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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從北토크쇼’ 논란, 신은미 訪北記 전면 검증

‘기획’을 알았을까, 아니면 ‘기획’에 놀아난 것일까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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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방북기 53건 전문과 강연 내용 검토
⊙ 방북기 읽은 북한 전문가들, “거짓말투성이, 신씨는 자신도 모르게 세뇌당했다”
⊙ 교포들 방북의 공통점, “10월과 4월에 北 방문하고, 북한여성을 수양딸 삼은 다음 돌아가”
⊙ 리투아니아 가수 마몬토바스 방북기, “북한은 거대한 테마파크”
신은미와 황선은 전국의 주요 도시를 돌며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 장면 (오른쪽이 신은미).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는 북한을 다녀와서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 속의 오류는 무엇일까. 《월간조선》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신씨의 방문기와 발언내용을 모두 살펴봤다. 53회에 달하는 신씨의 방문기 중 일부는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2012년에 발행돼 2014년 현재 초판 4쇄까지 찍은 ‘스테디셀러’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에 이 책을 ‘우수도서’로 선정한 것도 일조했을 터다.
 
  신씨의 발언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이용했다. 첫 번째, 평양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들에게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두 번째, 기존에 책으로 출판되거나 언론을 통해 노출된 방북자들의 경험과 비교했다.
 
 
  신씨 책, ‘문체부 우수도서 선정’
 
지난 2012년 출판된 신은미의 방북기는 이듬해 문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씨의 신상을 간략히 알아보자. 고향이 대구인 신씨는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Minnesota)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신씨의 외할아버지는 포항에서 4선을 지낸 국회의원 박순석(朴順碩)이다.
 
  신씨의 남편 정태일씨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입시학원 ‘정선생 SAT’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다. 정씨 스스로에 따르면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학원을 경영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한 걸로 교포사회에는 알려져 있다. ‘테어도어(Theodore)’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신씨는 2011년 10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이끌려 내키지 않은 북한 여행으로 첫발을 내디뎠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타인이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면, 신씨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떠나 글의 흐름만 놓고 보면 매끄럽게 잘 읽힐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재미있는 장면(주로 남편과 티격태격한 일화)을 넣어 지루하지 않게 구성했다. 신씨의 인터뷰와 강연 등을 보면 말솜씨도 수준급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면 이렇다. 첫째, 명백하게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다. 두 번째는 북한 정권이 신씨에게 왜곡해서 보여주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신씨가 나름대로 추측하고 예상했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발언들은 신씨와 남편 정씨의 입에서 나오거나, 북한에서 만난 이들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식으로 등장한다.
 
 
  北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
 
  명백하게 사실관계가 틀린 대표적인 예는 ‘군대 입대’다. 신씨의 글에는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북한의 군입대는 의무 징병이 아니라 지원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해당 대목이다.
 
  〈-만룡 안내원의 말로는 6년(2005년) 전부터 북한에서는 병역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고 한다. 지원제를 택했단다.
 
  -설경이에게 “저 여자 아이들도 군인들이야?”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설경이 말로는 수많은 여자 아이들이 군대에 지원해 간다고 한다. 놀라울 따름이다.
 
  -(평양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남성의 발언) “제가 원하면 직장을 가져도 되지만 저는 꼭 군사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거짓이다. 탈북자 이철혁(가명)은 ‘완전 사기’라고 지적했다. 이씨의 설명이다.
 
  “지원제로 바뀌기는커녕 더욱 모병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남성 중에서도 키가 작거나 시력이 안 좋으면 군대에 안 가도 됐는데 이제는 키가 아무리 작아도 100% 군에 가야 합니다. 장애인 아니면 무조건 입대한다고 보면 됩니다. 2011년부터는 여성도 반강제적으로 군에 가게 됐습니다. 대학을 가려면 일단 무조건 군사복무 해야 하는 식으로 제도가 바뀌었어요. 이것 때문에 평양의 딸 가진 간부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신씨는 안내원의 말을 정말 믿는 걸까. 심지어 북한 《로동신문》에도 군복무 의무에 대한 기사가 종종 실린다. 2014년 6월 24일 자 《로동신문》에 ‘전선에서 만나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의 한 대목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보위는 청년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2014년 8월 8일자에 현경철 기자가 쓴 기사인지 넋두리인지 구분이 안되는 ‘총대로 조국을 보위하는 것은 공민의 신성한 의무’라는 제목의 글도 마찬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군복무 의무는 북한헌법에도 규정되어 있다. 북한헌법 제86조는 ‘조국보위는 공민의 최대의 의무이며 명예이다. 공민은 조국을 보위하여야 하며 법이 정한데 따라 군대에 복무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탈북하다 잡혀도 경고만”
 
  방북기 5화에는 신씨 남편 정씨와 이들을 안내한 안내원이 ‘탈북자’를 화제로 삼아 대화하는 대목이 나온다.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정씨: (탈북자들이 남에 넘어와 정부에서 2만 달러를 받은 후에는) 남에서 저소득층 수준으로 산다고 하면 2년 정도는 살 수가 있는데, 문제는 집이라든가 가재도구라든가 하는 것을 모두 본인이 마련해야 하니 그 돈 갖고는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지. (중략) 그러다 보니 ‘괜히 왔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겠지.
 
  안내원: (북한 인민들이 국경을 넘다 걸릴 경우에)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처음일 경우 대부분이 경고 정도를 받을 겁네다. (중략) (탈북하다 잡히면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심하면 사형시킨다고 하는 얘기는) 순전히 공화국에 악의를 품고 하는 악선전입네다. 열 번 이상 단속에 걸린 사람들도 있답네다. 우리는 오히려 처벌이 너무 가벼워 그렇다고들 말합네다.〉
 
  두 사람 다 거짓을 말하고 있다. 우선, 탈북자들은 한국에 넘어오면 기본적으로 임대아파트 이상의 주거지를 제공받는다. 탈북 후 5년까지는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때가지 생활비 지원도 받는다. 인터넷을 잠깐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안내원의 말도 명백히 거짓이라고 탈북자들은 지적한다. 탈북자 황철진(가명)씨의 말이다.
 
  “당연히 국경을 넘다 걸리면 수용소에 갑니다. 이전의 김정일 시기,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먹을 게 없어서 중국에 있는 친지한테 가서 식량이나 물자를 갖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김정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한테 물자를 빼앗지 말라.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사회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니 관대하게 대하라.’ 물론 중국에서 남한의 종교단체 사람들이나 기관 사람들을 접촉하면 예외지요. 보통은 노동단련대에 1달 정도 보내거나 그냥 놔줬습니다.
 
  2008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극한 후에는 전혀 다르게 바뀌었어요. ‘잡히면 무자비하게 숙청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국경 경비가 삼엄해지고 잡히면 무자비한 처벌을 받아요.”
 
 
  “천만원이면 예배장면 연출”
 
신씨 부부가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 발급받은 방문증. 오마이뉴스 연재물에서 캡처했다.
  두 번째로, 북한 당국이 현실을 조작 및 왜곡해서 신씨 부부에게 보여준 것들도 많다.
 
  봉수교회가 단적인 예다. 개신교도인 신씨는 여행 전, 여행사에 예배에 참석하게 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고 한다. 신씨는 예배에 참석해 찬송가도 불렀다고 썼다.
 
  봉수교회는 진정한 교회일까? 탈북자 황씨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황씨의 설명이다.
 
  “북한에 현재 교회가 3개 있다. 봉수교회, 칠골교회, 낙랑구역에 있는 기독교 교회이지요. 만약 일반 인민이 자발적으로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처형됩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외국인들을 위한 참관지입니다.
 
  국제적으로 종교 탄압이다 뭐다 해서 모양새가 안 좋아지니까 북한에서 성직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어요.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과에 종교학과를 신설해서 목사나 승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지요. 성경 교리를 전혀 모르면서 목사 연기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개신교든 어떤 종교든 국제적으로 변화가 많기 때문에 신학원에서 1년씩 재교육도 받습니다.
 
  그리스도연맹, 불교연맹 이런 조직은 다 통일전선부 산하 외곽단체입니다. 종교인이 되려면 집안이 좋고 성실해야 합니다. 종교인 자체가 괜찮은 직업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종교인도 많이 만나고 초청을 받아 외국도 자주 나가고요.”
 
  비슷한 내용을 한 한국인 기독교계 인사 A씨의 방북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2004년 방북한 A씨가 봉수교회를 방문했을 당시, 목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왜 우리들이 예배를 드릴 때 북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느냐? 예의상 교회 관계자와 핵심 교인이라도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자 목사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200~300여 명을 동원해 자리를 채우고, 성가대를 포함하여 예배 준비를 하려면 한국 돈으로 약 1000만원이 든다. 그 돈을 주면 언제든 그런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
 
  같은 ‘업계 사람’이라고 여겨 은근슬쩍 진실을 말한 걸까.
 
  방북기에는 신씨가 백두산을 방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으로 향하기 위해 간 공항에서 신씨 부부는 가족 단위 북한 승객들을 목격한다. 안내원은 “각 기업소에서 모범적인 노동자들을 선별해서리 그 가족들을 비행기 태워 백두산으로 단체관광시켜 주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탈북자 이씨는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반적인 인민들은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비행기 자체를 타는 게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신씨를 감화시키기 위해 조직된 보위부와 중앙당 간부 가족들’일 거란 설명이다.
 
  신씨가 의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글 안에 모순되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국제려행사 소속의 전문 안내원이라는 사람이 “비행기는 태어나서 처음 타 보는 것”이라고 말하며 좋아하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대목이다. 탈북자들은 이 안내원이 통일전선부 소속 일꾼일 가능성이 100%라고 설명했다.
 
 
  “남한 지원 쌀, 인민에게 돌아갔다”
 
신은미는 첫 번째 방북 후인 지난 2012년 4월 북한의 초청을 받아 봄축전에 참가해 공연을 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캡처했다.
  안내원 김설경이 외국 잡지를 읽고 있는 걸 봤다는 대목도 나온다. 연출된 장면일까, 본래의 진실일까. 전 평양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가 지난해 8월 펴낸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에 관련 대목이 나온다.
 
  〈정보 제한은 정권의 존속이 걸린 문제였다. 정권은 외국 방송 청취를 금지했고, 북한 방송만 듣도록 라디오를 설정해 놓았다. 외국 신문과 잡지는 금지되었고, 감독 없이 외국인과 대화해서도 안 되었다. 정권은 북한 사회 안에서도 정보 흐름을 통제하려 했으므로 강박적으로 비밀을 고수했다. (중략) 김씨 일가에 관한 정보는 철저하게 숨긴다. 정권은 모든 매체를 통제했다. 나는 외국 신문이나 잡지 읽기를 허락받은 북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군대 얘기와 함께 신씨의 방북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쌀’이다. 안내원은 고난의 행군 시절, 남한에서 보낸 쌀이 일반 인민들에게 배급됐다는 걸 암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 쌀이 남포항에 도착했을 때, 운송 수단이 안 좋다 보니 인민군대 트럭들이 운송을 위해 동원됐습네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남조선 대표단이 몹시 불편해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네다. 군대 트럭이 쌀을 실어 날랐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충분히 이해합네다.〉
 
  ‘쌀 지원’문제에 대한 신씨의 감상도 등장한다.
 
  〈(북한에 지원해 주는) 쌀이 누구에게 갔는지 관계없이 북한 내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히 크다. 북한에 들어간 쌀은 누군가가 현금으로 만들기 위해 장마당에 내다팔 것이다. 그렇다면 장마당에 흘러나온 쌀들은 결국 쌀값의 하락 요인이 될 것이고, 주민들은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쌀을 살 수 있게 된다.〉
 
  탈북자 황씨는 속칭 ‘개수작’이라는 표현을 썼다.
 
  “개수작이에요. 그러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왜 인민들이 굶어 죽었습니까. 북한 스스로도 그 시기에 아사한 인민들이 많다고 인정했잖아요. 북한에 있을 때 보면, 남자는 열흘 동안 한 끼도 못 먹으면 죽습디다. 여자는 열흘보다 조금 더 견디다가 죽습니다. 그 쌀이 일부라도 인민들에게 갔으면 열흘에 한 끼는 먹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나왔겠어요?
 
  북한에 지원한 쌀이 장마당으로 흘러나온다는 건 본 적도 없고 지금까지 들은 적도 없습니다. 설사 그게 흘러나온다고 해도 쌀값이 내려가진 않습니다.”
 
  북에는 성형을 한 여성이 거의 없고 거개가 자연 미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도 두말할 것 없이 사실이 아니다. 2013년 8월에 출판된 모니카 마시아스의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의 한 대목에 성형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자배우에 열광하고 저마다 자기 짝을 만나 로맨스를 꿈꾸는 나이였던 만큼 그 무렵 우리 과에는 유난히 성형수술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중략) 나는 경이의 쌍꺼풀이 너무도 낯설어 그만 솔직하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뒤에 매부리코였던 현옥이가 코 수술을 하고 나타났다.〉
 
 
  “개성공단 기업 수익은 수십억 달러”
 
2013년 4월 북한은 개성공단 조업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입주기업 차량이 원자재를 싣고 나오는 모습. 조업 중단은 반년여를 끌었고, 입주 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방북기 곳곳에는 신씨의 잘못된 추측과 예상이 등장한다. 개성공단을 언급한 부분을 보자.
 
  〈나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은 북한을 전적으로 도와주기만 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남북 경제협력 얘기만 나오면 소위 ‘퍼주기’라는 말들을 많이 해 자연스레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만일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수년간 월 100달러의 임금을 지불하며 기업 활동을 했다면 이것이 과연 퍼주기만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간 값싼 임금으로 생긴 수익만 따져도 수십억 달러에 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재미동포 아줌마 신씨는 개성공단 관련 보도를 전혀 읽지 않는 걸까? 현실을 보자. 2005년 남한 기업의 개성공단 입주가 시작된 후 6년 만인 지난 2011년에야 입주기업의 현지법인 평균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수십억 달러의 흑자였을까? 평균 연 5600만원의 흑자였다.
 
  만약 신씨가 ‘회계 조작이 아니냐’고 항변한다면, 북한 측이 개성공단 기업들에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회계 조작을 하다 적발되면 ‘200배’의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이것도 잠시, 2013년에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볼모로 협박을 해 반 년여간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급기야 개성공단 입주 1호 기업이었던 신원은 지난해 개성공단 부지 사용권을 매물로 내놨다.
 
  방북이 잦아질수록 신씨의 방북기에는 점점 형이상학적인 선언들이 늘어난다. 해당 부분이다.
 
  〈-구매력을 갖춘 북한 주민들이 많아질수록, 이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내가 관찰한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별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북한을 여러 차례 여행하며 느낀 것은, 북한 주민들 역시 남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두려워하며 평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사실일까. 존 에버라드 전 영국대사는 인터뷰에서 “평양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미국의 침략보다는 오히려 북한 내부에서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것을 더 걱정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책에는 이렇게 썼다.
 
  〈정권은 달갑지 않은 정보를 은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들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을 끊임없이 요란하게 외쳐댄다. 그러나 내가 평양에 거주한 시기는 오래전에 기근을 겪은 데다가 바깥 세계에 관한 정보가 북한에 쏟아져 들어와서 정권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된 때였으므로, 선전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니카 마시아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이징을 방문하고 평양에 돌아온 후) 교정의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허용된 각본’ 안에서만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중략) 내 속에서 변화와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평양에 갇혀 자란 모니카가 며칠 중국을 다녀와서 느낀 것을, 평양의 엘리트들, 적어도 외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지도층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까.
 
 
  “천안함, 北 소행 아니다”
 
  북한을 드나들수록 점점 노골적으로 북한을 대변하기 시작한 신씨의 활약이 최고조에 달한 부분은 어디일까. 바로 ‘연평도 사건, 천안함 폭침, 박왕자씨 피격 사건’을 언급한 부분이다. 신씨의 말을 빌리면 가장 최근에 방북했을 때 신씨의 남편 정씨는 북측 안내원 박영길과 ‘설전’을 벌였다. 기막힌 우연인지, 남북 교류 재개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세 가지 사안을 쏙쏙 골라 북측 인사와 토론을 벌였다. 해당 대목이다.
 
  〈“그래, 근데 왜 연평도에 폭탄을 퍼부었어?”
 
  남편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아니, 형은 형 집 마당에 누가 돌을 냅다 던져대면 기냥 가만있갔시요? 나가서 ‘왜 이러느냐, 기러지 마시오’ 할 것 아니야요? 그런데도 말을 안 들으면 어카겠시요? 기냥 집으로 돌아와서리 던져대는 돌을 구경만 하고 계실라요?”
 
  “물론 그럴 수야 없지. 그런데 돌이 떨어지는 마당이 남의 집 마당이 아니라 자기 집 마당이라고 하면 어쩔 텐가? ‘내 집 마당에서 내가 돌 던지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면서 말이야.”
 
  “아, 형두…. 그래서 장군님께서 남녘의 대통령과 그곳을 평화로운 바다로 만들자고 합의를 하셨지 않갔시요. 기러면 기걸 지켜야지…. 어쨌든 남조선 사민(민간인)들이 희생됐다니 기건 안됐시요, 형.”
 
  “그래, 좋아. 근데 금강산에 온 여자 관광객은 왜 쏴 죽였어?”
 
  남편의 질문이 갈수록 태산이다.
 
  “형, 쏴 죽이다니요? 기곳은 들어갈 수가 없는 군사지역이야요. 대체 어케 관광객이 기곳에 들어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말입니다. 긴데 서라고 해도 서지 않고 도망을 가는데, 경계를 서는 병사가 어케해야갔시요? 관광객이라고 상상이나 했갔시요? 남조선 동포들은 군사복무 안 해 봤시요? 기것도 어쨌던 사민 관광객이 희생이 됐으니 참 안됐시요. 생각해 보시라요. 제가 모시는 관광객인 형하고 누나가 희생됐다고 상상해 보시라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시리. 기래 우리도 유감을 표명하고 다시는 기런 일이 없도록 서로 주의하자 하지 않았갔시요. 긴데 기걸 핑계로 관광을 중단시켜 버리고서리….”
 
  남편은 급기야 천안함으로까지 화제를 돌려 직격탄을 날린다.
 
  “천안함은 어떻게 할 거야?”
 
  “아, 참, 형두. 아니 도대체 하지 않은 걸 어케 했다 기럽니까? 기리고 어뢰 맞고 폭파된 배가 무 짤라지듯 두 동강이 납네까? 배가 어뢰를 맞아 폭파되면 어케 되는지 아시나요? 우리 인민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하는지 말도 못합니다. 형, 자꾸 기런 말씀 하실라면 조국에 오지 마시라요.”〉
 
 
  고도의 세뇌공작
 
  다수의 탈북자들은 이 대목을 읽으며 실소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입을 모아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그런 얘기를 꺼내면 안내원들은 모른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날로 보고가 올라간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다음 날 즉시 추방된다. 조선에 와서 조선에 대한 좋지 않은 유포를 하고 있다는 이유”라고 말했다.
 
  결국 위의 대화는 신씨 부부가 본인들의 자각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북측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 관광객’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존 에버라드 전 영국대사도 “평양에서 제일 이상한 건 잘 모르는 사람과는 의미 없는 잡담 이상의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북한 관리와 만났는데, 아마 북한 정치체제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틀 뒤 한 북한 친구가 와서 그런 이야기를 다시 하지 말라고 경고하더라”라고 말했다.
 
  북한에 정통한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신씨가 ‘고도의 세뇌 공작’에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한다. 탈북자 출신 최초의 여자 목사이고 현재는 미국 댈러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엄명희 목사는 “조총련이 와해된 이후, 북한이 재미교포들을 노리고 있다. 이들을 세뇌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고 증언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도 “신은미나 황선 모두 결국 통일전선부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와 북한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 탈북자들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재미교포가 북한에 방북 신청을 하면, 북한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면밀히 조사를 한다. 만약 북한 체제 선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포섭하기 위해 계획을 짠다. 고령이거나 다른 이유로 선전에 별 도움이 안된다 싶으면 월북하도록 유도한다. 일흔두 살에 북한으로 넘어간 최덕신 전 외무장관이 비근한 예다.
 
  소위 ‘말발이 세면’ 교육을 시켜 내보낸다. 여행을 안내하기 위해 동행하는 기사는 보위부 소속이고 안내원은 통일전선부 소속이다. 이들은 여행 전에 미리 매순간 어떤 얘기를 할 건지 연습하고, 여행 중에는 매일 밤 여행자의 동향과 행적을 보고한다. 개조할 수 있는 대상인지 분석한다. 중요한 것은 세뇌됐다는 걸 본인이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탈북자 이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히 주체사상 자체만 놓고 보면 별달리 나쁠 게 없습니다. 사상이 현실로 실현될 수 없어서 그렇지, 듣는 것 자체로는 이상한 얘기가 아니에요. 정해진 구역만 돌면서 반복해서 듣다 보면 나중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슬슬 바뀌게 됩니다. 북한의 세뇌교육은 한국보다 월등해요. 본인이 세뇌됐다는 걸 몰라요.
 
  신은미 같은 사람한테는 간첩 임무 안 줍니다. 간첩 임무 주면 ‘내가 간첩인 줄 아냐’라며 오히려 반발하거든요. 서서히 세뇌교육을 시킵니다. 시키지 않아도 선전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죠. 신은미는 지금도 자신이 북한체제를 자발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을 겁니다.”
 
 
  재미교포들의 ‘수양딸’
 
지난해 12월 탈북 여성 송지영(왼쪽)·이순실씨는 신은미와 황선에게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신씨는 “안내원이 자신 앞에서 거리낄 것 없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서 놀랐다”나 “내가 상상했던 북한 사람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는 말을 자주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런 ‘연애’ 얘기 또한 고도로 계산된 대화 소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신씨가 방북기 전체에 감동스러운 어투로 묘사한 ‘길 위의 북한 인민’의 실체는 무엇일까. 평양, 원산, 남포 등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구역의 인민들은 평소 ‘외국인이 보일 때의 행동요령’을 훈련받는다고 한다. ‘외국인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라’라고 알려주는 교본도 있다고 한다.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재미교포들의 방북 경험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수양딸’을 삼는다는 대목이다. 신씨는 안내원 두 명을 수양딸 삼고, 한 명은 조카로 삼았다고 말했다. 2010년 평양을 방문한 예정웅이라는 재미교포는 《자주민보》에 게재한 방북기에 ‘호텔에서 일하는 오향미라는 여성을 막내딸로 삼았다’고 썼다.
 
  공통적으로 일단 북에서 만난 사람과 부모자식이든 이모, 조카든 가족 관계를 맺고, 집으로 돌아가 구구절절이 북한이 그립다는 요지의 여행기를 쓰는 셈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이들이 처음 북한 땅을 밟는 시점이 하나같이 ‘10월’이나 ‘4월’이라는 점이다. 신씨가 북한을 처음 들어간 건 2011년 10월이었다. 그 다음 방문은 2012년 4월이었다. 지난 2012년 《평양의 여름휴가(내가 본 북조선)》를 펴낸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가 평양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8년 10월이었다. 세 번째 방문은 2010년 4월이었다. 유미리 또한 ‘북한이 진정한 고향으로 느껴졌다’며 북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구구이 표현했다.
 
  10월은 어떤 달일까. 흔히 ‘쌍십절’이라고 불리는 큰 명절,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이 있는 달이다. 4월은 어떨까. 일단 태양절, 즉 김일성의 생일(4월 15일)이 있다. 조선인민군 창건절(4월 25일)도 4월이다.
 
  이들이 북한을 처음 찾았을 때는 1년 중 물자가 가장 풍성하고 전역에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시점이었다는 얘기다.
 
 
  북한은 거대한 테마파크
 
  메라비언(Mehrabian)의 법칙이라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 의사소통 실험을 해 보니 상대방에 대한 판단에 ‘시각 이미지’가 가장 큰 기여를 한다는 내용이다. ‘언어’가 미치는 영향은 7%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북한 사람들과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인이 의외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방북기를 남기기도 한다.
 
  리투아니아의 인기가수 안드리우스 마몬토바스는 지난 2008년 10월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찍어 온 영상을 바탕으로 리투아니아에서는 북한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 국가였다. 같은해 북한과 수교했다.
 
  마몬토바스의 방북기 중 한 대목이다.
 
  〈영화를 찍고 있다는 촬영장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촬영감독과 배우들 사이사이로 구경꾼들이 분주하게 지나다녀도,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상황. 실제로 영화가 촬영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촬영을 흉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 모인 배우와 스태프들은 마치 영화가 어떻게 촬영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재현 작업을 하는 것 같았고, 그 스튜디오에서는 더 이상 영화가 촬영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마몬토바스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북한은 나라 전체가 거대한 테마파크 같다.” 신씨 부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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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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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2-15) 찬성 : 32   반대 : 28
물론 그 음식들도 여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있는 음식점들에서 제공된 음식들에 비한다면 넉넉한편인 아니지!!!! 나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이트에서 중국인이 북한에 다녀왔을때 찍어온 음식사진들 자주봤어!!!! 중국인들에게 제공된 평양의 관광식당들의 음식들 정말 특별할것도 없는 음식들이야!!!! 오히려 여기 대한민국의 음식점들에 비한다면 맛도없고 열악한거 몰랐지 그러고싶으면 기사쓰지말고 직접 북한여행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진들을 보시든가
  박혜연    (2018-01-23) 찬성 : 23   반대 : 6
신은미가 들렸던 평양의 모습 신은미의 페이스북에서 자세히봤겠지만 거기도 햄버거집있고 스파게티집도 있고 오뎅집도 있고 빵집도 있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과거에 비한다면 내부도 화려해진거 인정하지 김일성시대만해도 수도 평양에서조차 옥류관이나 천석식당 옥류자장면집등 몇안되는 국영고급식당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다고 평양출신 탈북자들이 증언했지!!!! 그러다가 김정일이 본격적으로 집권하면서부터 식당수가 늘어났다고함!!!!
  박혜연    (2018-01-05) 찬성 : 0   반대 : 1
애국우파찌라시인 월간좇선입장에서야 신은미나 노길남만 저랬냐 ㅡㅡ 데니스 로드먼이나 외국인 유명인들중에서 한번 북한갔다와서 완전 친북인사가 된 경우가 적지않은뎅!!!! 물론 다른독재국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ㅡㅡ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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