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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쟁점

유관순은 북한 교과서에도 나온다

글 : 이종철  스토리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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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과서뿐 아니라 중학교 교과서 9종 중 5종만 유관순 언급
⊙ ‘유관순은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지만 고등중학교 6학년 《조선력사》에 나와
⊙ 대한민국 역사학계, 근거 없이 유관순을 ‘친일파가 소환한 인물’로 폄하

李鍾喆
⊙ 42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 과정 수료.
⊙ 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현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 대표.
⊙ 저서: 《진보에서 진보하라》 《나의 고백》 《파란만장 코리아 오매불망 대한민국》 등.
중학교 《역사》 교과서 9종 중 4종은 유관순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11월11일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3·1운동 단원에서 유관순 열사를 서술하지 않은 금성출판사·두산동아·미래엔·천재교육 등 4종 출판사가 지난달 유관순 열사 내용을 넣겠다고 수정·보완을 신청해 와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고교 한국사교과서에서 유관순이 빠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인 지 3개월 여 만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유관순이 사라진 것은 고교 교과서만이 아니다.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도 유관순은 홀대받고 있다.
 
  올해부터 학교 일선에 풀린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금성·두산동아·미래엔·천재교육)이 유관순 열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이 논란이 되자 해당 교과서 필자들은 “초·중학교 때 배워서 고교 교과서엔 넣지 않았다”, “교과서 분량은 제한적인데 어떻게 모든 인물을 담나”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조선일보》 2014년 9월 3일자, “유관순 열사 빠지고 대신 들어간 강주룡은 누구?” 인용)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유관순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더구나 중학교 역시도 고등학교와 거의 같은 분량으로 3·1운동을 다루고 있다면 그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 K가 중학교 역사 교과서 9종을 분석한 결과 총 4종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언급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중학교 교과서의 유관순 記述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유관순 관련 기술. 《지학사》 교과서(위쪽)는 유관순에 대해 3·1운동 항목과 함께 설명하고 있는 반면, 《천재교육》은 3·1운동 항목과 분리해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다루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는 《한국사 교과서》 한 권으로 한국사를 배우고 있지만 중학교는 《역사1·2》 라는 이름으로 한국사를 배우고 있다. 중학교 《역사2》는 186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를 취급하고 있다. 일제시대와 3·1운동 역시 여기서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약 3쪽에 걸쳐 3·1운동을 다루고 있다. 중학교 《역사2》 교과서 역시 2~4쪽 분량으로 취급하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천재교육 등 4종이 3·1운동을 서술하면서 유관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는 교학사, 금성, 비상교육, 천재교과서 등 4종이 유관순을 다루지 않고 있으며 두산동아, 미래엔, 지학사, 좋은책신사고, 천재교육 등 5종은 유관순을 언급하고 있었다.
 
  천재교육의 경우는 ‘인물로 보는 역사-4인의 여성독립운동가’라는 코너를 통해 윤희순, 유관순, 남자현, 이화림 의사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3·1운동 서술 단락에서 10여 쪽 떨어져 있고 장과 장 사이에 들어가 있어 한계가 있다. 3·1운동은 51쪽인데 이 코너는 68쪽에 있다. 3·1운동의 본문이나 자료에서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이런 부분은 수업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상 수업이나 시험에서 빼고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중학교 교과서의 채택률에 비추어 보면 60%에 가까운 학생들이 유관순을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교과서에 비해 채택률이 월등히 높은 3종(비상교육, 미래엔, 천재교육) 중 2종이 여기에 들어간다.
 
 
  유관순을 폄하한 사람들
 
  <8월 26일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의 개선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참석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 낸 영웅이라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기에 기술하지 않은 것”이라며 “친일 전력의 신봉조·박인덕이 해방 후 유관순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가 언급한 연구 성과란 2009년 정상우 서울대 국사학과 시간강사가 계간지 《역사와 현실》에 실은 논문 ‘3·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이라는 논문이다.> (이상 《조선일보》 기사 인용)>
 
  정상우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하나는 논문의 동기가 된, 북한에서 유관순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문제의식이 매우 부실하거나 근거가 없는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친일파가 자신의 면죄부를 위해 ‘소환’한 인물이라는 논거가 매우 취약하고 엉성한 인과관계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정상우씨의 논문은 2009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정상우 논문의 골간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유관순을 통해 3·1운동을 떠올리는 것은 남한만의 현상이고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 낸 인물, 즉 친일파가 자신의 ‘친일’에 대한 면죄부를 위해 유관순을 발굴하고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에 기초한 설득력 있는 논제인가? 정상우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한다.
 
  <북한에서는 3·1운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이한 상(像)을 가지고 있으며, 유관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한다. 즉 유관순을 통해 3·1운동을 떠올리고, 일제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한민족의 저항정신을 떠올리는 것은 남한만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관순을 부각한 것은 어떤 이들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남한만의 유관순이라면 그녀가 부각되어 강조된 시점은 분단을 낳게 되는 이념갈등이 표면화된 시점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정상우, “3·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 《역사와 현실》, 2009, p. 236.)
 
  정상우씨는 위 언급 중 “북한에서는 3·1운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이한 상을 가지고 있으며, 유관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한다”라고 하면서 각주로 임경석의 논문 <3·1운동을 보는 남과 북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즉 임경석의 논문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경석의 논문을 검토해 보았더니, 그의 논문에서는 유관순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논문 인용
 
  <《조선전사》가 제시한 3·1운동사 인식은 주체사상의 명제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북한의 역사가들은 3·1운동사 서술을 통해 ‘수령’의 등장이 민족해방운동 발전의 필연적 요구였음을 입증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남한 독자층에게는 이러한 3·1운동사 인식이 생소할 것이다. ‘민족대표, 파고다공원, 기미독립선언서, 유관순 누나’ 등과 같은 표상을 통해 3·1운동을 이해해 온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조선전사》의 집필자가 사실을 옳게 판단하고 그 인과적 연관을 바르게 설정했는지 궁금할 것이다.”(임경석, <3·1운동을 보는 남과 북의 시각>, 《통일시론》, 1999, p. 190.)
 
  과연 위와 같은 언급을 참조함으로써 ‘북한에서는 3·1운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이한 상을 가지고 있으며, 유관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한다’는 결론에 쉽게 이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임경석의 논문 어디에도 위와 같은 언급 외에 유관순이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내용은 없다.
 
  정상우는 3·1운동에 대한 남과 북의 상이한 상에 대한 점보다는 유관순이 남한만의 현상이라는 데서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으로 자기 논문의 출발을 삼고 있으며 그에 따라 결론적으로 유관순은 남한에서 친일파가 만들어 낸 인물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 언급하듯이 유관순이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근거있게 제시함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사전 연구가 거의 혹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선력사》를 보니…
 
북한 고등중학교 6학년 《조선력사》에서도 유관순의 독립운동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임경석의 논문은 북한의 역사서 《조선전사》에서 기술되고 있는바, ‘3·1운동은 서울보다 평양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내용, 3·1운동의 지도자로서 김형직(김일성의 아버지)이 언급되고 있는 내용 등을 흥미롭게 검증하고 있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남과 북 그리고 한국 안에서 3·1운동에 대한 상이한 접근과 시각이 존재함을 드러내고 재일 한국인 사학자 박경식의 역사 인식을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논문에서 유관순에 대한 언급은 위와 같이 단 한 번뿐이거니와, 북한에서 유관순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거나 그와 유사한 언급은 아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우가 임경석의 논문을 근거로 하여 피력하고 있는, 북한에서 ‘유관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한다’는 내용은 도대체 어디서 얻어 낸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북한의 교과서를 직접 살펴봄으로써 유관순이 북한의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지 알아보았다. 만약 북한의 교과서에서도 유관순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면 모르겠으나, 북한 교과서가 언급하고 있다면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정상우의 논제는 그 근거가 매우 크게 흔들리는 것이며 심지어는 거짓에 가까운 것이라 할 만한 것이다.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북한의 학제는 고등중학교 6학년 과정이다. 북한의 고등중학교 역사 교재는 《조선력사》이다. 《조선력사》의 6학년 교과서를 보면 3·1운동이 ‘제3절 3.1인민봉기’라는 제목으로 약 4쪽에 걸쳐 서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북한의 《조선력사》가 이 절에서 유관순에 대해서도 한 단락 언급하고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반일봉기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일제경찰에게 체포된 16살의 녀학생인 류관순은 재판정에서도 재판의 부당성을 견결히 단죄하였으며 감옥안에서도 굴함없이 싸우다가 희생되였다.(리인형, 《조선력사6》,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1, p. 24.)>
 
  정상우 논문의 또 하나 문제점은, 친일파가 ‘친일’ 과거에 대한 면죄부를 위해 유관순을 발굴하고 부각시켰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상우는 자신의 논문의 결론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유관순에 대한 기념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해방 직후 유관순이 발굴된 데에는 박인덕, 신봉조와 같은 ‘이화’ 관련 인사들이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는 이들이 ‘이화’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유관순을 발굴하여 자신들의 ‘친일’ 과거에 대해 면죄부를 받고 새로운 도덕적 권위를 획득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정상우, p. 258.)>
 
 
  유관순은 친일파가 발굴한 인물?
 
  이 같은 내용은 이 논문의 골간이면서 매우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박인덕, 신봉조의 인터뷰를 조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상우는 1978년 10월 7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박인덕과 신봉조가 유관순과 관련 대담한 내용의 일부를 상당 부분 논문에 그대로 싣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친일’하였던 지식인들은 자신의 이러한 과거를 ‘변명’하며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공간에 참여할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했으며, 박인덕과 신봉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이러한 ‘요건’, 즉 자신들의 ‘친일’ 과거를 덮고 새로운 도덕적 권위를 부여해 줄 표상으로서 유관순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박인덕과 신봉조의 인터뷰 인용과 조명이, 박인덕, 신봉조 등이 ‘이화’ 관련 유관순을 부각하게 된 배경으로서는 설명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친일파가 자신의 면죄부를 위해 유관순을 ‘소환’, ‘발굴’, ‘부각’하였다는 논지를 뒷받침하기에는 매우 부족해 보인다. 이는 거의 억지 수준으로, 인과관계가 매우 엉성하고 부실하다고밖에 평가할 수 없을 듯하다.
 
  종합하자면, 정상우의 논문은 문제의식에서부터 대단히 부실한 토대 위에 서 있으며 보다 엄격한 검증을 게을리한 가운데 가히 주관적 가설을 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친일파가 자신의 면죄부와 정치·도덕적 권위를 위해 유관순을 의도적으로 발굴하였다는 대목에서도 실제 설득력 있는 논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인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과연 이런 논문을 ‘연구 성과’라며 기준을 삼아 한국사 교과서에서 결국 유관순을 사라지게 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의아하다.
 
 
  엉성한 논거에 기초한 유관순 지우기
 
  3·1운동에 대한 상이한 접근과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은 3·1운동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학계도 상이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북한은 기본적으로, ‘3·1운동의 한계를 통해 김일성이라는 수령과 혁명당의 영도의 필연성 및 요구성을 설파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아무리 ‘민중적 관점’의 접근이라 하더라도 한국의 학계가 이런 점까지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북한 학계조차도 북한 교과서에 3·1운동 당시 유관순을 영웅적으로 서술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반면 한국의 역사학계 일부는 굳이 ‘친일파가 소환한 인물’이라는 이유를 들며 유관순 지우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한국의 역사학계가 ‘유관순이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한 편의 논문을 ‘연구 성과’로 삼아 한국사 교과서에서 결국 유관순을 사라지게 했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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