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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강남스타일’과 江南 연구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의 기이한 공존의 땅”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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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한남대교,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강남개발 시작돼
⊙ 경제적 부와 사회문화적 기회가 집중되면서 강남과 非강남의 ‘편 가르기’ 현상 벌어져
⊙ 20대 非강남구민 20명 중 13명 “강남스타일 있다”, 강남구민 20대 10명 중 6명 “존재한다”

취재지원 : 장애리·이한솔 月刊朝鮮 인턴기자
서울 강남 부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말하는 강남(江南)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강남은 흔히 4가지 범주로 유추할 수 있다. ①서울의 한강 이남 ②강남구 ③강남·서초·송파구 ④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이다. 원래 강남이라 하면 제비가 월동(越冬)하는 중국 양쯔강 남쪽 또는 그 이남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강남 탄생의 연원을 따라가 보면 1970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닦은 경부고속도로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의 시발점이 한남대교(옛 제3한강교)이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일대의 땅이 개발붐을 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강남이란 말 대신 영동(永東)이라 불렀는데 영동은 ‘영등포 동쪽’을 의미했다. 영동1지구 개발로 자리 잡은 동(洞)이 지금의 서초동·양재동 일대다. 또 영동2지구에는 삼성동·압구정동·대치동·학동 등이 자리 잡았다.
 
  허허벌판의 미나리꽝, 뽕나무밭, 논밭이 자취를 감추더니 그 자리에 고층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뤄졌다.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공간인 말죽거리(서울 양재동 일대)의 변화가 상징적이다. 3.3㎡(1평)당 200~300원 하던 땅값이 1969년 제3한강교,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평당 5000~6000원, 이듬해에는 1만4000~1만6000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도성(都城) 이남으로 내려갈 때 말에게 죽을 먹이던 변방(邊方) 말죽거리가 서울의 교두보이자 중심지, 대한민국 특별구역 ‘강남’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서울대 김형국 명예교수의 ‘강남의 탄생’ 참조)
 
 
  ‘나는 놈’과 ‘아는 놈’의 땅?
 
허허벌판에서 이뤄지던 영동신시가지 개발사업 현장 모습.
  이후 부(富)의 역전, 자본과 인재의 쏠림 현상이 강남 부동산 붐을 타고 본격 전개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후렴구 가사에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나는 뭘 좀 아는 놈’이란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강남은 투기적 부를 잡으려 이주해 온 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고 이들이 나중 한국사회 중상류층을 이루는 물질적 토대가 됐다. 강북을 벗어나 강남을 찾은 이들은 분명 ‘나는 놈’이자 ‘아는 놈’만이 가능한 도하(渡河)였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중(金洪中)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강남 하면 부자, 부동산, 사교육을 떠올린다. 지금은 부동산 신화가 사그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와 서울의 사회적 지위, 교육열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강남스타일’에 대해 “강남 사람들만의 문화적 경계를 의미한다”며 “고급문화에 대한 지식, 문화적 혜택, 경제적 여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스타일이 형성됐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실, 차로 30분 내에 서울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남에 소재한 문화적 인프라가 특별한 강남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워요. 그런 물리적 환경보다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여건이 스타일을 형성했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페라나 무용을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배경지식이 우선 바탕 돼야 해요.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부모의 지적 수준이랄까 학력, 재력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남에 사는 이들만이 공통으로 누리는 문화적 기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들만의 문화적 향유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가수 싸이.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조명래(趙明來) 교수는 강남의 지역적 토대를 ‘소비 권력의 공간화’란 말로 표현한다. “고소득 신 상류층이 집결해 살게 되자,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고급의 소비자 서비스업과 그와 관련된 활동들이 집적(集積)하면서 강남이 첨단 소비공간으로 변신(變身)했기 때문”이라는 게 조 교수의 생각이다. 심지어 조 교수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신 상류층이 둥지를 튼 방주(方舟)’로 강남을 묘사한다. 그래서 잘사는 강남을 빗대 ‘노는 물이 다르다’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강남스타일’의 노랫말을 음미해 보자.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그런 반전 있는 여자/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사실, ‘심장이 뜨거워지고’ ‘반전이 있으며’ ‘완전히 미쳐버리는’ 현상은 ‘놀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놀이 공간은 열려 있기보다는 강남이라는 공간에 한정된다. 대중의 보편적 참여보다는 선택적 배제나 소수의 공유만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舊) 도심의 강북과 다른 독특한 풍경과 놀이 문화가 생겨나고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한카드가 지난 7월 기준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지역 55만여 명의 6개월간 카드 소비 지출 성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강남권 회원의 백화점 평균지출은 11만1115원으로 비강남권(7만1039원)을 압도했고 미용에서도 47%나 많이 썼다. 또 강남 회원은 1인당 평균 2만957원(비강남권 1만3587원)을 책 구매에 썼고, 공연 관람에도 30% 이상 더 많이 카드를 긁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도 유별해 항공권 구매 등 해외여행과 관련해 쓴 돈이 1인당 평균 25만원 이상이었다. 같은 기간 비강남권 회원의 해외여행을 위한 카드 사용액은 6만4000원을 넘지 못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의료비와 해외여행에 지출이 몰린 강남 회원들의 소비스타일은 생계형 지출이 많은 비강남권 회원의 소비스타일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 계급’은 존재한다?
 
  강남은 한국 자본주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FIRE(Finance, Insurance, Real Estate) 산업과 IT 산업 등 고부가가치 신산업이 강남에 집중되면서 전문직 종사자들이 몰려들었고 덩달아 기업 본사, 소비공간, 아파트, 학원가, 외국인 집단거주지가 들어섰다. 서초구의 예를 살펴보자. 삼성그룹, 현대·기아차, LG R&D 센터 본사가 이 지역에 있다. 대졸 출신 가구주가 서초구민의 73.6%에 이른다(서울 평균 46%, 강남 71.6%, 송파 55.7%·2009년 현재). 또 2009년 현재 서초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6000여 명. 프랑스인이 많이 거주한다는 서래마을도 반포4동에 있다.
 
  경제적 부와 사회·문화적 기회가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강남과 비강남의 ‘편 가르기’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부, 기회, 권력의 강남 집중은 다른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과 저 발전을 초래했다.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중앙대 영문학과 강내희(姜來熙) 교수는 ‘강남의 계급과 문화’란 논문을 통해 “강남은 우리 사회가 자원과 자본, 권력과 기회, 인간적 능력과 사회적 경쟁 등을 불균등하게 배분한 결과로 계급관계 속에 구성된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동국대 교양교육원 김익기(金益基) 교수는 ‘강남 계급’이란 말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강남으로 이주한 뒤 갑자기 부가 상승한 이들을 강남 계급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말하자면 나름 층이 존재하는 것이죠.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라든지, 값비싼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부자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들만의 공간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 구별 짓기는 강남의 값비싼 아파트와 재건축 열풍, 부동산과 금융자본업의 성장, 대치동 학원가와 명문대 입학률의 상관관계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강내희 교수는 “강남을 ‘특별구’로 부르는 것은 이곳이 이제 거의 자체 완결적인 내부 순환체계를 갖춘 계급 재생산의 폐쇄회로가 되었다는 의식이 퍼졌다는 말”이라고 했다.
 
2011년 수도권 계급표
 
강남구는 황족, 영등포구는 호족

  땅값에 따라 지역 서열을 매겨 놓은 ‘2011년 수도권 계급표’가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 설왕설래한 적이 있다. 현대판 계급표는 작년 인터넷 ‘디시인사이드 부동산갤러리’에 처음 소개됐다.
 
  거주하는 지역의 땅값 순서대로 거주자의 신분을 8개 계급(황족, 왕족, 귀족, 호족, 중인, 평민, 노비, 가축)으로 나누었는데, 3.3㎡(1평)당 3000만원 이상인 강남구에 사는 이들을 황족, 그 아래 3.3㎡당 2200만원 이상인 서초구와 송파구, 용산구, 경기 과천 거주자를 왕족, 중앙귀족(1700만원 이상)은 강동구, 양천구, 광진구, 경기 성남 분당구 거주자로 구분했다.
 
  중인(1200만원 이상) 신분은 강서구, 관악구, 동대문구, 성남 수정구민이고, 평민(1100만원 이상) 신분은 노원구, 서대문구, 구로구, 은평구, 중랑구민, 노비(1000만원 이상) 신분은 도봉구, 금천구를 비롯해 의왕, 구리, 하남 거주자, 가장 아래 계급인 가축은 ‘그 외 잡(雜) 시군구’라 주장한다.
 
  또한 3.3㎡당 1400만원과 1500만원 사이에 굵은 선을 그어놓고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고 표시한다. 다시 말해 중인에서 지방호족으로의 신분상승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강남,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한국인들은 ‘물’에 민감하다. 자본과 인적 자원의 불균등 배분의 결과일지 모른다. 물이 좋은 곳에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강남은 물 반, 고기 반의 공간이다.
 
  예술의전당·롯데월드·코엑스몰·센트럴시티 등과 같이 복합기능을 지닌 공간들, 신세계·현대·갤러리아 백화점과 같은 소비공간들, 대한민국예술원·학술원·국립중앙도서관·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등 주요 문화적 장치들, 서울법원종합청사·서울가정행정법원·대법원·대검찰청과 같은 권력기관들 등이 강남에 자리해 있다.
 
  심지어 강남에 위치한 클럽과 강북의 홍대 클럽은 ‘물이 다르다’고 말한다. 강남 클럽에는 럭셔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다. 여자의 경우, 스팽글(spangle·반짝이)로 장식한 번쩍이는 장신구와 의상, 굽 높은 신발을 골라 신으며, 남자들은 정장이 기본이다.
 
  강북의 홍대 클럽의 경우,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면 충분하다고 한다. 옷차림이 장소에 맞지 않는다고 문전박대당하는 속칭 ‘물관리’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정장에 운동화를 신든, 트레이닝복 차림이든 상관없다.
 
  비약해서 말해, 강남 클럽은 이런 홍대 클럽을 ‘한물갔다’고 여길지 모른다. 강남은 누가 뭐래도 강력한 ‘화폐권력’을 쥐고 마음껏 소비·배출할 수 있는 공간이자 자본주의 싸움판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경쟁한 이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곳이다.
 
  동국대 김익기 교수는 “경제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우세한 지역이 강남이고, 강남에서 셋째 아이를 출산하면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출산장려금이 몇 곱절 많은 것을 보면, 강남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강남 문화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남 현상은 그 누구도 원치 않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 ‘눈덩이 효과’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강남 현상은 다른 사람이 소유하기 어려운 비싼 명품을 갖기를 원하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과 성질이 엇비슷하다. 베블런 효과는 계층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가난한 서민의 박탈감을 부추긴다.
 
  ‘강남 저주’라는 말도 그런 박탈감에서 생긴 말이다. 강남과 강남 사람들을 불편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강남을 ‘한국 자본주의의 재앙(災殃)’으로 보는 자극적인 시각도 나온다. 강남이 유토피아적 공간이 아니라 디스토피아적 대상이란 얘기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지난 2008년 5월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비스티 보이즈>는 ‘뜨는 배우’ 하정우와 윤계상이 출연한 ‘잔혹 청춘극’이다. 극중 무대는 강남 한복판. 자신의 육체를 전시하며 스스로 거세를 택한 호스트들의 세계를 그렸다. 윤 감독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총체(總體)인 서울 강남의 한 단면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치스럽고 질펀하면서도 돈과 치정, 거짓말과 사기가 얽힌 강남의 ‘밑바닥 세계’다. 돈 많은 남자에게 웃음과 몸을 파는 호스티스, 그녀들에게 성과 육체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호스트, 다시 명품숍과 도박장으로 흘러가는 이들의 소비구조가 마치 먹이사슬처럼 물리고 얽혀 있는 강남의 뒤 풍경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구리고 일그러진 실체를 보여준다.
 
 
  강남에 사는 자와 떠나는 자
 
서울 압구정동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모습. 고부가가치 신산업이 강남에 집중되면서 전문직 종사자들이 몰려들었고 덩달아 기업 본사, 소비공간, 아파트, 학원가, 외국인 집단거주지가 들어섰다.
  지난 9월,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에 자칭 ‘미스구리 강남빠’라는 20대 여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경기 구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최근 4년간 강남에 거주하면서 “완벽한 강남스타일로 환골탈태했다”는 강남문화 찬양론자인 그녀는 “강남은 김밥 맛도 더 고급이고 편의점 생수 맛도 깔끔하고 심지어 강남 사람들 몸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원조 강남 주민과 자연스럽게 섞이기 위해 강남구 등록 자동차 번호를 외우고 강남 지리를 익히며 강아지를 키우더라도 강남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견(犬)인 포메라니안을 키운다. 강남 여성의 생활습관에 동참하고자 의식적으로 의류 랜털서비스와 심부름센터를 이용한다. 인생의 목표는 강남 출신 남자와 결혼하고 죽는 날까지 강남에서 사는 것이다. “강남의 ‘고급스러움’과 ‘차별화’를 획득하기 위해 ‘강남 공부’를 한다”고 했다.
 
  취재 도중 청담동에 2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한 50대 주부를 만났다. 그는 “‘강남스타일’ 노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난여름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외지인의 방문이 많아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 붐비는 도로, 들뜬 동네 분위기…. 골목 곳곳에 자리한 고급 카페, 프라이빗한 선술집은 이제 주민들보다 청담 문화를 체험하러 온 20~30대 젊은 방문객들이 더 많아졌어요. 집은 잠자고 쉬는 곳이잖아요. 요새 싸이 때문에 동네 물이 흐려졌어요.”
 
  요즘 청담동의 상징인 청담대로의 명품 쇼핑거리는 지도를 펼쳐든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이런 분위기를 대체로 반기지 않는다. “오붓하게 칵테일 한 잔을 즐겼던 동네의 물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취재 도중 만난 30대 주부의 말이다.
 
  “딱 봐도 우리와는 다른 차, 다른 귀걸이, 다른 옷을 입고 방문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외부인들을 쉽게 만나게 돼요. 이제는 강남도 예전만 못해요.”
 
  반면 강남 사랑을 포기한 이들도 있다. 회사원 최윤희(24)씨는 2년 전 가을, 서울 동대문의 의류회사에 취직하면서 ‘강남 여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왕 시작한 서울생활, 방세가 조금 비싸더라도 말로만 들어왔던 강남에서 화려하게 시작하고 싶어 강남문화의 상징인 신사역 가로수길에 원룸을 얻었다. 고향의 부모는 그녀의 강남 입성을 축하해 줬고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그러나 1년여 만에 그 집에서 나왔다. 방세도 문제였지만 비싼 생활물가 또한 부담됐다. 동네수퍼는 너무 비쌌고 대형할인점은 차가 없어 이용하기 불편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기기 어려웠다. 심지어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가격도 강북 강남이 달랐다. 신사동을 나와 조금 더 저렴한 서초구 부근으로 이사했지만 생활비 부담은 마찬가지였다. 6개월 만에 다시 나왔다. 강 건너 광진구로 이사했다. 비싼 물가 때문에 약 2년간 원치 않은 이사를 두 번 한 셈이다.
 
 
  강남, 구별 짓기의 공간
 
  지난 9월 26일 오전 서울 롯데백화점 강남점 문화센터 403호실. ‘영국식 애프터눈 티&브런치’라는 이름의 교양강의가 한창이었다. 한 참석자가 “영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던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와 영국식 제빵 문화를 가르친다”고 귀띔했다. 초등학생 딸을 영국으로 유학 보냈다는 주부 김명진(40)씨는 “아이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을 때 집에서도 편한 티타임을 즐기고 싶다고 해 수강을 신청했다”고 했다. “보통 ‘애프터눈 티’ 세트는 호텔에서 10만~20만원 정도로 즐겨왔지만 가끔은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주부 한영희(43)씨는 ‘서양화 기초’ 강의를 듣고 있다. 7~8년 전부터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미술품 투자’에 동참하고자 미술 교양을 열심히 쌓고 있다. “단순히 그림의 역사와 유명화가를 외울 수도 있지만 예술적 안목을 기르기 위해 직접 붓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5년째 근무 중인 부매니저 신지선씨는 강남점 수강생들의 스타일로 ‘육아도우미, 운전기사, 부드러운 어감’을 꼽았다.
 
  “이곳 수강생들은 보통 운전기사, 육아도우미와 함께 대형 외제차를 타고 오세요. 엄마는 인문학이나 교양강의를 주로 듣고, 아이는 또래 발달단계에 맞는 놀이를 배워요. 강의는 보통 2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그동안에도 육아도우미는 1층 로비에서, 기사는 근처 카페에서 대기합니다. 외모적인 특징이요? 옷차림이 특별하진 않아요. 집이 가깝고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강남 수강생’은 확실히 부드러운 말씨, 직원들을 대할 때도 조용하고 교양 있는 어투로 대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씨는 “타 지점보다 강남은 고급이고 희소한 사치 취향의 문화강좌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대 김홍중 교수는 강남스타일을 ‘구별 짓기(Distinction)’로 표현했다. 프랑스 출신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쓴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구별 짓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문화적 취향이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관에 가는 사람과 발레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의 문화적 취향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이나 문화작품에 대한 접근과 해석 능력은 사회 내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서 길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싸이가 외치는 ‘강남스타일’도 역시 돈과 계급의 문화를 의미합니다. 소비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보통 남자들에게서 자신을 구별하는 계급장이 바로 ‘강남’인 것이죠. 강남은 한국의 부와 사회적 자본이 집중된 지역,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이 많고 자신을 잘 꾸밀 줄 알고 학력이 높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합니다.”
 
한국관광공사가 말하는 강남스타일?
 
“값비싼 아이템에서 빈티지 옷까지 모든 것이 있는 곳”

 
청담동 ‘명품거리’. 청담사거리에서 갤러리아백화점으로 이어지는 600m의 거리에 명품브랜드 매장이 밀집해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대상 영문 웹사이트(english.visitkorea.or.kr)에는 ‘왓츠 강남스타일’이라는 영문 배너가 나온다. 클릭해서 들어가면 강남투어에 대한 정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압구정과 청담동의 쇼핑 거리, 청담동 뷰티살롱, 신사동 가로수길, 한강공원, 코엑스몰, 강남의 한식당 리스트 등이 강남스타일의 대표적인 ‘성지’로 묘사돼 있다.
 
  이 웹사이트에는 ‘강남은 글자 그대로 강의 남쪽이지만 한강 남쪽에 주요한 상업시설이 위치해 있다’며 ‘디자이너가 만든 값비싼 아이템부터 독특한 빈티지 의상까지 모든 것을 파는, 눈부시게 치장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고 소개한다. 마치 거대한 쇼핑타운 같은 느낌을 준다.
 
  강남인과 非강남인이 말하는 강남스타일
 
  그렇다면 강남스타일이란 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까. 존재한다면 그 스타일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강남역과 논현역 주변에서 활동하지만,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살지 않는 20대 20명에게 강남스타일의 존재 여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중 13명의 대답이 “(강남스타일은) 있다”였다. “공부도, 일도, 놀기도 잘하는 것이 강남스타일”이라거나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패션어블하다”, “매일 신논현역 주변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옷차림새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남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은애씨는 “강남 사는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는 명품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가진 명품과는 다르다”며 “강남스타일은 실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다.
 
  “강남 남자들은 두세 명씩 무리를 지어 다니며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녀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비슷한 무늬의 셔츠를 입고 운동복도 같은 브랜드를 선호합니다. 또 남자들끼리 브런치(조반 겸 점심)를 먹으러 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술 마신 후 해장국 먹으러 다니는 모습은 봤어도 브런치는 강남 빼고는 못 봤어요. 명품도 알려진 브랜드보다 퍽이나 생소한, 희소성 높은 명품만을 골라 써요.”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베이커리에서 만난 한 아르바이트 대학생은 “강남 사람들만의 특징이 있다”며 “손님이 자기가 사는 곳을 스스로 밝히는 점”이라고 했다. 2년간 커피전문점과 베이커리에서 일을 했다는 이 아르바이트생은 “영등포와 목동 쪽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나, 어디 산다”는 말의 의미는 무얼까. ‘어디 산다’의 ‘어디’는 자신이 사는 동(洞)일 수도, 아파트 브랜드 이름일 수도 있다. 이 말은 어떤 문화적 탈을 쓰고 자신을 좀 더 세련되게 드러내려는 의도로 들린다. 나와 너의 차이(差異)와 함께 비슷한 부류와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말이다.
 
 
  20대 30명 中 19명 “강남스타일 있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 창문을 시원스레 열어젖힌 노천 형식의 와인바가 많아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강남스타일을 ‘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허영심’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강남역 주변에서 만난 회사원 김모(25)씨는 “강남스타일 하면 생각나는 것은 모두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스타일은 특정한 흐름과 유무형의 기호를 많은 이가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마치 값비싼 명품을 대하는 묘한 시선처럼 강남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요?”
 
  기자는 또 강남 3구에 사는 20대 10명에게 강남스타일 존재 여부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강남스타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10명 중 6명이 강남스타일은 존재한다고 답했다. “잠자리 선글라스를 쓴 힐을 신은 여자가 떠오른다”고 했고, “명품 소비를 선호하지만,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된장녀가 강남스타일”, “아무리 봐도 소화할 수 없는 독특한 의상을 입는 사람이 강남스타일”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또한 “요즘 강남에서는 휴일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이다. 휴일이 짧아도 무조건 떠난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10명 모두는 “강남에 살고는 있지만 내 취향은 강남스타일이 아니다”고 했다. 강남스타일이 없다고 답한 4명은 “여기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며 “스타일이 저마다 다른 것은 지역의 차이가 아니라 개성일 뿐”이라며 강남스타일의 존재를 부정했다.
 
  30명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가 느낀 강남스타일은 다소 신변잡기적이고 외모지향적이며 실체가 모호하고 두루뭉술했다. 이에 대해 중앙대 사회학과 주은우 교수는 “강남스타일은 실체가 없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남은 현대 자본주의의 천박함과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죠.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그 실체의 존재를 많은 사람이 믿는 곳이 강남입니다. 오히려 강남 사는 사람들은 그런 스타일이나 ‘강남문화’의 실체가 있는지조차 모를 겁니다. 만약 있다면 그건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강남스타일과 구룡마을, 타워팰리스
 
집단 무허가 판자촌이 있는 강남 개포동 구룡마을의 모습. 비닐하우스 집이 곳곳에 보인다.
  지난 9월 28일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을 찾았다.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주민에게도 강남스타일이 있는 것일까?
 
  “이번 정류장은 구룡마을입니다”라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올 때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버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버스기사가 내려준 이곳이 정말 사람 사는 마을이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가꾸는 한 50대 아주머니에게 이곳이 구룡마을이 맞는지를 확인차 물었다.
 
  마을은 등산복을 입은 몇몇 사람만 지나갈 뿐 아주 조용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식당 앞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있던 60대 노인이 손님과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흥정을 하다 그냥 가버리자, 그는 “물가 오르는 거 모르고 매일 비싸대”라며 투덜댔다.
 
  고구마 줄기를 다듬느라 손이 새까매진 노인은 “이 나무를 봐요. 회초리 나무를 내가 끊어다가 심었는데 이렇게 고목(古木)이 되었다. 나의 청춘을 여기서 다 보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고급승용차가 마을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왔다. 먼지를 뿜고 들어온 자동차 때문에 기침을 하자 노인은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저렇게 들어온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부분 등산객이라고 했다.
 
  이 노인에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아느냐고 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그 말춤 말하는 거냐?”며 “TV에 많이 나와서 안다”고 했다. 하지만 “말춤, 그게 뭐라고 몇억, 몇조 원씩 버는 거냐? 나는 손발이 닳도록 일해도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렵다”며 고구마 줄기로 다시 손을 옮겼다. 그러곤 강남스타일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세상은 젊은이들에 의해 돌아가니까 뭐. 강남스타일은 화려하고 활기찬 거지. 근데 다른 강남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강남은…. 화려한 강남스타일이 아닌데.”
 
  구룡마을 공영주차장에서는 산을 등지면 높게 솟은 강남의 상징이라는 타워팰리스를 볼 수 있다. 무리를 짓고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성채(城砦)와도 같았다.
 
  고려대 철학연구소장인 이승환(李承煥)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부와 특권층의 상징”이라며 개포동 구룡마을과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공존을 ‘기이한 공존’이라 정의했다. 이 교수는 “개포동 구룡마을과 도곡동 타워팰리스처럼 세계 곳곳에 기이한 공존을 이루는 지역이 많지만, 이제는 조화로운 공존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집단 무허가 판자촌이라고 마을주민을 쫓아내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요. 그분들은 삶의 터전을 지킬 권한이 있고, 무허가 판자촌이라도 그곳은 자그마한 성지(聖地)입니다. 구룡마을 말고도 그런 지역은 세계 곳곳에 많아요. 번쩍이는 고층건물과 판자촌이 함께 공존하죠. 우리 사회의 당연하고 불가피한 모습들이에요. 어디를 가더라도 기이한 공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조화로운 공존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살 만한 공간으로요. 끊임없이 도시공학적이고 조화로운 공존에 대한 요구를 서울시 정책담당자에게 해야 합니다.”
 
  모두가 화려한 줄 알았던 강남스타일. 그것은 특정 지역의 특성인가, 아니면 특정 계층의 특성인가.⊙
 
강남에 사는 기초수급자
 
강남에 산다고 다 ‘강부자’가 아니다!

  부촌(富村) 강남구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서울 25개 자치구 중 8번째로 많다는 사실은 놀랍다. ‘강부자’들만의 공간이 아닌 것이다.
 
  강남구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12년 10월 현재 5264가구, 9183명에 이른다(서초구의 수급자수는 2766명, 송파구는 6032명이다). 질병이나 저소득에 따른 일반 수급자가 2504명, 장애인 2377명, 독거노인 1555명이다.
 
  수급자가 강남구보다 많은 구(區)는 노원(2만950명·2011년)·강서(1만7919명)·강북(1만448명)·관악(1만26명)·중랑(9800명)·은평(9748명)·성북구(9380명) 정도다. 수급자가 많아 기초생활보장 예산도 300억원으로 25개 구 중 7번째로 많다.
 
  지난 5월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번지’가 서울 전체 아파트(114만1238가구) 가운데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조사했더니, 강남구가 4만979가구(강남구 전체의 44.08%)로 25개 구 가운데 가장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강남구청 박혜주 사회복지 주무관은 “수급자 중 수서동에 2916명(32%), 일원1동에 1219명(13%), 일원2동에 922명(10%), 개포4동에 483명(5%), 세곡동에 345명(4%)이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남구에 수급자가 많은 까닭은 이들 지역에 임대아파트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구청 심미례 희망복지팀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 자립을 위한 학비지원, 자활·자립기금 지급 및 365일 육아보육시설 운영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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