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은 과학적·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비전문가가 나서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는 소리, 추기경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소리도 왕왕 들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느 편을 들 수는 없습니다”(정진석 추기경)
⊙ 4대강 반대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도. 일부 정평위 사제들은 ‘정의구현사제단’
(이하 정구사) 일원으로 활동
⊙ 4대강 반대를 통해, 천주교의 정치적 보수성 극복하고 ‘민중의 교회’로 다가서는 측면도 있어
⊙ ‘생명과 평화’를 외치며 ‘소통과 사랑’을 강조하는 이면에 정작 교회조직 내부에서, 본당 안에서
사제들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소(小)독재자로 군림. “나를 따르지 않으면 죄짓는 것”이라고
평신도를 설득하려 해
⊙ 4대강 반대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도. 일부 정평위 사제들은 ‘정의구현사제단’
(이하 정구사) 일원으로 활동
⊙ 4대강 반대를 통해, 천주교의 정치적 보수성 극복하고 ‘민중의 교회’로 다가서는 측면도 있어
⊙ ‘생명과 평화’를 외치며 ‘소통과 사랑’을 강조하는 이면에 정작 교회조직 내부에서, 본당 안에서
사제들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소(小)독재자로 군림. “나를 따르지 않으면 죄짓는 것”이라고
평신도를 설득하려 해
- 정진석 추기경.
한국 천주교가 4대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교회의 장상(長上)인 주교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정확히 표현하면 ‘유감’)하면서 사제, 신자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교의 ‘유감’ 표명이 어떤 구속력이 있는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것이 ‘착한’ 신자의 도리인지, 4대강 사업에 찬성하면 고해소에 들러 사제에게 죄 고백을 해야 하는지, 왜 교회가 신앙의 이름을 빌려 정치문제에 관여하는지 답답해하고 있다.
일부 사제들은 “대통령 한 사람의 고집과 욕심으로 멀쩡한 아름다운 강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며 NGO와 더불어 삭발, 단식을 하고 주일 미사에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난하며 심지어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찾아 ‘생명평화 미사’를 올리고 있다. 1970~80년대 사제들이 가톨릭농민회와 전국평신도협의회를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이 오버랩된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제들에게) ‘좌파’라는 낙인은 공동선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돌려지는 전형적인 수사다. 오히려 이 땅의 종교인들은 좌파라는 소리를 듣는 게 맞다.”(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
왜 한국 천주교는 이토록 4대강에 몰입하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덧칠된, 혼탁한 4대강 속으로 뛰어드는 사제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지난 3월 12일 나온 교회 장상들의 ‘유감’ 표명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유감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현재 한국 천주교가 ‘양적 팽창’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 종교가 신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한국 가톨릭은 수년간 ‘고(高)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교세 폭발 덕분에 한국 천주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로마 교황청에 납부금(교황 주일 헌금 포함. 2009년 154만여 달러)을 많이 내고 있다.
4대강에 빠진 천주교
4대강을 둘러싼 교회 안팎의 갈등은 역설적으로 한국 천주교가 ‘안정기 신드롬’에 빠져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안정기 신드롬이란 교회조직의 비대화와 신자들의 중산층화로 인한 신앙의 위기를 의미한다. 신자가 늘어나면서 소속감이 무뎌지고 신앙심의 농도가 옅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성직자들의 정치적 보수화(사학법 개정 당시 천주교 입장을 떠올려 보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박문수 박사는 지난 7월 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한국교회는 창립기-성장기-안정기-쇠퇴기 중 안정기를 겪고 있다”며 가톨릭의 위기를 경고했다. “최근 수년간 신자는 양적으로 늘었지만 미사 참례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등 질적인 면에서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문수 박사는 “한국 교회는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하는 ‘가진 종교’, 사회적으로 권력을 지닌 ‘종교권력’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역설적이게도 교회가 가장 존경받았던 때는 가진 것이 적고 지킬 것이 거의 없으며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청빈했을 때”라고 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천주교의 4대강 ‘투쟁’은 다소 신선하게 느껴진다. 생명과 환경의 이슈를 끌어내어 교회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교회가, 4대강 반대를 통해 가진 자를 위한 ‘소수의 교회’가 아니라 ‘민중의 교회’로 다가서려 한다는 점에서 수긍 가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침묵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은 혼란스럽다. 한국 천주교의 4대강 사업 반대가 평신도와 사제(주교) 간 소통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교들의 4대강 입장표명이 가톨릭의 고질적 병폐인 권위주의적이며 평신도가 배제된 성직자 중심주의라는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일부 주교들 사이에서 “속았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도롱뇽’의 지율, 이번엔 “노루, 고라니 어디 갔느냐”
기자는 지난 8월 11일 경북 상주의 서문동 성당을 향했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천주교 안동교구 생명평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다. 안동교구는 다른 교구에 비해 사제들의 사회참여 운동이 활발한 곳이다. 가톨릭농민운동의 중심지가 바로 안동교구였다. 1979년 7월 유신정권이 천주교회에 재갈을 물리려고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청년분회장인 오원춘씨를 납치해 울릉도에 유기한 ‘오원춘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성당 안은 앞줄 좌석을 빼고 300석 남짓한 신자석이 금세 찼다. 50대 안팎의, 첫눈에 신심이 깊어 보이는 교인(敎人)들이었다. 신자들은 성가(聖歌) 대신 ‘강은 흘러야 한다/그대로 흘러야 한다/우리의 강은 흘러야 한다/그대로 흘러야 한다’는 민중가요를 불렀다. 또 누군가의 선창으로 “잘못된 정치 지도자에 신음하는 백성과 가진 자의 편에 서서, 패거리 이권에 눈이 먼 자들이 회개해 진정한 봉사자로 돌아오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다.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12명의 사제는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지율스님이 등장했다.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겠다며 단식을 한 ‘전설의 구도자’가 아닌가. 그런 사람을 낙동강을 끼고 있는 경북 상주에서, 그것도 성당에서 만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지율스님은 자신이 직접 촬영했다며 상주 인근 낙동강 주변의 ‘오리 섬’, 중동면, 강창교, 경천대 사진을 펼쳐 보였다. 다소 어눌해 보이면서도 낮게 가라앉은 그의 음성은 흡인력 있게 들렸다. 포클레인으로 강바닥을 헤집어 놓은 현장 사진은 신자들을 자극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지율은 “오리처럼 생겨 붙여진 ‘오리 섬’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아름다웠다. 이 마을에 노루나 고라니가 50여 마리 살았다고 하더라. 지금은 숲과 나무가 모두 베어지고 거기에 모래를 쌓고 제방을 쌓았다”며 “노루, 고라니는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또 “모래와 골재를 채취하려 강의 모래톱을 디귿자로 또박또박 자르고 4m 깊이로 강을 판다. 강변에서 발 씻고 손으로 물장구치던 강은 먼 기억이 됐다. 황금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고왔던 숲과 나무가 없어졌다”고 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나는 맞지만, 당신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산더미 같은 자료와 보고서를, 어느 누가 편견없이 읽고 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런 혜안을 지닌 재판관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사실 지율이 보여준 사진들은 참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낙동강 사업의 공사 진척도는 현재 30%대다. 겨우 첫 삽을 떴을 정도다. 한창 가속도를 내는 작업현장은 누가 봐도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자극적인 사진을 들고서 “강이 죽어 가고 있다”고 말하니, 덜컥 겁이 나고 지율의 경고가 옳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만약 정부 측 시공자가 그 자리에서 공학적 수치를 제시하며 반박한다면 그 말 역시 옳다고 느껴질 것이다.
안동교구 신부, “이름도 이상한 어느 몬시뇰, 맹랑하다”
도대체 4대강 사업 찬반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누구 말이 옳은가.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진실 하나는 4대강을 두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아닐까. 그런 무지(無知) 탓에 더욱 소리 높여 거짓 진실을 사수하려 드는지 모른다. 찬반을 둘러싼 극단적이며 낭비적인 다툼은 언제 사그라질 것인가.
지율스님의 강연 후 ‘생명평화 미사’가 이어졌다. 한 신자가 구약(舊約) 에제키엘 9장을 읽은 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안동교구 김○○ 신부가 강론을 했다. 김 신부는 “한국 모든 주교가 그런(4대강 반대) 결정을 했으니 따라야 한다. 4대강 사업은 미래 세대를 위해 죄를 짓는 파멸이요, 십계명 중 ‘도둑질을 하지 마라’는 죄에 해당한다”고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4대강 사업을 찬성한다면 십계명 중 하나를 어기게 되는 것이란 그의 말이 놀라웠다.
민중신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갑자기 한 원로사제(김계춘 신부를 지칭·편집자 주)를 언급하며 “이름도 이상한 어느 몬시뇰이 ‘젊은 사제는 뭘 모른다. 왜 과학과 정치의 문제인 4대강을 반대하느냐’고 말했다고 하는데, 맹랑하다”고 쏘아붙였다.
김 신부는 한국 천주교의 최고 장상인 정진석(鄭鎭奭) 추기경도 비난했다. “오세훈(吳世勳) 시장이 아슬아슬하게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정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추기경이 몹시 기뻐하며 ‘과학·정치의 문제에 교회가 의견을 표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더라. ‘카더라’ 이야기가 아니라 (추기경의 말은) <한국일보>에 보도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은 어느 종교보다 질서와 위계가 엄격하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회 장상의 권위가 철저하다. 하지만 민중신학을 배웠다는 이 사제는 정 추기경을 신자들 앞에서 한껏 조롱했다. 듣기 거북했다. 그런 뒤 “추기경에게 일러주지 마라. 내가 잘릴지 모른다”고 했다. 우스갯소리지만 신자들은 당혹스러웠을 게 분명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정치·경제·사회도 신앙의 눈으로 보고 반대를 하는 것이다. 교회와 신앙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다. 신앙인의 눈으로 봐서 안 될 것이 뭐가 있나. 과학도 사회·복지도 신앙의 잣대로 봐야 한다. 4대강 사업은 정치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다.”
미사를 마친 뒤 신자들은 촛불을 켜고 상주 도심을 20분간 행진했다. 태풍 ‘뎬무’의 영향 탓인지 조금씩 빗발이 날렸다.
정평위, 대운하 반대하다 대운하 포기후 4대강 반대로 전환
한국 천주교의 4대강 반대 입장은 MB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2월 13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정부의 대운하 계획을 청취하겠다는 뜻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요청했고 다음 달 7일 환경소위원회 내에 ‘대운하 사업 식별과 복음적 응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운하에 대한 ‘공학적 접근’ 대신 ‘복음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운하를 포기하자 4대강 반대로 방향을 선회했다.
4대강 사업 반대를 주도하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이하 정평위)는 교회의 공식기구다. 진보적 성향의 신부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조직으로 알려진다. 일부 정평위 사제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구사)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천주교를 잘 모르는 외부인이 볼 때, 정평위가 정구사라고 오해할 정도다. 정평위는 4대강 사업 저지와 함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여론도 주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제주교구장이 바로 강우일(姜禹一) 주교다. 강 주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직을 겸하고 있다.
정평위는 아예 전국 9개 교구 소속 정평위와 환경관련 기구 및 남녀 수도회를 아우르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라는 외곽 운동조직을 지난해 12월 8일 만들었다. 장외투쟁이 전문인 정구사 대신 천주교연대가 4대강 반대투쟁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녹색 순교’를 하겠다”며 교구별로 순회 설명회를 열거나 4대강 반대 만화책과 자료집을 만들고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정평위와 천주교연대는 지난 3월 8일 명동성당에서 사제 1104명이 서명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 선언문’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수원교구장 이용훈(李容勳) 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兪興植) 주교 등 5명의 주교가 참여할 정도로 반향이 컸다.
그런 사제들의 집단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나흘 뒤인 3월 12일 열린 한국 천주교 장상들의 총회인 ‘천주교 주교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4대강 사업 ‘유감’을 공식 표명했다. 성명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춘계 총회에 모인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는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 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교회의 성명문안 작성에 의견 달라 진통
그러나 지난 3월 12일 보수적 성향의 교회 원로 장상들이 최종 의견을 수렴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찬반 의견이 격렬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부 주교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었고 나머지 주교는 내심 마뜩잖았지만 침묵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변승식 사무국장 신부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선거회’와 같은 비밀회의)라고 해서 주교님끼리 따로 토의하는 비밀회의에서 논의한 것”이라며 “찬반 의견이 있었고, 격렬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주교님 사이에서 4대강 찬반을 떠나 이런 문제를 주교회의 총회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신 분이 있었다고 해요.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꼭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 반대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분도 있었습니다.”
결국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자 주교들끼리 투표를 했고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주교회의 전체 뜻을 담은 성명서를 만들기로 했다. 변 신부의 계속된 말이다.
“그렇게 통과되면 그다음엔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 전통입니다. 물론 싫은 분도 있겠죠. 주교님도 각기 다르니까….”
―성명서 초안 작성은 누가 했나요. 반대냐, 유감이냐를 두고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주교님들은 ‘뜻은 전하되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뜻으로 정부가 4대강 사업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뜻에서 ‘반대’라는 표현을 안 썼던 겁니다. 우리가 정부 위에서 ‘해라, 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4대강 사업은 전문적 분야입니다. 공학자들이나 엔지니어 집단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비전문가가 얘기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밖에서 보더라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해석’을 원치 않았던 주교들의 뜻과 달리, 일부 사제들의 반대 움직임은 반(反)정부 투쟁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4대강 사업의 목적으로 내건 수질개선, 홍수예방, 수자원 확보, 일자리 창출 등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식이다. 야당이나 재야단체 주장과 흡사하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4대강 사업은 엄청난 이권이 달렸잖아요. 참여하는 쪽에선 (떡고물이) 떨어질 게 있지요. 그러니 하고 싶어 하는, 그래서 냉정하게 이권을 제어하고 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요. 국민은 ‘설마 나라를 팔아먹기야 하겠느냐’고 넘어가는데, 그래선 곤란하지요. 우선 규모가 너무 크고 앞뒤가 안 맞는 게 많고, 그래서 나서서 막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나 주교들의 공통된 의견도출이 어려웠던 만큼 성명서 문안작성도 쉽지 않아 결국 하루를 넘겨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교들은 주교회의 자리를 떴다. 최종 문안작성은 이튿날이 돼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다듬고 고치고 새로 집어넣는 작업이 밤새 이어졌던 것이다.
이번에는 주교회의 미디어팀 이영식 팀장의 말이다.
“배석자 없이 주교님만 회의를 했는데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정부 정책에 찬반으로 판단하는 게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몇몇 주교님이 ‘신앙인으로 생명, 환경 문제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냈지요. 그러다 보니 회의가 길어졌고, 당초엔 성명서 문안작성을 3월 11일 오후까지 끝내려 했는데 그 다음 날 오전이 돼서야 가능했어요. 주교님 중에서 (자신의 교구로) 가실 분은 가셨고, 책임 있는 몇몇 분은 밤을 새웠습니다. 최종 문안은 의장 주교인 강우일 주교가 작성하고 몇몇 사제가 돕는 식이었지요.”
정부, 정평위의 4대강 설명 요청 거부
보수적인 원로그룹인 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배경에는 MB 정부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설명해 달라는 천주교 측의 요청을 국토해양부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거절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3일 천주교 정평위가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공문을 보내 정부의 4대강 사업정책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토부 측은 불참을 통보했고, 결국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설명만 듣게 됐다고 한다. 정평위는 이날 논의 자료를 주교회의에 참고자료로 보냈고 주교회의 총회에서 4대강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찬성 의견 없이 반대 의견만 고스란히 전달된 셈이다.
정평위는 2월 24일에도 4대강사업본부에 협조공문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만약을 대비해 문화부 종무실과 국정원이 나서줄 것을 청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국장급 인사를 보내겠다고 하던 정부 측이 3월 5일 금요일 저녁 늦게 갑자기 불참의사를 밝혀 왔다고 한다. 정평위 측은 이튿날 부랴부랴 국무총리실에 연락을 취했다. 총리실이 나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갑자기 국토부에서 대규모 설명단을 보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교회의 변승식 신부는 “(정부가 외면한 것은) 구태여 좋은 이야기를 못 들을 것 같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국책사업이고 정부에서 밀고, 청와대에서 미는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일각에서는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이었던 정평위의 성향에 부담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정평위와 정구사를 동일시했다는 설도 있다.
이에 대해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측은 “천주교 교계를 대표해 설명을 요구했다면 대한민국 어느 기관이 거부했겠느냐. 답답하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중 하나라고 판단했었다. 또 당시 추진본부가 발족한 지 1년이 돼 실무적으로 여력이 없었고 임시국회에 불려 나가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유감을 표시한 뒤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천주교를 달래기 위해 정부 측이 몸이 달았다. 대거 고위 정부인사를 보냈고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물러나면서 없어졌던 청와대 내 가톨릭 신우회도 부활했다. 신우회장에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측근인 김백준(金伯駿) 총무비서관이 맡았다고 한다. 주교회의 이영식 미디어팀장의 말이다.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지요. 천주교에서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발언권을 안 줘도 오겠다고 하고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도 입장을 설명하려고 찾아왔었습니다.”
변 신부는 “자꾸 설명하러 오겠다는데, 저는 ‘설득하러 올 필요가 없다. 당신 할 일이나 충실히 하면 된다. 다만 당신들이 뭘 하든 국가에 도움이 되게 귀담아들어라. 반대하니까 설득시키고, 무마시키려고 하지 마라’고 했다”고 말했다.
“천주교는 정부로부터 받을 것도, 무서울 것도 없어요. 각을 세울 이유도 없고요. (정부 측에서) 우리 보고 예의가 없어서 미안하다느니,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문제는 4대강 자체에 있는 것이지 당시 설명을 잘했을 수도 있고,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은 안 바뀐다는 것이죠. 정부가 지금 말하는 소통이란 게, 하고 싶은 것을 설득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답답합니다.”
한국 천주교에도 30~40대 신부가 주축
한국 천주교가 정부정책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주교회의 정평위 위원장인 최기산(崔基山) 주교가 지난해 12월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해 “우리가 미약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꼭 해결되도록 기도하겠다”고 유가족을 위로한 일도 있다. 그는 용산현장을 수개월 동안 지키고 있던 정구사 소속 문정현, 전종훈 신부도 위로했다.
가톨릭의 사회참여 이면에는 젊은 사제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30~40대 젊은 사제들이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가졌던 불편함이 많이 희석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5월 24일 발표된 <한국 천주교 통계>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는 2000년에 400만명을 넘어서 2008년에 500만명, 2009년에는 512만명을 기록했다.
반면 2009년 현재 성직자 수는 4404명으로 추기경 1명을 포함, 주교가 30명, 한국인 신부가 4193명, 외국인 신부가 181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 볼 때 교구 소속 신부 3608명 가운데 30세 미만의 신부가 141명, 30~39세 신부가 1214명, 40~49세의 신부가 1140명이었다. 50세 미만의 신부가 전체 신부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3명 중 2명이 젊은 사제인 셈이다. 한국 주교회의 측은 “외국 교회, 특히 북미(北美)나 유럽 교회의 사제 고령화 현상과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귀띔했다.
50세 미만 신부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의정부교구다. 교구 소속 신부 181명 가운데 87%인 158명이 50세 미만이다. 60세 이상 신부는 한 명도 없다.
민주화 세례를 받은 386세대인 40대 사제와 혈기왕성한 30대 사제가 한국 천주교의 주축을 이루는 셈이다. 당연히 사회적 시각도 선배 사제들보다 유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념문제도 좌우논리에 경직되지 않는다.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 등이 사회적인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30~40대 젊은 사제들이 동조하는 현상도 눈에 띈다. 강 주교는 지난 6월 <경향잡지>에 기고한 ‘가톨릭 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예수는 초연하게 산야에 묻혀 명상과 기도와 영신적 수련에만 몰두하신 분이 아니셨다. 그 시대의 세상이 차별하고 억압하고 외면하였던 보잘것없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기자는 취재 도중 강 주교의 기고문을 언급하는 젊은 사제들을 많이 만났다.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 “신자라면 주교회의의 4대강 입장(반대) 따라야”
강 주교는 지난 6월 14일 경기도 양수리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에서 “주교회의 4대강 입장표명은 신앙의 유권적 학자이자 스승인 주교들이 발언한 만큼, 이 내용은 천주교 신자라면 당연히 순명(順命)하고 지켜야 하는 내용”이라고 규정했다. 또 “그 내용에 대해 토론이나, 다른 의견이 적어도 천주교 신자라면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4대강 사업 반대가 천주교회의 권위인 ‘무류지권(無謬之權·절대 그르침이 없이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전하는 권한)’임을 밝힌 셈이었다.
그렇다면, 천주교 신자가 4대강 사업에 찬성하면 죄를 짓는 것일까. 변 신부는 “주교회의 의결이라 해도 개인의 양심에 대해선 (교회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주교단의 표현은 신자들이 (4대강 사업에) 관심을 갖고 양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교님이 반대했다고 해서 우리가 꼭 반대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 좋고, 찬성하면 나쁘다가 아니라,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4대강 문제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죠.”
―주교끼리도, 사제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한국 천주교회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위기는 언제나 있었어요. 가톨릭에선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다양성 속에 일치’라는 말이 있지요. 교황이 말씀하신다고 해서 중앙집권적으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아닙니다. 각자 양심에 따라 일하면 전체적으로 하느님 뜻대로 가게 돼 있어요. 그 안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이 주교님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런 목소리가 다 필요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평신도의 목소리도 필요합니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공존해 왔고 그러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가톨릭이 커져 왔던 것이고 만약 획일적이라면 오히려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서울대교구 소속 40대 신부는 기자에게 “4대강 반대는 사목적 대안을 찾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원래 천주교의 ‘보수적 사회참여’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운동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의 보수화로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천주교 안팎에 제기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제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나선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 천주교는 이웃 종교들이 성장 정체와 선교적 실패를 겪는 동안 오히려 양적 고도성장을 계속해 왔지요. 신자가 늘면서 반대로 ‘쉬는 신자’도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4대강 반대를 통해 생명윤리 사상을 전하고 신자들과 소통해 사목적 대안을 찾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현욱 북한선교위 자문위원장, “4대강은 주교들 결정사항 아니다”
그러나 진통 끝에 주교회의가 4대강 성명서를 내놓았지만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가톨릭은 권위주의적이고 성직자 중심적이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폐쇄적인 조직체다. 주교들의 ‘유감 표명’이 교회 내부의 소통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성직자들이 4대강 문제에 찬반을 주장하거나 집단행동을 보이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냐”는 주장이 일부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든의 원로 사제인 김계춘(金啓春)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김 신부는 부산교구 총대리 신부를 역임했다.
사제는 ‘믿는 것’이 ‘주특기’
“선거가 있는 민감한 시기에 사제가 특정 정당을 편드는 오해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윤리를 강조할 수 있지만 4대강 문제를 교리상으로 접근할 계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제의 양심이 만사의 진리는 아닙니다. 천주교 사제는 남을 속이지는 않지만 속을 수는 있습니다. 저는 아주 똑똑한 신부가 누구보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어요. 그만큼 천주교 사제는 ‘믿는 것’이 ‘주특기’인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말을 물으면 설마 거짓말을 하겠느냐면서 그대로 믿어 버리는 것이죠. 신부들은 세속적인 일에 관해 자기의견을 성경이나 교회의 권위를 이용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합니다. 사제는 만능(萬能)도 아니고 UN 경찰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평화와 사랑으로 행복을 전하면 그것으로 나의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일부 평신도들도 주교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국제평화외교안보연구소 김현욱(金顯煜)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현재 천주교 북한선교위원회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는 일부 사제나 주교들이 4대강 사업을 ‘하느님 질서에 대한 파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대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또 이것(4대강 사업)은 주교님들의 결정사항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의 사안이고 평신도의 사안이기도 합니다. 주교회의가 그런 결정을 하려면 ‘시노드’(평신도협의회)의 의견을 수렴한 뒤 사제가 거르고, 다시 주교회의에서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입니다. 그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신부들이 상당히 반발하고 평신도 역시 사제를 믿고 따르는 가톨릭의 전통상, 말은 안 하지만 무척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제들이 4대강 반대 투쟁에 나서는 것은 남미(南美)의 환경론자들, 그러니까 좌파이념을 환경과 연결해 좌파이념을 성취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인 임광규(林炚圭) 변호사는 “치산치수가 창조질서를 거스르고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에 반(反)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주교님의 그런 단정 때문에 치산치수가 교리와 계명에 반한다고 이해하는 많은 순진한 가톨릭 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리를 아는 신자들은 교리와 계명에 어긋난 것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신자들도 가톨릭 장상에 대해 시니컬해지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신문에다 ‘성당 다니기가 무섭다’며 주교회의 결정을 비난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지난 3월 25일 몇몇 신문에 실린 광고문구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주교님들에게 요청합니다. 인류 보편적 진리를 존중하는 일과 좌경 이데올로기를 협조하는 일은 다른 것입니다. 일부 사제들이 좌경화되어 교회의 영역을 일탈하여 과격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막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인권유린 현장에 대해서는 침묵하시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신도들은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 강론을 듣기가 두렵습니다.>
추기경의 토로
한국 천주교의 최고 수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4대강을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주교회의 일원이기도 한 정 추기경은 개인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일부 사제들이 4대강 반대 미사를 봉헌하고 MB 정부를 심판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줄곧 침묵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8월 11일 경북 상주 서문동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에서 한 신부가 추기경을 비난한 말에 주목했다. “정 추기경이 ‘과학·정치의 문제에 교회가 의견을 표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실제 정 추기경은 그런 말을 했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주교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는 말이다.
기사 검색창에 관련 검색어를 넣어 찾아보았다. 정 추기경의 말이 보도됐다는 <한국일보>를 뒤졌지만, 어디에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신부는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일까?
이번에는 정 추기경의 최근 어록을 차근차근 뒤졌다. 우연히 지난 7월 21일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대표가 서울대교구청에서 정 추기경을 예방해 나눈 대화록에 주목했다. 천주교 신자인 안 대표가 신임 인사차 서울대교구청을 찾은 것이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대화록이 나와 있었다. 대표를 수행하는 황천모 부대변인이 녹취해 대화록을 작성한 것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 부대변인은 “당시 대표와 추기경의 면담내용을 녹취했었다. 그 자리에는 안 대표를 비롯해 고흥길(高興吉) 정책위의장, 원희룡(元喜龍) 사무총장, 원희목(元喜睦) 대표비서실장, 조해진(曺海珍) 대변인이 동석했다”며 “면담은 공개된 부분만 담았다”고 했다. 다음은 공개된 면담내용.
<―정진석 추기경: 자리가 누추하지만….
▲안상수 대표: 자주 뵈었지만, 이제는 명함이 바뀌어서 찾아왔습니다.
―추기경: 중책을 맡으셨는데 축하한다는 말씀을 더 크게 하렵니다.
▲대표: 제 본명(세례명)이 베드로이고, 바오로(고흥길 정책위의장), 스테파노(원희목 대표 비서실장)인데 좀 거창한 본명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데 한나라당 대표의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나라당이 여러 가지로 국민과 소통이 부족하고 여러 방면에서 종교계와의 소통도 부족해서 걱정을 많이 끼쳤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소통을 좀 더 강화하고 또 개혁에도 힘을 쏟겠습니다.
―추기경: 소통이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국민이 5000만명이 되니까 자세하게 설명을 해도 ‘안 들린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왜 못 들어, 그 정도만 해도 될 텐데’ 하지 말고 조금 더 설명을 하고 또 설명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소통에 조금 더 힘을 쏟으면 오해가 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개 면담은 여기서 끝난다. 황 부대변인도 물러났다. 그러나 면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곧바로 비공개 면담에 들어갔고 이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4대강 논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은 과학적·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비전문가가 나서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는 소리, 추기경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소리도 왕왕 들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느 편을 들 수는 없습니다.”
정 추기경이 언급한 ‘비전문가’는 종교계, 그러니까 주교회의 성명을 포함하는 것일까. 당시 동석했던 한 인사는 “추기경께서 말씀하신 ‘비전문가’는 4대강 반대를 주장하는 재야, 종교계를 포함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정 추기경은 또 한나라당 고위당직자가 “국민은 천주교 전체가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반대하는 편에선 목소리가 커서 전체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그에 대해선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정 추기경의 말은 4대강을 두고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염려한 토로였던 것이다. 정 추기경의 언급에 대해 주교회의 미디어팀 관계자는 “주교님 서른 분의 생각이 다 똑같을 수 없다. 보수적 성향을 가진 추기경께서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에 불과하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과연 추기경의 언급이 그저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그런 말을 했어도 똑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취재 후기-“사제부터 소통해야”
한국 천주교는 고도로 위계적인 조직이라고 한다. 성직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존성은 좀체 변하지 않고 있다. 교회 운영에서 나타난 지나친 중앙집권성, 평신도의 수동성과 참여배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대강 찬반 여부를 둘러싼 교회 내부의 갈등은 한국 천주교 특유의 성직자 권위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생명과 평화’를 외치며 ‘소통과 사랑’을 강조하는 이면에 정작 교회조직 내부에서, 본당 안에서 사제들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소(小)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죄짓는 것”이라고 평신도를 설득하려 한다. 신자들은 움찔하며 사제들을,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가 4대강 반대 입장이 분명하고, 그것이 ‘예언자적 소명’이라 생각한다면 성당 안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시국미사를 드리고, 단식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사제가 신자와 서로 소통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나누고 설명하며 평신도의 생각과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가톨릭이 자랑하는 ‘다양성 속의 일치’가 아닐까.⊙
일부 사제들은 “대통령 한 사람의 고집과 욕심으로 멀쩡한 아름다운 강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며 NGO와 더불어 삭발, 단식을 하고 주일 미사에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난하며 심지어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찾아 ‘생명평화 미사’를 올리고 있다. 1970~80년대 사제들이 가톨릭농민회와 전국평신도협의회를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이 오버랩된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제들에게) ‘좌파’라는 낙인은 공동선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돌려지는 전형적인 수사다. 오히려 이 땅의 종교인들은 좌파라는 소리를 듣는 게 맞다.”(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
왜 한국 천주교는 이토록 4대강에 몰입하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덧칠된, 혼탁한 4대강 속으로 뛰어드는 사제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지난 3월 12일 나온 교회 장상들의 ‘유감’ 표명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유감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현재 한국 천주교가 ‘양적 팽창’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 종교가 신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한국 가톨릭은 수년간 ‘고(高)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교세 폭발 덕분에 한국 천주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로마 교황청에 납부금(교황 주일 헌금 포함. 2009년 154만여 달러)을 많이 내고 있다.
4대강에 빠진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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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일부 천주교 사제와 신자들 모습.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박문수 박사는 지난 7월 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한국교회는 창립기-성장기-안정기-쇠퇴기 중 안정기를 겪고 있다”며 가톨릭의 위기를 경고했다. “최근 수년간 신자는 양적으로 늘었지만 미사 참례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등 질적인 면에서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문수 박사는 “한국 교회는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하는 ‘가진 종교’, 사회적으로 권력을 지닌 ‘종교권력’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역설적이게도 교회가 가장 존경받았던 때는 가진 것이 적고 지킬 것이 거의 없으며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청빈했을 때”라고 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천주교의 4대강 ‘투쟁’은 다소 신선하게 느껴진다. 생명과 환경의 이슈를 끌어내어 교회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교회가, 4대강 반대를 통해 가진 자를 위한 ‘소수의 교회’가 아니라 ‘민중의 교회’로 다가서려 한다는 점에서 수긍 가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침묵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은 혼란스럽다. 한국 천주교의 4대강 사업 반대가 평신도와 사제(주교) 간 소통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교들의 4대강 입장표명이 가톨릭의 고질적 병폐인 권위주의적이며 평신도가 배제된 성직자 중심주의라는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일부 주교들 사이에서 “속았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도롱뇽’의 지율, 이번엔 “노루, 고라니 어디 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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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1일 경북 상주 서문동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 |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성당 안은 앞줄 좌석을 빼고 300석 남짓한 신자석이 금세 찼다. 50대 안팎의, 첫눈에 신심이 깊어 보이는 교인(敎人)들이었다. 신자들은 성가(聖歌) 대신 ‘강은 흘러야 한다/그대로 흘러야 한다/우리의 강은 흘러야 한다/그대로 흘러야 한다’는 민중가요를 불렀다. 또 누군가의 선창으로 “잘못된 정치 지도자에 신음하는 백성과 가진 자의 편에 서서, 패거리 이권에 눈이 먼 자들이 회개해 진정한 봉사자로 돌아오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다.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12명의 사제는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지율스님이 등장했다.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겠다며 단식을 한 ‘전설의 구도자’가 아닌가. 그런 사람을 낙동강을 끼고 있는 경북 상주에서, 그것도 성당에서 만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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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롱뇽 소송’으로 유명한 지율스님이 4대강반대 강연을 하고 있다. |
또 “모래와 골재를 채취하려 강의 모래톱을 디귿자로 또박또박 자르고 4m 깊이로 강을 판다. 강변에서 발 씻고 손으로 물장구치던 강은 먼 기억이 됐다. 황금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고왔던 숲과 나무가 없어졌다”고 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나는 맞지만, 당신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산더미 같은 자료와 보고서를, 어느 누가 편견없이 읽고 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런 혜안을 지닌 재판관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사실 지율이 보여준 사진들은 참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낙동강 사업의 공사 진척도는 현재 30%대다. 겨우 첫 삽을 떴을 정도다. 한창 가속도를 내는 작업현장은 누가 봐도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자극적인 사진을 들고서 “강이 죽어 가고 있다”고 말하니, 덜컥 겁이 나고 지율의 경고가 옳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만약 정부 측 시공자가 그 자리에서 공학적 수치를 제시하며 반박한다면 그 말 역시 옳다고 느껴질 것이다.
안동교구 신부, “이름도 이상한 어느 몬시뇰, 맹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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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0일 오후 천주교 사제 300여명이 참석한 시국미사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사제들은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
지율스님의 강연 후 ‘생명평화 미사’가 이어졌다. 한 신자가 구약(舊約) 에제키엘 9장을 읽은 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안동교구 김○○ 신부가 강론을 했다. 김 신부는 “한국 모든 주교가 그런(4대강 반대) 결정을 했으니 따라야 한다. 4대강 사업은 미래 세대를 위해 죄를 짓는 파멸이요, 십계명 중 ‘도둑질을 하지 마라’는 죄에 해당한다”고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4대강 사업을 찬성한다면 십계명 중 하나를 어기게 되는 것이란 그의 말이 놀라웠다.
민중신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갑자기 한 원로사제(김계춘 신부를 지칭·편집자 주)를 언급하며 “이름도 이상한 어느 몬시뇰이 ‘젊은 사제는 뭘 모른다. 왜 과학과 정치의 문제인 4대강을 반대하느냐’고 말했다고 하는데, 맹랑하다”고 쏘아붙였다.
김 신부는 한국 천주교의 최고 장상인 정진석(鄭鎭奭) 추기경도 비난했다. “오세훈(吳世勳) 시장이 아슬아슬하게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정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추기경이 몹시 기뻐하며 ‘과학·정치의 문제에 교회가 의견을 표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더라. ‘카더라’ 이야기가 아니라 (추기경의 말은) <한국일보>에 보도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은 어느 종교보다 질서와 위계가 엄격하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회 장상의 권위가 철저하다. 하지만 민중신학을 배웠다는 이 사제는 정 추기경을 신자들 앞에서 한껏 조롱했다. 듣기 거북했다. 그런 뒤 “추기경에게 일러주지 마라. 내가 잘릴지 모른다”고 했다. 우스갯소리지만 신자들은 당혹스러웠을 게 분명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정치·경제·사회도 신앙의 눈으로 보고 반대를 하는 것이다. 교회와 신앙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다. 신앙인의 눈으로 봐서 안 될 것이 뭐가 있나. 과학도 사회·복지도 신앙의 잣대로 봐야 한다. 4대강 사업은 정치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다.”
미사를 마친 뒤 신자들은 촛불을 켜고 상주 도심을 20분간 행진했다. 태풍 ‘뎬무’의 영향 탓인지 조금씩 빗발이 날렸다.
정평위, 대운하 반대하다 대운하 포기후 4대강 반대로 전환
한국 천주교의 4대강 반대 입장은 MB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2월 13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정부의 대운하 계획을 청취하겠다는 뜻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요청했고 다음 달 7일 환경소위원회 내에 ‘대운하 사업 식별과 복음적 응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운하에 대한 ‘공학적 접근’ 대신 ‘복음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운하를 포기하자 4대강 반대로 방향을 선회했다.
4대강 사업 반대를 주도하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이하 정평위)는 교회의 공식기구다. 진보적 성향의 신부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조직으로 알려진다. 일부 정평위 사제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구사)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천주교를 잘 모르는 외부인이 볼 때, 정평위가 정구사라고 오해할 정도다. 정평위는 4대강 사업 저지와 함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여론도 주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제주교구장이 바로 강우일(姜禹一) 주교다. 강 주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직을 겸하고 있다.
정평위는 아예 전국 9개 교구 소속 정평위와 환경관련 기구 및 남녀 수도회를 아우르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라는 외곽 운동조직을 지난해 12월 8일 만들었다. 장외투쟁이 전문인 정구사 대신 천주교연대가 4대강 반대투쟁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녹색 순교’를 하겠다”며 교구별로 순회 설명회를 열거나 4대강 반대 만화책과 자료집을 만들고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정평위와 천주교연대는 지난 3월 8일 명동성당에서 사제 1104명이 서명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 선언문’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수원교구장 이용훈(李容勳) 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兪興植) 주교 등 5명의 주교가 참여할 정도로 반향이 컸다.
그런 사제들의 집단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나흘 뒤인 3월 12일 열린 한국 천주교 장상들의 총회인 ‘천주교 주교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4대강 사업 ‘유감’을 공식 표명했다. 성명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춘계 총회에 모인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는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 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교회의 성명문안 작성에 의견 달라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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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5일 경남 창원의 도청 앞에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와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신부ㆍ수녀ㆍ신자들이 4대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변승식 사무국장 신부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선거회’와 같은 비밀회의)라고 해서 주교님끼리 따로 토의하는 비밀회의에서 논의한 것”이라며 “찬반 의견이 있었고, 격렬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주교님 사이에서 4대강 찬반을 떠나 이런 문제를 주교회의 총회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신 분이 있었다고 해요.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꼭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 반대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분도 있었습니다.”
결국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자 주교들끼리 투표를 했고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주교회의 전체 뜻을 담은 성명서를 만들기로 했다. 변 신부의 계속된 말이다.
“그렇게 통과되면 그다음엔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 전통입니다. 물론 싫은 분도 있겠죠. 주교님도 각기 다르니까….”
―성명서 초안 작성은 누가 했나요. 반대냐, 유감이냐를 두고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주교님들은 ‘뜻은 전하되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뜻으로 정부가 4대강 사업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뜻에서 ‘반대’라는 표현을 안 썼던 겁니다. 우리가 정부 위에서 ‘해라, 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4대강 사업은 전문적 분야입니다. 공학자들이나 엔지니어 집단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비전문가가 얘기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밖에서 보더라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해석’을 원치 않았던 주교들의 뜻과 달리, 일부 사제들의 반대 움직임은 반(反)정부 투쟁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4대강 사업의 목적으로 내건 수질개선, 홍수예방, 수자원 확보, 일자리 창출 등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식이다. 야당이나 재야단체 주장과 흡사하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4대강 사업은 엄청난 이권이 달렸잖아요. 참여하는 쪽에선 (떡고물이) 떨어질 게 있지요. 그러니 하고 싶어 하는, 그래서 냉정하게 이권을 제어하고 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요. 국민은 ‘설마 나라를 팔아먹기야 하겠느냐’고 넘어가는데, 그래선 곤란하지요. 우선 규모가 너무 크고 앞뒤가 안 맞는 게 많고, 그래서 나서서 막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나 주교들의 공통된 의견도출이 어려웠던 만큼 성명서 문안작성도 쉽지 않아 결국 하루를 넘겨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교들은 주교회의 자리를 떴다. 최종 문안작성은 이튿날이 돼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다듬고 고치고 새로 집어넣는 작업이 밤새 이어졌던 것이다.
이번에는 주교회의 미디어팀 이영식 팀장의 말이다.
“배석자 없이 주교님만 회의를 했는데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정부 정책에 찬반으로 판단하는 게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몇몇 주교님이 ‘신앙인으로 생명, 환경 문제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냈지요. 그러다 보니 회의가 길어졌고, 당초엔 성명서 문안작성을 3월 11일 오후까지 끝내려 했는데 그 다음 날 오전이 돼서야 가능했어요. 주교님 중에서 (자신의 교구로) 가실 분은 가셨고, 책임 있는 몇몇 분은 밤을 새웠습니다. 최종 문안은 의장 주교인 강우일 주교가 작성하고 몇몇 사제가 돕는 식이었지요.”
정부, 정평위의 4대강 설명 요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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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 5월 17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단식 기도회에 들어갔다. 사제단은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킬 때까지 기도회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2월 3일 천주교 정평위가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공문을 보내 정부의 4대강 사업정책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토부 측은 불참을 통보했고, 결국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설명만 듣게 됐다고 한다. 정평위는 이날 논의 자료를 주교회의에 참고자료로 보냈고 주교회의 총회에서 4대강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찬성 의견 없이 반대 의견만 고스란히 전달된 셈이다.
정평위는 2월 24일에도 4대강사업본부에 협조공문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만약을 대비해 문화부 종무실과 국정원이 나서줄 것을 청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국장급 인사를 보내겠다고 하던 정부 측이 3월 5일 금요일 저녁 늦게 갑자기 불참의사를 밝혀 왔다고 한다. 정평위 측은 이튿날 부랴부랴 국무총리실에 연락을 취했다. 총리실이 나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갑자기 국토부에서 대규모 설명단을 보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교회의 변승식 신부는 “(정부가 외면한 것은) 구태여 좋은 이야기를 못 들을 것 같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국책사업이고 정부에서 밀고, 청와대에서 미는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일각에서는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이었던 정평위의 성향에 부담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정평위와 정구사를 동일시했다는 설도 있다.
이에 대해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측은 “천주교 교계를 대표해 설명을 요구했다면 대한민국 어느 기관이 거부했겠느냐. 답답하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중 하나라고 판단했었다. 또 당시 추진본부가 발족한 지 1년이 돼 실무적으로 여력이 없었고 임시국회에 불려 나가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유감을 표시한 뒤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천주교를 달래기 위해 정부 측이 몸이 달았다. 대거 고위 정부인사를 보냈고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물러나면서 없어졌던 청와대 내 가톨릭 신우회도 부활했다. 신우회장에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측근인 김백준(金伯駿) 총무비서관이 맡았다고 한다. 주교회의 이영식 미디어팀장의 말이다.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지요. 천주교에서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발언권을 안 줘도 오겠다고 하고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도 입장을 설명하려고 찾아왔었습니다.”
변 신부는 “자꾸 설명하러 오겠다는데, 저는 ‘설득하러 올 필요가 없다. 당신 할 일이나 충실히 하면 된다. 다만 당신들이 뭘 하든 국가에 도움이 되게 귀담아들어라. 반대하니까 설득시키고, 무마시키려고 하지 마라’고 했다”고 말했다.
“천주교는 정부로부터 받을 것도, 무서울 것도 없어요. 각을 세울 이유도 없고요. (정부 측에서) 우리 보고 예의가 없어서 미안하다느니,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문제는 4대강 자체에 있는 것이지 당시 설명을 잘했을 수도 있고,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은 안 바뀐다는 것이죠. 정부가 지금 말하는 소통이란 게, 하고 싶은 것을 설득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답답합니다.”
한국 천주교에도 30~40대 신부가 주축
한국 천주교가 정부정책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주교회의 정평위 위원장인 최기산(崔基山) 주교가 지난해 12월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해 “우리가 미약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꼭 해결되도록 기도하겠다”고 유가족을 위로한 일도 있다. 그는 용산현장을 수개월 동안 지키고 있던 정구사 소속 문정현, 전종훈 신부도 위로했다.
가톨릭의 사회참여 이면에는 젊은 사제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30~40대 젊은 사제들이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가졌던 불편함이 많이 희석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5월 24일 발표된 <한국 천주교 통계>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는 2000년에 400만명을 넘어서 2008년에 500만명, 2009년에는 512만명을 기록했다.
반면 2009년 현재 성직자 수는 4404명으로 추기경 1명을 포함, 주교가 30명, 한국인 신부가 4193명, 외국인 신부가 181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 볼 때 교구 소속 신부 3608명 가운데 30세 미만의 신부가 141명, 30~39세 신부가 1214명, 40~49세의 신부가 1140명이었다. 50세 미만의 신부가 전체 신부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3명 중 2명이 젊은 사제인 셈이다. 한국 주교회의 측은 “외국 교회, 특히 북미(北美)나 유럽 교회의 사제 고령화 현상과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귀띔했다.
50세 미만 신부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의정부교구다. 교구 소속 신부 181명 가운데 87%인 158명이 50세 미만이다. 60세 이상 신부는 한 명도 없다.
민주화 세례를 받은 386세대인 40대 사제와 혈기왕성한 30대 사제가 한국 천주교의 주축을 이루는 셈이다. 당연히 사회적 시각도 선배 사제들보다 유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념문제도 좌우논리에 경직되지 않는다.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 등이 사회적인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30~40대 젊은 사제들이 동조하는 현상도 눈에 띈다. 강 주교는 지난 6월 <경향잡지>에 기고한 ‘가톨릭 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예수는 초연하게 산야에 묻혀 명상과 기도와 영신적 수련에만 몰두하신 분이 아니셨다. 그 시대의 세상이 차별하고 억압하고 외면하였던 보잘것없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기자는 취재 도중 강 주교의 기고문을 언급하는 젊은 사제들을 많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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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천주교 주교들. 지난 2007년 12월 5일 주교단이 교황청으로 베네딕토 16세를 방문해 알현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제공=한국천주교주교회의 |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 “신자라면 주교회의의 4대강 입장(반대) 따라야”
강 주교는 지난 6월 14일 경기도 양수리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에서 “주교회의 4대강 입장표명은 신앙의 유권적 학자이자 스승인 주교들이 발언한 만큼, 이 내용은 천주교 신자라면 당연히 순명(順命)하고 지켜야 하는 내용”이라고 규정했다. 또 “그 내용에 대해 토론이나, 다른 의견이 적어도 천주교 신자라면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4대강 사업 반대가 천주교회의 권위인 ‘무류지권(無謬之權·절대 그르침이 없이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전하는 권한)’임을 밝힌 셈이었다.
그렇다면, 천주교 신자가 4대강 사업에 찬성하면 죄를 짓는 것일까. 변 신부는 “주교회의 의결이라 해도 개인의 양심에 대해선 (교회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주교단의 표현은 신자들이 (4대강 사업에) 관심을 갖고 양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교님이 반대했다고 해서 우리가 꼭 반대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 좋고, 찬성하면 나쁘다가 아니라,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4대강 문제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죠.”
―주교끼리도, 사제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한국 천주교회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위기는 언제나 있었어요. 가톨릭에선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다양성 속에 일치’라는 말이 있지요. 교황이 말씀하신다고 해서 중앙집권적으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아닙니다. 각자 양심에 따라 일하면 전체적으로 하느님 뜻대로 가게 돼 있어요. 그 안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이 주교님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런 목소리가 다 필요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평신도의 목소리도 필요합니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공존해 왔고 그러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가톨릭이 커져 왔던 것이고 만약 획일적이라면 오히려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서울대교구 소속 40대 신부는 기자에게 “4대강 반대는 사목적 대안을 찾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원래 천주교의 ‘보수적 사회참여’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운동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의 보수화로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천주교 안팎에 제기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제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나선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 천주교는 이웃 종교들이 성장 정체와 선교적 실패를 겪는 동안 오히려 양적 고도성장을 계속해 왔지요. 신자가 늘면서 반대로 ‘쉬는 신자’도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4대강 반대를 통해 생명윤리 사상을 전하고 신자들과 소통해 사목적 대안을 찾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현욱 북한선교위 자문위원장, “4대강은 주교들 결정사항 아니다”
그러나 진통 끝에 주교회의가 4대강 성명서를 내놓았지만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가톨릭은 권위주의적이고 성직자 중심적이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폐쇄적인 조직체다. 주교들의 ‘유감 표명’이 교회 내부의 소통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성직자들이 4대강 문제에 찬반을 주장하거나 집단행동을 보이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냐”는 주장이 일부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든의 원로 사제인 김계춘(金啓春)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김 신부는 부산교구 총대리 신부를 역임했다.
사제는 ‘믿는 것’이 ‘주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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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단. 중앙이 의장인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오른쪽은 부의장 김지석 주교(원주교구장), 왼쪽은 서기 최덕기 주교(수원교구장). 지난 2008년 10월 17일 의장단 출범 당시 모습. |
일부 평신도들도 주교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국제평화외교안보연구소 김현욱(金顯煜)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현재 천주교 북한선교위원회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는 일부 사제나 주교들이 4대강 사업을 ‘하느님 질서에 대한 파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대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또 이것(4대강 사업)은 주교님들의 결정사항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의 사안이고 평신도의 사안이기도 합니다. 주교회의가 그런 결정을 하려면 ‘시노드’(평신도협의회)의 의견을 수렴한 뒤 사제가 거르고, 다시 주교회의에서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입니다. 그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신부들이 상당히 반발하고 평신도 역시 사제를 믿고 따르는 가톨릭의 전통상, 말은 안 하지만 무척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제들이 4대강 반대 투쟁에 나서는 것은 남미(南美)의 환경론자들, 그러니까 좌파이념을 환경과 연결해 좌파이념을 성취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인 임광규(林炚圭) 변호사는 “치산치수가 창조질서를 거스르고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에 반(反)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주교님의 그런 단정 때문에 치산치수가 교리와 계명에 반한다고 이해하는 많은 순진한 가톨릭 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리를 아는 신자들은 교리와 계명에 어긋난 것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신자들도 가톨릭 장상에 대해 시니컬해지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신문에다 ‘성당 다니기가 무섭다’며 주교회의 결정을 비난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지난 3월 25일 몇몇 신문에 실린 광고문구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주교님들에게 요청합니다. 인류 보편적 진리를 존중하는 일과 좌경 이데올로기를 협조하는 일은 다른 것입니다. 일부 사제들이 좌경화되어 교회의 영역을 일탈하여 과격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막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인권유린 현장에 대해서는 침묵하시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신도들은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 강론을 듣기가 두렵습니다.>
추기경의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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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제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올리자, 명동성당 반대편에서 평신도들이 “성당에 가기가 무섭다”며 사제들을 비난하고 있다. |
기자는 지난 8월 11일 경북 상주 서문동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에서 한 신부가 추기경을 비난한 말에 주목했다. “정 추기경이 ‘과학·정치의 문제에 교회가 의견을 표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실제 정 추기경은 그런 말을 했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주교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는 말이다.
기사 검색창에 관련 검색어를 넣어 찾아보았다. 정 추기경의 말이 보도됐다는 <한국일보>를 뒤졌지만, 어디에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신부는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일까?
이번에는 정 추기경의 최근 어록을 차근차근 뒤졌다. 우연히 지난 7월 21일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대표가 서울대교구청에서 정 추기경을 예방해 나눈 대화록에 주목했다. 천주교 신자인 안 대표가 신임 인사차 서울대교구청을 찾은 것이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대화록이 나와 있었다. 대표를 수행하는 황천모 부대변인이 녹취해 대화록을 작성한 것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 부대변인은 “당시 대표와 추기경의 면담내용을 녹취했었다. 그 자리에는 안 대표를 비롯해 고흥길(高興吉) 정책위의장, 원희룡(元喜龍) 사무총장, 원희목(元喜睦) 대표비서실장, 조해진(曺海珍) 대변인이 동석했다”며 “면담은 공개된 부분만 담았다”고 했다. 다음은 공개된 면담내용.
<―정진석 추기경: 자리가 누추하지만….
▲안상수 대표: 자주 뵈었지만, 이제는 명함이 바뀌어서 찾아왔습니다.
―추기경: 중책을 맡으셨는데 축하한다는 말씀을 더 크게 하렵니다.
▲대표: 제 본명(세례명)이 베드로이고, 바오로(고흥길 정책위의장), 스테파노(원희목 대표 비서실장)인데 좀 거창한 본명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데 한나라당 대표의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나라당이 여러 가지로 국민과 소통이 부족하고 여러 방면에서 종교계와의 소통도 부족해서 걱정을 많이 끼쳤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소통을 좀 더 강화하고 또 개혁에도 힘을 쏟겠습니다.
―추기경: 소통이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국민이 5000만명이 되니까 자세하게 설명을 해도 ‘안 들린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왜 못 들어, 그 정도만 해도 될 텐데’ 하지 말고 조금 더 설명을 하고 또 설명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소통에 조금 더 힘을 쏟으면 오해가 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개 면담은 여기서 끝난다. 황 부대변인도 물러났다. 그러나 면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곧바로 비공개 면담에 들어갔고 이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4대강 논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은 과학적·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비전문가가 나서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는 소리, 추기경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소리도 왕왕 들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느 편을 들 수는 없습니다.”
정 추기경이 언급한 ‘비전문가’는 종교계, 그러니까 주교회의 성명을 포함하는 것일까. 당시 동석했던 한 인사는 “추기경께서 말씀하신 ‘비전문가’는 4대강 반대를 주장하는 재야, 종교계를 포함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정 추기경은 또 한나라당 고위당직자가 “국민은 천주교 전체가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반대하는 편에선 목소리가 커서 전체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그에 대해선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정 추기경의 말은 4대강을 두고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염려한 토로였던 것이다. 정 추기경의 언급에 대해 주교회의 미디어팀 관계자는 “주교님 서른 분의 생각이 다 똑같을 수 없다. 보수적 성향을 가진 추기경께서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에 불과하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과연 추기경의 언급이 그저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그런 말을 했어도 똑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취재 후기-“사제부터 소통해야”
한국 천주교는 고도로 위계적인 조직이라고 한다. 성직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존성은 좀체 변하지 않고 있다. 교회 운영에서 나타난 지나친 중앙집권성, 평신도의 수동성과 참여배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대강 찬반 여부를 둘러싼 교회 내부의 갈등은 한국 천주교 특유의 성직자 권위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생명과 평화’를 외치며 ‘소통과 사랑’을 강조하는 이면에 정작 교회조직 내부에서, 본당 안에서 사제들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소(小)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죄짓는 것”이라고 평신도를 설득하려 한다. 신자들은 움찔하며 사제들을,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가 4대강 반대 입장이 분명하고, 그것이 ‘예언자적 소명’이라 생각한다면 성당 안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시국미사를 드리고, 단식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사제가 신자와 서로 소통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나누고 설명하며 평신도의 생각과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가톨릭이 자랑하는 ‘다양성 속의 일치’가 아닐까.⊙
|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란? 한국 고위 성직자들의 협의체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다. 현재 한국 주교회의 회원은 추기경 1명(정진석), 대주교 1명(김희중 광주대교구장), 주교 19명, 아빠스 1명(이형우 왜관수도원장), 준회원(은퇴 주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 땅의 복음화와 공통 유익의 증진을 위해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 협의하며 교령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한다. 16개 개별 교구를 대표하는 목자들인 주교들이 봄과 가을에 모여 1년에 두 차례씩 정기총회를 갖는다. 주교회의는 교회의 다양한 공동 관심사들에 대처하는 것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
김인숙
(20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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