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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수술대에 오른 대입 修能

돌고돌아 문제은행(SAT)식으로 가나?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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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은행식 역시 이미 문제은행에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합숙 토론도 하면서 더 정확하게 고쳐 출제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겉보기에는 출제 오류의 확률이 낮아질 것 같지만, 해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연세대 이상오 교수)

⊙ 수능, 17차례 고치며 ‘물수능’과 ‘불수능’ 오가
⊙ “미국 SAT의 가장 큰 매력은 연중 6회 응시할 수 있다는 점”
⊙ 국가권력이 공교육을 놔두고 국가과외(EBS)를 하는 나라는 한국이 唯一
⊙ “수능 평가를 자격증화하고,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넘기는 것이 중론”
중·고교 6년 공부가 60년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 수능이다. 모든 수험생이 서울대 진학을 꿈꾼다.
  2015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역대 최고 쉬운 수능으로 결론나자 교육부가 2014년 12월 3일 수능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2년 연속 수능시험 출제 오류가 발생한 점도 수능 수술(手術)에 영향을 미쳤다. 앞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수능 시스템 재검토를 지시했다. 지난 11월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현재의 수능 출제 방식을 재검토해 원래 수능을 시작한 근본 취지, 수능을 왜 시작했는지 하는 취지가 바르게 실천되도록 재검토하라”고 했다.
 
  수능이 수술대에 오르는 ‘칼질의 반복’은 연례행사다. 1994학년도 대입수능 이후 큰 틀만 17차례 고쳤다. 꿰맨 데 또 꿰매는 식이었다. 그러나 고칠 때마다 문제점이 불거져 냉탕과 온탕을 반복했다. ‘물수능’의 해는 동점자가 늘어 수시 경쟁이 치열했고, 난도(難度)를 높인 ‘불수능’의 해는 중하위권 수험생 간 변별력이 떨어졌다.
 
2014년 11월 13일 대전 둔원고 수능 고사장.
  수능개선위가 발족하자, 정부 여당에서 수능을 미국 SAT처럼 문제은행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해마다 문제를 새로 내다 보니 오류가 생긴다”며 “미국의 SAT처럼 아예 문제은행식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SAT식 수능이란, 출제위원들이 문제를 상시적으로 만들어 은행처럼 보관하고 있다가 그 일부만 골라 시험에 출제하는 것을 말한다.
 
  기초과학연구원장을 역임한 서울대 오세정(吳世正) 교수(물리천문학부)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놓은 뒤 이 중 아주 일부만 출제하면 사전 문제 유출의 위험성도 크지 않다”며 “또 출제위원들이 시간을 충분히 갖고 문제를 내기 때문에 창의성 있는 문제 출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SAT의 가장 큰 매력은 한국의 수능처럼 단 한 번이 아니라 연중 6회 응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다만 미국 SAT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와 미국교육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은 2013년 7월 문제 유출 사건이 터져 SAT 시험 기회를 연 4회로 줄였다.) 복수 응시가 가능하다 보니, 학생 개인별 입시전략이 달라 학교 수업시간에 SAT 대비 문제집을 풀어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미국은 대입 사교육이나 과외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일선 고교 진학교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교실 현장을 모르는 학자연(學者然)한 탁상공론”이라는 얘기다. 진로상담 교사모임인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소속 한 교사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SAT식 문제은행 출제 검토 소식에 헛웃음을 지었다. “수능을 SAT 방식으로 대체하고, 연중 여러 번 치른다고 해서 미국과 같은 효과가 나겠느냐”며 “학교 현장은 어떻게든 문제집을 많이 풀려 할 것이고, 학원은 새로운 방식의 문제집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제도의 變遷史
 
“수능은 미국의 SAT와 비슷한 표준화 검사로 개발”

 
  한국의 대입제도는 곡절이 많다.
 
  광복 후 대학별 단독시험(1945~61), 국가고시제(1962~63), 대학별 단독시험기(1964~68), 대입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기(1969~80), 대입 예비고사와 고교 내신(1981), 대입 학력고사와 고교 내신 병행기(1982~87), 선(先)지원 후(後)시험제(1988~93), 수능제도(1994) 등 복잡한 진화를 거쳤다.
 
  먼저 광복 후 1961년까지는 입시관리 운영이 대학 자율에 거의 맡겨졌다. 대학이 학생 선발의 전권을 가졌던 시기다. 대학별 고사는 필답고사, 신체검사, 면접.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고교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내신을 대입전형에 반영하도록 권장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1963년까지는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의해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시제’가 만들어졌다. 대학의 입시부정과 비리로 사회적 불신이 높았던 시절이다. 전형방법은 국가고시 성적과 대학 자체 실기·신체검사·면접 점수를 합산했다.
 
  그러다 1964년부터 대학별로 단독시험제로 회귀했다. 국가고시제가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시험은 대학이 고교교육 과정과 계열별 학과 특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정했다.
 
  이 제도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대학 간 입시기준의 편차와 특정 교과목 위주의 시험 폐단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결국 1969년 대입 예비고사제가 도입됐다. 예비고사는 자격고사의 형식을, 본고사는 특정 교과에 집중된 고학력 경쟁고사의 성격을 띠었다. 이 제도는 1980년까지 대학별 본고사와 병행됐다.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통해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이라는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이듬해 대학 본고사를 없애고 출신고교 내신과 예비고사 성적으로 학생을 뽑았다.
 
  1982년에는 예비고사가 ‘대입 학력고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논술도입(1986~87)과 함께 선지원 후시험, 복수지원제가 차례로 허용됐다. 그러나 눈치작전이 극심했다.
 
  수능은 1987년 교육개혁심의회의 ‘교육개혁종합구상’에서 처음으로 논의됐다. 수차례의 공청회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출신의 교수들(황정규·이종승·박도순)의 검토를 거쳐 미국의 대입평가 방식인 SAT와 ACT의 성격을 융합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국회입법조사처 정환규 박사는 “수능은 미국의 SAT와 비슷한 표준화 검사로 개발됐다. 이는 학력고사 중심의 대입전형 제도가 평가신뢰도 부족 때문에 암기 위주의 대입준비 경향을 초래한다는 평가 설계상의 문제점과 응시 과정에서 극심한 눈치작전과 같은 폐해가 발생하는 시행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개발된 것”이라고 했다.
 
  미국식 SAT 도입, 學者然한 空論?
 
작년 11월 2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수능 출제 오류에 사과하며 인사하고 있다. 김 원장은 사의를 밝혔다.
  만약 미국 고교처럼 한국 고교가 정규 수업시간에 SAT 문제집을 풀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수업을 외면하고 사교육에 기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교사의 계속된 말이다.
 
  “한국의 대입시험은 외국과 사정이 다릅니다. 중·고교 6년 공부가 60년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 수능입니다. 수능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라 불릴 만큼 절박한 싸움입니다. 학교는 전쟁터고 수험생은 군인이며 교과서·문제집으로 무장해 밤을 새워 싸우죠. 미국식 SAT와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외국의 입시 전문가들은 한국의 수능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수능 당일, 관공서와 직장의 출퇴근 시각이 늦춰지고 모든 중·고교 1~2학년은 임시휴교를 한다. 초등학교도 단축수업에 동참한다. 시험장 주변에 경찰이 출동, 200m 이내 모든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지각 수험생을 경찰 사이드카로 실어나르며 아픈 학생이 양호실에서 시험을 봤다는 미담 기사가 매년 반복된다.
 
  수능은 한국 교육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역대 정부마다 수능을 교육개혁의 잣대로 삼아 수술대에 올렸다. 심지어 수능폐지안까지 나왔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집권 초기 “시험 성적으로 전국 학생을 줄 세우는 폐단을 고친다”며 수능 폐지(수능 대신 ‘지역단위별 학력고사 도입’과 서울대 폐지)를 꺼냈다가 유야무야됐다.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을 지낸 강원대 강치원(姜治遠) 교수(사학과)는 “수능을 뜯어고칠 게 아니라 고교 공교육의 정상화가 답”이라며 “학교 수업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하고, 고교 간 내신의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교 내신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고교 내신을 대학이 인정하려면 고교 서열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고교 서열화는 고교 평준화에 역행한다. 서열이 높은 우수고교에 입학하려는 고입 사교육이 불 보듯 뻔하다.
 
  강 교수는 고교 평준화와 서열화의 ‘조화’를 제안했다. 여기서 조화란 ‘평준화를 기반으로 한 등급화’를 의미한다.
 
  “같은 등급 안에서는 평준화하되 등급끼리는 엄연한 우열을 인정하는 것이죠. 예컨대 독일의 중등교육은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과 실업계 학교인 레알슐레(사무직), 하우프트슐레(현장직) 등 3등급으로 나뉩니다. 같은 등급 안에 서열은 없고 평준화가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고교 내신을 같은 수준에서 인정합니다.”
 
  독일 교육제도를 어떻게 한국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계속된 말이다.
 
  “우리나라는 외고나 과학고, 인문계 고교 중에서 우수한 학교들이 있습니다. 이런 학교의 수월성 교육을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한데 하나는 일류그룹 학교들이 많아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일류그룹 안에서는 서열을 정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일류그룹의 학교(외고, 과학고, 우수한 인문계고)도 1/3 정도가 되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외고나 과학고 수를 늘려야 해요. 전체 고교 가운데 다른 1/3은 독일의 레알슐레처럼, 또 다른 1/3은 독일의 하우프트슐레처럼 개편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나 정부는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불가(不可)라는 ‘3불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강 교수의 독일식 대입 방식도 풀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다.
 
널뛰기 수능
 
“2015학년도 수능이 역대 최고 물수능”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수능은 어려웠다. 외국어영역(영어)은 94년엔 엄청 어렵다가 95년엔 아주 쉬웠고(고1 수준) 96년과 97년에는 문항이 고2 수준에 가까웠다. 96년의 언어영역(국어) 시험은 특히 어렵게 출제됐고 97년은 수능 역사상 가장 어렵게 출제된 해로 기록된다. 수리와 사회탐구영역이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해 수리영역(수학)은 80점 만점에 40점만 넘어도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1998~2000년까지는 언어영역이 다른 영역과 비교해 쉬웠고 전반적으로 쉬운 수능이었다. 2001학년도 역시 물수능, 2002학년도 수능은 상대적으로 불수능의 해였다.
 
  널뛰기 수능은 국회에서까지 논란이 됐다. 2001년 11월 9일 국회 예결위에서 심재철(沈在哲) 의원은 “학생은 실험용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니다”고 비난하자 한완상(韓完相) 교육부총리는 “모든 국민에게 죄송하다. 난도가 이렇게 높은 데 대해 저 자신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사과했다. 한 부총리는 “작년 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됐다는 여론이 많아 올해는 다소 어렵게 하되 재작년보다는 쉽게 출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듬해 2003년과 2004년 수능은 다시 물수능으로 돌아갔다. 2006년과 2007년 수능 역시 대체로 평이한 시험이었으나 2008년 수능은 수능 등급제에 따른 변별력 확보를 위해 문제의 난도가 높아져 전년보다 어려웠다.
 
  2012년 수능은 언어영역이 지나치게 어렵고 외국어영역이 쉬워 난도 조절 실패라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수능은 정반대로 언어가 너무 쉽고 외국어는 어려웠다.
 
  2015학년도 수능은 영어와 수학이 역대 가장 쉽게 출제됐다. 수능 영어 만점자 비율이 응시생의 3.37%였다. 수학 B 만점자 비율은 이보다 높은 4.3%. 수능이 실시된 1994년 이후 영어·수학 만점자 비율이 이처럼 동시에 높게 나타난 것은 처음이라고 《조선일보》(작년 12월 3일자)는 보도했다.
 
  SAT는 사고력 측정, ACT는 고교 교과 과정 중심
 
정부는 2년 연속 수능시험 출제 오류가 발생하자, 수능개선위원회를 발족했다. 여권에서는 미국식 SAT 수능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대입제도인 SAT와 ACT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SAT는 미국의 학업성적검사(Scholastic Aptitude Test)를 뜻한다. SAT는 중등학교까지의 학업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지만 주된 목적은 학업적성, 다시 말해 대입 이후의 발전가능성을 측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SAT는 SATⅠ인 SAT Reasoning Test(SATRT·추론능력검사)와 SATⅡ Subject Test(SATST·교과학력검사)로 나뉜다.
 
  SATⅡ에서는 대학별로 외국어, 수학, 과학, 문학 4과목 중 문·이과의 성격에 따라 2과목을 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인문계 전공의 대학을 진학하는 입장이라면 굳이 수학과 과학을 택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미국대학은 응시서류에 SATⅠ의 성적을 첨부토록 한다. 그러나 특정 대학은 SATⅠ 성적과 SATⅡ의 특정 과목 성적을 같이 제출해야 한다.
 
  SAT가 지능검사 성격의 일반적 사고력 측정을 중시한다면, ACT는 학업성취 정도를 측정하는 성격이 강하다. ACT(American College Testing)는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ACT사가 개발한 대입 전형을 위한 성취도 검사다. ACT에 출제되는 문제는 대부분 미국 고교 교과 과정에 나온다. 평소 학교수업에 충실한 학생에게 유리하다.
 
  한국의 수능은 처음 설계 당시 ACT보다 SAT와 비슷하게 ‘학업적성’을 측정하려고 했다. 학업적성이란 장래 학업성취에 대한 학습자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인지적, 정의적 특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 단순 계량적 측정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수능 성적 결과를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자격등급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환규 박사는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출제와 평가설계는 제도적 모델인 미국의 SAT와 유사하지만 그 운영방법 중 하나인 수능 성적을 대입전형에 활용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SAT는 중등학교까지의 학업 능력을 측정하지만 주 목적은 학업적성, 다시 말해 대입 이후의 발전가능성을 측정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수능과 미국 SAT 중 어느 시험이 더 어려울까. SAT의 언어영역은 읽기와 쓰기 능력에 필수적인 기초사고 능력을 세밀하게 다룬다. 실제 언어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 사실적 사고나 추론적 사고를 측정하는 데 1차 목적이 있다. 반면 한국 수능의 국어영역은 복잡하다. 사실적, 추론적 사고는 물론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문항까지 상당수 출제된다. 수능이 SAT보다 고차적인 사고 능력을 요구한다.
 
  SAT 지문과 수능의 지문을 비교해 보자. SAT 문항과 지문은 우리의 중3이나 고1 정도의 난도 수준을 보인다. SAT는 지문의 내용 수준을 적절히 살피고 문항을 쉽게 구성하면서 난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수능 국어영역은 지문의 난도가 문항 전체 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비문학 지문 수준이 국어영역 전체 성적을 좌우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15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의 당락은 문과의 경우 ‘국어 B’의 성적이 좌우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비문학에서 나온 과학 관련 지문이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반면 ACT는 학력고사의 성격이 강하다. 고교의 교육 과정에 바탕을 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 면에서 ACT는 한국의 수능과 유사하다. 다만 ACT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시험 본다는 측면에서 보면 수능과 다르다. 수능은 통합교과적 출제를 지향한다.
 
 
  수능과 國家課外 EBS
 
  결론적으로 수능은 시험의 성격 면에서 볼 때, 국어·수학·영어 영역의 경우 사고력 측정을 중시하는 SATⅠ과 유사하고,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한문 영역은 교과에 기반해 출제하므로 SATⅡ, ACT와 유사하다.
 
  그러나 수능은 SAT보다 고차원적 사고를 요구하며 ACT보다 훨씬 범교과적이다. 그래서 수능이 SAT나 ACT보다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직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인 A씨의 말이다. 그는 수능이 SAT나 ACT와 같은 역량검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대입시험은 제한된 시간에 빨리 문제를 풀 수 있는 속도검사보다 충분히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검사가 돼야 하고, 그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합니다. 미국의 SAT, ACT 모두 속도검사보다는 역량검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요. 수능은 역량검사의 성격을 지니면서 등급이나 일정 점수를 제시해 활용하는 자격고사가 돼야 합니다.”
 
  속도검사(speed test)는 제한된 시간 안에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문항을 활용해 수험생의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를 말한다. 반면 역량검사(power test)는 시간제약 없이 수험생이 모든 실력을 발휘하도록 고안된 검사다. 역량검사는 주관식의 까다로운 문항으로 구성된다.
 
  그는 수능이 SAT처럼 문제은행식 출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능과 연계 중인 EBS 교재가 문제은행이 될 수 있습니다. 교재가 고교교육의 목표와 과정에 충실한 내용이라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수능의 문제은행식 출제는 이미 기초가 마련돼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 국가영어능력평가(NEAT)를 준비하며 문항 수합의 경험도 있고요.”
 
  그러나 EBS 교재가 SAT 대비 문제집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함정이 있다. 이미 현재의 수능도 EBS 교재에서 대거 출제하고 있다. 수능과 EBS의 연계는 학생들에게 EBS 교재를 달달 외우게 만들고 있다. 수능과 EBS 연계 출제는 암기가 가장 효과적이다. “수능과 EBS 교재의 연계 출제가 도입되면서 통합교과형 문제는 다 사라졌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들린다.
 
  한국교육개발원장인 서울대 교육학과 백순근(白淳根) 교수는 몇 년 전 기자에게 “수능이 고교에서 배운 교과목에 대한 학업성취를 측정하는 학력고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학(修學)능력을 갖췄는지를 파악하는 학업적성검사도 아닌, 매우 애매한 성격의 시험”이라고 말했다.
 
  수능의 EBS 연계 출제에 대한 학생 반응도 시큰둥하다. 수능의 EBS 연계가 문제의 70%를 상회한다지만, 학생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정작 어려운 문제는 EBS와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문대학의 당락은 까다로운 고난도 문제가 좌우한다.
 
  EBS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과외’라는 기현상이다. 사교육 억제를 위해 국가권력이 공교육을 놔두고 국가과외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전무하다. 국가과외를 위해 EBS 교재 제작에 일선 교사를 투입시키고 사교육 시장의 인기강사를 초빙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학습참고서 시장의 EBS 독주와 영세 소매서점의 몰락, 건실하던 수능 교재 출판사가 타격을 입었다. “EBS 교재의 질이 여타 시중 출판사의 문제집 수준보다 나을 게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잊을 수 없는 1994학년도 수능
 
수능날의 ‘고전적 풍경’. 첫 수능이었던 1993년 8월 20일 1차 수능이 치러지던 고사장 문 밖에서 학부모들이 자녀의 고득점을 기원하고 있다.
  수능이 문제은행식 SAT로 가고, 수능 횟수도 늘린다는 것은 매력적임에 틀림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주호(李周浩) 교육부 장관도 수능 연 2회 시행계획을 수차례 밝혔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수능이 처음 고안될 당시로 돌아가 보자. 1990년대에는 대입고사 외에 마땅한 입시 전형자료가 없었다. 그러니 대입고사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 때문인지 항상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전직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A씨는 “1975년생부터 대입제도를 수능으로 바꾸었다. 시험도 복수 응시가 가능토록 설계했으나 두 시험 간 변별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1994학년도 수능은 1993년 8월 20일, 11월 17일 두 번 실시했다. 물론 ‘연 2회 수능’의 취지는 좋았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짓는 대입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난도였다.
 
수능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다. 과거엔 방송사들이 수능 직후 특집 생방송을 진행했다. 1995년 한 방송사의 ‘오늘은 수능일’ 프로그램 모습.
  그해 8월 1차 시험에 비해 11월 2차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당시 수험생들은 할 수 없이 1차 시험 성적표를 주로 전형자료로 활용했는데, 2차 시험만 친 수험생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막심했다. 결국 냉·온탕을 오간 ‘연 2회 수능’은 그해를 끝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첫 수능을 두고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의 시험이라 수능 한파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시험장 앞 격문(檄文)도 사라졌다. 대신 시험 전날 ‘매미사냥’의 촌극이 벌어졌다. 매미소리 탓에 외국어 듣기평가를 망칠 수 있다는 학부모의 항의 때문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수능 전날 교사를 총동원, 매미를 잡았다. 다행히도 수능 당일 보슬비가 내려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첫 수능이어서 관심이 폭발적이었고 공중파 TV에서는 아예 수능 해설방송을 생방송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두 번의 수능 난도를 동일하게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두 개 수능 성적 중 나은 점수를 활용하면 된다”는 교육당국의 설명은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만 ‘대입 실험’의 희생양이 됐다.
 
 
  SAT와 수능 복수 시행
 
수능 시험일인 2013년 11월 7일 서울 휘문고 정문에서 영동고 학생들이 수험생 선배를 위해 피켓을 든 채 경례를 하고 있다.
  수능이 SAT 방식(문제은행)을 택하느냐 마느냐는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핵심은 SAT처럼 수능을 여러 번 칠 수 있느냐다. 고교 과정 3년을 단 하루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과 중국은 어떨까. 1년에 한 번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한중일(韓中日) 3국은 닮았다. 다만 한국처럼 ‘원샷(one-shot)’으로 하루 안에 끝내지 않는다. 일본은 매년 1월 중순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걸쳐 실시한다. 명칭은 ‘대학입학자선발 대학입시센터시험’.
 
  중국은 ‘보통고등학교 초생전국통일고시(普通高等學校 招生全國統一考試)’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줄여서 ‘가오카오(考試)’라고 부른다. 가오카오는 일반적으로 6월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전국적으로 시행한다. 성(省)에 따라 3일 동안 나눠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시험 영역이 5개 영역(국어, 수학, 영어, 사회·과학탐구, 제2외국어·한문)이지만 일본은 하루에 시험 보는 영역이 4개 이하, 중국은 2개다.
 
  기자와 통화한 교육부 관계자는 “이주호 장관 때 수능 복수 시행을 추진했지만 교사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여러 번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여러 번 기회를 주는 것이 되레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밝혔다.
 
  “수능에 대한 한국 사회의 거대한 맥락을 생각한다면, 수능을 여러 번 치면, 치는 족족 다 응시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부담이 줄어든다고 보기 어려워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시험을 여러 번 보는 체제로 가야 된다고 보지만 섣부른 수능개편 논의는 조심스럽습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이상오(李相旿) 교수는 SAT식 수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제은행식 역시 이미 문제은행에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고, 당해 출제위원 중에서 특정 문제를 선택해 여러 사람이 합숙 토론도 하면서 더 정확하게 고쳐 출제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새로운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지요. 물론 겉보기에는 출제 오류의 확률이 낮아질 것 같지만, 해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즉 인간이 하는 일이라서 출제 오류, 복수 정답의 문제는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지요. 이렇게 본다면, 얻는 것에 비해 시간, 장소, 비용만이 더 들어갈 수 있지요.”
 
  이상오 교수는 “미국이 SAT를 1년에 4~6회 치르는 배경에는 한국과 전혀 다른 교육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 과도한 경쟁으로 ‘시험의 변별력’이 교육목표가 되는 나라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합리적으로 (당락을) ‘걸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4~6번 SAT를 치른다는 얘기는 인생을 결정하는 학생들에게 4~6번 정도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기회균등 차원에서 의미가 있고, 언제든지 출제 오류나 이중 정답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부작용 방지라는 의미도 있고요.”
 
  1년에 시험을 4번 치르면 관련 예산도 4배나 든다. 4배 이상의 예산을 들여 수능의 논란이 완전 사라지면 모를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교수는 “대입시험을 예비고사처럼 자격증화한 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법적 자물쇠가 많다.
 
  “수능평가를 자격증화하고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준다면 사교육의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들 하는데, 옛날 본고사처럼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대학에 본고사 선발권을 준다 해도 소위 ‘본고사’를 시행할 학교는 극히 소수가 되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는 이미 창의성, 재능, 적성 등을 토대로 꿈과 끼를 발휘할 수 있는 인재선발의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대학 학과 역시 많이 다양화, 특성화됐기 때문에 과거처럼 획일적으로 본고사를 시행하면서 구태의연하게 인재를 선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독일, 고교내신과 입학자격시험 비율 2대 1… 평가는 주관식
 
독일의 수험생들이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치고 있다.
  강원대 강치원 교수는 ‘독일식 대입방식’을 제안했다. 한국은 다양한 대입전형이 존재하지만 독일은 딱 하나의 방법만 존재한다. 대학입학자격을 정하는 종합평가는 총 900점. 기초코스에서 300점, 심화코스에서 300점,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에서 300점을 합산하는 방식이다. 내신 성적과 아비투어 성적 비율이 2대 1로 내신 반영 비율이 절대적이다.
 
  “고교교육이 정상화되려면 내신이 강화돼야 합니다. 중등 입학은 초등의 내신을, 또 대학 입학은 중등의 내신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래야 초등교육이, 중등교육이 정상화됩니다.”
 
  아비투어의 시험과목은 4과목(혹은 5과목)이다. 적어도 세 과목은 필기시험으로, 적어도 한 과목은 구술시험을 쳐야 한다. 또 국어(독어), 외국어, 수학 중 반드시 두 과목이 포함돼야 하며 구술시험 과목은 필기시험 이외의 과목으로 규정한다.
 
  “아비투어는 한국처럼 중앙정부에서 전국 단위로 치르지 않습니다. 각 주(州)별로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아비투어를 치르는데, 평가결과는 모든 주에서 똑같이 통용되죠. 한국은 객관식 평가를 실시하지만 독일은 객관식 평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관식 평가시험의 사회는 객관식 평가시험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교육의 효과가 적습니다. 사교육 효과가 줄어든다면 당연히 사교육에 들이는 돈과 시간도 줄어들게 마련이죠. 초등에서 대입, 취직시험까지 객관식 평가시험이 전혀 없는 선진국도 있어요. 그런 사회에서는 사교육이 전혀 없고 ‘고르기 문제집’도 없어요. 한국에서 참고서란 ‘고르기 문제집’이지만, 선진국에서 참고서는 그야말로 ‘참고할 만한 도서’입니다. 예컨대 독일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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