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곽노현의 서울형 혁신학교 3년, 그 두 얼굴 : 월간조선

2014년 첫째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박모씨는 작년 10월 지인의 집으로 주소를 옮겼다. 현재 사는 서울 집에서 배정받을 초등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여서 이를 피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혁신학교를 왜 피하고자 했을까. 혁신학교인 판교 보평초등학교는 소문을 듣고 온 열성 학부모들로 이미 과밀학급이다. 인근 아파트는 보평초에 아이를 보내려는 엄마들 때문에 전셋값이 강남 수준으로 올랐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혁신학교는 억대의 정부 지원도 받는다. 그는 이 같은 필자의 말에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제 주변에선 시험도 없고 공부 안 시키고 전교조 많다고 다들 (혁신학교에) 안 보내고 싶어해요. 또 경기도 혁신학교와 서울 혁신학교는 상황이 완전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시험 없고 상 없는 초등학교 다니다가 일반 중학교 가서 어떻게 적응하나요. 보내 본 친구는 아이가 시험 볼 줄을 몰라 학원에서도 적응 못하고 전학시켰는데도 고생한다고 하더라고요. 사립초 추첨도 떨어지고 나니 팔자에 없는 위장전입까지 하게 됐네요. 혁신학교 안 보낸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하는 사람도 봤어요. 주소만으로 배치되는 공립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면 원치 않는 사람은 그냥 이사 가라는 건지 답답하네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주력사업이었던 ‘서울형 혁신학교’는 방만한 예산집행과 타 학교에 비해 떨어지는 학력 등이 수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혁신학교를 옹호하는 측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모든 주체가 행복한 학교”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11년 시작된 서울형 혁신학교

혁신학교는 2000년대 후반부터 경기도 등 일부 지방에서 운영돼 왔지만 서울에서 시작된 것은 2011년이다. 현행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2010년 교육감 선거 당시 내걸었던 공약 중 하나다. 서울형 혁신학교란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주체가 돼 학교를 변화시키자는 문화운동’이라고 서울시교육청은 소개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50% 이상이 혁신학교를 찬성하면 혁신학교로 신청할 수 있고, 허가받으면 4년간 교육운영 자율권이 부여된다. 초·중·고 모두 조건에 맞춰 신청하면 혁신학교 지정을 받을 수 있으며, 서울형 혁신학교는 2011년 23곳으로 시작해 현재 61곳이다. (다음쪽 표 참조)

서울시교육청 측은 “학교장과 구성원의 혁신학교 운영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학교의 여건이 다소 불리하거나 소외 학생이 많은 학교가 우선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또 혁신학교는 공모를 통해 선정 후 지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학교 여건 및 교육정책상 필요한 경우에 한해 교육감이 임의 지정할 수 있다. 실제로 교육여건 또는 경제여건이 다소 소외된 지역에 다수 지정돼 있다.

혁신학교는 학교마다 유형이 조금씩 다르지만 매년 교육청의 지원금이 제공되며, 대부분 중간·기말고사와 상이 없고 현장학습 비중을 늘리는 등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다. 국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교재를 쓰는 경우도 있다. 모든 교육을 학교 자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혁신학교는 주변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지친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근처로 이사하는 일이 많아져 12~2월에 걸쳐 학교 인근 아파트 전세매물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경기도 일부 신도시, 은평뉴타운 등이 혁신학교와 관련한 수혜지역으로 꼽히곤 했다.

일부 지역은 ‘혁신학교 특수’도

혁신학교는 교사와 학생뿐 만아니라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실제로 성동구의 행현초와 금옥초, 동작구의 상현초 등은 연말 연초면 인근 전셋집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성동구의 행현초등학교 주변도 혁신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들로 연말이면 아파트 전세를 찾기 힘들 정도다. 또 행현초에 배정받을 수 있는 아파트와 다른 초등학교로 배정받는 아파트의 전세가가 같은 평수 기준으로 3000만원 이상 차이 난다. 성동구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 평균이 20.6명이지만 행현초의 학급당 학생수는 30명이 넘는다. 행현초의 한 교사는 “과밀학급 논란도 있지만 매년 입학생 수가 늘고 전학생도 끊임없이 오고 있다”며 “혁신교육을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수가 25명 이하인 것이 바람직한데, 학생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우려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2012년 개교와 동시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상도동 상현초는 인근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교육여건을 만들고자 한 주민들의 요청으로 지정된 경우다.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 예정이던 주민들은 개교 전부터 교육청에 혁신초 지정을 요청했고, 입주 예정 세대의 75%가 이에 서명하기도 했다.

상도동의 한 부동산 사무실을 찾았다. 공인중개사 김민호씨는 “상현초에 배정받는 엠코와 래미안은 입학 시즌을 앞둔 겨울이 되면 전세를 구하기 힘들고 가격도 강남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혁신학교가 대부분 소외지역에 지정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새 아파트에 학원가도 형성돼 있고 교육여건이 좋아 혁신학교를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상현초를 제일 먼저 알아본다고 합니다.”

강남에선 혁신학교 기피현상

서울시의회 행정감사에 참석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시의회와 교육청은 혁신학교와 관련, 2014년 서울시교육청 예산안을 놓고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 등의 부유층과 중산층에게 혁신학교란 기피대상 또는 ‘잠깐 보내 볼 만한 곳’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혁신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냈다 3학년 때 강남의 초등학교로 전학시킨 학부모 김모씨의 이야기다.

“혁신학교에 뭘 믿고 보내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릴 때라도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험도 없고 상도 없고 대체 학교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같은 학교 친구들도 고학년 때는 많이 전학간다고 해요. 중·고·대학까지 혁신학교만 갈 것도 아니고, 현행 입시제도에 적응해서 대학 가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강남·서초·송파·광진·양천구 등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학교에 대한 선호도는 학급당 학생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학군을 고려한 이사와 위장전입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으며 선호도가 높은 학교는 학급당 학생수가 많다.

강남교육청(강남·서초) 산하 혁신학교는 단 세 곳. 강남의 한 혁신초등학교는 학급당 학생수가 19.3명에 불과하다. 학급당 학생수가 강남구 평균이 25.3명, 서초구 평균이 27.4명이며, 한 반 40명에 육박하는 과밀학교도 많은 이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치다. 혁신중학교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강남·서초구 평균이 33명인 가운데 혁신중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28명에 그쳤다.

강남 혁신학교 인근에 집을 알아보러 다녔던 회사원 강모씨의 얘기다. “학교 가까운 대단지 아파트를 알아봤는데 단지의 절반이 임대주택이더라고요. 솔직히 그래서 혁신학교가 됐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아이가 학교 들어갈 때가 됐는데 면학 분위기는 좀 부족할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혁신학교 교원 배치시 지원자 우선, 전교조 비율 높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2011년 ‘서울형 혁신학교’를 만들었지만, 선거당시 후보자 매수 혐의로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취재 중 혁신학교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는 학력에 대한 우려와 교사들의 성향 때문이었다. “혁신학교의 특징이 학교 자율적으로 교육한다는 건데 전교조 교사가 많으면 결국 뭘 배우겠느냐”는 것이었다.

61개 혁신학교 중 18개 학교는 교원의 전교조 가입 비율이 30% 이상이다. 양천구의 신은초등학교는 전교조 비율이 71%에 달한다. 서울시내 초등학교의 전교조 교사 비율이 6.7%인데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혁신학교는 공립학교지만 일반적인 교사 배치 방법인 주소지 우선 무작위 배치가 아니라 지원을 받아 지원자 우선으로 배치하기 때문에 특정 성향의 교사들이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한국교육개발원을 통해 2013년 전국 혁신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의 만족도는 높은 반면 학부모의 만족도는 그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57개 학교의 교사 758명과 학부모 53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전반적으로 우리 학교에 만족한다’는 답이 교사는 80.9%에 달했지만 학부모는 68.0%에 그쳤다. 교사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 조사를 실시한 나민주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의 얘기다. “교사들은 교직원의 협력적 업무처리, 배움 중심의 교육과정 등에 점수를 높게 주며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학부모의 만족도가 그에 못 미친다는 것이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학교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반면 사교육비 경감, 면학분위기 강화, 학업성취도 향상 등의 분야에서는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어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에서는 ‘동아리활동과 체험학습 등을 중심으로 수업하면서 기초학습이 부족해져 학원과 학습지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혁신학교의 기초학력이 일반학교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이 2013년 말 작성한 <혁신학교 운영현황>에 따르면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일반학교보다 높았다. 초등학교의 경우 일반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국어 0.7%, 수학 1.3%인데 비해 혁신학교의 비율은 0.8%, 1.7%로 높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져 일반고등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국어 4%, 수학 7.1%인데 비해 혁신고등학교는 6.7%, 10.5%에 달했다.

3년간 예산 240억원 지원, 시행 4년 만에 사라질 위기

동작구의 상현초등학교는 주변 집값을 끌어올릴 정도로 성공한 서울형 혁신학교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혁신학교에 239억7100만원을 지원했다. 각 혁신학교는 매년 약 1억5000만원씩을 지원받았다. 서울시는 2011년에는 지원하지 않았지만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인 2012년 5억8000만원, 2013년 6억7000만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 지원금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2013년 교육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서울 A학교는 혁신학교 예산 중 빵집과 피자집 등의 간식비로 3000만원 이상을 사용했으며, B학교는 업무추진비와 교사연수 관련 비용으로 3500만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눈썰매장 등 현장학습 비용과 학교 기본경비인 전기요금 등으로 사용한 혁신학교도 있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의 얘기다. “교육청의 학교 기본운영비 총량은 제한적인데 일반학교로 갈 예산을 혁신학교에 지급한 건 엄청난 특혜입니다. 교육과정을 혁신하기는커녕 돈이 남아 어쩔 줄 모르는 형국 아닙니까. 혁신학교를 지정하고 지원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형평성의 문제도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제도가 계속 유지돼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현행 서울형 혁신학교 중 3곳은 자진 지정취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혁신학교의 교사는 “학력에 문제가 있다는 학부모들의 압력에 시달려 지정취소를 신청할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혁신학교라는 게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혁신학교가 아니길 원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2014년 혁신학교 지정과 신청을 아예 받지 않았다. 2011년 처음으로 지정받은 혁신학교도 2014년 말이면 지정이 해제된다. 혁신학교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문 교육감은 점진적으로 혁신학교를 없애 나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동안 곽노현 전 교육감의 ‘교육실험’에 수백억 원을 지원한 것일까.⊙

서울시의회-서울시교육청의 예산 파행 원인이 된 혁신학교 문제

법정처리 기한에 따르면 2013년 12월 16일 통과됐어야 할 서울시교육청 예산안이 한 달이 지난 1월 중순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는데, 서울시의회는 임의 증액과 감액 끝에 7조4391억원의 예산안을 12월 30일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동의없는 예산 증액 및 감액”이라며 부동의(不同意)권을 행사한다고 밝혔고, 1월 22일 공식적으로 예산안을 되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계획이다.

시의회는 ▲초등돌봄교실(15억원) ▲장애특수학교설계비(10억원) ▲중1집중학년제 연구학교(8억1000만원) 등은 감액했고, ▲비정규직 처우개선비(21억원) ▲혁신학교 등 혁신지구 지원(12억원) ▲교무행정지원사 인건비(11억원) 등은 증액했다.

서울교육청이 가장 문제 삼은 것은 혁신학교 지원금액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 편성 당시에도 혁신학교를 둘러싼 논쟁은 치열했다. 문용린 서울교육감은 “혁신학교 1곳당 (평균) 6000만원 이상은 절대 불가” 방침을 밝혔고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에서는 “예년처럼 1억4000만원씩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교육청은 혁신학교 지원예산을 6000만원으로 한 예산안을 제출했고 시의회는 대신 ‘혁신교육지구’ 지원예산을 교육청의 안(案)보다 2배 이상 늘린 22억원으로 증액시킨 것. 양쪽 다 고집을 꺾지 않은 것이다. 또 교육청 측은 혁신학교 문제 외에도 이른바 ‘쪽지예산’인 시의원들의 민원성 예산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며 부동의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재의요구 후 시의회가 같은 내용으로 재의할 경우 대법원에 제소하는 길밖에 없다”며 “그 전까지 의견조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