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재단은 지난 7월 7일부터 열흘간 베트남의 옌바이성 짬따우현 산간오지 마을 5곳에 ‘희망공부방’ 건립 봉사활동을 펼쳤다. 공부방 준공식에서 자원봉사단 대학생들이 임무완수를 기뻐하고 있다.
지난 7월 7일부터 열흘간 베트남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특별한’ 봉사활동을 했다. 올해로 출범 10년을 맞은 농협재단이 농업인 자녀들로 구성한 대학생 봉사단 20명을 베트남 산간오지 마을에 파견해 ‘공부방’을 지어 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 것이다.
이 행사는 농협재단이 베트남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농촌 출신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 기회와 글로벌 리더십을 길러 줄 목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20명의 봉사단원은 모두 농협재단의 대학 장학생들이다.
이들이 봉사활동을 펼친 곳은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서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옌바이성 짬따우현의 산간 오지마을. 농협재단은 이곳 산간 마을 5곳에 ‘희망공부방’을 지어 줬다. 모두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공부방이 마련되기 전에는 이들은 산 아래 마을의 학교까지 통학을 해야 했다.
7월 2일 최원병 농협재단 이사장과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4 농협재단 농업인 자녀 대학생 해외봉사활동’ 출정식이 열렸다. 7월 7일 출국 당일. 이들 봉사단이 가지고 나갈 물품은 500kg에 달했다. 250명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스케치북, 색종이, 사인펜, 색연필, 축구공, 슬리퍼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밤 10시, 봉사단 일행이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하노이방송국 관계자와 현지 대학생 5명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의 KBS 격인 하노이방송은 이번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봉사활동 전 과정을 취재하겠다고 했다.
7월 8일, 하노이에서 1박을 한 대학생 봉사자들은 아침 9시 반, 봉사활동 목적지인 옌바이성 짬따우현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서너 시간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베트남에서는 버스로 꼬박 9시간이 걸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락논 지대
버스가 하노이를 벗어나자 베트남 북부 산간지역의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졌다. 산세(山勢)가 그렇게 험하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들판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소로 써레질을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나라 1970년대 농촌 풍경이다. 평지가 아닌 산비탈에 계단식 다락논을 만들어 벼를 심거나 경사지엔 녹차 혹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었다.
봉사 예정지인 짬따우현은 중국 국경지대와 가까운 곳이다.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중국 국경에 가까운 고산지대로 들어설수록 평지는 보기 어렵고, 계단식 다락논이 눈에 들어온다.
굽이굽이 도로를 돌 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락논의 모습이 장관이다. 논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모두 깎아 다락논을 만들었고, 그 외 산비탈의 작은 땅도 놀리지 않고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고산지대로 들어설수록 길가의 농가(農家)들은 콘크리트 블록 주택보다는 나무로 지어진 전통 초가 형태의 집들이 주를 이루었다.
드문드문 길에서 마주치는 고산지대 주민들은 키가 작고, 두건과 치마에 여러 가지 색을 넣은 특유의 전통복장을 하고 있었다. 함께한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이들 소수민족의 이름을 물어보니 ‘몽족’이나 ‘타이족’이라고 할 뿐 정확한 구분은 하지 못했다.
현재 베트남 국민은 비엣족(viet)이 90%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 북부와 중부, 남부 등지의 고산(高山)이나 고립된 지역에 몽족, 타이족, 고산족, 크메르족 등 54개 소수민족이 있다. 짬따우현은 몽족 등 소수민족이 9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9시간의 덜컹거리는 버스여행은 오후 6시에 끝이 나고, 대학생 봉사단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행은 짬따우현 인민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인구 약 3만명의 짬따우현은 69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위원회가 있는 현 중심지는 우리의 읍소재지 정도의 크기로, 마치 강원도 어느 깊은 산간마을에 와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봉사지역은 해발 1500m의 산간마을
다음 날인 7월 9일,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봉사단은 ‘사호마을’과 ‘반무마을’ 등 2곳으로 갔다. 이 두 마을은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에서 20분 정도 버스로 이동 후,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20~30분 동안 산길을 올라야 하는 해발 1500m의 고산지대에 있었다.
봉사단이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작은 산비탈 마을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30여 명의 오토바이 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짬따우현 각지에 있는 학교 선생님들과 현지 주민들로, 모두 자원봉사자다.
오토바이로 출발하는 곳은 본격적으로 비포장 산길이 시작하는 곳이다. 일종의 비포장 산림도로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문제는 현재 베트남이 우기(雨期)라 비가 자주 내린다는 것. 비가 오면 길이 질퍽해져 오토바이가 헛바퀴를 돌기 때문에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길 한쪽 면은 가파른 낭떠러지로 자칫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지 오토바이 봉사자들은 오전과 오후 학생들을 태워 나르고, 음식과 물품을 실어 날랐다. 어떤 이는 하루 6번이나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봉사단원이 싣고 온 많은 물품도 모두 오토바이를 통해 산 정상의 마을까지 옮겨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음식 배달용으로 쓰이는 110cc 엔진의 작은 오토바이가 사람과 짐을 싣고 가파른 산길을 거뜬히 달리는 것을 보니 전문 산악 오토바이도 부럽지 않았다.
봉사단은 가파르거나 질퍽거리는 구간은 내려서 걷고, 평탄한 길이 나오면 다시 타기를 반복하면서 산을 올랐다. 학생들을 태운 수십 대의 오토바이 행렬이 산을 오르는 모습 자체가 장관이었다. 걸어서 오르면 꼬박 1시간 반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할 거리였다.
해발 1500m 오지마을에 난데없이 봉사단과 오토바이 행렬이 들이닥치자 아이들이 어리둥절해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산꼭대기 넓은 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 20가구는 되어 보였다. 워낙 고지대라 맞은편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있고, 운무(雲霧)가 흐르는 것이 이방인의 눈에는 제법 운치가 넘친다.
집은 대부분이 목조(木造)로 된 전통가옥이었고, 나무 울타리를 치고 소와 돼지, 닭 같은 가축을 길렀다. 주민들은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다락논을 경작하거나 경사지에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마을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페인트조, 담장조, 공부방 꾸미기조
농협재단이 공부방을 지원하는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공부방이 있었다. 그런데 시설이 낡은 데다 학생수에 비해 공간이 좁다 보니 교실 중간에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오전반 오후반으로 학생들을 나누어 수업해야 했다. 농협재단은 짬따우현과 협의하여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자 지난 6월부터 ‘희망공부방’ 건립사업을 진행했다.
사호마을 현장에 도착한 학생 봉사단은 조(組)를 짰다. 첫째 조는 농협재단이 지은 새로운 공부방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둘째 조는 내부를 새롭게 꾸미기로 했다. 세 번째 조는 마을 외부에 담장을 쳤다.
페인트 조는 먼저 사포로 외벽을 문지른 후 녹색으로 칠하고, 창문틀엔 흰색을 칠했다. 페인트칠이 없이 알루미늄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기존의 공부방도 녹색 페인트칠을 해서 새로 지은 공부방과 색깔을 맞추었다.
공부방 내부 꾸미기를 맡은 둘째 조는 꽃과 나비, 들판과 나무 등을 그려 넣어 아이들 정서에 맞도록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 번째 조는 마을 외부에 담장을 쳤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가파른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아이들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봉사지인 반무마을로 간 6명의 봉사단원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 반무마을은 이번에 농협재단의 지원으로 낡은 공부방 두 동 중 하나를 헐고 새로 지었다. 봉사단원들은 늘 산에서 생활하는 이곳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공부방 내벽을 바다색 페인트로 칠하고, 게·새우·오징어 등을 직접 만들어 붙였다. 기존의 낡은 공부방 한 동의 벽면에도 바다를 그려 주었다.
이렇게 봉사단원들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하는 사이 서먹해하던 현지의 아이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며, 눈이 마주치면 웃음도 지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맨발로 생활하며 제대로 옷을 갖추어 입지 못하고 있었지만, 해맑은 눈동자와 웃음은 우리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봉사단원들은 날씨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봉사지인 옌바이성에는 많은 비가 자주 내리고, 하루에 한 번은 열대성 폭우가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2시가 되자 하늘이 심상찮게 변하면서 비가 쏟아질 태세다. 비가 오면 오토바이 하산(下山)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시간을 앞당겨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하산 전에 단원들은 각자 맡은 일을 서둘렀다. 이윽고 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봉사단원들은 4시로 예정된 봉사일정을 앞당겨 마무리하고, 3시쯤 하산을 결정했다.
길이 질퍽거려 결국 오토바이 하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원들은 우의를 챙겨 입고 숙소까지 가파른 비포장 비탈길을 1시간 반 동안 걸어서 내려갔다. 숙소에 도착한 단원들의 신발은 진흙범벅이고, 몸은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마친 단원들은 다음 날 봉사활동을 위해 미리 연을 만들어 보거나, 에코백도 만드는 등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신나는 예체능 수업
7월 10일, 봉사활동 둘째 날이 밝았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이날은 단원 전원이 사호마을 한곳에서 아이들에게 교육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호마을에 도착하자 전날보다 더 많은 아이들과 주민들이 단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7시부터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날 교육활동은 두 개 반으로 나뉘어 새롭게 지어진 공부방과 기존에 있던 공부방에서 각각 수업이 진행되었다. 5세 이하 반 30여 명, 6세 이상 반 20여 명 등 모두 50여 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기 위해 봉사단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시간은 오전 2교시, 오후 2교시로 짜였고, 수업내용은 예체능 위주로 구성되었다. 봉사단원들은 이미 지난 5월부터 함께 모여 수업 내용을 논의하고 준비해 왔다.
1교시에는 동요와 율동, 연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동요는 한국동요 3곡과 베트남 동요 1곡을 준비했다. 2교시는 체육수업. 풍선 터뜨리기, 비행기 접어 날리기, 보물찾기 등을 하며 사호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단원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1시 반부터 시작한 오후 수업은 동요율동과 에코백 만들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아이들과 보낸 4교시 수업은 금방 지나갔다.
4시쯤 모든 활동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고산 지대라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더 늦으면 어두워 하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일과를 마친 봉사단원들은 그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내일이 바로 희망공부방 준공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귀빈(貴賓)들이 오고, 베트남 현지 방송국도 촬영을 나올 예정이다. 준공식에서 단원들은 K-팝과 난타 공연을 한 후,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음식도 나눠주기로 했다. 단원들은 공연연습도 하며 30~40명 분의 음식 재료를 다듬고 준비를 하느라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안면장애 어린이 성형수술과 보청기 지원
이날 오후 1시 무렵부터 산 위의 봉사활동과는 별개로 단원들의 숙소가 있는 인민위원회 강당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국의 금강보청기가 농협재단과 협조하여 베트남 난청 주민 6명에게 보청기를 선물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멀리서 청각장애를 앓는 남녀노소가 많이 찾아왔다. 금강보청기 측은 한국에서 준비해 간 검사장비로 청력상태를 검사한 후 현장에서 보청기를 통해 듣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6명을 선정했다. 보청기를 받고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주민도 있었다.
먼 길을 달려 봉사단의 숙소를 찾아온 이 중에는 특별한 손님이 더 있었다. ‘선천성 안검하수’라는, 눈을 뜨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14세의 반 띠 뚜이라는 소녀와 그의 어머니였다.
농사를 짓는 부모,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뚜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로 성장했다. 2011년경 베트남에서 한 차례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낮은 의료기술로 성공하지 못했다. 옌바이성 인민위원회는 한국에서 봉사자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뚜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농협재단 측에 알려 왔다.
사연을 들은 농협재단은 뚜이를 수술하기 위해 한국의 ‘더 라인 성형외과’(대표원장 조재호)에 소개해 주었고, 더 라인 성형외과는 기꺼이 무료로 수술을 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뚜이는 지난 7월 18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돌아갔다.
수술을 집도한 더 라인 성형외과 정유석 원장은 “우리 외과가 지난 수년간 국내외 저소득층의 안면장애 수술을 위해 재능기부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농협재단 측의 의뢰가 들어와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며 “앞으로도 무료수술을 통한 재능기부로 사회공헌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뚜이의 수술 이야기는 조만간 베트남 하노이방송에도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땀으로 목욕한 준공식 참석 귀빈들
드디어 공부방 준공식이 열리는 7월 11일의 아침이 밝았다. 준공식 예정 시각은 오전 11시다. 준공식에 앞서 짬따우현 인민위원회 건물에 한국과 베트남 측 인사들의 상견례 자리가 있었다. 준공식을 축하하기 위해 하노이에서 먼 길을 달려온 한국 측 인사들은 농협재단의 조영만 감사, 이재식 사무총장, 주(駐) 베트남 한국대사관의 이원익 공사참사관과 서영호 서기관, 금융감독원의 박석곤 소장, 농협은행 하노이사무소의 이우식 소장과 김상석 부소장 등이다.
현지 난청 주민들에게 보청기를 지원한 금강보청기 선우열 대표와 안면장애가 있는 뚜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더 라인 성형외과의 조재호 원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베트남 측 인사로는 짬따우현 인민위원장과 부위원장, 옌바이성 대외협력국장, 하노이방송국 부사장, 현지 학교 교장선생님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짬따우현 인민위원장은 환영사에서 “당과 정부가 짬따우현의 인프라 구축에 많은 지원을 해 오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며 “한국에서 먼 길을 달려와 공부방을 지원해 준 농협재단에 거듭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원익 공사참사관은 답례에서 “공부방 지원사업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한다”며 “특히 소수민족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배려하는 베트남 정부의 의지를 보니 베트남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농협재단의 이재식 사무총장은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한 대학생은 한국의 엘리트 대학생들”이라며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들의 정성을 받아 주고 격려를 해 주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간단한 상견례를 마친 일행은 사호마을에서 11시에 열릴 준공식에 시간 맞춰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방법은 동일했다. 역시 버스로 20분 정도 이동한 후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밤새 내린 비로 길은 진흙범벅이 되어 있었다.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오토바이 바퀴가 헛돌았다. 진흙길 속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에서 온 귀빈들을 태우기 위해 오토바이를 밀고 올라가는 현지 자원봉사 주민들을 보니 ‘저 오토바이가 저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자 귀한 재산일 텐데’ 하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걷고 타고 하며 높은 산을 오르는 사이 일행의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흠뻑 젖었다. 특히 양복을 입고 온 한국 측 인사들은 바지 끝단과 구두가 진흙투성이가 되고, 양복이 흠뻑 젖자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런 고산지대의 풍경이 베트남 현지인들에게도 신기한지 베트남 사람들도 산을 오르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거나 펼쳐진 다락논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오전 11시가 가까워 오면서 준공식에 참석할 귀빈들이 사호마을에 속속 도착했다. 이에 앞서 봉사단원들은 귀빈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준공식과 공연, 음식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봉사단원들이 준비한 한국음식은 떡볶이, 제육볶음, 짜파게티, 화채 등이었다.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드디어 준공식이 시작됐다. 한국과 베트남 측에서 참가한 내빈들과 현지 주민들을 포함,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재식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공부방 지원사업이 작은 출발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베트남의 유능한 인재로 자라 한국과 베트남이 튼튼한 동맹국이 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한국 봉사단 학생들이 준비한 축하공연이 열렸다. 첫 번째 공연은 태권도와 탈춤, 태껸을 혼합하여 만든 ‘새천년건강체조’였다. 그다음 순서로 현지 아이들에게 가르친 동요와 율동을 선보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애써 준비한 프로그램을 포기할 봉사단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순서를 바꾸어 처마 밑에 서 있는 사람들 쪽으로 무대를 옮겨 빗속에서 난타 공연을 선보였다. 단원들의 K-팝 공연도 했다. 단원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신나는 율동과 함께 선보이자,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오후 4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2박3일간의 짧은 봉사일정이었지만, 그 사이 봉사단원들은 아이들과 정이 들어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아이들도 먼발치까지 언니·누나들을 따라 나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 사이 또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토바이 하산은 애초부터 불가능해졌다. 올라올 때보다 더 진흙범벅이 된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4학년인 노자영씨는 “한국에서 출발할 때 봉사현장이 시골 산간마을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정도의 오지일 줄은 몰랐다”며 “비가 와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막상 올라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힘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원광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생명씨는 “이곳에 와서 보니 한국의 좋은 여건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며 “나 자신이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날 밤 늦게 봉사단을 비롯해 준공식에 참석했던 일행은 하노이로 돌아왔다.
하노이 시내 탐방
7월 12일, 봉사단 일행에게 이날 하루 하노이 시내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는 통킹 삼각주의 홍강(紅河)이 둘러싸고 있다. 홍강 내부에 있다고 해서 하내(河內·하노이)라고 불리며,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다. 베트남 북부를 지배한 중국의 역대 왕조는 이곳에 도독(都督)을 두고 하노이를 다스렸다.
하노이의 날씨는 덥고 습하며, 중심에는 호안끼엠이라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커다란 호수가 있다. 호숫가는 저녁이면 더위를 식히려는 하노이 시민들로 북적인다.
호찌민 박물관도 둘러보았다. 베트남의 영웅인 호찌민 주석의 생전 활동 사진과 유품, 베트남 전쟁 당시의 각종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바로 옆에 호찌민 주석의 유해가 안치된 호찌민 묘(墓)와 바딘 광장이 있다.
광장 중앙에 호찌민 묘가 우뚝하게 조성되어 있고, 그 바로 맞은편에 베트남 국기인 대형 금성홍기(金星紅旗)가 나부끼고 있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은 항상 상복(喪服)을 뜻하는 흰색 제복을 입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워낙 신성시하는 곳이라 광장 바닥을 주기적으로 솔질로 청소한다고 한다.
짧은 시내 탐방이 끝난 후 봉사단의 대부분은 귀국길에 올랐다. 이 가운데 6명은 베트남 남쪽지방에서 있을 2차 봉사를 위해 호찌민시로 향했다. 이들의 다음 봉사활동 목표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친정집을 개·보수하는 것이었다.
농협재단은 한국에 시집와 가정을 이룬 한국-베트남 부부의 모국방문사업을 추진 중인데, 그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해 모국방문 겸 친정집 보수공사를 지원했다. 행운의 주인공은 베트남 하우장성 풍협현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누엔티튀느안(24)과 최상훈(35)씨 부부였다. 2009년 경북 영천으로 시집와 포도농사를 지으며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에 남게 된 6명의 봉사자들은 그동안 함께해 온 나머지 단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 후 누엔-최상훈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호찌민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다른 봉사활동 위해 호찌민시로 이동
하노이에서 호찌민시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다. 호찌민시는 베트남의 남부에 있는 도시였지만, 30도를 넘지 않는 쾌적한 날씨였고 습도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북부 하노이가 정치적 수도라면, 남부 호찌민시는 베트남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경제수도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도 하노이보다 거리가 더 번화하며, 건물도 높고 시가지도 정돈된 느낌이다. 현지 교민들의 말에 의하면 호찌민시의 사람들이 하노이 사람들보다 성격이 더 온순하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7월 13일, 호찌민시에서 1박을 한 봉사단 일행은 서둘러 누엔티튀느안 씨의 친정이 있는 하우장성 풍협현을 향해 출발했다. 하우장성은 호찌민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으로 ‘메콩 델타’로 불리는 메콩강 삼각주에 속한 비옥한 평야지대다.
하우장성으로 가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렸다. 비슷한 거리를 하노이에서 북부 산악지역인 옌바이성 짬따우현까지 가는 데는 8시간이 걸린 것에 비하면 편하고 쉬운 길이었다.
하노이를 벗어나자 산은 전혀 보이지 않고, 울창한 바나나 나무 숲과 야자수로 뒤덮인 평야가 이어졌다. 북부지방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는데 이곳은 이미 모내기가 끝났는지 우리의 7월 중순처럼 벼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흙탕물처럼 탁해 보이는 메콩강 지류(支流)가 수로(水路)를 이루고 있었고, 제법 넓은 강도 몇 개 건넜다.
“한국–베트남의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기를”
누엔 씨의 친정집은 도로에서 100m 정도 들어간 농촌마을에 있었다. 어머니와 작은오빠가 함께 살고 있었고, 친정아버지는 10여 년 전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에는 허리가 좋지 않아 형편이 어렵다고 했다.
누엔 씨는 농협재단의 후원으로 5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3년 만에 한 달간 친정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누엔 씨의 친정집은 방을 이루고 있는 본채만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이 제대로 없었다. 농협재단은 본채에 10평 정도의 공간을 새로 만들어 깨끗한 화장실과 부엌을 만들어 줬다.
봉사단이 방문하기 전부터 시작한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누엔 씨의 남편과 오빠도 땀을 뻘뻘 흘려 가며 같이 작업했다. 봉사단을 격려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농협재단 이재식 사무총장도 붓을 직접 들고 페인트칠에 나섰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자 이재식 사무총장은 새로 생긴 부엌에 놓을 가스레인지를 선물로 전달했다. 누엔 씨의 어머니는 연신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딸과 사위, 손자 손녀를 만난 것도 기쁜데 이렇게 집까지 새로 지어 주어 기쁨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재식 사무총장은 “주어진 환경에 불만을 갖지 않고 감사하며 사는 베트남인들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재단은 앞으로도 우리의 학생들이 봉사활동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사회의 큰 재목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농협재단 이사장 최원병
“활력있는 농촌 만들기 위한 지원 아끼지 않을 것”
농촌문화의 계승 발전과 농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2004년 7월 설립된 농협재단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농협재단은 그동안 농업·농촌의 인재양성과 농촌의 다문화가정 모국방문 및 주거환경 개선, 복지증진사업과 문화사업 등을 통해 농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도농(都農) 간의 문화적 격차 해소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농협문화복지재단’이란 이름으로 처음 출발한 농협재단이 하는 일은 크게 ‘장학사업’ ‘복지사업’ ‘문화사업’으로 구분된다.
최원병 농협재단 이사장은 “농협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생명이자 미래산업인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선조의 지혜가 살아 숨쉬는 농촌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농협재단이 추진해 온 장학사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학사업은 농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드리는 동시에 농촌출신 인재들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02년 농협장학회를 시작으로 올해 7월 말까지 1만2628명에게 모두 279억83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2011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농협장학관을 준공했습니다. 매학기 학업 성적과 가정형편, 지역별 농업인 수 등을 고려하여 사생을 뽑고 있는데 작년까지 1480명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복지사업은 어떻게 진행하는지요.
“먼저 한국에 시집온 여성들이 한국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돕는 다문화가정 정착지원사업이 있습니다. 농협재단은 2007년부터 농촌여성 결혼이민자 부부와 그 자녀의 모국방문을 지원해 왔습니다. 정착의지가 강하며 실제 영농에 종사하는 농업인 중에 매년 200가정 내외를 선발해서 지원합니다. 지난해까지 1226가정의 모국방문을 지원했습니다. 그 밖에 농촌지역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희망의 집 고치기 등 농가도움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문화를 알리기 위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농촌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도 우리 재단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 일환으로 농업박물관 내에 농업의 중요성 및 농경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두레학당’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농업·농촌의 발전과 지역사회 봉사에 크게 기여한 개인 및 단체를 선정, 시상함으로써 농촌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농촌사회 유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요.
“농협재단의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을 통해 따뜻한 정이 넘치는 농촌, 희망이 가득한 농촌, 도시민이 지친 심신을 달래는 농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하지만, 농협재단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농촌과 농업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농업재단은 농촌에 활력이 넘치고 농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날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이 행사는 농협재단이 베트남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농촌 출신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 기회와 글로벌 리더십을 길러 줄 목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20명의 봉사단원은 모두 농협재단의 대학 장학생들이다.
이들이 봉사활동을 펼친 곳은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서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옌바이성 짬따우현의 산간 오지마을. 농협재단은 이곳 산간 마을 5곳에 ‘희망공부방’을 지어 줬다. 모두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공부방이 마련되기 전에는 이들은 산 아래 마을의 학교까지 통학을 해야 했다.
7월 2일 최원병 농협재단 이사장과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4 농협재단 농업인 자녀 대학생 해외봉사활동’ 출정식이 열렸다. 7월 7일 출국 당일. 이들 봉사단이 가지고 나갈 물품은 500kg에 달했다. 250명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스케치북, 색종이, 사인펜, 색연필, 축구공, 슬리퍼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밤 10시, 봉사단 일행이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하노이방송국 관계자와 현지 대학생 5명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의 KBS 격인 하노이방송은 이번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봉사활동 전 과정을 취재하겠다고 했다.
7월 8일, 하노이에서 1박을 한 대학생 봉사자들은 아침 9시 반, 봉사활동 목적지인 옌바이성 짬따우현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서너 시간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베트남에서는 버스로 꼬박 9시간이 걸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락논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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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지역인 옌바이성의 짬따우현은 하노이에서 250km 떨어진 산악지대에 있다. 현장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산을 개간해서 만든 계단식 다락논과 옥수수밭이 이어진다. |
들판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소로 써레질을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나라 1970년대 농촌 풍경이다. 평지가 아닌 산비탈에 계단식 다락논을 만들어 벼를 심거나 경사지엔 녹차 혹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었다.
봉사 예정지인 짬따우현은 중국 국경지대와 가까운 곳이다.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중국 국경에 가까운 고산지대로 들어설수록 평지는 보기 어렵고, 계단식 다락논이 눈에 들어온다.
굽이굽이 도로를 돌 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락논의 모습이 장관이다. 논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모두 깎아 다락논을 만들었고, 그 외 산비탈의 작은 땅도 놀리지 않고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고산지대로 들어설수록 길가의 농가(農家)들은 콘크리트 블록 주택보다는 나무로 지어진 전통 초가 형태의 집들이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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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바이성 짬따우현의 인민위원회 건물. |
현재 베트남 국민은 비엣족(viet)이 90%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 북부와 중부, 남부 등지의 고산(高山)이나 고립된 지역에 몽족, 타이족, 고산족, 크메르족 등 54개 소수민족이 있다. 짬따우현은 몽족 등 소수민족이 9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9시간의 덜컹거리는 버스여행은 오후 6시에 끝이 나고, 대학생 봉사단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행은 짬따우현 인민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인구 약 3만명의 짬따우현은 69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위원회가 있는 현 중심지는 우리의 읍소재지 정도의 크기로, 마치 강원도 어느 깊은 산간마을에 와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 수준이며, 농업부문의 국내총생산(GDP)이 전체 GDP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인구의 70% 정도가 30대 이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외세(外勢)와 오랜 전쟁을 겪은 안타까운 역사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한다.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1.5배에 이른다. 1986년 개방정책인 ‘도이모이’ 정책이후 연평균 7~8%에 이르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오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약 5%대로 성장하고 있다. 주 베트남 대사관 측은 베트남에 현재 우리 기업 3300여 개가 진출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1년 수출품목 1위가 휴대전화였는데, 이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현지 진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함께 국내 10대 은행도 거의 다 지점을 갖고 있다. 농협은행도 지점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
봉사지역은 해발 1500m의 산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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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봉사지역이 있는 마을에 가려면 오토바이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가파른 구간은 내려서 걸어가야 하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걸어서 오르내려야 한다. |
봉사단이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작은 산비탈 마을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30여 명의 오토바이 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짬따우현 각지에 있는 학교 선생님들과 현지 주민들로, 모두 자원봉사자다.
오토바이로 출발하는 곳은 본격적으로 비포장 산길이 시작하는 곳이다. 일종의 비포장 산림도로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문제는 현재 베트남이 우기(雨期)라 비가 자주 내린다는 것. 비가 오면 길이 질퍽해져 오토바이가 헛바퀴를 돌기 때문에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길 한쪽 면은 가파른 낭떠러지로 자칫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지 오토바이 봉사자들은 오전과 오후 학생들을 태워 나르고, 음식과 물품을 실어 날랐다. 어떤 이는 하루 6번이나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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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단의 최종 목적지인 사호마을. 해발 1500m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다락논을 경작하거나 주변 경사지에 옥수수를 재배하며, 소와 돼지, 닭 등을 기른다. |
봉사단은 가파르거나 질퍽거리는 구간은 내려서 걷고, 평탄한 길이 나오면 다시 타기를 반복하면서 산을 올랐다. 학생들을 태운 수십 대의 오토바이 행렬이 산을 오르는 모습 자체가 장관이었다. 걸어서 오르면 꼬박 1시간 반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할 거리였다.
해발 1500m 오지마을에 난데없이 봉사단과 오토바이 행렬이 들이닥치자 아이들이 어리둥절해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산꼭대기 넓은 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 20가구는 되어 보였다. 워낙 고지대라 맞은편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있고, 운무(雲霧)가 흐르는 것이 이방인의 눈에는 제법 운치가 넘친다.
집은 대부분이 목조(木造)로 된 전통가옥이었고, 나무 울타리를 치고 소와 돼지, 닭 같은 가축을 길렀다. 주민들은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다락논을 경작하거나 경사지에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마을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페인트조, 담장조, 공부방 꾸미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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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방 외부에 페인트칠을 하는 봉사단원들. 오른쪽 사진은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는 고산족 아이들의 모습. 실내도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그림으로 꾸몄다. |
사호마을 현장에 도착한 학생 봉사단은 조(組)를 짰다. 첫째 조는 농협재단이 지은 새로운 공부방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둘째 조는 내부를 새롭게 꾸미기로 했다. 세 번째 조는 마을 외부에 담장을 쳤다.
페인트 조는 먼저 사포로 외벽을 문지른 후 녹색으로 칠하고, 창문틀엔 흰색을 칠했다. 페인트칠이 없이 알루미늄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기존의 공부방도 녹색 페인트칠을 해서 새로 지은 공부방과 색깔을 맞추었다.
공부방 내부 꾸미기를 맡은 둘째 조는 꽃과 나비, 들판과 나무 등을 그려 넣어 아이들 정서에 맞도록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 번째 조는 마을 외부에 담장을 쳤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가파른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아이들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봉사지인 반무마을로 간 6명의 봉사단원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 반무마을은 이번에 농협재단의 지원으로 낡은 공부방 두 동 중 하나를 헐고 새로 지었다. 봉사단원들은 늘 산에서 생활하는 이곳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공부방 내벽을 바다색 페인트로 칠하고, 게·새우·오징어 등을 직접 만들어 붙였다. 기존의 낡은 공부방 한 동의 벽면에도 바다를 그려 주었다.
이렇게 봉사단원들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하는 사이 서먹해하던 현지의 아이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며, 눈이 마주치면 웃음도 지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맨발로 생활하며 제대로 옷을 갖추어 입지 못하고 있었지만, 해맑은 눈동자와 웃음은 우리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봉사단원들은 날씨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봉사지인 옌바이성에는 많은 비가 자주 내리고, 하루에 한 번은 열대성 폭우가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2시가 되자 하늘이 심상찮게 변하면서 비가 쏟아질 태세다. 비가 오면 오토바이 하산(下山)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시간을 앞당겨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하산 전에 단원들은 각자 맡은 일을 서둘렀다. 이윽고 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봉사단원들은 4시로 예정된 봉사일정을 앞당겨 마무리하고, 3시쯤 하산을 결정했다.
길이 질퍽거려 결국 오토바이 하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원들은 우의를 챙겨 입고 숙소까지 가파른 비포장 비탈길을 1시간 반 동안 걸어서 내려갔다. 숙소에 도착한 단원들의 신발은 진흙범벅이고, 몸은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마친 단원들은 다음 날 봉사활동을 위해 미리 연을 만들어 보거나, 에코백도 만드는 등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신나는 예체능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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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농협재단 공부방 지원사업은 베트남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보도했다. 취재에 열중하고 있는 하노이방송 관계자들. |
이날 교육활동은 두 개 반으로 나뉘어 새롭게 지어진 공부방과 기존에 있던 공부방에서 각각 수업이 진행되었다. 5세 이하 반 30여 명, 6세 이상 반 20여 명 등 모두 50여 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기 위해 봉사단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시간은 오전 2교시, 오후 2교시로 짜였고, 수업내용은 예체능 위주로 구성되었다. 봉사단원들은 이미 지난 5월부터 함께 모여 수업 내용을 논의하고 준비해 왔다.
1교시에는 동요와 율동, 연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동요는 한국동요 3곡과 베트남 동요 1곡을 준비했다. 2교시는 체육수업. 풍선 터뜨리기, 비행기 접어 날리기, 보물찾기 등을 하며 사호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단원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1시 반부터 시작한 오후 수업은 동요율동과 에코백 만들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아이들과 보낸 4교시 수업은 금방 지나갔다.
4시쯤 모든 활동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고산 지대라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더 늦으면 어두워 하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일과를 마친 봉사단원들은 그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내일이 바로 희망공부방 준공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귀빈(貴賓)들이 오고, 베트남 현지 방송국도 촬영을 나올 예정이다. 준공식에서 단원들은 K-팝과 난타 공연을 한 후,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음식도 나눠주기로 했다. 단원들은 공연연습도 하며 30~40명 분의 음식 재료를 다듬고 준비를 하느라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안면장애 어린이 성형수술과 보청기 지원
이날 오후 1시 무렵부터 산 위의 봉사활동과는 별개로 단원들의 숙소가 있는 인민위원회 강당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국의 금강보청기가 농협재단과 협조하여 베트남 난청 주민 6명에게 보청기를 선물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멀리서 청각장애를 앓는 남녀노소가 많이 찾아왔다. 금강보청기 측은 한국에서 준비해 간 검사장비로 청력상태를 검사한 후 현장에서 보청기를 통해 듣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6명을 선정했다. 보청기를 받고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주민도 있었다.
먼 길을 달려 봉사단의 숙소를 찾아온 이 중에는 특별한 손님이 더 있었다. ‘선천성 안검하수’라는, 눈을 뜨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14세의 반 띠 뚜이라는 소녀와 그의 어머니였다.
농사를 짓는 부모,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뚜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로 성장했다. 2011년경 베트남에서 한 차례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낮은 의료기술로 성공하지 못했다. 옌바이성 인민위원회는 한국에서 봉사자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뚜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농협재단 측에 알려 왔다.
사연을 들은 농협재단은 뚜이를 수술하기 위해 한국의 ‘더 라인 성형외과’(대표원장 조재호)에 소개해 주었고, 더 라인 성형외과는 기꺼이 무료로 수술을 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뚜이는 지난 7월 18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돌아갔다.
수술을 집도한 더 라인 성형외과 정유석 원장은 “우리 외과가 지난 수년간 국내외 저소득층의 안면장애 수술을 위해 재능기부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농협재단 측의 의뢰가 들어와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며 “앞으로도 무료수술을 통한 재능기부로 사회공헌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뚜이의 수술 이야기는 조만간 베트남 하노이방송에도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땀으로 목욕한 준공식 참석 귀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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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방 준공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자들. 가파른 진흙길을 오르느라 모두 땀에 흠뻑 젖었다. |
현지 난청 주민들에게 보청기를 지원한 금강보청기 선우열 대표와 안면장애가 있는 뚜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더 라인 성형외과의 조재호 원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베트남 측 인사로는 짬따우현 인민위원장과 부위원장, 옌바이성 대외협력국장, 하노이방송국 부사장, 현지 학교 교장선생님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짬따우현 인민위원장은 환영사에서 “당과 정부가 짬따우현의 인프라 구축에 많은 지원을 해 오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며 “한국에서 먼 길을 달려와 공부방을 지원해 준 농협재단에 거듭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원익 공사참사관은 답례에서 “공부방 지원사업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한다”며 “특히 소수민족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배려하는 베트남 정부의 의지를 보니 베트남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농협재단의 이재식 사무총장은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한 대학생은 한국의 엘리트 대학생들”이라며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들의 정성을 받아 주고 격려를 해 주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간단한 상견례를 마친 일행은 사호마을에서 11시에 열릴 준공식에 시간 맞춰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방법은 동일했다. 역시 버스로 20분 정도 이동한 후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밤새 내린 비로 길은 진흙범벅이 되어 있었다.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오토바이 바퀴가 헛돌았다. 진흙길 속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에서 온 귀빈들을 태우기 위해 오토바이를 밀고 올라가는 현지 자원봉사 주민들을 보니 ‘저 오토바이가 저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자 귀한 재산일 텐데’ 하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걷고 타고 하며 높은 산을 오르는 사이 일행의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흠뻑 젖었다. 특히 양복을 입고 온 한국 측 인사들은 바지 끝단과 구두가 진흙투성이가 되고, 양복이 흠뻑 젖자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런 고산지대의 풍경이 베트남 현지인들에게도 신기한지 베트남 사람들도 산을 오르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거나 펼쳐진 다락논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오전 11시가 가까워 오면서 준공식에 참석할 귀빈들이 사호마을에 속속 도착했다. 이에 앞서 봉사단원들은 귀빈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준공식과 공연, 음식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봉사단원들이 준비한 한국음식은 떡볶이, 제육볶음, 짜파게티, 화채 등이었다.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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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에서 한국에 결혼이민을 온 베트남 신부의 친정집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봉사단원들. |
이재식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공부방 지원사업이 작은 출발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베트남의 유능한 인재로 자라 한국과 베트남이 튼튼한 동맹국이 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한국 봉사단 학생들이 준비한 축하공연이 열렸다. 첫 번째 공연은 태권도와 탈춤, 태껸을 혼합하여 만든 ‘새천년건강체조’였다. 그다음 순서로 현지 아이들에게 가르친 동요와 율동을 선보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애써 준비한 프로그램을 포기할 봉사단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순서를 바꾸어 처마 밑에 서 있는 사람들 쪽으로 무대를 옮겨 빗속에서 난타 공연을 선보였다. 단원들의 K-팝 공연도 했다. 단원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신나는 율동과 함께 선보이자,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오후 4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2박3일간의 짧은 봉사일정이었지만, 그 사이 봉사단원들은 아이들과 정이 들어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아이들도 먼발치까지 언니·누나들을 따라 나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 사이 또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토바이 하산은 애초부터 불가능해졌다. 올라올 때보다 더 진흙범벅이 된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4학년인 노자영씨는 “한국에서 출발할 때 봉사현장이 시골 산간마을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정도의 오지일 줄은 몰랐다”며 “비가 와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막상 올라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힘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원광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생명씨는 “이곳에 와서 보니 한국의 좋은 여건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며 “나 자신이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날 밤 늦게 봉사단을 비롯해 준공식에 참석했던 일행은 하노이로 돌아왔다.
하노이 시내 탐방
7월 12일, 봉사단 일행에게 이날 하루 하노이 시내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는 통킹 삼각주의 홍강(紅河)이 둘러싸고 있다. 홍강 내부에 있다고 해서 하내(河內·하노이)라고 불리며,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다. 베트남 북부를 지배한 중국의 역대 왕조는 이곳에 도독(都督)을 두고 하노이를 다스렸다.
하노이의 날씨는 덥고 습하며, 중심에는 호안끼엠이라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커다란 호수가 있다. 호숫가는 저녁이면 더위를 식히려는 하노이 시민들로 북적인다.
호찌민 박물관도 둘러보았다. 베트남의 영웅인 호찌민 주석의 생전 활동 사진과 유품, 베트남 전쟁 당시의 각종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바로 옆에 호찌민 주석의 유해가 안치된 호찌민 묘(墓)와 바딘 광장이 있다.
광장 중앙에 호찌민 묘가 우뚝하게 조성되어 있고, 그 바로 맞은편에 베트남 국기인 대형 금성홍기(金星紅旗)가 나부끼고 있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은 항상 상복(喪服)을 뜻하는 흰색 제복을 입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워낙 신성시하는 곳이라 광장 바닥을 주기적으로 솔질로 청소한다고 한다.
짧은 시내 탐방이 끝난 후 봉사단의 대부분은 귀국길에 올랐다. 이 가운데 6명은 베트남 남쪽지방에서 있을 2차 봉사를 위해 호찌민시로 향했다. 이들의 다음 봉사활동 목표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친정집을 개·보수하는 것이었다.
농협재단은 한국에 시집와 가정을 이룬 한국-베트남 부부의 모국방문사업을 추진 중인데, 그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해 모국방문 겸 친정집 보수공사를 지원했다. 행운의 주인공은 베트남 하우장성 풍협현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누엔티튀느안(24)과 최상훈(35)씨 부부였다. 2009년 경북 영천으로 시집와 포도농사를 지으며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에 남게 된 6명의 봉사자들은 그동안 함께해 온 나머지 단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 후 누엔-최상훈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호찌민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다른 봉사활동 위해 호찌민시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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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통일의 영웅인 호찌민의 묘가 있는 바딘 광장. 광장 왼쪽 중앙에 호찌민 묘가 있고, 그 맞은편에 베트남 깃발이 펄럭인다. |
북부 하노이가 정치적 수도라면, 남부 호찌민시는 베트남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경제수도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도 하노이보다 거리가 더 번화하며, 건물도 높고 시가지도 정돈된 느낌이다. 현지 교민들의 말에 의하면 호찌민시의 사람들이 하노이 사람들보다 성격이 더 온순하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7월 13일, 호찌민시에서 1박을 한 봉사단 일행은 서둘러 누엔티튀느안 씨의 친정이 있는 하우장성 풍협현을 향해 출발했다. 하우장성은 호찌민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으로 ‘메콩 델타’로 불리는 메콩강 삼각주에 속한 비옥한 평야지대다.
하우장성으로 가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렸다. 비슷한 거리를 하노이에서 북부 산악지역인 옌바이성 짬따우현까지 가는 데는 8시간이 걸린 것에 비하면 편하고 쉬운 길이었다.
하노이를 벗어나자 산은 전혀 보이지 않고, 울창한 바나나 나무 숲과 야자수로 뒤덮인 평야가 이어졌다. 북부지방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는데 이곳은 이미 모내기가 끝났는지 우리의 7월 중순처럼 벼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흙탕물처럼 탁해 보이는 메콩강 지류(支流)가 수로(水路)를 이루고 있었고, 제법 넓은 강도 몇 개 건넜다.
“한국–베트남의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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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재단 이재식 사무총장(오른쪽)이 베트남 신부의 남편인 최상훈씨에게 완공된 부엌에 놓을 가스레인지를 선물하고 있다. |
누엔 씨는 농협재단의 후원으로 5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3년 만에 한 달간 친정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누엔 씨의 친정집은 방을 이루고 있는 본채만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이 제대로 없었다. 농협재단은 본채에 10평 정도의 공간을 새로 만들어 깨끗한 화장실과 부엌을 만들어 줬다.
봉사단이 방문하기 전부터 시작한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누엔 씨의 남편과 오빠도 땀을 뻘뻘 흘려 가며 같이 작업했다. 봉사단을 격려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농협재단 이재식 사무총장도 붓을 직접 들고 페인트칠에 나섰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자 이재식 사무총장은 새로 생긴 부엌에 놓을 가스레인지를 선물로 전달했다. 누엔 씨의 어머니는 연신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딸과 사위, 손자 손녀를 만난 것도 기쁜데 이렇게 집까지 새로 지어 주어 기쁨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재식 사무총장은 “주어진 환경에 불만을 갖지 않고 감사하며 사는 베트남인들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재단은 앞으로도 우리의 학생들이 봉사활동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사회의 큰 재목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농협재단 이사장 최원병
“활력있는 농촌 만들기 위한 지원 아끼지 않을 것”
농촌문화의 계승 발전과 농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2004년 7월 설립된 농협재단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농협재단은 그동안 농업·농촌의 인재양성과 농촌의 다문화가정 모국방문 및 주거환경 개선, 복지증진사업과 문화사업 등을 통해 농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도농(都農) 간의 문화적 격차 해소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농협문화복지재단’이란 이름으로 처음 출발한 농협재단이 하는 일은 크게 ‘장학사업’ ‘복지사업’ ‘문화사업’으로 구분된다.
최원병 농협재단 이사장은 “농협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생명이자 미래산업인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선조의 지혜가 살아 숨쉬는 농촌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농협재단이 추진해 온 장학사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학사업은 농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드리는 동시에 농촌출신 인재들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02년 농협장학회를 시작으로 올해 7월 말까지 1만2628명에게 모두 279억83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2011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농협장학관을 준공했습니다. 매학기 학업 성적과 가정형편, 지역별 농업인 수 등을 고려하여 사생을 뽑고 있는데 작년까지 1480명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복지사업은 어떻게 진행하는지요.
“먼저 한국에 시집온 여성들이 한국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돕는 다문화가정 정착지원사업이 있습니다. 농협재단은 2007년부터 농촌여성 결혼이민자 부부와 그 자녀의 모국방문을 지원해 왔습니다. 정착의지가 강하며 실제 영농에 종사하는 농업인 중에 매년 200가정 내외를 선발해서 지원합니다. 지난해까지 1226가정의 모국방문을 지원했습니다. 그 밖에 농촌지역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희망의 집 고치기 등 농가도움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문화를 알리기 위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농촌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도 우리 재단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 일환으로 농업박물관 내에 농업의 중요성 및 농경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두레학당’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농업·농촌의 발전과 지역사회 봉사에 크게 기여한 개인 및 단체를 선정, 시상함으로써 농촌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농촌사회 유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요.
“농협재단의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을 통해 따뜻한 정이 넘치는 농촌, 희망이 가득한 농촌, 도시민이 지친 심신을 달래는 농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하지만, 농협재단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농촌과 농업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농업재단은 농촌에 활력이 넘치고 농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날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