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제기] 문화재청의 끝나지 않는 ‘헛발질’ : 월간조선

“얼굴이 후끈거릴 정도로 당황했어요.”

2013년 7월 문정왕후(文定王后) 어보(御寶·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 반환 협상을 위해 미국 LA카운티박물관(LACMA)을 방문한 혜문(慧門)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과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安敏錫) 의원 등은 박물관 관계자가 “한국 측에서 어보 측면 묵서(墨書) 육실대왕대비(六室大王大妃)가 보이지 않는다고 인정했다”는 설명에 크게 당황했다.

근거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도록(圖錄)이었다. 2012년 10월 31일 한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Korean Art Collection of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U.S.A.)》 도록은 문정왕후 어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해외한국문화재 조사를 목적으로 도록을 발간했다.

금보(金寶)
Golden Plated Seal
조선 16세기 중반
세로 10.1cm, 가로 10.1cm,
높이 6.4cm
유물번호 M.2000.15.187

도금한 금보 바닥의 ‘성열대왕지보(聖烈大王之寶)’라는 전각으로 보아 문정왕후가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정왕후가 대비의 칭호를 얻게 되는 것은 명종 즉위년, 즉 1545년 이후이므로 이 금보는 16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보의 손잡이 부분을 거북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거북의 얼굴 부분과 목에 융기된 선으로 된 주름 장식이 있으며 이빨은 표현하지 않았다. 거북의 등은 3중의 귀갑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등껍데기의 각을 살려 앞에서 보았을 때 거북의 전체적인 모양이 5각형에 가깝다. 금보의 좌측면에는 묵서명의 흔적이 있으나 일부가 지워져 현재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이○○)

文定王后御寶. 좌측면에 六室大王大妃墨書를 확인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도록은 영문 번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혜문 스님은 “‘금보의 좌측면에는 묵서명의 흔적이 있으나 일부가 지워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부분을 읽고 크게 당황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혜문 스님은 “직접 어보를 확인한 결과 측면에 육실대왕대비(六室大王大妃)라는 글자가 분명히 보였다”고 말했다.

문정왕후 어보 환수

혜문 스님.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는 조선시대 제11대 중종(中宗·1488~1544)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어 아들 명종을 낳았다. 중종 사후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죽자, 어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면서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대왕대비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사용한 어보(御寶)는 종묘가 아닌 미국 LA카운티박물관(LACMA)에 소장되어 있다.

2006년 미국 LA카운티박물관장이 한국을 방문하자,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미국 측에 한국 문화재 실태 조사를 제의했다. 실태 조사를 통해 어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어보의 인면(印面)에는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라고 새겨져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547년 아들인 명종이 경복궁 근정전 섬돌 위에 나가 ‘성열인명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고 덕을 칭송하며 옥책문과 악장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 등 정부는 어보 반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약탈된 문화재라는 명백한 증거를 미국 측에 제시해야 반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9년 혜문 스님 등이 메릴랜드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미 국무성 기록 자료인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발굴하면서 문화재 환수의 길이 열렸다.

문건에는 미국 국무부 관리였던 아델리아 홀과 양유찬 주미대사의 전화 통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고(故) 양유찬 박사는 1951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주미대사를 지냈다.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는 ‘한국의 분실품’이라는 제목으로 미군 병사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에 대한 기록, 특히 1953년 11월 17일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 기사를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이에 실마리를 얻어, 혜문 스님은 해당 신문 기사를 찾아낸다. 해당 신문은 이미 폐간되었으나, 기사는 디지털 자료로 보관돼 있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 같았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조선왕실의 도장(signet)이 한국 궁궐에서 사라졌다. 한국 대사 양유찬(Yang You Chan)은 미군 병사(American GI)에 의해 약탈(souvenir-hunting)되어 47점이 일본이나 미국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양 대사는 왕실 도장의 행방을 알게 되면, 워싱턴 대사관에 연락해 줄 것을 부탁했다.>

1987년 스미스유니언 미술관 학예사 조창수씨의 노력으로 약탈 어보 가운데 고종, 순종, 명성황후의 어보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가, 2013년 초 문화재제자리찾기 등 민간단체가 미국 국무부, LA주지사, LA카운티박물관에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아델리아 홀 레코드’와 《볼티모어 선》 기사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3년 6월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고, 8월 백악관 청원 10만 서명 운동을 개시한 것도 반환 협상에 도움을 줬다.

결국 2013년 8월 LA카운티박물관은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 확실하고 한국 정부가 반환 요청을 한다면 기꺼이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에 보내면서 반환은 기정사실화됐다. 2013년 9월 LA카운티박물관 측은 박물관을 방문한 혜문 스님, 안민석 의원 등과 함께 반환을 공식 발표했다. 현재 한미 양국은 어보 반환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문화재청 오류로 반환 무산 위기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Korean Art Collection of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U.S.A.)》.

육실(六室)이란 종묘 정전에 있는 6번째 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묘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조선시대 국왕의 신실(神室)에는 왕후의 위패와 어보가 함께 모셔져 있었다. 즉 측면에 쓰인 ‘육실대왕대비’ 묵서는 어보가 종묘에 보관되었다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박물관 측은 “어보가 종묘에 있었다는 근거가 되는 묵서에 대해 한국 측에서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며 어보 반환 요구를 반박했다.

당시 미국 측은 “문정왕후 어보가 1950년대 한국전쟁 중 미군에 의해 종묘에서 도난당한 문화재라는 것을 입증해야 되돌려줄 수 있는데, 이를 증명할 근거가 없다”며 “종묘에 보관되었다는 근거가 되는 ‘묵서’에 대해 한국 측은 보이지 않는다고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혜문 스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도록의 내용이 황당해서, 미국에서 해당 부분을 저술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조사를 위해 미국 박물관에 가기는 했지만 실물을 보지는 못했다고 해명했어요. 실수가 있었던 것을 인정한 것이죠. 그런데 확인해 보니, 문정왕후 어보는 미국 LA카운티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진이 올라와 있었어요. 인터넷 사진만 자세히 보아도 ‘육실대왕대비’ 부분을 읽을 수 있었어요. 굳이 직접 확인할 것도 아니면서 미국까지 조사하러 갔던 이유를 모르겠고, 나아가 보지도 못했으면서 엉뚱한 내용을 써놓은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문화재청의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싶어 참으로 당황스러웠어요.”

당시 ‘육실대왕대비’ 묵서 논란은 누가 봐도 묵서 글씨를 읽을 수 있다는 한국 측 주장을 미국 측이 수용하면서 가까스로 정리됐다.

해당 도록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도금된 금보의 바닥에 ‘성열대왕지보(聖烈大王之寶)’라는 전각이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확인 결과 도장의 인면(印面·도장 찍는 면)은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였다.

문화재청은 文化財도 제대로 못 쓴다?

황당한 사건은 또 있다. 혜문 스님은 더욱 어처구니없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2013년 상반기 일본에서 ‘오구라 컬렉션’ 한국 반환을 지지하는 일본인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일본에는 한국에 과거 약탈 문화재를 돌려줘야 된다고 주장하는 양심 있는 시민단체들이 있어요.

그런데 간담회에 참석했던 일본인 전문가가 한국에서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 공식자료집 겉표지에 오자(誤字)가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설마 책표지에 오자가 있을까 싶었는데, 해당 책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문화재(文化‘財’)가 문화재(文化‘材’)로 적혀 있었어요. 문화재청이 ‘文化財’도 제대로 못 쓴다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오구라 圖錄 일본에도 보내져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도록. 일본어로 병기한 표지 제목에 文化財를 文化‘材’로 오기.

설마 겉표지에 오자가 있을까? 믿을 수 없어 해당 책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사실이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5년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도록을 초판 발간했다. 일본어로 병기한 표지 제목은 문화재(文化財)를 文化‘材’로 잘못 표기하고 있었다.

해당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도록을 발간한 이유이다. 오구라 컬렉션 도록은 일본 측에 우리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당 도록의 제목이 일본어로 병기되어 있는 이유이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인들도 작품 애호가가 많아 해당 도록은 일본에서도 많이 주문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오구라 컬렉션 도록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도 보내졌다.

혜문 스님은 “일본 박물관이 문화재도 제대로 못 쓰는 한국 사람들이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더욱 놀라운 것은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런 사실이 교정되지 않고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결국 혜문 스님은 해당 도록을 전량 폐기하고, 관계자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을 2013년 12월 제기했다. 당시 전자민원 형식으로 문화재청에 요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민원제목
- 오구라 컬렉션 도록 오류 정정 및 전량 폐기 요청서

* 민원내용
1. 귀의 불법승
2. 2005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는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도록을 편찬한 적이 있습니다.
3. 최근 저는 도쿄 국립박물관 오구라 컬렉션 반환문제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위의 도록을 참고하던 중 표지 책 제목에 文化財를 文化材로 잘못 표기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4. 국가의 공식기관에서 발간한 도록의 표지제목이 오류란 점은 대한민국의 망신임과 동시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10년 동안 아무도 징계하지 않은 채 은폐하고 개선하지 않은 점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이에 다음의 사항을 엄정하게 요청드리오니 시정해 주십시오.
가. 2005년 도록은 전량 폐기하고, 배포본은 전량 환불 및 교환할 것
나. 발간 책임자를 조사, 전원 해임에 준하는 징계로 엄중 문책할 것
다. 국립문화재 연구소장은 주요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할 것

오구라 컬렉션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5년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도록을 발간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를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차례에 걸쳐 현지조사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문화재연구소는 “도록은 소장 유물 전체에 대한 목록 및 사진·유물해설 등을 일문과 국문 2개 국어로 수록, 한일 양국 문화재 애호가들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히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유물의 편년과 의미를 새롭게 밝히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강점기에 남선합동전기회사의 사장을 역임한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96~1964)가 1922년부터 1952년 동안 국내에서 수집해 간 유물 1100여 점을 가리키는 말로, 대부분이 한국 유물이고 중국, 일본 유물이 소량 포함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그동안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창설한 ‘재단법인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에 의해 관리되어 오다 그 아들 야스유키(安之)에 의해 1980년대 초반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다.

1000여 점에 달하는 한국 유물은 회화, 조각, 공예, 전적, 복식류 등 다양한 분야, 전 시기의 유물을 망라하고 있다. 이 중 8점이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31점이 중요미술품으로 인정되는 등 모두 39점의 유물이 일본의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개인의 수집품으로는 수량이 방대하고 종류가 다양하며, 은평탈육각합(銀平脫六角盒) 등 현재까지 한반도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재도 포함되어 있어 오구라 컬렉션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화재청, “내부용 책자만 오류”

이에 대한 2014년 1월 문화재청의 공식 답변은 다음과 같다.

* 처리기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 처리결과(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국립문화재연구소 업무에 대한 혜안과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잘못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리며, 잘못 표기된 도록은 회수·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적해 주신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는 2007년 추가 인쇄본(비매품)입니다. 물론, 2005년 초판본은 올바로 인쇄되어 외부 각 기관에 배포가 되었습니다. 내부용으로 소량 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지적해 주신 잘못이 발생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보고서 제작 시 더욱 신중을 기하여 철저하게 교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임○○(042-○○○-○○○○, ○○○@korea.kr)에게 연락 주시면 성실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러한 문화재청의 답변에 혜문 스님은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외에서 해당 도록에 대한 수요가 많이 생겨 추가로 책을 만든 것인데 내부용이라고 발뺌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더욱이 이미 인쇄되어 흩어진 책을 어떤 방식으로 회수·수정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부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책자를 발견했으며 일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나”라며 “책임을 면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문화재청 인터넷 사이트에 잘못을 시인하고, 잘못된 책을 바꿔준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야 하는데 (그런 노력 없이) 밖으로 이런 실수가 새나갈까 봐 쉬쉬하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도 문제지만, 이번에 공식적으로 오탈자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누구도 문화재청에 시정을 요구한 사람이 없는 것도 놀랍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거꾸로 보는 책 발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 한국고대문자전》 도록. 114~115쪽.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이 거꾸로 인쇄되어 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2011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을 개최했다. 당시 특별전에는 한반도에 문자가 수용된 이후, 통일신라와 발해 시기까지 문자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했다.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중앙박물관은 《문자, 그 이후》 도록을 발간했다. 해당 특별전의 백미(白眉)는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이었다.

논란은 《문자, 그 이후》 도록이 광개토대왕 원석탁본을 거꾸로 인쇄해서 책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문도 읽을 줄 모른다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결국 2012년 3월 혜문 스님은 “오류를 시정하고 이미 판매된 서적을 회수하라”는 요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달했다. 이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해명은 이렇다.

우리 관에 애정을 가져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도록 《문자, 그 이후》에서 광개토대왕비 탁본 전문이 실린 부분은 116~123쪽입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광개토대왕비 내용의 중간표지에 해당하는 114~115쪽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탁본의 전문을 실은 것이 아니며, 4면 중 한 면의 일부 부분을 사진에 기교를 부리어 디자인적인 측면을 강조한 부분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진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광개토대왕비 연구와 관련하여 중요한 부분은 4면 전부를 상세하게 게재한 부분으로 이 부분에 사진의 오류는 없었습니다.
특히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 4면 전체가 국내에 사진으로 정식 출간되어 소개된 것은 도록 《문자, 그 이후》가 최초였습니다. 이 점은 관련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중략)
이처럼 《문자, 그 이후》는 자료공개 및 연구사상에 있어 장점도 많은 도록입니다. 도록의 판매중단 및 폐기는 다른 유물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차단하게 됩니다.
본질적 문제가 아니지만 사진의 오류는 제2판 시에 교정하도록 하겠으며, 금후 오류를 줄이도록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너그러운 혜량으로 금후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본 건과 관련해 추가 문의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로 문의하여 주시면 친절히 안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봐야 하는 도록이 있다’며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한 달 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제 서적 수거를 약속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해명은 이렇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역사부

광개토대왕비 탁본 게재 오류에 대해선 수정판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에 기 출간된 도록에 대해선 출판사를 통해 수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기 판매된 도록도 수정판 출판 후에 출판사를 통해 교환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오류 사항에 대해 지적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단순히 오탈자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은 법까지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실이 작년 말 문화재청에 창덕궁 건축물대장을 요청한 결과,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창덕궁의 전체 건축물 137개 중 13%인 18개의 건축물이 건축물대장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법에 따르면 국가 문화재도 건축물대장을 발급받고, 등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적시되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창덕궁 내 건축물대장에 없는 주요 건축물은 보물 814호로 지정된 선정전, 숙장문, 진선문, 호위청, 동행각, 남행각의 일부 등 18개에 달했다. 당시 국회에서 건축물 등록도 하지 않고 문화재를 관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문화재청은 “건축물대장에 없는 것에 대해 해당 구청과 협의하겠다”고 해명했다.

교과서 誤謬는 더욱 어이없어

‘현대음악’이 발행한 《중학교 3학년 음악》 교과서 66쪽. 명성황후를 명성왕후로 오기.

국회, 언론 등에서 논란이 되어야 시정에 나서는 곳은 문화재청뿐만이 아니다. 교과서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 예로 2013년 3월 발행된 중학교 음악 교과서가 있다. ‘현대음악’이 발행한 《중학교 3학년 음악》 교과서 66쪽에는 뮤지컬을 설명하면서, 뮤지컬 <명성황후> 사진을 설명 자료로 게재, ‘명성왕후’라고 오기하는 실수를 범했다. 명성왕후(明聖王后·1642~1643)는 조선 현종의 왕비로 고종의 왕비였던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와는 전혀 다른 인물임에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해당 교과서는 2011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검정을 거쳤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담당 교육연구사는 오류 수정을 요구하는 민원인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교육부 교과서 기획과입니다.
지적하신 내용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해당 발행사에 전달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오류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담당 출판사에 ‘안내’하는 데 그치겠다는 태도다. 사실 교과서 오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유사한 사례는 많다. 2013년 3월 지학사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미술》 29쪽을 보면 <산신도>를 소개하면서 <사신도>라고 오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해당 사진은 시험 문제로도 출제될 수 있어, 교과서에 나온 대로 학생들이 그림을 이해할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다.

‘지학사’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미술》 29쪽. <산신도>를 <사신도>로 오기.

문제는 이렇듯 한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오류에 대해 정부는 교과서 발행사에 ‘안내’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서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들은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은 항상 결정적인 부분에서 실수를 한다”며 관계 기관의 무성의한 태도를 질타했다. 나아가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매우 실망스럽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화재청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은 단지 숭례문 부실 복원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성의 없는 태도가 쌓인 결과로 보아야 한다. 과연 언제쯤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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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의 끝나지 않는 ‘헛발질’

전통문화 대표 기관의 부끄러운 실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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