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틀엔젤스 필리핀 공연에 각국 정·관계 인사와 필리핀 참전용사 등 2000여 명 참석
⊙ 정부, 1차 공연 후 예상 외 효과있자 뒤늦게 예산지원
⊙ “내가 2년 간 외교관으로 일한 것보다 더 효과적인 외교다”(호주 주재 한국대사 김우상)
⊙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16개국 순회 공연 마무리
⊙ “2011년엔 의무지원국, 물자지원국 순회공연 계획 중”(박보희 추진위원장)
⊙ 정부, 1차 공연 후 예상 외 효과있자 뒤늦게 예산지원
⊙ “내가 2년 간 외교관으로 일한 것보다 더 효과적인 외교다”(호주 주재 한국대사 김우상)
⊙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16개국 순회 공연 마무리
⊙ “2011년엔 의무지원국, 물자지원국 순회공연 계획 중”(박보희 추진위원장)
- 라모스 필리핀 전 대통령과 참전용사들의 목에 기념메달을 걸어주는 리틀엔젤스 단원들.
“다힐싸요(Dahil sa, Yo).” 2010년 12월 14일 마닐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대한민국 소녀 33명이 필리핀 노래를 불렀다. 익숙한 노랫말이 흘러나오자마자 필리핀 국립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하나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따라 불렀다. 1900자리가 넘는 극장 안은 순식간에 합창으로 떠나갈 듯했다.
관객석 정중앙. 머리가 듬성듬성한, 그나마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이 군복 차림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가슴에는 훈장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노래가 계속되자 할아버지들의 자세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는 ‘노병(老兵)’이 늘었다.
60년 전. 세계지도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나라 코리아가 김일성(金日成)의 침략을 받아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했을 때 무기를 들고 싸우러 왔던 바로 그 청년들이다. 이국(異國) 땅에 묻고 온 전우(戰友)들이 생각나서였을까. 아니면 60년이나 지난 뒤에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며 찾아온 코리아 사람들이 그래도 고맙다는 감동 때문일까. 감회(感懷)에 젖은 할아버지들의 눈에선 끝내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라모스 전 대통령, “잊지 않고 찾아와 고마워”
한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예술단 리틀엔젤스예술단은 2010년 12월 14일과 15일 2회에 걸쳐 필리핀 마닐라의 국립문화센터에서 6·25전쟁 60주년 기념공연을 가졌다. 필리핀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UN군 한국전참전60주년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한 리틀엔젤스의 참전 16개국 순회공연의 마지막 공연지다.
이날의 공연에서 리틀엔젤스는 주로 화관무, 부채춤, 꼭두각시, 북춤 등 한국 전통무용을 선보였다. 특히 부채춤과 북춤을 본 현지인들은 리틀엔젤스의 화려하고 이색적인 무대에 공연 중간에도 끊임없이 박수를 보냈다. 공연 막바지에는 아리랑과 같은 한국민요 외에도 필리핀의 민요와 대중가요를 합창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공연을 지켜본 알베르토 로물로 필리핀 외무장관은 “더 많은 필리핀인이 봐야만 하는 훌륭한 공연이다”며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문화교류를 통한 한국과 필리핀 양국의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날 공연에는 이혜민(李惠民) 필리핀 대사, 로물로 필리핀 외무장관, 라모스 필리핀 전(前) 대통령과 각국 대사들이 참석했다. 특히 라모스 전 대통령은 6·25 참전용사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이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서 고맙고, 이런 양국 우애의 역사 위에 통합, 자유, 그리고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짐 카르다노, “지금의 한국 보면 뿌듯”
공연단은 공연 이틀 전인 12일 필리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키노 공항 역시 6·25전쟁과 인연이 있는 장소다. 6·25전쟁에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니노이 아키노(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전 대통령의 남편이자 노이노이 아키노 현 대통령 부친)의 이름을 딴 공항이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기자와 동행한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공연단이 머무는 호텔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사령부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했다. 6·25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인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튿날인 13일에는 필리핀 국립묘지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생존 참전용사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헌화식에 왔던 참전용사 중 한명인 짐 카르다노(83) 씨는 1950년 9월 20일 첫 번째 부대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 처음 간 날 우릴 위해 한국에서 환영식을 해줬습니다. 성대한 환영식을 보고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아직은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 나가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장에서 그가 본 한국은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였다. 대부분의 건물은 무너져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그는 파병 초기 신갈전투와 율동전투 등에 참전해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특히 그는 격렬했던 율동전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전투는 낮밤이 없었다. 포위당한 그의 부대는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는 적군을 맞아 밤을 새웠다. 필리핀군 1명당 공산군 60명을 상대해야 할 정도로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그는 공산군뿐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도 맞서야 했다. 이 전투에서 그는 절친했던 얍 대위가 전우를 구출하고 나오는 길에 적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것을 봐야 했다. 그는 아직도 그때의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후에도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뒤 1951년 10월 30일 필리핀으로 귀환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2010년에도 6·25전쟁 60주년 기념 정부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제가 전쟁 때 본 한국과 확연히 달라진 한국의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제가 그 발전 역사에 한몫을 했다는 느낌이죠. 지금의 한국을 보면서 너무 기쁩니다. 나와 전우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라모스 전 대통령, 이리고지 전투 공로로 부대표창 받기도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오랜 식민지 끝에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독립국가 ‘필리핀 공화국’이 출범했고 이후 공산 반란군에 시달리면서 국내 정세가 불안했다. 하지만 유엔의 군사원조 요청이 있자 필리핀은 미국, 영국 다음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가장 먼저다.
필리핀군은 1950년 9월 20일 부산에 도착했다.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따른 대반격 작전으로 병력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필리핀 대대는 10일간의 적응훈련 후 후방지역에서 공산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였다. 이어 미(美)3사단에 배속돼 개성~평양 간 주(主)보급로 경계작전을 수행하다 중공군 개입으로 경북 김천으로 철수했다.
1·4후퇴 뒤 전열을 정비한 유엔군의 반격작전이 1951년 3월부터 전개되자 필리핀 대대는 서부전선을 중심으로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戰功)을 세웠다. 특히 전곡 진상리 전투(1951년 4월11일), 연천 율동전투(1951년 4월22일), 적성 설마리 글로스터대대 구출작전(1951년 4월24일), 철원 이리(Eerie)고지 전투(1952년 5월18일), 양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1953년 7월15일)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율동전투에서 필리핀대대는 야간에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받았다. 인접부대가 돌파되고 대대의 우측중대와 중앙중대의 일부 진지가 돌파되어 중공군이 침투했다. 그러나 필리핀 부대는 끝까지 진지를 고수해 인접부대의 철수를 성공적으로 엄호했다. 필리핀군은 이 전투에서 전사 12명, 부상 38명, 실종 6명의 피해를 입었고 중공군의 전사상자(戰死傷者)는 500여 명이었다.
이리고지 전초전에서는 중공군 117사단이 파상 공격을 퍼부었다. 필리핀군은 사단지원 화력의 엄호하에 백병전으로 맞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라모스(Ramos) 전 대통령은 당시 수색중대 2소대장으로 이 전투의 전공을 인정받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았다.
휴전을 앞두고 피아 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쟁탈전에서 필리핀군은 백석산과 크리스마스 고지를 방어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초고지를 적에게 잃자 역습을 해 고지를 회복한 적도 있다. 이후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이 전선을 휴전이 조인될 때까지 고수했다. 이 결과, 크리스마스 고지는 지금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다.
필리핀군은 휴전 후 1955년 5월에 철수했다. 1950년부터 5년간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이라는 이름으로 총 7420명이 참전해 112명 전사, 229명 부상, 16명 실종, 포로 41명 등 398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2010년 6월부터 한국전 참전 16개국 순회… 정부가 초반에 소극지원
기념사업회는 UN군 참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참전국을 방문하는 리틀엔젤스 공연을 기획했다. 한국 예술을 공연함으로써 감사의 뜻을 전하고 한국의 민족문화와 전후(戰後) 부흥한 한국의 모습을 알리기 위한 취지다.
‘은혜를 잊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로 2010년 6월 미국에서 시작한 공연은 2010년 6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 1차 미주지역 순회공연 (미국·캐나다·콜롬비아), 9월 7일부터 10월 14일까지 2차 유럽·아프리카 9개국 순회공연(영국·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그리스·터키·에티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 11월 7일부터 11월 26일까지 3차 아시아·태평양지역(태국·뉴질랜드·호주)에서의 공연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필리핀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의 6개 도시(노퍽·워싱턴·뉴욕·시카고·애틀랜타·로스앤젤레스)와 오타와(캐나다), 보고타(콜롬비아)에서의 1차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엔 사정이 달라졌다. 현지에서 기대 이상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는 것이 보고되면서 보훈처를 비롯한 정부 부처에서 적극 지원으로 돌아섰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지원 없이 시작하면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면서 “1차 공연 후 효과가 크다는 보고가 올라가자 그때부터 보훈처에서 예산 지원뿐 아니라 현지 대사관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의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순회공연은 문선명(文鮮明) 통일교 총재가 10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2010년 안에 끝내기로 했던 것도 당초에는 예산 문제 때문이었는데, 문 총재의 기부로 순조롭게 풀렸다고 한다.
‘조국의 배신자’가 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기자와 함께 필리핀에 간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리틀엔젤스 단원들은 2차 순회공연 중 유독 에티오피아 공연 얘기를 많이 했다.
“선진국보다는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전력이 약해서 조명을 약하게 쓰는 바람에 불이 꺼지려고 해서 가슴을 졸여야 했고, 워낙 고산지대라 리틀엔젤스 단원들이 산소 호흡기를 쓰면서 공연을 했죠.”
하지만 열악한 환경보다 에티오피아를 기억에 남게 한 더 큰 이유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처지였다. 에티오피아군은 6·25전쟁에 참전해 130여 회의 전투에서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이 용맹하게 싸운 참전용사들이다. 하지만 조국에 돌아간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조국의 체제가 바뀌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1974년 소령 멩기스투(Mengistu)의 쿠데타로 인해 셀라시에(Selassie) 황제의 통치가 끝나고 공산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이들은 공산통치가 되자 하루아침에 ‘조국의 배신자’ 신세가 됐다. 공산당 통치하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했고 심지어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목숨과 바꾼 훈장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훈장 한 개, 단돈 1달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원 비르(One Birr)’, 또는 ‘원 비르의 용사’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 기념사업회 관계자의 말이다.
“그들은 자유를 지키려고 피를 흘렸음에도 그게 멍에가 돼 평생을 박해받으며 산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국내 초청 행사에도 오기 힘듭니다.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순회공연 도중 리틀엔젤스는 민간외교사절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터키, 그리스, 에티오피아, 태국, 벨기에 등에선 각국 정상을 예방했다. 필리핀에서도 공연 당일인 14일 아침 아키노(Aquino) 필리핀 대통령과 만났다.
박보희(朴普熙)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은 “리틀엔젤스가 공연을 하러 가면 그 나라 주요 인사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각국의 한국 외교관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고 말했다. 필리핀 공연 후 이혜민 대사는 “양국 간 관계발전을 위해서는 문화교류가 많이 필요한데 이 공연은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까지 필리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리틀엔젤스의 호주공연 당시 김우상 호주 주재 한국대사는 “정말 대단하다. 내가 2년 동안 여기서 한 일의 몇 배에 달하는 훌륭한 외교활동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보희 추진위원장 인터뷰
“이제야 죽을 준비를 마쳤다”
이번 공연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해 온 박보희 추진위원장은 2010년 2월 순회공연을 준비할 무렵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을 ‘미뤄 둔 숙제를 마쳐야 하는 조바심 나는 해’라고 했다. 필리핀 공연 후 숙제를 끝낸 그를 만나보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후련하다”고 했다.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는데요.
“제가 19살 때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6·25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어서인지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번에 리틀엔젤스를 데리고 16개국 순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에 더없는 행복이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다. 여든이 된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16개국을 무사히 다니고, 마침내 마지막 나라에 왔습니다. 정말 후련합니다. ‘이제야 죽을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격스럽습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전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회상했다.
“포천에 있을 때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본부에서는 각자 알아서 수원까지 후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죠. 몇몇 전우는 서울에서 적군에게 붙잡혀 사살됐지만 저는 다행히 광나루에서 통나무를 붙잡고 강을 건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남쪽으로 내려와 오산에서 처음으로 미군을 봤습니다. 큰 코와 큰 키로 한국을 구하기 위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미군의 모습을 보니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아, 내가 이제 살았구나. 한국에도 아직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이런 한국전 참전군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는 이번 행사가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국내 초청공연이 아니라 해외 순회공연을 추진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그동안 참전 군인을 한국에 불러 위로공연을 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때도 반응은 좋았죠. 하지만 우리가 은혜를 갚는다고 하면서 몇 명 불러온다면 그 나라의 수많은 참전군인과 가족 가운데 몇이나 오겠습니까. 실질적인 감사표시로는 빈약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전체 국민과 정부에 감사하는 것이 한두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상이 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문 한 통 보내고 조의금이나 보내고 전화해서 애석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과 영전에 가서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이치나 같습니다.”
―이번 행사에 도움을 준 분들이 많다면서요.
“문선명 총재가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도 저같이 참전 경험이 있어 선뜻 많은 돈을 기부했고 그 덕분에 이번 순회공연이 진행됐습니다. 또 대한항공, 롯데, 보훈처 등 많은 곳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2013년까지 6·25관련 행사 계속할 것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저 역시 에티오피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픈 과거 때문인지 리틀엔젤스의 공연에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고 그들을 보면서 우리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 기억만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번 행사를 계획하고 추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입니까.
“역시 아이들 관리가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들이고 집에서는 모두 귀한 딸들입니다. 그들을 제가 맡아서 ‘잘 데리고 가서 명예롭게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오겠습니다’ 한 것인데 탈이 나면 안 되죠. 천우신조인지 지금까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공편 예약을 할 때 항공사의 최근 사고기록까지 체크하고 고를 정도로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필리핀 방문 첫날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리틀엔젤스 아이들에게 에어컨을 세게 켜지 말라고 당부했다. 추운 곳에서 갑자기 더운 곳에 왔는데 강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감기에 걸릴 수 있다며 조금만 참았다가 조금씩 온도를 낮추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번 순회공연의 성과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제 스스로 점수를 주기는 좀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120% 만족합니다. 이 이상 잘할 수 없었죠. 어딜 가든지 공연은 만원이었습니다. 파리의 ‘팔레 데 콩크레’라는 극장의 3700석도 꽉 메웠죠. 이 정도인데 120점을 안 줄 수 있겠습니까.”
이어 그는 리틀엔젤스가 이 성과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성인단체라면 해외를 다녀도 우리가 주었던 감동을 자아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리틀엔젤스는 어린이 예술단이기 때문에 가능했죠. 공산국가들까지도 어린이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는 성인 같은 복잡한 생각이 없고 순수합니다. 다만 은혜를 갚는 대한민국을 보여주러 왔다는 것만 느끼는 것이죠. 이들은 어리면서도 완벽한 공연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아니라 전문가 수준입니다. 더불어 공연의 구성도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고 충분한 의미전달을 위해 신경 썼기 때문에 이 같은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6·25전쟁 참전국과 참전용사와 관련한 추모사업 계획은 있습니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전후(戰後) 의무(醫務)시설에 대한 지원을 해준 독일까지 포함한다면 6·25전쟁에 6개의 의무지원국이 있습니다. 물자지원국도 20개가 넘죠. 아직도 감사할 나라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2011년에는 이들 국가를 방문하는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6·25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일을 더 높이 평가하고 기념합니다. 미국 정부 훈령으로 그날이 국가기념일이 됐죠. 전쟁이 터진 날이 아닌 물리치고 평화를 회복한 날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2013년까지 계속해서 이와 관계된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모두 끝내서 후련하다고 했는데 후련할 새도 없겠네요.
“한 번 후련해서 되겠습니까. 계속 후련해야죠.”
60년 전(前) 한국에서 UN군은 19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6·25전쟁에 어린 나이로 참전해 살아남은 용사들도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80대 노인이 됐다. 그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참전용사 중 현재 생존한 사람은 30~40% 정도라고 기념사업회는 추정하고 있다. 비록 이들의 육신은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자유를 지키려 한 그들의 정신만은 지구상에, 대한민국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관객석 정중앙. 머리가 듬성듬성한, 그나마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이 군복 차림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가슴에는 훈장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노래가 계속되자 할아버지들의 자세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는 ‘노병(老兵)’이 늘었다.
60년 전. 세계지도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나라 코리아가 김일성(金日成)의 침략을 받아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했을 때 무기를 들고 싸우러 왔던 바로 그 청년들이다. 이국(異國) 땅에 묻고 온 전우(戰友)들이 생각나서였을까. 아니면 60년이나 지난 뒤에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며 찾아온 코리아 사람들이 그래도 고맙다는 감동 때문일까. 감회(感懷)에 젖은 할아버지들의 눈에선 끝내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라모스 전 대통령, “잊지 않고 찾아와 고마워”
한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예술단 리틀엔젤스예술단은 2010년 12월 14일과 15일 2회에 걸쳐 필리핀 마닐라의 국립문화센터에서 6·25전쟁 60주년 기념공연을 가졌다. 필리핀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UN군 한국전참전60주년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한 리틀엔젤스의 참전 16개국 순회공연의 마지막 공연지다.
이날의 공연에서 리틀엔젤스는 주로 화관무, 부채춤, 꼭두각시, 북춤 등 한국 전통무용을 선보였다. 특히 부채춤과 북춤을 본 현지인들은 리틀엔젤스의 화려하고 이색적인 무대에 공연 중간에도 끊임없이 박수를 보냈다. 공연 막바지에는 아리랑과 같은 한국민요 외에도 필리핀의 민요와 대중가요를 합창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공연을 지켜본 알베르토 로물로 필리핀 외무장관은 “더 많은 필리핀인이 봐야만 하는 훌륭한 공연이다”며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문화교류를 통한 한국과 필리핀 양국의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날 공연에는 이혜민(李惠民) 필리핀 대사, 로물로 필리핀 외무장관, 라모스 필리핀 전(前) 대통령과 각국 대사들이 참석했다. 특히 라모스 전 대통령은 6·25 참전용사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이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서 고맙고, 이런 양국 우애의 역사 위에 통합, 자유, 그리고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짐 카르다노, “지금의 한국 보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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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국립묘지에 있는 6·25전쟁 기념탑. |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기자와 동행한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공연단이 머무는 호텔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사령부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했다. 6·25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인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튿날인 13일에는 필리핀 국립묘지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생존 참전용사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헌화식에 왔던 참전용사 중 한명인 짐 카르다노(83) 씨는 1950년 9월 20일 첫 번째 부대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 처음 간 날 우릴 위해 한국에서 환영식을 해줬습니다. 성대한 환영식을 보고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아직은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 나가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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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ㆍ25전쟁에 참전한 필리핀 군인들이 참호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
그 전투는 낮밤이 없었다. 포위당한 그의 부대는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는 적군을 맞아 밤을 새웠다. 필리핀군 1명당 공산군 60명을 상대해야 할 정도로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그는 공산군뿐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도 맞서야 했다. 이 전투에서 그는 절친했던 얍 대위가 전우를 구출하고 나오는 길에 적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것을 봐야 했다. 그는 아직도 그때의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후에도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뒤 1951년 10월 30일 필리핀으로 귀환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2010년에도 6·25전쟁 60주년 기념 정부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제가 전쟁 때 본 한국과 확연히 달라진 한국의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제가 그 발전 역사에 한몫을 했다는 느낌이죠. 지금의 한국을 보면서 너무 기쁩니다. 나와 전우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라모스 전 대통령, 이리고지 전투 공로로 부대표창 받기도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오랜 식민지 끝에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독립국가 ‘필리핀 공화국’이 출범했고 이후 공산 반란군에 시달리면서 국내 정세가 불안했다. 하지만 유엔의 군사원조 요청이 있자 필리핀은 미국, 영국 다음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가장 먼저다.
필리핀군은 1950년 9월 20일 부산에 도착했다.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따른 대반격 작전으로 병력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필리핀 대대는 10일간의 적응훈련 후 후방지역에서 공산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였다. 이어 미(美)3사단에 배속돼 개성~평양 간 주(主)보급로 경계작전을 수행하다 중공군 개입으로 경북 김천으로 철수했다.
1·4후퇴 뒤 전열을 정비한 유엔군의 반격작전이 1951년 3월부터 전개되자 필리핀 대대는 서부전선을 중심으로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戰功)을 세웠다. 특히 전곡 진상리 전투(1951년 4월11일), 연천 율동전투(1951년 4월22일), 적성 설마리 글로스터대대 구출작전(1951년 4월24일), 철원 이리(Eerie)고지 전투(1952년 5월18일), 양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1953년 7월15일)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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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엔젤스 6·25 60주년 기념 필리핀 공연 중 ‘장난감병정’ 무대. |
이리고지 전초전에서는 중공군 117사단이 파상 공격을 퍼부었다. 필리핀군은 사단지원 화력의 엄호하에 백병전으로 맞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라모스(Ramos) 전 대통령은 당시 수색중대 2소대장으로 이 전투의 전공을 인정받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았다.
휴전을 앞두고 피아 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쟁탈전에서 필리핀군은 백석산과 크리스마스 고지를 방어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초고지를 적에게 잃자 역습을 해 고지를 회복한 적도 있다. 이후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이 전선을 휴전이 조인될 때까지 고수했다. 이 결과, 크리스마스 고지는 지금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다.
필리핀군은 휴전 후 1955년 5월에 철수했다. 1950년부터 5년간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이라는 이름으로 총 7420명이 참전해 112명 전사, 229명 부상, 16명 실종, 포로 41명 등 398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2010년 6월부터 한국전 참전 16개국 순회… 정부가 초반에 소극지원
기념사업회는 UN군 참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참전국을 방문하는 리틀엔젤스 공연을 기획했다. 한국 예술을 공연함으로써 감사의 뜻을 전하고 한국의 민족문화와 전후(戰後) 부흥한 한국의 모습을 알리기 위한 취지다.
‘은혜를 잊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로 2010년 6월 미국에서 시작한 공연은 2010년 6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 1차 미주지역 순회공연 (미국·캐나다·콜롬비아), 9월 7일부터 10월 14일까지 2차 유럽·아프리카 9개국 순회공연(영국·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그리스·터키·에티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 11월 7일부터 11월 26일까지 3차 아시아·태평양지역(태국·뉴질랜드·호주)에서의 공연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필리핀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의 6개 도시(노퍽·워싱턴·뉴욕·시카고·애틀랜타·로스앤젤레스)와 오타와(캐나다), 보고타(콜롬비아)에서의 1차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엔 사정이 달라졌다. 현지에서 기대 이상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는 것이 보고되면서 보훈처를 비롯한 정부 부처에서 적극 지원으로 돌아섰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지원 없이 시작하면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면서 “1차 공연 후 효과가 크다는 보고가 올라가자 그때부터 보훈처에서 예산 지원뿐 아니라 현지 대사관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의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순회공연은 문선명(文鮮明) 통일교 총재가 10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2010년 안에 끝내기로 했던 것도 당초에는 예산 문제 때문이었는데, 문 총재의 기부로 순조롭게 풀렸다고 한다.
‘조국의 배신자’가 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기자와 함께 필리핀에 간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리틀엔젤스 단원들은 2차 순회공연 중 유독 에티오피아 공연 얘기를 많이 했다.
“선진국보다는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전력이 약해서 조명을 약하게 쓰는 바람에 불이 꺼지려고 해서 가슴을 졸여야 했고, 워낙 고산지대라 리틀엔젤스 단원들이 산소 호흡기를 쓰면서 공연을 했죠.”
하지만 열악한 환경보다 에티오피아를 기억에 남게 한 더 큰 이유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처지였다. 에티오피아군은 6·25전쟁에 참전해 130여 회의 전투에서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이 용맹하게 싸운 참전용사들이다. 하지만 조국에 돌아간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조국의 체제가 바뀌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1974년 소령 멩기스투(Mengistu)의 쿠데타로 인해 셀라시에(Selassie) 황제의 통치가 끝나고 공산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이들은 공산통치가 되자 하루아침에 ‘조국의 배신자’ 신세가 됐다. 공산당 통치하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했고 심지어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목숨과 바꾼 훈장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훈장 한 개, 단돈 1달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원 비르(One Birr)’, 또는 ‘원 비르의 용사’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 기념사업회 관계자의 말이다.
“그들은 자유를 지키려고 피를 흘렸음에도 그게 멍에가 돼 평생을 박해받으며 산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국내 초청 행사에도 오기 힘듭니다.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순회공연 도중 리틀엔젤스는 민간외교사절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터키, 그리스, 에티오피아, 태국, 벨기에 등에선 각국 정상을 예방했다. 필리핀에서도 공연 당일인 14일 아침 아키노(Aquino) 필리핀 대통령과 만났다.
박보희(朴普熙)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은 “리틀엔젤스가 공연을 하러 가면 그 나라 주요 인사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각국의 한국 외교관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고 말했다. 필리핀 공연 후 이혜민 대사는 “양국 간 관계발전을 위해서는 문화교류가 많이 필요한데 이 공연은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까지 필리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리틀엔젤스의 호주공연 당시 김우상 호주 주재 한국대사는 “정말 대단하다. 내가 2년 동안 여기서 한 일의 몇 배에 달하는 훌륭한 외교활동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 ▣ 리틀엔젤스예술단? 한국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문화재단이 1962년 창단했다. 9~15세의 아이들로 구성, 각 33명 안팎의 두 개 반으로 운영 중이다. 1965년 미국 게티스버그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위한 특별공연을 시작으로 50여 개국 6000여 회의 국내외 무대공연과 500여 회의 TV 출연을 했다. 미국 백악관 초청공연, 영국 어전공연 등을 했고 1998년 5월에는 평양에서 공연을 가졌다. |
박보희 추진위원장 인터뷰
“이제야 죽을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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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엔젤스 6·25 60주년 기념 필리핀 공연 중 ‘농악’을 마친 리틀엔젤스와 박보희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는데요.
“제가 19살 때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6·25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어서인지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번에 리틀엔젤스를 데리고 16개국 순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에 더없는 행복이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다. 여든이 된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16개국을 무사히 다니고, 마침내 마지막 나라에 왔습니다. 정말 후련합니다. ‘이제야 죽을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격스럽습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전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회상했다.
“포천에 있을 때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본부에서는 각자 알아서 수원까지 후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죠. 몇몇 전우는 서울에서 적군에게 붙잡혀 사살됐지만 저는 다행히 광나루에서 통나무를 붙잡고 강을 건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남쪽으로 내려와 오산에서 처음으로 미군을 봤습니다. 큰 코와 큰 키로 한국을 구하기 위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미군의 모습을 보니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아, 내가 이제 살았구나. 한국에도 아직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이런 한국전 참전군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는 이번 행사가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국내 초청공연이 아니라 해외 순회공연을 추진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그동안 참전 군인을 한국에 불러 위로공연을 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때도 반응은 좋았죠. 하지만 우리가 은혜를 갚는다고 하면서 몇 명 불러온다면 그 나라의 수많은 참전군인과 가족 가운데 몇이나 오겠습니까. 실질적인 감사표시로는 빈약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전체 국민과 정부에 감사하는 것이 한두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상이 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문 한 통 보내고 조의금이나 보내고 전화해서 애석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과 영전에 가서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이치나 같습니다.”
―이번 행사에 도움을 준 분들이 많다면서요.
“문선명 총재가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도 저같이 참전 경험이 있어 선뜻 많은 돈을 기부했고 그 덕분에 이번 순회공연이 진행됐습니다. 또 대한항공, 롯데, 보훈처 등 많은 곳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2013년까지 6·25관련 행사 계속할 것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저 역시 에티오피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픈 과거 때문인지 리틀엔젤스의 공연에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고 그들을 보면서 우리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 기억만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번 행사를 계획하고 추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입니까.
“역시 아이들 관리가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들이고 집에서는 모두 귀한 딸들입니다. 그들을 제가 맡아서 ‘잘 데리고 가서 명예롭게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오겠습니다’ 한 것인데 탈이 나면 안 되죠. 천우신조인지 지금까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공편 예약을 할 때 항공사의 최근 사고기록까지 체크하고 고를 정도로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필리핀 방문 첫날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리틀엔젤스 아이들에게 에어컨을 세게 켜지 말라고 당부했다. 추운 곳에서 갑자기 더운 곳에 왔는데 강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감기에 걸릴 수 있다며 조금만 참았다가 조금씩 온도를 낮추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번 순회공연의 성과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제 스스로 점수를 주기는 좀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120% 만족합니다. 이 이상 잘할 수 없었죠. 어딜 가든지 공연은 만원이었습니다. 파리의 ‘팔레 데 콩크레’라는 극장의 3700석도 꽉 메웠죠. 이 정도인데 120점을 안 줄 수 있겠습니까.”
이어 그는 리틀엔젤스가 이 성과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성인단체라면 해외를 다녀도 우리가 주었던 감동을 자아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리틀엔젤스는 어린이 예술단이기 때문에 가능했죠. 공산국가들까지도 어린이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는 성인 같은 복잡한 생각이 없고 순수합니다. 다만 은혜를 갚는 대한민국을 보여주러 왔다는 것만 느끼는 것이죠. 이들은 어리면서도 완벽한 공연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아니라 전문가 수준입니다. 더불어 공연의 구성도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고 충분한 의미전달을 위해 신경 썼기 때문에 이 같은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6·25전쟁 참전국과 참전용사와 관련한 추모사업 계획은 있습니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전후(戰後) 의무(醫務)시설에 대한 지원을 해준 독일까지 포함한다면 6·25전쟁에 6개의 의무지원국이 있습니다. 물자지원국도 20개가 넘죠. 아직도 감사할 나라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2011년에는 이들 국가를 방문하는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6·25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일을 더 높이 평가하고 기념합니다. 미국 정부 훈령으로 그날이 국가기념일이 됐죠. 전쟁이 터진 날이 아닌 물리치고 평화를 회복한 날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2013년까지 계속해서 이와 관계된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모두 끝내서 후련하다고 했는데 후련할 새도 없겠네요.
“한 번 후련해서 되겠습니까. 계속 후련해야죠.”
60년 전(前) 한국에서 UN군은 19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6·25전쟁에 어린 나이로 참전해 살아남은 용사들도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80대 노인이 됐다. 그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참전용사 중 현재 생존한 사람은 30~40% 정도라고 기념사업회는 추정하고 있다. 비록 이들의 육신은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자유를 지키려 한 그들의 정신만은 지구상에, 대한민국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서동석
(201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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