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경마 과세율 16%, 미국은 2%
⊙ 한국 경마 정책은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냐에만 초점 맞춰져
⊙ 불법 사설경마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 한국 경마 정책은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냐에만 초점 맞춰져
⊙ 불법 사설경마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 인터넷 불법 경마사이트를 통해서도 불법 사설경마가 이루어지고 있다.
#1=지난 5월 28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가구단지. 동두천경찰서 지능팀 소속 형사 6명과 마사회 단속팀 6명이 한 가구매장을 덮쳤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가구 매장과 큰 차이가 없는 곳이다. 경찰과 마사회 단속팀은 현장에서 6명을 붙잡고 현금 수백만 원과 거래장부 등도 압수했다. 이들의 혐의는 불법 경마사이트(naver 99.com)를 운영해 마사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2=5월 29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 5동. 안양 만안경찰서 지능팀 소속 형사 5명과 마사회 단속팀 10명이 한 가구매장을 덮쳤다. 단속팀은 사다리를 타고 매장 2층 사무실로 진입해 불법경마사이트(nana308.com)를 이용해 마권을 산 한 업체인력 10명(남 8명, 여 2명)을 검거했다. 경찰과 마사회 단속팀은 현장에서 불법 경마사이트 운영에 사용된 PC 2대와 거래장부, 현금 수백만 원을 압수했다. 경찰의 단속을 알고 냉장고 속에 숨겨두었던 경마 예상지도 압수했다.
불법 사설경마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불법 사설경마를 하다 적발된 건수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에만도 7건이나 된다. 올해 들어 39건이다. 붙잡힌 사람만도 262명이나 된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럼에도 불법 행위는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이나 마사회 단속팀에 적발되지만 않으면 그로 인해 얻는 수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매우 쉬운 구조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던 지난 4월 전북 김제 마늘밭 사건이 대표적이다.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번 돈 100억원 이상을 5만원권으로 바꿔 마늘밭에 숨겨뒀다가 들통난 사건이다.
불법 사설경마 매출이 마사회 매출보다 훨씬 많아
아주대학교 산학협력단 발표(2008년)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도박산업의 규모는 53조2000억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용역결과는 불법 사설경마 규모를 2004년 3조4000억원, 2009년 최소 9조3000억원에서 최대 30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정부로부터 경마 허가를 받은 공식 기관인 한국마사회의 연간 매출액(7조3000억원)보다도 더 큰 규모다. 적게는 125%지만 크게는 411%에까지 이른다. 이것도 추정치여서 실제는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르는 형편이다.
사설경마는 “마사회가 아닌 개인 혹은 단체가 마사회가 시행하는 경주에 관하여 유사 마권을 발행하여 적중자에게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교부하는 행위”(한국마사회법)로 정의되어 있다. 이런 행위는 법에 의해 금지돼 있다. 엄연한 범죄인 것이다.
때문에 불법 사설경마는 범죄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행위 장소가 은밀하고, 조직적·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일반 범죄와 다른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 사설경마를 한 사람도 스스로 대박을 노리고 도박을 했기 때문에 일반 범죄사건에서처럼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 ‘피해자’의 신고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만큼 일반 범죄보다 오히려 단속이 어렵다.
사설경마는 크게 하우스형, 인터넷형, 객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설 마권 발매 행위가 어디서 이뤄지느냐에 따른 구분법이다. 아파트, 상가, 오피스텔 등에서 이뤄지면 하우스형, 불법 경마사이트에서 이뤄지면 인터넷형으로 본다. 객장형은 본장 혹은 지점 내에서 사설 마권 발매가 이뤄지는 것으로 최근에는 적발의 위험성이 커 퇴조하는 추세다.
이 중 최근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형과 하우스형을 혼합한 형태다. 이들 ‘범죄자’들은 대규모보다는 소규모의 점조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에는 속칭 ‘롤링조직’(도박 알선 조직)이라 불리는 중간조직도 대거 등장하고 있다.
행위수법도 점점 더 은밀해지고 있다. 지인들끼리만 사이트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차명계좌 및 전화를 이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다. 사이트 운영서버를 해외에 두거나 외부의 다른 조직을 이용해 구매 또는 수수료만 취득하는 등 행위유형이 복잡해 수사가 길어지는 어려움도 있다. 한 운영자가 10개가 넘는 다량의 사이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는 것도 문제다. 사기행위가 아닌 도박행위이기 때문에 재산상 피해가 발생하여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할 수 없다.
단속의 어려움도 있다. 우선 공권력의 체계적 지원에 어려움이 있다. 불법경마 단속은 대부분 수사기관의 휴일에 이뤄지기 때문에 단속 수사관을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다. 휴일에 사설경마를 단속해 봤자 실적이 크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인사상 가점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수사관들이 선뜻 마사회의 단속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범행현장 덮치기가 쉽지 않아
사설경마의 특성상 수사를 벌이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증거 압수를 위해 범행현장을 덮쳐야 하지만, 범행현장 진입이 쉽지 않다. CCTV를 설치해 경찰이 오기 전에 미리 증거품을 은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망보는 사람(일명 망돌이)을 배치하거나 주변에 맹견을 사육해 현장진입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불법경마가 대부분 해외서버와 차명계좌, 대포폰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범죄관련자 추가 수사의 어려움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수사는 현행범 위주로만 이뤄지고 있다.
경미한 사법처리가 불법경마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현행법상 사설경마 운영은 한국마사회법 제48조에 의해 금지된다. 제50조, 제59조는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사설경마를 운영하다 적발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설경마를 이용한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면 된다.
김제 마늘밭에 묻어뒀던 돈은 100억원이 넘는다. 사설경마 사이트를 운영해서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데, 적발됐을 때 벌금은 그야말로 세발의 피 수준이다. 만약에 자동차를 몰고 가다 속도위반으로 적발됐을 때 1000원의 벌금만 내도 된다면 경부고속도로가 아우토반(독일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같은 이치로 불법 사설경마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해 재범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불법경마에선 핵심행위자의 적발이 힘든데, 법원은 이들 범죄자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러니 불법 사설경마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폐해는 실로 막대하다.
우선 공익기금과 세금 탈루(脫漏) 문제다. 마사회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축산진흥기금과 농어촌복지사업에 쓰게 되어 있다. 불법 사설경마는 세금을 내지도 않고, 따라서 공익기금에 기여하는 부분도 전혀 없다.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연간 마사회 이익을 10조원으로 추산하면 불법 사설경마로 인해 탈루되는 금액이 2조7000억원 정도라는 것이 마사회의 예상치다.
무엇보다 불법 사설경마로 인한 수익이 범죄조직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다. 불법 사설경마 조직의 운영에 범죄조직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 자금이 반(反)사회적 비용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불법 사설경마의 경우, 베팅금액이 크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돈을 잃을 수 있다. 이는 곧 가산탕진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2010년 마사회 단속팀은 불법 사설경마 현장단속(92건)을 통해 불법 경마사이트 567개를 폐쇄했다. 마사회는 불법 사설경마 신고 활성화를 위해 ‘사설경마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경마팬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설경마 예방 홍보와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마사회만의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합법 경마’를 짓누르는 과도한 세금
왜 불법 사설경마가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걸까.
그것은 바로 ‘한탕’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행 게임 참여자들이 불법 도박을 찾는 이유는 불법 도박이 합법 사행게임보다 손실금 보전, 무제한 베팅 등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손실금 보전이다. 불법경마는 불법이기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따라서 불법경마 운영자들은 세금을 내야 할 부분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에게 손실금의 10~20%를 보전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잃더라도 1000만~2000만원 정도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는 ‘합법 경마’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무제한 베팅이다. ‘합법 경마’는 1회 베팅 최고 한도액이 10만원이다. 반면 ‘불법경마’는 제한이 없다. 경마를 건전한 레저가 아니라 도박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무제한 베팅의 짜릿함을 더 즐길 가능성이 높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마 과세율은 마권 매출액의 16%다. 레저세 10%, 지방교육세 4%, 농어촌특별세 2%로 구성돼 있다. 미국(2%), 호주(4%), 일본(10%) 등 경마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영국,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나라들은 경마에 대한 과세 자체를 없앴다.
경마를 위해 마권을 산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환급률은 우리나라의 경우 73%다. 즉 경마로 배당금을 받은 사람들이 가져가는 돈을 모두 합치면 마권을 산 사람들의 돈을 모두 합친 액수의 73%라는 얘기다. 나머지 27% 중 제일 많은 것이 세금(16%)이고, 다음이 운영비용(5%), 마사회 수익금(4%), 경마 상금(2%) 순이다. 4% 정도 되는 마사회 수익금 가운데 30%는 경마 등 말산업 투자 재원으로, 70%는 축산발전기금 및 농어촌복지사업 재원으로 적립된다.
이렇게 따지면 결국 경마팬만 봉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사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마에 대한 과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환급률을 높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1993년도의 경우 구매 마권 적중 시 마사회 환급률은 75%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방교육세율이 2%에서 5%로 높아지면서 73%로 떨어졌다. 그 후 다시 지방교육세율이 6%로 조정되면서 72% 수준으로 낮아졌다가 2009년에 지방교육세가 4%로 영구세화되면서 현재의 73%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환급률은 정작 경마 소비자인 경마팬의 요구나 편의는 무시한 채 조세정책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여기에다 구매한 마권이 적중되어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할 경우에는 별도로 22%에 해당하는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기타소득세는 이자소득, 배당소득, 부동산임대소득 등과 같이 일시적·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경마의 경우 적중금액 여부를 떠나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할 경우 마사회가 의무적으로 원천 징수하게 되어 있다. 이는 99배를 적중시킨 사람보다 101배를 적중시킨 사람이 손해를 보는 모순과 함께 이중과세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든 사행게임이 다 그렇지만 경마에서도 확률상 돈을 따기란 불가능하다. 환급률마저 낮아 수학적으로 얘기하면 경마를 즐기면 즐길수록 돈을 잃게 된다. 어쩌다 고액 배당을 맞춘다 해도 그동안 반복적으로 구매하면서 잃은 돈까지 따진다면 결코 소득이라고 간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기타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경마팬 입장에서 보면 부당하다. 돈을 잃었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보태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기타소득세’는 결국 “한꺼번에 돈을 많이 가져갔으니 내놔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세금 구조 자체가 경마를 레저가 아니라 도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경마선진국에서는 경마에 대한 세금이 낮아 경마에 참여하더라도 잃는 액수가 적다. 그야말로 경마를 레저스포츠로 즐길 수 있다. 잃더라도 레저를 즐기는 비용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경마에 세금을 부과하여 어떻게 하면 국가재정이나 지방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가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경마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100개국이 넘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불법경마가 성행하면서 경마 매출이 감소하자 각종 경마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경마장 내 카지노(RACINO) 설치와 관광위락시설 조성을 허가했다. 발매세율도 인하했다.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은 발매액에 대한 원천과세를 없앴고, 시행체의 순매출액(고객환급금을 제외한 매출액)에 과세하는 방식으로 징수체계를 변경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순매출액의 20%였던 과세를 4%로 감축했다.
“경마에 대한 과도한 규제 풀어야 불법 줄어들 것”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투성이인 우리나라의 경마산업을 어떻게 해야 하며 불법경마를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종래 경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사행산업이었다. 그러나 1994년 경륜이 등장하였고, 2000년 이후 체육, 게임산업 진흥이라는 명목 아래 문화관광부 주도로 각종 사행산업이 잇달아 도입됐다.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06년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졌다. 이를 계기로 국회 차원의 규제가 급물살을 타면서 그해 12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이하 사감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제1기 사감위가 발족한 것은 2007년 9월이었다. 이때부터 정부가 과도한 사행심 유발 방지와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사행산업의 통합적 관리감독에 착수한 것이다.
사감위는 사행산업 매출 총량 규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전자카드 도입, 온라인 베팅 폐지와 장외발매소 설치 제한 등의 규제책을 펴면서 소위 ‘기관차효과’를 내세워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관차효과’는 경마, 경륜, 카지노와 같은 합법 사행산업이 불법 사행산업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합법 사행산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경마 등 사행행위를 접해본 사람이 불법 사행게임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일견 기관차효과가 설득력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사감위 출범 이후 사행산업이 정부의 체계적인 규제 아래 공익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불법 사행산업이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니 불법이 더 성행하는, 즉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팽창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입증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창가를 없애고 성매매를 단속하다 보니 주택가 부근으로 성매매 업소가 파고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감위의 역할을 면밀히 재검토해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마사회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감위는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보다 불법 사행산업에 대한 단속과 규제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감위는 지난 4월 전북 김제 마늘밭 범죄수익금 은닉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당시 ‘우리는 합법 사행산업만 지도·감독하게 되어 있다’며 불법도박 확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이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사행산업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처사입니다. 앞으로 법을 고쳐서라도 사감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또 사행산업에 붙이는 과다한 세금으로 결과적으로 불법을 부추기는 일은 없는지 이번 기회에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마는 이제 레저스포츠로 육성할 때입니다. 그래야 불법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2=5월 29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 5동. 안양 만안경찰서 지능팀 소속 형사 5명과 마사회 단속팀 10명이 한 가구매장을 덮쳤다. 단속팀은 사다리를 타고 매장 2층 사무실로 진입해 불법경마사이트(nana308.com)를 이용해 마권을 산 한 업체인력 10명(남 8명, 여 2명)을 검거했다. 경찰과 마사회 단속팀은 현장에서 불법 경마사이트 운영에 사용된 PC 2대와 거래장부, 현금 수백만 원을 압수했다. 경찰의 단속을 알고 냉장고 속에 숨겨두었던 경마 예상지도 압수했다.
불법 사설경마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불법 사설경마를 하다 적발된 건수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에만도 7건이나 된다. 올해 들어 39건이다. 붙잡힌 사람만도 262명이나 된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럼에도 불법 행위는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이나 마사회 단속팀에 적발되지만 않으면 그로 인해 얻는 수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매우 쉬운 구조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던 지난 4월 전북 김제 마늘밭 사건이 대표적이다.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번 돈 100억원 이상을 5만원권으로 바꿔 마늘밭에 숨겨뒀다가 들통난 사건이다.
불법 사설경마 매출이 마사회 매출보다 훨씬 많아
아주대학교 산학협력단 발표(2008년)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도박산업의 규모는 53조2000억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용역결과는 불법 사설경마 규모를 2004년 3조4000억원, 2009년 최소 9조3000억원에서 최대 30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정부로부터 경마 허가를 받은 공식 기관인 한국마사회의 연간 매출액(7조3000억원)보다도 더 큰 규모다. 적게는 125%지만 크게는 411%에까지 이른다. 이것도 추정치여서 실제는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르는 형편이다.사설경마는 “마사회가 아닌 개인 혹은 단체가 마사회가 시행하는 경주에 관하여 유사 마권을 발행하여 적중자에게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교부하는 행위”(한국마사회법)로 정의되어 있다. 이런 행위는 법에 의해 금지돼 있다. 엄연한 범죄인 것이다.
때문에 불법 사설경마는 범죄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행위 장소가 은밀하고, 조직적·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일반 범죄와 다른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 사설경마를 한 사람도 스스로 대박을 노리고 도박을 했기 때문에 일반 범죄사건에서처럼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 ‘피해자’의 신고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만큼 일반 범죄보다 오히려 단속이 어렵다.
사설경마는 크게 하우스형, 인터넷형, 객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설 마권 발매 행위가 어디서 이뤄지느냐에 따른 구분법이다. 아파트, 상가, 오피스텔 등에서 이뤄지면 하우스형, 불법 경마사이트에서 이뤄지면 인터넷형으로 본다. 객장형은 본장 혹은 지점 내에서 사설 마권 발매가 이뤄지는 것으로 최근에는 적발의 위험성이 커 퇴조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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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경마장 외부의 풍경이다. 아파트, 상가, 오피스텔 등에서도 불법 도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
행위수법도 점점 더 은밀해지고 있다. 지인들끼리만 사이트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차명계좌 및 전화를 이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다. 사이트 운영서버를 해외에 두거나 외부의 다른 조직을 이용해 구매 또는 수수료만 취득하는 등 행위유형이 복잡해 수사가 길어지는 어려움도 있다. 한 운영자가 10개가 넘는 다량의 사이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는 것도 문제다. 사기행위가 아닌 도박행위이기 때문에 재산상 피해가 발생하여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할 수 없다.
단속의 어려움도 있다. 우선 공권력의 체계적 지원에 어려움이 있다. 불법경마 단속은 대부분 수사기관의 휴일에 이뤄지기 때문에 단속 수사관을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다. 휴일에 사설경마를 단속해 봤자 실적이 크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인사상 가점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수사관들이 선뜻 마사회의 단속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범행현장 덮치기가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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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사설경마 증거물. 배당률 등이 手記로 적혀 있다. |
경미한 사법처리가 불법경마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현행법상 사설경마 운영은 한국마사회법 제48조에 의해 금지된다. 제50조, 제59조는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사설경마를 운영하다 적발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설경마를 이용한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면 된다.
김제 마늘밭에 묻어뒀던 돈은 100억원이 넘는다. 사설경마 사이트를 운영해서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데, 적발됐을 때 벌금은 그야말로 세발의 피 수준이다. 만약에 자동차를 몰고 가다 속도위반으로 적발됐을 때 1000원의 벌금만 내도 된다면 경부고속도로가 아우토반(독일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같은 이치로 불법 사설경마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해 재범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불법경마에선 핵심행위자의 적발이 힘든데, 법원은 이들 범죄자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러니 불법 사설경마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폐해는 실로 막대하다.
우선 공익기금과 세금 탈루(脫漏) 문제다. 마사회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축산진흥기금과 농어촌복지사업에 쓰게 되어 있다. 불법 사설경마는 세금을 내지도 않고, 따라서 공익기금에 기여하는 부분도 전혀 없다.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연간 마사회 이익을 10조원으로 추산하면 불법 사설경마로 인해 탈루되는 금액이 2조7000억원 정도라는 것이 마사회의 예상치다.
무엇보다 불법 사설경마로 인한 수익이 범죄조직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다. 불법 사설경마 조직의 운영에 범죄조직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 자금이 반(反)사회적 비용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불법 사설경마의 경우, 베팅금액이 크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돈을 잃을 수 있다. 이는 곧 가산탕진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2010년 마사회 단속팀은 불법 사설경마 현장단속(92건)을 통해 불법 경마사이트 567개를 폐쇄했다. 마사회는 불법 사설경마 신고 활성화를 위해 ‘사설경마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경마팬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설경마 예방 홍보와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마사회만의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합법 경마’를 짓누르는 과도한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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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사설경마 단속에서 범인을 체포하고 있는 경찰. |
그것은 바로 ‘한탕’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행 게임 참여자들이 불법 도박을 찾는 이유는 불법 도박이 합법 사행게임보다 손실금 보전, 무제한 베팅 등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손실금 보전이다. 불법경마는 불법이기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따라서 불법경마 운영자들은 세금을 내야 할 부분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에게 손실금의 10~20%를 보전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잃더라도 1000만~2000만원 정도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는 ‘합법 경마’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무제한 베팅이다. ‘합법 경마’는 1회 베팅 최고 한도액이 10만원이다. 반면 ‘불법경마’는 제한이 없다. 경마를 건전한 레저가 아니라 도박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무제한 베팅의 짜릿함을 더 즐길 가능성이 높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마 과세율은 마권 매출액의 16%다. 레저세 10%, 지방교육세 4%, 농어촌특별세 2%로 구성돼 있다. 미국(2%), 호주(4%), 일본(10%) 등 경마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영국,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나라들은 경마에 대한 과세 자체를 없앴다.
경마를 위해 마권을 산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환급률은 우리나라의 경우 73%다. 즉 경마로 배당금을 받은 사람들이 가져가는 돈을 모두 합치면 마권을 산 사람들의 돈을 모두 합친 액수의 73%라는 얘기다. 나머지 27% 중 제일 많은 것이 세금(16%)이고, 다음이 운영비용(5%), 마사회 수익금(4%), 경마 상금(2%) 순이다. 4% 정도 되는 마사회 수익금 가운데 30%는 경마 등 말산업 투자 재원으로, 70%는 축산발전기금 및 농어촌복지사업 재원으로 적립된다.
이렇게 따지면 결국 경마팬만 봉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사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마에 대한 과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환급률을 높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1993년도의 경우 구매 마권 적중 시 마사회 환급률은 75%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방교육세율이 2%에서 5%로 높아지면서 73%로 떨어졌다. 그 후 다시 지방교육세율이 6%로 조정되면서 72% 수준으로 낮아졌다가 2009년에 지방교육세가 4%로 영구세화되면서 현재의 73%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환급률은 정작 경마 소비자인 경마팬의 요구나 편의는 무시한 채 조세정책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여기에다 구매한 마권이 적중되어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할 경우에는 별도로 22%에 해당하는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기타소득세는 이자소득, 배당소득, 부동산임대소득 등과 같이 일시적·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경마의 경우 적중금액 여부를 떠나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할 경우 마사회가 의무적으로 원천 징수하게 되어 있다. 이는 99배를 적중시킨 사람보다 101배를 적중시킨 사람이 손해를 보는 모순과 함께 이중과세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든 사행게임이 다 그렇지만 경마에서도 확률상 돈을 따기란 불가능하다. 환급률마저 낮아 수학적으로 얘기하면 경마를 즐기면 즐길수록 돈을 잃게 된다. 어쩌다 고액 배당을 맞춘다 해도 그동안 반복적으로 구매하면서 잃은 돈까지 따진다면 결코 소득이라고 간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기타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경마팬 입장에서 보면 부당하다. 돈을 잃었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보태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기타소득세’는 결국 “한꺼번에 돈을 많이 가져갔으니 내놔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세금 구조 자체가 경마를 레저가 아니라 도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경마선진국에서는 경마에 대한 세금이 낮아 경마에 참여하더라도 잃는 액수가 적다. 그야말로 경마를 레저스포츠로 즐길 수 있다. 잃더라도 레저를 즐기는 비용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경마에 세금을 부과하여 어떻게 하면 국가재정이나 지방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가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경마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100개국이 넘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불법경마가 성행하면서 경마 매출이 감소하자 각종 경마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경마장 내 카지노(RACINO) 설치와 관광위락시설 조성을 허가했다. 발매세율도 인하했다.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은 발매액에 대한 원천과세를 없앴고, 시행체의 순매출액(고객환급금을 제외한 매출액)에 과세하는 방식으로 징수체계를 변경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순매출액의 20%였던 과세를 4%로 감축했다.
“경마에 대한 과도한 규제 풀어야 불법 줄어들 것”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투성이인 우리나라의 경마산업을 어떻게 해야 하며 불법경마를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종래 경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사행산업이었다. 그러나 1994년 경륜이 등장하였고, 2000년 이후 체육, 게임산업 진흥이라는 명목 아래 문화관광부 주도로 각종 사행산업이 잇달아 도입됐다.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06년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졌다. 이를 계기로 국회 차원의 규제가 급물살을 타면서 그해 12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이하 사감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제1기 사감위가 발족한 것은 2007년 9월이었다. 이때부터 정부가 과도한 사행심 유발 방지와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사행산업의 통합적 관리감독에 착수한 것이다.
사감위는 사행산업 매출 총량 규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전자카드 도입, 온라인 베팅 폐지와 장외발매소 설치 제한 등의 규제책을 펴면서 소위 ‘기관차효과’를 내세워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관차효과’는 경마, 경륜, 카지노와 같은 합법 사행산업이 불법 사행산업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합법 사행산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경마 등 사행행위를 접해본 사람이 불법 사행게임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일견 기관차효과가 설득력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사감위 출범 이후 사행산업이 정부의 체계적인 규제 아래 공익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불법 사행산업이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니 불법이 더 성행하는, 즉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팽창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입증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창가를 없애고 성매매를 단속하다 보니 주택가 부근으로 성매매 업소가 파고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감위의 역할을 면밀히 재검토해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마사회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감위는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보다 불법 사행산업에 대한 단속과 규제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감위는 지난 4월 전북 김제 마늘밭 범죄수익금 은닉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당시 ‘우리는 합법 사행산업만 지도·감독하게 되어 있다’며 불법도박 확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이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사행산업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처사입니다. 앞으로 법을 고쳐서라도 사감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또 사행산업에 붙이는 과다한 세금으로 결과적으로 불법을 부추기는 일은 없는지 이번 기회에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마는 이제 레저스포츠로 육성할 때입니다. 그래야 불법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