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 둘레길 44㎞ 중 사유지 70%, 土地主는 “동의한 적 없다”
⊙ 국립공원 부근 주민 “개인 땅 세금 매기면서 ‘국립공원’으로 묶어놓기만 하면 되나?”
⊙ 국가가 남은 사유지 買受하는 데 약 24조원, 예산은 올해 35억원
⊙ 국립공원 부근 주민 “개인 땅 세금 매기면서 ‘국립공원’으로 묶어놓기만 하면 되나?”
⊙ 국가가 남은 사유지 買受하는 데 약 24조원, 예산은 올해 35억원
- 국립공원으로 묶이지 않은 북한산 자락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계곡 소리,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청명(淸明)하다. 빽빽하게 자란 소나무, 도토리나무, 잣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햇볕은 기분 좋을 만큼 스며든다. 지천(地天)에 새하얀 산딸나무가 있는 환상적인 곳도 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힐스테이트 아파트 단지에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경치를 감상하는 주민들이 보인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 국립공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우이동~정릉~은평뉴타운~북한산성~경기 고양시 효자동~이동을 잇는 44㎞ 둘레길을 만들어 8월 31일 개방하면서 등산객이 늘었다. 동네 주민들은 간편한 복장으로 나와 산보(散步)를 즐긴다. 곳곳에 전망대도 설치됐다. 한눈에 들어오는 은평구, 서대문구 일대 풍경에 등산객 대부분은 탄성을 지르는데, 매일 이곳에 온다는 홍정우(洪廷雨ㆍ33)씨만 착잡한 표정으로 서 있다.
“3개 국립공원의 둘레길을 만드는 데 총 770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등산객들은 좋아합디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북한산 둘레길 설치 구간 70%가 보상 한 푼 못 받은 ‘사유지’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土地主 허락 없이 둘레길 설치
둘레길이 된 북한산 국립공원 산 43-105번지, 이 일대 2만여 평은 홍정우씨의 아버지인 홍성목(洪聖穆)씨의 땅이다. 1983년 북한산의 79.78㎢(2413만 평)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묶인 곳이다. 이후 국유지로 매입(매수ㆍ買受)하기는커녕 ‘자연공원법’의 규제로 풀 한 포기 마음대로 뽑지 못하는 상태로 30년이 흘렀다. 보상은 없었다.
그 와중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사유지 주인에게는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둘레길 작업에 착수한 뒤,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홍보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공단에서 방치하는 바람에 건축자재 폐기물과 쓰레기로 더럽혀진 땅도 있었다. 동네 노인들이 산의 초입(初入)에서 무단으로 밭을 경작한 지는 3~4년째다. 5월에는 청소년들이 본드를 흡입하고 술을 마시다가 산불이 나서 소방차가 출동한 적도 있다. 현장에는 아직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나무들이 뒤엉켜 있었다.
“사유지 주인 허락 없이 공단에서 매표소를 지었다가,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자 다시 허물기도 했습니다. 그 잔재 때문에 땅이 쓰레기장이 됐었습니다. 청소년들 비행(非行) 장소로 사용되더니, 뚝딱 둘레길을 만들었습니다. 언론에 계속 소개되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이제는 우리 땅이란 말도 못하고….”
홍정우씨의 한탄에, 주변 등산객들이 “여기가 사유지였느냐”며 다가왔다. 이 동네에서 40년을 살았다는 불광동 주민 박모(64)씨는 “터줏대감인 날 포함해 주변 사람들 아무도 이곳이 사유지라는 걸 모른다”며 홍씨에게 “속 많이 상했겠다. 둘레길 조성은 동의한 거냐”고 물었다.
대우아파트에서 35년을 살았다는 김모(59)씨 역시 “이곳이 사유지라니, 처음 듣는 소리”라며 “개인 땅이 어떻게 국립공원이 될 수 있느냐”며 궁금해했다.
9월 고시된 구역조정, 사유지 1.8% 해제
환경부는 1967년 지리산 국립공원을 시작으로 20개 국립공원을 지정했다. 현재 국립공원 면적은 6568㎢(남한 면적의 6%)에 이른다.
국립공원들이 지정된 지 20~30년이 흘렀는데, 아직 국가가 매수하지 않고 개인 소유로 남아 있는 사유지는 1157㎢(3억4999만 평)로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17%다. 지난 9월 2일, 10년마다 찾아오는 구역조정으로 21.216㎢(641만 평ㆍ1.8%)의 사유지가 해제됐기 때문에 그나마 줄어든 수치다. 해제된 땅은 주민들이 집을 짓고 생활하던 집단마을지구, 자연마을지구와 이미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집단시설지구다. 그동안 이 지역은 기(旣)개발지역으로 ‘공원’이란 이름과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많았다. 임야(林野)인 자연보존지구(자연생태계가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높은 곳)와 자연환경지구(자연보존지구의 완충공간으로, 보전할 필요가 있는 곳)인 사유지는 해제되지 않았다. 이번 구역조정 때 해제되지 않은 임야는 이제 2020년 구역조정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공단은 주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해제해 주민 수 90%가 혜택을 보게 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해제되지 않은 지역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다. 2009년 6월 발간된 경남발전연구원 마상열(馬相烈) 박사의 <국립공원 구역조정과 추진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보존지구에 10.7%(8759명), 자연환경지구에 5.3%(4327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자연공원법 23조(공원구역에서 공원사업 외에 건축, 채취, 개간이나 형질변경, 나무 베기, 물건을 쌓아놓거나 묶어놓는 일 등을 하려는 자는 공원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의 행위규제 때문에 허가 없이는 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허가도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행위규제로 고향 잃은 농민들
할아버지로부터 오대산국립공원 토지를 물려받은 김양겸(金讓謙ㆍ49)씨는 오대산에 3000여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김씨는 태어나서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5년 후까지 국립공원 내에서 살아왔다. 그는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이 동네에 100가구가 넘게 살았는데, 공원으로 묶인 뒤에는 30가구로 줄었다”며 “농사짓던 땅까지 공원으로 묶여 농부들이 다 이사갔다”고 했다. 그는 “농작물 위로 그늘을 만드는 버드나무도 못 베게 하고 창고도 못 만들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의 말이다.
“국립공원 내에는 시설이 필요없는 재래식 농사밖에 지을 수 없는데, 그게 잘 안되면 망하는 겁니다. 농사짓다 빚을 지면 보통 땅을 잘라 팔아 다시 일어서는데, 공원 땅은 사람들이 사질 않아요. 경매에 넘어가고, 농지은행에 맡기고, 빈털터리가 돼서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모씨 가족도 행위규제 때문에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노씨는 현재 소백산 국립공원 내 3만여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노씨의 할아버지가 1940년대에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노씨에게 물려준 땅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1980년대 초까지는 가족이 다 함께 이 땅에서 밭을 일구며 살았다.
노씨는 “부모님이 어느 날 허물어진 집을 보수하려는데 ‘이 땅은 국립공원 땅’이라며 못하게 막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며 “그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알았다”고 했다. 노씨 가족은 살 집이 없어져 억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밭은 계속 일구고 있다.
노씨는 “1940년대부터 밭으로 쓰던 땅인데도 비닐하우스, 관리 건축물을 필요로 하는 농사는 지을 수 없다”며 “20~30년간 재래식 농작물을 키우기만 했는데 낸 세금만 매년 수십만원씩 1000만원이나 된다”고 했다.
실제로 안원태(安元泰) 한국경제사회연구원장의 <자연공원관리체계 개선 방안>에 따르면, 1987년 당시 주민 거주 지역, 경작지가 모두 ‘농어촌지구’라는 이름으로 국립공원이 됐다. 이 지구가 공원의 30~40% 정도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30㎡ 이상의 증·개(增改)축, 농지전용(農地轉用)을 막으면서 농민들이 쫓겨나듯 빠져나갔다. 후에는 농경지가 자연환경지구로 바뀌고, 주민거주지역은 공원면적의 1%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3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북한산성 근처 산성마을도 자연환경지구로 지정돼 50여 가구가 억지로 고향을 떠났다. 주민이 떠나자 산속의 빈집들도 헐렸다. 안 원장은 “북한산성 근처 마을은 우리나라 문화유산인데, 예쁘게 가꾸고 복원하기는커녕 없앴다”고 했다.
매입 예산 턱없이 부족
국립공원운동연합회 손재용(孫在容ㆍ75) 회장은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사유지는 국가가 빨리 매입해 국유화해야 사유재산권 침해를 멈출 수 있다”고 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남은 사유지를 매입하는 데 약 24조원이 든다. 자연공원법에 의해 같은 규제를 받고 있는 도립·군립공원도 함께 사들인다고 하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매입을 위해 정부가 환경부에 할당해 준 올해 예산은 작년보다 10억원 증액된 35억원이다. 환경부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120억원의 예산으로 3.16㎢(191필지ㆍ316억5046㎡)만을 매입했다.
환경부 매수업무담당자는 “예산으로 매입할 수 있는 땅이 한정돼 있어 장기적으로 보고 있고, 주변 땅값이 올라 액수(額數)에 만족하지 않아 매수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며 “사유지 주인들의 재산권 침해는 안타깝지만 해제나 매입이 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유지 주인들에게 ‘해제가 아니면 매입해 달라’는 이분법적 주장이 아닌,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해제, 매입이 아닌 다른 길 찾아야
안원태 한국경제사회연구원장은 “무조건적으로 해제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사유지 안에 집 몇 채를 짓는 등 개발 가능한 지구를 하나 더 설정해 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안 원장은 “도시와 인접해 고부가가치 이용이 가능한 지역은 세금 감면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릉원주대 조태동(趙泰東) 교수는 작년 진행된 21세기 자연공원관리방안 모색을 위한 워크숍에서 “일본의 경우와 같이, 용도지구를 세분화해 유연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며 “다만 주변경관과 어울리는 건조물, 색채, 재료, 규모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은 1936년 지정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운젠(雲仙), 키리시마(霧島) 국립공원을 포함해 29개 국립공원, 56개 국정공원, 309개 도도부현립 자연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공원 토지의 약 25%는 사유지다. 그러나 특별보호지구, 제1종~제3종 특별지역, 보통지역, 집단시설지구로 세분화해 제2종특별지역부터 아래로는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 건립을 허가하고 있다. 특별보호지구, 제1종~제2종 특별지역은 허가제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 국립공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우이동~정릉~은평뉴타운~북한산성~경기 고양시 효자동~이동을 잇는 44㎞ 둘레길을 만들어 8월 31일 개방하면서 등산객이 늘었다. 동네 주민들은 간편한 복장으로 나와 산보(散步)를 즐긴다. 곳곳에 전망대도 설치됐다. 한눈에 들어오는 은평구, 서대문구 일대 풍경에 등산객 대부분은 탄성을 지르는데, 매일 이곳에 온다는 홍정우(洪廷雨ㆍ33)씨만 착잡한 표정으로 서 있다.
“3개 국립공원의 둘레길을 만드는 데 총 770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등산객들은 좋아합디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북한산 둘레길 설치 구간 70%가 보상 한 푼 못 받은 ‘사유지’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土地主 허락 없이 둘레길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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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44km에 설치된 둘레길. 둘레길은 북한산과 도봉산의 산자락을 휘감는 두 개의 동심원 형태로, 70%가 사유지에 걸쳐 있다. |
둘레길이 된 북한산 국립공원 산 43-105번지, 이 일대 2만여 평은 홍정우씨의 아버지인 홍성목(洪聖穆)씨의 땅이다. 1983년 북한산의 79.78㎢(2413만 평)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묶인 곳이다. 이후 국유지로 매입(매수ㆍ買受)하기는커녕 ‘자연공원법’의 규제로 풀 한 포기 마음대로 뽑지 못하는 상태로 30년이 흘렀다. 보상은 없었다.
그 와중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사유지 주인에게는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둘레길 작업에 착수한 뒤,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홍보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공단에서 방치하는 바람에 건축자재 폐기물과 쓰레기로 더럽혀진 땅도 있었다. 동네 노인들이 산의 초입(初入)에서 무단으로 밭을 경작한 지는 3~4년째다. 5월에는 청소년들이 본드를 흡입하고 술을 마시다가 산불이 나서 소방차가 출동한 적도 있다. 현장에는 아직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나무들이 뒤엉켜 있었다.
“사유지 주인 허락 없이 공단에서 매표소를 지었다가,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자 다시 허물기도 했습니다. 그 잔재 때문에 땅이 쓰레기장이 됐었습니다. 청소년들 비행(非行) 장소로 사용되더니, 뚝딱 둘레길을 만들었습니다. 언론에 계속 소개되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이제는 우리 땅이란 말도 못하고….”
홍정우씨의 한탄에, 주변 등산객들이 “여기가 사유지였느냐”며 다가왔다. 이 동네에서 40년을 살았다는 불광동 주민 박모(64)씨는 “터줏대감인 날 포함해 주변 사람들 아무도 이곳이 사유지라는 걸 모른다”며 홍씨에게 “속 많이 상했겠다. 둘레길 조성은 동의한 거냐”고 물었다.
대우아파트에서 35년을 살았다는 김모(59)씨 역시 “이곳이 사유지라니, 처음 듣는 소리”라며 “개인 땅이 어떻게 국립공원이 될 수 있느냐”며 궁금해했다.
9월 고시된 구역조정, 사유지 1.8%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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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의 초입에 버려진 건축 자재들. 토지주 홍정우씨는 “주인이 관리한다면 땅을 적어도 방치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
국립공원들이 지정된 지 20~30년이 흘렀는데, 아직 국가가 매수하지 않고 개인 소유로 남아 있는 사유지는 1157㎢(3억4999만 평)로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17%다. 지난 9월 2일, 10년마다 찾아오는 구역조정으로 21.216㎢(641만 평ㆍ1.8%)의 사유지가 해제됐기 때문에 그나마 줄어든 수치다. 해제된 땅은 주민들이 집을 짓고 생활하던 집단마을지구, 자연마을지구와 이미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집단시설지구다. 그동안 이 지역은 기(旣)개발지역으로 ‘공원’이란 이름과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많았다. 임야(林野)인 자연보존지구(자연생태계가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높은 곳)와 자연환경지구(자연보존지구의 완충공간으로, 보전할 필요가 있는 곳)인 사유지는 해제되지 않았다. 이번 구역조정 때 해제되지 않은 임야는 이제 2020년 구역조정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공단은 주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해제해 주민 수 90%가 혜택을 보게 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해제되지 않은 지역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다. 2009년 6월 발간된 경남발전연구원 마상열(馬相烈) 박사의 <국립공원 구역조정과 추진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보존지구에 10.7%(8759명), 자연환경지구에 5.3%(4327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자연공원법 23조(공원구역에서 공원사업 외에 건축, 채취, 개간이나 형질변경, 나무 베기, 물건을 쌓아놓거나 묶어놓는 일 등을 하려는 자는 공원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의 행위규제 때문에 허가 없이는 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허가도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행위규제로 고향 잃은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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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이 본드를 흡입하고 술 마시다가 산불이 난 장소. 나무들의 밑동이 까맣게 그을려 있다. |
“국립공원 내에는 시설이 필요없는 재래식 농사밖에 지을 수 없는데, 그게 잘 안되면 망하는 겁니다. 농사짓다 빚을 지면 보통 땅을 잘라 팔아 다시 일어서는데, 공원 땅은 사람들이 사질 않아요. 경매에 넘어가고, 농지은행에 맡기고, 빈털터리가 돼서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모씨 가족도 행위규제 때문에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노씨는 현재 소백산 국립공원 내 3만여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노씨의 할아버지가 1940년대에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노씨에게 물려준 땅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1980년대 초까지는 가족이 다 함께 이 땅에서 밭을 일구며 살았다.
노씨는 “부모님이 어느 날 허물어진 집을 보수하려는데 ‘이 땅은 국립공원 땅’이라며 못하게 막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며 “그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알았다”고 했다. 노씨 가족은 살 집이 없어져 억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밭은 계속 일구고 있다.
노씨는 “1940년대부터 밭으로 쓰던 땅인데도 비닐하우스, 관리 건축물을 필요로 하는 농사는 지을 수 없다”며 “20~30년간 재래식 농작물을 키우기만 했는데 낸 세금만 매년 수십만원씩 1000만원이나 된다”고 했다.
실제로 안원태(安元泰) 한국경제사회연구원장의 <자연공원관리체계 개선 방안>에 따르면, 1987년 당시 주민 거주 지역, 경작지가 모두 ‘농어촌지구’라는 이름으로 국립공원이 됐다. 이 지구가 공원의 30~40% 정도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30㎡ 이상의 증·개(增改)축, 농지전용(農地轉用)을 막으면서 농민들이 쫓겨나듯 빠져나갔다. 후에는 농경지가 자연환경지구로 바뀌고, 주민거주지역은 공원면적의 1%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3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북한산성 근처 산성마을도 자연환경지구로 지정돼 50여 가구가 억지로 고향을 떠났다. 주민이 떠나자 산속의 빈집들도 헐렸다. 안 원장은 “북한산성 근처 마을은 우리나라 문화유산인데, 예쁘게 가꾸고 복원하기는커녕 없앴다”고 했다.
매입 예산 턱없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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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의 초입에서 노인들이 밭을 가꾸고 있다. 파를 심고 있던 양이호(70)씨는 “4년 정도 파를 심어왔지만, 이 땅이 사유지인 건 몰랐다”고 했다. |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남은 사유지를 매입하는 데 약 24조원이 든다. 자연공원법에 의해 같은 규제를 받고 있는 도립·군립공원도 함께 사들인다고 하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매입을 위해 정부가 환경부에 할당해 준 올해 예산은 작년보다 10억원 증액된 35억원이다. 환경부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120억원의 예산으로 3.16㎢(191필지ㆍ316억5046㎡)만을 매입했다.
환경부 매수업무담당자는 “예산으로 매입할 수 있는 땅이 한정돼 있어 장기적으로 보고 있고, 주변 땅값이 올라 액수(額數)에 만족하지 않아 매수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며 “사유지 주인들의 재산권 침해는 안타깝지만 해제나 매입이 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유지 주인들에게 ‘해제가 아니면 매입해 달라’는 이분법적 주장이 아닌,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해제, 매입이 아닌 다른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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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레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풍경. 국립공원 경계선 밖으로 주택단지가 조성됐다. |
일본은 1936년 지정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운젠(雲仙), 키리시마(霧島) 국립공원을 포함해 29개 국립공원, 56개 국정공원, 309개 도도부현립 자연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공원 토지의 약 25%는 사유지다. 그러나 특별보호지구, 제1종~제3종 특별지역, 보통지역, 집단시설지구로 세분화해 제2종특별지역부터 아래로는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 건립을 허가하고 있다. 특별보호지구, 제1종~제2종 특별지역은 허가제다.⊙
| ▣ 국립공원이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1872년 지정된 미국 와이오밍(Wyoming)주(州)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이다. 황금빛 경관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던 옐로스톤은 1869년 ‘나다니엘 랭포드(Nathaniel P. Langford)’ 탐사대에 의해 실체가 밝혀졌다. 이후 탐사대는 “이곳은 온 국민이 보고 즐겨야지,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사유지가 되어선 안 된다”며 국립공원(National Park)으로 공공(公共)화하자는 탐사보고서를 작성했고, 이 보고서를 근거로 작성된 법안이 1872년 3월 1일 미국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랜트 대통령은 옐로스톤강 유역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때 그랜트 대통령이 선언한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의 복리와 즐거움을 위한 공공의 공원이며 위락지(慰樂地)”라는 말이 세계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옐로스톤에는 사유지가 포함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은 1967년 12월 29일 지정된 지리산 국립공원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7년 3월 ‘공원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민관 합동으로 생태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지정됐다. 남한에서 풍광이 가장 좋다고 꼽혀온 설악산이 먼저 거론됐지만, 6·25 때 격전지였던 탓에 설악산 곳곳에 포탄, 지뢰 제거가 시급했다. 설악산은 3년 뒤 제5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 뒤로 20개 중 13개 국립공원이 1980년대까지 지정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때까지 지정된 국립공원은 도로 신설, 휴양, 숙박 시설을 대규모로 개발하고 수익금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만들어졌다. 환경부 측은 “당시 국립공원 지정은 관광 휴양지가 되는 것처럼 인식돼 토지 소유자들이 국립공원 지정을 희망하는 탄원을 냈다”며 “설악산국립공원이 확대된 것을 비롯해, 계룡산, 덕유산, 내장산, 태안 해안이 주민들의 탄원으로 만들어진 경우”라고 했다. 속초 일대의 국도포장, 다도해의 연도교, 덕유산의 진입도로, 태안반도의 해안도로도 국립공원의 혜택이라고 한다. 자연환경 보호운동의 영향으로 1987년 건설부 산하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발족돼 관리하기 시작했다. 국립공원 발전 규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1998년 2월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변화를 맞았다. 자연생태계 보존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것이다. 자연공원법도 2001년 3월 28일 전면 개정됐다. 법률 6450호 ‘자연공원법’상에는 ‘지정·보전·이용 및 관리’가 ‘지정·보전 및 관리’로, ‘자연풍경지’는 ‘자연 및 문화경관’으로 바뀌었다. 반면 국립공원 인접지역은 토지이용 규제가 완화되면서 급속히 개발됐다. 환경부 측은 “인접지역의 토지이용이나 소득성향과 비교하면 국립공원 주민들은 혜택도 없이 낙후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나로도지구에 1만5000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명경민(64)씨는 “1981년 국립공원 지정 당시에는 지상낙원이 될 것처럼 홍보가 됐는데 법이 자연보호 일변도로 바뀌었다”고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