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년, 전 세계 435기의 원전 가운데 70%(300여 기)의 원전이 설계수명 끝나
⊙ 미국 전체 원전 중 50%가 넘는 총 73기에 대해 계속운전 허용
⊙ 2008년 고리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한국도 계속운전 국가에 진입
⊙ 한국 계속운전 인허가 절차 선진국보다 까다로워
⊙ IAEA 점검단, 월성 원전 1호기도 계속운전 사실상 ‘합격’ 판정
⊙ 미국 전체 원전 중 50%가 넘는 총 73기에 대해 계속운전 허용
⊙ 2008년 고리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한국도 계속운전 국가에 진입
⊙ 한국 계속운전 인허가 절차 선진국보다 까다로워
⊙ IAEA 점검단, 월성 원전 1호기도 계속운전 사실상 ‘합격’ 판정
- 올 11월 설계수명 30년 만료를 앞두고 계속운전을 위한 심사를 받고 있는 월성 1호기.
IAEA는 최근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2012년 5월 말 현재, 전 세계 435기의 원전 가운데 70%에 달하는 300여 기의 원전이 2030년 무렵이면 설계수명(design life)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은 계속운전 또는 폐로(廢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가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신규 원전 건설의 대체 효과 등을 이유로 세계 각국은 기존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해 계속운전을 시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들조차 안정적 전력공급과 국제적 환경규제에 대비해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운전’이란 예상 수명에 도달한 원전에 대해 법적 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평가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 운전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오는 2030년 무렵까지 세계적으로 300여 기의 원전이 계속운전에 돌입할 경우, 약 500조원이 넘는 거대한 계속운전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전의 수명은 설계수명에 20년 정도를 더한다. 설계수명이 30년이면 50년, 40년이면 60년까지는 안전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운전능력의 향상으로 수명을 8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 계속운전 경제효과 254억 달러로 추산
2012년 5월 말 현재, 총 10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미국은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계속운전 심사를 하고 있다. 심사결과, 규정에 만족할 경우 추가로 20년 동안 계속운전을 하게 해 총 60년간 운전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000년 칼버트 클립스(Calvert Cliffs) 원전 2기의 20년 계속운전을 승인한 이래 2012년 5월 현재까지 미국 전체 원전 중 50%가 넘는 총 73기에 대해 계속운전을 허용했다. 이러한 과정의 모든 절차와 문서들이 NRC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고, 운영상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원자력연구소(NEI)에 따르면, 자국 원전의 계속운전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가 오는 2032년에는 25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계속운전을 통해 발생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국민 여론도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전체 원전 54기가 전력의 약 3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 원전의 설계수명은 30년으로 간주되고 있다. 30년이 넘은 원전의 경우, 통상적인 정기점검 외에 10년 주기로 안전성을 평가한다. 검사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원전에 대해서만 계속운전을 허용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일본이 가동하고 있는 원전 중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운전한 것으로, 이미 18기의 원전이 설계수명 이후 계속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일본은 계속운전 기간을 포함해 총 60년간 원전의 계속운전이 가능하도록 장기 가동원전 기본정책을 펴고 있다.
석유나 무연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도 총 3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13기의 원전이 계속운전 중에 있다. 노보보로네츠 원전 5호기는 최근 설비 개선 작업 이후 30년간의 계속운전에 돌입했고, 노보보로네츠 3·4호기와 커크스 1·2호기, 콜라 1·2호기, 레닌그라드 1~4호기 역시 15년의 계속운전 승인을 마치는 등 원전의 계속운전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계속운전은 원전 선진국에서 먼저 도입해 원자력 시장의 새로운 조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원전 선진국은 물론 세계 각국은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에 대해 경년열화(經年劣化·설비상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약해지는 현상) 평가 등 안전성을 심도 있게 평가해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계속운전을 승인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고리 1호기가 주민과의 합의를 거쳐 지난 2008년 1월에 국내 최초로 10년간의 계속운전에 돌입했다. 현재는 월성 1호기가 오는 12월 수명만료를 앞두고 계속운전과 폐로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월성 1호기가 폐로가 아닌 계속운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국내의 까다로운 계속운전 인허가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우선, 국내의 계속운전 평가기준은 다른 원전 선진국에 비해 훨씬 강화된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은 국가가 원전의 설계수명 만료 이후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권고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 더해 미국의 운영허가갱신제고(LR)를 추가 도입해 한층 강화된 기술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즉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 국가들이 적용하는 10년 주기의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에 주요기기 수명 평가,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 등을 추가해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한국도 ‘계속운전’에 돌입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07년 6월 30년의 운영 허가기간이 만료됐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는 엄격한 계속운전 안전성 심사를 거쳐 이후 10년간 운전이 가능하다고 판단, 지역주민의 동의 아래 2008년 1월부터 10년간 계속운전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고리 1호기는 계속운전 첫 주기 무고장 안전운전 317일을 달성했고, 3주기 연속 무고장안전운전(1043일)과 총 8회의 무고장 안전운전을 기록해 한국의 계속운전 기술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는 “이런 계속운전 성과와 기술력 덕분에 지난해 9월에는 아르헨티나 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해 기존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했다.
2012년 11월 설계수명 30년 만료를 앞두고 계속운전을 위한 심사를 받고 있는 월성 1호기에 대해 IAEA가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오는 11월 말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월성 1호기를 사실상 계속 가동해도 좋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IAEA 안전점검팀은 지난 6월 7일 경북 경주시 한수원 월성원전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 1호기의 안전성 점검결과를 발표했다. 점검팀은 “지난달 29일부터 7일까지 월성 1호기에 대한 장기적인 안전운전 점검을 벌인 결과, 국제적으로 우수한 사례로 증명됐다”고 밝혔다.
IAEA 안전점검은 2005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5번이나 수행돼 국제적 권위와 공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등 많은 국가에서도 장기 가동 원전에 대해 IAEA 안전점검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으로 있다.
로버트 크리바넥(Robert Krivanek) 점검팀장은 “월성 1호기는 장기 가동 운전과 경년열화관리(운전연수 경과에 따른 설비상태관리)를 위해 광범위한 설비 개선작업을 벌였다”며 “그 결과 발전소는 매우 우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IAEA 점검 이상 없으면 수명연장 들어가기로
리파르미로 슬라프 IAEA 안전점검단장은 기자들로부터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IAEA 점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큰 사고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리파르미로 단장은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IAEA 안전점검은 사고 이후인 2011년 6월 말 사고 결과에 대한 점검 차원이었다”면서 “안전점검은 각 국가나 발전소가 자발적으로 신청해 이루어진 것이다. 월성 1호기의 자발적 신청은 개방성·투명성의 증거로, 보다 안전하게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계속운전을 결정하는 것은 한국의 규제기관이지, IAEA 역할은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검팀(SALTO·Safety Long Term Operation peer review)을 초청해 점검을 받은 것을 볼 때, IAEA 안전기준을 토대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체코, 인도, 일본, 스위스, 스웨덴 등 IAEA 소속 7명의 원전 전문가로 구성된 점검팀은 주요기기 수명 평가보고서,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보고서 등을 토대로 월성 1호기가 국제기준에 따라 이행되는지를 집중 점검했다. 이번 안전점검 최종보고서는 IAEA본부의 최종검토를 거쳐 오는 8월 나온다.
이승호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은 “IAEA의 개선권고사항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해 안전성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면서 “이번 IAEA의 안전점검으로 월성 1호기의 안전성이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됐고, 계속운전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어 결과가 나오면 계속운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월성 1호기는 2003년에 시행된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의 후속조치로 안전계통 설비개선, 경년열화 설비개선 등 총 179건의 설비개선을 통해 안전성을 대폭 높였다. 한수원은 안전성이 강화된 월성 1호기에 대해 2007년 중수로 계속운전 기술기준 제정 후 자체 안전성 평가를 시행했다.
그 결과, 계속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2009년 12월 30일 정부에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은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평가를 수행 중에 있다.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인허가 승인 여부는 올 하반기에 결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계속운전 승인은 원자력법 시행령 등에 제시된 ‘안전기준을 만족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계속운전이 승인될 경우, 2012년 11월 21일부터 10년간의 계속운전을 시작하게 된다.
정부 역시 그동안 IAEA 점검에서 이상이 없으면 수명연장에 들어간다는 방침이어서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23년까지 10년간 연장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중수로 원전인 월성 1호기는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수차례의 지속적인 설비개선 공사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2009년 4월 1일부터 진행됐던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를 놓고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계속운전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지역주민, 계속운전으로 추가지원도 받을 수 있어
설계수명 만료를 불과 2년여 앞두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한수원 측은 2009년부터 진행된 설비개선은 원자력법 등에 따라 2001년 화재위험도 분석, 2003년 주기적 안전성 평가, 2007년 확률론 안전성 평가를 통해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압력관 교체, 제어용 전산기 교체, 전기 케이블 교체 등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가 이뤄졌다.
원자로의 ‘심장’이라 불리는 압력관의 경우, 설계수명인 30년을 채우지 않고 26년 만에 교체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월성 1호기는 4차례의 원전 이용률 세계 1위를 달성하는 등 우수한 운영 실적으로 인해 압력관의 설계 이용률(80%)을 상회하는 약 86%의 평균 이용률을 기록했다.
일부 핵심기기(압력관, 전산기 등)가 30년 이전에 설계수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돼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교체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결국 계속운전을 염두에 둔 사전작업이라기보다 안전성 확보를 위한 통상적 계획예방정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전 전문가들은 “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기하지 않고 안전성이 보장되는 한 이를 연장해 운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가 자산의 효율적 활용과 신규원전 건설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한다.
장기 가동 중인 원전은 이미 감가상각이 거의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안전성과 기술적 타당성만 입증된다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상황과 국가자산의 효율적 활용을 고려할 때 계속운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이 밖에도 계속운전을 하게 되면, 지역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해당 지역의 지원도 추가된다. 설계수명 이후 계속운전을 하게 되면 ‘발전소 주변 지역에 관한 법률’(발주지법)에 따라 지원금이 계속 지급되는 것은 물론, 계속운전에 대한 특별 가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또 지방세법에 따라 발전량을 기준으로 해당 지자체에 지방세를 납부해 지자체의 재정안정에도 기여하게 된다. 계속운전을 하게 되면 직원들이 해당지역에 계속 거주할 수 있고, 원전은 지역민을 계속 고용할 수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반대로 계속운전을 중단할 경우, 발전량이 없게 되므로 발주법에 따른 지역지원금과 지역개발세 등의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에 지역지원 혜택의 감소는 불가피하다.
국내의 월성 1~4호기와 동일한 중수로 원전은 세계적으로 캐나다 18기, 인도 18기, 아르헨티나 2기 등 총 47기가 가동 중에 있다. 이들 원전의 계속운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수로 원전 종주국인 캐나다의 경우, 피커링 1·4호기, 브루스 3·4호기까지 총 4기가 30년 이상 계속운전 중에 있다. 또 포인트레프로, 브루스 1·2호기 등은 대규모 설비개선이 진행 중에 있어 향후 계속운전 승인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18기의 중수로형 원전을 가동 중인 인도 역시 라자스탄 1·2호기, 타라푸르 1·2호기 등 총 4기가 30년 이상 계속운전 중에 있으며, 최근에는 마드라스 1·2호기가 압력관 교체 등 설비개선을 완료하고 설계수명을 20년 연장했다.
또한 파키스탄도 카누프 1호기를 30년 이상 계속운전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도 아투차 1호기와 엠발세 원전에 대해 압력관 교체 등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공사 완료 후 계속운전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운전’을 제2의 원전수출 상품으로 육성해야
정부가 발표한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4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4기, 석탄화력발전소 15기 등 총 50기의 발전설비를 확충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전력난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신재인(申載仁) 전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중장기적인 사업이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향후 설계수명이 완료되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높여 계속해서 운전하는 것이 당면한 전력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했다.
그는 또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이 추진된다면 계속운전 기술은 국가적인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해외 진출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지난 30년간의 원전 건설과 운영경험을 축적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의 결실을 이뤘다면,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 추진과 운영 노하우를 기초로 계속운전 기술을 발전시켜 향후 UAE 원전 수주를 잇는 제2의 원전수출 상품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가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신규 원전 건설의 대체 효과 등을 이유로 세계 각국은 기존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해 계속운전을 시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들조차 안정적 전력공급과 국제적 환경규제에 대비해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운전’이란 예상 수명에 도달한 원전에 대해 법적 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평가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 운전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오는 2030년 무렵까지 세계적으로 300여 기의 원전이 계속운전에 돌입할 경우, 약 500조원이 넘는 거대한 계속운전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전의 수명은 설계수명에 20년 정도를 더한다. 설계수명이 30년이면 50년, 40년이면 60년까지는 안전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운전능력의 향상으로 수명을 8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 계속운전 경제효과 254억 달러로 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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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2000년 20년 계속운전을 승인한 메릴랜드주에 있는 칼버트 클립스(Calvert Cliffs) 원전. |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000년 칼버트 클립스(Calvert Cliffs) 원전 2기의 20년 계속운전을 승인한 이래 2012년 5월 현재까지 미국 전체 원전 중 50%가 넘는 총 73기에 대해 계속운전을 허용했다. 이러한 과정의 모든 절차와 문서들이 NRC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고, 운영상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원자력연구소(NEI)에 따르면, 자국 원전의 계속운전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가 오는 2032년에는 25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계속운전을 통해 발생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국민 여론도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전체 원전 54기가 전력의 약 3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 원전의 설계수명은 30년으로 간주되고 있다. 30년이 넘은 원전의 경우, 통상적인 정기점검 외에 10년 주기로 안전성을 평가한다. 검사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원전에 대해서만 계속운전을 허용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일본이 가동하고 있는 원전 중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운전한 것으로, 이미 18기의 원전이 설계수명 이후 계속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일본은 계속운전 기간을 포함해 총 60년간 원전의 계속운전이 가능하도록 장기 가동원전 기본정책을 펴고 있다.
석유나 무연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도 총 3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13기의 원전이 계속운전 중에 있다. 노보보로네츠 원전 5호기는 최근 설비 개선 작업 이후 30년간의 계속운전에 돌입했고, 노보보로네츠 3·4호기와 커크스 1·2호기, 콜라 1·2호기, 레닌그라드 1~4호기 역시 15년의 계속운전 승인을 마치는 등 원전의 계속운전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계속운전은 원전 선진국에서 먼저 도입해 원자력 시장의 새로운 조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원전 선진국은 물론 세계 각국은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에 대해 경년열화(經年劣化·설비상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약해지는 현상) 평가 등 안전성을 심도 있게 평가해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계속운전을 승인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고리 1호기가 주민과의 합의를 거쳐 지난 2008년 1월에 국내 최초로 10년간의 계속운전에 돌입했다. 현재는 월성 1호기가 오는 12월 수명만료를 앞두고 계속운전과 폐로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월성 1호기가 폐로가 아닌 계속운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국내의 까다로운 계속운전 인허가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우선, 국내의 계속운전 평가기준은 다른 원전 선진국에 비해 훨씬 강화된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은 국가가 원전의 설계수명 만료 이후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권고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 더해 미국의 운영허가갱신제고(LR)를 추가 도입해 한층 강화된 기술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즉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 국가들이 적용하는 10년 주기의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에 주요기기 수명 평가,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 등을 추가해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한국도 ‘계속운전’에 돌입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07년 6월 30년의 운영 허가기간이 만료됐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는 엄격한 계속운전 안전성 심사를 거쳐 이후 10년간 운전이 가능하다고 판단, 지역주민의 동의 아래 2008년 1월부터 10년간 계속운전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고리 1호기는 계속운전 첫 주기 무고장 안전운전 317일을 달성했고, 3주기 연속 무고장안전운전(1043일)과 총 8회의 무고장 안전운전을 기록해 한국의 계속운전 기술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는 “이런 계속운전 성과와 기술력 덕분에 지난해 9월에는 아르헨티나 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해 기존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했다.
2012년 11월 설계수명 30년 만료를 앞두고 계속운전을 위한 심사를 받고 있는 월성 1호기에 대해 IAEA가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오는 11월 말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월성 1호기를 사실상 계속 가동해도 좋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IAEA 안전점검팀은 지난 6월 7일 경북 경주시 한수원 월성원전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 1호기의 안전성 점검결과를 발표했다. 점검팀은 “지난달 29일부터 7일까지 월성 1호기에 대한 장기적인 안전운전 점검을 벌인 결과, 국제적으로 우수한 사례로 증명됐다”고 밝혔다.
IAEA 안전점검은 2005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5번이나 수행돼 국제적 권위와 공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등 많은 국가에서도 장기 가동 원전에 대해 IAEA 안전점검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으로 있다.
로버트 크리바넥(Robert Krivanek) 점검팀장은 “월성 1호기는 장기 가동 운전과 경년열화관리(운전연수 경과에 따른 설비상태관리)를 위해 광범위한 설비 개선작업을 벌였다”며 “그 결과 발전소는 매우 우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IAEA 점검 이상 없으면 수명연장 들어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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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7일 경북 경주시 한수원 월성원전본부에서 안전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IAEA 리파르미로 슬라프 안전점검단장. |
그는 또 “계속운전을 결정하는 것은 한국의 규제기관이지, IAEA 역할은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검팀(SALTO·Safety Long Term Operation peer review)을 초청해 점검을 받은 것을 볼 때, IAEA 안전기준을 토대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체코, 인도, 일본, 스위스, 스웨덴 등 IAEA 소속 7명의 원전 전문가로 구성된 점검팀은 주요기기 수명 평가보고서,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보고서 등을 토대로 월성 1호기가 국제기준에 따라 이행되는지를 집중 점검했다. 이번 안전점검 최종보고서는 IAEA본부의 최종검토를 거쳐 오는 8월 나온다.
이승호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은 “IAEA의 개선권고사항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해 안전성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면서 “이번 IAEA의 안전점검으로 월성 1호기의 안전성이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됐고, 계속운전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어 결과가 나오면 계속운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월성 1호기는 2003년에 시행된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의 후속조치로 안전계통 설비개선, 경년열화 설비개선 등 총 179건의 설비개선을 통해 안전성을 대폭 높였다. 한수원은 안전성이 강화된 월성 1호기에 대해 2007년 중수로 계속운전 기술기준 제정 후 자체 안전성 평가를 시행했다.
그 결과, 계속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2009년 12월 30일 정부에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은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평가를 수행 중에 있다.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인허가 승인 여부는 올 하반기에 결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계속운전 승인은 원자력법 시행령 등에 제시된 ‘안전기준을 만족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계속운전이 승인될 경우, 2012년 11월 21일부터 10년간의 계속운전을 시작하게 된다.
정부 역시 그동안 IAEA 점검에서 이상이 없으면 수명연장에 들어간다는 방침이어서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23년까지 10년간 연장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중수로 원전인 월성 1호기는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수차례의 지속적인 설비개선 공사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2009년 4월 1일부터 진행됐던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를 놓고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계속운전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지역주민, 계속운전으로 추가지원도 받을 수 있어
설계수명 만료를 불과 2년여 앞두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한수원 측은 2009년부터 진행된 설비개선은 원자력법 등에 따라 2001년 화재위험도 분석, 2003년 주기적 안전성 평가, 2007년 확률론 안전성 평가를 통해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압력관 교체, 제어용 전산기 교체, 전기 케이블 교체 등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가 이뤄졌다.
원자로의 ‘심장’이라 불리는 압력관의 경우, 설계수명인 30년을 채우지 않고 26년 만에 교체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월성 1호기는 4차례의 원전 이용률 세계 1위를 달성하는 등 우수한 운영 실적으로 인해 압력관의 설계 이용률(80%)을 상회하는 약 86%의 평균 이용률을 기록했다.
일부 핵심기기(압력관, 전산기 등)가 30년 이전에 설계수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돼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교체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결국 계속운전을 염두에 둔 사전작업이라기보다 안전성 확보를 위한 통상적 계획예방정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전 전문가들은 “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기하지 않고 안전성이 보장되는 한 이를 연장해 운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가 자산의 효율적 활용과 신규원전 건설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한다.
장기 가동 중인 원전은 이미 감가상각이 거의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안전성과 기술적 타당성만 입증된다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상황과 국가자산의 효율적 활용을 고려할 때 계속운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이 밖에도 계속운전을 하게 되면, 지역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해당 지역의 지원도 추가된다. 설계수명 이후 계속운전을 하게 되면 ‘발전소 주변 지역에 관한 법률’(발주지법)에 따라 지원금이 계속 지급되는 것은 물론, 계속운전에 대한 특별 가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또 지방세법에 따라 발전량을 기준으로 해당 지자체에 지방세를 납부해 지자체의 재정안정에도 기여하게 된다. 계속운전을 하게 되면 직원들이 해당지역에 계속 거주할 수 있고, 원전은 지역민을 계속 고용할 수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반대로 계속운전을 중단할 경우, 발전량이 없게 되므로 발주법에 따른 지역지원금과 지역개발세 등의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에 지역지원 혜택의 감소는 불가피하다.
국내의 월성 1~4호기와 동일한 중수로 원전은 세계적으로 캐나다 18기, 인도 18기, 아르헨티나 2기 등 총 47기가 가동 중에 있다. 이들 원전의 계속운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수로 원전 종주국인 캐나다의 경우, 피커링 1·4호기, 브루스 3·4호기까지 총 4기가 30년 이상 계속운전 중에 있다. 또 포인트레프로, 브루스 1·2호기 등은 대규모 설비개선이 진행 중에 있어 향후 계속운전 승인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18기의 중수로형 원전을 가동 중인 인도 역시 라자스탄 1·2호기, 타라푸르 1·2호기 등 총 4기가 30년 이상 계속운전 중에 있으며, 최근에는 마드라스 1·2호기가 압력관 교체 등 설비개선을 완료하고 설계수명을 20년 연장했다.
또한 파키스탄도 카누프 1호기를 30년 이상 계속운전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도 아투차 1호기와 엠발세 원전에 대해 압력관 교체 등 대규모 설비개선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공사 완료 후 계속운전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운전’을 제2의 원전수출 상품으로 육성해야
정부가 발표한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4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4기, 석탄화력발전소 15기 등 총 50기의 발전설비를 확충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전력난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신재인(申載仁) 전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중장기적인 사업이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향후 설계수명이 완료되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높여 계속해서 운전하는 것이 당면한 전력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했다.
그는 또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이 추진된다면 계속운전 기술은 국가적인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해외 진출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지난 30년간의 원전 건설과 운영경험을 축적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의 결실을 이뤘다면,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 추진과 운영 노하우를 기초로 계속운전 기술을 발전시켜 향후 UAE 원전 수주를 잇는 제2의 원전수출 상품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