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한국인, 왜 프로야구에 열광하는가 : 월간조선

“비상? 큰 영향은 없을 거다. 월드컵 때도 시청률엔 큰 차이가 없었다. 되레 야구 종목이 빠져 올림픽 시청률이 낮아지지 않을까 싶다.”

7월 중순이었다. “런던 올림픽 때문에 프로야구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스포츠케이블채널 MBC SPORTS+ 관계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이 방송사의 프로야구 시청률은 평균 1.5%대였다. KBS N SPORTS, SBS ESPN, XTM 등 다른 스포츠채널의 프로야구 평균시청률도 1.4%대였다. 4개 스포츠채널을 합치면 프로야구 총 시청률은 6%에 근접했다. 케이블채널 시청률이 1%만 넘어도 ‘대박’ 소릴 듣는다는 걸 고려하면 6%대는 지상파 방송으로 치자면 30% 이상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이었다.

MBC SPORTS+ 관계자의 말대로 프로야구는 국제대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난공불락의 시청률을 자랑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대표적이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프로야구 시청률은 스포츠채널마다 1.5%대였다.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며 방송가에선 “프로야구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내내 프로야구 시청률은 변함이 없었다. 고작 0.2%포인트가 준 1.3%대였다. 런던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을때도 스포츠채널이 긴장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당시의 기억 때문이었다.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막상 뚜껑을 여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올림픽이 시작되자 프로야구 시청률은 반 토막 났다. 모 스포츠채널 야구담당 PD는 “올림픽 이후 프로야구 평균 시청률이 0.8%대로 뚝 떨어졌다”며 “한국 축구가 4강에 오르자 0.5%대로 급락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과연 프로야구 관중도 줄었을까. 일반적으로 프로스포츠 시청률과 관중은 정비례한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관중도 감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 류대환 홍보본부장은 “이번은 예외”라고 했다. 류 본부장은 “관중 감소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런던 올림픽 전까지 프로야구는 경기당 평균관중 1만5012명을 기록했다. 올림픽 기간엔 1만4045명으로, 1075명이 줄었다. 하지만 류 본부장은 “1075명도 올림픽 영향이 아닌 휴가철과 폭염에 따른 미세한 감소일 뿐, 2006년 이후 국제대회 때문에 관중이 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야구계는 시청률과 관중 증감이 정비례하지 않는 이례적 현상을 보고 “진성 야구팬이 늘어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굴곡 많았던 프로야구 인기

프로야구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장년, 어린이 등 온 가족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첫해 총 관중은 143만8768명이었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5995명. 출범 첫해에다 6개 구단 체제였음을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수치였다. 당시 KBO는 경기당 4000명만 입장해도 ‘대성공’이란 자세였다.

100만명대의 총 관중이 200만명대로 증가하는 덴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83년 프로야구 총 관중이 225만6121명으로 껑충 뛴 것이다. 기록적인 관중 증가 이면엔 해태(KIA의 전신)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정치적·사회적으로 억눌렸던 호남인들은 해태의 분전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덕분에 해태는 광주 홈경기뿐만 아니라 원정경기에도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서울이 연고였던 MBC(LG의 전신) 청룡의 후기리그 우승도 관중 증가에 호재로 작용했다. 그해 잠실구장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관중 1만명(1만2616명)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1989년까지 300만 관중 돌파에 실패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 영향이 컸다. 단군 이래 최대 국가적 행사였던 두 대회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며 프로야구는 찬밥 신세가 됐다. 프로야구 관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건 1990년이었다. 이해 프로야구는 318만9448명의 총 관중을 기록하며 프로야구 출범 9년 만에 ‘300만명 시대’를 열었다. 그해 LG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통에 서울 관중이 크게 증가한 데다 신생구단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소식이 전해지며 야구붐이 조성됐다.

프로야구 300만명대를 돌파한 지 불과 3년 만에 이번엔 400만명 관중시대가 열렸다. 1993년 프로야구는 443만7149명을 기록하며 기적 같은 성장세를 보였다. 한번 탄력을 받은 프로야구는 거침없는 관중몰이를 시작한다. 400만명을 넘어선 지 2년 만인 1995년 540만6374명이 야구장을 찾으며 5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이해(1993년) LG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평균 홈관중 2만명(2만76명)을 돌파했다. 이용일 전 KBO 사무총장은 “1994년 LG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1995년 서울 관중이 물밀 듯이 잠실구장을 찾았다”며 “꿈의 숫자로 여겼던 ‘600만 시대’도 조만간 열릴 것이란 기대감에 야구계가 흥분 일색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흥분은 절망으로 변했다. 1995년을 기점으로 프로야구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1996년 400만명으로 총 관중이 줄더니 1997년엔 300만명, 1998년엔 200만명대로 뚝 떨어졌다. 당시 야구기자로 활동하던 신명철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첫째,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최종부도 처리되고서 중견기업들이 차례로 무너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12월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발표하며 한국 경제는 순식간에 붕괴한다. 프로야구의 주고객층이던 중산층과 성인 남성이 IMF 직격탄을 맞은 게 치명적이었다.

두 번째는 롯데 자이언츠의 부진이다. 롯데는 프로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 연속 경기당 평균 홈관중 1만명 이상을 기록했다. 프로야구 흥행의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1997, 1998년 2년 연속 꼴찌에 머물며 경기당 평균 관중이 1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2000년대 초 침체됐던 프로야구

2009년 이후 프로야구 여성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7월 20일 올스타전에 앞서 열린 사인회에서 여성팬이 선수의 사인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 관중 감소는 2000년대 들어 더 심화했다.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를 ‘잃어버린 7년’이라고 표현한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연속 총관중 200만명대를 기록하고, 2005년과 2006년에도 300만명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물론 핑계거리는 많았다. 우선 이 기간 프로야구는 월드컵과 올림픽을 두 번씩 겪었다. 당시만 해도 국제대회가 있는 해엔 프로야구 흥행이 좋지 않았다. 특히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결정타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쓰며 국내 제일의 프로스포츠라 자부하던 프로야구는 프로축구에 일인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어린이와 여성은 노장 일색에 경기가 3시간 넘기 일쑤인 야구를 외면하고, 젊은 선수들의 빠른 플레이가 돋보이는 축구에 열광했다.

현대 유니콘스도 프로야구 인기저하의 주범이었다. 1996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재창단한 현대는 막강한 자금과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1998, 2000, 2003, 2004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오른다. 이 정도 우승이면 상당수 팬을 확보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대는 반대였다. 우승을 거둬도 경기당 평균 홈관중은 1000~2000명대에 불과했다. 이유가 있었다. 현대를 응원하는 팬층이 살얼음처럼 얇았기 때문이다.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현대는 ‘명문구단이 되려면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야 한다’는 이른바 ‘서울 입성 계획’을 짰다. 그해 우승을 차지하고도 인천 홈관중이 평균 4000명에 그친 게 결정적 요인이었다.

현대는 2000년 쌍방울을 인수해 재창단한 SK에 인천 연고지를 54억원을 받고 내주는 대신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쓰다가 서울에 입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체인 현대그룹이 휘청이며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서울에 입성하려면 기존 서울 연고 팀 LG와 두산에 각각 27억원씩을 줘야 하는데 그 돈이 없었다. 결국 현대는 수원에 주저앉고 만다. 그게 패착이었다.

기존 연고지였던 인천 팬들은 “현대가 우리를 버리고 수원으로 도망갔다”는 이유로 현대를 외면했고, 수원 팬들은 “현대의 최종 목적지가 서울인 만큼 응원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며 고개를 돌렸다.

2000, 2004년 현대는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하고도 수원 홈구장 평균관중이 1000명대에 그치는 수모를 겪는다.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비인기 팀 현대가 독주하자 다른 팀 팬들도 야구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전국구 인기팀 롯데, LG, KIA가 2000년 들어 약체로 돌변한 것도 악재였다. 세 팀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잃어버린 7년’ 동안 우승은 고사하고, 한국시리즈에도 거의 오르지 못했다. 세 팀을 합쳐 LG가 2002년 한국시리즈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야구계는 역사적 교훈을 토대로 프로야구가 제2의 전성시대를 열려면 5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 국제대회 영향을 최소화할 것, 둘째 축구의 인기를 따라잡을 것, 셋째 어린이와 여성을 다시 야구장으로 불러모을 것, 넷째 천덕꾸러기 현대의 정체성을 재정립할 것, 다섯째 롯데, LG, KIA 등 전국구 구단의 성적이 나아질 것이었다.

5가지 흥행 요소를 충족한 프로야구, 재도약하다

2006년이 되자 야구계는 긴장한다. 그해 독일 월드컵이 예정돼 있었고, 현대는 자금난에 시달리며 공중분해 위기에 몰린 상태였다. 학교 운동장은 공을 차는 축구소년들로 가득했고, 롯데, LG, KIA는 전년도 나란히 하위권을 형성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 야구계는 ‘결국 프로야구가 공멸에 이를 것’이라는 위기감에 떨고 있었다. 그해 스포츠전문지의 1면 기사 제목도 ‘프로야구의 위기’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제대회가 숨이 꺼져 가던 프로야구를 되살렸다. 그해 3월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인공호흡기였다. 당시 한국 야구대표팀은 야구강호 일본, 멕시코, 미국을 차례로 꺾으며 4강에 진출했다. ‘야구 변방’이던 한국이 세계 최고 선수들이 즐비한 이들 나라를 제압한 건 일대 뉴스였다.

특히나 한국 선수들이 ‘야구의 신들’로 여기던 메이저리그 올스타팀 미국을 물리친 건 국내 야구팬들에겐 획기적 사건이었다. 사실 당시 야구팬들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며 한국야구 수준을 낮게 보던 차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 미국을 꺾자 국내 야구팬 사이에서 ‘한국야구 재평가’ 논의가 일었고, ‘KBO리그가 메이저리그보다 재밌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국 축구를 살렸듯 2006년 WBC는 분명 죽어 가는 야구를 되살린 구원자였다. 다음 해인 2007년 프로야구는 11년 만에 400만 관중을 회복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은 ‘한국야구가 세계 최고’라는 자긍심으로 이어졌고, 야구 흥행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된다. 400만 관중을 회복한 지 1년 만인 2008년 프로야구는 총 관중 525만명을 기록했다. 2009년엔 592만명으로 600만명 코앞까지 다가선다.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차례로 좋은 성적을 내며, 축구에 빠졌던 어린이와 축구선수를 따라니던 여성 스포츠팬들의 눈길을 야구장으로 돌린 건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실제로 2006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어린이와 여성팬은 400% 이상 증가했다.

현대의 정체성이 바로잡힌 것도 호재였다. 2008년 3월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던 현대는 투자 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먼트로 넘어갔다. 새로운 이름은 우리 히어로즈. 히어로즈는 수원을 떠나 서울 목동구장에 정착하며 프로야구 흥행에 든든한 우군이 된다. 현대 시절 2000명에 불과했던 홈관중은 2배로 증가했고, 현대 때문에 야구를 멀리했던 올드팬들이 다시 프로야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롯데, KIA의 팀 성적 상승도 프로야구 흥행에 큰 도움이 됐다. 2007년까지 하위권을 도맡던 롯데는 외국인 사령탑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하고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2006년 7000명에 불과했던 부산 홈관중은 롯데 성적이 좋아지자 2008, 2009년 2년 연속 2만명대를 기록한다.

KIA 역시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2006년 3000명에 불과했던 홈관중이 8000명대로 늘었다. 무엇보다 전국의 야구장에 호남팬들을 다시 불러모으며 전국구 구단다운 위용을 회복했다. 물론 LG는 여전히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서울 연고 팀인 두산이 LG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두산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며 서울팬들을 열광시켰다.

야구계가 야구 흥행 회복 요소로 지적했던 5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지며 프로야구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6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올 시즌은 박찬호, 김병현, 이승엽, 김태균 등 국외파 선수들이 돌아오고, 전반기 내내 치열한 순위 싸움이 벌어지며 700만 관중 돌파가 유력하다. KBO와 구단 관계자들은 700만 관중 달성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여성 야구팬, 구단보다 특정 선수에 집중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국내에서 야구의 인기는 한층 높아졌다.

프로야구 인기를 두고 모두가 장밋빛 전망만을 하는 건 아니다. 야구지도자 전문양성기관인 베이스볼아카데미의 이알참 사무국장은 “위기 뒤 기회이듯 기회가 곧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전주곡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국장은 “프로야구가 장기적으로 흥행하려면 5가지 요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야구인기가 일시적 트렌드(경향)가 아닌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한국이 내년에 열릴 제3회 WBC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내거나, 과거 현대와 같은 팀이 돌출한다면 야구인기가 급속도로 식을 수 있다. 롯데, LG, KIA 등 인기구단의 성적 하락도 야구인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이 지금껏 한국 프로야구 역사가 들려준 교훈이다.

미국, 일본처럼 프로야구가 생활이자 문화가 된 나라에선 야구인기가 특정 변수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실제로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등 명문 인기팀의 성적이 저조하다고 미 메이저리그 흥행이 흔들리는 일은 없다. 일본도 비슷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 인기구단 성적이 나빠도 시즌 총 관중엔 별 영향이 없다.

몇몇 팀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연고지를 이전해도 마찬가지다. 미 메이저리그는 100년의 역사가 넘도록 수없이 많은 팀이 명멸했다. 연고지 이전이 더는 놀라운 뉴스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 메이저리그 흥행 가도가 멈춘 적은 없었다. 일본 역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몇 년째 경영난을 겪었지만, 리그 전체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되레 시즌 총 관중은 2%가량 증가했다.

이 국장은 “올림픽 여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야구장을 찾는 충성도 높은 진성 고객이 많아졌다는 건 고무적이지만, 과연 그 팬들이 진성 고객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 구단 관계자는 “2006년 이후 신규팬이 40% 이상 증가했다”며 “신규팬 가운데 60% 이상이 여성팬”이라고 밝혔다. 이 구단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홈경기마다 야구장을 처음 찾는 관중은 10% 이상, 이 가운데 70%는 여성팬이다.

다시 말해 충성도 높은 야구팬이 많아졌다기보단 야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초보 여성 야구팬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여성팬들은 주로 팀보단 특정 선수를 좋아해 구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특정 선수의 성적과 소속팀 변화에 따라 여성팬의 야구 관심도가 크게 좌우된다”고 귀띔했다.

야구전문가 가운덴 “여성팬의 소비패턴이 원체 복잡하고 변화가 심해 얼마나 많은 여성팬이 고정팬으로 남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는 이가 많다. 이러한 우려의 배경엔 열악한 구장 시설도 한몫한다.

열악한 야구장 환경 해결이 과제

내년 출범할 프로야구 제9구단 NC다이노스 관계자들이 홈구장 마산구장에서 선수들의 연습장면을 보고 있다.

지난해 MBC 야구프로그램 <야구 읽어 주는 남자>에선 야구장을 처음 찾은 신규 야구팬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오늘 이후 다시 야구장에 올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신규 야구팬이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 여성팬들은 70% 이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좌석 간격이 좁아 움직이기 불편하다’ ‘화장실이 작고 불결하다’ ‘구장 내 매점에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등등이었다.

특히나 여성팬들은 ‘10분 이상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는 비좁은 화장실’을 최대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8개 구단 홈구장 가운데 여성팬들이 어려움 없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곳은 인천 문학구장밖에 없다. 대구, 광주, 대전, 목동구장은 주말경기 시 20m 이상 길게 줄을 서야 한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잠실, 사직구장도 화장실 사용 시 줄을 서야 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

구단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구단들은 “화장실 증설뿐만 아니라 지역 특색에 맞는 음식점을 구장 안에 배치하고 싶어도, 구장 소유주인 지자체의 비협조와 각종 법규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다. 대표적인 예가 SK다.

SK는 8개 구단 가운데 마케팅 능력이 가장 뛰어나기로 소문나 있다. 외야에 ‘삼겹살 존’을 설치한 것도 SK가 처음이었다. 미 메이저리그 구장 외야엔 ‘바비큐 존’이 예외 없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문학구장의 ‘삼겹살 존’은 그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바비큐 존’과는 차이가 있다. 업체에서 고기를 구워 테이블로 전달하는 식이다. 야구팬들이 “이게 무슨 삼겹살 존이냐”며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SK 마케팅 관계자는 “애초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굽는 방식을 택하려 했으나, 소방법 등에 저촉돼 실행하지 못했다”며 “메이저리그식 마케팅을 하고 싶어도, 발목을 잡는 법령이 너무 많아 포기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SK는 그나마 다행이다. 문학구장이 지어진 지 10년 정도 된지라 선진 마케팅을 펼칠 만한 공간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은 지 20, 30년 이상 된 구장들은 활용공간이 없어 선진 마케팅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일본만 해도 구단 수익의 25% 이상이 구장 내 음식물 판매임을 고려하면 국내 구단들의 수익 창출은 처음부터 손발이 묶인 셈이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국내 야구장의 한계를 스타디움 개념에서 찾았다.

“미국과 일본의 야구장은 볼파크(Ballpark)다. 야구를 보면서 맛있는 걸 먹고 편안하게 쉬었다 가는 공원 개념이다. 하지만 국내 구장들은 과거부터 야구경기에 국한하는 스타디움(Stadium) 개념으로 지어졌다. 대부분 구장이 전국체전과 국제대회 개최를 겨냥해 건설됐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관중 편의시설은 뒷전이고, 오로지 선수들의 경기력 측면에만 집중해 야구장을 지었다. 내부공간과 화장실이 태부족인 것도 그 때문이다. 국내 야구장이 볼파크를 지향하지 않는 이상 한국야구는 팬들로부터 외면받을 게 뻔하다. 생각해 보라. 누가 한 번 찾을 때마다 4만, 5만원씩 쓰면서 3시간이 넘는 경기시간 동안 발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화장실조차 가기 어려운 야구장을 찾겠는가 말이다.”

프로야구의 라이벌은 프로축구가 아니라 영화

인기구단의 성적이 좋으면 전체 관중 수도 늘어난다. 팬들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부산 사직구장.

사실 프로야구의 흥행 이면엔 라이벌의 침체가 있다. 야구인들은 ‘프로야구의 라이벌’ 하면 프로축구를 떠올린다.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야구인 스스로 프로야구를 문화로 생각하지 않는 데서 오는 선입견이다. 프로야구의 진정한 라이벌은 영화다.

‘최고의 국민오락’이던 프로야구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잃어버린 7년’ 동안 내림세를 탔다. 반면 영화는 정확히 같은 기간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1999년 <쉬리>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6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더니 2001년엔 <친구>가 820만명을 돌파했다. 2001년 영화관을 찾은 총 관중은 1억명을 넘었다. 수치상으론 전국민이 1년에 2.5회씩 영화관을 찾은 셈이었다.

영화 흥행은 멈출 줄 몰랐다. 2004년엔 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60%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 콘텐츠로 우뚝 섰다. 영화 시장 역시 2001년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04년엔 1조7000억원을 넘어섰고, 2000년 이전까지 1000개 미만이던 스크린 수는 2006년 2000개로 100% 증가했다.

하지만 영화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는 2007년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달린다. 2007년 개봉작 112편 가운데 13편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편당 수익률은 마이너스 43%에 달했다. 스크린에 걸리기만 해도 100만 관중을 넘긴다던 한국영화는 흥행에 도취해 작품성 없는 영화를 마구 찍어 내며 스스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발달이 악재였다.

영화관을 찾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을 통해 보고 싶은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 받고, 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계뿐만 아니라 DVD, 비디오 시장이 쑥대밭이 됐다. 영화계와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영화는 더는 ‘특별한 여가활동’이 아닌 ‘언제든 집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드라마’가 됐다.

2007년부터 가속된 영화계의 침체는 프로야구엔 기회였다. 보다 특별한 여가생활을 찾던 대중은 그해부터 영화를 대신해 프로야구로 눈을 돌렸고, ‘오래된 스포츠’였던 야구는 그 순간 문화로 거듭났다.

가수이자 공연기획자인 김현철은 “영화와 야구 소비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영화가 보고 싶어서 영화관을 찾는 이는 극소수다. 영화를 고를 때의 기대감, 영화관을 찾을 때의 자긍심, 시대의 유행에 동참한다는 만족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 요소들이 문화 상품 구매의 핵심 요소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며 영화는 단순 볼거리로 전락했다. 반면 프로야구는 과거 영화가 내포했던 감정적 요소들을 그대로 충족시키는 매력적인 문화 상품으로 재등장했다. 구장을 찾을 때의 설렘, 요즘 대세인 프로야구 인기에 동참한다는 자기 만족감 등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야구장을 찾는 이들을 보면 야구경기보단 야구장의 분위기에 도취한 경우가 상당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위축됐던 영화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극장 관객수는 8279만명으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1%나 증가했다. 매출액도 639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8.9% 늘었다. 이는 모두 사상 최고치다. 영화계는 “좋은 작품이 줄을 잇고, 유명 영화들이 외국과 한국에서 동시 상영되며 불법 다운로드가 준 게 관객 증가의 핵심 배경이 됐다”고 분석한다.

영화산업 부흥이 프로야구에 얼마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확인되진 않았다. 그러나 폭염 때문에 야구장을 대신해 영화관을 찾았다는 야구팬이 늘어난 건 확실하다. 각종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엔 ‘더워서 야구장에 가지 않고, 영화를 봤다’는 야구팬들의 글이 줄을 잇는다.

부산동명대 전용배 교수는 “20, 30대의 한 달 문화생활비가 10만~20만원 선이다. 제한된 문화생활비 속에서 영화관과 야구장을 동시에 찾는 건 어렵다”며 “젊은 층이 다시 영화관을 찾기 시작한다면 야구 흥행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로야구의 지속적인 흥행, 10구단 창단에 달렸다.

내년 시즌부터 프로야구는 기존 8개 구단에서 9개 구단 체제로 확장한다. 팀이 늘어난 만큼 총 관중도 늘어나리란 예상이 많다. 하지만 야구계 인사들은 “홀수 체제가 되레 프로야구 흥행의 지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먼저 내년부터 한 팀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 8개 구단이 짝을 이뤄 3연전을 치를 때 나머지 한 팀은 짧게는 3일, 길게는 4일을 쉬어야 한다. 총 경기 수는 현재 532경기에서 576경기로 44경기가 늘어나지만, 구단별 경기 수는 133경기에서 128경기로 오히려 5경기 줄어든다. 팀간 19차전을 치르던 것이 16차전으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흥행 보증수표인 ‘LG-KIA’ ‘롯데-KIA’ ‘LG-두산’ 라이벌전이 줄면 그만큼 총 관중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구단 수익 면에서도 9구단 체제는 손해다. 구단별로 66, 67경기씩 치르던 홈경기 수가 64경기로 줄어드는 까닭이다.

의식 있는 야구인들은 “하루라도 빨리 10구단 창단을 유도해 리그를 짝수 체제로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경기력이 유지되고, 잠재 관중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중계 방송사가 많아지며 전체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삼성, 롯데, 한화 등 특정 구단이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며 짝수 체제는 답보 상태다. 세 구단은 특별한 이유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외치고 있다. 야구계엔 “모그룹 2세들이 나서 10구단 창단을 반대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구체적으론 영남 연고의 모 구단 핵심 계열사 사장이 다른 구단 모그룹 계열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그룹 실세의 뜻이니 10구단 창단에 절대 찬성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대기업들이 프로야구단을 사회봉사 차원에 운영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프로야구가 모그룹 실세들의 사유물인 셈이다.

“10구단 창단이 좌절되면 프로야구가 영화계처럼 급격히 쇠퇴할 수 있다”는, 야구계 일부에서 제기하는 경고를 모그룹 실세들은 알기나 할까.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는 프로야구는 어쩌면 올 시즌이 위기의 원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