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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빈발하는 의료사고 대처법

“진료기록 확보 후 전문 변호사와 상담이 최선”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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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의료소송은 환자가 과실 입증해야… 환자에겐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
⊙ 1심 판결까지 평균 26개월 소요… 소송비용으로 중도포기 많아
⊙ 분쟁조정기관 있지만 대형병원 76%가 조정 거부
⊙ 의료소송 전문로펌, 의약대-로스쿨 출신 변호사 늘어나 피해자들에겐 ‘청신호’
2014년 10월 28일 숨진 가수 신해철씨의 영정과 유해가 11월 5일 경기 안성시 추모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수술을 했던 S병원 측이 양심을 걸고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의료사고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환자와 그 가족들은 2014년 10월 숨진 신해철씨 사인(死因)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사고 관련 민사소송은 환자 측이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환자 측이 승소하기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수사결과 신해철씨 사인이 의료진 과실로 명확히 밝혀진다면, 또 병원 측의 과실과 진료기록 은폐 등 부적절한 처사가 처벌대상이 된다면 향후 의료소송에 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의료사고 및 소송 현황과 대처법을 알아봤다.
 
 
  피해자가 의료진 잘못 입증해야
 
  2014년 1월, 9살 전예강 양은 많은 코피를 흘려 동네병원을 찾았지만 원인을 모르겠다는 의사의 말에 대학병원 부설 암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응급실에 도착한 지 약 3시간이 지난 후에야 레지던트가 검사를 시작했고 레지던트는 뇌척수액 검사를 5차례에 걸쳐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 이 과정에서 전양은 사망했다. 추정 사망원인은 출혈 등이 원인인 저혈량성쇼크였다. 유족들은 진료 관련 자료와 사망 관련 해명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의료진은 잘못한 것이 없으며 더 알고 싶으면 법대로 하라”는 답을 들었다.
 
  길고 어려운 의료소송을 원치 않았던 전양의 어머니 최모씨는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조정이 각하됐다. 현재 최씨는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의료진을 상대로 민사소송 중이다.
 
  최씨는 “배상엔 관심 없고 갑자기 숨진 원인을 밝혀 내고 진정 어린 사과를 받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원 측이 조정에 응해 해명과 사과만 제대로 했어도 소송까지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가 왜 죽었는지 이유도 알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길 가능성을 알 수 없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의료사고와 관련 소송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의료사고 형사소송 건수는 2009년 393건에서 2013년 569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2012년 1406건, 2013년 1572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승소율은 형사와 민사 모두 30%를 밑도는 수준이다. 완전 승소는 매우 드물다. 환자 측이 의료진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진행하려면 환자 측에서 의료진의 명백한 잘못 또는 실수로 피해를 입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가족 중 의사가 없을 경우 의료진의 잘못을 증명하려면 관련 전문가, 즉 또다른 의료진이 이를 증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병원 의사는 “가재는 게 편이라고, 어느 의사가 다른 의사의 잘못을 법적으로 증명하려 진단서를 써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 외에도 천문학적인 소송비용, 1심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평균 26개월)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이 선뜻 소송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의료전문 변호사인 신현호 변호사는 “의료 관련 민사소송에서 환자가 소송에서 완전승소하는 경우는 2~4%에 불과하고, 부분승소해도 보상액이 적어 변호사 소송비용을 내면 거의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소송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관련 자료 완비해도 어려운 의료소송
 
2014년 여름, 성형의료사고가 빈번해 사회문제화되자 대한의협회관에서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임원들이 의료사고와 일부 병원의 비도덕적 운영행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1년 전 분만하다 숨진 딸의 사인을 밝혀 내기 위해 최근 서울의 한 산부인과를 상대로 민사소송 중인 박모씨를 만났다. 그는 “(딸이) 평소 혈소판 수치가 다소 낮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개인병원(산부인과) 의사는 출산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고, 그곳에서 분만까지 하게 됐다”며 “분만대에서 출혈이 시작됐는데도 의료진은 어느 정도는 출혈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니 2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를 불러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대학병원에 도착한 박씨의 딸은 10여 시간 만에 사망했다. 대학병원 측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응급처치가 늦었다”고 설명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 박씨는 딸이 열 달간 다닌 개인병원에 진료기록과 해명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보험을 들어 놓았으니 보험사와 얘기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였지만 병원 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에게 쫓겨났다.
 
  그는 수혈이 필요할 수 있는 산모의 분만을 담당하면서 충분한 수혈용 혈액을 확보하지 않은 개인병원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을 얻어 소송을 준비했다. 또 “혈소판 수치가 낮다면 대학병원 분만을 권하거나 위급상황이 왔을 때 신속하게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어야 한다”는 의료전문 변호사의 조언도 받았다.
 
  남은 아이들을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위를 대신해 소송에 나선 그는 “몇 군데 로펌 상담 결과 대부분 소송을 충분히 걸 만한 사건이지만 100% 승소는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며 “다른 의사의 진단서와 소견서를 받는 것이 관건인데, 그건 전문로펌을 통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서 로펌에 의뢰해 자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소송 통계를 보면 민사소송에서 환자 측이 일부라도 승소한 경우는 2012년 22.2%, 2013년 30.6%에 불과하다. 애초 제시한 배상액을 모두 받아 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판결이 났으면 다행이다. 30대 여성 김모씨는 2010년 한 성형외과에서 가슴확대 수술 후 양쪽 가슴의 크기가 비대칭으로 나타나 항의 끝에 2차례 재수술을 받았으나 해결이 되지 않았고, 자주 병원에 다니느라 직장생활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김씨는 병원을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소송은 답보상태다. 진행현황을 문의하면 ‘대한의사협회에 의뢰해 감정중’이라는 답만 돌아오는 상황이 1년을 넘어서고 있다.
 
 
  병원 측이 4억원 배상하기도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안기종 대표는 “의료분야가 워낙 전문분야라 일반인이 전문용어를 이해하기 어렵고, 의사들의 ‘제 식구 감싸기’로 진실규명이 쉽지 않다”고 의료소송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의 얘기다.
 
  “사망이나 신체마비 등 심각한 의료사고가 일어나면 분노한 가족들은 대부분 처음엔 형사소송을 생각하곤 합니다. 업무상과실치상 또는 치사 혐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형사소송은 민사소송보다 신속하게 이뤄지고 의료진이 실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형사소송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은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100% 증거에 의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또 전문지식을 갖고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의사에게 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민사소송은 일부승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최근 환자 측이 승소하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큰 액수를 배상받고 승소한 경우도 적지 않다.
 
  2013년 4월 모 대학병원은 고등법원에서 환자 측에 패소해 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병원에서 파킨슨병 치료를 받은 A씨는 치료법 중 하나인 뇌심부자극술(두개골에 구멍을 내 뇌에 전기자극을 보내는 치료법)을 받던 중 전신마비 상태에 이르게 됐다. A씨 가족들은 의료인과 법조인의 조언을 받아 “꼭 수술이 필요하지 않고 약물치료가 가능한 증상인데 수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진의 기술적 문제로 뇌출혈이 발생했고 사전에 치료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소송 결과 1심 재판부는 의료진 과실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 줬으나, 2심 결과는 달랐다. 고등법원은 “뇌심부자극술 시행 중 수술진이 뇌수술 관련 기구 조작에 실수가 있었고 전류를 흘리는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환자의 뇌 소동맥을 파열시켰다”는 이유를 들어 병원에 책임을 물었다.
 
의료사고, 법적으로 이렇게 대처하라

 
  의료사고 시 환자 측이 알아야 할 법적 대처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질의응답 식으로 정리했다. 내용은 일반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기본적인 대처방법으로, 증상에 따라 각별히 유의해야 할 사항도 있으므로 소송과 관련된 상세한 사항은 의료전문 법조인에 의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의료사고시 소송에 나서기 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찾아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서울 남대문 시티타워 18층에 있다.
  Q :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대응 방법은.
  A : 의료진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진료계약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민법 390조)와 의료과실에 따른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민법 750조)가 있다.
 
  Q : 오래 전 잘못된 치료로 뒤늦게 피해를 입었을 때도 소송이 가능한가.
  A : 의료사고 원인행위가 종료된 날부터 10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해야 하며 이 기간을 경과하면 손해배상 인정이 불가능하다.
 
  Q : 손해배상 청구 외의 법적 대응은 없나.
  A :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질병의 종류, 내용 및 치료방법과 그에 수반된 위험성 등 중요 사항을 설명해 줘야 하는데, 이를 불이행한 경우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Q : 살인죄 등 형사소송은 불가능한가.
  A : 의사가 업무상과실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형법 268조)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증명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승소율도 높지 않다.
 
  Q : 의료사고로 의심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 :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진료기록 확보다. 진료기록지, 진료비 영수증, MRI나 엑스레이 등 영상물, 치료전후 사진 등을 확보한다. 또 원본과 동일한지 확인하고 증명도 받아야 한다. 이후 행동을 하기 전 반드시 의료·법조 관련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법무팀이 상주하는 병원 측에 당할 수도 있다. 또 환자가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이유로 사망했다면 장례를 치르지 말고 부검을 의뢰해야 한다.
 
  Q : 병원 측이 자료를 파기하거나 변조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A : 의사가 자료제출을 거부하면 15일간 의사면허정지 처분에 해당한다. 또 의사가 기록을 파기 또는 변조하거나 고의적으로 오기(誤記)했을 경우는 심각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미룰 경우 법적인 대응에 나설 것을 경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Q : 병원의 대응이 지나치게 불성실하다면.
  A : 화가 나더라도 병원에서 고성을 내거나 난동을 부리면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병원 측이 업무방해, 폭행,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수 있고 실제로 실형을 받은 경우도 많다. 최대한 냉정한 태도로 모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Q :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의료사고로 병이 악화되거나 낫지 않는 경우 치료를 하면서 조정이나 소송을 해야 하는데.
  A : 그럴 땐 의료기록을 확보한 후 병원을 옮기는 게 좋다. 해당 병원에 머물며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병원 측은 기록조작이나 책임회피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되 새 병원에는 이전의 의료사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책임질 일이 생길까 봐 잘 받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Q : 환자 측의 일기 등 기록이나 녹취물이 소송에서 증거가 될 수 없나.
  A : 개인적인 기록 자체는 증거가 될 수 없지만 아프기 시작한 날부터 매일 꼼꼼히 기록을 해 놓길 권한다. 재판과정에서 자초지종을 밝히기가 훨씬 수월하고, 재판부가 신빙성을 갖고 참작하기도 한다. 단 의사 몰래 녹음한 파일 등 불법녹취물은 형사소송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Q :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소송이 최선인가.
  A : 개인병원이나 중소형병원은 법무팀이나 합의관련팀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아 재수술이나 재치료, 적정수준의 보상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적절한 보상으로 합의하기도 한다. 소송은 환자 가족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인 만큼 소송보다는 의료분쟁을 조정해 주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먼저 찾는 것이 낫다. 그러나 병원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소송은 전문가 조언을 받아 관련자료를 철저히 준비한 후에 나서야 한다.
 
  신해철씨 사건으로 수사기관·의료진 인식변화 기대해
 
의료사고가 의심될 땐 의무기록지는 물론 MRI나 CT촬영기록 등 모든 진료기록을 신속하게 확보해야 한다.
  의료소송이 늘어나면서 의료전문 로펌도 크게 늘었다. 신해철씨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서상수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서로’는 의료소송 전문 로펌이다. 1990년대부터 의료소송을 해 왔고 수많은 의료전문 변호사를 양성해 내 ‘의료소송 사관학교’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서로는 최근 의료소송 중에서도 만성통증 관련 소송으로 특성화하고 있다.
 
  현재 신해철씨 사망 건은 경찰 수사 중이며 유족 측은 자료준비 후 손해배상청구 관련 민사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서상수 변호사는 “신해철씨 사건 관련해 의료사고 의심 건에 대한 국과수 부검이 신속하게 시행되고 의료진에 압수수색이 즉시 이뤄지는 현상은 의료소송을 수십 년간 해 온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긴 수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사인이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은데, 문제가 무엇인지요.
 
  “수술동영상과 수술동의서 등 필요한 자료의 상당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존재하는 수술기록지는 내용이 너무 부실했고요.”
 
  —원래 모든 병원이 모든 수술동영상을 찍는 것 아닙니까.
 
  “외과수술은 모두 찍는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런데 신씨처럼 복강경수술을 하려면 카메라가 몸 안에 들어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 수술동영상을 촬영합니다. 해당 병원은 원래 카메라에 저장기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전직 간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술할 때마다 동영상을 촬영한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더군다나 연예인의 경우 잘되면 원장 입장에서 홍보자료가 될 수 있는데 저장을 안 했겠습니까.”
 
  —연예인이라 일반의료소송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병원이 기록을 요청해도 안 내놓으려 하고 명백한 과실이 있어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여느 사건과 똑같더군요. 하지만 언론의 관심이 높다 보니 일의 진행이 빨랐습니다. 의료사고 형사고소 이후 바로 다음날 (의료진에) 영장이 나온 사례가 제 기억엔 없어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수사기관과 의료진의 인식이 변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로스쿨 졸업생이 대거 법조계에 진출하면서 의대나 약대 출신 변호사도 크게 늘었고 대형 로펌은 물론 중소형 로펌에도 의료전문 변호사들이 있다. 한 약대 출신 중소로펌의 변호사는 “사실 의료소송은 기간도 최소 2년은 걸릴 정도로 길고 법정에 나가야 하는 횟수도 많은 데다 성공보수도 적은 편이어서 의료소송만으로 먹고살기는 힘들다”며 “많은 변호사들이 의료소송을 선호하지 않고 잘 나서지 않는 만큼 가능하면 주변을 통해 소개받아 가는 것을 추천한다”며 귀띔하기도 했다.
 
 
  섣부른 소송보다 조정·중재를
 
  그런데 의료사고의 경위를 밝혀 내고 억울함을 보상받는 방법은 소송밖에 없는 것일까? 보건복지부는 평균 2년 이상 걸리는 의료소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2년 4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했다.
 
  2011년 4월 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른 것이다. 조정중재원은 피해자에 대한 신속·공정한 구제는 물론 의료진의 안정적인 의료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는 조정신청서와 의료기록 등 구비서류를 갖춰 손해배상에 대해 의료진과 조정 또는 중재를 하겠다고 신청할 수 있으며, 의료진이 조정·중재신청을 받아들이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감정부의 조사 및 감정을 통해 환자·의료진의 입장을 조정하거나 중재해 준다. 조정은 양쪽의 의견을 듣고 중간에서 접점을 찾아주는 것이며, 중재는 양쪽이 중재를 위임하면 조정중재원이 중재안을 내놓고, 양쪽이 그 안에 따르는 것이다.
 
  감정부는 전문의, 법조인, 소비자대표 등으로 구성되며 90일(최대 120일) 내에 손해배상액을 조정 또는 중재해 주고 있다. 소송보다 훨씬 빠른 방법이어서 정부는 의료분쟁 시 복지부 산하 조정중재원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중재원은 2014년 10월까지 총 3485건을 접수해 1442건의 조정을 개시했다. 조정성립 건수는 839건, 불성립 건수는 103건이었다. 조정이 불성립하면 소송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추호경 원장은 “의료소송은 명확한 결론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환자 측도 길고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고 의료진도 소송이 한 번 걸리면 장기간 제대로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송은 양쪽 모두를 지치게 한다”고 조정·중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법조인(검사) 출신이며 보건학 박사인 추호경 원장은 “의료사고 의심이 생기면 일단 조정중재원에 전화 또는 방문상담을 받고, 의료사고로 판단되면 사건을 접수해 조정절차를 밟는 것이 소송보다 빠르고 간편한 길”이라며 “물론 의사도 환자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 말 현재 중재원이 처리한 1241건의 상담·조정·분쟁 중 955건(77%)에서 의료기관의 배상책임이 인정됐으며, 배상총액은 81억6500만원이다.
 
다른 의료사고보다 입증이 한층 어려운 미용성형 의료사고
 
“의사가 (부작용) 설명의무 성실히 이행했는지가 위자료 지급 기준”

 
  의료소송 중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이 미용성형수술 실패와 관련한 의료소송이다. 성형수술이 잘못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거나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경우는 물론, 실명 또는 전신마비,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관련 소송이 많아지다 보니 성형의료사고 전문 로펌도 생겼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피해구제를 요청한 건수는 2008년 42건에서 2012년 130건으로 5년 사이 3배 이상 늘었다.
 
  미용성형 관련 소송은 대부분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수술 등 의료행위 자체가 잘못돼 피해를 입었다면 일반의료소송처럼 조정·중재 또는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지만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는 경우가 다르다.
 
  미용성형수술은 치료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의료진은 이를 환자에게 설명하고 환자가 동의할 때 수술을 실시한다. 따라서 미용성형이란 ‘환자가 부작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의한 수술’이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사망이나 전신마비 등 심각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 아닌 이상 소송을 하려면 의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한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손해배상을 받은 예는 극히 드물다. 한 여배우는 2013년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얼굴에 이상이 생겨 병원 측에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설명의무 위반 위자료 수백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또 2011년에는 가슴성형수술 후 숨진 여성의 유족이 업무상과실치사로 의사를 고소했지만 법원은 “혈압, 맥박 등이 정상인 상태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을 업무상과실이라 보기 어렵다”며 의사의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사실 위자료조차도 받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용성형수술이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의사들이 필요없는 수술이나 후유증이 심한 수술을 권하거나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런 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겠지요.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사실이 입증돼도 위자료는 1000만~20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사실을 입증하려면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과 환자가 입은 피해의 인과관계가 성립돼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발생했을 경우 일단 일반의료사고와 동일하게 진료기록을 완전히 확보한 후, 병원 측과 상의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성형외과는 부작용과 사고 등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 놓은 경우가 많고, 상당수 성형외과 의사들이 입소문을 우려해 재수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매헌의 홍승권 변호사는 “미용성형의 경우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부작용이라도 모두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실제로 이렇게 하는 의사가 많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명의무 위반 위자료 청구소송 시엔 환자가 설명을 듣고 이해했는지 여부를 의사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측 승소확률이 낮지 않다”며 “무조건 포기나 합의를 하기보다는 법적인 조언을 얻어 적극적으로 보상을 요구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조정·중재는 의료진 측의 참여 여부가 관건
 
  문제는 의료분쟁조정에 의료진이나 병원이 반드시 참여해야 할 의무나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환자와 의료진 중 한쪽이 조정을 신청해도 상대편이 14일 안에 의사표현이 없으면 각하,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상대편이 받아들여야 조정 개시’가 아닌, ‘상대방이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조정 개시, 거부하면 조정 중지’로 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등을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이 법은 의사나 의료기관이 의료분쟁조정 절차에 강제로 참여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만큼 의료계의 반발이 심해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최근 신해철씨 사망 이후 이 법에 대한 관심이 다시 대두되면서 일부에서는 ‘신해철법’으로 불리기도 하고, 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의료사고로 숨진 전예강 양의 이름을 따 ‘예강이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추호경 원장은 “원래 복지부가 마련한 의료분쟁조정법 원안은 조정신청 후 7일 안에 상대방의 의사표현이 없으면 조정을 개시하도록 돼 있었다”며 “입법과정에서 의료인에 유리하게 법이 바뀐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추 원장은 “국민들이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면 의료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환자 및 의료사고 피해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아닌 일반인도 의료사고 여부 판단에 참여 가능
 
환자 측이 의료사고로 소송을 제기할 때 승소율은 낮은 편이지만, 최근 의료전문 로펌이 늘어나 승소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현재 신해철씨 의료사고 과실 수사 중인 송파경찰서는 최근 의료진의 과실여부를 감정받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지금까지 의료사고 형사소송에서 분석 및 감정은 대한의사협회에서 해 왔고, ‘가재는 게 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송파경찰서가 처음으로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의료분쟁조정원에 함께 감정을 의뢰한 것.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만이 소속된 협회지만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함께 참여하는 조정중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감정을 시행하는 것은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그동안 의료사고 형사소송의 감정기관이 의사협회 단독이어서 불신이 높았는데 이제 복수의 감정기관이 생긴 만큼 공정성을 기대한다”며 “경찰에도 의료사고전담반을 구성해 의료사고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는 “고 신해철씨 사건이 병원 측의 불성실한 대응과 부실한 기록 때문에 수사가 지연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든 사람이 병원을 찾을 땐 의료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의무기록지 등 진료기록을 잘 챙기고 발병 이후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하는 자세를 갖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병을 고치겠다고 간 병원에서 다른 병을 얻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의료사고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아픔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의료인은 마땅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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