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층과 ‘가진 자’들의 犯法 행태 등이 법의 무력함을 새삼 확인케 하고 동시에 일상의 작은 범법에
둔감하도록 체화시켜
⊙ 가까운 관계 특히 가족관계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거짓말이 많이 보고된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
⊙ 半島국가인 한국은 강대국 중국의 영향 아래 事大와 自主의 불안한 틈 사이에서 四分五裂되어
분열과 경쟁의 습성을 키워와
⊙ 편법을 이용한 사람이 더 잘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다 보면,
정직성 가치가 폄훼돼
둔감하도록 체화시켜
⊙ 가까운 관계 특히 가족관계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거짓말이 많이 보고된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
⊙ 半島국가인 한국은 강대국 중국의 영향 아래 事大와 自主의 불안한 틈 사이에서 四分五裂되어
분열과 경쟁의 습성을 키워와
⊙ 편법을 이용한 사람이 더 잘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다 보면,
정직성 가치가 폄훼돼
-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박연차 게이트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의 말이 진실일까, 세 번의 재판에서 드러난 증언들이 진실일까. 2011년 1월 27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직후 모습.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지난 1월 27일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도지사가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 하루 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이 전 지사는 불교 경전까지 인용하며 무죄를 항변(抗辯)했지만 대법원은 그를 믿지 않았다.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과 농협중앙회 정대근 전 회장 등에게 총 6차례에 걸쳐 미화 10만 달러와 한화 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00만원의 형을 확정했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이후 반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댄다.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이 전 지사일까, 박 전 회장일까. 그가 강원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강원도에는 이른바 ‘이광재 동정론’이 일어났다. 4·27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최문순(崔文洵) 의원이 강원도지사로 당선된 것이다.(선거기간 내내 최 지사는 ‘이광재 대리인’을 자처했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지사는 법을 우습게 만들었고 진실을 모호하게 구겨놨지만, 다수의 강원도민은 측은지심으로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한국인(특히 강원도민)의 의식구조가 법(法)보다 정(情)을 더 우선시한 것일까.
한국인의 심리에는 惡이 없다?
미국 메릴랜드대(칼리지파크) 정치학과 프레드 앨퍼드(C.Fred Alford) 교수는 몇 년 전 한국에 머무르며 많은 한국인을 인터뷰한 뒤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그린비 刊)라는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한국인의 심리에는 악(惡)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악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언뜻 보기에 이 말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앨퍼드 교수는 이런 근거를 댔다.
“한국인은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고 말합니다. 또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도 곧잘 합니다.”
악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악의 당사자, 책임자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앨퍼드 교수는 1910년 한일합방을 예로 들었다. 일제에 병합된 경험을 국치(國恥)라고까지 규정하면서도 책임자를 찾지 못한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한일병탄(韓日倂呑)은커녕 식민지 시대 반민족 행위의 책임자에 대한 정확한 색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앨퍼드 교수는 “위로든 아래로든 한번도 내부로부터의 혁명이 없었던 한국 역사의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민족에게 정복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한 가지 커다란 이득은 역사에 대해 (자국민 중에서는)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앨퍼드 교수는, 한국인의 악에 대한 불신은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직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한국인들은 ‘우리끼리 이야기’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이 말은 특정한 목적이 개재됐을 때는 ‘우리 두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반영하고 있어요. 이것은 정(情)이 배후에 있는 환상입니다. 한마디로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테두리 쳐 상황에 따라 형성된 친밀한 관계로 묶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죠. 이 말은 이성적인 측면과는 다른 낭만적인 관념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것은 제3자가 개입할 수 없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두 사람만의 친밀한 세계, 따뜻한 정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정이 ‘악’과 ‘죄’, ‘거짓말’까지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전 지사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무력화시킨 것은 약자에 대한 (동)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법 불신의 이유들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김시업(金始業) 교수는 <한국인의 법의식 : 법리(法理)와 정리(情理)의 갈등>이란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법 불신(不信), 법 경시(輕視)와 준법의식을 논한 적이 있다. 그는 연구년을 맞아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州)에 체류 중이다.
김 교수는 연세대 양승두(梁承斗) 명예교수의 견해를 빌려 “한국인에게 법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며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 편의대로 아랫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힘없는 일반 대중이 법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피해의식이 만연돼 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적이다.
“사실, 근대화 이후 제정된 성문법(成文法)으로서의 법은 일제시대부터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억압하고 부정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됐고, 법 집행과 적용이 이뤄지는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로 불렸지요. 부패한 정치인의 사면(赦免)과 상속세를 교묘히 피해 나가는 재벌의 행태 등은 국민들에게 권력층과 ‘가진 자’들에 대한 법의 무력함을 체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일반 서민들이 자신이 일상에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위법행위들, 예를 들어 탈세나 불법주차, 쓰레기 무단 투기, 위장전입 등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들었어요. 법을 지켜 사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기 십상이고 위로부터 법이 무시되는 상황이니 자연히 국민의 ‘준법의식’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법을 따르고자 하는 준법(遵法)에 대한 규범성이 무너지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법 불신, 법 경시에 대한 한국인의 심층에는 인간관계의 정리(情理)가 규범이나 법질서에 대한 적용을 어렵게 하는 사적(私的) 논리와 공적(公的) 논리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부정부패를 단죄하는 법이 무력해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탈법에 둔감해진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으나, 보다 심층적으로는 인정(人情)과 의리(義理)라는 한국인의 사적 논리와 공적 논리의 갈등이라든가, ‘마음고생’을 겪은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 한국인의 ‘인고(忍苦)심리’가 준법의식을 허약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위증 거부가 더 양심에 걸리는 일?
한국인에게 정의나 정직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심정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희롱 당한 동료교수가 부탁하면 피해자에 대한 위증(僞證)도 마다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이다.(참고 :《경향신문》 2001년 12월 25일자 기사 <우교수 성희롱 위증교수 실형, 법원 ‘허위진실’로 인정>)
위증은 중대한 범법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교수의 심리와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증을 부탁하는 동료교수의 사정이나 그간의 관계를 미뤄 위증을 거부하는 것이 위증을 하는 것보다 더 양심에 걸리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 김시업 교수의 계속된 주장이다.
“지난 1989년 미국과 인도의 심리학자들이 미국인과 인도인의 정직성을 비교한 일이 있는데, 미국인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를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보지만 인도인은 친밀한 사이에서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도덕적인 문제’로 보았어요. 그러니까 인도인들은 공적인 정의를 지키지 않았을 때보다 대인관계를 저해할 때 훨씬 비도덕적이라는 평가를 했어요. 이러한 결과는 서구인들과 동양인, 넓게는 한국인에게 적용할 수 있어요. 즉 아버지 죄를 관에 고발한 아들은 미국인 시각에서는 정의를 실천한 것이지만, 한국인 시각에서는 부도덕한 패륜아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한국인은 친구나 친척의 부탁, 청탁을 거절하는 사람을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인간성 나쁜 인간으로 매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한국인들이 위법이나 부정을 빈번하게 저지르고 또한 거기에 대해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는 것은 법이나 사회적 정의보다 강력한 규제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관계이며 인간관계의 정리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왜 법을 지키지 않는가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한국인의 준법정신이 허약해서’ 혹은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하고 남을 속이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서’와 같은 주장은 한국인의 준법정신을 분석하는 데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동어반복적인 대답이고 자기비하의 사고일 뿐입니다.”
조선시대 불법의 판례인 ‘고존장론(告尊長論)’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文龍鱗) 교수는 오랫동안 ‘도덕발달 이론’을 연구해 왔다. 지난 2008년 <한국인의 거짓말 유형과 정당화 양식 연구>라는 논문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문 교수는 법리보다 정리를 우선시하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었다.
조선 인조 4년 10월(1626년)의 일이다. 인조는 형조에서 올린 죄인들의 죄안(罪案)을 읽어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중에는 상전의 범죄를 관에 고발하지 않았다는 ‘상전불고지(不告知)’가 죄가 되어 잡혀온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조는 당장에 형조에다 다음과 같이 하교를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부자(父子)의 정리와 노주(奴主·노비와 상전)의 의리가 지엄하고 지중한데 종으로 하여금 상전을 고발케 하고,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고소케 한다면 이야말로 패속이 아니고 뭣이랴. 형조가 하는 일이 심히 그릇되고 어긋났으니 해당 당상은 깊이 배려하여 금후로부터는 비록 아버지에 관해 아들에게, 형에 관해 아우에게, 상전에 관해 종에게, 설사 증거를 얻기 위해 물어볼 일이 있더라도 묻지 않음으로써 풍속을 돈독히 하고 명교(名敎)를 밝히도록 하라.”
이듬해 7월에 김경현이란 이가 그의 누이동생이 쓴 한글 편지를 근거로 하여 ‘누이의 남편 김홍원이 윤운형, 유인창 등과 모반을 음모했다’고 고변(告變)을 했다.
문 교수는 “국가 변란을 미리 알리는 고변인데도 인조는 음모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대신 ‘도대체 남편을 고발하는 처첩이 생기다니…’하며 한탄한 뒤 ‘아무리 미천한 계집이기로서니 강상(綱常·사람의 도리)을 무너뜨리는 쪽이 보다 중죄라고 하고, 누이동생을 잡아 가두게 했다”고 말했다.
인조는 또 병자호란의 대(大)공신인 완풍부원군 이서와 호조판서 최명길을 파면했다. 두 사람이 형조에 근무할 때, 종을 잡아다가 그 상전의 죄를 입증시킨 사건과 아내를 잡아다가 남편이 지은 죄의 증인을 삼은 일이 각각 뒤늦게 발각되어 하교(下敎)를 어겼다는 이유였다.
문 교수는 “그 후에도 인조 24년에 아버지의 절도죄를 고발한 딸을 사형에 처해 그 목을 시장에 걸어 효수(梟首)까지 하는 극형을 가했다”며 “이와 같이 법치보다 인정을 우선한 사실에는 한국 특유의 사상적 배경이 담겨 있다. 어떤 진리보다 정리를 선행시키는 인정지상주의의 단적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인정을 법치에 우선시킨 것은 태종 때 비롯되어 세종, 중종 때 특히 강조됐고 인조 때에 이르러 극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조의 이 인정정치로 ‘고존장론(告尊長論)’은 불법의 판례로 정착되고 말았다. 고존장론이란 존장(尊長)을 고발하는 일로, 자손(子孫)·처첩(妻妾)·노비(奴婢)가 부모나 가장(家長) 상전(上典)을, 하관(下官)이 상관(上官)을 고발하였을 경우에 처벌하는 법의 한 조목을 뜻한다.
가족에게 거짓말을 더 많이 해
문용린 교수의 <한국인의 거짓말 유형과 정당화 양식 연구>라는 논문을 들여다보자. 그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성인까지 214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한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골라 시기, 상황, 대상, 목적, 결과, 결과에 대한 만족의 정도를 기술하도록 요구했다.
그 결과, 한국인이 기억하는 거짓말은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이고 가까운 관계에서 보고된 거짓말의 가장 많은 원인이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따른 선택’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가까운 인간관계가 갖는 특성에 대한 재음미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의 계속된 주장이다.
“원래 개인적이고 가까운 관계는 비밀을 공유하고 신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자신 됨을 드러내는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합니다. 따라서 가까운 관계, 특히 가족관계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거짓말이 많이 보고된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영역에 속한 거짓말 중에는 ‘관계유지를 위한 거짓말 사례’가 다수 보고됐는데, 이는 “관계 지향적이고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공동체의 조화와 화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주의(Collectivism)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동양권 사람들은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친사회적 거짓말’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은데, 가족 간의 화목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 군대나 직장상사가 하게 되는 집단적 책임감에 의한 거짓말 등은 이러한 문화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 교수의 견해를 종합하면, 한국인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거짓말이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솔직하지 못한데, 하물며 타인에게 솔직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은 일본보다 무고사건이 217배나 많아
《중앙일보》 2010년 10월 27일자 신문에는 이런 통계가 실렸다.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한국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법정이나 국회 등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장소에서 거짓말을 한 위증죄가 일본의 171배, 없는 일을 꾸며 고소, 고발하는 무고 사건은 217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의 2.5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위증죄는 427배, 무고죄는 542배에 이른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 범죄인 위증, 무고죄가 일본의 400~500배에 이른다니….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뢰 수준이 낮은 이유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찾았다. ‘6·25사변 이후 고속 경제성장을 거쳐 민주화 달성과정에서 국민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믿지 않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 ‘민주화’ ‘생존’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역임한 법무법인 충정 이우근(李宇根) 대표 변호사의 설명이다.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의 특성, 무사(武士) 계급에 의한 막부(幕府) 정치 등으로 예부터 단결과 충성의 폐쇄적 조직문화가 깊이 뿌리 내렸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세계 제2차대전의 패배 후에도 천황(天皇) 제도를 존속시킬 만큼 강력한 공동체적 결속력을 유지해 왔어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체질상 보수적·조직적이고, 가급적 ‘안정’을 희구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을까.
“반도(半島)국가인 한국은 전통적으로 강대국 중국의 영향 아래 사대(事大)와 자주(自主)의 불안한 틈 사이에서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단결력을 상실했고, 분열과 경쟁의 습성을 키워왔습니다. 무능한 정부, 부패한 관료체제에 대한 불신과 저항감이 오랜 기간 쌓이면서 충성의 대의명분이 민생 속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고, 정치의 반정(反正)과 중앙정부에 항거하는 민란(民亂)이 빈번히 일어났지요. 그래서 한국인은 본질상 개혁적·개인적이며, 늘 ‘변화’를 꿈꿉니다.”
―변화를 희구하면서도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한 것이 문제인가요?
“정치상황의 불안, 숱한 외침과 빈번한 피란생활 등은 국가와 조직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그 혼란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불가피하게 각자의 생존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결과 생존경쟁을 위한 불법(不法)·비리(非理)·부조리(不條理)를 정당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짐작됩니다.”
―다시 무고죄, 위증죄로 돌아가 보죠. 왜 한국이 일본보다 ‘거짓말 범죄’가 많은가요?
“‘칼’에 의존하는 일본의 무사도(武士道)는 단판 승부의 룰(Rule)에 절대복종하는 질서의식을 키워낸 반면, ‘붓’에 의존하는 우리의 선비문화는 씨름경기의 세 판 승부나 뒤집기 기술처럼 승부를 반전(反轉)시키는 변혁의 정신을 고양(高揚)시켰습니다. 소송에 있어서 일본보다 한국의 상소율(上訴率)이 월등히 높은 것도 이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조직의 룰이 개체(個體)의 생존을 보호해 주지 못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위증과 무고까지도 꺼리지 않는 반전의 욕구가 습성화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말싸움의 動力 없애지 말아야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자 한국 인문학의 권위자인 서울대 조동일(趙東一) 명예교수는 “일본에서는 원한(怨恨)을 해결하기 위해 칼로 싸웠으나, 한국에서는 관가에 고변해 재판을 통해 해결하도록 법제화돼 있었다”며 “‘칼’이 아닌 ‘말’로 싸워야 했기 때문에 무고죄, 위증죄가 많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검술(劍術)이 발달하듯 한국에서 위증이나 무고가 발달한 것은 당연합니다. 칼로 싸우는 것은 용감하고, 말로 싸우는 것은 비겁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해요. ‘검술이 모자라 죽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위증이나 무고 탓에 패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생명이 걸린 칼싸움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 조용하고 공손하게 처신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인의 정직성입니다. 말싸움은 생명과 직결되지 않아 쉽게 합니다. 목청을 함부로 높입니다. 그래서 예의가 없어 보이고, 정직하지 않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재판의 신뢰성을 높여 무고나 위증을 줄여야 하지만, 한국이 일본인처럼 돼야 한다는 것은 부당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목청을 함부로 높이는 말싸움이 부당하다고 할 것만은 아니고, 한국인의 활력(活力)과 직결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에서도 무고와 위증이 난무해 재판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풍조를 줄이는 유권자의 지혜가 재판의 신뢰성을 높이는 법관의 자질 향상보다 중요합니다. 말싸움의 동력(動力)을 없애지 말고 질적인 향상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해요.”
반면, 문용린 교수는 ‘서바이벌 위즈덤(Survival Wisdom·생존 지혜)’이라는 개념을 들어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한국은 과거부터 국가 공권력이 사람을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는 사람’ 중심으로 서로서로 살아남았거든요. 6·25전쟁 당시 우리 남편이 군인이고, 경찰이면 뭐합니까. 국가가 전혀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군에 가니까 너희는 알아서 잘 살아남아라. 어느 시골에 사돈의 팔촌네가 살고 있으니 그리로 가라’는 정도의 자구책뿐이었지요.
한국은 고려시대 이래로 공권력이 세금 내는 백성을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그 보호가 철저했어요. 평소 사무라이에게 세금을 내면 목숨을 걸고 평민들을 보호해 줬어요. 그게 일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피붙이, 나와 알고 있던 고교와 대학 동창끼리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의리를 지키고 위증까지 불사하게 되는 모양이죠.
“우리나라는 객관적인 공적 업무를 보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회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그런 공적 시스템이 사람을 보호해 주고, 가족을 보호해 주는 게 아니라 사적인 조직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公的 업무를 보기 어려운 사회”
“이것이 수천 년 유지돼 온 한국인의 ‘서바이벌 위즈덤’입니다. 좋게 말해 한국식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문화고, 아는 사람 중심으로 사회가 이뤄지는 일종의 ‘친애주의적(親愛·친하고 사랑하는 사람 중심의) 삶’이 이뤄지는 사회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산저축은행사건을 보세요. 고교 동창끼리 인간적인 끈을 만들어놓은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살아남기 좋은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위증죄도 마찬가지예요. 내 친한 친구가 어떤 문제에 걸렸다? 내가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저 친구가 살아남는다고 칩시다. 그럴 경우 ‘좋다! 나는 죽어도 의리를 지키겠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렇게 하면, 또 저쪽 상대방도 너를 위해 끝까지 책임진다는 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그게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한국인이 특히 거짓말에 관대한 습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회심리학자와 철학자들은 한국인 의식구조의 한 특징인 ‘이중성(二重性·겉과 속이 다른 측면)’에서 답을 찾곤 한다. 이 이중성은 체면, 형식주의, 의례성, 핑계, 눈치 등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서울대 차재호(車載鎬) 명예교수가 쓴 《한국인의 성격》에 따르면, 한국인은 체면을 차리고, 눈치를 보거나 재물이나 사욕에 초연한 체하고, 공사(公私)를 혼동하며, 핑곗거리를 찾고, 명분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중성의 특성들은 모두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책략들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내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외양(外樣)을 과대하게 긍정적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정의와 윤리를 연구해 온 서울대 철학과 황경식(黃璟植) 교수는 “거짓말을 하고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한국인이 갖는 인격의 이중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한국인이 지닌 인격의 이중성은 조선시대 관료의 수탈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노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듯합니다. 추수를 10섬 했다 하면 7섬을 수탈당하니 7섬으로 거짓을 고(告)해야 자신에게 5섬이 남아나 식구들의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중인격의 원인은 유교의 최대윤리, 즉 도덕적 이상주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상이 과도하게 높으면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이중 규범의 위선적 구조가 생겨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특히 선비 등 지식인들의 이중성이 탈춤 등에서 폭로, 풍자되기도 했지요.”
―인격의 이중성이 아직도 한국인의 삶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고 보나요?
“인격의 이중성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군사독재의 정보정치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짓말한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가책을 느낀다면 그것은 고쳐지기 쉽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각증세 없는 만성병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일본에 비해 무고죄, 위증죄가 많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일본인과의 1대1 비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정직하나 집단적으로는 부정직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정직한 것은 일본의 대단한 장점입니다. 그러나 일본 속담에도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正直者が損をする)는 말이 있어요.
살기가 어렵거나 규범이 느슨하면 사람이 부정직의 유혹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한국인의 부정직은 이 양자가 서로 얽히는 가운데 생겨났을 겁니다.”
한국인은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할 능력이 있을까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원장인 하병학(河炳學) 교수는 오랫동안 인간의 거짓말을 연구한 ‘거짓말 학자’다. 주요 논문으로 <거짓말의 현상학>, <거짓말하는 한국사회>, <자기 기만의 현상학>, <거짓말의 수사학> 등이 있다.
하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이유로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질과 자본주의의 팽배로 진실하고 성실한 삶보다는 권력, 돈, 지위 등을 지향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권력, 돈, 지위 등을 갖지 못하면 인간 대접을 받기 힘들다고 느껴 거짓말, 기만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른 원인으로 하 교수는 “전통적인 사회관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혈연, 지연, 학연 등 사적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들었다.
“진실보다는 그 사람과 나의 사적 관계 때문에 덮어두기, 은폐하기, 거짓말하기, 조작하기가 성행합니다. ‘의리’, ‘신의’라는 미명의 사적 관계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나와 관계된 사람이, 나의 고향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을, 타지방 사람을 흑색선전 해도, 그리고 그의 말이 거짓말인 것을 알지라도, 그 고향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찍는 것은 진실보다는 사적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참말과 거짓말 구별능력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구별능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냉담하게 말했다. 또 “TV 토론이나 신문에서 허위발언, 조작, 흑색선전을 하더라도 토론자 간의 논리적 공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그 정당성을 확인할 능력이 없고 논리적 오류를 범해도 이를 비판할 능력을 갖추거나, 비판의 의무를 느끼는 사람이 일반대중, 사회자, 언론인, 지식인 등에서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토론자나 정치가들이 거짓말, 흑색선전을 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국민들의 비판력 부재의 근원은 초·중·고·대학교에서 암기 위주의 교육이나 취업 위주의 교육, 경제성을 가진 학문만을 강조하는 교육정책 때문이 아닌가 유추해 볼 수 있지요. 고등학교까지,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비판적 사고, 정확하고도 합리적인 의사소통능력을 기르고 훈련할 수 있는 수업이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같이 출발한 경쟁이 압축적 사회발전 과정에서 무한 증폭돼
한국사회는 얼마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을까. 이웃을 얼마나 믿고, 관공서와 각종 사회기관을 얼마나 지지할까. 지난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신뢰의 반경이 매우 좁은 것으로 조사됐다.(표1, 표2 참조)
미국 존스홉킨스대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 따르면, 신뢰의 반경이 좁은 사회는 신뢰 대상이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관계에 한정된다고 한다.
한국인의 경우 99.3%가 가족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OECD 12개국 평균(86.9%)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가족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야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문제는 ‘처음 만난 사람’과의 신뢰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13.4%만 신뢰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OECD 12개국 사람들은 33.9%나 신뢰한다고 했다.
이것은 “가족 중심인 한국사회의 신뢰 반경이 좁다”는 후쿠야마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은 일반적으로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신대 철학과 윤평중(尹平重) 교수는 철학자 니체의 말을 빌려, 한국사회가 지닌 ‘르상티망(Ressentiment)’을 우려한다. 르상티망은 신뢰가 무너진 약자의 질투와 패배자의 시기심을 뜻한다. 승자를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는 원망(怨望)의 뜻도 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역대 정부의 내각인사 때 마다 음해성 투서로 청와대가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전해진다”며 “이런 행태는 전방위적으로 반복되지만, 대개가 허위로 판명된다. 그러나 당사자와 조직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긴다”고 지적했다.
질투와 원망의 만연은 전 국민이 항상 불신 상태에 놓인 ‘앵그리 사회’를 고착시킨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고, 털면 먼지 안 나는 놈 없는’ 인간성의 보편적 약점에다 한국적 르상티망이 가세한 우리 사회는 언제나 과열상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고질적 저신뢰 사회’이며, 무고와 음해, 투서가 그리도 많고, 정직성이 높이 평가받지 못할까. 윤 교수의 답이다.
“한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6·25전쟁은 봉건적 계급사회의 위계를 초토화시켜 다 같이 평등하게 가난한 사회를 만들었어요.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경쟁이 압축적 사회발전 과정에서 무한 증폭된 측면이 있어요. 현대사가 배양한 한국인의 평등지향성이 오늘의 성공에 큰 자양분이 됐지만 과도한 경쟁의식과 결부된 시기, 질투, 원망, 해코지의 사회적 무의식을 낳았고, 남 잘되는 것 보지 못하는 문화,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로 이어지게 했다고 판단됩니다.”
윤 교수는 한국문화의 특성인 ‘타자(他者) 지향성(Other-Oriented)의 문화’도 지적했다.
“체면과 남의 시선, 겉으로 보이는 것에 민감합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 자기 마음의 중심인 도덕감과 양심을 닦는 사회적 문화적 훈련이 부족하지요. 스스로의 심층적 자아와 대면하는 자기주체성에 대한 헌신과 소명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형중독 사회, 연예계 만능사회, 우울증과 신경증의 만연, 종교 르네상스 등이 모두 한국인의 ‘내면의 공허함’과 연계되어 있지 않을까요? 한국은 세계 제일, 동양최대, 세계최고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전형적인 타자지향적 ‘부화(浮華·실속 없이 겉만 화려함)사회’입니다.”
윤 교수는 “정직함이란 결국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충실성’에서 시작해, 그런 무형의 가치가 존중되는 문화와 풍습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제도와 법질서로 승화되는 사회적 발전단계를 밟게 된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앞의 두 단계에 대한 사회적 훈련이 태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직성이란 결국 ‘사회적 마음’입니다. 정직성은 몸이나 외면이 아니라 주체와 내면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마음이지만,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회문화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마음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팽배해
미국 예일대에서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서강대 신방과 나은영(羅恩暎) 교수의 말이다. 나 교수는 지난해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 추이 : 1979년, 1998년 및 2010년 조사 결과 비교>라는 논문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했다.
“무고죄, 위증죄가 많은 한국은 자원이 적고 인구가 많아, 대부분의 사람이 아주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지요. 문화 차원에서는 특히 얼마 전 《사이언스》지에 나온 ‘경직성(Tightness)’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중심주의’와 ‘승자독식’의 구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다 너무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도 팽배해 있고요. 편법을 이용한 사람이 더 잘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다 보면, 정직성 가치가 폄하되기 쉽겠지요.”
―한국인은 가치관이나 자아(Self)가 건강한가요? 자아(가치관)가 건강한(뚜렷한) 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아(自我)가 건강하지 않다기보다는 방어기제가 문화에 맞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면 외부 시선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외부에서 보는 시선에 아주 민감합니다.
외부 시선을 너무 무시하는 것도 타인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데, 지나치게 의식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쉽게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요. 자아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을 하면 안 되고, 사회에서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식의 분위기를 형성하면 안 되겠지요. 서로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을 때 건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 봅니다.”
한국인의 성취 열정이 다른 가치 희생시켜
―한국인이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은 자아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자아’를 너무 강조하면 논점이 흐려져요. 사실, 자아는 개인의 문제인데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특성을 지나치게 개인 특성으로 몰아가면 오류에 빠지기 쉬워요. 사람이 어떤 문화 속에 태어나 그 문화에 최대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화와는 조금 다른 행동특성들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즉 문화적 특성과 그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의 행동특성의 문제이지, 자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자아의 건강’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국을 비하하는 관점으로, 저도 동의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인이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그 성취를 위해 다른 것들(예를 들면, 고귀한 도덕성 등)은 좀 모자라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퍼져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자아는 건강한데, 다만 내부의 열정을 발산할 때 도덕성이나 공동체 전체를 반드시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가장 좋지 않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고 하는데, 그게 차이를 가져온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런데 바로 그렇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다가, 혼자 죽어가는 노인이 많다고 하니, 그것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에게 배려가 필요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배려를 잘 요청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하면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깁니까? 공정(선진)사회로 가기 위해 구별능력을 어떻게 길러야 하나요? 공정(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선한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면, 먼저 SNS(소셜 네트워크)로 쉽게 퍼지는 정보들을 무조건 믿거나 받아들이지 말고, 먼저 ‘사실 확인’을 해야 합니다. 최초 유포자의 의도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A가 B를 비난하면 사람들의 시선은 B로 쏠리는데, A에도 똑같이 주의를 기울여야 진실이 보이게 됩니다.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물론 사실이 아닌 것을 자기 이익을 위해 퍼뜨리지 말아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인간이란 인지적 편파에 취약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런 편파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용까지는 어렵더라도 미리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일제시대, 광복과 6·25를 거치며 한국인의 윤리의식이 무너져 내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후 한국사회는 새로운 윤리와 윤리의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까.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연속해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만을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강해졌을 수 있지요. 이제 시대도 변했으니 낯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공평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덜 되고 있지요.”⊙
지난 1월 27일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도지사가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 하루 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이 전 지사는 불교 경전까지 인용하며 무죄를 항변(抗辯)했지만 대법원은 그를 믿지 않았다.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과 농협중앙회 정대근 전 회장 등에게 총 6차례에 걸쳐 미화 10만 달러와 한화 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00만원의 형을 확정했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이후 반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댄다.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이 전 지사일까, 박 전 회장일까. 그가 강원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강원도에는 이른바 ‘이광재 동정론’이 일어났다. 4·27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최문순(崔文洵) 의원이 강원도지사로 당선된 것이다.(선거기간 내내 최 지사는 ‘이광재 대리인’을 자처했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지사는 법을 우습게 만들었고 진실을 모호하게 구겨놨지만, 다수의 강원도민은 측은지심으로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한국인(특히 강원도민)의 의식구조가 법(法)보다 정(情)을 더 우선시한 것일까.
한국인의 심리에는 惡이 없다?
 |
| 사진작가 전민조씨의 <농부(農夫)>. 한국인이 지닌 ‘인격의 이중성’은 조선시대 관료의 수탈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다. |
“한국인은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고 말합니다. 또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도 곧잘 합니다.”
악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악의 당사자, 책임자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앨퍼드 교수는 1910년 한일합방을 예로 들었다. 일제에 병합된 경험을 국치(國恥)라고까지 규정하면서도 책임자를 찾지 못한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한일병탄(韓日倂呑)은커녕 식민지 시대 반민족 행위의 책임자에 대한 정확한 색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앨퍼드 교수는 “위로든 아래로든 한번도 내부로부터의 혁명이 없었던 한국 역사의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민족에게 정복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한 가지 커다란 이득은 역사에 대해 (자국민 중에서는)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앨퍼드 교수는, 한국인의 악에 대한 불신은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직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한국인들은 ‘우리끼리 이야기’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이 말은 특정한 목적이 개재됐을 때는 ‘우리 두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반영하고 있어요. 이것은 정(情)이 배후에 있는 환상입니다. 한마디로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테두리 쳐 상황에 따라 형성된 친밀한 관계로 묶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죠. 이 말은 이성적인 측면과는 다른 낭만적인 관념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것은 제3자가 개입할 수 없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두 사람만의 친밀한 세계, 따뜻한 정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정이 ‘악’과 ‘죄’, ‘거짓말’까지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전 지사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무력화시킨 것은 약자에 대한 (동)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법 불신의 이유들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김시업(金始業) 교수는 <한국인의 법의식 : 법리(法理)와 정리(情理)의 갈등>이란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법 불신(不信), 법 경시(輕視)와 준법의식을 논한 적이 있다. 그는 연구년을 맞아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州)에 체류 중이다.
김 교수는 연세대 양승두(梁承斗) 명예교수의 견해를 빌려 “한국인에게 법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며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 편의대로 아랫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힘없는 일반 대중이 법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피해의식이 만연돼 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적이다.
“사실, 근대화 이후 제정된 성문법(成文法)으로서의 법은 일제시대부터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억압하고 부정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됐고, 법 집행과 적용이 이뤄지는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로 불렸지요. 부패한 정치인의 사면(赦免)과 상속세를 교묘히 피해 나가는 재벌의 행태 등은 국민들에게 권력층과 ‘가진 자’들에 대한 법의 무력함을 체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일반 서민들이 자신이 일상에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위법행위들, 예를 들어 탈세나 불법주차, 쓰레기 무단 투기, 위장전입 등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들었어요. 법을 지켜 사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기 십상이고 위로부터 법이 무시되는 상황이니 자연히 국민의 ‘준법의식’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법을 따르고자 하는 준법(遵法)에 대한 규범성이 무너지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법 불신, 법 경시에 대한 한국인의 심층에는 인간관계의 정리(情理)가 규범이나 법질서에 대한 적용을 어렵게 하는 사적(私的) 논리와 공적(公的) 논리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부정부패를 단죄하는 법이 무력해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탈법에 둔감해진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으나, 보다 심층적으로는 인정(人情)과 의리(義理)라는 한국인의 사적 논리와 공적 논리의 갈등이라든가, ‘마음고생’을 겪은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 한국인의 ‘인고(忍苦)심리’가 준법의식을 허약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위증 거부가 더 양심에 걸리는 일?
한국인에게 정의나 정직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심정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희롱 당한 동료교수가 부탁하면 피해자에 대한 위증(僞證)도 마다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이다.(참고 :《경향신문》 2001년 12월 25일자 기사 <우교수 성희롱 위증교수 실형, 법원 ‘허위진실’로 인정>)
위증은 중대한 범법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교수의 심리와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증을 부탁하는 동료교수의 사정이나 그간의 관계를 미뤄 위증을 거부하는 것이 위증을 하는 것보다 더 양심에 걸리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 김시업 교수의 계속된 주장이다.
“지난 1989년 미국과 인도의 심리학자들이 미국인과 인도인의 정직성을 비교한 일이 있는데, 미국인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를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보지만 인도인은 친밀한 사이에서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도덕적인 문제’로 보았어요. 그러니까 인도인들은 공적인 정의를 지키지 않았을 때보다 대인관계를 저해할 때 훨씬 비도덕적이라는 평가를 했어요. 이러한 결과는 서구인들과 동양인, 넓게는 한국인에게 적용할 수 있어요. 즉 아버지 죄를 관에 고발한 아들은 미국인 시각에서는 정의를 실천한 것이지만, 한국인 시각에서는 부도덕한 패륜아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한국인은 친구나 친척의 부탁, 청탁을 거절하는 사람을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인간성 나쁜 인간으로 매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한국인들이 위법이나 부정을 빈번하게 저지르고 또한 거기에 대해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는 것은 법이나 사회적 정의보다 강력한 규제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관계이며 인간관계의 정리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왜 법을 지키지 않는가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한국인의 준법정신이 허약해서’ 혹은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하고 남을 속이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서’와 같은 주장은 한국인의 준법정신을 분석하는 데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동어반복적인 대답이고 자기비하의 사고일 뿐입니다.”
조선시대 불법의 판례인 ‘고존장론(告尊長論)’
 |
| 서울대 문용린 교수. |
조선 인조 4년 10월(1626년)의 일이다. 인조는 형조에서 올린 죄인들의 죄안(罪案)을 읽어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중에는 상전의 범죄를 관에 고발하지 않았다는 ‘상전불고지(不告知)’가 죄가 되어 잡혀온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조는 당장에 형조에다 다음과 같이 하교를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부자(父子)의 정리와 노주(奴主·노비와 상전)의 의리가 지엄하고 지중한데 종으로 하여금 상전을 고발케 하고,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고소케 한다면 이야말로 패속이 아니고 뭣이랴. 형조가 하는 일이 심히 그릇되고 어긋났으니 해당 당상은 깊이 배려하여 금후로부터는 비록 아버지에 관해 아들에게, 형에 관해 아우에게, 상전에 관해 종에게, 설사 증거를 얻기 위해 물어볼 일이 있더라도 묻지 않음으로써 풍속을 돈독히 하고 명교(名敎)를 밝히도록 하라.”
이듬해 7월에 김경현이란 이가 그의 누이동생이 쓴 한글 편지를 근거로 하여 ‘누이의 남편 김홍원이 윤운형, 유인창 등과 모반을 음모했다’고 고변(告變)을 했다.
 |
| 한국인의 ‘고존장론’은 법치보다 인정을 우선한다. 지난 2009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부산여성문화회관에서 결혼이주 여성들이 큰절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
인조는 또 병자호란의 대(大)공신인 완풍부원군 이서와 호조판서 최명길을 파면했다. 두 사람이 형조에 근무할 때, 종을 잡아다가 그 상전의 죄를 입증시킨 사건과 아내를 잡아다가 남편이 지은 죄의 증인을 삼은 일이 각각 뒤늦게 발각되어 하교(下敎)를 어겼다는 이유였다.
문 교수는 “그 후에도 인조 24년에 아버지의 절도죄를 고발한 딸을 사형에 처해 그 목을 시장에 걸어 효수(梟首)까지 하는 극형을 가했다”며 “이와 같이 법치보다 인정을 우선한 사실에는 한국 특유의 사상적 배경이 담겨 있다. 어떤 진리보다 정리를 선행시키는 인정지상주의의 단적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인정을 법치에 우선시킨 것은 태종 때 비롯되어 세종, 중종 때 특히 강조됐고 인조 때에 이르러 극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조의 이 인정정치로 ‘고존장론(告尊長論)’은 불법의 판례로 정착되고 말았다. 고존장론이란 존장(尊長)을 고발하는 일로, 자손(子孫)·처첩(妻妾)·노비(奴婢)가 부모나 가장(家長) 상전(上典)을, 하관(下官)이 상관(上官)을 고발하였을 경우에 처벌하는 법의 한 조목을 뜻한다.
가족에게 거짓말을 더 많이 해
문용린 교수의 <한국인의 거짓말 유형과 정당화 양식 연구>라는 논문을 들여다보자. 그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성인까지 214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한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골라 시기, 상황, 대상, 목적, 결과, 결과에 대한 만족의 정도를 기술하도록 요구했다.
그 결과, 한국인이 기억하는 거짓말은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이고 가까운 관계에서 보고된 거짓말의 가장 많은 원인이 ‘개인의 취향과 선호에 따른 선택’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가까운 인간관계가 갖는 특성에 대한 재음미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의 계속된 주장이다.
“원래 개인적이고 가까운 관계는 비밀을 공유하고 신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자신 됨을 드러내는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합니다. 따라서 가까운 관계, 특히 가족관계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거짓말이 많이 보고된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영역에 속한 거짓말 중에는 ‘관계유지를 위한 거짓말 사례’가 다수 보고됐는데, 이는 “관계 지향적이고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공동체의 조화와 화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주의(Collectivism)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동양권 사람들은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친사회적 거짓말’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은데, 가족 간의 화목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 군대나 직장상사가 하게 되는 집단적 책임감에 의한 거짓말 등은 이러한 문화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 교수의 견해를 종합하면, 한국인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거짓말이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솔직하지 못한데, 하물며 타인에게 솔직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은 일본보다 무고사건이 217배나 많아
《중앙일보》 2010년 10월 27일자 신문에는 이런 통계가 실렸다.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한국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법정이나 국회 등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장소에서 거짓말을 한 위증죄가 일본의 171배, 없는 일을 꾸며 고소, 고발하는 무고 사건은 217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의 2.5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위증죄는 427배, 무고죄는 542배에 이른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 범죄인 위증, 무고죄가 일본의 400~500배에 이른다니….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뢰 수준이 낮은 이유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찾았다. ‘6·25사변 이후 고속 경제성장을 거쳐 민주화 달성과정에서 국민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믿지 않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 ‘민주화’ ‘생존’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
| 이우근 변호사. |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의 특성, 무사(武士) 계급에 의한 막부(幕府) 정치 등으로 예부터 단결과 충성의 폐쇄적 조직문화가 깊이 뿌리 내렸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세계 제2차대전의 패배 후에도 천황(天皇) 제도를 존속시킬 만큼 강력한 공동체적 결속력을 유지해 왔어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체질상 보수적·조직적이고, 가급적 ‘안정’을 희구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을까.
“반도(半島)국가인 한국은 전통적으로 강대국 중국의 영향 아래 사대(事大)와 자주(自主)의 불안한 틈 사이에서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단결력을 상실했고, 분열과 경쟁의 습성을 키워왔습니다. 무능한 정부, 부패한 관료체제에 대한 불신과 저항감이 오랜 기간 쌓이면서 충성의 대의명분이 민생 속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고, 정치의 반정(反正)과 중앙정부에 항거하는 민란(民亂)이 빈번히 일어났지요. 그래서 한국인은 본질상 개혁적·개인적이며, 늘 ‘변화’를 꿈꿉니다.”
―변화를 희구하면서도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한 것이 문제인가요?
“정치상황의 불안, 숱한 외침과 빈번한 피란생활 등은 국가와 조직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그 혼란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불가피하게 각자의 생존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결과 생존경쟁을 위한 불법(不法)·비리(非理)·부조리(不條理)를 정당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짐작됩니다.”
―다시 무고죄, 위증죄로 돌아가 보죠. 왜 한국이 일본보다 ‘거짓말 범죄’가 많은가요?
“‘칼’에 의존하는 일본의 무사도(武士道)는 단판 승부의 룰(Rule)에 절대복종하는 질서의식을 키워낸 반면, ‘붓’에 의존하는 우리의 선비문화는 씨름경기의 세 판 승부나 뒤집기 기술처럼 승부를 반전(反轉)시키는 변혁의 정신을 고양(高揚)시켰습니다. 소송에 있어서 일본보다 한국의 상소율(上訴率)이 월등히 높은 것도 이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조직의 룰이 개체(個體)의 생존을 보호해 주지 못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위증과 무고까지도 꺼리지 않는 반전의 욕구가 습성화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말싸움의 動力 없애지 말아야
 |
| 서울대 조동일 명예교수. |
“일본에서 검술(劍術)이 발달하듯 한국에서 위증이나 무고가 발달한 것은 당연합니다. 칼로 싸우는 것은 용감하고, 말로 싸우는 것은 비겁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해요. ‘검술이 모자라 죽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위증이나 무고 탓에 패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생명이 걸린 칼싸움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 조용하고 공손하게 처신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인의 정직성입니다. 말싸움은 생명과 직결되지 않아 쉽게 합니다. 목청을 함부로 높입니다. 그래서 예의가 없어 보이고, 정직하지 않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재판의 신뢰성을 높여 무고나 위증을 줄여야 하지만, 한국이 일본인처럼 돼야 한다는 것은 부당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목청을 함부로 높이는 말싸움이 부당하다고 할 것만은 아니고, 한국인의 활력(活力)과 직결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에서도 무고와 위증이 난무해 재판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풍조를 줄이는 유권자의 지혜가 재판의 신뢰성을 높이는 법관의 자질 향상보다 중요합니다. 말싸움의 동력(動力)을 없애지 말고 질적인 향상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해요.”
 |
| 6·25전쟁은 봉건적 계급사회의 위계를 초토화시켜 다 같이 평등하고 가난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 같은 한국인의 평등지향성이 과도한 경쟁의식과 결부된 시기, 질투, 원망의 사회적 무의식을 낳았다. |
“한국은 과거부터 국가 공권력이 사람을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는 사람’ 중심으로 서로서로 살아남았거든요. 6·25전쟁 당시 우리 남편이 군인이고, 경찰이면 뭐합니까. 국가가 전혀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군에 가니까 너희는 알아서 잘 살아남아라. 어느 시골에 사돈의 팔촌네가 살고 있으니 그리로 가라’는 정도의 자구책뿐이었지요.
한국은 고려시대 이래로 공권력이 세금 내는 백성을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그 보호가 철저했어요. 평소 사무라이에게 세금을 내면 목숨을 걸고 평민들을 보호해 줬어요. 그게 일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피붙이, 나와 알고 있던 고교와 대학 동창끼리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의리를 지키고 위증까지 불사하게 되는 모양이죠.
“우리나라는 객관적인 공적 업무를 보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회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그런 공적 시스템이 사람을 보호해 주고, 가족을 보호해 주는 게 아니라 사적인 조직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거짓말 요구하는 의뢰인과 지금도 싸워”
대한변협 공보이사인 엄상익(嚴相益)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년 동안 만난 수많은 의뢰인은 한결같이 변호사가 거짓말해 주기를 바란다”며 “부자나 가난한 사람, 성직자든 교수든, 변호사가 거짓말해 주기를 원하고, 변호사를 속이고, 결과만 좋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법원에 가서 거짓말 안 하고 진실만 얘기해서 변호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도 고민하고, 거짓말과 싸운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 일을 처음 할 당시를 떠올리며 “잘나가는 전관(前官) 출신이 아니어서 질 낮은 마약사건이나 조폭사건을 많이 맡았다. 그런 사건들은 하나같이 거짓말과의 싸움이었다. 어떻게 하면 입을 맞추고 빠져나갈 수 있나 궁리하는 게 본능인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자기네끼리 말을 맞춘 쪽지를 전달해 달라거나 말을 맞춰달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했어요. 그들은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총을 쏴주는 존재로 인식하더군요. 저는 한동안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있곤 했어요. 지금은 딱 거절할 수 있지만, 그땐 사는 게 어려워서 타협책을 찾곤 했어요.” 사실, 거짓말은 반드시 자신이 쳐놓은 덫에 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엄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거짓말이 결국엔 죄로 옭아매게 한다”는 사실을 설득했다고 한다. “거짓말은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의외로 증거도 많아요. 왜냐면 거짓말의 근거를 만들고 증거를 조작하니까요. 그러니 거짓말은 한번 하게 되면 계속 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실타래에 얽힌 고양이처럼 꼼짝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범죄자가 거짓말을 계속 하면 경찰이나 검사·판사 역시 거짓말의 유혹에 빠진다. “형사들도 거짓말을 합니다. 피의자가 분명히 죄를 저질렀는데 혐의를 부인하면, 몰래 피의자의 머리털을 뽑아 범행현장에서 주웠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DNA 검사를 맡깁니다. 검사 역시 공소장에 짐작해서 혐의를 적시하기도 하지요. 이쪽이 거짓말을 하면 경찰이나 검사도 으레 거짓말로 알고 대응합니다. 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은 증거도 없고, 논리도 아니고, 감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판사들이 판결문을 쓸 때, 논리를 택하기 마련이죠. 저는 법정에서 거짓말이 이기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러면 거짓이 승리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이지요.” |
“公的 업무를 보기 어려운 사회”
“이것이 수천 년 유지돼 온 한국인의 ‘서바이벌 위즈덤’입니다. 좋게 말해 한국식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문화고, 아는 사람 중심으로 사회가 이뤄지는 일종의 ‘친애주의적(親愛·친하고 사랑하는 사람 중심의) 삶’이 이뤄지는 사회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산저축은행사건을 보세요. 고교 동창끼리 인간적인 끈을 만들어놓은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살아남기 좋은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위증죄도 마찬가지예요. 내 친한 친구가 어떤 문제에 걸렸다? 내가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저 친구가 살아남는다고 칩시다. 그럴 경우 ‘좋다! 나는 죽어도 의리를 지키겠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렇게 하면, 또 저쪽 상대방도 너를 위해 끝까지 책임진다는 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그게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한국인이 특히 거짓말에 관대한 습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회심리학자와 철학자들은 한국인 의식구조의 한 특징인 ‘이중성(二重性·겉과 속이 다른 측면)’에서 답을 찾곤 한다. 이 이중성은 체면, 형식주의, 의례성, 핑계, 눈치 등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서울대 차재호(車載鎬) 명예교수가 쓴 《한국인의 성격》에 따르면, 한국인은 체면을 차리고, 눈치를 보거나 재물이나 사욕에 초연한 체하고, 공사(公私)를 혼동하며, 핑곗거리를 찾고, 명분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중성의 특성들은 모두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책략들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내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외양(外樣)을 과대하게 긍정적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
| 서울대 황경식 교수. |
“한국인이 지닌 인격의 이중성은 조선시대 관료의 수탈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노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듯합니다. 추수를 10섬 했다 하면 7섬을 수탈당하니 7섬으로 거짓을 고(告)해야 자신에게 5섬이 남아나 식구들의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중인격의 원인은 유교의 최대윤리, 즉 도덕적 이상주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상이 과도하게 높으면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이중 규범의 위선적 구조가 생겨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특히 선비 등 지식인들의 이중성이 탈춤 등에서 폭로, 풍자되기도 했지요.”
―인격의 이중성이 아직도 한국인의 삶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고 보나요?
“인격의 이중성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군사독재의 정보정치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짓말한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가책을 느낀다면 그것은 고쳐지기 쉽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각증세 없는 만성병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일본에 비해 무고죄, 위증죄가 많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일본인과의 1대1 비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정직하나 집단적으로는 부정직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정직한 것은 일본의 대단한 장점입니다. 그러나 일본 속담에도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正直者が損をする)는 말이 있어요.
살기가 어렵거나 규범이 느슨하면 사람이 부정직의 유혹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한국인의 부정직은 이 양자가 서로 얽히는 가운데 생겨났을 겁니다.”
한국인은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할 능력이 있을까
 |
| 가톨릭대 하병학 교수. |
하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이유로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질과 자본주의의 팽배로 진실하고 성실한 삶보다는 권력, 돈, 지위 등을 지향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권력, 돈, 지위 등을 갖지 못하면 인간 대접을 받기 힘들다고 느껴 거짓말, 기만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른 원인으로 하 교수는 “전통적인 사회관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혈연, 지연, 학연 등 사적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들었다.
“진실보다는 그 사람과 나의 사적 관계 때문에 덮어두기, 은폐하기, 거짓말하기, 조작하기가 성행합니다. ‘의리’, ‘신의’라는 미명의 사적 관계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나와 관계된 사람이, 나의 고향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을, 타지방 사람을 흑색선전 해도, 그리고 그의 말이 거짓말인 것을 알지라도, 그 고향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찍는 것은 진실보다는 사적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참말과 거짓말 구별능력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구별능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냉담하게 말했다. 또 “TV 토론이나 신문에서 허위발언, 조작, 흑색선전을 하더라도 토론자 간의 논리적 공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그 정당성을 확인할 능력이 없고 논리적 오류를 범해도 이를 비판할 능력을 갖추거나, 비판의 의무를 느끼는 사람이 일반대중, 사회자, 언론인, 지식인 등에서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토론자나 정치가들이 거짓말, 흑색선전을 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국민들의 비판력 부재의 근원은 초·중·고·대학교에서 암기 위주의 교육이나 취업 위주의 교육, 경제성을 가진 학문만을 강조하는 교육정책 때문이 아닌가 유추해 볼 수 있지요. 고등학교까지,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비판적 사고, 정확하고도 합리적인 의사소통능력을 기르고 훈련할 수 있는 수업이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같이 출발한 경쟁이 압축적 사회발전 과정에서 무한 증폭돼
한국사회는 얼마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을까. 이웃을 얼마나 믿고, 관공서와 각종 사회기관을 얼마나 지지할까. 지난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신뢰의 반경이 매우 좁은 것으로 조사됐다.(표1, 표2 참조)
미국 존스홉킨스대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 따르면, 신뢰의 반경이 좁은 사회는 신뢰 대상이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관계에 한정된다고 한다.
한국인의 경우 99.3%가 가족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OECD 12개국 평균(86.9%)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가족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야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문제는 ‘처음 만난 사람’과의 신뢰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13.4%만 신뢰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OECD 12개국 사람들은 33.9%나 신뢰한다고 했다.
이것은 “가족 중심인 한국사회의 신뢰 반경이 좁다”는 후쿠야마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은 일반적으로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
| 한신대 윤평중 교수. |
윤 교수는 “역대 정부의 내각인사 때 마다 음해성 투서로 청와대가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전해진다”며 “이런 행태는 전방위적으로 반복되지만, 대개가 허위로 판명된다. 그러나 당사자와 조직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긴다”고 지적했다.
질투와 원망의 만연은 전 국민이 항상 불신 상태에 놓인 ‘앵그리 사회’를 고착시킨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고, 털면 먼지 안 나는 놈 없는’ 인간성의 보편적 약점에다 한국적 르상티망이 가세한 우리 사회는 언제나 과열상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고질적 저신뢰 사회’이며, 무고와 음해, 투서가 그리도 많고, 정직성이 높이 평가받지 못할까. 윤 교수의 답이다.
“한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6·25전쟁은 봉건적 계급사회의 위계를 초토화시켜 다 같이 평등하게 가난한 사회를 만들었어요.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경쟁이 압축적 사회발전 과정에서 무한 증폭된 측면이 있어요. 현대사가 배양한 한국인의 평등지향성이 오늘의 성공에 큰 자양분이 됐지만 과도한 경쟁의식과 결부된 시기, 질투, 원망, 해코지의 사회적 무의식을 낳았고, 남 잘되는 것 보지 못하는 문화,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로 이어지게 했다고 판단됩니다.”
윤 교수는 한국문화의 특성인 ‘타자(他者) 지향성(Other-Oriented)의 문화’도 지적했다.
“체면과 남의 시선, 겉으로 보이는 것에 민감합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 자기 마음의 중심인 도덕감과 양심을 닦는 사회적 문화적 훈련이 부족하지요. 스스로의 심층적 자아와 대면하는 자기주체성에 대한 헌신과 소명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형중독 사회, 연예계 만능사회, 우울증과 신경증의 만연, 종교 르네상스 등이 모두 한국인의 ‘내면의 공허함’과 연계되어 있지 않을까요? 한국은 세계 제일, 동양최대, 세계최고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전형적인 타자지향적 ‘부화(浮華·실속 없이 겉만 화려함)사회’입니다.”
윤 교수는 “정직함이란 결국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충실성’에서 시작해, 그런 무형의 가치가 존중되는 문화와 풍습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제도와 법질서로 승화되는 사회적 발전단계를 밟게 된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앞의 두 단계에 대한 사회적 훈련이 태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직성이란 결국 ‘사회적 마음’입니다. 정직성은 몸이나 외면이 아니라 주체와 내면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마음이지만,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회문화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마음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팽배해
 |
| 서강대 나은영 교수. |
“무고죄, 위증죄가 많은 한국은 자원이 적고 인구가 많아, 대부분의 사람이 아주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지요. 문화 차원에서는 특히 얼마 전 《사이언스》지에 나온 ‘경직성(Tightness)’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중심주의’와 ‘승자독식’의 구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다 너무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도 팽배해 있고요. 편법을 이용한 사람이 더 잘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다 보면, 정직성 가치가 폄하되기 쉽겠지요.”
―한국인은 가치관이나 자아(Self)가 건강한가요? 자아(가치관)가 건강한(뚜렷한) 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아(自我)가 건강하지 않다기보다는 방어기제가 문화에 맞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면 외부 시선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외부에서 보는 시선에 아주 민감합니다.
외부 시선을 너무 무시하는 것도 타인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데, 지나치게 의식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쉽게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요. 자아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을 하면 안 되고, 사회에서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식의 분위기를 형성하면 안 되겠지요. 서로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을 때 건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 봅니다.”
| 젊은 지성인 집단의 정직성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하는데…” ⊙ 대학생 10명 중 7명은 커닝 경험 있다 ⊙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정직성보다는 절대적인 정직성 필요 金允美 月刊朝鮮 인턴기자 (pubmonth@chosun.com)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55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8년)에 따르면 389명이 ‘커닝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7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젊은 지성인 집단’ 대학생들이 커닝을 하며 양심(良心)의 가책은 느낄까? 서경대 4학년 학생의 말이다.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해요. 떨리고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그런 것이 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모험’을 합니다.”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하지만,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커닝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 4학년 학생의 얘기다. “다른 학생들이 대부분 하는데 저만 안 하면 좀 억울하잖아요. 저 혼자 정직하게 시험쳤는데 오히려 성적이 더 안 나오면 그거야말로 억울한 일이죠.” “왜 커닝을 하느냐”고 대학생에게 물었을 때, 대개는 자신의 정직(正直)함이나 양심의 문제와 연결하지 않고 주변 상황 탓을 한다. 앞서 말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커닝을 하는 이유로 ‘학점을 잘 받을 수 있기 때문’(40%)을 가장 많이 꼽았고, ‘남들도 다 하니까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37%)는 의견도 비슷하게 많았다. ‘불안해서 나도 모르게 한다’(21%)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취재 도중 만난 학생에게 “커닝은 정직한 일이 아닌데 왜 하느냐”고 한번 더 물었더니 “너는 안 해?”라고 도발적으로 반문했다. “대학에서만큼은 양심에 맡겨두고 싶다” 대학생들의 정직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비단 커닝만이 아니다. 리포트 베끼기, 대리출석도 대학생들이 흔히 하는 부정직 행위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리포트 숙제 하나쯤은 금세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ctrl+c(복사하기)’ ‘ctrl+v(붙여 넣기)’를 이용하면 직접 타이핑하는 ‘수고로움’까지 덜 수 있다. 서경대 국문학과 조정래(趙偵來) 교수는 “현재의 대학생들만 커닝을 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70~80년대에도 커닝은 있었어요. 요즘 학생들이 더 심각한 수준으로 커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줄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그 시절 대학생들보다 더 ‘뻔뻔’해지기는 했어요. 학점이 취업의 도구(道具)로 전락(轉落)한 것이지요.” 지금은 평가방식이 절대(絶對)평가에서 상대(相對)평가로 바뀌었기 때문에 동료가 커닝으로 시험을 잘 치면,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커닝을 잘 허용하지 않고 ‘누가 커닝을 했다’고 고발하는 학생까지 생겼다고 한다. 주변 학생들이 커닝을 하기 때문에 ‘억울해서라도’ 커닝을 하는 것이라면, 감독을 철저히 하면 되지 않을까? 이에 관해 조정래 교수는 “대학에서만큼은 학생의 양심에 맡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불만처럼 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아서 커닝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양심에 맡겨두고 싶어 감독을 철저히 안 하는 측면도 있어요. 어찌 보면 딜레마지요. 저는 오히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정직성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든 지켜지는 절대적인 정직성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인의 성취 열정이 다른 가치 희생시켜
―한국인이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은 자아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자아’를 너무 강조하면 논점이 흐려져요. 사실, 자아는 개인의 문제인데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특성을 지나치게 개인 특성으로 몰아가면 오류에 빠지기 쉬워요. 사람이 어떤 문화 속에 태어나 그 문화에 최대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화와는 조금 다른 행동특성들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즉 문화적 특성과 그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의 행동특성의 문제이지, 자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자아의 건강’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국을 비하하는 관점으로, 저도 동의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인이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그 성취를 위해 다른 것들(예를 들면, 고귀한 도덕성 등)은 좀 모자라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퍼져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자아는 건강한데, 다만 내부의 열정을 발산할 때 도덕성이나 공동체 전체를 반드시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가장 좋지 않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고 하는데, 그게 차이를 가져온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런데 바로 그렇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다가, 혼자 죽어가는 노인이 많다고 하니, 그것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에게 배려가 필요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배려를 잘 요청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하면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깁니까? 공정(선진)사회로 가기 위해 구별능력을 어떻게 길러야 하나요? 공정(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선한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면, 먼저 SNS(소셜 네트워크)로 쉽게 퍼지는 정보들을 무조건 믿거나 받아들이지 말고, 먼저 ‘사실 확인’을 해야 합니다. 최초 유포자의 의도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A가 B를 비난하면 사람들의 시선은 B로 쏠리는데, A에도 똑같이 주의를 기울여야 진실이 보이게 됩니다.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물론 사실이 아닌 것을 자기 이익을 위해 퍼뜨리지 말아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인간이란 인지적 편파에 취약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런 편파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용까지는 어렵더라도 미리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일제시대, 광복과 6·25를 거치며 한국인의 윤리의식이 무너져 내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후 한국사회는 새로운 윤리와 윤리의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까.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연속해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만을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강해졌을 수 있지요. 이제 시대도 변했으니 낯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공평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덜 되고 있지요.”⊙
| [정직성 교육의 현장] 金泳吉 한동대 총장 “세계인은 정직지수가 우선” 無감독 양심시험과 명예제도 도입 17년… “학생 81% 부정행위 안 해”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1995년 경북 포항에서 개교한 한동대는 “세상을 변화시키자(Why not change the world?)”는 구호와 함께 ‘정직성 교육’을 앞세워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무(無)감독 양심시험’을 통해 당시 캠퍼스에 만연하던 ‘커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해외 대학의 ‘명예제도(Honor Code)’를 도입해 책임성 있는 인격과 겸손을 교육했다. 김영길(金泳吉) 총장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대다수 교수와 학생은 개교 때부터 학교 교육 정신을 잘 실천해 왔다”고 평했다.―17년 실험 결과 한동대에서 커닝, 논문 표절 등 부정행위가 완전히 사라졌습니까. “‘완전히’라고 표현할 순 없습니다. 단, 학교 전체적인 분위기가 ‘커닝이나 표절은 옳지 않고, 정직이 가장 기본’이란 공통의식을 갖고 있죠. 몇 해 전, 무감독 시험제도에 대한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전교생 60%를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을 한 결과, ▲양심의 가책 없이 한 번도 위반 안 함(58%) ▲유혹받았지만 위반 안 함(23%) ▲몇 차례 위반했지만 그 후 다시는 위반 안 함(15%) ▲죄책감 없이 위반(4%)으로 나왔습니다. 4% 학생을 양심의 가책 없이 위반 안 하는 수준으로 바꾸는 것이 교육 목표입니다.” ―정직성 교육을 하게 된 계기는요. “1994년 처음 총장 자리를 맡게 되면서 ‘무엇을 위해 어떤 교육을 베풀어야 하느냐’는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해답은 1642년에 나온 하버드 대학 자료집에 명시돼 있더군요. ‘공부의 주된 목적은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문구를 보는 순간 무릎을 쳤습니다. 이후 ‘하나님 중심의 교육’으로 결정했고, 이는 자연스레 ‘정직성’으로 연결됐습니다. ‘정직’은 기독교의 핵심요소 중 하나입니다.” ―악의가 없거나 좋은 의도의 거짓말과 행동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합니까. “그런 식으로 명확하게 선을 그어 교육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그에 대해 적어도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과 교수가 함께 만든 명예제도는 ‘한동인은 모든 말과 글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학업과 생활에서 정직하고 성실하며, 모든 구성원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고, 겸손히 섬기고 희생한다’ 등의 내용으로 규정합니다. 목적은 학문적 탁월성과 인성을 겸비해 비전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체면, 형식주의, 의례성 등 이중성의 측면에서 보기도 하는데요. “우리는 국제화 시대에 사는 ‘세계 시민’입니다. 세계 시민이 되기 위해선 ‘지능지수(IQ)’보단 ‘정직지수(HQ·Honesty Quotient)’가 우선됩니다. 정직성은 지적 능력, 부의 수준, 신분계층 등과 무관한 보편적 가치관입니다.” ―한국인의 정직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절실하다고 봅니까. “인간의 가치관은 ‘목적으로서의 가치’와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목적이 정립되지 못하면 원대한 이상과 꿈을 갖기 어렵습니다. 한편, 수단인 정직을 잃어버리면,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합니다. 정직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기존중의 표현이죠. 정직보다 더 중요한 성공수단은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