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취재] MB가 BBK에 발목 잡힌 속사정 : 월간조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책임져야 해요.”

지난 3월 말 충남 천안교도소 면회실에 나타난 수형번호 1896 김경준 전(前) 옵셔널벤처스 대표(47·이하 존칭과 직함 생략)는 기자와의 짧은 면회 시간 동안 “속았다”는 단어를 반복 사용했다.

재미동포 김경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이미 마무리됐다. 2009년 5월 28일 대법원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및 벌금 10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2007년 11월 16일 지난 17대 대선을 불과 32일 남겨 놓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김경준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李明博·약칭 MB)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김경준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위 ‘BBK의혹’에 목을 매고 있었다.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명박 후보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정권의 잇따른 실정(失政)으로 민심에서 멀어진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측은 BBK네거티브 전략에 올인(all in·다 걸기)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검찰과 특별검사는 “‘이명박 후보 역시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김경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그 후 검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하는 측은 “김경준은 사기꾼일 뿐이다”며 의혹을 일축했고, 반대측은 “수사 자체가 정치적이어서 믿을 수 없다”며 인터넷, 팟캐스트(온라인 방송) 등을 이용해 의혹을 확대 재생산해 왔다.

사법기관의 결정에 승복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연 사법기관이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수사를 해도 국민들이 수긍할 수 없었다. MB는 이제 대통령직에 물러났다. 음모론에 대해서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고, MB가 잘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BBK 사건을 확인취재했다.

김경준, “MB도 잘못했다” 주장

2007년 11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시민들이 BBK 김경준에 대한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열고 있다.

김경준은 아직까지 한국 검찰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려 하고 있다. 김경준에게 한국 사법기관의 결정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 국민들이 MB 잘못한 부분을 알아야 해요. (의혹을 제기해도 나는) 이득이 될 것이 없어요. 형이 이미 확정되었고 대한민국은 저에게 잘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다만 MB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입증, 확증하고 싶어요. 또 제가 13년의 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정리하면, 김경준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주가조작에 책임이 있는데 함께 처벌받지 않아 억울하고 혼자 뒤집어쓴 형이 과도(過度)하다”고 주장한다. 김경준이 13년의 형을 살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에서의 수형기간, 벌금 미납으로 인한 노역장 유치(留置) 등을 모두 합산했기 때문이다.

소위 BBK 의혹은 2007년부터 수많은 언론사가 추적 보도했다. 작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관련 책 출간(出刊)이 붐을 이뤘다. 검찰 출입기자들이 사건을 정리한 《BBK취재파일》, 미국 옵셔널벤처스 변호인의 《이명박과 에리카 김을 말한다》, 김경준이 직접 저술한 《BBK의 배신》 등이 나왔다. 기자는 한국과 미국의 수사·재판 기록과 관련 출판물을 입수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경준은 작년부터 언론사, 정치권에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편지를 보냈다. 기자는 백여 장 분량의 편지도 정독했다. 김경준의 주장뿐만 아니라, 옵셔널벤처스 변호인, 금융·조세 전문 변호사, 사건 관련 정치인들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했다.

2007년 이후 BBK 의혹과 관련, 수많은 문건과 증언의 폭로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워낙 사건이 복잡하고 폭로가 중구난방(衆口難防)이어서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까지의 보도가 세세(細細)한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취재는 넓은 시야(視野)로 사건의 큰 틀을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또 사건과 관련해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혹을 정리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BBK투자자문(주)
2007년 11월 5일 통합신당은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이 공모해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했다’는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시켰다. 즉 사건의 핵심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이었다. 사건의 공식 명칭 역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등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옵셔널벤처스’는 낯설다. 오히려 BBK가 익숙한 단어이다.

사건이 BBK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주가조작 사건을 연결시키려는 정치권의 네거티브(negative) 전략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통합신당은 “BBK투자자문은 이명박 후보의 소유이며 BBK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옵셔널 사건’이라고 불리지 않고 ‘BBK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은 사건 자체가 MB를 조준(照準)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 4월 27일 설립된 BBK투자자문주식회사 정관은 사업의 목적을 ‘투자자문업과 부수(附隨)되는 사업 일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BBK 투자설명 자료집에는 ‘국내 최고의 펀드매니저를 확보하고 있는 BBK투자자문. 이제 투자는 BBK투자자문 하나로 통합니다’라고 기술돼 있다. 김경준은 자신의 투자방식을 “어떠한 경우에도 원금손실이 없는 리스크 제로의 투자기법”이라고 주장했다. 간단히 ‘투자자가 돈을 맡기면 돈을 불려서 수수료를 떼고 돌려주는 사업’이다.

BBK사건의 핵심은 ‘BBK투자자문 실소유주’ 규명이었다. 2007년 12월 5일 검찰은 수사발표에서 “BBK는 김경준 소유”라고 결론지었다. 다음은 발표 내용이다.

“BBK는 김경준이 1999년 4월경 자본금 5000만원으로 단독 설립했고, 1999년 9월 23일 투자자문업 등록을 위해 30억원을 증자하는 과정에서 창업투자회사인 이캐피탈이 30억원을 출자해 98.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2000년 3월 9일 그 지분을 모두 김경준에게 매도해 이후 김경준의 1인 회사로 운영돼 왔다.”

MB, BBK 개입의 흔적들

2008년 1월 특별검사 조사를 받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 김경준.

투자자문업은 속칭으로 ‘돈 장사’라고 불린다. 투자자문업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많은 시사(示唆)점을 준다. 장사의 기본은 역시 판매(sales)이다. 투자자문업 역시 다르지 않다. 아무리 투자회사가 ‘원금손실 가능성이 제로인 투자기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객이 돈을 맡겨야 운영이 가능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투자 유치에 깊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다. 김경준이 “MB는 동업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기자가 입수한 김경준 자필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BBK가 삼성생명 빌딩에 입주할 당시에 자본금 5000만원짜리 회사였습니다. MB가 없었으면 입주가 불가능했습니다. MB가 삼성생명 빌딩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 사무실 역시 삼성생명 빌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BBK 사무실에 와서 저와 의논한 후 삼성생명 투자 유치를 위해서 이수빈 회장과 배정충 사장을 수차례 만나서 설득하고 그 후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그간의 정황으로 보아 이러한 투자 유치 과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BBK는 투자금으로 712억원을 유치했다. 투자자에는 삼성생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2000년 2월 삼성생명은 100억원을 BBK에 투자했다. 그러나 2001년 1월 삼성생명은 BBK가 자산운용 실적을 위·변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금감원에 범죄사실을 신고했다. 삼성생명은 3월 2일 수익금 23억원을 포함해 투자금을 회수했다. 삼성생명이 발을 빼자 투자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투자실적도 저조해 원금을 까먹는 상황이었다.

또 MB와 BBK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문건으로 심텍의 김경준, 이명박 고소 사건 관련 자료가 있다.

2001년 10월 10일 심텍측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심텍의 내용증명은 김백준 부회장을 거쳐 MB에게 전해졌다. 김백준씨는 1970년대 외환은행 런던지점에서 근무한 금융전문가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 대통령실 총무기획관을 역임했다.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며, BBK 당시 MB를 대신해 업무를 수행했다. 다음은 내용증명의 주요 내용이다.

<심텍이 BBK에 투자 의뢰한 이유는 3가지로 첫 번째는 이명박 회장님께서 최종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기 직전인 작년에 직접 전화를 하여 본인이 BBK 회장으로 있다고 소개를 하였으며 BBK 영업부장인 허○○를 통하여 여러번의 식사 초대를 제의하여 2001년 9월 27일 BBK 사무실과 중식당에서 미팅을 하였고 그때 동석하였던 심텍의 자금부장인 김○○와 비서인 김○○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BBK 회장으로 있으며 대주주로 있으니 나를 믿고 투자를 하면 된다’라고 강조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전○○ 사장은 누나인 전○○씨와 김현옥 여사(김윤옥 전 영부인의 오기로 추측) 두 분의 전화통화 중에 ‘우리 남편이 BBK에 대주주로 있고 투자를 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투자해도 좋다’는 내용을 확인하였으며,

세 번째는 이명박 회장님의 사진이 실린 회사 카탈로그에 무위험 고수익 펀드, 즉 원금을 보장하는 펀드라는 말을 믿고 투자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심텍이 이명박 회장님을 믿고 투자한 것이지 만일 이명박 회장님과 측근들인 김백준 부회장 등이 이 회사를 운영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심텍이 투자했을 리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을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eBANK 명함.

2001년 10월 31일 심텍은 김경준, 이명박, 김백준을 사기 등으로 고소했다. 나아가 심텍은 이 전 대통령 재산에 대해 가압류 조치했다. 사건은 김경준이 투자금 반환을 약속하고 심텍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무혐의로 처분됐다. 내용증명이란 보내는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이를 100% 믿을 수는 없다. 다만 허위 사실로 협박을 하면 무고죄(誣告罪)로 벌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MB가 투자에 어느 정도는 개입됐다는 의심을 가지기 충분하다.

심텍 사건 이후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 회사 돈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옵셔널벤처스측은 김경준을 횡령 등의 혐의로 미국 사법기관에 고소·고발했다. 미국 옵셔널측 메리 리 변호사는 심텍 관련 의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왜 심텍은 MB를 회장이라고 불렀나요.

“검찰이 BBK는 김경준 소유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서류상으로는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MB는 BBK의 지주회사 격인 eBANK 회장이라고 불렸어요. 명함 역시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심텍이 MB가 BBK 회장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죠.”

—심텍 고소·고발 사건에서 검찰은 ‘이명박은 혐의가 없고, BBK는 김경준 것이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실제 김경준 역시 당시 검찰 조사에서 ‘BBK는 내 것이다’라는 취지로 증언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MB는 당시 서면 조사에 그쳤습니다. 내용증명을 보낸 심텍측의 전모 회장은 조사도 하지 않았어요. 당시 MB는 재산이 가압류되었고 김경준은 긴급체포되었어요. MB의 도움이 필요했던 김경준이 뒤집어쓴 것이었죠.”

메리 리 변호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EBK&BBK&LK 전화번호 내부 구성도’를 제시했다. 전화번호 내역을 보면 MB가 BBK투자자문, LKeBANK, eBank 등의 회사를 모두 총괄하는 회장이라고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회장 직함을 사용한 MB는 가장 앞 번호인 구내번호 222번을 사용했다.

MB가 발목 잡힌 이유

MB가 자신의 회사도 아니면서 BBK 투자금 유치에 발 벗고 나선 이유와 관련해 무수한 의혹과 폭로가 있었다. 좌파성향 인터넷 매체, 반(反)MB 세력 등은 MB가 BBK를 통해 비자금을 돈세탁했고, BBK 수익금의 상당 부분이 MB에게 흘러가도록 이면계약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검찰은 이러한 주장들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수사 과정, 관련 자료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전 대통령이 BBK에 발목이 잡힌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다스의 돈 190억원이 BBK에 묶여 있었다. 다스(舊대부기공·2013년 3월 다스로 상호변경)는 1987년 7월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사망)가 설립한 자동차부품회사이다. 다스는 2004년 4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총 4회에 걸쳐 190억원을 BBK에 투자했다. 현재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가 총괄기획과장으로 다스에 근무하고 있다.

사실 2007년 BBK 의혹의 핵심에는 다스가 있었다. ‘MB 소유인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으니 BBK 역시 MB 소유’라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다스측은 “다스는 이 전 대통령과 무관한 회사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다스가 MB 소유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다스가 190억원을 투자할 때 MB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MB가 190억 투자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심텍에 들인 노력을 볼 때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나아가 MB 입장에서 다스 투자금 190억원에 손실이 생기거나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나와는 상관없다’고 할 수도 없다. 어찌 되었건 MB가 책임져야 할 돈이었다.

둘째,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과의 인간관계가 있었다. 에리카 김은 김경준의 한국 사업에 한 축을 담당했다. 기자는 미국 LA 한인 언론사 기자, 현지 변호사 등을 통해 MB와 에리카 김이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였는지 복합적으로 취재했다. 또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던 정치인과 접촉해 김경준과 에리카 김과 관련한 폭넓은 설명을 들었다. 취재 결과 MB와 에리카 김이 ‘상당히 가까운 관계’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 에리카 김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MB와의 친분을 숨기지 않았다.

MB, 경력 홍보에 BBK 활용

2001년 11월 심텍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을 가압류하자 이 전 대통령이 김경준에게 보낸 편지.

셋째, MB의 정치로드맵과 관련이 있었다. MB는 1996년 4월 제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종로구를 지역구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이 문제가 되어 그해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결국 1997년 9월 서울지방법원은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했다. MB는 1998년 2월 서울시장 출마 등을 명분으로 의원직을 사퇴했지만 그해 4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유죄 선고를 받자 시장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외유(外遊)를 떠났다. MB는 1999년 12월 귀국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당했던 MB는 2000년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어 못다 이룬 서울시장의 꿈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시장을 넘어 대통령을 꿈꾸었던 MB에게는 경력과 홍보가 필요했다. 광복절 특사 이후 MB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이름을 알렸다. 대학 강연까지 나섰다.

“나는 어차피 정치방학이 2~3년 갈 것으로 보고 그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지난해 초에 벌써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묻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자문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증권회사입니다. 그래서 설립한 것입니다.”(2001년 《월간중앙》 3월호 인터뷰)

“전 요즘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했습니다.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한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로 생각을 해서 지금 정부에다가 제출해서 며칠 전에 예비허가가 나왔습니다.”(2000년 10월 광운대 특강)

MB의 언론 인터뷰는 이외에도 많다. 이들 보도는 ‘BBK는 MB소유다’는 증거자료로 폭로됐다. 그러나 광고에는 과장이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서울시장 출마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포장이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이 BBK에서 발을 빼기 힘들게 만들었다.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주인공 ‘이명박’이라는 이름이 주는 명성을 보고 BBK에 투자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가정(假定)이지만 만일 당시 BBK 투자자들이 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2002년 MB는 서울시장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복잡한 소송에 엮여서 MB가 재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MB에게 있어 BBK 투자금 반환은 절박한 사안이었다. 자신과 관련한 다스 190억원뿐 아니라 나머지 투자금 역시 반환이 절실히 필요했다.

갈라선 MB와 김경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준이 갈라서기 시작한 것은 BBK가 제대로 투자 수익을 내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김경준이 애초에 공언한 ‘원금손실 가능성이 제로인 투자기법’이 성공했다면 아무 문제나 잡음 없이 BBK사업은 마무리됐을 것이다. 그러나 손실은 늘어나고 삼성생명의 제보로 금감원 수사까지 시작되자 김경준은 출구(出口)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갈라서는 순간 이 전 대통령과 김경준은 서로 다른 셈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MB 입장에서 김경준은 ‘배은망덕한, 책임을 모르는 사업가’였다. 사업자금을 마련해 준 MB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김경준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경준 입장에서는 MB의 원금상환 요구는 투자의 기본을 모르는 행동이었다.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risk·위험)가 따르기 마련이다. 손실이 발생하면 손실을 제외하고 남은 돈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펀드 등에 투자했다가 반토막 나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이다.

사실, 법률적으로 보면 김경준의 생각이 타당하다. 검찰의 판단도 같았다. 김경준이 다스를 상대로 투자 유치한 190억원 가운데 140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2007년 12월 검찰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주식회사 다스를 상대로 190억원의 투자금을 편취했다는 점은, 받은 돈 50억원만 반환하고 나머지 140억원을 돌려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그 돈을 받아 역외펀드를 통해 주가지수 선물이나 주식 거래 등에 투자했던 사실이 확인되고 처음부터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볼 확증이 없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리했습니다.”

주가조작 사기로 BBK 투자금 회수

투자전문가 김경준이 투자손실을 보전해 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김경준은 BBK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줬다. 검찰조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스측에도 50억원을 반환했다. 그 반환금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기로 마련한 돈이었다.

다양한 사기 기법이 총동원된 옵셔널 주가조작 사건으로 소액주주 5200명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600억~700억원대로 추산된다. 2001년 12월 김경준은 주가조작과 횡령 등의 방법으로 380억원을 미국과 스위스로 빼돌리고 미국으로 도망했다. 김경준은 출국 전 BBK 투자자들에게 220억원을 돌려줬다. 다스는 그 후 남은 140억원까지 미국과 스위스에서의 소송을 통해 회수(回收)했다.

결과적으로,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과 횡령 등을 통해 마련한 돈의 절반은 미국으로 빼돌리고, 나머지는 BBK 투자자들에게 반환하는 데 사용했다.

140억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미국 재판기록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스의 140억원 부분이다. 한국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린 사안으로 김경준측이 내놓지 않고 버텨도 되는 돈이었다.

기자가 입수한 2012년 2월 에리카 김의 법정 증언 자료를 보면 다스와 김경준측이 모종의 합의를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내용이 있다. 에리카 김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11년 1~2월경 다스와 에리카 김은 다스의 소송과 압류 절차를 중단하는 비밀 합의(confidential settlement)에 도달했다. 2012년 2월 합의에 따라 다스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다스의 소송을 중단했다. 그 결과 스위스 계좌가 동결 해제되었다. 스위스 계좌에 묶여 있던 돈은 스위스법에 따라 다스에 이체되었다.”

이와 관련해 옵셔널벤처스를 대신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시키고 있는 메리 리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옵셔널벤처스의 돈을 BBK가 가져갔습니다.

“BBK가 가져간 돈은 원인무효입니다. 미국 법원에서 다스가 가져간 140억원은 무효라는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왜 한국에서 다스를 포함한 BBK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MB가 권좌(權座)에 있는 동안 한국법과 한국 검찰을 믿지 않았습니다. 옵셔널벤처스가 한국 검찰에 미국에서 승소한 배상판결을 집행해 달라고(돈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한국 검찰은 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다스가 회수한 140억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스가 스위스에 독자적으로 소송을 해서 회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치 다스가 김경준측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송을 통해 적법하게 140억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미국 소송 기록을 보면 김경준과 에리카 김측은 다스와 비밀합의를 했습니다. 스위스계좌의 돈은 옵셔널벤처스 돈을 횡령한 자금입니다. 스위스 계좌는 김경준과 에리카 김이 공동 계좌주(主)로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에게 돌려줬어야 했을 돈이 엉뚱하게 다스에 보내진 것이죠.”

김경준 입장에서는 돌려주지 않아도 될 돈을 BBK 투자자에게 돌려줬으니 최소한 BBK 투자자들에게는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사기친 돈을 나눠 가졌으니 MB 역시 자신의 주가조작 사기 범죄의 공범(共犯)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김경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기에 MB가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MB가 파렴치 경제범죄인 주가조작을 김경준에게 지시했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다만 ‘일련의 주가조작이 벌어지고 있는 과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MB는 자신의 집사였던 김백준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BBK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만일 김씨가 일련의 사기행각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MB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면, MB는 참으로 무능한 사람을 측근으로 거느리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외환은행 출신으로 런던지점에서 조사역을 지냈고 다양한 금융회사를 거쳤던 김백준씨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지냈다.

김경준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

김경준은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번복하기를 반복했다. 또 수차례 정치권과 협상을 시도했다. 2007년 대선이 임박할 무렵 김경준을 미국에서 만났던 정치인 A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씨는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다.

—장소는 어디였나요.

“김경준이 미국 교도소에 있을 당시, 김씨의 변호사와 함께 만났습니다.”

—김경준이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저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어요. 우선 미국에서의 소송비용이 없다며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를 사면 복권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소송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대답했나요.

“돈은 빌려주고 싶지만 빌려줄 돈이 없고, 사면복권 문제는 권한 밖이라 해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송비용은 한국의 경우 전관예우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생각하면 3억원에서 최대 5억원까지는 필요할 거라고 말해 줬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본인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도와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근혜측 A씨만이 아니었다. 이명박 후보측도 여럿 김경준을 만났다. MB의 대선 캠프 측근이었던 신재민 특보 역시 김경준을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준의 일련의 행보를 볼 때 자신에게 유리하면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김경준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으로의 이송이다. 왜 김경준은 미국 교도소로 옮기고 싶어하는 것일까. 김경준은 미국에 있는 아내와 딸을 자주 면회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김경준이 미국으로 이송될 경우 풀려날 가능성이 많다. 이와 관련해 메리 리 변호사는 “이미 김경준은 미국에서 수형생활을 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송되면 과거 미국 수형기간만큼 감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경준의 반론

기자는 지난 4월초 수감 중인 김경준에게 여러 의혹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4월 16일 오전에 도착한 답변서에서 김경준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고통을 겪은 옵셔널벤처스 소액피해자들에게 사죄할 생각은 없나요.

“소액피해자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하셨는데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이라는 사람들은 미국과 한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입니다. 미국 소송은 옵셔널벤처스 법인이 하고 있습니다. 현 옵셔널 주주들은 2002년 7월 주식을 헐값에 매수한 투기꾼입니다. 다음으로, 한국에서 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법원은 이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저는 이미 대한민국에 수차례 사죄를 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스 투자와 MB는 어떤 관계인가요.

“다스 투자를 받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MB였습니다. 저는 다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MB는 다스를 ‘경주에 있는 내 회사’라고 설명하면서 ‘돈을 옮길 테니 받으러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 다스 사장과 전무는 모두 현대건설 출신이었습니다.”

—2001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에 심텍에 35억원을 변제(辨濟)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심텍의 자금은 투자계약서에 따라 투자되었기에, (상환요구에 응할)아무런 법률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MB가 이런 사실(심텍의 고소)들이 보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여서 심텍 투자금을 미리 ‘상환’한 것이지 심텍으로부터 빌린 돈을 ‘변제’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스가 스위스 비밀계좌에서 가져간 140억원은 부당이득이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거는 무엇인가요.

“다스와 MB는 법률상 원인 없이 불법으로 저로 인하여 얻은 140억원을 반환해야 합니다.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을 할 때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밝히겠습니다.”

—MB가 옵셔널 주가조작 과정을 알고 있었나요.

“옵셔널 주식을 매입하는 도중 금융감독원의 BBK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걱정이 된 MB, 김백준씨가 저와 회사 변호사들과 계속 만나서 대응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MB 역시 모든 회사 거래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MB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옵셔널 주식 매입 기획·전략 상황을 김백준씨와 제가 거의 매일 보고하고 MB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2007년 10월 미국 연방법원에 인신보호청구 항소를 취하(取下)했습니다. 항소를 취하하지 않았으면 대통령 선거전에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2007년 8월쯤부터 취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MB측이 별의별 유치한 방법으로 취하를 지연시켰습니다. MB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한국에 도착해야 공정한 조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나라당의 기획입국설은 거짓으로 확인됐습니다. 오히려 MB측에서 입국하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을 하려고 가족들에게 찾아왔습니다.”

결국 힘없는 서민만 당해

BBK사건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BBK가 MB를 타깃(표적)으로 하는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되면서, 사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고 지난 일을 돌아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보인다. BBK가 그렇다.

재력 있고 사회적 유력 인사가 주류(主流)를 이뤘던 BBK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별 탈 없이 회수했다. 반면 보통의 서민들이 주류를 이뤘던 옵셔널벤처스 개미투자자들은 휴지조각처럼 가격이 떨어진 주식에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결과적으로, 사기 사건이 벌어지자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문제 없이 회수했다. 반면에 보통의 서민들은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울분을 삭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힘없는 서민만 피해를 본 것이다.

2007년 11월 당시 여당이었던 통합신당이 BBK 의혹을 제기하려면 순서가 필요했다. 우선 여당으로서 한국이 어설픈 금융시스템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놀이터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반성이 필요했다. 다음으로, 주가조작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또 김경준이 해외에 빼돌린 돈을 적극 회수하도록 사법기관을 압박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파렴치 경제 사기범 김경준에게 발목 잡힌 당시 이명박 후보의 정치적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순서는 정반대였고, 현재까지 옵셔널벤처스 투자자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해구제는커녕 검찰은 김경준에게 선고된 벌금 100억원을 징수할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해 한국 사회는 지난 5년 동안 BBK 논란에 파묻혀 있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상단주메뉴

확인취재

MB가 BBK에 발목 잡힌 속사정

2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