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인터뷰] ‘학력 위조 파문’ 3년여 만에 최초로 입 연 申貞娥씨 : 월간조선

지난 6월 초,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여성 원로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신)정아, 그 아이는 정말 똑똑하고 우리 미술계에서는 일도 잘하는 아이였는데 우리 사회의 마녀사냥에 희생당했어. 참 안타까운 일이야. 저지른 잘못의 크기에 비해 우리 사회로부터 너무 가혹한 채찍질을 당했어. 권력형 비리로 만들기 위해 부도덕한 섹스 스캔들로 몰아가고 말이야.”

학력 위조 파문으로 시작해 권력층 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2007년 하반기 내내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신정아(申貞娥)란 이름 석 자를 기억하고 있는 기자로서는 이 미술계 원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점이 가혹했다는 말입니까.

이 원로는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답했다.

“언론인들은 참 무책임하지. 그걸 벌써 잊었나 보지? 그때 신문, 방송, 인터넷 할 것 없이 몇 달 동안 얼마나 시끄러웠어. 사회 곳곳에서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파문이 터진 것은 둘째치고라도 알권리라는 미명하에 (신)정아 누드사진을 버젓이 공개하면서 고위층에 성(性)로비한 것처럼 몰아가고, 그래서 엄청난 권력형 비리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 띄우고… 그때의 보도 분위기대로라면 지금 정아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어야 돼. 그런데 그 법적 처리 결과가 어떻게 됐어?”

누드 파문 등 ‘야릇한 이미지’로 신정아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기자는 그 원로와의 만남 직후 이른바 ‘신정아 스캔들’을 다시 훑어봤다. 결론은 명쾌했다. 엄청났던 사회적 파장에 비하면 결과는 용두사미(龍頭蛇尾),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었다.

태산(?)이 흔들렸는데 죽은 건 쥐 한 마리

‘신정아 스캔들’은 2007년 7월 신정아씨의 학력위조에서 시작됐다. 신씨가 예일대 박사학위를 위조해 동국대 조교수에 임명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변양균(卞良均)씨와 신씨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변씨의 외압으로 신씨가 동국대 교수로 임명되는 등의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의혹이었다. 결국에는 한 언론이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을 공개한 후 이른바 성(性)로비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 사건은 지난 2000년 정국을 흔들었던 ‘린다 김 사건’에 비견되면서 일파만파로 커졌다. 언론은 이 사건에 ‘변양균-신정아 게이트’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린다 김 사건’은 김영삼(金泳三) 정부 시절 국방사업인 백두사업추진 과정에서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재미 로비스트인 린다 김과 연애편지를 교환하는 등 애정 관계가 얽힌 ‘부적절한 로비’를 받은 의혹이 제기됐던 사건이다.

검찰은 결국 2007년 10월 말 신씨와 변씨를 구속기소했다. 신씨는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 등 허위학력으로 동국대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감독에 임용된 혐의(업무방해)와 자신이 일하던 성곡미술관 공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고, 변씨는 예산 특혜를 약속하고 신씨를 동국대 교수에 임용되도록 한 혐의(뇌물수수), 대기업에 외압을 넣어 미술관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 흥덕사와 보광사에 탈법적으로 특별교부금 배정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그해 12월 중순,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다가 2005년 3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당시 김석원(金錫元) 전(前) 쌍용그룹 회장으로부터 ‘석방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변씨를 추가 기소했고, 신씨도 2007년 2월 김 전 회장의 ‘특별사면 청탁’ 명목으로 200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추가기소했다.

이 가운데 법원이 인정한 죄는 신정아씨의 경우 학력위조뿐이었다. 뇌물혐의 등은 무죄 처리됐다. 학력위조와 관련 신씨는 1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신씨는 2009년 4월 징역 만기일 직전 보석으로 풀려났다. 학력위조 부분에 대해서도 신씨는 여전히 학위브로커에게 속았다는 입장이다. 위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변씨에 대해 대법원은 2009년 1월 말, 뇌물수수와 제3자 뇌물수수, 업무방해, 알선수재 등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다만 흥덕사 등에 특별교부세가 배정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게이트’라고까지 명명됐던 사건치곤 싱거운(?) 결말이 난 셈이다.

“내 말을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제7회 광주 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임됐던 신정아씨와 오쿠이 엔위저(Okui Enwezor)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대 학장.

기자는 지난 6월 하순 신정아씨와 연락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미술계 인사와 종교계 인사를 통해 신정아씨에게 인터뷰 의사가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답은 “내 말을 사람들이 믿어줄까요?”였다. 신씨 주변 지인들은 아직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신씨에게 세상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물었다. 이번에 돌아온 답은 “하인리히 뵐이 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책을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선정적인 언론이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성실하게 살아왔던 27세의 평범한 여인인 카타리나 블룸이 언론의 허위 보도와 그에 호응하는 군중에 의해 살인범의 정부(情婦),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신씨의 답에서 신씨가 겪었던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한 여인으로서 그녀가 갖고 있는 상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씨의 법적 대리인인 김재호 변호사의 중개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요즘 근황은.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건강도 치유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2004년 5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직접 겪은 후 추진력이 강한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당시 긴 시간(24시간)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의 심정과 1년 반 동안 영어(囹圄)생활의 고통을 비교해 본 적이 있는지요.

“비교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풍 사고의 경우는 순식간 일어난 사건이었고, 그 짧은 찰나에 삶과 죽음이 오가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통’이라고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삼풍 사고 후 저는 헬렌켈러의 <삼일만 볼 수 있다면>처럼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넘치는 열정이 때로는 주변을 힘들게 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언론에 자주 나왔던 용어 중 ‘과욕’이라는 부분이 그랬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 ‘과욕’으로 비칠 수 있었다는 것도 이번 사건을 겪고 알게 되었습니다.”

―감옥생활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1년6개월의 수감생활은 죽을 만큼의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지만, ‘살아진다’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통도, 아픔도, 추억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야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순간도 제가 누구였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살아진다’고 해서 ‘저’를 놓아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 오갈 곳이 없어서 죄를 짓고 징역살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아픈 사연들을 듣고 바라보면서 그래도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나를 믿어주신 어머니”

―책 출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언제쯤 출간할 계획이고, 내용의 개략을 말해 줄 수 있는지요.

“제가 그동안 겪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쓴 것입니다. 출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건 전(前)과 후(後), 신정아씨 개인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사건 전에는 ‘불가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죠. 사건 후에는 ‘가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저 위에 계신 분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가족, 특히 어머니의 정신적 고통이 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서로 어떻게 위로해 주고 위로받았습니까.

“문명사회(출감 후)에 나온 후, 어머니를 한 번 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변호사님께 누차 여쭤본 것이 정말 우리 딸이 그런 사랑을 한 것이 맞는지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억측과 소설이 언론을 통해서 나오는 데도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저에 대한 ‘여자’로서의 신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고통을 제가 무엇으로 위로를 해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행여 저희 어머니나 가족이 변(양균) 실장님을 조금이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까 봐 저는 제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직접 자신의 성장환경을 말해 줄 수 있는지요.

“할아버지는 식품회사 창업에 관여하시다가 작은 할아버지께 모든 일을 맡기고, 1960년대 말 경북 청송으로 내려가서 주유소를 개업하셨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택시회사와 주유소 몇 개, 버스정류장을 운영하실 정도로 저희 집은 부유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가지고 있는 땅이 많아서 제가 어렸을 때에는 제가 사는 청송이 모두 우리 것인 줄 알 정도였습니다. 집안에서는 제가 첫 손녀여서 제가 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었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오빠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구로 보내져 교육을 받았고, 저는 유일한 손녀딸이라고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는 시골 할아버지댁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내내 할아버지께서 따뜻한 점심을 먹이기 위해 일일이 학교에 도시락을 싸서 갖다 주셨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붓글씨와 동양화를 배웠고,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웅변, 승마, 골프 등 웬만한 잡기는 모두 조금씩 할 줄 압니다. 큰오빠가 대학에 들어가고, 작은 오빠가 대입 재수를 하게 되자 부모님께서 서울 서초동에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다닐 때 서울로 전학을 와서 오빠 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제가 서울로 전학을 온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청송과 서울을 오가면서 저희 삼남매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제가 미술 전공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끝까지 반대를 하셔서 결국 로스쿨에 가는 조건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만큼 부모님이 저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하였고, 저는 그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결국 미국유학에서 제가 원했던 그림 공부를 계속 했고, 1994년에는 아버지를 잃었고, 95년에는 삼풍 사고도 당했습니다. 그 후의 인생은 덤으로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제가 원하고, 제일 자신있게 잘할 수 있는 전시기획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정말 즐겁고 행복했었습니다.”

변 실장과의 관계를 말하다

―사건을 겪으면서 가장 억울했던 점 하나를 꼽는다면.

“하나를 꼽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신정아’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학력위조’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고, 신정아의 이미지는 ‘꽃뱀’으로 불립니다. 학력위조와 꽃뱀은 같은 맥락에서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은 맞지만, 위조를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위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동국대-예일대 재판 자체만으로도 밝혀진 셈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위조’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것이 많이 속상합니다. 편법으로 학위를 취득하기는 했지만, 제가 위조한 것은 아닙니다.”

신씨의 이야기는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관계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꽃뱀’에 대한 이미지도 그렇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데, 누가 ‘꽃뱀’이고 누가 ‘제비’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건 당시 직책을 놓고 보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저 평범한 공무원일 뿐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런 중책을 맡을지 예상하고 만남을 시작했겠습니까? 남녀 간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파렴치하고 더러운 인간으로 치부하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다친 부분입니다.”

―피하고 싶은 질문이지만, 말이 나온김에 묻겠습니다. 변 전 실장과의 관계와 관련 언론 보도의 어떤 점이 문제라는 겁니까.

“이 부분에 대해 저의 답이 굳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두 사람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모든 위선과 제약을 넘어서서 서로 교감하고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당시 시중에는 신정아씨가 변 실장에게 보냈다는 이메일 연서(戀書)가 돌아다녔는데 본 적이 있는지요.

“물론 그 연서는 조작된 연서입니다. 나중에 글을 올린 네티즌이 공개적으로 자백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생리상 나중에 자백을 할 때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사실화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사실, 저도 그 연서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제가 정말 이런 글을 썼던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정도로 정교하고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글이었습니다. 심지어 새로 일하게 될 큐레이터와 면담에 대한 언급과 마지막에 ‘당신의 신다르크로부터’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또한 제 아이디가 ‘신다르크’라는 것까지 글 마지막에 삽입한 것을 보고 너무 치밀하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다만, 현대미술을 기획하는 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복원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심지어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조선중기 작품 몇 점이라는 표현에서 웃음이 났지만, 글솜씨만은 대단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금호미술관이나 성곡미술관은 모두 젊은 작가들이나 현대미술 중심으로 소장을 하기 때문에, 오너들의 개인 컬렉션을 제외하고는 미술관에서 조선중기 작품을 소장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168cm나 되는 큰 키의 저를 놓고 ‘자그마한 체구’로 표현을 한다든지, 첫 정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부분은 웃음이 절로 날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놓고 ‘정사’라는 표현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내용을 편지로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 이 글을 처음 읽게 되면 당연히 제가 썼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당사자인 저도 읽는 내내 정신을 차렸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제 변론을 맡고 있던 변호인 또한 이 글을 쓴 사람을 저로 착각하고 제 문학성에 놀랐다는 이야기까지 듣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정말 제가 이 조작된 연서처럼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중에 돌아다니던 그 연서를 당시 목포교육청 간부가 여교사에게 보여주었다가 성희롱 논란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는데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았는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연서가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연서에 대한 부분은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남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아프게 해야 하는지 슬플 뿐입니다.”

피를 토할 만큼 힘든 시간 보내

신정아씨의 최근 모습. 그녀는 요즘 집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소일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계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정아씨가 잘못에 비해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을 하는 분이 많은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제가 한 잘못과 비난의 깊이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피를 토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큐레이터로서 기획한 전시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어떤 전시회입니까.

“좋은 결과를 얻었든, 그렇지 않든 전시회는 저의 일상이었으므로 모든 전시회가 저에게는 소중했습니다. 지난 10년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일상 속에 호흡하는 미술’입니다. 위대한 거장의 예술품을 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예술품을 통해 관람객이 받을 수 있는 메시지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좋은 전시회를 보면서 꼭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보이는 것 그 자체에서 느끼면 됩니다. 예를 들면,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내 해석으로 새롭게 비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품과 관람객의 소통, 즉 미술의 대중화에 주제를 둔 전시회를 기획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미술’이라는 일반적인 범주에 두는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등에 국한되지 않고, 디자인, 일러스트, 사운드, 음악 등 다른 예술 장르들을 시각적 이미지와 접목하는 시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로부터 과도한 비난도 받았지만, 사건도 실체에 비해 너무 크게 확대된 감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됐다고 보는지요.

“외람되지만, 그 점은 제가 더 궁금합니다.”

―불교계 내(內) 계파 싸움의 희생양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가 답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정아씨 사건이 터진 후 사회 저명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도 불거졌는데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지켜봤는지요.

“사회적으로 보면 바람직하고 개선되어야 할 문제였지만, 저로 인해서 공개적인 비난을 받게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왼쪽)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시절의 신정아씨.
오른쪽) 1999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시절의 신정아씨.

―학력 위조 관련, 언론보도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인지요.

“불성실한 방법으로 학위 취득을 한 것은 맞지만, 제가 학위를 위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성실하지 못했던 학업 과정에 대해서는 매우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저를 믿고 아껴주셨던 많은 분께 마음 깊이 사죄를 드립니다.”

다음은 김 변호사의 보충설명이다.

“현재 동국대-예일대가 소송 중이고, 소송 과정 중에 많은 증거자료가 나왔고, 예일대와 학위 브로커들과의 밀착된 관계를 밝히기 위해 현재 동국대 변호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2007년 7월 이후 사건이 크게 확대되지 않았더라면, 예일대의 거짓말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정아씨를 구속시키기 위해 한국 검찰이 지독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바람에 신정아씨로서는 수치스러울 만큼 고통스러웠겠지만, 다행히 진실의 일부가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신정아씨가 학위가 있고 없고의 문제보다 거짓말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신정아씨 개인적으로는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예일대 출신의 법조계 인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동국대 입장에서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도 상당히 힘들게 재판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재판이 마무리되면 동국대에서 공식적으로 재판 내용과 결과를 밝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성실한 방법으로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리포트 제출이나 논문 작성 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논문을 표절했다는 비난은 감수할 수 있지만 생짜로 학위를 위조했다는 비난에 대해 신정아씨는 지금도 상당히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신정아씨는 예일대 박사학위 수여식 때 입은 가운을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 가운을 신정아씨의 오피스텔에 가서 직접 가져다가 형사재판 항소심 변호인에게 전달해 준 일도 있습니다.”

동국대-예일대 소송 주시

―사건 발생 직후인 2007년 7월 16일 미국으로 출국했었는데 무슨 이유였습니까.

“모든 언론에서는 제가 미국으로 출국한 것을 ‘도피’로 표현했지만, 미국 출국은 ‘도피’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가게 된 것입니다. 만약 ‘도피’를 하려고 했었다면, 2007년 7월 13일 베니스 출장 중에 굳이 서울로 귀국하지 않았을 겁니다. 언론에서는 제가 체류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고 하지만, 당시 저는 미국에 제 개인계좌도 가지고 있었고, 체류비는 은행으로 받으면 되지 굳이 쫓겨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에 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된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귀국을 했으나 그 당시 저는 다시 출국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누구도 제 말에는 귀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모든 결론은 나 있었고, 저는 그 결론에 따라 처분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분을 받을 때 받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은 하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를 아껴주는 주변 분들과의 관계 때문이라도 제 입장에서는 ‘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력을 위조한 것이 아니라 편법이지만, 제가 나름 절차를 거쳐 학위를 취득한 것을 미국에 가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검찰과 언론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어서 제 학위에 대한 확인작업은 로펌에 맡기고 저는 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자진해서 귀국을 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있는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변호사 선임과 사실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뉴욕 로프스앤그레이(Ropes & Gray)의 윌리엄 용균 김(William Young kyun Kim) 변호사님을 소개해 줘서 그분이 제 사건을 맡을 변호사들과 로펌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변호사 선임을 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뉴욕의 웬만한 로펌들은 모두 하버드나 예일을 의뢰인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제 사건을 맡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속담에 ‘하버드 로스쿨은 훌륭한 변호사를 만들고, 예일 로스쿨은 미국의 대통령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법조계에서의 예일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그런 예일을 상대로 한 개인이 싸움을 한다는 것은 아예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 갬브렐앤러셀(Smith, Gambrell & Russell, LLP)의 존 제이 리(John J. Lee) 변호사님이 제 사건을 맡아주셨습니다. 당시 뉴욕 특파원들이 예일대학을 포함하여 곳곳에서 저를 찾고 있었고 예일대학에서도 너무나 강하게 잡아떼고 있는 상황이어서 저희는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사실 확인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동국대-예일대 소송 중 증인심문을 통해 2007년 7월 당시 제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잡아떼던 예일대 내에서 부학장과 법무실장 사이에 제 학위와 관련되어 주고받은 이메일들이 증거자료로 제출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모든 언론이 예일대학에서 보낸 팩스조차도 제가 위조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집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바깥은 자유롭게 다녔습니까.

“하루종일 호텔 안에만 있다가 어두워지면 가끔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퇴근하는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어깨에는 무거운 서류가방과 한쪽 손에는 다음 날 입을 세탁물 찾은 것을 들고, 피곤에 지쳐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 자신을 지키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저에게 돌을 던질 때, 한결같이 저를 믿고 격려해 주셨던 윌리엄 변호사님께 이 기회를 통해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누드사진 가짜’ 입증하려고 삼성의료원에서 몸 감정받아

―누드사진 게재와 관련 <문화일보>와의 소송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문화일보>의 보도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보도가 처음 나갔을 때에는 내가 누드사진을 찍지 않았으니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가 해프닝으로 만든 합성 작품을 가지고 그것도 특종이랍시고 대서특필한 옐로 페이퍼(yellowpaper)에 연민의 정을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일보> 기사는 제게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를 출세를 위해 몸 판 여자로 만들어 놨으니까요. 그래서 구치소에서 조금 그런 수감자 중에는 제 방 앞을 지나가면서 ‘×팔아 먹고산 년’이라는 말을 크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문화일보> 편집국장은 재판 준비서면을 통해 제가 남자 이름과 날짜를 적은 콘돔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등, 입에 담기도 더러운, 삼류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저질 글들로 저를 수치스럽게 했습니다.(김 변호사는 신씨의 표현 중 재판 준비서면을 ‘재판 중 서면 답변’으로 수정해 주었다) 사진의 합성여부에 대한 감정을 지금까지 세 번 의뢰했는데, 수감생활 중에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고충도 많았고, 힘없는 한 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습니다.”

―사진 감정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됐습니까.

김 변호사가 질문에 답했다.

“첫 번째 감정은 제가 그 소송에 관여하기 전에 이루어졌는데, 사진 감정과 전혀 상관이 없는 필적 감정인이 했기 때문에 그 감정결과에 대해서는 1심 재판부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다가 체중은 변하지만 키나 신체비례는 변하지 않고 여자들의 특정 신체부위는 그 모양새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성형외과 의사라면 사진 속의 몸과 신정아씨 본인의 몸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삼성의료원에 가서 몸 감정을 받았습니다. 누드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누드사진을 찍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정확한 감정이 없으니, 신정아씨는 수감생활 중에서도 온갖 수치스러운 상황을 참고 몸 감정을 받았습니다. 신정아씨가 만약 누드사진을 찍었다면 삼성의료원에 가서 감히 옷을 벗을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벗자마자 성형외과 전문의는 ‘감정할 필요도 없겠다’고 표현할 정도로 즉석에서 신정아씨 몸을 보고 판정을 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살이 쪘다가 빠지더라도 여자들의 경우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신체적 특징(가슴 모양이나 몸의 비례 등)들이 있고, 특히 신정아씨의 경우에는 등 뒤에 태어날 때부터 있던 삼각형으로 생긴 붉은 점 3개가 있고, 삼풍 사고 때 움푹 파인 상처 외에도 어릴 때 생긴 종기자국이 엉덩이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1심 재판부는 사진이 합성됐다는 신정아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역시 김 변호사의 답변이다.

“당시 감정인은 일주일이면 감정결과가 법정에 제출된다고 했는데,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제출된 감정결과에는 사진 속의 몸과 신정아씨 본인의 몸이 차이가 나는 것은 맞지만 오랜 수감생활로 영양상태나 체중에 변화가 있을 것이어서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고, 신체적 특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감정이 불가능하면, 무엇 때문에 불가능한지 구체적인 사유도 없고, 촬영한 사진조차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창피한 일이었지만, 판사님들이 삼성병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직접 보도록 하기 위해 법원을 통해 사진을 제출하라고 했으나, 병원 측에서는 사진을 모두 없애 버렸다는 황당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감정을 받게 된 것이군요.

김 변호사의 답변이다.

“세 번째 감정은 사진전문가를 통해서 합성의 흔적이 있는지를 감정하는 것이었는데, 감정절차가 진행 중에 우연하게 미국에 수감 중이었던 황규태 선생과 연락이 되어서 자신이 사진을 합성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정결과도 당연히 좋게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합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감정의견을 황규태 선생께 보내드렸더니 황규태 선생이 자신이 합성한 프로세스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렇게 했을 경우에 인화된 사진에서 합성의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을 보내왔고, 감정인도 황규태 선생의 의견에 동의를 했습니다. 결국 어느 감정도 합성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합성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어서 감정을 통해서는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 후 삼성병원 감정인이 의도적으로 묵살했던 부분, 신정아씨 등에 있는 붉은색 점 3개, 엉덩이에 있는 흉터 2개에 대한 사진을 제출해서 <문화일보> 사진에 그것이 없다는 점을 입증했고, 그러자 삼성병원 감정인도 신정아씨 등에 있는 점과 엉덩이에 흉터가 있었다는 점은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런 상태인데도 <문화일보>는 점이나 상처가 누드사진을 촬영한 다음에 생긴 것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린다 김과 나

신정아씨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건 당시 주택공사 박세흠 사장, 산업은행 김창록 총재 등 여러 인사가 신정아씨의 후원자로 거론됐습니다. 공교롭게도 변 실장과는 고교 동창들이었는데, 당시 이들의 이름이 왜 거론됐다고 봅니까.

“당시 거론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다만, 그중 일부 변 실장님과 친분이 있는 분들은 실장님께 소개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들이 전시회의 후원을 받는 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재판을 통해서도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부분입니다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까운 사람끼리 소개도 하고 소개도 받으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합니다. 저 역시, 후배들을 제가 아는 갤러리나 미술관에 소개하기도 하고 그중 일부는 취직이 되기도 하고, 일부는 안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변 실장님과 가까운 친구분 중 문화, 예술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소개를 받기도 하고, 미술관에 전시(展示)관람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실무자들과 소개가 되어 전시후원이 된 경우도 있고, 안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시후원이 된 경우에도, 공짜로 전시후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시후원을 받는 대신 제가 기업 내 문화 예술 관련 자문을 지속적으로 해 드렸습니다. 예를 들면, 달력이나 연하장, 기업 홍보 관련 인쇄물 디자인이나 광고 CF 등과 같은 일입니다. 전시후원이 안된 경우에도 실무자들이 회사 내에 미술 관련 자문이 필요하면 도움도 드리고 그러다 보면 그다음 기회에 전시후원이 유치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실무자들이 전시후원을 결정했는데, 최종 결정자인 실장님의 친구분들이 오히려 실장님의 친구라는 이유로 후원을 취소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재호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1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절박한 상황에서, 그때 사회적 분위기는 중세의 마녀재판 때와 같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신정아를 두둔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우건설 정재영 전무님, 나중에 어느 건설회사 대표이사로 가신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분이 법정에 나와서 신정아씨가 그동안 대우건설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주었는지와, 전시회 후원이 실무선에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에 대해서 증언해 주는 용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여러 사람이 신정아씨로 인해서 검찰조사를 받고 신정아의 후원세력으로 몰리는 그런 분위기에서 정재영 전무님의 증언은 재판에 미친 영향을 떠나서 신정아씨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건 당시 장기표씨가 “신정아 사건의 몸통은 노 대통령”이라며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 신정아씨가 모종의 역할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대가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왜 이런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는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작된 허위 내용인 것 같습니다.”

背信

2005년 11월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인화가 아담슨 특별전을 소개하고 있는 신정아씨.

―신정아씨 사건은 당시 ‘몸 로비니 어쩌니’하면서 ‘린다 김 사건’과 비교돼 회자됐습니다. 린다 김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나와 신정아씨를 비교하느냐”며 발끈하기도 했는데 신정아씨의 소회는 어땠습니까.

“린다 김은 사업을 위해 로비를 하는 로비스트로서 관련 부서의 장관을 만난 것이고, 저는 로비스트도 아니고, 또 제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공직자를 만난 것도 아닙니다.”

―법원이 내린 형량이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지요.

“판결에 대해 제가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이미 형량을 다 복역한 마당에 이런 얘기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2007년 9월 18일, 제 구속이 기각되자 검찰에서는 저를 구속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검찰과 대면하는 것이 진저리나게 싫었고, 하루 24시간 저를 감시하는 언론도 더 이상은 부담스러워 차라리 구속이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부담을 제가 안고 가는 방향으로 수사에 대응했습니다.”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그 대표적인 예가 저와 관련된 성곡미술관 횡령과 변 실장님의 3억 뇌물수수 부분입니다. 사실 성곡미술관 횡령에 대해서는 주인을 위해 비자금 마련은 종업원으로서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이었고, 부정한 돈을 배달한 자체도 죄는 인정이 되기 때문에 검찰에서도 제가 안고 가는 방향으로 몰아갔고, 저 역시 대신 돈을 물리지 않겠다는 관장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변 실장님의 3억 뇌물수수에 대한 부분은 너무나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이라 당시 제가 모든 것을 걸고 밝혀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변 실장이었기 때문입니까.

“당사자가 꼭 변 실장님이어서라기보다, 사람이 어렵고 힘들 때 도움을 준 것을 놓고,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원수로 갚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004년 11월 중순, 김석원 회장이 배임으로 구속될 상황에서 김석원 회장의 사모님인 박문순 관장께서 저에게 좋은 변호사 소개를 부탁하셨습니다. 변 실장님을 통해 변호인을 소개해 드리고, 그 후 그 변호인과 실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드려 2005년 3월, 김석원 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습니다. 몇 차례 식사 초대를 하셨지만, 실장님은 현직에 계신 관계로 응하지 않았고 명절 때 과일 한 박스조차도 받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언론사를 포함하여 주요 인사들에게 선물을 보내기 때문에, 그때마다 관장님께서 저에게 실장님께 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더불어 현직에서 물러나시면 제대로 인사를 드리겠다는 말씀까지도 하셨습니다. 2007년 10월 11일, 실장님과 제가 구속이 되자 검찰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실장님이 3억 받은 사실을 제가 알고 있다고 하면 저를 석방시켜 주겠다고 했으나, 제가 살자고 그런 일에 동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김 변호사의 보충 설명이다.

“변 실장이 김석원 회장 측으로부터 3억원을 수수했다는 점이 모함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는 데에는 아주 우연한 계기에 신정아씨로부터 들은 얘기들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변 실장의 변호인이었기 때문에 신정아씨를 만나는 것이 오히려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만나지 않았는데, 김석원 3억원 재판을 하려니까 변 실장이 전혀 알 수 없는 내용들을 김석원 회장과 박문순 관장이 진술을 해 놓아서 신정아씨에게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확인을 해 주었습니까.

“김석원 회장과 박문순 관장, 그리고 비자금을 마련해 준 박문순 관장의 친정 동생들과 회사 직원들, 김석원 회장의 운전기사 등 모든 사람이 김석원 회장이 4월에 변 실장을 만나서 저녁식사를 할 때 돈을 주었다는 것에 맞추어서 진술을 해 놓았습니다. 저로서는 그들의 진술 중에 서로 모순되는 점을 부각시키고 또 여러 해 전의 일이어서 기억할 수 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진술하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으며, 궁지에 몰린 김석원 회장이 살기 위해서 검찰과 타협을 해서 주지도 않은 돈을 주었다는 정황을 밝혀야 했습니다.

첫째, 김석원 회장이 변 실장님을 만나러 갈 때 상황에 대해서 운전기사가 너무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진술했었는데, 어느 시나리오에 맞춘 진술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것을 밝히게 된 것이 식사대금 결제입니다. 그날 김석원 회장이 지갑을 가져가지 않아 운전기사를 불러 식대를 계산하게 하는 해프닝이 있었고 그 일은 운전기사가 그 다음 날 카드대금을 정산받으러 사무실에 왔기 때문에 신정아씨가 알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자기 카드로 식대를 계산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였으나 카드회사에 확인하니까 신정아씨 말이 사실이었고, 김석원 회장이 변 실장님을 만난 날이 6월 말이어서 2개월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자기 카드로 식대를 계산하는 해프닝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있었던 일들을 전부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고, 김석원 회장 측 모두가 6월이 아니라 4월로 착각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기 때문에 누군가 시나리오를 쓰고 모두 거기에 말을 맞추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검사가 신정아씨를 조사하는 중에 김석원의 대리인 역할을 하던 박모 사장이 검사를 만나러 와서 김석원 회장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협의하였고, 그 점을 법정에서 증언하였습니다. 그때 검찰은 반박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즉 김석원 회장과 검찰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성곡미술관 배상 판결, 본질 잘못 알려져

―성곡미술관과의 소송에서 전시회 비용과 관련 빼돌린 공금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는데요.

“2007년 7월 15일, 뉴욕으로 출국하기 전날 전시회 인수인계를 위해 잠시 미술관에 들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짐 정리를 못한 채 급히 다음 날 출국을 했고, 9월 16일 귀국 후에는 구속이 되고 1년6개월이 그 상태로 지나버렸습니다. 2009년 4월 10일 출소 후에, 박 관장께 맡겨 놓았던 제 개인 소장작품들을 돌려받기 위해 연락을 했는데, 결국 맡겨 놓았던 48점 중 15점밖에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남은 33점에 대한 소송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출소한 지 얼마 안되어 또 소송을 시작하게 되면 이미지가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또 제가 출소할 당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형기가 채워져서 보석으로 나온 상태였으므로 진행 중이었던 재판부터 마무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성곡미술관 박 관장이 소송을 한 것입니다.”

김 변호사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전시회 비용 횡령에 대한 부분은 2007년 9월 16일, 신정아씨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자 검찰에서 신정아씨의 구속을 위해 횡령 부분을 내세워 결국 10월 11일 구속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신정아씨는 비자금을 박 관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었고 박 관장은 부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검찰에서는 신정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으려면 박 관장의 하수인으로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박 관장의 말에 맞추어 사건을 몰고 갔습니다. 신정아씨 입장에서는 비록 자기가 돈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공범책임을 져야 했고, 또 자신으로 인해 미술관까지 문제가 번진 것이어서 가능한 한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박 관장 측에서 앞으로 손해배상을 물리지 않겠다고 해서 박 관장 측과 신정아씨 변호인, 그리고 검사가 있는 자리에서 부제소 합의를 하고 전시회 횡령은 신정아씨 단독범행으로 기소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성곡미술관 측에서는 왜 소송을 제기한 겁니까.

“신정아씨가 구치소에 있을 때부터 저에게 박 관장에게 그림을 맡겨 놓은 것이 있는데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나중에 출소해서 달라고 하면 설마 안 주겠느냐, 지금은 찾아와도 둘 곳도 없으니 출소 후에 찾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정아씨가 그림을 돌려달라고 하자 맞불작전인지, 전시회 비용 횡령에 대해 먼저 소송을 한 것입니다. 소송 중에 박 관장 측에서 나머지 그림을 주면 횡령금액의 절반만 받고 끝내겠다는 제의를 해 왔으나 신정아씨가 거절을 했습니다. 비자금을 만들어서 전달한 것은 맞지만, 신정아씨는 한 푼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돈을 물어낼 이유가 없었고, 그 그림들은 신정아씨가 큐레이터로 일하던 10년 동안 조금씩 소장해 놓았던 신정아씨의 일부였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죽음도 생각했다

―그해 구글 코리아의 ‘올해 인물 검색’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좋은 일로 1위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명품을 애용한다고 해서 ‘에르메스의 여인’으로도 불렸고 한동안 시중에는 신정아씨 패션을 따라 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신정아씨가 신용불량자라는 보도도 있었고요. 이런 부조화한 이미지로 인해 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데, 당시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당시 저는 멍한 상태였습니다. 머리도 가슴도 백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한 존재감조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2009년 4월 10일 출소 후 찍힌 사진을 보면 벌겋게 퉁퉁 부어올라 제 얼굴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모습이 제 마음의 일부를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는지요.

“제가 유학 중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이듬해 제가 상속 문제로 잠시 귀국을 했다가 삼풍 사고를 당했습니다. 상속받는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해서 미국에 있는 저로서는 때마다 서울에 귀국할 수도 없고, 대신 제 인감도장을 저희 집 회사에 맡겨 놓았습니다. 집안 어른 중, 사업을 크게 실패하신 분이 계셨는데 여러 친지가 보증을 서던 중 제 인감도장도 함께 썼던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저도 모르는 일이었고, 나중에 제가 알았을 때는 이미 제가 신용불량자가 된 후였습니다.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거라는 말만 믿고, 저는 제가 채무자도 아니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지만, 제 관리에 소홀했던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대, 중앙대 등 여러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동국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서울대는 정운찬 총리와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나중에 고사를 하게 되었고, 동국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현대미술이 상대적으로 왜소하기도 하고, 당시 학교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저 같은 전시기획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미술관을 선택할 때도 그랬지만, 저는 직장을 선택할 때에 최고의 직장보다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제가 하는 일이 기획 일이라서 더더욱 제 뜻을 펼치기 위해 제 뜻을 존중해 주는 곳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계 인사들 가운데는 신정아씨의 능력을 아까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미술계에서 일할 생각인지요.

“전혀 없습니다.”

―다른 계획을 갖고 있는 건가요?

“지금 현재의 상황조차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워서 앞으로의 계획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이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는지요.

“이런 경우를 당하고 어떻게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낯선 사람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어둡고 음울하고 슬픈 여자의 얼굴이었습니다. 더 이상 미워질 곳이 없을 만큼 미워진 제 얼굴을 보고는 아주 오랫동안 멍하게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죽을 힘을 다해 다시 노력을 했습니다. 우선 건강을 위해 운동도 시작하고, 대인기피증을 이겨내기 위해 가능한 한 밖에서 식사를 하는 노력도 해보았습니다. 더 이상 예전의 평범했던 ‘신정아’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저’를 ‘치유’하는 데에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미술계 인사들에게 죄송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시간을 돌릴 수가 있다면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한 남자를 사랑한 것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지나간 그 사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종교생활은 하고 있는지요.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 온 후 제가 살고 있던 서초동 사랑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수감생활 중 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종교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종착지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나타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종교생활은 늘 저에게 긍정의 힘이 되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신정아씨에게 미술은 무엇이었습니까.

“직업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그냥 ‘신정아’ 그 자체였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저와 함께하는 일상이었습니다.”

신정아씨에게 마지막으로 미술계 인사들에게 할 말은 없는가를 물었다.

“지난 10년간 제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도덕한 이미지로 미술계를 떠나게 되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