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 공무원 불친절, 떠넘기기, 시간끌기, 부실한 자료 공개 등 경험
⊙ 일반 시민에게 ‘정보 없다’던 기관, 국회·언론에 버젓이 상세정보 제공
⊙ 다른 부처의 같은 질의 내용에 다른 대답 보내기도
孫太圭
⊙ 55세. 성균관대 정치외교과 졸업, 美 노스캐롤라이나大 언론학 박사.
⊙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특별취재팀장 등 역임, 관훈클럽 편집위원·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 現 한국정보사회학회 부회장.
⊙ 일반 시민에게 ‘정보 없다’던 기관, 국회·언론에 버젓이 상세정보 제공
⊙ 다른 부처의 같은 질의 내용에 다른 대답 보내기도
孫太圭
⊙ 55세. 성균관대 정치외교과 졸업, 美 노스캐롤라이나大 언론학 박사.
⊙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특별취재팀장 등 역임, 관훈클럽 편집위원·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 現 한국정보사회학회 부회장.
- 정보공개 청구는 직접 방문하는 방법 외에도 인터넷 정보공개시스템(www.open.go.kr)을 통해 할 수 있다.
정보공개법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정보와 자료를 공개할 의무를 갖도록 한다. 정보공개가 정부의 의무라면 그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민들이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정부로부터 얻기 위해서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가야만 한다. 과연 우리나라 정보공개법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필자는 그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 수업시간을 활용했다. 저널리즘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사회의 개선 등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정보공개법을 이용해 청구한 뒤 정보를 손에 쥐기까지 전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도록 했다. 과제의 표면 목표는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탐사보도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의 의미와 가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보공개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토록 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었다. 학생들이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정부와 공무원의 실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목적의 하나였다.
정보공개 청구해 본 학생들, 끝내 분노 터뜨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끝내는 분노로 변했다. 수강 학생 대부분이 공무원의 불친절, 신청 포기 유도, 부처 간 떠넘기기, 합당한 이유 없는 비공개, 부실한 공개 자료 등을 비판하며 정보공개법에 실망과 불신을 표시했다. 국민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안기는 정보공개법이라면 존재의 의미와 정당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의 경험을 국민들 모두의 경험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공개법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정보를 청구한 학생들 대부분 정부가 만든 ‘정보공개시스템’의 편리성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칭찬을 했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보공개법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공무원들이 존재하는 한 정보공개시스템은 적실성이 있는 도구가 되기 어렵다.
학생들이 가장 실망한 것은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진정으로 정보공개를 도와주려는 강한 책임감은커녕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의무감조차 느낄 수 없는 공무원들의 불성실과 뻣뻣함이었다.
ㄱ 학생은 2009년 11월 전국 3개 시·도 교육청에 중·고등학교 난방시설 실태에 관한 정보를 청구했다. 신청 다음날 서울 강서교육청의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청구내용 중 줄 수 없는 내용이 많다”고 말문을 연 담당자는 대뜸 “주소를 보니 가까운 곳에 사시는 것 같은데 직접 방문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경기도교육청도 비슷했다. 담당자는 전화를 해 “이렇게 연락이 되었으니 그냥 본인이 와서 직접 처리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 학생은 “온라인 정보공개청구제도의 핵심은 신속성과 효율성이다. 멀쩡한 제도를 놔두고 직접방문을 요청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 앞에서 그러한 가치는 무색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아마 공무원들은 직접방문을 요청하면 청구 자체를 포기할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많은 학생이 “직업이 무엇이냐” “왜 그런 정보가 필요하냐”는 등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캐묻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학생들은 “그런 딱딱한 태도가 아주 기분을 상하게 했다”며 그러한 과정에서 시민들은 청구 자체를 취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의 ‘취하’에는 공무원들의 마뜩찮은 태도 또는 취소를 유도하는 질문 때문에 이뤄진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취하는 사실 정보공개 거부의 결과이다.
떠넘기기로 5통 전화 돌린 후 최초 통화자와 다시 통화
ㄴ 학생은 2009년 11월 서울 광진구청에 ‘서울 사회공헌 모델 선정’에 관한 정보를 청구했다. 신청 일주일 만에 구청의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 직원은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정보공개시스템의 목록을 확인하고 신청했음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다른 부서로 연결시켰다. 아침나절 동안 여기저기 바꿔 가며 다섯 통의 전화에서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어처구니없게 마지막 처리를 한 직원은 첫 통화 상대였다.
ㄷ 학생도 부처 간 떠넘기기를 경험했다. 그는 2011년 4월 청소년 범죄에 관한 정보를 여러 기관에 청구했다. 경찰청 담당자는 일부 신청 항목은 대검찰청 소관이라고 했다. 대검은 그것이 대검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아무런 통보 없이 청구 처리를 법무부로 넘겼다. 하지만 그것도 법무부 소관이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자료 내용을 명확히 알지도 못한 채 다른 부처 것이라며 처리를 하지 않거나 그냥 넘길 뿐이었다. ‘취소 유도’나 ‘떠넘기기’ 모두 정보공개는 귀찮은 일이란 인식이 공무원 사회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ㄹ 학생은 2009년 11월 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시민들의 신고 후 경찰이 출동하는 시각으로부터 출동 완료 시각까지의 시간’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평소에 길거리에서 “112에 신고하면 5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에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일 경찰서로부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초서 담당자는 “요구 정보에 대한 기록을 특별히 하지 않고 있어 정보를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들과의 약속에 관한 정보를 기록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 학생은 ‘112신고 뒤 5분내 출동비율 갈수록 하락’이라는 기사를 신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각 지역 경찰서별로 자세한 비율까지 포함된 기사였다. 그 기사는 여당 국회의원에게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한 정보가 틀림없었다.
다시 경찰서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사항들을 얘기하고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특별한 경우가 있어야만 공개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보도된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 막무가내 처리였다.
법정 공개 시한 꽉 채우는 공무원들
학생들이 경험한 두 번째 문제는 늑장 처리이다.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법정 시한을 채워서 공개 여부 결정을 통지했다. 시한을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보공개 결정 기간은 주말을 제외한 10일이기 때문에 주말까지 포함한다면 최대 12일로 결코 짧지 않다. ‘공개’ 결정이 이 기간 안에 내려졌다 하더라도 실제 정보를 얻기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시간을 최대한 끈 후 결정을 통지한다.
ㅁ 학생은 2009년 11월 6일 서울 교육청에 연예인 특례입학 현황을 청구했다. 3일 뒤 교육청으로부터 교육과학기술부로 이송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소관이 아니라는 점은 어쩔 수 없으나 그것을 판단하는 데 사흘이나 걸린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16일 교과부로부터 ‘비공개 자료이므로 열람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교과부는 꼭 열흘을 채워 답변을 보냈다. 더구나 비공개 사유는 ‘자료가 없다’는 것. 대부분의 자료가 전산화되는 마당에 자료 없음을 판단하기 위해 열흘이 걸렸다는 것은 쉬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모두 13일을 기다렸으나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ㅁ 학생은 2011년 4월 고령화 시대 일자리에 관한 정보를 고용노동부와 고용노동위원회에 각각 신청을 했다. 3일 뒤 노동위에 신청한 자료는 노동부에 이송되었다는 통지가 정보공개시스템에 게시되었다. 마침내 신청 16일 만에야 자료를 공개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중간에 재신청도 고려했으나 그럴 경우 중복신청이 되어 자동 삭제되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세 번째 지적한 문제는 부실한 자료와 일방적 공개 거부였다. 까다로운 질문 과정을 거치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받은 자료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략하거나 신청 내용과는 동떨어진 자료가 많았다. 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거나 아예 이유도 없이 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쓸모없는 부실한 자료 제공
ㅂ 학생은 어마어마한 부채로 관심을 끌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기관운영실태와 월간 자금계획을 2010년 11월 청구했다. 정보공개신청 목록에서 확인한 자료였다. 그러나 주택공사는 자금계획은 정보공개법 9조 7호의 경영 및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임을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이 학생은 “공개하지도 못할 정보를 공개대상 목록에 넣어 놓고 막상 청구하니까 못 주겠다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라고 말했다. 더욱이 기관운영실태는 운영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이 지방 일개 지구의 토지매매계약에 관한 감사 결과뿐이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에 단 1%도 부합하지 않는 쓸데없는 자료”라고 비판했다.
앞에 언급한 ㄷ 학생은 같은 정보를 여러 부서로부터 받았으며 그 내용도 부처에 따라 달랐다. 소년범죄의 연도별 유형변화와 범죄 건수의 경우 경찰청과 대검이 보낸 자료가 서로 달랐다. 수치는 매년 천 명 이상 차이가 났다. 심지어 경찰청 자료에서는 소년 범죄가 줄어든 경향을 보였으나 대검의 자료에서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또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이 보낸 소년범 관련 법조항이 서로 달랐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기본법, 청소년활동진흥법, 청소년복지지원법을 보낸 데 비해 경찰청은 청소년기본법, 소년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을 보냈다.
ㅅ 학생은 2011년 4월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난 청소년의 자살률을 알기 위해 통계청에 자료 청구를 했다. 8일간의 처리기간에 비해 통계청이 알려준 정보는 지나치게 허술했다. 고의 자해로 숨진 청소년에 관한 정보가 전부였다. 그것도 통계청이 알려준 것은 문서화한 자료가 아니라 통계청의 홈페이지 주소였다.
ㅇ 학생은 영화관람료에 포함된 2009년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용처와 2009년 10월까지의 영화관람정보를 2009년 1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청구했다. 그는 데이터베이스화된 것일 뿐 아니라 다른 특별한 요구가 없는 정보이기 때문에 빠르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주사, 사무관, 과장의 결재를 거쳐 13일 만에 통보가 왔다. 받은 자료는 무려 145쪽. 이 학생은 “가감 없는 정보공개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는구나. 일반인에게 이만큼의 정보를 제공하다니. 양 때문에 공개에 시간이 걸렸나 보다’라며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아뿔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료는 빈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145쪽 중 실제 내용이 담긴 곳은 35쪽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앞장의 도표가 두 쪽으로 나눠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생이 청구에서 공개를 강조했던 부분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사용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의 창조역량 강화, 새로운 예술세계의 개척, 예술의 국제협력 증진, 예술현장의 자생력 확보, 생활 속의 예술 활성화’ 등에 기금이 사용되었다는 정보는 허탈함만을 가져다주었다. 기금이 어떤 방식으로 모금되는지는 비교적 명확했으나 지출은 위에 언급한 대로 ‘이름 참 근사한’ 곳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는 곧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공개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전달받고자 하는 핵심을 교묘히 비켜간 정보는 그 양이 아무리 많더라도 쓸모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진정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면 정보의 공개로 인해 논란과 파장을 가져오더라도 공개가 가능한 제도라야 한다. 적당히 공개할 만한 수준의 정보를 공개해 놓고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강조해 행정의 투명성을 외치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라는 것만 깨닫게 할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ㅇ 학생은 2009년 11월 2일 제주해안경비단 산하 사라봉초소에서 일어났던 전경대원 추락사 사고의 전말을 알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007년 10월, 사라봉초소에서 선임대원에게 얼차려를 받던 한 대원이 해안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당시의 언론 보도에서는 정확한 추락 원인이 무엇인지, 사후 조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부득이한 경우로 10일 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때에는 10일 이내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해당 기관은 그 사유 여하를 지체 없이 신청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 학생은 20일이 지난 11월 24일까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아무런 사유 설명도 없는 제주해안경비단 일방의 공개거부였다.
일방적 공개거부도 다수
네 번째는 법 조항 적용이 부처마다 다른 점이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청에 교통 관련 정보를 청구했던 ㅈ 여학생의 취재기 일부이다.
<11월 9일 처음으로 건설교통과 담당자와 통화한 뒤 이틀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청구한 정보 가운데 문서화되지 않은 것이 있어 일부만 받기로 했다. 문제는 수수료였다. 청구 목적이 교육 등 공익 목적이면 수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담당자는 공익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관장의 직인이 찍힌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수님의 서명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수료가 200원이니 웬만하면 그냥 내면 어떻겠냐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수수료 감면 신청의 목적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공개청구 제도의 완전한 체험에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통화 후 교수님께 증명서에 서명해 주실 것을 허락받았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건 담당자는 기관장인 총장의 직인만이 유효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뭔가 느껴졌다. 이것이 관료제의 모순이고 규칙의 굴레인가. 겪고, 극복해 보라는 교수님의 격려에 힘입어 단돈 200원을 위해 총장님의 직인을 받으려는 나의 노력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골치 아프고 고단했지만 구청 담당자의 어처구니없는 당당함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서 전화가 와 구청 담당자와 통화했다며 소액을 위해 수많은 절차를 밟는 비효율이 꼭 필요하냐고 물었다. 비효율은 다름 아닌 제도 자체와 공무원의 쓸데없는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다.(중략) 포기하지 않고 진행한 결과 결국 총장의 빛나는 직인이 찍힌 공문이 구청으로 발송되었다. 200원을 납부하지 않고도 원하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공무원들의 안일하기 그지없는 독불장군식 일처리에 대한 경험 때문에 씁쓸하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들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서러운 투쟁이다.>
정보공개법 시행령 17조는 교수·교사 또는 학생이 교육자료나 연구목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소속기관의 장의 확인을 받아 청구한 경우 감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구청 공무원의 기관장 문서 요구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기관에 청구했던 학생은 수업에 필요하다는 사유서만 내고 수수료 감면을 받았다. 이 조항의 적용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이 한 가지 경우에 정보공개법과 그것을 운용하는 공무원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교육목적을 밝히는 데 꼭 기관장의 증명서만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가 아니다. 교수나 교사의 확인서는 왜 소용이 없는가? 이 공무원은 처음에 교수의 확인서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수수료를 낼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그는 교수 서명, 나아가 총장 직인을 요구하면 신청을 포기할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그는 신청인에게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라고 하면서 자신의 권한만을 고집하는 모순을 보였다.
물론 정보공개법에 만족을 느낀 학생도 있었다. ㅊ 학생은 2009년 10월 보건복지부에 신종 플루 관련 내용을 청구했다. 이 학생은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직접 경험해 본 결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국민의 알고자 하는 작은 요구도 존중하는 공무원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수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실망과 고통의 경험을 했다.
정보공개법에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진 한 중견 언론인은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들이 너무 자기방어만 하고 협조를 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상당수는 정보공개법 취지를 몰이해하고 있고, 아는 사람들도 비공개 조항은 확대해석하고 공개 조항은 좁게 해석해서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에 대해선 어떤 꼬투리라도 잡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내놓지 않는다”며 “그 인식을 공무원들이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보공개법이 극복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고 험하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최초의 정보공개법은 스웨덴에서
스웨덴은 1766년 세계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다. 그때는 절대군주 시대를 지나서 ‘자유의 시대’라 불리는 의회 통치 시대였다. 이 기간 동안 스웨덴은 사전 검열제를 폐지하고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만들었다. 이 법은 국민의 알권리를 확립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임을 인식했다. 당시 스웨덴은 파산한 왕국이었다. 그럼에도 스웨덴 사람들은 관리들과 의원들이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정보공개라고 믿었다. 나라를 되살리는 길은 언론자유를 굳건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언론자유가 발달한 나라이며, 가장 부정부패가 덜한 나라일 뿐 아니라 가장 잘사는 나라의 하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론자유의 힘으로 스웨덴은 소생했다. 그 언론자유의 핵심 요소가 바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정보공개법이었다.
스웨덴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는 이 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핀란드는 1807년 다시 러시아의 식민지로 110년을 보내면서도 정보공개법을 유지했다. 1917년 독립한 이후에는 꾸준히 그 법을 개선하면서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했다.
2004년 유럽위원회(The Council of Europe)는 “오래전에 확립된 정보공개법 체계는 왜 부패 관행이 핀란드에서 아주 예외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 평가했다. 핀란드는 2010년 ‘국제투명성 기구’의 공공부문 청렴도 조사에서 세계 1위, 2010년 ‘프리덤 하우스’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세계 1위였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이룬 정치발전, 경제발전의 바탕에 정보공개법이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에 세계 80여개 국가가 정보공개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정보공개, 스웨덴에 200년 뒤져
미국은 정보공개법이 1966년에 제정됐다. 스웨덴에 200년이나 뒤진 것이다. 미국의 4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매디슨은 1822년 “국민들이 자신의 정부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지식이 주는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민주적 정보와 그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없는 민주주의 정부는 비극 또는 코미디의 서막”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그것을 보장하는 수단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매디슨의 소망이 미국에서 실현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1787년 연방헌법을 만든 지 3년 뒤에 10개의 자유와 권리를 담은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창출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10개 항의 권리장전 맨 앞에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더 할 나위 없이 강한 목소리로 새겨 넣었다. 1791년 승인된 수정헌법 1조(First Amendment)는 “의회는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수정헌법 1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언론자유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언론자유는 단순한 법의 개념이 아니라 거의 종교의 교의처럼 인식된다. 언론자유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수정헌법 1조는 미국인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지배하는 가치체계의 중심축이다. 이러한 수정헌법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구체화하는 정보공개법을 일찍이 일구어 내지 못했다. 1966년 정보공개법이 생기기까지 “비극이나 코미디의 서막” 같은 정부가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다. 수정헌법 1조를 만들었던 나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존 모스(John Moss)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국 정보공개법의 영웅이라 불린다. 그는 언론의 광범위한 보도와 기자들의 활발한 로비에 힘입어 1955년 입법 발의를 위한 첫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온갖 반대와 방해가 있었다. 1965년 모스가 법안을 발의했을 때 연방정부의 27개 모든 부처가 의회에서 반대 증언을 했다.
기자와 시사 및 언론비평가로 명성을 떨쳤던 빌 모이어스(Bill Moyers)는 백악관 공보수석을 지내면서 입법을 반대했던 인물. 그는 당시 존슨(Lindon Johnson)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정보공개법이란 아이디어 자체를 싫어했다. 기자들이 정부의 서랍장을 샅샅이 뒤지고 서류철을 열어 보는 것을 싫어했다. 기자들이 공무원들의 현실 견해를 반박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법안이 백악관에 넘어온 뒤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존슨 대통령은 법안에 대한 서명을 백악관에서 하지 않았다. 대신 휴가 중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했다. 역사에 남을 법안이었으나 그는 어떤 기념행사도 열지 않았다.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법을 만들기 위해 싸웠던 의원이나 기자, 법조인 등 어느 누구도 서명식에 부르지 않았다. 본인의 비망록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정보공개법에 대한 무시나 폄하였다. 미국의 행정부가 얼마나 정보공개법에 저항과 반대가 심했는지를 상징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미국 관리들이 쉽게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2008년 한 연방판사는 ‘국립핵보안청(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이 “정보공개를 상습으로 불법 지체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 판사는 “국립핵보안청의 정보공개 처리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미로와 같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미국인들은 한 해 2000만 건 이상의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정보공개법 운용에 돈이 너무 많이 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며, 국가안보 등에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를 대며 피하려 든다. 국민들이 별 소용도 없으면서 공무원을 괴롭히기 위해 신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사비만 일 년에 수천만 달러가 든다고 주장한다. 지방의 정부 기관은 정보 신청에 대한 보복으로 한 언론사에 비용으로 350만 달러를 요구한 적도 있다. 있는 자료를 온갖 구실을 대며 공개를 거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공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비밀로 분류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에 1년에 약 1500만 건씩을 비밀로 분류한다고 한다. 과거보다 20 ~30% 늘어난 숫자이다.
법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법을 운용하는 공무원들의 사고방식,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에서는 정보공개법과 관련, ‘grant’라는 표현을 쓴다. 시혜를 준다, 특혜를 준다는 의미이다. 언론인들은 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정부가 주인인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왜 시혜고 특혜냐는 것이다. 그런 공무원들의 정신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과 언론, 정보공개 적극 요구해야
그래서 미국의 언론법 교과서는 국민들과 기자들에게 “공개를 거부할 경우에는 재판으로 가라”고 가르친다. 국민과 언론들이 법정 소송으로 귀찮게 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는 한 정부 기관은 정보공개를 계속 꺼리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정부를 괴롭혀라, 옥죄라는 것. 그렇게 해야 정부가 정신 차린다는 것이다. 제임스 매디슨의 소망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지만 미국의 정보공개법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어찌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보공개법의 현실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미국도 그럴진대 왜 한국만 문제 삼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과는 전혀 다르게 미국은 대통령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정보공개법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정보공개법은 ‘의심에 직면한다면 공개가 그것을 압도한다’는 명백한 추론에 따라 집행되어야 한다. 미국 정부는 공무원들이 성가시다는 이유로 공개해야 할 정보를 비밀로 감추어서는 안 된다. (중략)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모든 정부 기관들은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협조의 정신 속에 신속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2009년 각 기관의 정보공개법 준수 등을 감시할 ‘정부정보서비스사무소’를 새로이 만들었다. 미국의 여러 언론 단체, 기자 단체, 언론사, 언론 재단들은 정부의 정보공개법 준수를 촉구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기구를 만들었다. 끊임없이 책을 내고 정부에 항의문을 띄운다. 예를 들어 언론사 등 50여 개 언론 관련 단체가 참여한 언론연대는 9·11사태 이후 정부의 정보 통제가 극심해지자 2002년부터 ‘햇볕 주간(Sunshine Week)’을 만들었다. 해마다 3월의 일주일을 정해 정보공개법에 관한 기사와 사설 등을 집중 게재하고 세미나를 개최하여 정부가 비밀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자들은 법의 투쟁도 함께 벌인다. 2009년에만 AP는 정보공개 거부와 관련, 40여 건의 행정심판 또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러 형태의 시민단체들도 적극 행동에 나선다. 정보공개에 저항하는 정부에 대해 대통령이 경고하며 시민과 기자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 미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공개 제도에 관심이 있는지, 정보공개법이 있는지를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 든다. 시민들이나 기자들도 별 관심이 없음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자도 정보공개 때문에 행정소송을 낸 적이 없다. 그러니 정보공개 제도는 국민들과 겉도는 사실상 전시행정이 되고 있다.
정보공개, 비용보다 혜택 크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1864년 “국민들이 사실을 알도록 하면 나라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 하원의 정보공개법 위원회는 “정부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막는 권력은 정부를 파괴하는 권력”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정부의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접근권은 책임 있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정부가 비밀리에 일을 하고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성을 감시하고 유지토록 하는 국민의 능력을 빼앗는 일이다. 정부의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으며, 그 결정이 적용된 결과가 무엇인지를 담고 있는 정보에 대한 접근은 국민들이 정부를 더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정보공개에 따른 비용보다 혜택이 크다는 것은 선진국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정보공개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핀란드는 법무부에서 감시를 하며, 국회에 정보공개법 옴부즈맨이 있다. 우리나라도 법의 보완과 함께 공무원 교육과 운용 감시 및 국민과 기관 사이의 분쟁 중재를 위한 상설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
필자는 그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 수업시간을 활용했다. 저널리즘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사회의 개선 등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정보공개법을 이용해 청구한 뒤 정보를 손에 쥐기까지 전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도록 했다. 과제의 표면 목표는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탐사보도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의 의미와 가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보공개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토록 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었다. 학생들이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정부와 공무원의 실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목적의 하나였다.
정보공개 청구해 본 학생들, 끝내 분노 터뜨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끝내는 분노로 변했다. 수강 학생 대부분이 공무원의 불친절, 신청 포기 유도, 부처 간 떠넘기기, 합당한 이유 없는 비공개, 부실한 공개 자료 등을 비판하며 정보공개법에 실망과 불신을 표시했다. 국민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안기는 정보공개법이라면 존재의 의미와 정당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의 경험을 국민들 모두의 경험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공개법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정보를 청구한 학생들 대부분 정부가 만든 ‘정보공개시스템’의 편리성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칭찬을 했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보공개법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공무원들이 존재하는 한 정보공개시스템은 적실성이 있는 도구가 되기 어렵다.
학생들이 가장 실망한 것은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진정으로 정보공개를 도와주려는 강한 책임감은커녕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의무감조차 느낄 수 없는 공무원들의 불성실과 뻣뻣함이었다.
ㄱ 학생은 2009년 11월 전국 3개 시·도 교육청에 중·고등학교 난방시설 실태에 관한 정보를 청구했다. 신청 다음날 서울 강서교육청의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청구내용 중 줄 수 없는 내용이 많다”고 말문을 연 담당자는 대뜸 “주소를 보니 가까운 곳에 사시는 것 같은데 직접 방문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경기도교육청도 비슷했다. 담당자는 전화를 해 “이렇게 연락이 되었으니 그냥 본인이 와서 직접 처리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 학생은 “온라인 정보공개청구제도의 핵심은 신속성과 효율성이다. 멀쩡한 제도를 놔두고 직접방문을 요청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 앞에서 그러한 가치는 무색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아마 공무원들은 직접방문을 요청하면 청구 자체를 포기할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많은 학생이 “직업이 무엇이냐” “왜 그런 정보가 필요하냐”는 등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캐묻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학생들은 “그런 딱딱한 태도가 아주 기분을 상하게 했다”며 그러한 과정에서 시민들은 청구 자체를 취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의 ‘취하’에는 공무원들의 마뜩찮은 태도 또는 취소를 유도하는 질문 때문에 이뤄진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취하는 사실 정보공개 거부의 결과이다.
떠넘기기로 5통 전화 돌린 후 최초 통화자와 다시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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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진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대학생은 다섯 번의 ‘떠넘기기’ 통화 끝에 최초 통화자와 다시 통화해야 했다. |
ㄷ 학생도 부처 간 떠넘기기를 경험했다. 그는 2011년 4월 청소년 범죄에 관한 정보를 여러 기관에 청구했다. 경찰청 담당자는 일부 신청 항목은 대검찰청 소관이라고 했다. 대검은 그것이 대검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아무런 통보 없이 청구 처리를 법무부로 넘겼다. 하지만 그것도 법무부 소관이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자료 내용을 명확히 알지도 못한 채 다른 부처 것이라며 처리를 하지 않거나 그냥 넘길 뿐이었다. ‘취소 유도’나 ‘떠넘기기’ 모두 정보공개는 귀찮은 일이란 인식이 공무원 사회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ㄹ 학생은 2009년 11월 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시민들의 신고 후 경찰이 출동하는 시각으로부터 출동 완료 시각까지의 시간’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평소에 길거리에서 “112에 신고하면 5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에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일 경찰서로부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초서 담당자는 “요구 정보에 대한 기록을 특별히 하지 않고 있어 정보를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들과의 약속에 관한 정보를 기록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 학생은 ‘112신고 뒤 5분내 출동비율 갈수록 하락’이라는 기사를 신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각 지역 경찰서별로 자세한 비율까지 포함된 기사였다. 그 기사는 여당 국회의원에게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한 정보가 틀림없었다.
다시 경찰서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사항들을 얘기하고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특별한 경우가 있어야만 공개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보도된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 막무가내 처리였다.
법정 공개 시한 꽉 채우는 공무원들
학생들이 경험한 두 번째 문제는 늑장 처리이다.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법정 시한을 채워서 공개 여부 결정을 통지했다. 시한을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보공개 결정 기간은 주말을 제외한 10일이기 때문에 주말까지 포함한다면 최대 12일로 결코 짧지 않다. ‘공개’ 결정이 이 기간 안에 내려졌다 하더라도 실제 정보를 얻기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시간을 최대한 끈 후 결정을 통지한다.
ㅁ 학생은 2009년 11월 6일 서울 교육청에 연예인 특례입학 현황을 청구했다. 3일 뒤 교육청으로부터 교육과학기술부로 이송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소관이 아니라는 점은 어쩔 수 없으나 그것을 판단하는 데 사흘이나 걸린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16일 교과부로부터 ‘비공개 자료이므로 열람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교과부는 꼭 열흘을 채워 답변을 보냈다. 더구나 비공개 사유는 ‘자료가 없다’는 것. 대부분의 자료가 전산화되는 마당에 자료 없음을 판단하기 위해 열흘이 걸렸다는 것은 쉬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모두 13일을 기다렸으나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ㅁ 학생은 2011년 4월 고령화 시대 일자리에 관한 정보를 고용노동부와 고용노동위원회에 각각 신청을 했다. 3일 뒤 노동위에 신청한 자료는 노동부에 이송되었다는 통지가 정보공개시스템에 게시되었다. 마침내 신청 16일 만에야 자료를 공개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중간에 재신청도 고려했으나 그럴 경우 중복신청이 되어 자동 삭제되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세 번째 지적한 문제는 부실한 자료와 일방적 공개 거부였다. 까다로운 질문 과정을 거치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받은 자료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략하거나 신청 내용과는 동떨어진 자료가 많았다. 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거나 아예 이유도 없이 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쓸모없는 부실한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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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는 정보공개신청 목록에 포함된 공사 월간 자금계획을 요청했으나, 공사측은 경영 및 영업비밀임을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
앞에 언급한 ㄷ 학생은 같은 정보를 여러 부서로부터 받았으며 그 내용도 부처에 따라 달랐다. 소년범죄의 연도별 유형변화와 범죄 건수의 경우 경찰청과 대검이 보낸 자료가 서로 달랐다. 수치는 매년 천 명 이상 차이가 났다. 심지어 경찰청 자료에서는 소년 범죄가 줄어든 경향을 보였으나 대검의 자료에서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또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이 보낸 소년범 관련 법조항이 서로 달랐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기본법, 청소년활동진흥법, 청소년복지지원법을 보낸 데 비해 경찰청은 청소년기본법, 소년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을 보냈다.
ㅅ 학생은 2011년 4월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난 청소년의 자살률을 알기 위해 통계청에 자료 청구를 했다. 8일간의 처리기간에 비해 통계청이 알려준 정보는 지나치게 허술했다. 고의 자해로 숨진 청소년에 관한 정보가 전부였다. 그것도 통계청이 알려준 것은 문서화한 자료가 아니라 통계청의 홈페이지 주소였다.
ㅇ 학생은 영화관람료에 포함된 2009년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용처와 2009년 10월까지의 영화관람정보를 2009년 1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청구했다. 그는 데이터베이스화된 것일 뿐 아니라 다른 특별한 요구가 없는 정보이기 때문에 빠르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주사, 사무관, 과장의 결재를 거쳐 13일 만에 통보가 왔다. 받은 자료는 무려 145쪽. 이 학생은 “가감 없는 정보공개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는구나. 일반인에게 이만큼의 정보를 제공하다니. 양 때문에 공개에 시간이 걸렸나 보다’라며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아뿔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료는 빈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145쪽 중 실제 내용이 담긴 곳은 35쪽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앞장의 도표가 두 쪽으로 나눠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생이 청구에서 공개를 강조했던 부분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사용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의 창조역량 강화, 새로운 예술세계의 개척, 예술의 국제협력 증진, 예술현장의 자생력 확보, 생활 속의 예술 활성화’ 등에 기금이 사용되었다는 정보는 허탈함만을 가져다주었다. 기금이 어떤 방식으로 모금되는지는 비교적 명확했으나 지출은 위에 언급한 대로 ‘이름 참 근사한’ 곳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는 곧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공개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전달받고자 하는 핵심을 교묘히 비켜간 정보는 그 양이 아무리 많더라도 쓸모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진정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면 정보의 공개로 인해 논란과 파장을 가져오더라도 공개가 가능한 제도라야 한다. 적당히 공개할 만한 수준의 정보를 공개해 놓고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강조해 행정의 투명성을 외치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라는 것만 깨닫게 할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ㅇ 학생은 2009년 11월 2일 제주해안경비단 산하 사라봉초소에서 일어났던 전경대원 추락사 사고의 전말을 알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007년 10월, 사라봉초소에서 선임대원에게 얼차려를 받던 한 대원이 해안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당시의 언론 보도에서는 정확한 추락 원인이 무엇인지, 사후 조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부득이한 경우로 10일 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때에는 10일 이내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해당 기관은 그 사유 여하를 지체 없이 신청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 학생은 20일이 지난 11월 24일까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아무런 사유 설명도 없는 제주해안경비단 일방의 공개거부였다.
일방적 공개거부도 다수
네 번째는 법 조항 적용이 부처마다 다른 점이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청에 교통 관련 정보를 청구했던 ㅈ 여학생의 취재기 일부이다.
<11월 9일 처음으로 건설교통과 담당자와 통화한 뒤 이틀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청구한 정보 가운데 문서화되지 않은 것이 있어 일부만 받기로 했다. 문제는 수수료였다. 청구 목적이 교육 등 공익 목적이면 수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담당자는 공익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관장의 직인이 찍힌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수님의 서명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수료가 200원이니 웬만하면 그냥 내면 어떻겠냐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수수료 감면 신청의 목적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공개청구 제도의 완전한 체험에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통화 후 교수님께 증명서에 서명해 주실 것을 허락받았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건 담당자는 기관장인 총장의 직인만이 유효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뭔가 느껴졌다. 이것이 관료제의 모순이고 규칙의 굴레인가. 겪고, 극복해 보라는 교수님의 격려에 힘입어 단돈 200원을 위해 총장님의 직인을 받으려는 나의 노력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골치 아프고 고단했지만 구청 담당자의 어처구니없는 당당함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서 전화가 와 구청 담당자와 통화했다며 소액을 위해 수많은 절차를 밟는 비효율이 꼭 필요하냐고 물었다. 비효율은 다름 아닌 제도 자체와 공무원의 쓸데없는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다.(중략) 포기하지 않고 진행한 결과 결국 총장의 빛나는 직인이 찍힌 공문이 구청으로 발송되었다. 200원을 납부하지 않고도 원하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공무원들의 안일하기 그지없는 독불장군식 일처리에 대한 경험 때문에 씁쓸하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들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서러운 투쟁이다.>
정보공개법 시행령 17조는 교수·교사 또는 학생이 교육자료나 연구목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소속기관의 장의 확인을 받아 청구한 경우 감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구청 공무원의 기관장 문서 요구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기관에 청구했던 학생은 수업에 필요하다는 사유서만 내고 수수료 감면을 받았다. 이 조항의 적용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이 한 가지 경우에 정보공개법과 그것을 운용하는 공무원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교육목적을 밝히는 데 꼭 기관장의 증명서만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가 아니다. 교수나 교사의 확인서는 왜 소용이 없는가? 이 공무원은 처음에 교수의 확인서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수수료를 낼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그는 교수 서명, 나아가 총장 직인을 요구하면 신청을 포기할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그는 신청인에게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라고 하면서 자신의 권한만을 고집하는 모순을 보였다.
물론 정보공개법에 만족을 느낀 학생도 있었다. ㅊ 학생은 2009년 10월 보건복지부에 신종 플루 관련 내용을 청구했다. 이 학생은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직접 경험해 본 결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국민의 알고자 하는 작은 요구도 존중하는 공무원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수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실망과 고통의 경험을 했다.
정보공개법에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진 한 중견 언론인은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들이 너무 자기방어만 하고 협조를 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상당수는 정보공개법 취지를 몰이해하고 있고, 아는 사람들도 비공개 조항은 확대해석하고 공개 조항은 좁게 해석해서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에 대해선 어떤 꼬투리라도 잡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내놓지 않는다”며 “그 인식을 공무원들이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보공개법이 극복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고 험하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최초의 정보공개법은 스웨덴에서
스웨덴은 1766년 세계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다. 그때는 절대군주 시대를 지나서 ‘자유의 시대’라 불리는 의회 통치 시대였다. 이 기간 동안 스웨덴은 사전 검열제를 폐지하고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만들었다. 이 법은 국민의 알권리를 확립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임을 인식했다. 당시 스웨덴은 파산한 왕국이었다. 그럼에도 스웨덴 사람들은 관리들과 의원들이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정보공개라고 믿었다. 나라를 되살리는 길은 언론자유를 굳건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언론자유가 발달한 나라이며, 가장 부정부패가 덜한 나라일 뿐 아니라 가장 잘사는 나라의 하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론자유의 힘으로 스웨덴은 소생했다. 그 언론자유의 핵심 요소가 바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정보공개법이었다.
스웨덴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는 이 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핀란드는 1807년 다시 러시아의 식민지로 110년을 보내면서도 정보공개법을 유지했다. 1917년 독립한 이후에는 꾸준히 그 법을 개선하면서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했다.
2004년 유럽위원회(The Council of Europe)는 “오래전에 확립된 정보공개법 체계는 왜 부패 관행이 핀란드에서 아주 예외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 평가했다. 핀란드는 2010년 ‘국제투명성 기구’의 공공부문 청렴도 조사에서 세계 1위, 2010년 ‘프리덤 하우스’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세계 1위였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이룬 정치발전, 경제발전의 바탕에 정보공개법이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에 세계 80여개 국가가 정보공개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정보공개, 스웨덴에 200년 뒤져
미국은 정보공개법이 1966년에 제정됐다. 스웨덴에 200년이나 뒤진 것이다. 미국의 4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매디슨은 1822년 “국민들이 자신의 정부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지식이 주는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민주적 정보와 그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없는 민주주의 정부는 비극 또는 코미디의 서막”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그것을 보장하는 수단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매디슨의 소망이 미국에서 실현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1787년 연방헌법을 만든 지 3년 뒤에 10개의 자유와 권리를 담은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창출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10개 항의 권리장전 맨 앞에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더 할 나위 없이 강한 목소리로 새겨 넣었다. 1791년 승인된 수정헌법 1조(First Amendment)는 “의회는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수정헌법 1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언론자유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언론자유는 단순한 법의 개념이 아니라 거의 종교의 교의처럼 인식된다. 언론자유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수정헌법 1조는 미국인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지배하는 가치체계의 중심축이다. 이러한 수정헌법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구체화하는 정보공개법을 일찍이 일구어 내지 못했다. 1966년 정보공개법이 생기기까지 “비극이나 코미디의 서막” 같은 정부가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다. 수정헌법 1조를 만들었던 나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존 모스(John Moss)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국 정보공개법의 영웅이라 불린다. 그는 언론의 광범위한 보도와 기자들의 활발한 로비에 힘입어 1955년 입법 발의를 위한 첫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온갖 반대와 방해가 있었다. 1965년 모스가 법안을 발의했을 때 연방정부의 27개 모든 부처가 의회에서 반대 증언을 했다.
기자와 시사 및 언론비평가로 명성을 떨쳤던 빌 모이어스(Bill Moyers)는 백악관 공보수석을 지내면서 입법을 반대했던 인물. 그는 당시 존슨(Lindon Johnson)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정보공개법이란 아이디어 자체를 싫어했다. 기자들이 정부의 서랍장을 샅샅이 뒤지고 서류철을 열어 보는 것을 싫어했다. 기자들이 공무원들의 현실 견해를 반박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법안이 백악관에 넘어온 뒤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존슨 대통령은 법안에 대한 서명을 백악관에서 하지 않았다. 대신 휴가 중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했다. 역사에 남을 법안이었으나 그는 어떤 기념행사도 열지 않았다.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법을 만들기 위해 싸웠던 의원이나 기자, 법조인 등 어느 누구도 서명식에 부르지 않았다. 본인의 비망록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정보공개법에 대한 무시나 폄하였다. 미국의 행정부가 얼마나 정보공개법에 저항과 반대가 심했는지를 상징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미국 관리들이 쉽게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2008년 한 연방판사는 ‘국립핵보안청(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이 “정보공개를 상습으로 불법 지체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 판사는 “국립핵보안청의 정보공개 처리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미로와 같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미국인들은 한 해 2000만 건 이상의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정보공개법 운용에 돈이 너무 많이 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며, 국가안보 등에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를 대며 피하려 든다. 국민들이 별 소용도 없으면서 공무원을 괴롭히기 위해 신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사비만 일 년에 수천만 달러가 든다고 주장한다. 지방의 정부 기관은 정보 신청에 대한 보복으로 한 언론사에 비용으로 350만 달러를 요구한 적도 있다. 있는 자료를 온갖 구실을 대며 공개를 거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공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비밀로 분류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에 1년에 약 1500만 건씩을 비밀로 분류한다고 한다. 과거보다 20 ~30% 늘어난 숫자이다.
법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법을 운용하는 공무원들의 사고방식,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에서는 정보공개법과 관련, ‘grant’라는 표현을 쓴다. 시혜를 준다, 특혜를 준다는 의미이다. 언론인들은 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정부가 주인인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왜 시혜고 특혜냐는 것이다. 그런 공무원들의 정신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과 언론, 정보공개 적극 요구해야
그래서 미국의 언론법 교과서는 국민들과 기자들에게 “공개를 거부할 경우에는 재판으로 가라”고 가르친다. 국민과 언론들이 법정 소송으로 귀찮게 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는 한 정부 기관은 정보공개를 계속 꺼리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정부를 괴롭혀라, 옥죄라는 것. 그렇게 해야 정부가 정신 차린다는 것이다. 제임스 매디슨의 소망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지만 미국의 정보공개법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어찌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보공개법의 현실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미국도 그럴진대 왜 한국만 문제 삼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과는 전혀 다르게 미국은 대통령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정보공개법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정보공개법은 ‘의심에 직면한다면 공개가 그것을 압도한다’는 명백한 추론에 따라 집행되어야 한다. 미국 정부는 공무원들이 성가시다는 이유로 공개해야 할 정보를 비밀로 감추어서는 안 된다. (중략)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모든 정부 기관들은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협조의 정신 속에 신속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2009년 각 기관의 정보공개법 준수 등을 감시할 ‘정부정보서비스사무소’를 새로이 만들었다. 미국의 여러 언론 단체, 기자 단체, 언론사, 언론 재단들은 정부의 정보공개법 준수를 촉구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기구를 만들었다. 끊임없이 책을 내고 정부에 항의문을 띄운다. 예를 들어 언론사 등 50여 개 언론 관련 단체가 참여한 언론연대는 9·11사태 이후 정부의 정보 통제가 극심해지자 2002년부터 ‘햇볕 주간(Sunshine Week)’을 만들었다. 해마다 3월의 일주일을 정해 정보공개법에 관한 기사와 사설 등을 집중 게재하고 세미나를 개최하여 정부가 비밀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자들은 법의 투쟁도 함께 벌인다. 2009년에만 AP는 정보공개 거부와 관련, 40여 건의 행정심판 또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러 형태의 시민단체들도 적극 행동에 나선다. 정보공개에 저항하는 정부에 대해 대통령이 경고하며 시민과 기자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 미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공개 제도에 관심이 있는지, 정보공개법이 있는지를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 든다. 시민들이나 기자들도 별 관심이 없음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자도 정보공개 때문에 행정소송을 낸 적이 없다. 그러니 정보공개 제도는 국민들과 겉도는 사실상 전시행정이 되고 있다.
정보공개, 비용보다 혜택 크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1864년 “국민들이 사실을 알도록 하면 나라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 하원의 정보공개법 위원회는 “정부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막는 권력은 정부를 파괴하는 권력”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정부의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접근권은 책임 있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정부가 비밀리에 일을 하고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성을 감시하고 유지토록 하는 국민의 능력을 빼앗는 일이다. 정부의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으며, 그 결정이 적용된 결과가 무엇인지를 담고 있는 정보에 대한 접근은 국민들이 정부를 더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정보공개에 따른 비용보다 혜택이 크다는 것은 선진국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정보공개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핀란드는 법무부에서 감시를 하며, 국회에 정보공개법 옴부즈맨이 있다. 우리나라도 법의 보완과 함께 공무원 교육과 운용 감시 및 국민과 기관 사이의 분쟁 중재를 위한 상설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