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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한국투자공사의 2조원 부실투자 의혹

감사보고서와 투자공사 회의록 곳곳에 의문투성이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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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월 메릴린치 株價에 베팅해 반 토막
⊙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시동 건 흔적… MB 인수위 강만수·최중경도 보고받아
⊙ 2조원 투자를 일주일 만에 결정… 결정적 순간, 사장은 홍콩으로 가족여행
⊙ 거액 손실에도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한국투자공사 20억 달러 투자 이후 메릴린치 주가 추이.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은 지난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MB(이명박)정부 시절 결정된 해외개발사업에 2018년까지 31조원 이상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당의 ‘MB정부 국부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재임기간 동안 해외자원개발에 41조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5조원에 그치고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야당의 문제제기는 MB정부 초기부터 계속되어 왔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2009년 즈음부터 관련 의혹제기가 끝없이 이어져 왔다.
 
  최근 야당이 관련 의혹을 집중 제기하는 것은 이른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의혹을 국정조사로 끌고 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당의 주장에 대해, 11월 11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해외자원 개발이라는 것은 굉장히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며 “자본 회수 기간이 20~50년에 이르는 등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니 좀 더 지켜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해당 사안을 단순 투자 실패가 아닌, ‘MB정부 비리’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특히 한국석유공사의 12조4000억원대 투자사업의 자문을 맡았던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의 아들인 김형찬씨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야당이 끊임없이 MB정부의 해외투자를 문제 삼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투자 과정을 살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묻지 마 투자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의혹을 받는 투자는 메릴린치 20억 달러 투자이다.
 
 
  정권적 차원의 비호 의혹
 
  2008년 1월 한국투자공사(Korea Investment Corporation·이하 KIC)의 메릴린치앤드컴퍼니(Merrill Lynch&Co. Inc. 이하 메릴린치) 20억 달러(약 2조원) 부실 투자는 MB정부 초기부터 현재까지 여의도 국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KIC의 메릴린치 부실 투자는 정권 차원의 외부 입김에 의한 묻지 마 투자 결정이라는 강력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KIC의 메릴린치 20억 달러 투자는 망해가는 회사에 ‘몰빵’한 부실 투자였다”며 “MB정권 차원의 결정 및 비호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MB가 당선자 신분이던 2008년 1월 15일 한국투자공사는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투자는 반 토막 상태이다. 해당 사안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투자공사(KIC)

 
  한국투자공사(Korea Investment Corporation·이하 KIC)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지속적인 흑자로 외환 보유액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보유외환과 연기금(年基金·연금(pension)과 기금(fund)) 등 각종 공기금의 여유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2005년 7월 1일 설립됐다.
 
  2003년 정부는 금융 산업을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동북아 금융허브전략’을 확정했다. KIC는 추진전략에 따라 설립됐다.
 
  KIC는 중·장기 투자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회’를 동시에 운영하는 중층(中層)적 지배구조이다. 이는 자산운용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다. 독립성 보장을 위해 기획재정부 등 행정기관은 운영위원회에 위원을 참석시키는 것 이외에 KIC에 투자 등을 지시하거나 감독할 수 없도록 ‘한국투자공사법’을 통해 보장하고 있다.
 
  운영위원회는 총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은행장, 기획재정부장관, KIC 사장과 2년 임기의 6명의 외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외부 민간위원은 ‘민간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금융 및 투자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사람을 추천해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편 이사회는 사장, 투자운용본부장, 경영관리본부장 3인으로 구성된다.
 
  KIC는 2009년 12월 말 기준으로 한국은행 보유외환에서 170억 달러,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외국환평형기금에서 118.6억 달러 등 총 288.6억 달러를 위탁받아 관리했다. 해외주식, 채권, 대체자산 등에 직접 투자하거나 외부 자산운용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운용하는 형태이다.
 
  2009년 12월 말 기준으로 KIC는 위탁자산 288.6억 달러를 통해 296억 달러의 순자산가치를 실현했다(돈을 불렸다). 즉 투자원금 대비 7.4억 달러의 이익(누적 수익률 4.79%)을 냈다.
 
 
  MB 인수위 강만수·최중경, KIC 투자 보고받아
 
  특히 KIC의 메릴린치 20억 달러 투자 결정 과정에서, 2008년 1월 12일 홍석주 KIC 사장, 조인강 재정경제부 심의관, 국경호 KIC 차장, 홍재문 재정경제부 금융허브 과장 등이 강만수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와 최중경 전문위원에게 투자계획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강만수 간사는 후에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최중경 전문위원은 기재부 1차관을 역임했다.
 
  강만수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언론의 의혹 보도를 부인하고 있다. 최근 KBS의 의혹 보도 당시 그는 “내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어요. 구체적인 보고 안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 우리 방에 와서 보고한 거는 맞고…”라고 했다.
 
  KIC 메릴린치 20억 달러 투자 논란이 아직까지 계속되는 것은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기자는 2010년 8월 감사원이 작성한 ‘한국투자공사 해외투자실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와 2008년 1월 투자를 결정할 당시의 ‘KIC 운영위원회 회의록’ 등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추적했다.
 
 
  전광석화 같은 투자 결정
 
한국투자공사 홈페이지 사진. 공사 홈페이지 캡처.
  2008년 1월 7일 KIC는 메릴린치로부터 공식 투자요청을 받는다. KIC는 1월 14일 공사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1월 15일 메릴린치와 20억 달러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불과 7일 만에, 2조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과연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2008년 1월 15일 환율기준으로 1조9000억원에 달했던 메릴린치 투자계약을 살펴보아야 한다.
 
  20억 달러는 메릴린치 의무전환 우선주에 투자되었다. 주식투자자문회사 더퍼블릭인베스트먼트 김현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투자의 경우 고정적인 배당이 나오는 등 안정적인 투자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짧은 기간 후 보통주로 전환되어 결국 투자수익과 위험이 투자기간 중 보통주 주가(株價)에 종속(從屬)된다.
 
  간단히 설명해, 메릴린치 주식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보고, 주가가 떨어지면 손해를 보는 계약이다. 결국 메릴린치 주가에 따라, KIC 투자의 성패(成敗)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20억 달러 투자 직후 메릴린치 주가는 어떻게 되었는가. 2008년 1월 50달러를 넘나들던 메릴린치 주가는 급격하게 폭락하기 시작해, 2008년 12월 10달러까지 떨어졌다. 즉 1/4로 쪼그라든 것이다.
 
  주가가 급격히 하락한 이유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미국 5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는 파산했다. 그해 7월 모기지 대출업체 인디맥 은행 역시 파산했다. 결국 9월 미국 4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역시 파산했다. 이러한 금융위기로, 9월 15일 메릴린치는 BOA(Bank of America)에 인수 결정됐다.
 
  KIC는 아직도 손실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3월 기준으로 8억1600만 달러(투자원금의 40.8%) 손실을 기록했다.
 
 
  KIC 사장 ‘비공식 TF팀’ 구성
 
  물론, 단순히 투자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투자가 이뤄졌다면, 비록 손실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건 충분히 감당해야 할 리스크(위험)일 것이다. 감사원 보고서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당시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2007년 11월 20일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인 2007년 11월 20일 KIC 홍석주 사장은 공사 임직원 5명(본부장 2명, 차장 2명, 과장 1명)을 사장실로 불러들였다. 그는 사모(私募)펀드로부터 받은 투자제안서를 보여주며 대체자산에 대한 투자타당성을 검토해 볼 것을 지시했다. 당시 사장으로부터 투자검토 지시를 받은 5명은 사건이 논란된 이후 ‘비공식 TF팀’이라 불린다.
 
  대체자산(Alternative asset)이란 통상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금융자산 이외의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벤처캐피털, 원자재투자펀드 등 모든 투자자산을 의미한다.
 
  11월 29일
 
  재정경제부(2008년 기획재정부로 변경)는 KIC 위탁자산의 운용 대상을 대체자산까지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제3차 금융허브추진위원회는 KIC가 외국환평형기금(外國換平衡基金·정부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위해 보유·운용하는 자금)에서 위탁받아 운용 중인 30억 달러의 운용 대상을 사모펀드, 부동산 등에까지 확대하고, 2008년 하반기에 외국환평형기금에서 100억 달러를 추가 위탁하기로 결정했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투자자금이 마련되고, 투자를 위한 제도적 근거까지 갖춰졌다.
 
  12월 18일
 
  KIC는 대체투자 TF팀을 만들어 공식 인사 발령했다. ‘공식 TF팀’이다.
 
  12월 19일
 
  KIC가 먼저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투자의향을 전달했다. ‘비공식 TF팀’ 구성 1달 후, ‘공식 TF팀’ 구성 하루 만에 결정한 것이다. KIC는 12월 19일 메릴린치 CFO(최고 재무책임자)에게 KIC가 메릴린치에 투자할 의향이 있음을 ‘이메일’로 전달했다.
 
  이미 12월 중순경 비공식 TF팀은 사장이 지시했던 투자계획에 대해 ‘투자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분석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럼에도 사장은 비공식 TF팀 차장에게 미국투자은행에 접촉해 투자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2007년 말 메릴린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KIC는 세계적 금융위기 상황으로 휘청대던 메릴린치의 구원투수로 자발적으로 등판(登板)한 것이다.
 
 
  메릴린치, “일주일 내에 결정해 달라”
 
  2008년 1월 7일
 
  메릴린치는 부실자산 상각(償却)에 따른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며, KIC에 10억~40억 달러의 지분 투자를 공식 요청했다. 2007년 12월 19일 KIC가 보낸 이메일에 대한 답변이었다.
 
  메릴린치는 시한까지 못 박았다. 2007년 4분기 실적발표 일정 등을 이유로 1월 14일까지 투자를 요청했다. 일주일 안에 투자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사장은 그날 즉시 비공식 TF팀에 메릴린치 투자를 검토해 볼 것을 지시했다. 나아가 다른 부서 및 외부에 투자검토 사실을 비밀로 할 것을 지시했다.
 
  1월 8일
 
  KIC와 메릴린치는 화상회의를 통해 투자조건 및 투자환경 등에 대해 논의하고, 비밀 준수협정서를 교환했다. 또 투자를 위한 회계법인과 외부자문사를 선정했다.
 
  결정적인 순간 사장은 어이없는 행동을 했다. 수조원의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 사장은 이날 1박 2일간 홍콩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것이다.
 
  1월 9일
 
  홍콩에서 휴가 중인 사장은 이날 오전 비공식 TF팀과 전화회의를 통해 메릴린치 투자를 추진할 것을 결정했다. 나아가 자문사 선정과 현지실사를 함께 지시했다. 사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바로 당일 본부장은 미국회계법인 직원과 함께 현장실사를 위해 메릴린치 뉴욕 본사로 출국했다.
 
  1월 10일
 
  휴가에서 돌아온 사장은 재정경제부와 메릴린치 투자 건을 협의했다. 사장은 재정경제부를 방문하여 투자계획을 금융정책심의관, 차관보, 장관에게 차례로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재정경제부는 메릴린치 투자를 적극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1월 11일
 
  KIC는 투자 승인을 위한 운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운영위원회는 메릴린치에 30억 달러 규모의 투자의향서를 전달하기로 결정하고 메릴린치 현지실사 실시를 승인하면서, 공사 경영진에게 투자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모기지론으로 주택을 구입한 뒤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해 살던 집에서 내몰리는 일들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스탁턴시(市)의 2층 주택 앞에 걸린 ‘For Sale(팝니다)’ 간판.
  미국 주택시장에서는 2001년 이후 저금리와 모기지 유통시장 발달 등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대출이 크게 늘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말한다. 그러던 중 2006년 주택 경기둔화, 금리상승 등으로 은행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연체율과 주택압류 건수가 급증했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이 동 대출을 기초로 한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주택금융기관이 주택자금을 대출하고 만기 전에 자본시장에서 대출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주택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 및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주택저당증권, 대출 채권 등 여러 종류의 기초자산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발행되는 파생금융상품) 발행기관과 이에 투자한 헤지펀드, 투자은행, 보험회사 등의 부실화로 연결됨에 따라 2007년 10월부터 미국 대형 금융기관들의 투자손실 규모가 확대됐다. 그 결과 실물경기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미국 금융기관들은 부채담보부증권 등 서브프라임 관련 부실자산의 대규모 상각에 따른 자본 확충 필요성으로 중동과 아시아로부터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흐름
 
  *2007년 2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우려 대두 →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14%대로 상승, 모기지 업체의 파산 증가
 
  *2007년 6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본격화 → 베어스턴스 소속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손실로 파산위기에 직면
 
  *2007년 8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글로벌 신용시장 불안으로 확산 → 프랑스 최대 은행 펀드환매 중단 조치
 
  *2007년 10월 대형 금융기관들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관련 실적부진 결과 발표
 
  *2007년 11월 서브프라임 부실이 모기지 관련 채권 보증기관으로 확산
 
  *2007년 12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글로벌 신용시장 불안으로 확산 → 고용 및 소비 관련 지표 악화로 미국 경기침체 우려 확산
 
  토요일 소집 회의에서 반대의견 봇물
 
  1월 12일
 
  KIC 사장은 투자계획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투자회의를 소집한 사장은 리스크관리팀에 투자계획을 최초로 통보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오전에 급히 소집된 관계로 대부분의 부서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사장, 비공식 TF팀 4명, 준법감시인 등 총 10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반대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감사원 보고서에 나타난 팀장·부장의 당시 주요 발언은 이렇다.
 
  “향후 미국 부동산 시장의 상황에 따라 부실자산 규모 및 이에 따른 상각 규모가 크게 늘어날 수 있으며, 특히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될 경우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투자검토 시간이 촉박하므로 투자를 결정하더라도 메릴린치의 시급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이끄는 것이 필요합니다.”
 
  “투자프로세스의 미비, 분석기간의 불충분, 의사결정시한 촉박(促迫) 등을 사유로 반대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투자기회가 많을 것으로 판단되는바 메릴린치 투자는 철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투자회사는 프로세스를 무시할 때 결과적으로 실적이 좋아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1월 14일
 
  투자를 막기 위한 회사 내부의 저항이 있었다. 휴일이 끝난 이날, 즉 월요일에 리스크관리팀장은 사장을 비롯한 부서장에게 이메일을 통해, 투자프로세스 미비 및 위험분석 미흡 등을 사유로 투자를 재차 만류했다. 감사원 보고서에 나타난 이메일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사장이 지시한 대로 당장 대체투자 프로세스를 만들고 모든 프로세스를 거치는 형식 요건을 맞추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위탁계약과 공사의 투자정책 및 목적에 맞춰 자산을 배분하고 각각의 자산군 내에서 다양한 투자기회를 발굴하여 예상수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적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사전적으로 리스크관리팀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리스크 분석에도 더 많은 정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리스크팀장의 적극적인 주장에도 바로 다음날(15일) 투자약정서 서명이 이뤄졌다.
 
 
  운영위원회 역시 반대의견 다수
 
  이렇듯 당시 사장은 조직 구성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관철시켰다. KIC는 투자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를 목적으로 중층적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장 주도의 이사회가 마음대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투자 전에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즉 투자를 위해서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들은 해당 투자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아가 어떻게 해당 안건은 위원회를 통과했을까. 운영위원회에서도 투자를 반대하는 의견이 계속 나왔다. 당시 위원회 속기록의 내용은 이렇다.
 
  *제29차 운영위원회(2008년 1월 11일)
 
  -김응조 위원
 
  “우리가 100억 달러에 대한 투자정책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중에 30%에 있는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점에 대해서 상당한 의문이 있습니다.”
 
  -이용신 위원(한국은행 총재 대리인)
 
  “이번 메릴린치가 제시한 안은 이것이 과거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씨티나 다른 은행에서 했던 안보다는 조금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불리하다면 불리할 수 있는 조건인 것 같습니다.”
 
  *제30차 운영위원회(2008년 1월 14~15일)
 
  -신성환 위원
 
  “그런 맥락에서 투자의 구실을 찾는다고 하면 마지막으로 찾을 수 있는 게 Strategy Value(전략적 가치)가 뭐냐인데,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광주 위원(한국은행 총재 대리인)
 
  “리세션(경기침체) 시작 가능성 이것이 좀 걱정스럽습니다.”
 
  -김응조 위원
 
  “대체투자와 관련된 절차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절차 자체가 없고…”
 
  이렇듯 비판적인 의견이 봇물처럼 계속되었지만, 결국 운영위원회는 투자를 심의·의결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새로운 의혹이 공개됐다.
 
 
  “15분 停會 이후 분위기 급반전”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
  당시 운영위원회 회의와 관련해 박범계 의원은 “메릴린치 투자에 신중하거나 부정적이었던 운영위원회 기류가 인수위 보고 이후, 특히 ‘15분간의 정회’ 이후에 급변했다”며 “메릴린치 부실투자는 단순히 KIC 운영위원회 단위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인수위원회와 재경부 혹은 그 이상이 작용된 결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이 제기한 ‘15분간의 정회’ 의혹은 운영위원회 위원들의 KIC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 계속되자, 위원 중 한 명이었던 조○○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이 “10분 정도 간담회를 한 후에 계속하자”고 정회를 요청한 것을 말한다. 15분간 휴식 이후 회의가 속개(續開)되었는데,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당시 속개 직후 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은 이렇다.
 
  “저희가 정회할 때 여러 위원님의 의견과 소위원회의 의견 그리고 재경부와 한은(한국은행)의 의견을 들은 결과 결국 우리가 전략적인 투자의 가치는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간담회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고…”
 
  당시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20억 달러 투자에서 소위 ‘전략적 가치’가 작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사실 KIC는 메릴린치 투자를 당시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정책에 부합하는 전략적 투자로 정의하면서 메릴린치와 전략적 협력 방안을 협상했다. 수익률이 아닌 금융선진화를 위한 정보교환, 인력 교류·교육 등을 추진한다는 복안(腹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KIC가 메릴린치와의 투자협상에서 ‘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은 맞다. 당시 주요 협의 내용은 공동투자기회 모색, 글로벌 네트워킹 등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메릴린치는 다른 투자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추상적인 전략적 협력 방안은 투자계약서의 의무조항으로 포함할 수 없다면서 계약 이후에 메릴린치 사장(CEO) 명의의 부속서신(Side Letter)으로 향후 KIC에 보내주기로 제안하는 것에 그쳤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KIC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로 도약하는 계기 및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며 운영위원회에 투자 심의·의결을 요청했다.
 
  여기서 운영위원들이 ‘전략적 협력’이 현실 가능한 것으로 믿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회의적인 의견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전략적 협력’과 관련해 감사원 보고서에 나타난 주요 발언은 이렇다.
 
  “투자 사이즈가 크려면 전략적 가치가 상당히 많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그쪽(메릴린치)에서 온 사이드 레터 내용을 보면 특별히 우리가 이걸 통해서 굉장히 혜택이 별로 (없고), 이게 결국은 특별히 (전략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분야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입니다.”(A위원)
 
  “다른 국부펀드는 재무적 관점에서 투자를 했는데, 그 얘기는 역으로 돌리면 전략적 가치라고 찾을 만한 게 별로(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있겠느냐는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에 의존해서 투자를 결정하기는 어렵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가 있겠느냐고 하면 가시적인 효과가 오늘까지도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B위원)
 
  “이게 아무리 전략적인 투자로서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 전략적이라고 하는 게 우리의 주관적인 것이지, 그쪽에서 우리를 전략적인 투자자로 대우해 주는 그런 대우를 받는 투자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C위원)
 
 
  재경부 심의관의 이상한 행보
 
  위험한 투자를 감독해야 하는 정부의 태도 역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감사원 보고서에 나타난 당시 재경부 심의관의 태도는 이러했다.
 
  “재경부 심의관은 KIC가 대규모 지분 투자와 같은 대체투자 경험, 투자 절차 및 기준 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KIC가 짧은 협상기간 동안 투자분석을 충분히 할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지 아니한 채 메릴린치 지분 투자가 당시 추진했던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에 기여한다고 판단하여 공사가 운영위원회에 상정할 보고서에 이번 투자에 정책적 판단이 많이 개입되었음을 반영하라고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도록 하였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는 의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렇듯 운영위원회 위원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재경부 측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20억 달러 투자는 성사됐다.
 
  당시 KIC는 2~3년 후 메릴린치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근거로 투자수익률이 연 14.2%이고 원금손실 가능성도 낮을 것이라는 ‘전략적 직접투자 승인(안)’을 만들어서 운영위원회에 상정해 관철시켰다.
 
  투자수익률 예측은 연 14.2%였지만, 현실은 메릴린치가 2008년도 지속적인 부실자산 상각으로 재무상황이 악화되어 주가가 끝없이 폭락하면서 2010년 3월 기준으로 투자원금의 40.8%가 공중으로 날아간 반 토막 투자였다.
 
 
  처벌받은 사람, 아무도 없어
 
  그렇다면 조 단위로 국가의 돈을 날려버린 책임자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감사원은 감사를 마치면서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감사원은 KIC 홍석주 사장에 대해 “사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검토하는 등 손실 보전 방안을 강구하라”고 ‘통보’하는 데 그쳤다. 법적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사자 홍 사장의 해명은 무엇인가.
 
  200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홍 사장은 관련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국회 회의록을 보면 우선 일주일 만에 투자가 결정된 배경에 대해 홍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투자들은 시간이 많이 촉박하게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것이 좋은 기회여서 투자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의사결정을 하고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해서 투자를 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 시간 내에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투자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한 배경을 묻는 추궁에는 이렇게 해명했다.
 
  “투자라는 것은 항상 시장이 아주 좋을 때 투자하는 것보다는 시장 상황이 나쁘면서 개선의 가능성이 있을 때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요. 그 당시로서는 대형 투자은행들이 부실이 많았던 것이 2007년 3월부터 지적이 되었어요. 그다음에 상각을 많이 실시했고요. 저희의 경우 그러면 그 부실자산에 대한 과감한 상각을 했느냐 또 그다음에 과감한 상각을 하고 난 뒤에 남은 사업부에서 충분한 수익이 창출될 수 있겠느냐 하는 그런 것을 검토를 해서 투자를 한 것이고, 또 저희가 그때 판단할 때 앞으로 한 몇 개월 동안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직접투자를 하기보다는 2년9개월 동안에 우리가 배당금을 받는 그런 투자를 하고 2년9개월 이후에 주식으로 전환해서 자본이득을 노리는 그러한 투자를 하자고 해서 향후에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그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충분히 한 것이지요.”
 
  한편 적극적으로 KIC 투자를 관철시킨 것으로 의심받는 재경부 심의관은 징계사유의 시효가 이미 완성됐다는 이유로, 소속기관에 비위내용을 통보하는 것으로 감사원 징계가 마무리됐다.
 
 
  미국압력설·정치자금설 등 무수한 뒷말
 
  누가 보아도 이상한 투자이기에, 금융계에서는 해당 투자와 관련한 무수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우선 ‘미국압력설’이다. 2007년 미국이 금융위기에 처하자, 여러 우방국에 투자를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이 미국 금융기관에 투자했고, 한국 역시 미국 측의 압력에 의해 20억 달러를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했다는 설명이 골자다.
 
  ‘정치자금설’도 떠돈다. 투자에 ‘리베이트’가 있었고 이 중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주장이다. 메릴린치 20억 달러 투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구안 옹(Guan Ong) 당시 KIC 투자운용본부장은 2009년 KIC를 퇴사하고 싱가포르에 브림(BRIM)이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차렸다. 문제는 MB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지형씨가 해당 회사에 마케팅 담당 이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 커질 기세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투자공사가 이 투자를 검토했다는 점은 이 설의 치명적 약점이다.
 
  수년 전부터 의혹은 계속되어 왔고, 일련의 의혹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관계자들은 침묵하거나 의혹을 부인했다. 현실적으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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