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가 뚫리면 제일 덕 보는 쪽이 서울입니다. 조사해 보니 GTX의 3개 노선이 완공되면, 하루 38만대의 승용차가 감소한다고 해요. 한국은행 경기본부에서 도민의 신용카드 사용처를 분석해 보니 30%가 서울에서 소비하더군요. GTX가 뚫리면 서울에서 더 소비를 많이 하지 않겠습니까.”
“한나라당은 초식동물 같은 평화와 여유와 悠悠自適으로 가득합니다. 어떤 위기가 오는지, 표범이 자기 등에 올라타기 직전인데도 풀 뜯기에 바쁩니다.”
⊙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와 철도차량, 터널기술의 합작품이 GTX
⊙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정한 동지가 얼마나 되느냐?”
⊙ 세종시 발전하려면 공무원이 쓸 땅 확 줄이고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글로벌 기업 유치해야
“한나라당은 초식동물 같은 평화와 여유와 悠悠自適으로 가득합니다. 어떤 위기가 오는지, 표범이 자기 등에 올라타기 직전인데도 풀 뜯기에 바쁩니다.”
⊙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와 철도차량, 터널기술의 합작품이 GTX
⊙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정한 동지가 얼마나 되느냐?”
⊙ 세종시 발전하려면 공무원이 쓸 땅 확 줄이고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글로벌 기업 유치해야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에게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라고 부르는 GTX(Great Train eXpress)가 있다. 다른 유력 대선(大選)후보들에 비해 아직 여론조사 지표상에서 저평가되고 있지만, 그는 내실 면에서 가장 탄탄한 콘텐츠를 키워 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국토해양부가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으로 GTX 건설을 확정 고시하자, 김 지사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GTX가 착공되기까지 김 지사가 넘어야 할 고비야 많겠지만, GTX는 향후 대선 시장을 선도할 ‘선도주’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김 지사를 만났다.
―GTX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 ‘토목공사 업적 쌓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이 ‘대심도(大深度) 도로’를 얘기했고, 김 지사는 ‘대심도 철도’를 얘기했습니다.
대심도 도로는 30~60m까지 땅을 파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으로 오세훈 시장이 제안했었다. 대심도 도로는 GTX와 같이 보상비가 들어가지 않아 건설비를 많이 줄일 수 있지만, 다수의 환기설비가 필요하고 화재 등 재난 대비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가 도지사 출마할 때 여론조사를 해 보니 경기도민의 과반수가 교통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더군요. 분당 신도시, 수지, 죽전, 동탄, 오산 세교가 포도송이처럼 베드타운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곳 주민들은 눈만 뜨면 서울로 출근합니다. 그러니 도로가 주차장이 돼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하다가 처음엔 ‘2층 고속도로’ 건설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2층 도로 건설에 최소 4~5년이 걸리고, 건설 기간 중 차량은 또 얼마나 막히겠습니까. 그러다 터널학회, 교통학회, 철도학회, 토목학회 전문가들이 GTX를 고안해 냈어요. 처음에는 GTX를 ‘대심도 고속철도’라고 불렀습니다. 세계 유일의 신개념 고속철도지요. GTX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나라 터널기술이 세계 최고의 효율성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또 고속철도와 철도차량 기술은 KTX로 확인됐습니다.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와 철도차량, 터널기술의 합작품이 GTX입니다.”
―GTX를 제안하고 보름 뒤에 오 시장이 대심도 도로 건설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 전문가들 이야기는, 대심도 도로에 부정적이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가솔린을 가득 실은 차량이 땅속 깊이 지나잖아요. 과연 사고발생이나 위기 시, 지하도로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이 납득을 못하더라고요.”
―대심도 도로는 GTX에 밀려 좀 흐지부지돼 버린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 그게(대심도 도로가) 어렵다는 것 아닙니까. 차들이 땅속 도로를 엄청난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데 도로 길이가 짧으면 모를까 길면 어렵지요.”
하지만 GTX는 경기도에서 출발, 서울을 관통하는 급행 철도다. 오 시장과의 협조,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이 어떻게 공조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GTX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서울시
―GTX가 성공하려면 서울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국토해양부 주관으로 서울·인천·경기가 공동으로 최적 대안을 마련키 위한 TF 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어요. 또 수도권 3개 시도지사가 GTX 3개 노선 등 광역 인프라 구축을 공동 추진키로 작년 4월 12일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TF팀은 지난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6차례 만난 것이 전부다. 물론 작년 4월 12일 서울·경기·인천 시도지사가 만나 GTX 3개 노선 등 광역 인프라를 공동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서울시는 GTX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어요. 대화가 잘 이뤄지고 있나요.
“서울과 경기도의 버스노선조차 조정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서울은 경기도 버스가 서울로 진입하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해요. ‘너도 나도 매연 내뿜는 자가용 몰고 서울 가면 좋겠냐’고요. 사실 GTX가 뚫리면 제일 덕 보는 쪽이 서울입니다. 조사해 보니 GTX의 3개 노선이 완공되면, 하루 38만대의 승용차가 감소한다고 해요. 한국은행 경기본부에서 도민들의 신용카드 사용처를 분석해 보니 30%가 서울에서 소비하더군요. 어디서 쓰느냐. 병원, 호텔, 문화예술 공연 보는 데 돈을 씁니다. GTX가 뚫리면 서울에서 더 소비를 많이 하지 않겠습니까.”
―두 유력 대선후보끼리 차후에라도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겠지요?
“(GTX는) 국가가 알아서 잘 안 하겠습니까. 수평적인 협력은 서울과 경기도가 역대 어느 시장, 도지사보다 제일 좋은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과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GTX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수도권 주민들의 반응은 어떻다고 보나요.
“GTX가 지나는 서울지역 국회의원들이 아주 적극적입니다. GTX가 지나는 시청 방면과 용산, 영등포, 심지어 강남구와 은평구 지역에서도 다들 강하게 요구하고 있죠. GTX가 본격화되면 될수록 압박이 더 세지 않을까요.”
GTX 착공 둘러싼 ‘커다란’ 간격
―GTX의 착공시기는 언제로 예상합니까.
민주당이 다수인 경기도의회는 GTX 착공까지 빨라야 5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예비 타당성조사에 1년, 기본계획 수립 1년, 기본설계 1년6개월, 설시설계에 1년6개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지사는 내년 착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도와 도의회 간 견해차가 너무 크다.
“보통 철도 하나 놓는 데 20년 걸린다고 해요. 2007년 말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GTX 이야기를 했는데, 지난 4월 3일 국토부가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으로 확정 고시할 때까지 4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내년 착공은, 지금 진도라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이명박 대통령께 듣기 싫은 소리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제는 대통령께서도 녹색교통의 핵심을 철도로 방향을 잡았으니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원래대로 하면 작년 말 확정 고시가 됐는데, 석 달가량 늦어졌어요. 그게 세종시 때문입니다. 수도권 편중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봐 눈치 보느라 늦췄던 겁니다.
향후 기본설계, 실시설계가 남았는데 이미 민자업체에서 열심히 설계작업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전공학자와 실무자들이 같이 모여 GTX안을 만들었기에 더 이상의 녹색교통의 솔루션은 없다고 봅니다.”
김문수 지사는 GTX 건설을 성사시키기 위해 2007년 말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한다.
“직접 도면을 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어요. 이분도 금방 보면 아시거든요. 그런데 좋겠다고 하면서도 예산걱정을 하세요. 제가 ‘돈이 많이 안 든다’고 했습니다. 국비 1조8000억원이면 되거든요. 나머지는 민자에서 60%를 대고, 여기다 지자체 개발기금에서 쓰면 됩니다. 최소한의 국비로 최대의 업적을 올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권 초기 촛불시위에다 운하사업이 좌절되면서, 소위 저쪽(좌파) 사람들의 ‘삽질’ 주장에 노이로제가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삽질 잘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시더군요. 제가 그랬어요. ‘삽질이 뭐가 나쁘냐’고요. 지금은 페이스를 잡았으니 잘하실 겁니다.”
―3개 노선에 인접한 파주, 양주, 김포, 검단지역에서 노선 연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낮다는 지적도 있어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요?
일단 경기도는 도가 제안한 노선을 추진하되 역 신설, 노선 변경, 노선 연장 요구에 대해서는 국토부, 민자사업자와 협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 지사는 “연장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GTX A노선은 일산 킨텍스~화성 동탄 구간인데, 파주시가 연장을 요구하고 있어요. 고양에는 장항동 일원 ‘고양관광문화단지’가 있고, 파주에는 ‘문정신도시’가 있습니다. 수요가 충분하지요. B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청량리까지인데, 청량리에서 구리를 거쳐 남양주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도 있습니다. 연장노선에 대한 타당성조사를 하려고 경기도의회에다 용역비 5억원을 신청했는데 두 차례나 부결시켜 버렸습니다. 답이 없지요.”
소위 ‘빨대 효과(straw effect)’라는 게 있다. 고속철과 같은 고속 교통수단이 도입돼 규모가 작은 도시의 기능이 규모가 큰 도시로 흡수되는 현상을 말한다. GTX 사업으로 수도권 인구과밀이 심화해 탈(脫)지방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나온다.
―‘수도권 균형발전’이 급합니까, 아니면 ‘지방균형발전’이 급합니까.
“KTX가 개통될 때,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어떻게 됐나요. KTX 수도권 집중? 기우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울사람들이 주거는 좀 더 경기도로 분산되고 소비는 서울로 집중될 것으로 우려합니다.”
노무현의 이광재·안희정과 이명박의 親李
김문수 지사는 이날 오전 충남도청을 찾아 도청 공무원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충남지사는 안희정(安熙正)씨다. 이날 김 지사의 특강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적(敵)과의 동침’이라고 썼다. 김 지사는 충청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학비즈니스 벨트 분산 문제에 언급하면서 “(분산을 하면)정부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말해 충청권 민심 얻기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오늘 안희정 지사를 만난 것으로 압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참모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저와 안 지사는 여러 가지 인연도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으니까요. 저는 노 대통령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자주 만나곤 하던 사이였는데, 이광재(李光宰) 전 지사, 안희정 지사가 보좌관으로 있었지요. 기본적으로 옛날에는 코드가 같았던 사이였어요. 이후 저는 생각이 달라져 멀어졌지만, 운동을 같이 하던 사람이니 비교적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안 지사는 저보다 13년 후배지요.”
―현재 한나라당은 친이(親李)라는 계파가 있지만, 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려는 이는 몇 안되는 것 같아요.
“노무현 대통령과 안희정·이광재 지사는 운동권 동지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과거 국회의원회관으로 노 대통령을 찾아가 노동관계를 이야기하면, 노 대통령이 ‘광재야, 이리 와 봐라. 같이 들어 보자’ 그랬거든요. 마치 친구처럼, 운동권이란 게 가진 것이 없으니 권위도 없고, 서로 동업자식 인간관계로 맺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이 사주고, 나머지는 그 밑의 고용인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평적 관계가 좀 약하지요. 이 대통령에게 진정한 동지가 얼마나 되느냐? 그런 면에서 전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 주위에 생각이 같은 분들이야 많겠지만 동지나 동료적인 관계에선 아무래도 약하겠지요.”
―요즘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어떤가요.
“여의도 정치권을 보세요. 콩가루 집안 아닙니까. 저쪽에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적인 관계가 있거든요. 사실, 정치인은 이념의 공유 집단이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어떤 전략과 목표, 방향에 어떻게 매진할지 힘을 모아야 합니다. DJ가 망해도 동교동계는 남아 있잖아요. YS가 (권좌에서) 물러나도 상도동계가 모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은 동류의식이 약합니다.”
유시민, 생각 바꾸면 많은 힘 갖게 될 것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인, 그리고 같이 선거를 치렀던 유시민(柳時敏) 국민참여당 대표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유 대표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면?
“유시민 대표는 글 잘 쓰고, 말 잘하고, 생각이 아주 참신합니다.”
―유 대표의 책을 사본 적도 있나요.
“항소이유서든지 여러 가지 글을 읽었지요. 옛날에 썼던 책도 몇 권 읽었는데 워낙 안 맞으니까…. 지난번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쓴 책을 읽었는데 하나도 맞지가 않아요. 별로 귀 기울여 읽을 것은 못 되지만, 다만 풀어 가는 방식이 현란하고 기발하죠. 그런 점에서 젊은이가 혹하기 딱 좋죠. 그게 현실에 부합하나, 그대로 되느냐 하는 면에서는 아니죠. 그게 유시민 대표의 한계라고 봐야죠. 모든 이론 중에서도 좌파적인 이론이 높은 이상(理想)과 현란한 수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맞느냐고요. 아니거든요.
유 대표는 신뢰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죠. 생각을 바꾸고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도 요즘에 FTA나 무상복지 등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물정을 제대로 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것은 좋은 것이지요. 생각을 바꾸면 많은 힘을 가지게 될 겁니다.”
―살다 보면, 생각은 바뀌기 마련이죠?
“그게 잘 안 바뀝니다. 생각 바꾸는 것은 습관 바꾸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바꾸었는데, 사고체계를 바꾸니 처음에는 너무나 허전하고, 살아온 것이 다 부정된 것 같고, 굉장한 ‘연옥(煉獄)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념체계가 있거든요. 국가와 민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어떻게 하고, 사회변혁의 수단은 무엇이며, 그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기의 세계관과 역사관·인생관 속에서 자기 위치가 있어요. 그게 이념체계인데, 이 체계를 바꾸긴 어렵죠. 예수 믿는 사람이 갑자기 부처님 믿는 게 이상하듯이 말이에요. 그것처럼 이념체계가 바뀔 때 사람은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김 지사는 어떻게 신념체계를 바꾸었나요.
“세계관 자체를 많이 바꾼 것이죠. 저는 급진적인 방법으로 사회의 기존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했어요. 우리 역사와 대한민국 역사 자체를, 그 정통성마저 부정했지요. 이승만 대통령도 잘못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잘못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맞거든요. 당시 저는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어요. 독재와 착취로 신음하던 민중이 항쟁으로 정권을 넘어뜨린다고 봤지요. 그런데 안 넘어지더군요. 오히려 잘만 살더라고요. 그 사람(유시민)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를 TK라고 고향 사람들이 알까요?”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투쟁을 어떻게 봅니까. 보수층에게 확실히 어필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밥 주는 것을 좋아하고, 또 주고 싶어하고, 아픈 아이들 치료해 주고 싶어요. 다만 돈을 어디에 우선해서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무상급식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저소득층의 무상급식은 굉장히 중요하죠. 저도 어릴 때 밥 굶어 봐서 그 아픔을 잘 압니다. 무엇이 최우선 과제냐. 아이들의 보육과 노인복지, 의료지원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석비율은 3분의 1이 안 됩니다. 야당에서 압도적 다수로 밀어붙이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야당 의원들에게 저는 계속 설득했어요. ‘돈이 없다. 봐라.’ 실제 없거든요. 그래서 무상급식비는 교육청과 시·군·구에서 부담하고 우리는 친환경 급식비를 맡았습니다. 저는 적절하게 잘했다고 봅니다. 사실 경기도는 재정능력이 약합니다. 다만 할 수 있는 최대 범위에서 하려 합니다. 연간 400억원으로 축산농가도 돕고, 친환경 농산물도 살리고, 경기도 농업과 축산을 업그레이드시키면 급식 질도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나름의 괜찮은 해법을 의회민주주의에서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 과학비즈니스 벨트 등 국책사업을 두고 정부 여당이 사분오열되는 모습입니다. 법이 정한 타당성조사 결과로 인해 공약 이행을 못한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 타당하지 않은 선거공약을 내놓은 것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한 것 아닙니까.
“공약은 지켜야지요. 지켜야 하는데, 못 지키는 경우도 많아요. 최대한 지키려고 하는데, 공약을 지켜야 하는 선출직의 가치,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가치, 이게 충돌할 때가 많다고 봅니다. 그럴 때 무얼 우위에 둘 것이냐, 그런 면에서 국익이 위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에게 맡겨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통령이 그 결정을 받아들인 것도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경북 지역 언론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불발 5적(敵)’으로 정두언(鄭斗彦), 곽승준(郭承俊), 이재오(李在五), 유시민과 함께 김문수 지사를 꼽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두언 의원을 빼고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이다.
―TK 사람들은 김 지사를 ‘서울의 TK’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동류의식이 약한 것 같습니다.
김 지사는 경북 영천 출신이다. 영천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경북중·고를 졸업했다. 영천에는 그의 성씨 집성촌이 아직 있고, 대구 수성구에는 작은아버지가 살고 있다고 한다.
“글쎄 뭐, 대구·경북 사람들이 저를 ‘서울의 TK’인 줄 알까요? 모를 것 같아요. 그냥 경기도의 지사라고 생각하겠지요.”
―고향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봅니까.
“사실 대구·경북은 포항, 구미를 제외하면 대개가 못삽니다. 대구도 먹을 게 없어요. 대학 몇 개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이 낙후돼 있습니다. 경북 북부지역은 강원도와 비슷합니다. 완전히 시골이지요. 과거 대구·경북이 권력지향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좀 더 산업과 문화적인 면에서 내실있는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가능할까, 절망감도 들어
한국은 지방자치나 분권이라는 말을 많이 해 왔지만 실제로는 중앙집권이 강해서 지방은 중앙의 시혜만 쳐다보고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기 위해 로비에만 매달려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자율적 지역발전의 노력이 너무 약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를 슬림화하고 지방분권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주장을 저도 강하게 하고 있어요. 지방자치제는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앙집중화된 나라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공화국입니다. 청와대를 보면 별의별 것 다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권한이 중앙에 다 쏠려 있어요. 권한이 있는 곳에 기회와 돈이 모입니다. 그 점에서 제가 절망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가능할까’ 하고 말이죠. 이렇게까지 전제적인 통치가 이뤄지는데. …크게 보면, 미국 일본 중국 어느 나라도 이렇게 중앙에 권한이 집중된 나라는 없습니다.”
―수도권 출신 국토균형발전론자들은 지방문제에 대해 ‘모든 지역을 골고루 육성하는 게 아니라 성장잠재력이 높은 거점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방을 살펴보면 대개가 비슷해요. 과학비즈니스 벨트만 하더라도 대구와 광주, 충청도가 제각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 벨트의 해법을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 과학자들에게 입지선정을 맡긴 것은 잘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중이온가속기, 기초과학연구원이 꼭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중이온가속기와 돈 버는 ‘비즈니스’는 논리적으로 모순관계 아닙니까.
제가 볼 때, 우리 사회에 정치인의 공약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공약하는 사람도, 공약을 검증하는 사람도 모르고, 표 찍는 우리도 모르니까, 자기 동네에 뭘 해 준다니까 좋은 것이죠. 그게 우리 정치의 수준이라고 봐야지요. 하지만 점점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선진국이 몇 백 년 걸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60년밖에 안 했으니….”
―행복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정책이 모두 대표적인 수도권 분산정책입니다. 지방의 자립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행됐는데 지금은 흐지부지된 것 같아요.
“흐지부지도 아니죠.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저런 정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하는데. 정리가 안됐지요. 촛불시위 때문에 예봉이 꺾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아주 치열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하는데 예봉이 꺾여 실기(失機)를 많이 했죠. 아직 역사적 과제가 말끔히 정리가 안된 채 만성질환으로 유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역사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안타까운 일입니다.”
충청과 세종시가 사는 법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劉承旼) 의원이 ‘지역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만 본다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쪽에 더 가깝다’고 말했는데요.
“노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구호로서 지방을 균형발전시키겠다는 것과 실제로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같지가 않습니다. 과거 정부주도형 관치(官治)시절과 비교해 민간경제 영역이 워낙 커졌잖아요. 관공서 옮겨 지방이 발전한다? 관공서 영향 아래 있는 공공기관을 이전하면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전제였어요. 현실적인 지역발전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없었다고 상당히… 좀…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빈약한 상태에서 나온 발상 아닌가요? 오늘날 충남이 발전하는 것도 삼성이 있는 아산 탕정, 현대차 공장이 있는 아산, 기업들이 운집한 천안, 당진의 현대제철, 대산의 화학단지가 있어서 견인했기 때문 아닙니까.
제가 충남에 들렀다가 세종시를 지나왔는데 허허벌판에 아파트 몇 채를 짓고 있더군요. 아무리 정부청사를 잘 지어도 행복도시에서 세금을 내겠어요? 다 면세인데. 그렇다고, 공무원 밥 먹어 봐야 백반 정식이나 먹지. 뭐 할 거예요? 도리가 없어요.”
―세종시의 미래를 점쳐 본다면.
“순조롭게 관공서가 지방에 간들, 그게 지방에 무슨 발전을 가져다주겠습니까. 과천에 정부부처가 많을 때는 10여 개나 됐습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지만 저녁은 서울 사당동에 가서 먹어요. 과천에 앉아 매상 올려 주는 공무원이 몇이나 되겠어요? 아무 볼일 없는 거지요. 물론 과천에 정부청사가 있으면 기분이야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제가 오늘 충남에 가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관공서가 와서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제대로 된 기업이나 유치하라’고요. 공무원이 쓸 땅 확 줄이고, 나머지는 기업에 공짜로 주는 파격 조건을 제시해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글로벌 기업들 다 데려와야 지역이 발전합니다. 또 평준화도 없애고, 개개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교를 세워 ‘충남에 오면 과외받을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듣게 하라고 했어요. 공무원 이끌고 지역을 발전시킨 사례가 전 세계 한 곳이라도 있으면 대 보세요. 안되는 것을 가지고 거기에 현혹돼 선거 때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론통합, 남북소통, 당론통합 아쉬움 많아
―한나라당 얘기를 해볼까요? 김무성(金武星)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에 큰 위기가 엄습해 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강재섭(姜在涉) 전 대표는 당을 향해 ‘오수(午睡)를 즐기며 눈이 반쯤 감겨 있는 동물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한나라당은 초식동물 같아요. 초식동물은 앞만 보고 풀만 뜯습니다. 그런데 육식동물은 바위 위에 올라가 가만히 사냥감을 찾지요. 먹이가 오면 딱, 몸을 낮춰 은신하면서 자기 쪽으로 오면 더 숨고, 멀리 가면 살살 다가가 순식간에 낚아챕니다. 한나라당은 초식동물 같은 평화와 여유와 유유자적으로 가득합니다. 어떤 위기가 오는지, 표범이 자기 등에 올라타기 직전인데도 풀 뜯기에 바쁩니다.”
―당내 갈등해소는 물론 국론통합, 남북소통도 안되고 있어요.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자 시절 만나 ‘목표를 크게 가지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국론통합, 남북통일’이라고 말씀드렸어요. 현재 대통령께서는 대(對) 4강외교, 특히 대미(對美)·대일(對日) 관계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북(對北)과 대중(對中) 외교와 국론통합, 그 이전에 친박(親朴)과의 당론통합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가운영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끼리 하는 것도 아니지요.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까지도 같이 가야 합니다. 끝내 우리 편이 되지 않더라도 같이는 가야지요. 그런 점에서 당론통일, 국론통합, 남북소통, 이런 부분에서 아쉬움 많이 있어요.”
―청와대는 여전히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에 미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킨다는 발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대화를 해야 하는지, 남북대화의 필요성과 방법을 두고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 저자들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만큼 간단한 인간들이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국방·안보·외교 부문은 대통령이 잘하시지만 통일 부문은 신중하게 잘 가져가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대북관계의 한 축인 통일부, 국정원에서 성과가 안 나오고 있어요.”
김 지사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러나 아직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밤이 깊었다. 그는 갑자기 한나라당에 대해 속내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녹음기 버튼을 다시 눌렀다.
“집구석 쪽박이 다 깨지고 있어요. 도둑질도 칼 들이미는 놈 따로 있고, 망보는 놈 따로 있어요. 손발이 맞아야 도둑질도 합니다. 하물며 나라를 이끄는 데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내일 부잣집에 가서 무얼 털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놈은 ‘널어 놓은 빨래나 가져가지’ 하고, 어느 놈은 ‘금송아지를 가져가야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지요. 한나라당은 대오각성해서 심기일전, 전열 정비해서 치열한 내면적인 통일부터 해 나가야 합니다. 국민에게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북돋아 주는 게 정당이란 조직입니다. 곶감 빼먹을 것 어디 없나, 눈치 보다가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튀어 버리고, 그러고선 다른 곳에 가서 정당 대표를 안 하나…. 그런데 그게 잘못됐다고 욕하는 사람도 없어요. 대한민국 가치도 모르고, 무얼 중심으로 삼아 살아야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치열함도, 목표의식도 없고, 손발 맞출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잘살게 하겠다는 겁니까. 우리나라가 언제 지방에 과학 벨트가 있어서 잘살았나요? 대한민국이 잘살게 된 것은 맨주먹으로 굶주린 배 움켜쥐고 ‘잘살아 보세’ 하는 정신 때문입니다. 기술력이 있어서, 광물자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맨주먹으로 뜻을 세워 이렇게 된 것이지요.
국회의원 중에서도 잘난 사람 참 많아요. 사실 자기가 뭘 하려고 나서면 안 뭉칩니다. 그러나 자기가 포기하면 뭉쳐집니다. 꼭 ‘내가 해야 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조직에 해로운 존재지요. 남을 밀어 주고 희생해야 합니다. 전부 찬스가 있으면 대가리 디밀고, 카메라 찍히고, 신문에 한 줄 나려고 합니다. 이러면 개판이 되는 것이지요. 맑은 정신이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귀신같이 솎아내야 합니다.”⊙
지난 4월 3일 국토해양부가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으로 GTX 건설을 확정 고시하자, 김 지사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GTX가 착공되기까지 김 지사가 넘어야 할 고비야 많겠지만, GTX는 향후 대선 시장을 선도할 ‘선도주’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김 지사를 만났다.
―GTX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 ‘토목공사 업적 쌓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이 ‘대심도(大深度) 도로’를 얘기했고, 김 지사는 ‘대심도 철도’를 얘기했습니다.
대심도 도로는 30~60m까지 땅을 파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으로 오세훈 시장이 제안했었다. 대심도 도로는 GTX와 같이 보상비가 들어가지 않아 건설비를 많이 줄일 수 있지만, 다수의 환기설비가 필요하고 화재 등 재난 대비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가 도지사 출마할 때 여론조사를 해 보니 경기도민의 과반수가 교통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더군요. 분당 신도시, 수지, 죽전, 동탄, 오산 세교가 포도송이처럼 베드타운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곳 주민들은 눈만 뜨면 서울로 출근합니다. 그러니 도로가 주차장이 돼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하다가 처음엔 ‘2층 고속도로’ 건설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2층 도로 건설에 최소 4~5년이 걸리고, 건설 기간 중 차량은 또 얼마나 막히겠습니까. 그러다 터널학회, 교통학회, 철도학회, 토목학회 전문가들이 GTX를 고안해 냈어요. 처음에는 GTX를 ‘대심도 고속철도’라고 불렀습니다. 세계 유일의 신개념 고속철도지요. GTX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나라 터널기술이 세계 최고의 효율성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또 고속철도와 철도차량 기술은 KTX로 확인됐습니다.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와 철도차량, 터널기술의 합작품이 GTX입니다.”
―GTX를 제안하고 보름 뒤에 오 시장이 대심도 도로 건설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 전문가들 이야기는, 대심도 도로에 부정적이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가솔린을 가득 실은 차량이 땅속 깊이 지나잖아요. 과연 사고발생이나 위기 시, 지하도로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이 납득을 못하더라고요.”
―대심도 도로는 GTX에 밀려 좀 흐지부지돼 버린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 그게(대심도 도로가) 어렵다는 것 아닙니까. 차들이 땅속 도로를 엄청난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데 도로 길이가 짧으면 모를까 길면 어렵지요.”
하지만 GTX는 경기도에서 출발, 서울을 관통하는 급행 철도다. 오 시장과의 협조,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이 어떻게 공조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GTX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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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4월 11일 충남도청 대강당에서 ‘자치와 분권으로 통일 강대국 만들자’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특강 후 김 지사가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물론입니다. 국토해양부 주관으로 서울·인천·경기가 공동으로 최적 대안을 마련키 위한 TF 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어요. 또 수도권 3개 시도지사가 GTX 3개 노선 등 광역 인프라 구축을 공동 추진키로 작년 4월 12일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TF팀은 지난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6차례 만난 것이 전부다. 물론 작년 4월 12일 서울·경기·인천 시도지사가 만나 GTX 3개 노선 등 광역 인프라를 공동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서울시는 GTX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어요. 대화가 잘 이뤄지고 있나요.
“서울과 경기도의 버스노선조차 조정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서울은 경기도 버스가 서울로 진입하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해요. ‘너도 나도 매연 내뿜는 자가용 몰고 서울 가면 좋겠냐’고요. 사실 GTX가 뚫리면 제일 덕 보는 쪽이 서울입니다. 조사해 보니 GTX의 3개 노선이 완공되면, 하루 38만대의 승용차가 감소한다고 해요. 한국은행 경기본부에서 도민들의 신용카드 사용처를 분석해 보니 30%가 서울에서 소비하더군요. 어디서 쓰느냐. 병원, 호텔, 문화예술 공연 보는 데 돈을 씁니다. GTX가 뚫리면 서울에서 더 소비를 많이 하지 않겠습니까.”
―두 유력 대선후보끼리 차후에라도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겠지요?
“(GTX는) 국가가 알아서 잘 안 하겠습니까. 수평적인 협력은 서울과 경기도가 역대 어느 시장, 도지사보다 제일 좋은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과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GTX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수도권 주민들의 반응은 어떻다고 보나요.
“GTX가 지나는 서울지역 국회의원들이 아주 적극적입니다. GTX가 지나는 시청 방면과 용산, 영등포, 심지어 강남구와 은평구 지역에서도 다들 강하게 요구하고 있죠. GTX가 본격화되면 될수록 압박이 더 세지 않을까요.”
GTX 착공 둘러싼 ‘커다란’ 간격
―GTX의 착공시기는 언제로 예상합니까.
민주당이 다수인 경기도의회는 GTX 착공까지 빨라야 5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예비 타당성조사에 1년, 기본계획 수립 1년, 기본설계 1년6개월, 설시설계에 1년6개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지사는 내년 착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도와 도의회 간 견해차가 너무 크다.
“보통 철도 하나 놓는 데 20년 걸린다고 해요. 2007년 말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GTX 이야기를 했는데, 지난 4월 3일 국토부가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으로 확정 고시할 때까지 4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내년 착공은, 지금 진도라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이명박 대통령께 듣기 싫은 소리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제는 대통령께서도 녹색교통의 핵심을 철도로 방향을 잡았으니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원래대로 하면 작년 말 확정 고시가 됐는데, 석 달가량 늦어졌어요. 그게 세종시 때문입니다. 수도권 편중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봐 눈치 보느라 늦췄던 겁니다.
향후 기본설계, 실시설계가 남았는데 이미 민자업체에서 열심히 설계작업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전공학자와 실무자들이 같이 모여 GTX안을 만들었기에 더 이상의 녹색교통의 솔루션은 없다고 봅니다.”
김문수 지사는 GTX 건설을 성사시키기 위해 2007년 말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한다.
“직접 도면을 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어요. 이분도 금방 보면 아시거든요. 그런데 좋겠다고 하면서도 예산걱정을 하세요. 제가 ‘돈이 많이 안 든다’고 했습니다. 국비 1조8000억원이면 되거든요. 나머지는 민자에서 60%를 대고, 여기다 지자체 개발기금에서 쓰면 됩니다. 최소한의 국비로 최대의 업적을 올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권 초기 촛불시위에다 운하사업이 좌절되면서, 소위 저쪽(좌파) 사람들의 ‘삽질’ 주장에 노이로제가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삽질 잘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시더군요. 제가 그랬어요. ‘삽질이 뭐가 나쁘냐’고요. 지금은 페이스를 잡았으니 잘하실 겁니다.”
―3개 노선에 인접한 파주, 양주, 김포, 검단지역에서 노선 연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낮다는 지적도 있어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요?
일단 경기도는 도가 제안한 노선을 추진하되 역 신설, 노선 변경, 노선 연장 요구에 대해서는 국토부, 민자사업자와 협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 지사는 “연장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GTX A노선은 일산 킨텍스~화성 동탄 구간인데, 파주시가 연장을 요구하고 있어요. 고양에는 장항동 일원 ‘고양관광문화단지’가 있고, 파주에는 ‘문정신도시’가 있습니다. 수요가 충분하지요. B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청량리까지인데, 청량리에서 구리를 거쳐 남양주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도 있습니다. 연장노선에 대한 타당성조사를 하려고 경기도의회에다 용역비 5억원을 신청했는데 두 차례나 부결시켜 버렸습니다. 답이 없지요.”
소위 ‘빨대 효과(straw effect)’라는 게 있다. 고속철과 같은 고속 교통수단이 도입돼 규모가 작은 도시의 기능이 규모가 큰 도시로 흡수되는 현상을 말한다. GTX 사업으로 수도권 인구과밀이 심화해 탈(脫)지방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나온다.
―‘수도권 균형발전’이 급합니까, 아니면 ‘지방균형발전’이 급합니까.
“KTX가 개통될 때,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어떻게 됐나요. KTX 수도권 집중? 기우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울사람들이 주거는 좀 더 경기도로 분산되고 소비는 서울로 집중될 것으로 우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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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경기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부터)이 지난 2010년 11월 2일 수도권광역경제발전위원회 회의에서 GTX와 경인급행철도 등 사업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
노무현의 이광재·안희정과 이명박의 親李
김문수 지사는 이날 오전 충남도청을 찾아 도청 공무원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충남지사는 안희정(安熙正)씨다. 이날 김 지사의 특강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적(敵)과의 동침’이라고 썼다. 김 지사는 충청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학비즈니스 벨트 분산 문제에 언급하면서 “(분산을 하면)정부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말해 충청권 민심 얻기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오늘 안희정 지사를 만난 것으로 압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참모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저와 안 지사는 여러 가지 인연도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으니까요. 저는 노 대통령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자주 만나곤 하던 사이였는데, 이광재(李光宰) 전 지사, 안희정 지사가 보좌관으로 있었지요. 기본적으로 옛날에는 코드가 같았던 사이였어요. 이후 저는 생각이 달라져 멀어졌지만, 운동을 같이 하던 사람이니 비교적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안 지사는 저보다 13년 후배지요.”
―현재 한나라당은 친이(親李)라는 계파가 있지만, 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려는 이는 몇 안되는 것 같아요.
“노무현 대통령과 안희정·이광재 지사는 운동권 동지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과거 국회의원회관으로 노 대통령을 찾아가 노동관계를 이야기하면, 노 대통령이 ‘광재야, 이리 와 봐라. 같이 들어 보자’ 그랬거든요. 마치 친구처럼, 운동권이란 게 가진 것이 없으니 권위도 없고, 서로 동업자식 인간관계로 맺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이 사주고, 나머지는 그 밑의 고용인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평적 관계가 좀 약하지요. 이 대통령에게 진정한 동지가 얼마나 되느냐? 그런 면에서 전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 주위에 생각이 같은 분들이야 많겠지만 동지나 동료적인 관계에선 아무래도 약하겠지요.”
―요즘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어떤가요.
“여의도 정치권을 보세요. 콩가루 집안 아닙니까. 저쪽에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적인 관계가 있거든요. 사실, 정치인은 이념의 공유 집단이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어떤 전략과 목표, 방향에 어떻게 매진할지 힘을 모아야 합니다. DJ가 망해도 동교동계는 남아 있잖아요. YS가 (권좌에서) 물러나도 상도동계가 모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은 동류의식이 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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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3월 26일 오전 수원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간담회에서 김문수 경기지사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지사는 GTX의 당위성을 이 대통령에게 여러차례 건의했다고 한다. |
유시민, 생각 바꾸면 많은 힘 갖게 될 것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인, 그리고 같이 선거를 치렀던 유시민(柳時敏) 국민참여당 대표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유 대표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면?
“유시민 대표는 글 잘 쓰고, 말 잘하고, 생각이 아주 참신합니다.”
―유 대표의 책을 사본 적도 있나요.
“항소이유서든지 여러 가지 글을 읽었지요. 옛날에 썼던 책도 몇 권 읽었는데 워낙 안 맞으니까…. 지난번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쓴 책을 읽었는데 하나도 맞지가 않아요. 별로 귀 기울여 읽을 것은 못 되지만, 다만 풀어 가는 방식이 현란하고 기발하죠. 그런 점에서 젊은이가 혹하기 딱 좋죠. 그게 현실에 부합하나, 그대로 되느냐 하는 면에서는 아니죠. 그게 유시민 대표의 한계라고 봐야죠. 모든 이론 중에서도 좌파적인 이론이 높은 이상(理想)과 현란한 수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맞느냐고요. 아니거든요.
유 대표는 신뢰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죠. 생각을 바꾸고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도 요즘에 FTA나 무상복지 등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물정을 제대로 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것은 좋은 것이지요. 생각을 바꾸면 많은 힘을 가지게 될 겁니다.”
―살다 보면, 생각은 바뀌기 마련이죠?
“그게 잘 안 바뀝니다. 생각 바꾸는 것은 습관 바꾸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바꾸었는데, 사고체계를 바꾸니 처음에는 너무나 허전하고, 살아온 것이 다 부정된 것 같고, 굉장한 ‘연옥(煉獄)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념체계가 있거든요. 국가와 민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어떻게 하고, 사회변혁의 수단은 무엇이며, 그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기의 세계관과 역사관·인생관 속에서 자기 위치가 있어요. 그게 이념체계인데, 이 체계를 바꾸긴 어렵죠. 예수 믿는 사람이 갑자기 부처님 믿는 게 이상하듯이 말이에요. 그것처럼 이념체계가 바뀔 때 사람은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김 지사는 어떻게 신념체계를 바꾸었나요.
“세계관 자체를 많이 바꾼 것이죠. 저는 급진적인 방법으로 사회의 기존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했어요. 우리 역사와 대한민국 역사 자체를, 그 정통성마저 부정했지요. 이승만 대통령도 잘못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잘못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맞거든요. 당시 저는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어요. 독재와 착취로 신음하던 민중이 항쟁으로 정권을 넘어뜨린다고 봤지요. 그런데 안 넘어지더군요. 오히려 잘만 살더라고요. 그 사람(유시민)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를 TK라고 고향 사람들이 알까요?”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투쟁을 어떻게 봅니까. 보수층에게 확실히 어필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밥 주는 것을 좋아하고, 또 주고 싶어하고, 아픈 아이들 치료해 주고 싶어요. 다만 돈을 어디에 우선해서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무상급식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저소득층의 무상급식은 굉장히 중요하죠. 저도 어릴 때 밥 굶어 봐서 그 아픔을 잘 압니다. 무엇이 최우선 과제냐. 아이들의 보육과 노인복지, 의료지원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석비율은 3분의 1이 안 됩니다. 야당에서 압도적 다수로 밀어붙이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야당 의원들에게 저는 계속 설득했어요. ‘돈이 없다. 봐라.’ 실제 없거든요. 그래서 무상급식비는 교육청과 시·군·구에서 부담하고 우리는 친환경 급식비를 맡았습니다. 저는 적절하게 잘했다고 봅니다. 사실 경기도는 재정능력이 약합니다. 다만 할 수 있는 최대 범위에서 하려 합니다. 연간 400억원으로 축산농가도 돕고, 친환경 농산물도 살리고, 경기도 농업과 축산을 업그레이드시키면 급식 질도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나름의 괜찮은 해법을 의회민주주의에서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 과학비즈니스 벨트 등 국책사업을 두고 정부 여당이 사분오열되는 모습입니다. 법이 정한 타당성조사 결과로 인해 공약 이행을 못한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 타당하지 않은 선거공약을 내놓은 것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한 것 아닙니까.
“공약은 지켜야지요. 지켜야 하는데, 못 지키는 경우도 많아요. 최대한 지키려고 하는데, 공약을 지켜야 하는 선출직의 가치,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가치, 이게 충돌할 때가 많다고 봅니다. 그럴 때 무얼 우위에 둘 것이냐, 그런 면에서 국익이 위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에게 맡겨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통령이 그 결정을 받아들인 것도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경북 지역 언론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불발 5적(敵)’으로 정두언(鄭斗彦), 곽승준(郭承俊), 이재오(李在五), 유시민과 함께 김문수 지사를 꼽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두언 의원을 빼고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이다.
―TK 사람들은 김 지사를 ‘서울의 TK’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동류의식이 약한 것 같습니다.
김 지사는 경북 영천 출신이다. 영천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경북중·고를 졸업했다. 영천에는 그의 성씨 집성촌이 아직 있고, 대구 수성구에는 작은아버지가 살고 있다고 한다.
“글쎄 뭐, 대구·경북 사람들이 저를 ‘서울의 TK’인 줄 알까요? 모를 것 같아요. 그냥 경기도의 지사라고 생각하겠지요.”
―고향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봅니까.
“사실 대구·경북은 포항, 구미를 제외하면 대개가 못삽니다. 대구도 먹을 게 없어요. 대학 몇 개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이 낙후돼 있습니다. 경북 북부지역은 강원도와 비슷합니다. 완전히 시골이지요. 과거 대구·경북이 권력지향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좀 더 산업과 문화적인 면에서 내실있는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가능할까, 절망감도 들어
한국은 지방자치나 분권이라는 말을 많이 해 왔지만 실제로는 중앙집권이 강해서 지방은 중앙의 시혜만 쳐다보고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기 위해 로비에만 매달려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자율적 지역발전의 노력이 너무 약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를 슬림화하고 지방분권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주장을 저도 강하게 하고 있어요. 지방자치제는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앙집중화된 나라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공화국입니다. 청와대를 보면 별의별 것 다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권한이 중앙에 다 쏠려 있어요. 권한이 있는 곳에 기회와 돈이 모입니다. 그 점에서 제가 절망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가능할까’ 하고 말이죠. 이렇게까지 전제적인 통치가 이뤄지는데. …크게 보면, 미국 일본 중국 어느 나라도 이렇게 중앙에 권한이 집중된 나라는 없습니다.”
―수도권 출신 국토균형발전론자들은 지방문제에 대해 ‘모든 지역을 골고루 육성하는 게 아니라 성장잠재력이 높은 거점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방을 살펴보면 대개가 비슷해요. 과학비즈니스 벨트만 하더라도 대구와 광주, 충청도가 제각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 벨트의 해법을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 과학자들에게 입지선정을 맡긴 것은 잘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중이온가속기, 기초과학연구원이 꼭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중이온가속기와 돈 버는 ‘비즈니스’는 논리적으로 모순관계 아닙니까.
제가 볼 때, 우리 사회에 정치인의 공약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공약하는 사람도, 공약을 검증하는 사람도 모르고, 표 찍는 우리도 모르니까, 자기 동네에 뭘 해 준다니까 좋은 것이죠. 그게 우리 정치의 수준이라고 봐야지요. 하지만 점점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선진국이 몇 백 년 걸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60년밖에 안 했으니….”
―행복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정책이 모두 대표적인 수도권 분산정책입니다. 지방의 자립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행됐는데 지금은 흐지부지된 것 같아요.
“흐지부지도 아니죠.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저런 정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하는데. 정리가 안됐지요. 촛불시위 때문에 예봉이 꺾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아주 치열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하는데 예봉이 꺾여 실기(失機)를 많이 했죠. 아직 역사적 과제가 말끔히 정리가 안된 채 만성질환으로 유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역사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안타까운 일입니다.”
충청과 세종시가 사는 법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劉承旼) 의원이 ‘지역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만 본다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쪽에 더 가깝다’고 말했는데요.
“노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구호로서 지방을 균형발전시키겠다는 것과 실제로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같지가 않습니다. 과거 정부주도형 관치(官治)시절과 비교해 민간경제 영역이 워낙 커졌잖아요. 관공서 옮겨 지방이 발전한다? 관공서 영향 아래 있는 공공기관을 이전하면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전제였어요. 현실적인 지역발전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없었다고 상당히… 좀…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빈약한 상태에서 나온 발상 아닌가요? 오늘날 충남이 발전하는 것도 삼성이 있는 아산 탕정, 현대차 공장이 있는 아산, 기업들이 운집한 천안, 당진의 현대제철, 대산의 화학단지가 있어서 견인했기 때문 아닙니까.
제가 충남에 들렀다가 세종시를 지나왔는데 허허벌판에 아파트 몇 채를 짓고 있더군요. 아무리 정부청사를 잘 지어도 행복도시에서 세금을 내겠어요? 다 면세인데. 그렇다고, 공무원 밥 먹어 봐야 백반 정식이나 먹지. 뭐 할 거예요? 도리가 없어요.”
―세종시의 미래를 점쳐 본다면.
“순조롭게 관공서가 지방에 간들, 그게 지방에 무슨 발전을 가져다주겠습니까. 과천에 정부부처가 많을 때는 10여 개나 됐습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지만 저녁은 서울 사당동에 가서 먹어요. 과천에 앉아 매상 올려 주는 공무원이 몇이나 되겠어요? 아무 볼일 없는 거지요. 물론 과천에 정부청사가 있으면 기분이야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제가 오늘 충남에 가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관공서가 와서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제대로 된 기업이나 유치하라’고요. 공무원이 쓸 땅 확 줄이고, 나머지는 기업에 공짜로 주는 파격 조건을 제시해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글로벌 기업들 다 데려와야 지역이 발전합니다. 또 평준화도 없애고, 개개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교를 세워 ‘충남에 오면 과외받을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듣게 하라고 했어요. 공무원 이끌고 지역을 발전시킨 사례가 전 세계 한 곳이라도 있으면 대 보세요. 안되는 것을 가지고 거기에 현혹돼 선거 때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론통합, 남북소통, 당론통합 아쉬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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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경기지사는 수도권 규제 개혁을 요구하며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김 지사가 2008년 8월 25일 제주 샤인빌럭셔리리조트에서 열린 제6회 전국자치단체장 하계세미나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한나라당은 초식동물 같아요. 초식동물은 앞만 보고 풀만 뜯습니다. 그런데 육식동물은 바위 위에 올라가 가만히 사냥감을 찾지요. 먹이가 오면 딱, 몸을 낮춰 은신하면서 자기 쪽으로 오면 더 숨고, 멀리 가면 살살 다가가 순식간에 낚아챕니다. 한나라당은 초식동물 같은 평화와 여유와 유유자적으로 가득합니다. 어떤 위기가 오는지, 표범이 자기 등에 올라타기 직전인데도 풀 뜯기에 바쁩니다.”
―당내 갈등해소는 물론 국론통합, 남북소통도 안되고 있어요.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자 시절 만나 ‘목표를 크게 가지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국론통합, 남북통일’이라고 말씀드렸어요. 현재 대통령께서는 대(對) 4강외교, 특히 대미(對美)·대일(對日) 관계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북(對北)과 대중(對中) 외교와 국론통합, 그 이전에 친박(親朴)과의 당론통합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가운영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끼리 하는 것도 아니지요.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까지도 같이 가야 합니다. 끝내 우리 편이 되지 않더라도 같이는 가야지요. 그런 점에서 당론통일, 국론통합, 남북소통, 이런 부분에서 아쉬움 많이 있어요.”
―청와대는 여전히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에 미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킨다는 발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대화를 해야 하는지, 남북대화의 필요성과 방법을 두고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북한, 저자들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만큼 간단한 인간들이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국방·안보·외교 부문은 대통령이 잘하시지만 통일 부문은 신중하게 잘 가져가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대북관계의 한 축인 통일부, 국정원에서 성과가 안 나오고 있어요.”
김 지사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러나 아직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밤이 깊었다. 그는 갑자기 한나라당에 대해 속내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녹음기 버튼을 다시 눌렀다.
“집구석 쪽박이 다 깨지고 있어요. 도둑질도 칼 들이미는 놈 따로 있고, 망보는 놈 따로 있어요. 손발이 맞아야 도둑질도 합니다. 하물며 나라를 이끄는 데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내일 부잣집에 가서 무얼 털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놈은 ‘널어 놓은 빨래나 가져가지’ 하고, 어느 놈은 ‘금송아지를 가져가야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지요. 한나라당은 대오각성해서 심기일전, 전열 정비해서 치열한 내면적인 통일부터 해 나가야 합니다. 국민에게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북돋아 주는 게 정당이란 조직입니다. 곶감 빼먹을 것 어디 없나, 눈치 보다가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튀어 버리고, 그러고선 다른 곳에 가서 정당 대표를 안 하나…. 그런데 그게 잘못됐다고 욕하는 사람도 없어요. 대한민국 가치도 모르고, 무얼 중심으로 삼아 살아야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치열함도, 목표의식도 없고, 손발 맞출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잘살게 하겠다는 겁니까. 우리나라가 언제 지방에 과학 벨트가 있어서 잘살았나요? 대한민국이 잘살게 된 것은 맨주먹으로 굶주린 배 움켜쥐고 ‘잘살아 보세’ 하는 정신 때문입니다. 기술력이 있어서, 광물자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맨주먹으로 뜻을 세워 이렇게 된 것이지요.
국회의원 중에서도 잘난 사람 참 많아요. 사실 자기가 뭘 하려고 나서면 안 뭉칩니다. 그러나 자기가 포기하면 뭉쳐집니다. 꼭 ‘내가 해야 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조직에 해로운 존재지요. 남을 밀어 주고 희생해야 합니다. 전부 찬스가 있으면 대가리 디밀고, 카메라 찍히고, 신문에 한 줄 나려고 합니다. 이러면 개판이 되는 것이지요. 맑은 정신이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귀신같이 솎아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