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재정파탄 코앞에 둔 건강보험 : 월간조선

건강보험 재정이 이대로 가면 4~5월 중에 바닥이 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강보험 월 적자가 3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건강보험은 지난해 수입 33조5605억원, 지출 34조8599억원으로 1조2994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2011년 1월에는 수입 2조8103억원, 지출 3조1045억원으로 294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월 수지는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우려됐던 적립금 고갈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1월 말 현재 건강보험의 누적적립금은 6650억원이다. 법률적으로만 보면 공단의 적립금은 18조원이어야 한다.

전국의 병원과 의원이 하루 환자를 진료한 뒤 공단에 청구하는 액수는 약 1000억원으로, 보험 급여비에 들어가는 돈의 6개월분을 비축해야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6개월은커녕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다.

누적적립금은 2010년 말 9592억원으로 이미 1조원 아래로 떨어졌고, 1월에는 6650억원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최근 4개월간 적자폭(2010년 10월 1668억원, 11월 2614억원, 12월 3865억원)을 살펴보면 월평균 2772억원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오는 4~5월 중 건강보험 재정은 완전히 바닥난다는 얘기다. 공단이 금융기관에 손 벌리고 다녀야 하고,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보공단, 연간 누적 적자 예상치 1월에 60% 까먹어

건강보험공단 측은 올 초 “올해 적자는 5000억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절반 이상을 1월에 이미 다 채웠다. 공단 측 주장대로 된들 현재 누적적립금이 6650억원에 불과해 최대한 노력한다 해도 올 상반기에는 완전히 바닥날 전망이다.

향후 누적되는 건보 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화선진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건보 적자는 2015년 5조7924억원, 2020년 17조2598억원, 2030년 49조5654억원으로 예상된다. 적립금이 바닥난 만큼 적자는 그대로 쌓이게 된다.

이대로 2050년이면 보험료율 38% 달해

2010년 건강보험이 지출한 급여비는 33조6385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12.9% 늘어났다. 급여비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은 인구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의 급증 외에도 건강보험 혜택 확대와 기간 연장이라는 제도적 이유 때문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험제도·재정연구팀 이희영 팀장은 “진료비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수요 분야에서는 건강보험 적용인구 증가와 인구구조 고령화가, 공급 분야에서는 의료기관과 병상 수·의료인 수 증가가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의 설명이다.

“수요 측면에서 진료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노인인구 증가, 소득 증가, 의료보장제도 확대에 따른 의료가격 하락 등이 있습니다. 노인의 경우 의료 이용 및 서비스 강도가 높고, 만성질환자가 많기 때문에 진료비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의료노동자들. 수익 증대 없는 보장 강화는 고갈 위기의 건보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자료를 보면 2010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급여비(지출) 33조7962억원 중 65세 이상 노인진료비는 14조583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2.2%를 차지했다. 현재 노인인구 비율은 11%로, 11%의 인구가 진료비의 1/3을 쓰고 있는 셈이다. 또 2010년 65세 미만 구성원의 진료비는 2003년 대비 79.4%로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의 경우 127.2%로 늘어 전체 증가율(102.6%)을 주도했다. 젊은이들이 진료비를 아껴도 노인인구 증가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노인 진료비의 증가 속도는 괄목할 만하다. 연도별로 노인진료비를 보면 2003년 4조3723억원, 2004년 5조1097억원, 2005년 6조556억원, 2006년 7조3931억원, 2007년 9조813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08년 10조4904억원, 2009년 12조391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14.3%에 달해 고령화 사회(노인인구 비율 14% 이상)에 해당하게 되고, 2026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의 경우 만성질환자가 많아 1인당 진료비도 젊은 세대에 비해 높다.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23만5305원으로 전체 평균 7만4339원의 3배가 넘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의료비연구센터 정영호 센터장은 “생애 의료비의 절반이 65세 이후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40세 이전에는 생애 총 진료비의 20% 정도만 지출되며, 40~65세에 약 30%, 나머지는 65세 이후에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의 건강 양쪽 모두 걱정되는 형편인 만큼 이에 대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현재 30조원대의 의료비 지출액은 2050년에는 623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사회보험실장은 “지난 10년간의 의료비 지출 추세가 지속될 경우 건강보험 지출액은 2020년 93조원, 2050년 62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추세로 추산한 2050년 의료비는 전체 GDP 대비 21.74%에 이릅니다. 이 경우 보험료율은 38.17%로 계산됩니다. 만약 제도 개선으로 건강한 고령화가 진행될 경우 2050년 257조원으로 예상됩니다.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의료혜택 늘리고 보자’는 포퓰리즘이 파탄의 원인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이희영 팀장은 인구 고령화 외에도 진료비가 높아지는 제도적인 요인으로 급여보장 확대, 급여기간 연장, 수가 인상, 기타 정책적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연구원 조사 결과 건강보험 진료비가 증가하는 원인의 62%가 수가 및 급여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라 건강보험 진료비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보 재정사태가 ‘복지 포퓰리즘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복지정책을 남발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더욱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4년 건보 재정이 흑자를 내자 노무현 정부는 바로 차상위계층 300만명 건강보험 편입, 보험적용분야 확대 등을 실시해 재정악화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건강보험 보장대상은 지금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2009년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계획’에 따라 작년과 올해 초에 걸쳐 관절질환이나 척추질환 시 MRI 검사비, 뇌·심장질환, 골다공증 보험급여 지급이 확대됐고, 희귀난치치료제의 보험인정 기준도 대폭 확대됐다. 내년부터는 75세 이상 노인 틀니와 초음파 검사 등이 보험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측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62%로 OECD 평균인 80%에 못 미치는 만큼 지속적으로 보장률을 높여나간다는 입장이다.

야당과 진보진영 역시 복지 포퓰리즘을 내세우며 건강보험 재정악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입원비 보장률을 90%까지 높인다는 ‘무상의료’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으며, 진보진영은 지난해 7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구성하고 “국민 1인당 건강보험료를 월 1만1000원만 더 내면 12조4000억원의 재원이 마련되면서 보장률을 90%까지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장성 강화는 수요자 입장에서 당장은 반가울지 몰라도 더 급속한 재정악화를 가져와 지급 불능사태를 앞당기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건강보험 혜택을 많이 보려면 돈을 많이 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개인 부담이든 정부 지원이든 재정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상급식한다고 해서 점심을 두 번 먹지는 않지만, 보장성이 강화돼 본인 부담이 적어진다면 정밀검사도 받고 물리치료도 받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불필요한 수요가 폭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보험위원장도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은 건강보험 재정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암 등으로 확대해 대형병원에 환자가 급증하고 진료비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1만1000원의 기적’ 운동에 대해서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대표는 “협회 조사결과 국민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내는 것보다 영리보험사의 의료실손보험을 드는 것이 환자 부담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주먹구구식의 계산으로 의도적으로 국민 관심을 끌기 위해 공부하지 않고 허풍을 떨어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면 2020년엔 지금보다 건보료 3배 내야

이대로 가면 국민건강보험의 의미가 없어지면서 의료서비스의 빈부격차가 극심한 미국처럼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 지지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2011년 들어 갑자기 이슈가 된 것이 아니다. 적립금이 바닥나는 사태는 지난 2001년에도 있었다. 2001년 7월 1일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직장의료보험조합이 쌓아두었던 1조원의 적립금이 날아가고, 적립금은 곧바로 바닥났다. 당시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연 8.5%로 올리고 담배 판매 등으로 건강증진기금을 거둬 메웠다. 그러나 2011년 12월에는 건강증진기금의 건강보험 지원(기금 수익의 6%)마저 중단될 예정이다.

건보 재정을 충당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국민들로부터 돈을 더 걷는 방법 외에는 없다. 만약 현재와 같은 건강보험 혜택 범위 등을 바꾸지 않는다면 직장인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가 2020년에는 지금의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사회보험연구실장은 지난 3월 3일 국회 보건의료포럼에서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 지원 규모가 현행처럼 보험료 수입의 20%(국고+건강증진기금)를 유지해도 2020년에 보험료율은 9%(현재 직장가입자 2.82%)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건강증진기금 지원이 없어지면 10%도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신 실장은 “급속한 저출산 및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등으로 건강보험재정이 빠르게 악화되고, 이럴 경우 현행 재정방식으로는 건강보험의 지속성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별도의 재원 확충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가 아직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형편이기 때문에 의료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재정확충 방안이 없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건강보험료율은 8%가 상한선이고, 국가 재정상태 역시 지원을 늘릴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지출을 통제할 방법도 별로 없습니다. 건강보험의 2020년의 상황을 전망해 보면 실로 암담한 형편입니다. 국민정서상 소득의 10% 이상을 건강보험료로 걷을 수도 없는 만큼 건강보험 자체의 존폐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공(公)보험의 재정악화로 사(私)보험이 건강보험을 장악하며 미국처럼 의료서비스의 빈부격차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률은 24%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건강보험이 아예 없는 무보험자도 5070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16.7%나 된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는 “이대로 가면 미국의 경우와 같이 국민이 공적건강보험의 혜택을 거의 볼 수 없고 의료서비스의 빈부격차만 심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현재 국내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은 21세기에 대처 불가능한 것으로, 10년 내 건강보험의 존폐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건강보험 제도는 1970년대 여건에 맞게 급성질환 중심, 낮은 보험료, 재분배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이 제도를 존속시키려면 재원조달 다각화와 합리적 수가기준 제정, 자기책임 원칙 등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건보 재정 무일푼이 코앞인데 대책은 안 내놔

문제는 건강보험의 재정이 바닥나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도 아무도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적자 구조가 바뀔 수 없고 더욱 적자폭이 커지는 일만 남았다. 게다가 보건복지부와 공단 모두 “올해 안으로 적립금 적자는 나지 않으며, 지급불능 사태도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근거는 미약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지난해 비상경영 연장선상에서 올해도 위기경영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초긴축 내핍경영으로 재정위기 극복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수십억이라면 몰라도 매월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핍으로 메우겠다는 대책은 황당하게까지 느껴진다.

공단 재정실 관계자에게 현황과 전망에 대해 문의했다.

―당장 재정이 바닥나게 생겼는데, 향후 의료비 지급은 어떻게 됩니까.

“올해부터 요율을 5.64%(2010년 5.33%)로 올린 만큼 2월부터는 수입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직장인의 월급상승만큼 보험료도 상승하기 때문에 올해 적자폭이 예상보다 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직장보험료는 계속 올라가기만 해 자영업자 위주의 지역보험과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습니까.

“공단에서 부정수급을 없애고 부과대상을 철저히 점검하는 한편 징수율을 높이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 국세청 전산화 이후 사업장 관리가 용이해져서 그 부분에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당장이 아니라도 근시일 내에 적립금이 바닥나면 이렇다 할 담보도 없는 공단 입장에선 아예 의료비 지급이 불가능한 것 아닌지요.

“건강보험 수입은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최근 1~2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실직자도 많아지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수입에 차질이 생겼는데, 올해는 상황이 많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닥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공단은 재정문제에 대해 어떤 방향을 갖고 있습니까.

“국고지원은 한정돼 있는 만큼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겠지요. 독일은 건강보험료율이 14%에 달합니다. 우리의 두 배가 넘어요. 많이 내고 혜택도 많이 받고요. 물론 가입자가 소득의 10% 이상을 부담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각적인 방법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총액계약제, 의료계 강력반발

MRI 촬영과 틀니 등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되는 등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면서 보험료 지출 규모도 커지고 있다.

공단이 지난 2월 22일 개최한 ‘건강보험 재정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토론회의 결과도 답이 안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계와 시민단체 참석자들은 건강보험 재정적자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총액계약제’를 제안했으나, 의료계는 자신들의 수익이 줄어드는 총액계약제 논의 자체가 불가하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총액계약제는 현재 의사의 의료행위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의료기관별 혹은 지역별 급여비를 정해 놓고 총액 한도 내에서 건보 재정을 지출하는 사전지불제도다. 이렇게 배정된 예산을 가지고 지역 내에서는 의사별로 행위별 수가제에 의해, 그리고 병원의 일부 진료에 대해서는 포괄수가제에 의해 배분되는 것이다.

총액계약제에 찬성하는 서울대 간호대 김진현 교수는 “그동안 건보 재정문제 해결은 수입을 늘리는 데 치중해 왔는데 이는 큰 효과가 없었고, 지출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총액제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면 가입자들은 건보료 인상이 과잉진료비로 새지 않는다는 신뢰하에 보장성 확대를 위한 건보료 인상에 협조할 수 있다”며 “총액제는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의사협회 정국면 보험부회장은 “총액계약제가 과연 진료비를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도 않는다”며 “의료서비스 질 저하가 예상되는 만큼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의료계의 입장을 대변했다.

정부와 공단, “재정파탄 없을 것” 주장만 되풀이

환자들의 상급의료기관 선호 때문에 진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종합병원의 진료대기자들.

지금 같은 재정파탄에는 건보공단 측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녹색전국연합 측은 “건강보험공단 재정 상태가 2008년 1조3662억원 흑자에서 2009년 32억 적자로 전환됐고, 2011년에는 전년대비 406배가 늘어난 1조2994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올해는 재정이 완전 고갈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정형근 이사장이 2008년 10월 취임한 이후 2년 만에 보험공단 재정을 거덜내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방만한 경영에 의료비 지출을 적절히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해 적자폭을 늘렸다는 얘기다.

녹색전국연합 관계자는 “정형근 이사장은 올해 초에도 보장성 확대정책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며 “작년 국정감사에서 건보공단 성과급 잔치와 해외출장 예산 급증을 질타당했는데도 재정 보완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지출만 늘어날 보장성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건강보험을 관리하는 곳은 건강보험공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관리를 맡고 있다 보니 정부의 개혁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건강보험공단 한 관계자는 “재정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보험료율을 높여 수입을 늘리든지 국고로 보조해야 하는데, 이는 공단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부 측 입장은 어떨까. 보건복지부는 시스템 개선을 통해 적자폭을 줄인다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최원영 보건복지부 차관은 “건강보험 재정악화 개선을 위해 CT와 MRI에 대한 보험급여 규모를 줄이는 방안과 부당청구 관리강화 및 경영효율화, 약제비 절감 등 지출절감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세 가지로 3500억원의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보험료 징수율을 제고하고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해 약 2000억원의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 차관은 “올해 적자폭을 3000억~5000억원 수준으로 축소할 수 있으며, 일부에서 우려하는 지급불능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이미 1월 한 달에만 3000억원 적자가 났음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어떤 것일까.

보험료율을 10%대로 올리거나 보장성을 대폭 축소하는 획기적인 재정 대책 없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회의적이다.

지급불능 사태 예상되는데도 누구도 나서지 않아

2001년 건강보험 재정파탄 당시에는 보험료율을 일시적으로 올리고 건강증진기금을 신설해 메우는 ‘땜질’로 지급불능 사태를 모면할 수 있었다. 2001~2002년 당시 정부는 “재정 고갈을 막지 못하면 금융권에서 단기차입을 해서라도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건강보험 통합으로 인한 일시적 적자였기 때문에 땜질처방 이후 정상적 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땜질을 한들 인구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폭증으로 적자를 메울 수 없다. 몇 개월 후 당장 건보 적립금이 바닥나면 매일 1000억원씩 지급돼야 하는 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리든지, 국고 또는 금융권에서 차입해야 할 형편이다. 그것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것조차 불가능하면 지급불능으로 공단이 파산하는 길밖에 없다.

서울대 김진현 교수는 “매년 쳇바퀴 돌 듯 보험료 인상만으로 땜질처방해서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불가피한 지출에 대해서는 국고와 보험료 등 사회적 분담을 높이고, 지출구조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총체적인 방안이 시급합니다. 국고지원과 총액계약제, 포괄수가제, 주치의제, 지역별 병상 허가제, 보험료율 인상 등등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당장 총동원해서 도입할 건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장 재정이 바닥나서 의료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의료인들이 진료를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국가 위기입니다.”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나면 병원이 진료를 해도 돈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진료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보건복지부와 공단은 차입 운운하지만 매월 수천억 원씩을 무얼 보고 대출해 주겠는가. 누가 봐도 국가적 재앙이 되고야 말 건보 재정 파탄에 대해 지금 관계자들은 “그렇게 안될 것”이라고만 하고 있지 아무도 그 재앙을 막을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 않다. 눈앞에 다가온 건보 재정 파탄, 이걸 누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 지경이 되도록 사탕발림으로 의료 혜택을 늘려온 작자들은 지금 어디서 숨죽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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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파탄 코앞에 둔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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