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서저리’(psychosurgery)는 정신분열 중에서도 약물이 잘 듣지 않는 난치성 강박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투렛증후군(틱 장애), 식이장애 등에 적용할 수 있다. 또 자폐증 환자 중 강박적이고 충동성을 보인 환자에게도 처치가 가능하다
“사실, 우리가 너무 조심스레 접근해 오히려 필요한 효과를 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기왕에 하는 뇌 수술, 싹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워낙 조심스레 (수술)하니까 충분한 효과를 못 얻는 측면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 2006년부터 5년간 우울증·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총 265만명
⊙ 약물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정신질환 치료 필요성 제기
⊙ 서울아산병원과 국립서울병원 연구팀, 2009년 10월부터 ‘사이코서저리’ 연구
⊙ 8명의 강박·충동성 정신분열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해 성공
⊙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이라는 점에서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어 논란
취재지원 = 박소현 월간조선 인턴기자
“사실, 우리가 너무 조심스레 접근해 오히려 필요한 효과를 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기왕에 하는 뇌 수술, 싹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워낙 조심스레 (수술)하니까 충분한 효과를 못 얻는 측면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 2006년부터 5년간 우울증·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총 265만명
⊙ 약물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정신질환 치료 필요성 제기
⊙ 서울아산병원과 국립서울병원 연구팀, 2009년 10월부터 ‘사이코서저리’ 연구
⊙ 8명의 강박·충동성 정신분열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해 성공
⊙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이라는 점에서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어 논란
취재지원 = 박소현 월간조선 인턴기자
인간은 뇌를 정복하지 못했다. 신경과학자들이 그린 뇌 지도는 기괴한 해안선과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 찬 신대륙(新大陸) 지도와 비슷하다. 어쩌면 뇌의 세계는 신(神)의 영역인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뇌의 기능을 “인간의 정신작용은 무리로 얽혀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neuron)이 매초 수조 개의 신호를 교환하며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 도대체 저 거대한 신경다발이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일까. 소수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처녀지(處女地)를 개척하듯 조금씩 조금씩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낯설고 기괴하며 놀라운 뇌 기능을 추적한다.
A(49)씨는 중2 때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버스에 부딪혀서 머리에 찰과상을 입었다. 당시 CT 검사를 했으나 정상이었다. A씨의 부모는 “늘 공부하고 책상에 앉아 있었던 그 아이는 고2까지 얌전했고 학업성적도 좋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온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A씨 아버지는 “머리가 아파 조퇴하고 집에 오는데 누군가 낫을 들고 따라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것이 ‘머릿병’의 시작이었다.
병명은 난치성 ‘조현병(調絃病)’. 고쳐 말하면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이었다. 이후 정신병원과 기도원을 오갔지만 병세는 더욱 깊어졌다. 1994년에는 손으로 한쪽 눈을 빼려고 시도해 실명했다. 다른 쪽 눈마저 찌르고 싶다는 강박 증상으로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2010년. 국립서울병원(옛 국립정신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했으나 호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즈음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李楨敎) 교수와 국립서울병원 정은기(鄭恩基) 원장, 이종일(李鍾日)·이태경(李泰京) 박사는 ‘사이코서저리(psychosurgery)’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정신(psycho)과 외과술(surgery)의 합성어인 이 말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외과적 처치(處置)를 한다는 의미다. ‘정신질환 뇌수술’, ‘정신질환자 치료에 대한 외과요법(혹은 외과적 치료·외과적 처치)’, ‘정신외과(수)술’ 등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논의되거나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다.
A씨의 건강이 악화되자 국립서울병원은 이정교 교수팀에게 조심스레 ‘사이코서저리’를 의뢰한다. 그리고 지난해 4월과 8월 두 차례의 수술(BAC와 BC 수술)을 받았다. 전극을 부착한 바늘을 뇌의 신경섬유 다발에 넣은 뒤 고주파 전류를 흐르게 해 부위를 파괴하는 수술이었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뇌의 특정 부위를 전기로 ‘지졌다’.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전기로 뇌의 피막과 대상회를 파괴한 처치 이후 A씨는 어떻게 됐을까. 혹시 ‘바보’가 된 것은 아닐까. 국립서울병원 정신건강과장인 이종일 박사의 말이다.
“수술 후 부작용으로 일어날 수 있는 운동기능, 인지기능의 장애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환자를 데리고 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입원시켜 고(高)용량의 약물을 써도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던 환자가 행동조절이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조현병 약물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된 셈이지요.”
―A씨 가족도 만족하나요?
“수술 후 난폭했던 행동, 그러니까 강박성이나 충동성 부분이 상당 수준 감소했고 현재는 퇴원 후 외래로 병원엘 다니고 있어요. 약도 정상 용량을 쓰고 단순한 약물을 써도 컨트롤이 되니까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환자가족, 치료하는 제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A씨와 같은 ‘정신외과적 처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월 중순쯤 공격적 행동을 보이며 조현병의 강박·충동 증상을 보인 B(28)씨를 같은 방식으로 수술했다. 결과는 A씨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수술을 집도한 이정교 교수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
“B씨는 공격적이고 난폭한 성향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의 행동이 잦았습니다. 공격 성향은 가장 높은 단계의 약물치료로도 전혀 조절이 되지 않았고요.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입원안내문을 찢고 몸에 있는 주삿바늘을 빼 버리면서 옷을 벗는 행동을 보였어요. 하지만 수술 후 공격적인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면서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고 현재는 퇴원 후 외래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B씨에게는 A씨와 같이 ‘뇌정위적 전피막 절개술(BAC)’을 적용했다.
뇌 연구, 나부끼는 깃발에 불과해
기자는 우연히 ‘도전적인 뇌수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뇌, 다시 말해 ‘사발만 한 응고 덩어리’에 가하는 정신외과술인 ‘사이코서저리’가 ‘머릿병’을 앓는 이들의 고통을 줄이는 대안인지 의사들과 환자,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는 무모할지 모른다. 여전히 현대과학으로는 뇌 속 신경다발의 정체를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왜 웃다가 울게 되며 울다가 웃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 감정과 이성적 사고를 연결 짓는지, 이 과정에서 뇌는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증명되지 않았다. X-레이나 MRI 같은 기기(器機)로 뇌의 움직임을 촬영한다고 하지만 속속들이 기능을 설명하지 못한다. 왜 바람이 부는지 모르는 채 나부끼는 깃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이코서저리’의 도전은 뇌를 개척하는 탐험가의 땀으로 보인다. 결과가 좋으면, 약물로 치유할 수 없는 정신질환자의 아픈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다. 강박증을 앓거나 충동적인 발작으로 고통에 빠진 ‘머릿병(조현병)’ 환자들에게 뇌의 탐험은 희소식이다.
그러나 탐험자의 발끝에 늪이 도사리고 있다. 시행착오와 실패는 불가피해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 식으로, “정신질환이 인간 영혼의 문제인지, 신이 내린 천형(天刑)의 문제인지 양자택일하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바로 뇌의 천길 벼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뇌에 관해 아는 지식은 어디까지입니까.
아산병원 이정교 교수의 말이다.
“뇌는 신경세포의 다발과 연결에 불과합니다. 그런 물질적인 뇌가 근육운동·감정·인지기능은 물론이고 고도의 정신영역인 철학과 신앙까지 관여합니다. 뇌의 신경세포는 10의 11승(乘), 그러니까 약 1000억 개에 이른다는 계산이 가능하지요. 이들이 서로 연결돼 있어요. 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결론적으로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정신현상이 뇌와 관련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뇌 연구를 통해 정확하게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에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령 대뇌피질의 두께 감소 등이 조현병의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지요. 대뇌피질 두께가 얇아지기 전에 대처하면 조현병을 억제시킬 수도 있어요. 또 뇌의 특정 기능을 개선하면 행복감을 느끼고 창의성을 얻을 수도 있어요. 향후 정신과와 신경외과 의사, 관련 과학자들의 긴밀한 협조하에서 정신질환의 원인 부위 및 증상과 관련된 뇌 부위를 발견·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신질환 연구는 뇌 연구의 정점(頂點)에 있습니다.”
약물치료 듣지 않아 수술 고려
환자 B(28)씨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는 정상분만으로 태어나 말하기, 걷기 등에서는 특이점이 없었다고 한다. B씨의 부모는 “5~6세 때 경련발작 증상이 있었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섭다며 구석으로 숨는 행동을 보이면서 조현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학병원에서 조현병과 자폐증 진단을 받고 1년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등 행동조절이 안 돼 중퇴하고 말았다. 이후 기도원에서 5년 가까이 생활하다가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환청과 환시, 불면, 중얼거림 등 기이한 행동과 기물파손, 폭력행동 등 행동조절에 문제점은 계속됐다. 치료 저항성 조현병 치료제인 클로자핀(Clozapine) 등을 포함해 복합적인 약물처방을 받았으나 낫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강박행동, 다른 환자에 대한 폭력 등의 증상이 조절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립서울병원 중독정신과장인 이태경 박사의 말이다.
“수술을 고려했던 이유가, 약물을 많이 써도 병이 잡히지 않았어요. 사실 약물 용량을 늘리면 의사로서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약을 쓰는데도 환자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죠.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는 ‘정신외과술’(사이코서저리)을 통해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이 치료는 아산병원 이정교 교수팀이 일찌감치 흥미를 갖고 연구해 온 분야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다. ‘정신외과술’은 주로 조현병 환자들, 그중에서도 강박적 충동성 질환을 앓는 정신질환자들이 주 대상이다. 따라서 공동연구를 위해서는 신경외과와 정신과 의사들과의 협진체계가 필요했다.
병원은 서로 다르지만, 아산병원 이 교수팀과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원장, 이종일·이태경 연구팀은 지난 2009년 10월부터 정기적으로 만나 이 낯선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원장의 말이다.
“처음에 이정교 교수가 자신이 몸담은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환자를 의뢰받아 연구를 하려 했는데 잘 안 됐다고 들었어요. 대학병원은 급성 환자나 초기 증상 환자가 많은 편이거든요. 환자 찾기가 어려운데다 정신과의 협조를 얻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병원(국립서울병원)은 만성 환자가 많아요.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은 듯하다가 또 악화된 환자들이 많지요. 그래서 이 교수가 ‘사이코서저리’ 대상이 되는 환자를 우리 병원에서 찾아보자고 의견교환을 한 것이 2009년 10월쯤 됐어요. 우리도 나름 대상을 찾아보고자 했는데 처음엔 환자 보호자나 의사들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옛날 의학서에 나오는 오래된 치료법으로 여기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최신 저널에도 간간이 소개되긴 했으나 의사들에게 별 관심을 못 끌었어요. 그러나 연구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관련 논문과 자료를 리뷰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아요.”
지금까지 ‘사이코서저리’로 모두 8번의 처치가 이뤄졌다. 7명의 환자가 국립서울병원 환자이고 나머지 1명은 시립은평병원 환자다.
이번에는 이종일 박사의 이야기다.
“이 교수팀으로부터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교육과 충분한 설명이 있었고 연구모임을 통해 과거 수술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심지어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토론도 거쳤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이 교수팀에게 수술 의뢰를 하게 됐지요.”
모니스와 프리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 교수는 ‘사이코서저리’ 분야를 개척하는 탐험가다. 지난해부터 이뤄진 8번의 수술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진행됐다. 결과는 현재까진 만족스럽다고 한다. 강박, 충동성을 지닌 조현병 환자 8명이 이 ‘정신외과술’로 크게 호전된 상태라는 것이다. 관련 학회에 연구보고서를 제출했거나 준비 중이다. 이 교수의 말이다.
“뇌수술을 이용한 정신질환 치료는 50년 넘게 논란이 됐습니다. 뇌수술은 포르투갈의 신경병리학자 모니스(Egas Moniz)가 1935년 ‘전두엽 절단술’이란 이름으로 처음 시행했어요. 처음에는 뇌에 알코올을 주사하거나 수술기구로 뇌의 전두엽 부분을 파괴시켰어요. 이 수술로 정신질환 환자의 환상이나 망상 증세를 호전시켜 모니스는 194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사이코서저리의 초기 형태인 ‘전두엽 절단술’은 어떤 수술법일까. 모니스가 신경질을 잘내는 원숭이의 전(前)전두엽 일부를 없앴더니 온순해졌다는 실험결과에 착안, 비슷한 증상을 보인 인간 환자들의 전전두엽을 잘라내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교수는 “전두엽 절단술은 정신질환 환자들의 환상이나 망상 증세를 호전시켜 노벨상을 받는 계기가 됐고 미국 조지타운대 프리먼(Walter Freeman) 교수와 와츠(James Watts)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며 “이후 1936년부터 1956년 사이에 6만여 건의 수술이 시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리먼의 수술법은 많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한다. 뇌 수술 부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송곳 같은 장비로 뇌 전두부(前頭部)를 분별없이 파괴했고 수술에 따른 지혈(止血)은 하지 않았다. 야만적인 수술방법이었다. 또 당시만 해도 마취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환자를 여러 사람이 붙잡아야 했고, 마취 대신 전기충격으로 환자의 정신을 잃게 해 수술하기도 했다.
프리먼의 수술법은 ‘전두부 절개술(Lobotomy)’이라 하는데, 대뇌의 전두엽 백질(白質·신경 섬유의 집단을 이루는 하얗게 보이는 부분)을 잘라 시상(視床·대뇌와 소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달걀 모양의 회백질 덩어리. 감각·충동·흥분 따위의 중계 역할을 한다)과의 연락을 단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된 이 교수의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각광을 받았지만, 신경생리학 원리를 통합한 새로운 신약의 개발과 부정확한 뇌수술을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으로 프리먼식(式) 수술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미국의회는 위원회를 구성해 미국에서 시행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결과를 분석했다고 한다. 결과는 뜻밖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우려와 달리 대부분의 ‘정신외과술’이 정당하게 수술이 이뤄졌고 상당수 환자에게 효과적이었다”며 “미의회는 이 수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신경과학과 명예교수인 엘리엇 밸런스타인(Elliot Valenstein)은 1976~1977년에 시행된 ‘사이코서저리’를 분석한 뒤 “환자의 60~90%가 매우 심한 정신질환 증세에서 매우 좋은 반응이 있었다. 또 초기 ‘전두부 절개술’에서 발생된 영구적 후유증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된 비과학적인 문제제기로 정신질환의 주요 치료방법으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대신 1950년대 이후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약물 개발이 본격화됐다. 이 교수는 “신약 개발 등으로 정신질환 등은 주로 약물치료에 의존하게 됐으나 일부 병원에서는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경우 이용하는 ‘마지막 보루(Last Resort)’로 유지돼 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선진국에서 ‘심신장애가 심한 10대 질환’ 중 4개가 정신질환이라고 합니다. 즉 우울증, 조울증, 조현증, 강박증이란 얘기입니다. 정신질환 치료에 쓰이는 의료비는 선진국의 경우 전체 의료비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모든 암을 포함한 진료비보다도 더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우울증 앓은 사람이 전 국민의 5.6%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우울증·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총 265만명에 달했다. 우울증 환자수는 2006년 44만명에서 2010년 51만7000명으로 5년 새 17.3%가 늘었고 조울증 환자수 역시 같은 기간 4만2530명에서 5만4792명으로 29%나 증가했다.
진료비 역시 우울증의 경우 1396억원에서 1933억원, 조울증은 418억원에서 668억원으로 각각 증가했으며 최근 5년 동안 우울증·조울증 진료비가 총 1조1176억원에 달했다.
또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11년 6월 내놓은 《국내 우울증의 질병 부담과 치료현황》을 보면, 한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약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전 국민의 2.5%(약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45~59세의 장년층 가운데 22%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 교수는 “문제는 정신질환 약물과 정신과 치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환자가 정신질환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난치성 환자들의 경우 다양한 복합 항(抗)정신 약물복용, 입·퇴원의 반복, 그에 따른 고비용 등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많은 정신질환자가 약물의 발전과 보급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특히 중증이며 치료가 힘든 조현병의 경우 평생을 사회활동이나 수입 없이, 오로지 가족의 도움만으로 국공립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이로 인해 겪게 되는 가족의 경제사정도 가혹합니다. 경우에 따라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거나 입원조차 못해 방치되고, 주위 사람을 다치게 해 처벌까지 받아요. 이러니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남게 되지요.”
이 교수가 ‘정신외과술’에 다시 주목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렇다고 야만적인 수술법을 그대로 가져오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뇌 과학과 뇌 해부학의 발전, 뇌수술 장비의 진화, MRI 스캔, 뇌파 검사 등 뇌 진단 장비와 정신질환 진단기준의 개정 등으로 더 나은 수술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약물치료 덜 된 환자는 돌려보내
정신치료 약물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이야기는 이 교수의 견해와 다소 차이가 있다.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원장의 말이다.
“정신치료 약물의 발전이 계속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에 정신치료가 어려웠던 환자들이 약물 사용으로 많이 호전됐고, 일상생활에 불편이나 부작용이 해소된 측면이 큽니다. 다만 그런 약으로 효과를 못 본 환자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런 환자들이 ‘정신외과술’의 일차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약물의 효능에도 불구하고, 잘 듣지 않는 환자의 경우 뇌의 신경전달 회로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분명히 듭니다. 그런 환자에게 ‘사이코서저리’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복합적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행동요법 등을 충분히 시도했음에도 정신질환이 호전 안 되는 경우들 말입니다. 게다가 환자나 보호자의 협조가 안 되면 이 수술은 이뤄지기 어렵지요.”
정신치료제의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됐다고 한다. 토라진(Thorazine·클로르프로마진)과 여러 신약은 정신질환 치료에 전대미문의 도움을 주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수년 동안 의식불명에 빠져 있던 이발사가 토라진을 복용한 후 즉시 깨어나 이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선언한 일이 있다고 한다. 또 어떤 환자는 투약에 반응한 후 당구공을 달라고 하더니 당구마술을 보여줬다고 한다. 신경학자들은 이런 새로운 약물들이 도파민을 비롯해 뇌에 있는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수치를 바꿔준다는 것을 알았다. 21세기 이후 인간의 뇌에는 프로작(Prozac), 팍실(Paxil), 졸로프트(Zoloft), 자낙스(Xanax), 리탈린(Ritalin)과 같은 치료제가 등장했다. 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이런 새로운 세대의 약물에 도움을 받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프로작을 복용한 사람들의 우울증이 호전됐을 때 MRI 스캔은 그들의 뇌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심각한 난치성 환자들이다.
국립서울병원 이태경 중독정신과장은 “약물치료를 충분히 한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정신외과술’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물치료가 덜 된 환자는 ‘정신외과술’을 받고 싶어해도 돌려보냅니다. 만성환자나 그 가족의 고통은 인정하지만, 약물치료를 충분히 받지 않고 얼른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90%는 됩니다. 그런 사람을 설득해 돌려보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지금 입장은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의 효과를 볼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지요.
약물치료는 가역적(可逆的)이어서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가역적(非可逆的·되돌릴 수 없는) 수술과는 차원이 다르죠. 약물이 듣지 않아 ‘사이코서저리’가 꼭 필요하고, 환자나 그 가족이 원하면 수술을 추천한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신외과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뇌 영상기술 발전으로 정밀 수술 가능해
강박 성향의 조현병을 앓은 C(36)씨의 사연은 이러하다. 그는 27세 때 처음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다. 학창시절에는 얌전하고 소심했다고 한다. 다만 친어머니와 친형이 모두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가족력이 있었다. C씨 부모는 “2003년 군 제대 후 중장비 학원을 다니던 중 시험접수를 하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뒤 그 후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말했다. 가족의 얘기다.
“이후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으나 3~4년 전부터 강박 증상이 심해져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세 번, 일곱 번, 심하면 열 번 이상 반복해야 안심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감이 심했습니다.”
2010년부터 더 심해져 약물을 조정했으나 효과가 없어 지난 5월 하순쯤 이정교 교수로부터 ‘사이코서저리’를 받았다. A씨와 B씨같이 ‘뇌정위적 전피막 절개술(BAC)’이 적용되었다. 수술 후 그는 약물을 절반 이상 줄였고 50일 후 퇴원한 상태다.
이 대목에서 사이코서저리의 안전성 문제를 짚어보자. 아직도 상당수 신경외과와 정신건강과 의사들은 ‘정신외과술’에 대해 의심한다. 과거 송곳 같은 장비로 눈 위쪽, 그러니까 뇌의 전두부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이태경 박사는 “과거 많이 시행됐던 ‘사이코서저리’ 중에서 성공한 환자의 뇌를 사후(死後) 부검해, 수술 효과가 증명된 부위 쪽만 수술 대상으로 잡고 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술한 8명의 환자 상태가 모두 좋다. 아직은 부작용이 없지만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 8명을 모두 집도한 이정교 교수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수술이 필요한 난치성 환자는 장기간 약물복용으로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전신 마취를 하기에 부적절한 경우가 있어요. 따라서 수술 전 전체 약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혈액검사, 심장상태도 체크해야 하죠. 필요에 따라 일부 약물을 수술 전 중지시키기도 합니다.”
수술에 앞서 MRI/CT 촬영을 통해 수술 부위를 찾는 작업도 필요하다. 뇌 영상은 수술용 컴퓨터로 전환돼 수술경로를 결정한다. C씨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수술이 이뤄졌다.
“C씨의 경우도 ‘사이코서저리’를 받은 다른 환자처럼, MRI/CT 촬영을 통해 강박과 충동성을 관장하는 뇌 부위를 확인하고 수술경로를 결정했어요. 요즘엔 첨단 장비와 정확한 뇌 해부학 지식의 발달, 뇌 영상기술의 축적으로 과거에 비해 정확하게 정신질환 관련 부위를 오차 없이 찾아내 수술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수술 부작용 없어
―수술방법의 진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옛날에는 제대로 된 영상장비가 없어 2차원 영상 같은 일반 X-레이 등을 이용해 부정확한 수술이 이뤄졌어요. 심지어 수술 부위를 개인차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 해부학적 통계치에 의존해 수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특수 장비로 정확히 환자의 머리를 고정시켜 수술 병소(病巢) 오차를 줄이고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지요.”
―수술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실제 수술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수술 후 부작용을 호소한 경우는 없나요?
“한 환자의 경우만 2번 수술했으나 수술 후 우려하는 인지기능이나 성격파괴 현상은 전혀 없었어요. 또 출혈 등과 같은 수술부작용도 없었습니다.”
환자 가족의 반응은 어땠을까.
국립서울병원 이종일 박사의 말이다.
“현재 우리 병원이 의뢰했던 환자 7명의 데이터를 두고 볼 때,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나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례연구가 쌓여야 할 것으로 보여요. ‘사이코서저리’를 타진하는 환자 가족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명 모두 ‘수술 후 환자가 바보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걱정하는 이유는 ‘서저리(외과술)’란 말이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그냥 ‘외과적 처치’라는 표현을 쓰면 좋은데 ‘수술’이란 말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정은기 원장 역시 “과거처럼 수술 후 부위가 감염되거나 합병증이 생긴다든지 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철저히 수술부위를 모니터링하면서 섬세하게 신경외과적으로 접근하니까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수술이 ‘비가역적’이란 것이지요. 섬세하게 들어가 최소한의 상처만 내고, 필요한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데도 아무래도 뇌 속 신경다발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아주 가늘게 들어간다고 해도 분명히 영향은 있을 겁니다. 또 수술 타깃을 정확히 하고 부위를 최소화시켜도 비가역적이어서 나중에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죠.”
정 원장은 그러나 “오히려 그런 신중함이 ‘정신외과술’의 효과와 가능성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우리가 너무 조심스레 접근해 오히려 필요한 효과를 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 공격성을 없애려 (수술)했는데, (수술 후) 좀 덜 공격적이게 됐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기왕에 하는 뇌 수술, 싹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워낙 조심스레 (수술)하니까 충분한 효과를 못 얻는 측면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는 이종일 박사의 얘기다.
“여러 수술방법이 있겠지만 안전하고 검증된 방법을 먼저 하다 보니, 다른 질환이나 부위에 대한 접근은 뒤로 밀리게 되지요.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적용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윤리적 문제와 희망
‘사이코서저리’에서 불거질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자.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뇌를 다룬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특히 수술 부위는 인간의 사고·정서·기억력을 관장하는 곳과 연계돼 있다. 그런 뇌를 신경외과 의사들이 함부로 메스를 들이댄다? 상당수 정신과 의사는 고개를 젓는다.
여전히 악명 높은 수술법으로 ‘사이코서저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수술에서 ‘정신분열 증세가 심한 환자를 온순하게 바꿔놓기는 했으나, 지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소문도 있다. 여기다 수술이 이뤄지면 그 부위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수술’이라는 점, 혹시나 뇌의 정상적인 부분까지 손대 인지·운동장애를 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셀 수 없이 많다.
서울아산병원 원목(院牧)인 오윤선(吳允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워크(Norwalk)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스테이트 정신병원’ 원목으로 18년 동안 재직하다 지난 2010년 1월 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많은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약으로 고칠 수 없는 정신질환자들은 우발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봉사자들이 처음 병원에 와서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이상한 행동할 리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정상으로 보이는 환자가 많아요. 그러나 24시간 중 발작이 일어나는 1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는 것이지요. 치료가 됐다고 퇴원했다가 사회생활을 못하고 다시 돌아오거나, 가서도 통제가 안 돼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오 목사는 “그런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중증 정신질환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희망을 갖게 할 무언가가 필요해요. 약물로 치료되지 않으면 수술을 통해 ‘비전’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신질환 환자 가족들이 가슴에 커다란 멍에를 안고 살아갑니다.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긴 세월을 동행하지요.”
그는 “일부 의사들이 자꾸 반대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과거에는 의사들이 감(感)으로 수술했지만 지금은 뇌 해부학과 영상기술의 발전으로 1mm 오차도 없이 수술한다”고 했다.
이정교 교수는 윤리적 문제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려는 있을 수 있으나 경험 많은 정신과 의사들과의 토의, 오랫동안 환자권리나 도덕적 문제를 고민해 온 종교인, 윤리학자, 관련 논문들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지켜 시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 수술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지요. 여러 종류의 항정신병 약물을 써도 효과가 없고, 약물 부작용이 많은데, 대책 없이 정신과 병동에 입원시켜 두는 게 윤리적인가요?”
“사이코서저리 전도사 되겠다”
생후 두 돌 무렵 자폐판정을 받았던 D(26)씨는 지난해 12월 말 아산병원에서 ‘정신외과술’을 받았다. 기자와 만난 D씨는 언뜻 보기에 100kg이 넘을 정도로 뚱뚱했다. 중2 때인 지난 2002년부터 가끔 공격성이 드러나 반 친구들을 때리곤 했는데 이듬해부터 심해졌다. D씨 부모는 “행인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부모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덩치 큰 아들을 향해 이성적인 호소를 한 들 통하지 않았다.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다양한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받았으나 효과를 못 봤다고 한다. D씨의 아버지는 “폭력성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회사로 출근하면 아내 혼자 아들을 감당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사이코서저리’를 의뢰한 이유를 설명했다.
“어린 시절, 그저 온순하게 보이고 혼자 자기 생각에 빠져 있곤 했는데, 초등학교 때 주위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달라졌어요. 땅에 주저앉아 울거나 신발을 빼앗겨 울기도 했지요. 그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를 지르고 간혹 자해를 했는데 20세부터 순간적인 폭력성이 나타났어요. 폭력적 행동과 충동성의 통제가 어렵고 이유 없는 폭력행동이 발생했어요.”
국립서울병원 이종일 박사는 “D씨는 자폐증 환자지만, 강박성이 먼저 나타나다가 충동성이 동반됐다”며 “난치성 강박·충동성이 심해 수술을 결정했다”고 했다.
기자는 D씨를 수술 일주일 뒤 만났다. 이태경 박사는 “수술경과는 좋다. 충동성과 강박성이 주 타깃이었는데 좋아졌다. 그동안 D 환자는 행동조절이 안 됐다. 경과가 좋지만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술 후 D씨 부모의 얼굴도 밝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수술 후 바보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했어요. 의식이 돌아온 뒤에 ‘이름이 뭔지’ ‘아빠 직업이 뭔지’ ‘어디에 사는지’를 꼬치꼬치 물어봤어요. 할 말만 하고 차분해진 것 같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현상은 생기지 않았어요.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로선 수술 결과에 만족해요.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더 없이 기쁘겠지만 공격성이라도 사라진다면 좋겠어요.”
그는 “자폐를 고치려고 안 해 본 일이 없다. 양약(洋藥)이 안 되니까 한의원을 전전했는데, 특별한 꽃에서 추출한 에센스를 처방해도 효과가 없더라. 아이의 공격성이 뇌에 의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라고 했다.
“아들이 완쾌되면, ‘사이코서저리’ 전도사가 될 겁니다. 우리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이 주변에 정말 많아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가야 할 길
‘사이코서저리’를 통해 난치성 조현병이 완치됐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며, 이 처치를 받은 8명의 환자 모두 약물을 줄였을 뿐 약물을 모두 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정신병원에서 외래환자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질환이 재발할지, 재발한다면 언제 그렇게 될지 현재로선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 ‘정신외과술’이 정신질환 치료의 대안이라 믿을 근거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약물이 ‘마법의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르핀이 통증을 줄이고 아스피린이 두통을 낫게 해주듯, 제약 개발도 계속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약물이 처음 개발돼 효력을 발휘할 때조차, 과학자들은 약물이 뇌에 미치는 작용에 대해 설전을 벌여왔다. 위약(僞藥)효과(Placebo Effect)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의 효능보다 심리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양쪽의 시도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섣부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천문학적 돈을 들여 약물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사이코서저리’는 이제 연구를 막 시작하려는 단계다. 둘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난치성 조현병을 앓는 이들에게 ‘사이코서저리’는 하나의 희망에 불과하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실험에서 밝혀진 사실을 거짓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의사와 과학자의 양심이 필요하다. 또 과학이론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개적인 시험무대’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도전을 정신과와 신경외과의 영역 다툼으로 몰아가게 해선 곤란하다.
이정교 교수의 마지막 당부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정신과, 신경외과 의사는 물론이고 의사집단, 일반인들은 문외한(門外漢)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난이 힘듭니다. 소위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 안 한 이들은 물론이고 관련 의사들에게 받는 비난까지 말이죠.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편의 논문을 정리·발표하고 연구를 같이해 8번의 수술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더 큰 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의사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해요. 수술 경험이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치료가 절대적입니다. 의사들의 도움이 없으면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뇌의 기능을 “인간의 정신작용은 무리로 얽혀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neuron)이 매초 수조 개의 신호를 교환하며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 도대체 저 거대한 신경다발이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일까. 소수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처녀지(處女地)를 개척하듯 조금씩 조금씩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낯설고 기괴하며 놀라운 뇌 기능을 추적한다.
A(49)씨는 중2 때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버스에 부딪혀서 머리에 찰과상을 입었다. 당시 CT 검사를 했으나 정상이었다. A씨의 부모는 “늘 공부하고 책상에 앉아 있었던 그 아이는 고2까지 얌전했고 학업성적도 좋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온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A씨 아버지는 “머리가 아파 조퇴하고 집에 오는데 누군가 낫을 들고 따라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것이 ‘머릿병’의 시작이었다.
병명은 난치성 ‘조현병(調絃病)’. 고쳐 말하면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이었다. 이후 정신병원과 기도원을 오갔지만 병세는 더욱 깊어졌다. 1994년에는 손으로 한쪽 눈을 빼려고 시도해 실명했다. 다른 쪽 눈마저 찌르고 싶다는 강박 증상으로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2010년. 국립서울병원(옛 국립정신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했으나 호전되지 않았다고 한다.그즈음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李楨敎) 교수와 국립서울병원 정은기(鄭恩基) 원장, 이종일(李鍾日)·이태경(李泰京) 박사는 ‘사이코서저리(psychosurgery)’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정신(psycho)과 외과술(surgery)의 합성어인 이 말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외과적 처치(處置)를 한다는 의미다. ‘정신질환 뇌수술’, ‘정신질환자 치료에 대한 외과요법(혹은 외과적 치료·외과적 처치)’, ‘정신외과(수)술’ 등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논의되거나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다.
A씨의 건강이 악화되자 국립서울병원은 이정교 교수팀에게 조심스레 ‘사이코서저리’를 의뢰한다. 그리고 지난해 4월과 8월 두 차례의 수술(BAC와 BC 수술)을 받았다. 전극을 부착한 바늘을 뇌의 신경섬유 다발에 넣은 뒤 고주파 전류를 흐르게 해 부위를 파괴하는 수술이었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뇌의 특정 부위를 전기로 ‘지졌다’.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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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 교수. |
“수술 후 부작용으로 일어날 수 있는 운동기능, 인지기능의 장애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환자를 데리고 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입원시켜 고(高)용량의 약물을 써도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던 환자가 행동조절이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조현병 약물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된 셈이지요.”
―A씨 가족도 만족하나요?
“수술 후 난폭했던 행동, 그러니까 강박성이나 충동성 부분이 상당 수준 감소했고 현재는 퇴원 후 외래로 병원엘 다니고 있어요. 약도 정상 용량을 쓰고 단순한 약물을 써도 컨트롤이 되니까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환자가족, 치료하는 제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A씨와 같은 ‘정신외과적 처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월 중순쯤 공격적 행동을 보이며 조현병의 강박·충동 증상을 보인 B(28)씨를 같은 방식으로 수술했다. 결과는 A씨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수술을 집도한 이정교 교수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
“B씨는 공격적이고 난폭한 성향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의 행동이 잦았습니다. 공격 성향은 가장 높은 단계의 약물치료로도 전혀 조절이 되지 않았고요.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입원안내문을 찢고 몸에 있는 주삿바늘을 빼 버리면서 옷을 벗는 행동을 보였어요. 하지만 수술 후 공격적인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면서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고 현재는 퇴원 후 외래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B씨에게는 A씨와 같이 ‘뇌정위적 전피막 절개술(BAC)’을 적용했다.
| ▣ 조현병이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뜻의 조현(調絃)은 뇌의 신경망을 조절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현병은 신경망 조절이 안 돼 환각·망상·무욕증·무논리증, 와해된 언어와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새로 생긴 질병이 아니라 ‘정신분열병(증)’의 새이름이다. 지난해 《2011 신경정신의학 용어집》에 처음 실렸다. 정신분열병이란 명칭이 질병을 앓는 환자 및 가족에게 이중적인 고통을 안겨줘 왔다는 이유에서다. |
뇌 연구, 나부끼는 깃발에 불과해
기자는 우연히 ‘도전적인 뇌수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뇌, 다시 말해 ‘사발만 한 응고 덩어리’에 가하는 정신외과술인 ‘사이코서저리’가 ‘머릿병’을 앓는 이들의 고통을 줄이는 대안인지 의사들과 환자,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는 무모할지 모른다. 여전히 현대과학으로는 뇌 속 신경다발의 정체를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왜 웃다가 울게 되며 울다가 웃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 감정과 이성적 사고를 연결 짓는지, 이 과정에서 뇌는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증명되지 않았다. X-레이나 MRI 같은 기기(器機)로 뇌의 움직임을 촬영한다고 하지만 속속들이 기능을 설명하지 못한다. 왜 바람이 부는지 모르는 채 나부끼는 깃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이코서저리’의 도전은 뇌를 개척하는 탐험가의 땀으로 보인다. 결과가 좋으면, 약물로 치유할 수 없는 정신질환자의 아픈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다. 강박증을 앓거나 충동적인 발작으로 고통에 빠진 ‘머릿병(조현병)’ 환자들에게 뇌의 탐험은 희소식이다.
그러나 탐험자의 발끝에 늪이 도사리고 있다. 시행착오와 실패는 불가피해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 식으로, “정신질환이 인간 영혼의 문제인지, 신이 내린 천형(天刑)의 문제인지 양자택일하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바로 뇌의 천길 벼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뇌에 관해 아는 지식은 어디까지입니까.
아산병원 이정교 교수의 말이다.
“뇌는 신경세포의 다발과 연결에 불과합니다. 그런 물질적인 뇌가 근육운동·감정·인지기능은 물론이고 고도의 정신영역인 철학과 신앙까지 관여합니다. 뇌의 신경세포는 10의 11승(乘), 그러니까 약 1000억 개에 이른다는 계산이 가능하지요. 이들이 서로 연결돼 있어요. 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결론적으로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정신현상이 뇌와 관련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뇌 연구를 통해 정확하게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에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령 대뇌피질의 두께 감소 등이 조현병의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지요. 대뇌피질 두께가 얇아지기 전에 대처하면 조현병을 억제시킬 수도 있어요. 또 뇌의 특정 기능을 개선하면 행복감을 느끼고 창의성을 얻을 수도 있어요. 향후 정신과와 신경외과 의사, 관련 과학자들의 긴밀한 협조하에서 정신질환의 원인 부위 및 증상과 관련된 뇌 부위를 발견·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신질환 연구는 뇌 연구의 정점(頂點)에 있습니다.”
| ▣ ‘사이코서저리’ 수술법 고주파 전류를 흘려보내 뇌 기능 일부를 차단
BAC는 뇌의 전(前)피막(皮膜) 쪽에 고주파 전류를 흘려보내 피막 일부를 차단하는 처치다. 대개 정신과 질환의 원인은 도파민 이상 분비 때문이다. 도파민이 이동하는 변연계 연결통로 일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이 수술의 특징. 뇌 피막은 보통 불필요한 생각이나 사고를 자동적으로 걸러내는 기능을 한다. 충동과 관련이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필요 없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걸러지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BC의 수술법은 BAC와 똑같으나 부위가 대상회(帶狀回) 쪽이다. 대상회는 주의를 전환시키고 여러 상황을 살피며 점검하는 영역이다. 대상회의 움직임이 너무 활성화되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해서 같은 생각을 되풀이한다. BC는 대상회 기능을 차단하는 수술이다. DBS는 볼펜심(1.27mm)과 같은 가는 전극을 뇌 병소 부위에 삽입해 컴퓨터 프로그램화된 자극장치가 지속적인 전기 자극을 주어 신경회로를 복원하는 치료다. 이 수술은 뇌세포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2~3년마다 한 번씩 몸속에 있는 배터리를 교환해야 한다는 맹점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강박증 환자에게만 시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
약물치료 듣지 않아 수술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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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 교수가 ‘사이코서저리’를 집도하고 있다. 이 수술은 정신분열 중에서도 약물이 잘 듣지 않는 난치성 강박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투렛증후군(틱 장애), 식이장애 등에 적용할 수 있다. |
당시 대학병원에서 조현병과 자폐증 진단을 받고 1년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등 행동조절이 안 돼 중퇴하고 말았다. 이후 기도원에서 5년 가까이 생활하다가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환청과 환시, 불면, 중얼거림 등 기이한 행동과 기물파손, 폭력행동 등 행동조절에 문제점은 계속됐다. 치료 저항성 조현병 치료제인 클로자핀(Clozapine) 등을 포함해 복합적인 약물처방을 받았으나 낫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강박행동, 다른 환자에 대한 폭력 등의 증상이 조절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립서울병원 중독정신과장인 이태경 박사의 말이다.
“수술을 고려했던 이유가, 약물을 많이 써도 병이 잡히지 않았어요. 사실 약물 용량을 늘리면 의사로서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약을 쓰는데도 환자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죠.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는 ‘정신외과술’(사이코서저리)을 통해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이 치료는 아산병원 이정교 교수팀이 일찌감치 흥미를 갖고 연구해 온 분야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다. ‘정신외과술’은 주로 조현병 환자들, 그중에서도 강박적 충동성 질환을 앓는 정신질환자들이 주 대상이다. 따라서 공동연구를 위해서는 신경외과와 정신과 의사들과의 협진체계가 필요했다.
병원은 서로 다르지만, 아산병원 이 교수팀과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원장, 이종일·이태경 연구팀은 지난 2009년 10월부터 정기적으로 만나 이 낯선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원장의 말이다.
“처음에 이정교 교수가 자신이 몸담은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환자를 의뢰받아 연구를 하려 했는데 잘 안 됐다고 들었어요. 대학병원은 급성 환자나 초기 증상 환자가 많은 편이거든요. 환자 찾기가 어려운데다 정신과의 협조를 얻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병원(국립서울병원)은 만성 환자가 많아요.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은 듯하다가 또 악화된 환자들이 많지요. 그래서 이 교수가 ‘사이코서저리’ 대상이 되는 환자를 우리 병원에서 찾아보자고 의견교환을 한 것이 2009년 10월쯤 됐어요. 우리도 나름 대상을 찾아보고자 했는데 처음엔 환자 보호자나 의사들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옛날 의학서에 나오는 오래된 치료법으로 여기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최신 저널에도 간간이 소개되긴 했으나 의사들에게 별 관심을 못 끌었어요. 그러나 연구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관련 논문과 자료를 리뷰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아요.”
지금까지 ‘사이코서저리’로 모두 8번의 처치가 이뤄졌다. 7명의 환자가 국립서울병원 환자이고 나머지 1명은 시립은평병원 환자다.
이번에는 이종일 박사의 이야기다.
“이 교수팀으로부터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교육과 충분한 설명이 있었고 연구모임을 통해 과거 수술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심지어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토론도 거쳤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이 교수팀에게 수술 의뢰를 하게 됐지요.”
▣ 정신의학의 小史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미쳤을 때,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가족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집안의 바닥에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깊이는 보통 1.5m 정도. 그곳에 갇힌 사람은 음식도 그 안에서 먹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죽었다.> 선사시대에는 악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몸에서 악한 영혼을 쫓아내기 위해 기도나 간곡한 권고에서부터 잔인하고 야만적인 조치까지 다양한 ‘푸닥거리 의식’이 시행됐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도서관 사서들이 정신질환자에게 비극과 희극을 추천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중세 이전에는 독성물질이 창자에 가득 차 정신질환이 생겼다며 환자에게 설사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중세 때는 정신병을 신이 내린 죗값이나 악령이 깃든 것이라고 생각해 고문과 화형을 가했다. 이후 식물에서 추출한 마약성분과 구토 유발성분을 사용했으며 19세기에 들어와 수면치료, 물치료, 혼수치료, 경련치료, 발열치료(말라리아균을 투여해 고열을 일으키는 치료법. 말라리아 예방접종이 마비성 치매의 치료에 효과가 있음이 발견돼 1927년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는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등이 등장했다. |
모니스와 프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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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수박을 가로 세로로 썰듯 사람의 뇌를 전후, 상하로 나눠 여러 각도로 촬영할 수 있어 수술부위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
“뇌수술을 이용한 정신질환 치료는 50년 넘게 논란이 됐습니다. 뇌수술은 포르투갈의 신경병리학자 모니스(Egas Moniz)가 1935년 ‘전두엽 절단술’이란 이름으로 처음 시행했어요. 처음에는 뇌에 알코올을 주사하거나 수술기구로 뇌의 전두엽 부분을 파괴시켰어요. 이 수술로 정신질환 환자의 환상이나 망상 증세를 호전시켜 모니스는 194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사이코서저리의 초기 형태인 ‘전두엽 절단술’은 어떤 수술법일까. 모니스가 신경질을 잘내는 원숭이의 전(前)전두엽 일부를 없앴더니 온순해졌다는 실험결과에 착안, 비슷한 증상을 보인 인간 환자들의 전전두엽을 잘라내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교수는 “전두엽 절단술은 정신질환 환자들의 환상이나 망상 증세를 호전시켜 노벨상을 받는 계기가 됐고 미국 조지타운대 프리먼(Walter Freeman) 교수와 와츠(James Watts)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며 “이후 1936년부터 1956년 사이에 6만여 건의 수술이 시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리먼의 수술법은 많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한다. 뇌 수술 부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송곳 같은 장비로 뇌 전두부(前頭部)를 분별없이 파괴했고 수술에 따른 지혈(止血)은 하지 않았다. 야만적인 수술방법이었다. 또 당시만 해도 마취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환자를 여러 사람이 붙잡아야 했고, 마취 대신 전기충격으로 환자의 정신을 잃게 해 수술하기도 했다.
프리먼의 수술법은 ‘전두부 절개술(Lobotomy)’이라 하는데, 대뇌의 전두엽 백질(白質·신경 섬유의 집단을 이루는 하얗게 보이는 부분)을 잘라 시상(視床·대뇌와 소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달걀 모양의 회백질 덩어리. 감각·충동·흥분 따위의 중계 역할을 한다)과의 연락을 단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된 이 교수의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각광을 받았지만, 신경생리학 원리를 통합한 새로운 신약의 개발과 부정확한 뇌수술을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으로 프리먼식(式) 수술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미국의회는 위원회를 구성해 미국에서 시행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결과를 분석했다고 한다. 결과는 뜻밖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우려와 달리 대부분의 ‘정신외과술’이 정당하게 수술이 이뤄졌고 상당수 환자에게 효과적이었다”며 “미의회는 이 수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신경과학과 명예교수인 엘리엇 밸런스타인(Elliot Valenstein)은 1976~1977년에 시행된 ‘사이코서저리’를 분석한 뒤 “환자의 60~90%가 매우 심한 정신질환 증세에서 매우 좋은 반응이 있었다. 또 초기 ‘전두부 절개술’에서 발생된 영구적 후유증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된 비과학적인 문제제기로 정신질환의 주요 치료방법으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대신 1950년대 이후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약물 개발이 본격화됐다. 이 교수는 “신약 개발 등으로 정신질환 등은 주로 약물치료에 의존하게 됐으나 일부 병원에서는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경우 이용하는 ‘마지막 보루(Last Resort)’로 유지돼 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선진국에서 ‘심신장애가 심한 10대 질환’ 중 4개가 정신질환이라고 합니다. 즉 우울증, 조울증, 조현증, 강박증이란 얘기입니다. 정신질환 치료에 쓰이는 의료비는 선진국의 경우 전체 의료비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모든 암을 포함한 진료비보다도 더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 ▣ 사이코서저리 대상이 되는 정신질환은? 강박·충동성 높은 난치성 정신분열 환자에게 적용 가능 어떤 정신질환이 ‘정신외과술’의 대상이 되는 걸까. 현재로서는 수술 대상이 제한적이다. 난치성 정신질환인 조현병(정신분열) 환자에 국한되며 그중에서도 강박적이고 충동성이 강한 환자가 대상이다.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원장은 “조현병 증상 중에서도 강박 증상이 심하거나 약물 조절이 안 되는 행동장애, 지속적인 우울증으로 자해 증상이 있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종일 박사는 “부위에 따라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을 추가할 수 있는데, 정신분열증 환자 중 환청(幻聽)을 타깃으로 한다든지, ‘물 중독’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물을 계속 마시는 행위도 충동성의 일종이다. 비슷한 질환인 섭식장애(신경성 식욕 부진증), 대식증까지 넓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 이정교 교수는 “조현병 중에서도 약물이 잘 듣지 않는 난치성 강박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투렛증후군(틱 장애), 식이장애 등에 적용할 수 있다. 또 자폐증 환자 중 강박적이고 충동성을 보이는 환자에게도 처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우울증 앓은 사람이 전 국민의 5.6%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우울증·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총 265만명에 달했다. 우울증 환자수는 2006년 44만명에서 2010년 51만7000명으로 5년 새 17.3%가 늘었고 조울증 환자수 역시 같은 기간 4만2530명에서 5만4792명으로 29%나 증가했다.
진료비 역시 우울증의 경우 1396억원에서 1933억원, 조울증은 418억원에서 668억원으로 각각 증가했으며 최근 5년 동안 우울증·조울증 진료비가 총 1조1176억원에 달했다.
또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11년 6월 내놓은 《국내 우울증의 질병 부담과 치료현황》을 보면, 한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약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전 국민의 2.5%(약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45~59세의 장년층 가운데 22%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 교수는 “문제는 정신질환 약물과 정신과 치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환자가 정신질환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난치성 환자들의 경우 다양한 복합 항(抗)정신 약물복용, 입·퇴원의 반복, 그에 따른 고비용 등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많은 정신질환자가 약물의 발전과 보급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특히 중증이며 치료가 힘든 조현병의 경우 평생을 사회활동이나 수입 없이, 오로지 가족의 도움만으로 국공립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이로 인해 겪게 되는 가족의 경제사정도 가혹합니다. 경우에 따라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거나 입원조차 못해 방치되고, 주위 사람을 다치게 해 처벌까지 받아요. 이러니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남게 되지요.”
이 교수가 ‘정신외과술’에 다시 주목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렇다고 야만적인 수술법을 그대로 가져오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뇌 과학과 뇌 해부학의 발전, 뇌수술 장비의 진화, MRI 스캔, 뇌파 검사 등 뇌 진단 장비와 정신질환 진단기준의 개정 등으로 더 나은 수술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약물치료 덜 된 환자는 돌려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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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은 MRI로 찍은 정상인의 뇌 모습. 2~4는 사이코서저리 이후 뇌모습. 피막과 대상회 일부 부위에 수술자국이 남아 있다. |
“정신치료 약물의 발전이 계속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에 정신치료가 어려웠던 환자들이 약물 사용으로 많이 호전됐고, 일상생활에 불편이나 부작용이 해소된 측면이 큽니다. 다만 그런 약으로 효과를 못 본 환자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런 환자들이 ‘정신외과술’의 일차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약물의 효능에도 불구하고, 잘 듣지 않는 환자의 경우 뇌의 신경전달 회로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분명히 듭니다. 그런 환자에게 ‘사이코서저리’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복합적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행동요법 등을 충분히 시도했음에도 정신질환이 호전 안 되는 경우들 말입니다. 게다가 환자나 보호자의 협조가 안 되면 이 수술은 이뤄지기 어렵지요.”
정신치료제의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됐다고 한다. 토라진(Thorazine·클로르프로마진)과 여러 신약은 정신질환 치료에 전대미문의 도움을 주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수년 동안 의식불명에 빠져 있던 이발사가 토라진을 복용한 후 즉시 깨어나 이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선언한 일이 있다고 한다. 또 어떤 환자는 투약에 반응한 후 당구공을 달라고 하더니 당구마술을 보여줬다고 한다. 신경학자들은 이런 새로운 약물들이 도파민을 비롯해 뇌에 있는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수치를 바꿔준다는 것을 알았다. 21세기 이후 인간의 뇌에는 프로작(Prozac), 팍실(Paxil), 졸로프트(Zoloft), 자낙스(Xanax), 리탈린(Ritalin)과 같은 치료제가 등장했다. 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이런 새로운 세대의 약물에 도움을 받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프로작을 복용한 사람들의 우울증이 호전됐을 때 MRI 스캔은 그들의 뇌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심각한 난치성 환자들이다.
국립서울병원 이태경 중독정신과장은 “약물치료를 충분히 한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정신외과술’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물치료가 덜 된 환자는 ‘정신외과술’을 받고 싶어해도 돌려보냅니다. 만성환자나 그 가족의 고통은 인정하지만, 약물치료를 충분히 받지 않고 얼른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90%는 됩니다. 그런 사람을 설득해 돌려보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지금 입장은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의 효과를 볼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지요.
약물치료는 가역적(可逆的)이어서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가역적(非可逆的·되돌릴 수 없는) 수술과는 차원이 다르죠. 약물이 듣지 않아 ‘사이코서저리’가 꼭 필요하고, 환자나 그 가족이 원하면 수술을 추천한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신외과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뇌 영상기술 발전으로 정밀 수술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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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의 신경병리학자 모니스(Egas Moniz). 그는‘전두엽 절단술’로 194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
강박 성향의 조현병을 앓은 C(36)씨의 사연은 이러하다. 그는 27세 때 처음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다. 학창시절에는 얌전하고 소심했다고 한다. 다만 친어머니와 친형이 모두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가족력이 있었다. C씨 부모는 “2003년 군 제대 후 중장비 학원을 다니던 중 시험접수를 하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뒤 그 후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말했다. 가족의 얘기다.
“이후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으나 3~4년 전부터 강박 증상이 심해져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세 번, 일곱 번, 심하면 열 번 이상 반복해야 안심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감이 심했습니다.”
2010년부터 더 심해져 약물을 조정했으나 효과가 없어 지난 5월 하순쯤 이정교 교수로부터 ‘사이코서저리’를 받았다. A씨와 B씨같이 ‘뇌정위적 전피막 절개술(BAC)’이 적용되었다. 수술 후 그는 약물을 절반 이상 줄였고 50일 후 퇴원한 상태다.
이 대목에서 사이코서저리의 안전성 문제를 짚어보자. 아직도 상당수 신경외과와 정신건강과 의사들은 ‘정신외과술’에 대해 의심한다. 과거 송곳 같은 장비로 눈 위쪽, 그러니까 뇌의 전두부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이태경 박사는 “과거 많이 시행됐던 ‘사이코서저리’ 중에서 성공한 환자의 뇌를 사후(死後) 부검해, 수술 효과가 증명된 부위 쪽만 수술 대상으로 잡고 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술한 8명의 환자 상태가 모두 좋다. 아직은 부작용이 없지만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 8명을 모두 집도한 이정교 교수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수술이 필요한 난치성 환자는 장기간 약물복용으로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전신 마취를 하기에 부적절한 경우가 있어요. 따라서 수술 전 전체 약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혈액검사, 심장상태도 체크해야 하죠. 필요에 따라 일부 약물을 수술 전 중지시키기도 합니다.”
수술에 앞서 MRI/CT 촬영을 통해 수술 부위를 찾는 작업도 필요하다. 뇌 영상은 수술용 컴퓨터로 전환돼 수술경로를 결정한다. C씨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수술이 이뤄졌다.
“C씨의 경우도 ‘사이코서저리’를 받은 다른 환자처럼, MRI/CT 촬영을 통해 강박과 충동성을 관장하는 뇌 부위를 확인하고 수술경로를 결정했어요. 요즘엔 첨단 장비와 정확한 뇌 해부학 지식의 발달, 뇌 영상기술의 축적으로 과거에 비해 정확하게 정신질환 관련 부위를 오차 없이 찾아내 수술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수술 부작용 없어
―수술방법의 진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옛날에는 제대로 된 영상장비가 없어 2차원 영상 같은 일반 X-레이 등을 이용해 부정확한 수술이 이뤄졌어요. 심지어 수술 부위를 개인차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 해부학적 통계치에 의존해 수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특수 장비로 정확히 환자의 머리를 고정시켜 수술 병소(病巢) 오차를 줄이고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지요.”
―수술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실제 수술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수술 후 부작용을 호소한 경우는 없나요?
“한 환자의 경우만 2번 수술했으나 수술 후 우려하는 인지기능이나 성격파괴 현상은 전혀 없었어요. 또 출혈 등과 같은 수술부작용도 없었습니다.”
환자 가족의 반응은 어땠을까.
국립서울병원 이종일 박사의 말이다.
“현재 우리 병원이 의뢰했던 환자 7명의 데이터를 두고 볼 때,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나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례연구가 쌓여야 할 것으로 보여요. ‘사이코서저리’를 타진하는 환자 가족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명 모두 ‘수술 후 환자가 바보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걱정하는 이유는 ‘서저리(외과술)’란 말이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그냥 ‘외과적 처치’라는 표현을 쓰면 좋은데 ‘수술’이란 말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정은기 원장 역시 “과거처럼 수술 후 부위가 감염되거나 합병증이 생긴다든지 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철저히 수술부위를 모니터링하면서 섬세하게 신경외과적으로 접근하니까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수술이 ‘비가역적’이란 것이지요. 섬세하게 들어가 최소한의 상처만 내고, 필요한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데도 아무래도 뇌 속 신경다발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아주 가늘게 들어간다고 해도 분명히 영향은 있을 겁니다. 또 수술 타깃을 정확히 하고 부위를 최소화시켜도 비가역적이어서 나중에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죠.”
정 원장은 그러나 “오히려 그런 신중함이 ‘정신외과술’의 효과와 가능성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우리가 너무 조심스레 접근해 오히려 필요한 효과를 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 공격성을 없애려 (수술)했는데, (수술 후) 좀 덜 공격적이게 됐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기왕에 하는 뇌 수술, 싹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워낙 조심스레 (수술)하니까 충분한 효과를 못 얻는 측면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는 이종일 박사의 얘기다.
“여러 수술방법이 있겠지만 안전하고 검증된 방법을 먼저 하다 보니, 다른 질환이나 부위에 대한 접근은 뒤로 밀리게 되지요.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적용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윤리적 문제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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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조지타운대 프리먼(Walter Freeman) 교수의 ‘전두부 절개술’(Lobotomy) 모습. 그의 수술법은 많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인 수술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
여전히 악명 높은 수술법으로 ‘사이코서저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수술에서 ‘정신분열 증세가 심한 환자를 온순하게 바꿔놓기는 했으나, 지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소문도 있다. 여기다 수술이 이뤄지면 그 부위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수술’이라는 점, 혹시나 뇌의 정상적인 부분까지 손대 인지·운동장애를 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셀 수 없이 많다.
서울아산병원 원목(院牧)인 오윤선(吳允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워크(Norwalk)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스테이트 정신병원’ 원목으로 18년 동안 재직하다 지난 2010년 1월 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많은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약으로 고칠 수 없는 정신질환자들은 우발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봉사자들이 처음 병원에 와서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이상한 행동할 리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정상으로 보이는 환자가 많아요. 그러나 24시간 중 발작이 일어나는 1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는 것이지요. 치료가 됐다고 퇴원했다가 사회생활을 못하고 다시 돌아오거나, 가서도 통제가 안 돼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오 목사는 “그런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중증 정신질환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희망을 갖게 할 무언가가 필요해요. 약물로 치료되지 않으면 수술을 통해 ‘비전’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신질환 환자 가족들이 가슴에 커다란 멍에를 안고 살아갑니다.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긴 세월을 동행하지요.”
그는 “일부 의사들이 자꾸 반대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과거에는 의사들이 감(感)으로 수술했지만 지금은 뇌 해부학과 영상기술의 발전으로 1mm 오차도 없이 수술한다”고 했다.
이정교 교수는 윤리적 문제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려는 있을 수 있으나 경험 많은 정신과 의사들과의 토의, 오랫동안 환자권리나 도덕적 문제를 고민해 온 종교인, 윤리학자, 관련 논문들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지켜 시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 수술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지요. 여러 종류의 항정신병 약물을 써도 효과가 없고, 약물 부작용이 많은데, 대책 없이 정신과 병동에 입원시켜 두는 게 윤리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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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그림. 과학자들은 뇌의 기능을 “인간의 정신작용은 무리로 얽혀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neuron)이 매초 수조 개의 신호를 교환하며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 |
“사이코서저리 전도사 되겠다”
생후 두 돌 무렵 자폐판정을 받았던 D(26)씨는 지난해 12월 말 아산병원에서 ‘정신외과술’을 받았다. 기자와 만난 D씨는 언뜻 보기에 100kg이 넘을 정도로 뚱뚱했다. 중2 때인 지난 2002년부터 가끔 공격성이 드러나 반 친구들을 때리곤 했는데 이듬해부터 심해졌다. D씨 부모는 “행인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부모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덩치 큰 아들을 향해 이성적인 호소를 한 들 통하지 않았다.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다양한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받았으나 효과를 못 봤다고 한다. D씨의 아버지는 “폭력성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회사로 출근하면 아내 혼자 아들을 감당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사이코서저리’를 의뢰한 이유를 설명했다.
“어린 시절, 그저 온순하게 보이고 혼자 자기 생각에 빠져 있곤 했는데, 초등학교 때 주위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달라졌어요. 땅에 주저앉아 울거나 신발을 빼앗겨 울기도 했지요. 그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를 지르고 간혹 자해를 했는데 20세부터 순간적인 폭력성이 나타났어요. 폭력적 행동과 충동성의 통제가 어렵고 이유 없는 폭력행동이 발생했어요.”
국립서울병원 이종일 박사는 “D씨는 자폐증 환자지만, 강박성이 먼저 나타나다가 충동성이 동반됐다”며 “난치성 강박·충동성이 심해 수술을 결정했다”고 했다.
기자는 D씨를 수술 일주일 뒤 만났다. 이태경 박사는 “수술경과는 좋다. 충동성과 강박성이 주 타깃이었는데 좋아졌다. 그동안 D 환자는 행동조절이 안 됐다. 경과가 좋지만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술 후 D씨 부모의 얼굴도 밝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수술 후 바보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했어요. 의식이 돌아온 뒤에 ‘이름이 뭔지’ ‘아빠 직업이 뭔지’ ‘어디에 사는지’를 꼬치꼬치 물어봤어요. 할 말만 하고 차분해진 것 같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현상은 생기지 않았어요. 더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로선 수술 결과에 만족해요.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더 없이 기쁘겠지만 공격성이라도 사라진다면 좋겠어요.”
그는 “자폐를 고치려고 안 해 본 일이 없다. 양약(洋藥)이 안 되니까 한의원을 전전했는데, 특별한 꽃에서 추출한 에센스를 처방해도 효과가 없더라. 아이의 공격성이 뇌에 의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라고 했다.
“아들이 완쾌되면, ‘사이코서저리’ 전도사가 될 겁니다. 우리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이 주변에 정말 많아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가야 할 길
‘사이코서저리’를 통해 난치성 조현병이 완치됐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며, 이 처치를 받은 8명의 환자 모두 약물을 줄였을 뿐 약물을 모두 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정신병원에서 외래환자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질환이 재발할지, 재발한다면 언제 그렇게 될지 현재로선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 ‘정신외과술’이 정신질환 치료의 대안이라 믿을 근거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약물이 ‘마법의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르핀이 통증을 줄이고 아스피린이 두통을 낫게 해주듯, 제약 개발도 계속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약물이 처음 개발돼 효력을 발휘할 때조차, 과학자들은 약물이 뇌에 미치는 작용에 대해 설전을 벌여왔다. 위약(僞藥)효과(Placebo Effect)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의 효능보다 심리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양쪽의 시도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섣부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천문학적 돈을 들여 약물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사이코서저리’는 이제 연구를 막 시작하려는 단계다. 둘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난치성 조현병을 앓는 이들에게 ‘사이코서저리’는 하나의 희망에 불과하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실험에서 밝혀진 사실을 거짓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의사와 과학자의 양심이 필요하다. 또 과학이론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개적인 시험무대’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도전을 정신과와 신경외과의 영역 다툼으로 몰아가게 해선 곤란하다.
이정교 교수의 마지막 당부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정신과, 신경외과 의사는 물론이고 의사집단, 일반인들은 문외한(門外漢)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난이 힘듭니다. 소위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 안 한 이들은 물론이고 관련 의사들에게 받는 비난까지 말이죠.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편의 논문을 정리·발표하고 연구를 같이해 8번의 수술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더 큰 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의사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해요. 수술 경험이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치료가 절대적입니다. 의사들의 도움이 없으면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