세월호와 함께 사라진 사람들을 잊지 말자. 이것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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