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새에 다섯 가지 금속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부메랑
⊙ 전통기술 국새제작자라는 민씨의 일방적인 주장 검증한 사람 아무도 없어
⊙ “민씨가 노무현 夫婦에게 선물한 금도장도 철심 박은 가짜”
⊙ 전통기술 국새제작자라는 민씨의 일방적인 주장 검증한 사람 아무도 없어
⊙ “민씨가 노무현 夫婦에게 선물한 금도장도 철심 박은 가짜”
- 2010년 9월 1일 민홍규 4대 국새 제작단장이 국새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을 들어서고 있다.
“저는 그가 경찰에 가서는 최소한 ‘내가 전통기술은 가지고 있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기술 없다고 했다면서요? 나 원 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4대 국새(國璽)를 제작한 민홍규(閔弘圭·55)씨가 사기혐의로 구속되자 정양모(鄭良謨) 전 국립박물관장은 이렇게 탄식했다. 정양모 전 관장은 1998년 5월 당시 막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새로운 국새를 만들 때 국새제작자문위원장을 맡아 제작 과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가 주도해서 만든 3대 국새에 금이 갔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새 국새를 만들기로 했다. 그 무렵 정 전 관장은 “민홍규씨에게 맡겼으면 국새에 금이 가지 않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고 후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현대 과학기술을 너무 믿었어요. 국새제작 당시에는 600년을 이어온 옥새전각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민홍규씨를 만난 후부터 현대의 과학기술이 절대 전통 국새제작기법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알게 됐습니다.”
4대 국새 제작자문위원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3대 국새 자문위원장과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그가 공개적으로 민홍규씨의 국새제작 기술을 칭찬하고 나섰고, 언론에도 민씨가 엄청나게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민씨의 국새제작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사용 중인 4대 국새는 2006년 12월 옛 행정자치부(행자부·현 행정안전부)가 공모를 통해 확정한 것이다. 공모는 국새의 글자체인 ‘인문(印文)’과 손잡이인 ‘인뉴(印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두 부분 모두 민홍규씨의 작품이 선정됐다. 이후 민홍규씨는 국새제작단 단장까지 맡아 국새제작을 총괄 지휘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중순 민홍규씨와 함께 국새제작 작업에 참여했던 전통 금 세공장인 이창수씨가 “4대 국새는 전통방식으로 제작되지 않고 현대식 가마에서 제작되었다”고 폭로하면서 국새제작 진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2006년 행안부는 민씨에게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민홍규씨가 만든 4대 국새의 정부 예산은 1억9000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이창수씨의 주장이 맞다면 민씨는 국새제작과 관련한 전통기법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정부를 ‘속여’ 계약을 따낸 셈이 된다.
민씨 “석불 선생 제자로 혹독하게 기술 익혀” 주장
2006년 민홍규씨를 공개적으로 두둔했던 정양모 전 관장은 민씨가 구속되기 며칠 전까지 언론 인터뷰에서 “민씨의 실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민씨가 전통 옥새 제작 기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자 “너무 황당하다. 완전히 속은 것 같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정 전 관장의 설명이다.
“제가 평생 박물관 업계에 있으면서 조선시대 임금들이 사용하던 진짜 옥새를 자주 봤습니다. 표면이 아주 매끄러운 것이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민씨가 만들었다는 옥새를 보니 꼭 조선시대의 진짜 옥새처럼 만들었어요. 최소한 옛날 옥새의 90% 수준엔 도달한 것 같았어요. 제가 주도했던 3대 국새를 만든 사람이 카이스트에 계시던 국내 최고의 주물 박사였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실패했잖아요. 그러니 전통기술을 가졌다는 민씨에게 더욱 신뢰가 갔습니다.”
―실제 민씨가 국새를 제작하는 모습은 본 적이 있습니까.
“현장은 못 봤고, 박물관에 전시된 비디오 영상은 봤습니다. 비디오를 보니 어디서 흙도 정성 들여 파 오고, 거푸집도 만들더군요.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국가적인 사업을 맡기면서 한번 시연을 해 보라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도대체 민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계의 최고 거물급 인사조차 그저 “깜빡 속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을까? 민씨는 구속되기 전까지 600년 옥새(혹은 국새) 제작기법을 전수받은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민씨는 “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새를 만든 전각장인 석불(石佛) 정기호(鄭基浩·1899~1989) 선생의 제자이며, 정 선생에 의해 명맥을 이어 오던 600년 전통 옥새 제작 비전(秘傳)을 유일하게 계승한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다. 민씨가 그동안 언론에서 밝힌 자신의 이력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나는 16세에 석불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17년간 혹독하게 서예, 전각, 옥새 제작 기술 등을 익혔다. 스승이 40세가 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말라고 해서 그동안 미술계 활동만 하면서 옥새는 만들지 않았다. 스승이 타계하기 전에 나를 21대 옥새전각장으로 인정해서 호를 세불(世佛)이라고 지어 주었으며, 스승으로부터 600년 이상의 옥새 제작 비전인 <영새부>(榮璽)를 물려받았다. 영새부는 옥새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옥새전각장 사이에 은밀히 일대일 구술(口述)로 전해지던 옥새 제작 비법이다. 이로써 나는 옥새 제작 기술을 보유한 유일한 옥새전각장이 되었다.>
이러한 민씨의 주장은 2005년 7월 스스로 펴낸 <옥새>라는 책에 대부분 그대로 수록돼 있다. 이 책에서 민씨는 비전되어 왔다는 <영새부>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영새부에 따른 옥새 제작 과정을 소개해 놓았다. 민씨는 또한 “영새부에 따르면 우리 전통 옥새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음과 양의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8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5가지 흙을 섞은 오합토로 거푸집을 만들고, 통치자의 승운(乘運)을 위해 다섯 가지 금속(오합금)을 섞어서 만든다”고 주장했다.
민씨가 옥새를 만드는 과정은 2008년 2월 KBS에서 ‘600년의 비전’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당시 KBS 방송에는 민씨가 주장해 온 국새제작 방법이 ‘별다른 검증 없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하지만 결국 “전통 옥새는 오합금을 섞어 만든다”는 민씨 주장은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민씨 사기 행각을 누구도 몰랐을까’라는 의문에서 취재 시작
민홍규씨가 전통 옥새를 만들 때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오합금은 금, 은, 구리, 아연, 주석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8월 민씨 국새 사건이 터지자 보도자료를 통해 “민씨가 과업계획서에서는 다섯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국새를 제작한다고 했으나, 실제 주석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4대 국새에 주석이 함유되지 않았다는 것은 2008년 원자력연구소의 감리 보고서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행자부는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을 정도로 이 문제를 소홀히 취급했다= 편집자 주).
국새에 주석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행안부의 발표에 대해 민씨는 경찰에 소환되기 직전인 8월 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내가 제출한 국새제작 최종 보고서에 사용 재료에 주석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없다”며 “행안부가 이런 사실을 빼고 내가 계약 내용을 어긴 것처럼 발표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씨는 “국새에 주석을 넣으면 깨진다”고 주장했다.
민씨의 20년 지인이라는 박모씨는 “민홍규씨로부터 주석은 주물시작 전 소량이 들어가기 때문에 산화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씨가 만든 국새에 주석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은 곧 영새부의 비전(전통방식)에 따라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들었다는 민씨의 그동안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과 같다.
민홍규씨는 지난 십수 년간 600년 비전을 지닌 옥새전각장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누구도 그의 본모습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가기관마저 검증해 보려는 노력조차 없이 국새제작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하지만 기자는 그동안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아무리 민씨가 남을 속이는 재주를 가졌고, 국가의 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 해도 일개 전각(篆刻) 장인(匠人)에게 수많은 사람이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홍규씨는 어떤 사람인지 또한 4대 국새 제작단장 선정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취재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한 것이다. 기자는 4대 국새 제작에 관련했던 심사위원과 자문위원, 기타 민씨의 주변 인물들과 차례로 접촉했다.
관련 공무원, “그냥 그런 분위기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신문지상에 ‘민홍규’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85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동아미술제 서예·전각 부문의 입선자 명단에서다. 이는 민씨가 서른 살 되는 해다. 이후 민씨의 이름은 신문에 거의 오르내리지 않다가 1992년에 가서 전각문자조형(LAP ART)전을 연다는 짧은 기사가 보인다. 민씨를 가까이서 접했던 사람들은 “민씨가 전각이나 조각 분야에 상당한 손재주를 가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민씨에 대한 짧은 신문기사들은 그런 증언을 뒷받침해 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1998년 민씨가 고종황제 옥새를 복원하여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후 민씨는 여러 언론에 전통옥새장으로 자주 소개되기 시작한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석불 정기호 선생에게 옥새 기술을 전수받았으며, 옥새는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한 시대 한 사람의 장인만이 필요했는데 내가 유일한 옥새장인”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민홍규씨는 현재 자신의 직함으로 ‘옥새전각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인장 분야 한 장인은 “민홍규씨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을 속이면서 전통옥새 장인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옥새전각장’이란 직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민씨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600년 옥새 제작 비전’이란 것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그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민씨가 주장한 600년 비전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민씨는 존재하지도 않는 옥새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옥새전각장’이란 직함을 사용해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기술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민씨는 옥새 제작 기술을 가진 유일무이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그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민씨 주장에 반박 자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그게 뭔지 의심도,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행자부 담당자에게 “전문가를 인정하고 관리하는 국가가 어떻게 개인에게 그렇게 속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3대 국새에 금이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었고요.”
―그래도 일을 추진할 핵심 기술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선정했습니까.
“그때는 우리뿐 아니라 관련된 전문가든지 언론이든지 모두가 그 사람 말을 믿었지 않습니까? 전부 다 민씨가 훌륭하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상황이 바뀌니까….”
―그렇더라도 정부가 기술 검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 사람이 단장으로 그대로 통과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당시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와서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추호도 의심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행안부 다른 관계자도 “당시에는 아무런 의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국새 담당 공무원을 두둔했다. 그의 말이다.
“2003년 무렵부터 갑자기 각종 언론이 민씨가 전통 옥새 제작 비법을 가진 사람으로 엄청 띄워 놓았습니다. 그때 실무를 담당한 우리 의정팀 직원들도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믿어 버린 결과로 흘렀습니다. 국새 하면 ‘민홍규, 600년 전통’, 이런 것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공모를 할 때도 특히 인뉴 부문에서 민홍규를 참석시켜야 한다는 자문위원 사이에 여론이 있었나 봅니다.”
―모셔온 격이네요.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일단 참여는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래서 국민공모를 했는데, 민씨가 두 가지 분야에서 모두 당선이 되니까 자문위원회의에서 단장으로 결정해 버린 거죠, 뭐.”
민씨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떠들고 다녔고, 언론에서 그걸 믿고 썼고, 전문가도 민씨 주장을 확인도 안했고, 공무원도 검증조차 안했고…. 결국 누구의 확인도 없이 ‘카더라’ 식으로 이번 사건이 굴러 온 셈이다.
민씨, 200만원짜리를 30억원이라 홍보
민홍규씨는 2005년 <옥새>라는 책을 내놓으면서 자신의 직함을 ‘옥새전각장’이라고 못 박았다. 해당 책에서 민씨는 ‘옥새전각장’은 고종황제 때부터 옥새 제작 비법을 전수받은 사람에게 붙인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옥새전각장은 전각장(광해군)-보전각장(숙종)-보장(영·정조) 등으로 불려 오다가, 구한말 고종 후기에 와서 옥새전각장으로 명칭이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민씨가 <옥새>라는 책을 발간할 무렵인 2005년은 4대 국새를 새로 제작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을 때였다. 일부 언론이 당시 사용되고 있던 3대 국새에 금이 갔다는 보도를 하면서 국새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1962년부터 37년간 사용되던 2대 국새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국새를 새로 제작한다는 명분에 따라 현역에서 퇴출당했다. 1998년 5월 정부는 새로운 국새를 만들기 위해 국새제작자문위원회(위원장 정양모)를 발족했고, 이듬해인 1999년 1월 새로 만들어진 국새가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2005년 정부가 새로운 국새를 제작하려고 자문위원회 구성을 준비할 무렵 민홍규씨는 대대적인 옥새 전시회를 열기 시작한다. 처음 연 곳은 2003년 인천 신세계백화점에서다. 하지만 민씨는 이후 한참 동안 옥새 전시회를 열지 않다가 2006년 2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600년을 이어 온 세불 국새전’을 열었다.
민씨는 당시 전시회에 출품된 국새가 백금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30억원짜리라고 홍보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이 당시 민씨가 전시한 국새를 압수해서 분석한 결과 인조다이아몬드가 박힌 원가(原價) 200만원짜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민씨는 작년에 롯데호텔에서 40억원짜리 다이아몬드 봉황 국새라며 전시회를 했는데, 경찰은 이것도 2006년에 출품했던 작품과 동일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씨는 지난 9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2006년 전시한 진품은 제작비용을 부담한 지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2009년 전시한 봉황국새는 2006년 전시한 진품의 모조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만약 매수자가 나올 경우 제작비용을 받아 정식으로 제작하여 줄 예정이었다”며 “고가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감정 없이 전시품을 그대로 판매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민홍규씨는 현재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가족과 민씨 지인들이 기자회견을 함=편집자 주).
이어서 2006년 3월 민씨는 전주국립박물관에서 옥새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해 6월 정부가 4대 국새를 만들기 위한 국새자문위원회를 구성했으며 11월에 국새 모형(인문 및 인뉴)에 대한 공모를 했다. 그 결과 인뉴와 인문 부문 모두에서 민홍규씨의 작품이 선정됐다. 이후 민씨는 국새제작단장을 맡아 2007년 한 해 동안 국새를 제작했고, 민씨가 새로 만든 4대 국새는 2008년 1월부터 사용되고 있다.
2006년 3월에 개최된 전주국립박물관 전시회는 현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인 신광섭(申光燮)씨가 전주국립박물관장으로 재직할 때 열렸다. 신광섭 관장은 민홍규씨가 일등으로 선정된 4대 국새 모형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신 관장은 “2006년 2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민씨의 국새전시회에 가 보았는데 아주 재미있어서 전주에서도 전시회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 관장의 설명이다.
“저는 당시 막 전주국립박물관에 부임한 상태였습니다. 지방 박물관은 활성화가 안되어 있어서 시선을 끄는 이벤트가 있으면 관장으로서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특히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향(本鄕)이고, 왕실 문화에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실 공예품의 하나인 옥새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 보았고, 이후 전주에서도 개최했던 것입니다. 엄청나게 반응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민씨가 저를 도와준 격이죠. 허허.”
―국새 심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요.
“제가 솔직히 인문 부문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행자부에서 심사를 좀 맡아 달라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고, 또 국새를 심사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참여한 것입니다.”
―심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요.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게 번호가 붙은 작품이 30점 정도 출품되었습니다.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아니었고, 서로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잘된 작품을 골랐던 것 같습니다.”
2005년 7월 민홍규씨는 <옥새>라는 책을 펴내면서 일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이 무렵 ‘국새(3대)에 금이 갔다’는 보도가 나왔고, 감사원은 국새를 정밀감사하기에 이른다. 감사 결과 국새 내부에 금이 간 것으로 확인되자 2005년 9월 정부는 “국새를 새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새 보도 기자, “경찰 발표 안 믿어”
2006년 6월 ‘국새에 금이 깊이 가서 사용할 수 없다’는 기사와 ‘퇴출당한 국새가 하청을 통해 제작됐다’는 등의 국새 관련 단독 보도로 4대 국새 제작 여론에 힘을 보탰던 중앙 일간지 조모 기자는 아직도 민홍규씨를 신뢰한다고 했다.
그는 2006년 당시 새 국새(3대)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함과 동시에 민홍규씨를 여러 차례 신문 지상에 소개한 적이 있다.
조 기자는 민홍규씨 국새 사건으로 많은 언론이 민씨를 지탄하는 가운데서도 ‘언론이 마녀사냥 하듯 민씨를 몰아붙이고 있다’며 민씨를 옹호하는 칼럼을 썼다. 조 기자의 설명이다.
“비록 제가 직접 민 선생(민홍규)이 국새를 만드는 가마에는 못 가 보았지만,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직접 제작하는 것을 보았다고 모두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민 선생과 최근 통화를 했는데, 민 선생은 같이 국새제작 일을 했던 이창수씨 등 몇몇이서 민 선생을 코너로 몰아 매장하기 위해 꾸민 음모라고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민 선생이 있는 한 자기들의 이름을 알리고 자리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사업(황금 골프퍼터 사업) 건으로 얽힌 문제 때문에 이창수씨 등과 사이가 벌어졌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민씨가 경찰에서 전통 국새제작기술이 없다고 시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저는 현재 경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처음으로 터뜨린 쪽 사람들의 말만 믿고 언론에 흘리는 것 같아요.”
―민씨가 전통기술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확신하나요.
“제가 예전에 3대 국새에 금이 갔다는 것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3대 국새 제작을 담당했던 전 행자부 담당 사무관이 민홍규씨에게 자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그분이 민 선생에게 국새제작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민 선생이 ‘전통적인 옥새 제작은 한 사람이 맡아서 전분야를 해야지 나누어서 작업을 하면 안 된다’며 빠졌다고 하더군요. 3대 국새를 만들 때 국내 최고의 주물 과학자들이 동원되어 현대식으로 제작했는데, 결국 제대로 못 만들어서 국새에 금이 가고 결국 다시 만들게 된 것 아닙니까? 새로 만든 국새는 아주 잘 만들어졌습니다. 국새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민씨도 보도자료 통해 “전통기술로 만들었다”고 경찰 발표 뒤집어
―민씨가 만든 4대 국새에는 주석이 안 들어갔다고 했다던데요.
“그 부분도 민 선생에게 들었는데, 금과 주석이 섞이면 국새가 깨지기 때문에 주석을 잘 활용해야 한대요. 순식간에 주석을 집어넣는 기술이 바로 민 선생이 전수받은 비법이라고 하더군요.”
―조 기자가 아는 민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대학도 나오지 않고, 전각 업계에서는 재야(在野) 인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분이 국새제작이란 중책을 맡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모든 도장(인장) 업계의 공적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분이 우수한 기술로, 한마디로 인장 업계를 평정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민 선생이 인장 학계의 주류에 밉보여서 서울 등지에서 전시회도 제대로 못 열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민홍규씨를 신뢰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의 행적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글쎄요. 제가 가장 난처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텐데…. 민 선생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저 외에도 타회사 기자 포함 네댓 명 더 있어요. 우리가 가끔 만나면 재야에서 어렵게 지내던 민 선생을 발굴해서 결국 국새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게 힘을 보탠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 점에서 보람을 느끼죠. 혹시 2006년 3월에 한 전주박물관 전시회 도록(圖錄) 보셨어요? 거기에 실린 옥새 한번 보세요.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민씨는 자신의 국새제작 논란에 대해 지난 9월 13일 기자회견에서 “4대 국새는 행안부와 계약대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서 진술했다는 것을 다시 뒤집는 내용이다. 다음은 민씨의 주장이다.
“납품한 국새는 전통기법에 따라 경남 산청 국새전각전에서 제작되었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언론에서 국새제작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현대기법은 실물을 제작하기 전 샘플제작을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4대 국새가 현대기법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보도되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전통 주물기술로 만들어진 국새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한 치의 흠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후 현재까지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의혹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개시연을 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석불 아들, “아버지 몇 번 찾아오고 수제자 행세해”
기자는 조 기자가 언급한 전주에서 연 민씨의 옥새 전시회 도록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석불 정기호 선생의 아들인 정민조(67·목불) 선생의 옥새전 축사가 있었던 것이다. 정민조씨는 민씨 국새 사건이 불거지자 언론 인터뷰에서 “민씨는 아버지(정기호)의 제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2006년 민씨의 전주박물관 국새전 도록 서문에 써 준 글에는 분명히 “민씨는 아버지의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민조씨는 현재 울산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전각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정민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우렁찬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 왔다. 정씨는 민홍규씨 이야기를 꺼내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민씨를 “민군”이라고 불렀다.
“민군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인 1987년인가 우리 집에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수제자가 아닙니다. 수제자는 평생을 수발하면서 기술을 전수받는 사람인데, 몇 번 왔다 갔다 한 게 어떻게 수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동안은 왜 침묵하고 있었습니까.
“(흥분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20년 전에 저는 세상과 등지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민군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어떻게 알아요. 국새를 만든 줄 몰랐어요.”
정씨는 전주박물관 전시 도록에 축하 글을 써 준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써 주긴 뭘 써 줘요. 민군이 나한테 전화해서 ‘전시회 하는데 축하 글 하나 써 달라’고 해서 내가 ‘무슨 전시회인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쓰냐’고 했더니, ‘그럼 내가 쓸 테니 사인만 좀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언젠가 나를 찾아와서 백지에 사인을 받아 갔습니다. 나는 그때 ‘그래도 저놈이 내 이름이라도 팔아서 밥이라도 먹고 살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사인을 해 줬습니다. 요즘 보니 도록 서문에 온통 나를 깎아내리는 내용투성이인데 내가 미쳤다고, 그런 글인 줄 알았으면 사인을 해 줬겠습니까.”
민씨, 사문서 근거로 옥새전각장 계보도 만들어
민홍규씨는 자신의 책 <옥새>에서 ‘옥새전각장 계보도’를 그려 놓고, 자신이 옥새 제조 비법을 전수받은 유일한 인물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민씨가 책에서 그려 놓은 옥새전각장 계보도를 조금만 살펴보면 여러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민씨가 그린 계보도는 조선시대 각종 행사를 기록한 의궤와 국왕과 왕세자의 도장인 보인(寶印)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 등에 등장하는 옥새 제작 장인들의 명단이 나열돼 있다. 보인소의궤는 1876년 경복궁 교태전에 불이 나 이곳에 보관하던 국새 대부분이 손상되자 고종의 명으로 옥새와 인장 11점을 제작할 당시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민씨는 보인소의궤 등 국가 공식 기록물에 등장하는 옥새 장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다가 마지막 이름(전흥길)의 뒤에 ‘황소산-정기호-민홍규’로 연결해 놓았다. 즉, 자신의 스승이라고 주장하는 석불(정기호)과 그의 스승 황소산이 국가 공식 기록물에 등장하는 전흥길 옥새 장인의 제자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민씨는 그러면서 그 근거로 사문서(私文書)를 들었다. 민씨가 증거라고 한 문서는 자신이 석불로부터 받았다는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다. 민씨는 이 문서가 석불이 쓴 회고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물을 직접 본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10여 쪽의 필사본이라고 했다. 국가 공식 기록물에 나오는 마지막 옥새 장인(전흥길)의 기술을 황소산씨가 이어받았다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공식 기록으로는 발견되지 않고, 다만 석불(정기호)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문서에만 나오고 있다.
정기호 선생의 아들 정민조씨는 “황소산이란 사람은 아버지(정기호)에게 동장(銅章·구리도장) 파는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황소산 역시 대한제국의 국새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민씨는 정기호 선생의 스승이라는 황소산에 이르러서는 그전에 쓰던 ‘보장’이란 명칭을 버리고 갑자기 ‘옥새전각장’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그 근거 역시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정기호씨의 아들 정민조씨는 옥새 장인의 계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옥새 장인의 계보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습니다. 더군다나 600년 동안 무슨 비법으로 내려오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방 후 1호 국새를 만들 때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도장을 제일 잘 판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나라에서 아버지에게 국새제작을 맡겼다고 봅니다. 당연히 글씨는 아버지가 파도 손잡이 부분은 다른 장인들과 같이 작업을 했겠죠.”
―황소산이란 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까.
“중국에서 전해져 온 동장(銅章) 기술을 배워 아버지에게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쇠도장을 파던 사람인데 옥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동장은 민씨가 로비 등에 사용했다는 손가락만 한 황금도장 종류를 말한다. 하지만 정민조씨는 “원래 동장은 구리로 만들기 때문에 이름을 동장이라고 한다”며 “민씨가 이것을 황금으로 만든 것은 돈벌이 목적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자신의 책 <옥새>에서 동장(금장, 금도장)에 대해 상당 부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민씨는 금장에 대해 ‘소옥새’라고 표현하며 ‘몸에 지니면 몸을 보호하고, 기운을 돋우며 옛날에 임금이 훌륭한 정사를 하기 위해 항상 몸에 지닌 신물(神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취재 중 알게 된 민씨 주변 인물 중 한 명은 “금장은 민씨의 가장 중요한 수익성 사업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민씨가 대기업 사장들에게 4500만~4600만원에 금도장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는 실제로 금도장 하나가 이만한 가격에 팔렸는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민씨가 노무현 대통령 부부에게 주었다는 금도장은 안에 쇠를 넣은 가짜 금도장이라는 제보도 들어왔다.
석불의 1호 국새 제작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정민조씨는 “아버지가 국새제작에 참여한 것은 확실하지만 기록물이 6·25 전쟁통에 다 사라졌기 때문에 하나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1호 국새를 제작했다고 해서, 그것이 민홍규가 주장하듯이 아버지가 600년 옥새 제작 계보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민씨가 그동안 옥새 전시회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니까 솔직히 여느 금 세공방에 맡기면 다 만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처음부터 용서를 구하고 나왔으면 될 텐데….”
기자는 석불(정기호)이 실제로 국새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1978년 펴낸 <석불전각전>이란 도록을 확인했으나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바로 그해 석불 기사를 다룬 ‘인장연합회보’란 신문 기사에서도 석불이 국새제작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전각계의 한 학자는 “실제 국새를 만드는 데 참여했으면 영광스러운 일이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기록을 통해 남아 있을 텐데 없다는 것은 그가 1호 국새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더 크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손환일 서화미디어 대표는 2006년 4대 국새 모형 심사위원에 선정되어 심사에 참여했고, 그 무렵 1호 국새를 누가 만들었는지 논쟁이 벌어지자 국가기록원의 의뢰를 받아 1호 국새 고증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조사 보고서에서 “정기호씨가 대한민국 1호 국새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이런 결론은 민홍규씨가 주장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민씨가 정기호씨를 통해 600년 옥새 기술의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었다. 손 대표의 설명이다.
“당시 공식 기록 어디에도 1호 국새에 정기호씨가 관여했다는 기록이 없었습니다. 다만 민씨가 제시한 <고옥새간회정도>에 삽입된 왜정 시대 신문에 국새 도장이 4~5개 찍힌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고증하니 1호 국새와 상당한 관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기호 선생이 만들면서 연습으로 찍어 본 것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고옥새간회정도를 정기호 선생이 만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도장도 정기호 선생이 찍은 것이라고 믿고, 결국 정 선생이 국새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당시 왜 갑자기 1호 국새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까.
“1호 국새가 제작될 무렵은 우리나라가 혼란기라서 국가 기록 자체가 허술하게 관리되었습니다. 1호 국새도 사진만 한 장 덜렁 있는 상황이었는데, 민씨 측이 사진의 국새가 진짜가 아니고, 자기가 가진 고옥새간회정도에 실린 그림이 1호 국새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하니 당연히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사를 하면서 <영새부>라는 것은 보았는지요.
“<영새부>를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궁금해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안 보여줘요.”
취재 중 만난 어느 장인은 “2005년 말 벌어진 1호 국새 진위 논쟁은 초반에 당시 민씨가 국새제작 전통기술을 가졌다고 믿는 기자들로부터 제기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1호 국새를 정기호 선생이 만든 것으로 공식 확인이 되면, 민홍규씨는 정 선생의 제자로 입지가 더욱 굳어지고, 경우에 따라서 1호 국새를 복원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민씨 등은 사진으로 남아 있던 1호 사진을 삽살개라고 폄하하고, 민씨가 소장한 고옥새간회정도에 정기호 선생이 그린 ‘태극익룡’이란 그림이 원래 1호 국새라고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민씨 등은 1호 국새를 태극익룡으로 복원한다고 주장했었거든요.”
손환일 서화미디어 대표는 “내가 고증한 결과 1호 국새는 삽살개가 아니었다”며 “자칫하면 1호 국새와 4호 국새 모두를 민씨가 제작할 뻔했다”고 말했다. 현재 1호 국새 복원 논의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이장열 원장은 국새 사건 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1호 국새 논란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1호 국새 복원추진방안 보고서>에서 행자부 국가기록원의 모든 공식 자료가 무시되고 정기호의 고옥새간회정도의 내용에 근거해서 정기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의 말이다.
“이 세상에 혼자만의 비법이 있다는 말은 언어도단입니다. 보인소의궤에만 해도 국새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77명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씨를 새긴 장인만 9명입니다. 국새제작은 어느 한 사람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인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공정입니다. 민씨는 ‘비법’이니 ‘비밀’이니 하면서 감추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기호씨로부터 구체적으로 무엇을 전수받았는지 소상히 밝혀야 합니다.”
핵심인 국새 주물 과정 빠진 백서 나와
민홍규씨가 만든 4대 국새 문제가 불거지자 행안부는 재빨리 민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이미 국새제작 직후에 성분 분석을 했기 때문에 행안부는 당초의 계약과 달리 민씨가 만든 국새에 주석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행안부가 공식 기록한 <4대 국새 백서>에도 ‘4대 국새 거푸집은 현대식 가마에서 밀랍을 녹여 냈다’고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행자부가 민씨와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기로 해 놓고 그렇게 만들지 않았는데도 당시에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행안부에서도 그 어느 누구 하나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다.
2009년 12월 발간된 4대 국새 백서는 신광섭 관장을 포함한 국립민속박물관 직원 3명이 담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실무작업은 민속박물관의 A과장이 진행했다.
백서에는 민홍규씨가 전통기술로 국새를 제작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전통금속 공예가 이창수씨가 국새의 거푸집 제작, 합금, 주물, 인뉴와 인면 접합, 마무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백서에는 거푸집을 현대식 가마에 넣고 밀랍을 녹여 냈다고 기록했다. 한마디로 4대 국새 제작을 민홍규씨가 전통방식에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이창수씨가 현대방식으로 제작했다고 공식 기록을 한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행안부가 제작한 <국새>라는 소책자에는 이창수씨가 ‘보조장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기관에서 발간한 공식 기록물이 서로 다른 것이다.
4대 국새 백서는 254쪽 가운에 국새제작 과정을 26쪽 분량으로 간략하게 기록했다. 나머지는 의장품에 대한 기록이다. 백서 자체가 기형적이다. 이에 대해 A과장은 “백서는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원칙인데, 민홍규씨는 국새 주물 과정이 전통비법이라면서 제작과정을 보여주지 않아 그것을 빼고 백서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과장의 설명이다.
“제가 무형문화재에 대한 기록물을 많이 만들어 봤는데 장인들이 기록자에게 핵심 전통기술을 감추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민씨는 국새의 거푸집 제작과정에서 기록담당관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 이전에 민씨는 서울시의 인간문화재 신청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심사한 분들이 민씨가 600년 전통을 가졌다고 판단했으면 인간문화재에 지정되었겠죠.”
민씨는 이 부분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A과장이 경남산청의 제작 현장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반박한 적이 있다.
백서의 기록이 국새제작 계약 사항과 다르게 기록된 것을 알지 못했을 리 없는 행안부는 이후 국새 사건이 불거질 때까지 민씨가 만든 국새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취재 중 만난 민홍규씨의 주변 인물 중 한 명은 당시 국새제작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었으나, 5가지 흙으로 거푸집을 만드는데 흙을 어디서 가져오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산청에 있는 대왕가마에서 주물 작업을 했다는데 작업한 흔적이 없어서 결국 프로그램 제작을 중도에 포기했다는 후문도 소개했다.
민씨의 국새제작단에 소로장(小爐匠)으로 참여했던 황동구씨는 “얼마 전 2007년 12월 제작 당시 행자부 장관이 참석해서 국새 거푸집을 깨는 의식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는데 미리 석고로 만들어 놓은 가짜 거푸집을 깨는 장면이 보였다”고 말했다. 황씨의 설명이다.
“저는 당시 가마를 지을 벽돌을 구웠습니다. 두 달 동안 생업도 미루고 인부 4~5명을 데리고 전국 명산을 다니며 흙을 구해서 벽돌을 구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마를 제작할 때는 민씨가 저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나에게 일을 맡기면 자기가 가짜라는 게 탄로가 날까 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민홍규씨는 국새제작 전통기법이 없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 9월 13일 발표한 기자회견 자료에서 “내가 사소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전통장인으로서 명예를 실추시키는 횡령, 사기행위를 할 이유가 있겠냐”며 “전통기술을 현대적으로 이해·해석하기 어렵다고 폄하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심정을 밝혔다.
민씨의 20년 지인이라는 박모씨는 “민씨는 석고는 만질 줄도 모른다”며 “대왕가마 기술을 빼앗으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민씨 작품은 원래 공모 기준에 맞지 않았는데도 선정돼”
2006년 민홍규씨를 4대 국새 제작자로 선정하고 제작단장을 맡긴 과정도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 인문 부문에 출품된 작품은 38점이었고, 인뉴 부문은 5점이었다. 공모에서 인문 부문의 글자체는 ‘훈민정음체’로, 인뉴 부문의 모양은 ‘봉황’으로 지정해 놓았었다.
인문 부문 심사위원이었던 김선원 서예감정가는 “민홍규씨 작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는데, 나는 끝까지 반대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틀림없이 공모 기준에는 훈민정음체라고 되어 있었는데, 민씨는 ‘대한민국’의 ‘국’자 받침인 ‘ㄱ’을 한 획이 아니라, 두획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부분에 작가가 밝힌 출품 의도를 보니 ‘ㄱ’을 두 획으로 해야 국운이 융성한다고 해 놓았습니다. 저는 국새에 샤머니즘적인 정신이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봤습니다.”
인문 부문의 또 다른 심사위원이었던 손환일 서화미디어 대표는 “설사 민씨 작품이 일등으로 선정되었다 하더라도 국정 사업을 일개 장인에게 맡겨 놓고 정부가 손을 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신도시를 건설하는데 건설 단장이 일개 건축가인 경우도 있습니까? 또 의장품목 제작을 하는 장인들을 왜 민홍규씨가 모두 결정합니까. 국새에 그런 의장품이 필요하다면 국가가 나서서 장인들을 섭외해야죠. 행자부가 도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관리 감독도 안 하고 민씨에게 단장이란 이름 아래 모든 것을 맡겼으니 이런 일이 터진 것이죠. 국가 기능이 총체적으로 부실해서 생긴 사건이라고 봅니다.”
인뉴 부문을 심사했던 허균 한국민예미술 연구소장은 “인뉴 부문은 출품 작품 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된 작품은 한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인뉴가 손잡이이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을 고려해서 심사한 결과 민씨 작품이 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새 사건이 불거지자 행안부 관계자는 “국새제작자문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절차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최은철 한국전각학회 이사는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이 단장이 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없다가 마지막 회의에서 갑자기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7차 회의 때 갑자기 국새제작단 구성 및 의전품(국새 함, 보자기,궤, 자물쇠, 끈 등) 제작이라는 안건이 올라와 있더군요. 국새에 의전품이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그런 의전품도 만든다는 규정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자문회의에서 논의했어야죠. 왜 마지막 회의에 슬며시 집어넣어 민씨에게 모든 것을 맡겼는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최은철 이사는 “당시 자문위원들은 심사위원들이 3점의 작품을 선정해서 점수나 등수를 매기지 말고 자문회의에 보내 주면 자문위원들이 1등을 뽑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막상 넘어온 작품을 보니까 이미 심사위원들이 민홍규씨 작품을 ‘당선작’이라고 정해 놓았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민씨 사건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 보여줘
“1등으로 당선되었다는 민씨 작품을 보니 훈민정음체에 없는 ‘ㄱ’ 자가 두 획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행자부 직원이 설명하기를 국운을 융성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획을 썼다고 하기에 항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올라와서는 안 될 작품이 올라온 것이죠. 공모 기준에 안 맞으니까요.”
최 이사는 “내가 항의를 했더니 행자부 직원들이 ‘민홍규씨 것으로 선택해 주면 자획을 좀 고치도록 하겠다’고 말해서 그렇게 결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의 시간이 30분 정도로 정해졌고, 다른 안건도 있으니까 그냥 행자부 직원 말을 듣고 흐지부지 넘어간 것 같습니다. 회의가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무슨 추인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기자가 당시 행자부에서 자문위원들에게 배포한 회의 자료(1~7차)를 살펴보니 2006년 3월에 개최된 1차 자문위원회의에서 이미 민홍규씨의 이력서가 참고자료 형식으로 회의자료 뒤에 첨부되어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자문위원들도 회의 때마다 ‘민홍규’라는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말했다.
최은철 이사는 “‘민홍규라는 사람은 언론플레이가 심하구나’라고 생각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심지어 심사위원 중에 한 명은 민씨가 지었다는 <옥새>라는 책을 가져와서 보여주기에 ‘민홍규씨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자문위원이었던 조창룡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민홍규씨가 제작단장을 맡고, 국새제작단까지 구성한 것은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 역할은 심사에서 올라온 작품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심사위원이 1등으로 뽑은 사람이 갑자기 단장이 되어서 나타납니까? 또 국새제작단 인원 선정에 대해선 한마디 회의도 없이 전부 민씨에게 맡겼잖아요. 그런데도 절차상 아무 하자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최병훈 인장공예 명장은 “국가 상징물은 시대상이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통공예 분야에서 손으로 작업하는 것은 모두 ‘전통’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조는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국새를 만들 때는 서예, 인장, 디자인 등에서 최고 학자들이 연구해서 국새 모형을 결정하고, 기능인은 학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표현하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학자와 전문가들이 자기 역할을 못하니까 600년 전통을 가졌다는 민씨의 말 한마디에 공무원이고, 전문가들이고 모두 꼼짝도 못하고 민씨에게 농락당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민홍규씨가 세상을 속이려고 했다고 한들 이렇게 철저하게 주변 사람 모두가 농락당할 수 있을까. 그 수많은 전통장인, 전문가, 교수, 공무원들, 기자는 다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을 봤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심사위원이란 사람들, 국가적 사업을 관리하면서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은 행정부 공무원들. 민홍규씨 사건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대한민국 4대 국새(國璽)를 제작한 민홍규(閔弘圭·55)씨가 사기혐의로 구속되자 정양모(鄭良謨) 전 국립박물관장은 이렇게 탄식했다. 정양모 전 관장은 1998년 5월 당시 막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새로운 국새를 만들 때 국새제작자문위원장을 맡아 제작 과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가 주도해서 만든 3대 국새에 금이 갔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새 국새를 만들기로 했다. 그 무렵 정 전 관장은 “민홍규씨에게 맡겼으면 국새에 금이 가지 않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고 후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현대 과학기술을 너무 믿었어요. 국새제작 당시에는 600년을 이어온 옥새전각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민홍규씨를 만난 후부터 현대의 과학기술이 절대 전통 국새제작기법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알게 됐습니다.”
4대 국새 제작자문위원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3대 국새 자문위원장과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그가 공개적으로 민홍규씨의 국새제작 기술을 칭찬하고 나섰고, 언론에도 민씨가 엄청나게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민씨의 국새제작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사용 중인 4대 국새는 2006년 12월 옛 행정자치부(행자부·현 행정안전부)가 공모를 통해 확정한 것이다. 공모는 국새의 글자체인 ‘인문(印文)’과 손잡이인 ‘인뉴(印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두 부분 모두 민홍규씨의 작품이 선정됐다. 이후 민홍규씨는 국새제작단 단장까지 맡아 국새제작을 총괄 지휘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중순 민홍규씨와 함께 국새제작 작업에 참여했던 전통 금 세공장인 이창수씨가 “4대 국새는 전통방식으로 제작되지 않고 현대식 가마에서 제작되었다”고 폭로하면서 국새제작 진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2006년 행안부는 민씨에게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민홍규씨가 만든 4대 국새의 정부 예산은 1억9000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이창수씨의 주장이 맞다면 민씨는 국새제작과 관련한 전통기법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정부를 ‘속여’ 계약을 따낸 셈이 된다.
민씨 “석불 선생 제자로 혹독하게 기술 익혀” 주장
2006년 민홍규씨를 공개적으로 두둔했던 정양모 전 관장은 민씨가 구속되기 며칠 전까지 언론 인터뷰에서 “민씨의 실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민씨가 전통 옥새 제작 기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자 “너무 황당하다. 완전히 속은 것 같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정 전 관장의 설명이다.
“제가 평생 박물관 업계에 있으면서 조선시대 임금들이 사용하던 진짜 옥새를 자주 봤습니다. 표면이 아주 매끄러운 것이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민씨가 만들었다는 옥새를 보니 꼭 조선시대의 진짜 옥새처럼 만들었어요. 최소한 옛날 옥새의 90% 수준엔 도달한 것 같았어요. 제가 주도했던 3대 국새를 만든 사람이 카이스트에 계시던 국내 최고의 주물 박사였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실패했잖아요. 그러니 전통기술을 가졌다는 민씨에게 더욱 신뢰가 갔습니다.”
―실제 민씨가 국새를 제작하는 모습은 본 적이 있습니까.
“현장은 못 봤고, 박물관에 전시된 비디오 영상은 봤습니다. 비디오를 보니 어디서 흙도 정성 들여 파 오고, 거푸집도 만들더군요.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국가적인 사업을 맡기면서 한번 시연을 해 보라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도대체 민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계의 최고 거물급 인사조차 그저 “깜빡 속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을까? 민씨는 구속되기 전까지 600년 옥새(혹은 국새) 제작기법을 전수받은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민씨는 “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새를 만든 전각장인 석불(石佛) 정기호(鄭基浩·1899~1989) 선생의 제자이며, 정 선생에 의해 명맥을 이어 오던 600년 전통 옥새 제작 비전(秘傳)을 유일하게 계승한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다. 민씨가 그동안 언론에서 밝힌 자신의 이력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나는 16세에 석불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17년간 혹독하게 서예, 전각, 옥새 제작 기술 등을 익혔다. 스승이 40세가 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말라고 해서 그동안 미술계 활동만 하면서 옥새는 만들지 않았다. 스승이 타계하기 전에 나를 21대 옥새전각장으로 인정해서 호를 세불(世佛)이라고 지어 주었으며, 스승으로부터 600년 이상의 옥새 제작 비전인 <영새부>(榮璽)를 물려받았다. 영새부는 옥새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옥새전각장 사이에 은밀히 일대일 구술(口述)로 전해지던 옥새 제작 비법이다. 이로써 나는 옥새 제작 기술을 보유한 유일한 옥새전각장이 되었다.>
이러한 민씨의 주장은 2005년 7월 스스로 펴낸 <옥새>라는 책에 대부분 그대로 수록돼 있다. 이 책에서 민씨는 비전되어 왔다는 <영새부>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영새부에 따른 옥새 제작 과정을 소개해 놓았다. 민씨는 또한 “영새부에 따르면 우리 전통 옥새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음과 양의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8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5가지 흙을 섞은 오합토로 거푸집을 만들고, 통치자의 승운(乘運)을 위해 다섯 가지 금속(오합금)을 섞어서 만든다”고 주장했다.
민씨가 옥새를 만드는 과정은 2008년 2월 KBS에서 ‘600년의 비전’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당시 KBS 방송에는 민씨가 주장해 온 국새제작 방법이 ‘별다른 검증 없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하지만 결국 “전통 옥새는 오합금을 섞어 만든다”는 민씨 주장은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민씨 사기 행각을 누구도 몰랐을까’라는 의문에서 취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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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홍규 4대 국새 제작단장. |
국새에 주석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행안부의 발표에 대해 민씨는 경찰에 소환되기 직전인 8월 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내가 제출한 국새제작 최종 보고서에 사용 재료에 주석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없다”며 “행안부가 이런 사실을 빼고 내가 계약 내용을 어긴 것처럼 발표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씨는 “국새에 주석을 넣으면 깨진다”고 주장했다.
민씨의 20년 지인이라는 박모씨는 “민홍규씨로부터 주석은 주물시작 전 소량이 들어가기 때문에 산화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씨가 만든 국새에 주석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은 곧 영새부의 비전(전통방식)에 따라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들었다는 민씨의 그동안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과 같다.
민홍규씨는 지난 십수 년간 600년 비전을 지닌 옥새전각장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누구도 그의 본모습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가기관마저 검증해 보려는 노력조차 없이 국새제작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하지만 기자는 그동안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아무리 민씨가 남을 속이는 재주를 가졌고, 국가의 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 해도 일개 전각(篆刻) 장인(匠人)에게 수많은 사람이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홍규씨는 어떤 사람인지 또한 4대 국새 제작단장 선정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취재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한 것이다. 기자는 4대 국새 제작에 관련했던 심사위원과 자문위원, 기타 민씨의 주변 인물들과 차례로 접촉했다.
관련 공무원, “그냥 그런 분위기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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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홍규씨가 만든 4대 국새. |
그러다가 1998년 민씨가 고종황제 옥새를 복원하여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후 민씨는 여러 언론에 전통옥새장으로 자주 소개되기 시작한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석불 정기호 선생에게 옥새 기술을 전수받았으며, 옥새는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한 시대 한 사람의 장인만이 필요했는데 내가 유일한 옥새장인”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민홍규씨는 현재 자신의 직함으로 ‘옥새전각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인장 분야 한 장인은 “민홍규씨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을 속이면서 전통옥새 장인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옥새전각장’이란 직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민씨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600년 옥새 제작 비전’이란 것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그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민씨가 주장한 600년 비전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민씨는 존재하지도 않는 옥새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옥새전각장’이란 직함을 사용해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기술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민씨는 옥새 제작 기술을 가진 유일무이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그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민씨 주장에 반박 자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그게 뭔지 의심도,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행자부 담당자에게 “전문가를 인정하고 관리하는 국가가 어떻게 개인에게 그렇게 속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3대 국새에 금이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었고요.”
―그래도 일을 추진할 핵심 기술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선정했습니까.
“그때는 우리뿐 아니라 관련된 전문가든지 언론이든지 모두가 그 사람 말을 믿었지 않습니까? 전부 다 민씨가 훌륭하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상황이 바뀌니까….”
―그렇더라도 정부가 기술 검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 사람이 단장으로 그대로 통과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당시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와서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추호도 의심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행안부 다른 관계자도 “당시에는 아무런 의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국새 담당 공무원을 두둔했다. 그의 말이다.
“2003년 무렵부터 갑자기 각종 언론이 민씨가 전통 옥새 제작 비법을 가진 사람으로 엄청 띄워 놓았습니다. 그때 실무를 담당한 우리 의정팀 직원들도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믿어 버린 결과로 흘렀습니다. 국새 하면 ‘민홍규, 600년 전통’, 이런 것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공모를 할 때도 특히 인뉴 부문에서 민홍규를 참석시켜야 한다는 자문위원 사이에 여론이 있었나 봅니다.”
―모셔온 격이네요.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일단 참여는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래서 국민공모를 했는데, 민씨가 두 가지 분야에서 모두 당선이 되니까 자문위원회의에서 단장으로 결정해 버린 거죠, 뭐.”
민씨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떠들고 다녔고, 언론에서 그걸 믿고 썼고, 전문가도 민씨 주장을 확인도 안했고, 공무원도 검증조차 안했고…. 결국 누구의 확인도 없이 ‘카더라’ 식으로 이번 사건이 굴러 온 셈이다.
민씨, 200만원짜리를 30억원이라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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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2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명품관 에비뉴엘 갤러리에서 열린 민홍규씨의 ‘600년을 이어온 세불 옥새전’에 전시된 봉황 국새. 민씨는 당시 이 국새가 30억원 상당이라고 밝혀 관심을 받았다. |
민씨가 <옥새>라는 책을 발간할 무렵인 2005년은 4대 국새를 새로 제작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을 때였다. 일부 언론이 당시 사용되고 있던 3대 국새에 금이 갔다는 보도를 하면서 국새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1962년부터 37년간 사용되던 2대 국새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국새를 새로 제작한다는 명분에 따라 현역에서 퇴출당했다. 1998년 5월 정부는 새로운 국새를 만들기 위해 국새제작자문위원회(위원장 정양모)를 발족했고, 이듬해인 1999년 1월 새로 만들어진 국새가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2005년 정부가 새로운 국새를 제작하려고 자문위원회 구성을 준비할 무렵 민홍규씨는 대대적인 옥새 전시회를 열기 시작한다. 처음 연 곳은 2003년 인천 신세계백화점에서다. 하지만 민씨는 이후 한참 동안 옥새 전시회를 열지 않다가 2006년 2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600년을 이어 온 세불 국새전’을 열었다.
민씨는 당시 전시회에 출품된 국새가 백금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30억원짜리라고 홍보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이 당시 민씨가 전시한 국새를 압수해서 분석한 결과 인조다이아몬드가 박힌 원가(原價) 200만원짜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민씨는 작년에 롯데호텔에서 40억원짜리 다이아몬드 봉황 국새라며 전시회를 했는데, 경찰은 이것도 2006년에 출품했던 작품과 동일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씨는 지난 9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2006년 전시한 진품은 제작비용을 부담한 지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2009년 전시한 봉황국새는 2006년 전시한 진품의 모조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만약 매수자가 나올 경우 제작비용을 받아 정식으로 제작하여 줄 예정이었다”며 “고가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감정 없이 전시품을 그대로 판매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민홍규씨는 현재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가족과 민씨 지인들이 기자회견을 함=편집자 주).
이어서 2006년 3월 민씨는 전주국립박물관에서 옥새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해 6월 정부가 4대 국새를 만들기 위한 국새자문위원회를 구성했으며 11월에 국새 모형(인문 및 인뉴)에 대한 공모를 했다. 그 결과 인뉴와 인문 부문 모두에서 민홍규씨의 작품이 선정됐다. 이후 민씨는 국새제작단장을 맡아 2007년 한 해 동안 국새를 제작했고, 민씨가 새로 만든 4대 국새는 2008년 1월부터 사용되고 있다.
2006년 3월에 개최된 전주국립박물관 전시회는 현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인 신광섭(申光燮)씨가 전주국립박물관장으로 재직할 때 열렸다. 신광섭 관장은 민홍규씨가 일등으로 선정된 4대 국새 모형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신 관장은 “2006년 2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민씨의 국새전시회에 가 보았는데 아주 재미있어서 전주에서도 전시회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 관장의 설명이다.
“저는 당시 막 전주국립박물관에 부임한 상태였습니다. 지방 박물관은 활성화가 안되어 있어서 시선을 끄는 이벤트가 있으면 관장으로서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특히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향(本鄕)이고, 왕실 문화에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실 공예품의 하나인 옥새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 보았고, 이후 전주에서도 개최했던 것입니다. 엄청나게 반응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민씨가 저를 도와준 격이죠. 허허.”
―국새 심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요.
“제가 솔직히 인문 부문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행자부에서 심사를 좀 맡아 달라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고, 또 국새를 심사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참여한 것입니다.”
―심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요.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게 번호가 붙은 작품이 30점 정도 출품되었습니다.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아니었고, 서로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잘된 작품을 골랐던 것 같습니다.”
2005년 7월 민홍규씨는 <옥새>라는 책을 펴내면서 일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이 무렵 ‘국새(3대)에 금이 갔다’는 보도가 나왔고, 감사원은 국새를 정밀감사하기에 이른다. 감사 결과 국새 내부에 금이 간 것으로 확인되자 2005년 9월 정부는 “국새를 새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새 보도 기자, “경찰 발표 안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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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불 정기호 선생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 선생. |
그는 2006년 당시 새 국새(3대)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함과 동시에 민홍규씨를 여러 차례 신문 지상에 소개한 적이 있다.
조 기자는 민홍규씨 국새 사건으로 많은 언론이 민씨를 지탄하는 가운데서도 ‘언론이 마녀사냥 하듯 민씨를 몰아붙이고 있다’며 민씨를 옹호하는 칼럼을 썼다. 조 기자의 설명이다.
“비록 제가 직접 민 선생(민홍규)이 국새를 만드는 가마에는 못 가 보았지만,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직접 제작하는 것을 보았다고 모두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민 선생과 최근 통화를 했는데, 민 선생은 같이 국새제작 일을 했던 이창수씨 등 몇몇이서 민 선생을 코너로 몰아 매장하기 위해 꾸민 음모라고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민 선생이 있는 한 자기들의 이름을 알리고 자리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사업(황금 골프퍼터 사업) 건으로 얽힌 문제 때문에 이창수씨 등과 사이가 벌어졌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민씨가 경찰에서 전통 국새제작기술이 없다고 시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저는 현재 경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처음으로 터뜨린 쪽 사람들의 말만 믿고 언론에 흘리는 것 같아요.”
―민씨가 전통기술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확신하나요.
“제가 예전에 3대 국새에 금이 갔다는 것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3대 국새 제작을 담당했던 전 행자부 담당 사무관이 민홍규씨에게 자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그분이 민 선생에게 국새제작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민 선생이 ‘전통적인 옥새 제작은 한 사람이 맡아서 전분야를 해야지 나누어서 작업을 하면 안 된다’며 빠졌다고 하더군요. 3대 국새를 만들 때 국내 최고의 주물 과학자들이 동원되어 현대식으로 제작했는데, 결국 제대로 못 만들어서 국새에 금이 가고 결국 다시 만들게 된 것 아닙니까? 새로 만든 국새는 아주 잘 만들어졌습니다. 국새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민씨도 보도자료 통해 “전통기술로 만들었다”고 경찰 발표 뒤집어
―민씨가 만든 4대 국새에는 주석이 안 들어갔다고 했다던데요.
“그 부분도 민 선생에게 들었는데, 금과 주석이 섞이면 국새가 깨지기 때문에 주석을 잘 활용해야 한대요. 순식간에 주석을 집어넣는 기술이 바로 민 선생이 전수받은 비법이라고 하더군요.”
―조 기자가 아는 민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대학도 나오지 않고, 전각 업계에서는 재야(在野) 인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분이 국새제작이란 중책을 맡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모든 도장(인장) 업계의 공적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분이 우수한 기술로, 한마디로 인장 업계를 평정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민 선생이 인장 학계의 주류에 밉보여서 서울 등지에서 전시회도 제대로 못 열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민홍규씨를 신뢰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의 행적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글쎄요. 제가 가장 난처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텐데…. 민 선생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저 외에도 타회사 기자 포함 네댓 명 더 있어요. 우리가 가끔 만나면 재야에서 어렵게 지내던 민 선생을 발굴해서 결국 국새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게 힘을 보탠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 점에서 보람을 느끼죠. 혹시 2006년 3월에 한 전주박물관 전시회 도록(圖錄) 보셨어요? 거기에 실린 옥새 한번 보세요.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민씨는 자신의 국새제작 논란에 대해 지난 9월 13일 기자회견에서 “4대 국새는 행안부와 계약대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서 진술했다는 것을 다시 뒤집는 내용이다. 다음은 민씨의 주장이다.
“납품한 국새는 전통기법에 따라 경남 산청 국새전각전에서 제작되었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언론에서 국새제작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현대기법은 실물을 제작하기 전 샘플제작을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4대 국새가 현대기법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보도되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전통 주물기술로 만들어진 국새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한 치의 흠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후 현재까지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의혹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개시연을 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석불 아들, “아버지 몇 번 찾아오고 수제자 행세해”
기자는 조 기자가 언급한 전주에서 연 민씨의 옥새 전시회 도록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석불 정기호 선생의 아들인 정민조(67·목불) 선생의 옥새전 축사가 있었던 것이다. 정민조씨는 민씨 국새 사건이 불거지자 언론 인터뷰에서 “민씨는 아버지(정기호)의 제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2006년 민씨의 전주박물관 국새전 도록 서문에 써 준 글에는 분명히 “민씨는 아버지의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민조씨는 현재 울산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전각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정민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우렁찬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 왔다. 정씨는 민홍규씨 이야기를 꺼내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민씨를 “민군”이라고 불렀다.
“민군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인 1987년인가 우리 집에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수제자가 아닙니다. 수제자는 평생을 수발하면서 기술을 전수받는 사람인데, 몇 번 왔다 갔다 한 게 어떻게 수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동안은 왜 침묵하고 있었습니까.
“(흥분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20년 전에 저는 세상과 등지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민군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어떻게 알아요. 국새를 만든 줄 몰랐어요.”
정씨는 전주박물관 전시 도록에 축하 글을 써 준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써 주긴 뭘 써 줘요. 민군이 나한테 전화해서 ‘전시회 하는데 축하 글 하나 써 달라’고 해서 내가 ‘무슨 전시회인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쓰냐’고 했더니, ‘그럼 내가 쓸 테니 사인만 좀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언젠가 나를 찾아와서 백지에 사인을 받아 갔습니다. 나는 그때 ‘그래도 저놈이 내 이름이라도 팔아서 밥이라도 먹고 살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사인을 해 줬습니다. 요즘 보니 도록 서문에 온통 나를 깎아내리는 내용투성이인데 내가 미쳤다고, 그런 글인 줄 알았으면 사인을 해 줬겠습니까.”
민씨, 사문서 근거로 옥새전각장 계보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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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옥새간회정도. 민홍규씨가 “스승 석불 정기호씨에게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유고집. |
민씨가 그린 계보도는 조선시대 각종 행사를 기록한 의궤와 국왕과 왕세자의 도장인 보인(寶印)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 등에 등장하는 옥새 제작 장인들의 명단이 나열돼 있다. 보인소의궤는 1876년 경복궁 교태전에 불이 나 이곳에 보관하던 국새 대부분이 손상되자 고종의 명으로 옥새와 인장 11점을 제작할 당시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민씨는 보인소의궤 등 국가 공식 기록물에 등장하는 옥새 장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다가 마지막 이름(전흥길)의 뒤에 ‘황소산-정기호-민홍규’로 연결해 놓았다. 즉, 자신의 스승이라고 주장하는 석불(정기호)과 그의 스승 황소산이 국가 공식 기록물에 등장하는 전흥길 옥새 장인의 제자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민씨는 그러면서 그 근거로 사문서(私文書)를 들었다. 민씨가 증거라고 한 문서는 자신이 석불로부터 받았다는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다. 민씨는 이 문서가 석불이 쓴 회고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물을 직접 본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10여 쪽의 필사본이라고 했다. 국가 공식 기록물에 나오는 마지막 옥새 장인(전흥길)의 기술을 황소산씨가 이어받았다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공식 기록으로는 발견되지 않고, 다만 석불(정기호)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문서에만 나오고 있다.
정기호 선생의 아들 정민조씨는 “황소산이란 사람은 아버지(정기호)에게 동장(銅章·구리도장) 파는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황소산 역시 대한제국의 국새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민씨는 정기호 선생의 스승이라는 황소산에 이르러서는 그전에 쓰던 ‘보장’이란 명칭을 버리고 갑자기 ‘옥새전각장’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그 근거 역시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정기호씨의 아들 정민조씨는 옥새 장인의 계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옥새 장인의 계보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습니다. 더군다나 600년 동안 무슨 비법으로 내려오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방 후 1호 국새를 만들 때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도장을 제일 잘 판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나라에서 아버지에게 국새제작을 맡겼다고 봅니다. 당연히 글씨는 아버지가 파도 손잡이 부분은 다른 장인들과 같이 작업을 했겠죠.”
―황소산이란 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까.
“중국에서 전해져 온 동장(銅章) 기술을 배워 아버지에게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쇠도장을 파던 사람인데 옥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동장은 민씨가 로비 등에 사용했다는 손가락만 한 황금도장 종류를 말한다. 하지만 정민조씨는 “원래 동장은 구리로 만들기 때문에 이름을 동장이라고 한다”며 “민씨가 이것을 황금으로 만든 것은 돈벌이 목적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자신의 책 <옥새>에서 동장(금장, 금도장)에 대해 상당 부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민씨는 금장에 대해 ‘소옥새’라고 표현하며 ‘몸에 지니면 몸을 보호하고, 기운을 돋우며 옛날에 임금이 훌륭한 정사를 하기 위해 항상 몸에 지닌 신물(神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취재 중 알게 된 민씨 주변 인물 중 한 명은 “금장은 민씨의 가장 중요한 수익성 사업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민씨가 대기업 사장들에게 4500만~4600만원에 금도장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는 실제로 금도장 하나가 이만한 가격에 팔렸는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민씨가 노무현 대통령 부부에게 주었다는 금도장은 안에 쇠를 넣은 가짜 금도장이라는 제보도 들어왔다.
석불의 1호 국새 제작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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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남은 1호 국새. 민홍규씨는 <고옥새간회정도>에 그려진 용모양 그림이 1호 국새의 모습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아버지가 1호 국새를 제작했다고 해서, 그것이 민홍규가 주장하듯이 아버지가 600년 옥새 제작 계보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민씨가 그동안 옥새 전시회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니까 솔직히 여느 금 세공방에 맡기면 다 만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처음부터 용서를 구하고 나왔으면 될 텐데….”
기자는 석불(정기호)이 실제로 국새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1978년 펴낸 <석불전각전>이란 도록을 확인했으나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바로 그해 석불 기사를 다룬 ‘인장연합회보’란 신문 기사에서도 석불이 국새제작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전각계의 한 학자는 “실제 국새를 만드는 데 참여했으면 영광스러운 일이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기록을 통해 남아 있을 텐데 없다는 것은 그가 1호 국새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더 크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손환일 서화미디어 대표는 2006년 4대 국새 모형 심사위원에 선정되어 심사에 참여했고, 그 무렵 1호 국새를 누가 만들었는지 논쟁이 벌어지자 국가기록원의 의뢰를 받아 1호 국새 고증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조사 보고서에서 “정기호씨가 대한민국 1호 국새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이런 결론은 민홍규씨가 주장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민씨가 정기호씨를 통해 600년 옥새 기술의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었다. 손 대표의 설명이다.
“당시 공식 기록 어디에도 1호 국새에 정기호씨가 관여했다는 기록이 없었습니다. 다만 민씨가 제시한 <고옥새간회정도>에 삽입된 왜정 시대 신문에 국새 도장이 4~5개 찍힌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고증하니 1호 국새와 상당한 관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기호 선생이 만들면서 연습으로 찍어 본 것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고옥새간회정도를 정기호 선생이 만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도장도 정기호 선생이 찍은 것이라고 믿고, 결국 정 선생이 국새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당시 왜 갑자기 1호 국새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까.
“1호 국새가 제작될 무렵은 우리나라가 혼란기라서 국가 기록 자체가 허술하게 관리되었습니다. 1호 국새도 사진만 한 장 덜렁 있는 상황이었는데, 민씨 측이 사진의 국새가 진짜가 아니고, 자기가 가진 고옥새간회정도에 실린 그림이 1호 국새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하니 당연히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사를 하면서 <영새부>라는 것은 보았는지요.
“<영새부>를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궁금해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안 보여줘요.”
취재 중 만난 어느 장인은 “2005년 말 벌어진 1호 국새 진위 논쟁은 초반에 당시 민씨가 국새제작 전통기술을 가졌다고 믿는 기자들로부터 제기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1호 국새를 정기호 선생이 만든 것으로 공식 확인이 되면, 민홍규씨는 정 선생의 제자로 입지가 더욱 굳어지고, 경우에 따라서 1호 국새를 복원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민씨 등은 사진으로 남아 있던 1호 사진을 삽살개라고 폄하하고, 민씨가 소장한 고옥새간회정도에 정기호 선생이 그린 ‘태극익룡’이란 그림이 원래 1호 국새라고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민씨 등은 1호 국새를 태극익룡으로 복원한다고 주장했었거든요.”
손환일 서화미디어 대표는 “내가 고증한 결과 1호 국새는 삽살개가 아니었다”며 “자칫하면 1호 국새와 4호 국새 모두를 민씨가 제작할 뻔했다”고 말했다. 현재 1호 국새 복원 논의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이장열 원장은 국새 사건 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1호 국새 논란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1호 국새 복원추진방안 보고서>에서 행자부 국가기록원의 모든 공식 자료가 무시되고 정기호의 고옥새간회정도의 내용에 근거해서 정기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의 말이다.
“이 세상에 혼자만의 비법이 있다는 말은 언어도단입니다. 보인소의궤에만 해도 국새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77명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씨를 새긴 장인만 9명입니다. 국새제작은 어느 한 사람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인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공정입니다. 민씨는 ‘비법’이니 ‘비밀’이니 하면서 감추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기호씨로부터 구체적으로 무엇을 전수받았는지 소상히 밝혀야 합니다.”
핵심인 국새 주물 과정 빠진 백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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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국새제작 공모전에 출품되어 당선된 민홍규씨 국새 모형 작품. |
또한 행안부가 공식 기록한 <4대 국새 백서>에도 ‘4대 국새 거푸집은 현대식 가마에서 밀랍을 녹여 냈다’고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행자부가 민씨와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기로 해 놓고 그렇게 만들지 않았는데도 당시에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행안부에서도 그 어느 누구 하나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다.
2009년 12월 발간된 4대 국새 백서는 신광섭 관장을 포함한 국립민속박물관 직원 3명이 담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실무작업은 민속박물관의 A과장이 진행했다.
백서에는 민홍규씨가 전통기술로 국새를 제작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전통금속 공예가 이창수씨가 국새의 거푸집 제작, 합금, 주물, 인뉴와 인면 접합, 마무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백서에는 거푸집을 현대식 가마에 넣고 밀랍을 녹여 냈다고 기록했다. 한마디로 4대 국새 제작을 민홍규씨가 전통방식에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이창수씨가 현대방식으로 제작했다고 공식 기록을 한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행안부가 제작한 <국새>라는 소책자에는 이창수씨가 ‘보조장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기관에서 발간한 공식 기록물이 서로 다른 것이다.
4대 국새 백서는 254쪽 가운에 국새제작 과정을 26쪽 분량으로 간략하게 기록했다. 나머지는 의장품에 대한 기록이다. 백서 자체가 기형적이다. 이에 대해 A과장은 “백서는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원칙인데, 민홍규씨는 국새 주물 과정이 전통비법이라면서 제작과정을 보여주지 않아 그것을 빼고 백서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과장의 설명이다.
“제가 무형문화재에 대한 기록물을 많이 만들어 봤는데 장인들이 기록자에게 핵심 전통기술을 감추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민씨는 국새의 거푸집 제작과정에서 기록담당관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 이전에 민씨는 서울시의 인간문화재 신청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심사한 분들이 민씨가 600년 전통을 가졌다고 판단했으면 인간문화재에 지정되었겠죠.”
민씨는 이 부분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A과장이 경남산청의 제작 현장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반박한 적이 있다.
백서의 기록이 국새제작 계약 사항과 다르게 기록된 것을 알지 못했을 리 없는 행안부는 이후 국새 사건이 불거질 때까지 민씨가 만든 국새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취재 중 만난 민홍규씨의 주변 인물 중 한 명은 당시 국새제작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었으나, 5가지 흙으로 거푸집을 만드는데 흙을 어디서 가져오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산청에 있는 대왕가마에서 주물 작업을 했다는데 작업한 흔적이 없어서 결국 프로그램 제작을 중도에 포기했다는 후문도 소개했다.
민씨의 국새제작단에 소로장(小爐匠)으로 참여했던 황동구씨는 “얼마 전 2007년 12월 제작 당시 행자부 장관이 참석해서 국새 거푸집을 깨는 의식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는데 미리 석고로 만들어 놓은 가짜 거푸집을 깨는 장면이 보였다”고 말했다. 황씨의 설명이다.
“저는 당시 가마를 지을 벽돌을 구웠습니다. 두 달 동안 생업도 미루고 인부 4~5명을 데리고 전국 명산을 다니며 흙을 구해서 벽돌을 구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마를 제작할 때는 민씨가 저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나에게 일을 맡기면 자기가 가짜라는 게 탄로가 날까 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민홍규씨는 국새제작 전통기법이 없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 9월 13일 발표한 기자회견 자료에서 “내가 사소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전통장인으로서 명예를 실추시키는 횡령, 사기행위를 할 이유가 있겠냐”며 “전통기술을 현대적으로 이해·해석하기 어렵다고 폄하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심정을 밝혔다.
민씨의 20년 지인이라는 박모씨는 “민씨는 석고는 만질 줄도 모른다”며 “대왕가마 기술을 빼앗으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민씨 작품은 원래 공모 기준에 맞지 않았는데도 선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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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의 국새, 어새(御璽), 어보(御寶), 보인(寶印) 등을 수록한 <보인부신총수>. |
인문 부문 심사위원이었던 김선원 서예감정가는 “민홍규씨 작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는데, 나는 끝까지 반대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틀림없이 공모 기준에는 훈민정음체라고 되어 있었는데, 민씨는 ‘대한민국’의 ‘국’자 받침인 ‘ㄱ’을 한 획이 아니라, 두획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부분에 작가가 밝힌 출품 의도를 보니 ‘ㄱ’을 두 획으로 해야 국운이 융성한다고 해 놓았습니다. 저는 국새에 샤머니즘적인 정신이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봤습니다.”
인문 부문의 또 다른 심사위원이었던 손환일 서화미디어 대표는 “설사 민씨 작품이 일등으로 선정되었다 하더라도 국정 사업을 일개 장인에게 맡겨 놓고 정부가 손을 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신도시를 건설하는데 건설 단장이 일개 건축가인 경우도 있습니까? 또 의장품목 제작을 하는 장인들을 왜 민홍규씨가 모두 결정합니까. 국새에 그런 의장품이 필요하다면 국가가 나서서 장인들을 섭외해야죠. 행자부가 도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관리 감독도 안 하고 민씨에게 단장이란 이름 아래 모든 것을 맡겼으니 이런 일이 터진 것이죠. 국가 기능이 총체적으로 부실해서 생긴 사건이라고 봅니다.”
인뉴 부문을 심사했던 허균 한국민예미술 연구소장은 “인뉴 부문은 출품 작품 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된 작품은 한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인뉴가 손잡이이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을 고려해서 심사한 결과 민씨 작품이 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새 사건이 불거지자 행안부 관계자는 “국새제작자문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절차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최은철 한국전각학회 이사는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이 단장이 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없다가 마지막 회의에서 갑자기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7차 회의 때 갑자기 국새제작단 구성 및 의전품(국새 함, 보자기,궤, 자물쇠, 끈 등) 제작이라는 안건이 올라와 있더군요. 국새에 의전품이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그런 의전품도 만든다는 규정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자문회의에서 논의했어야죠. 왜 마지막 회의에 슬며시 집어넣어 민씨에게 모든 것을 맡겼는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최은철 이사는 “당시 자문위원들은 심사위원들이 3점의 작품을 선정해서 점수나 등수를 매기지 말고 자문회의에 보내 주면 자문위원들이 1등을 뽑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막상 넘어온 작품을 보니까 이미 심사위원들이 민홍규씨 작품을 ‘당선작’이라고 정해 놓았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민씨 사건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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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인소의궤에 실린 국새 장인 이름. ‘전흥길’이라는 이름이 보인다(화살표). 민홍규씨는 이 전흥길로부터 황소산-정만조-민홍규라는 옥새전각장 계보가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최 이사는 “내가 항의를 했더니 행자부 직원들이 ‘민홍규씨 것으로 선택해 주면 자획을 좀 고치도록 하겠다’고 말해서 그렇게 결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의 시간이 30분 정도로 정해졌고, 다른 안건도 있으니까 그냥 행자부 직원 말을 듣고 흐지부지 넘어간 것 같습니다. 회의가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무슨 추인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기자가 당시 행자부에서 자문위원들에게 배포한 회의 자료(1~7차)를 살펴보니 2006년 3월에 개최된 1차 자문위원회의에서 이미 민홍규씨의 이력서가 참고자료 형식으로 회의자료 뒤에 첨부되어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자문위원들도 회의 때마다 ‘민홍규’라는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말했다.
최은철 이사는 “‘민홍규라는 사람은 언론플레이가 심하구나’라고 생각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심지어 심사위원 중에 한 명은 민씨가 지었다는 <옥새>라는 책을 가져와서 보여주기에 ‘민홍규씨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자문위원이었던 조창룡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민홍규씨가 제작단장을 맡고, 국새제작단까지 구성한 것은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 역할은 심사에서 올라온 작품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심사위원이 1등으로 뽑은 사람이 갑자기 단장이 되어서 나타납니까? 또 국새제작단 인원 선정에 대해선 한마디 회의도 없이 전부 민씨에게 맡겼잖아요. 그런데도 절차상 아무 하자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최병훈 인장공예 명장은 “국가 상징물은 시대상이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통공예 분야에서 손으로 작업하는 것은 모두 ‘전통’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조는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국새를 만들 때는 서예, 인장, 디자인 등에서 최고 학자들이 연구해서 국새 모형을 결정하고, 기능인은 학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표현하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학자와 전문가들이 자기 역할을 못하니까 600년 전통을 가졌다는 민씨의 말 한마디에 공무원이고, 전문가들이고 모두 꼼짝도 못하고 민씨에게 농락당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민홍규씨가 세상을 속이려고 했다고 한들 이렇게 철저하게 주변 사람 모두가 농락당할 수 있을까. 그 수많은 전통장인, 전문가, 교수, 공무원들, 기자는 다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을 봤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심사위원이란 사람들, 국가적 사업을 관리하면서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은 행정부 공무원들. 민홍규씨 사건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불심
(201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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