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이색행정의 현장] ‘건강도시’ 추구하는 서울 성북구 : 월간조선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조그만 맥줏집을 하는 박경찬(29)씨는 15세 때부터 술과 담배를 입에 댔다. 담배는 하루에 1~2갑 정도 피웠고, 거의 매일 2~3병의 소주를 마셨다.

몸은 점점 황폐해지고 비염 등으로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 앞 금연(禁煙)거리를 걷다가 금연 홍보조형물과 포스터를 발견하고, 성북구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찾았다.

그는 1시간 넘게 담당 여직원에게 그동안 술과 담배에 절어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무원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담당 여직원은 누나가 막내 동생을 대하는 듯한 자세로 그의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주었다. 이에 고무된 박씨는 그날부터 금연에 들어갔다.

물론 금단(禁斷)증상이 왔다. 그의 맥줏집을 찾는 손님들이 담배연기를 뿜어댈 때마다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며칠에 한 번씩 금연클리닉 직원들이 전화를 걸거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 그를 격려해 주는 것이 큰 힘이 됐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담배연기가 이제는 고통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박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술집을 금연술집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뿌연 담배연기 없는 술집’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100% 금연에 술(양주)은 4인 기준 2병 이상 팔지 않기로 했다.

‘미친 사람’이라는 얘기, ‘돈이 얼마나 많아서 그러느냐’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욕을 하면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기를 열흘, 지하에 있는 가게의 공기가 쾌적해지고, 여러 해 동안 그를 고생시켰던 까만 가래가 끓는 증상이 단 며칠 만에 사라졌다.

그는 “안암동에 위치한 가게인지라 고려대 학생들이 주 고객”이라면서 “처음에는 학생들이 황당해 하면서 손님이 다소 줄었지만, 이후 비흡연 학생들을 중심으로 손님이 다시 늘면서 금연술집으로 바꾸기 이전 수준으로 매출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금연자 한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월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닐 텐데, 친동생처럼 챙겨준 보건소 아주머니들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서 금연도, 금연술집 운영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Stop Smoking in Seongbuk”

박씨의 사례는 성북구가 지난 8년간 시행해 온 일련의 금연 캠페인이 결실을 거둔 경우다. 성북구가 금연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2002년 7월 서찬교(徐贊敎·67) 구청장이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서 구청장은 “강남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도시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방법을 찾다가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제일 먼저 내건 것은 ‘담배 연기 없는 성북’이었다. 2002년 성북구는 3S운동을 선포했다. 3S는 “Stop Smoking in Seongbuk”의 약자(略字)다.

2003년 6월에는 ‘성북구 금연 환경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條例)’(금연조례)를 제정, 공포했다. 성북구는 조례공포식에서 정광모(鄭光模) 한국소비자연맹회장, 박덕기(朴德基) 성북구의회 의장과 함께 페르난도 슈미트 주한(駐韓)칠레대사를 금연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주한 외국대사가 홍보대사로 위촉된 경위를 서찬교 구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슈미트 대사는 스스로 찾아와서 금연홍보대사를 하겠다고 자청했어요. 슈미트 대사의 말이, 자기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부인이 골초여서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부인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가 역겨워서 다가가기도 싫을 정도였다나요.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걸 보고 슈미트 대사는 ‘담배는 사람의 의지로 얼마든지 끊을 수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닫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금연홍보대사를 맡기로 나섰다고 하더군요.”

서 구청장은 “나도 20년 가까이 담배를 피우다가 끊었는데,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연조례 제정에 따라 성북구는 2003년 12월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인근 하나로거리를 ‘금연홍보거리’로 지정하고, 금연홍보 조형물 등을 설치했다. 정기적인 금연캠페인도 실시했다.

2008년 12월에는 하나로 금연홍보거리를 흡연과 담배꽁초 버리기가 금지된 금연거리로 강화했다. 성북구는 주(週) 1~2회 금연서포터스를 투입, 흡연자 계도 활동,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 거리흡연 실태조사, 관련 홍보물 배포 등을 실시했다.

‘찾아가는 금연클리닉’

성북구 월곡동에 있는 성북구보건소는 앞에서 언급한 금연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금연클리닉 참여자들을 대상으로는 니코틴 의존도 검사를 실시, 일산화탄소 잔존량을 측정한 후 금연껌과 니코틴 패치 등 금연보조제를 무료로 지급한다. 금연상담사가 6주 과정으로 1대1 상담도 해 준다. 이후 6개월 동안 전화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금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준다. 6개월 후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타민 등 선물을 주고, 니코틴 소변테스트도 실시한다. 성북구 삼선동에 있는 삼선보건분소도 금연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성북구는 금연을 원하는 이들이 15인 이상 있는 사업장이나 시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금연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는 성북구 관내에 있는 상진운수, 2008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 참여자의 20%가 금연에 성공했다. 작년에는 고려대, 성신여대, 서경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23개소 504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그중 47.5%인 223명이 담배를 끊도록 했다.

성북구는 관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흡연 및 음주예방 교육에도 열심이다.

성북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금연클리닉’은 전체 학생들이 아니라 금연을 결심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는 ‘청소년금연클리닉’은 1개월간의 출장상담과 5개월간의 금연성공관리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성북구는 어린이집을 방문해 실시하는 ‘취학 전 아동흡연예방교육’,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초등학생 흡연·음주예방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성북구가 실시한 각급 학교 학생 대상 금연교육에는 33개교(어린이집 포함) 1만2542명, 금주교육에는 16개교(어린이집 포함) 5185명이 참여했다. 올해부터는 학부모들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신학기 학부모 총회 때 학부모 흡연예방교육을 시작했다.

2008년 5월 8일 ‘세계금연의 날’을 맞아 성신여대 입구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서찬교 구청장(가운데)이 건강도시연맹(AFHC)이 수여한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금연조례’ ‘절주조례’ 제정

서찬교 구청장은 2006년 구청장으로 재선된 후에는 담배에서 술로 관심대상을 확장했다. 서찬교 구청장은 “담배와 술은 대개 함께 가기 마련이라는 인식 아래 금주(禁酒)운동을 벌이려 했으나, 금주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술을 적당히 마시자’는 절주(節酒)운동을 벌이게 됐다”고 말했다.

성북구청은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음주예방교육’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초등학생 흡연·음주예방 체험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성북구청의 금연·절주캠페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단순한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이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북구는 우선 금연·절주캠페인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2003년 제정된 ‘금연 환경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금연조례)와 2008년 제정된 ‘성북구 건전한 음주문화 환경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절주조례)가 그것이다. 절주 관련 조례가 제정된 것은 전국에서 성북구가 처음이다.

성북구가 작년 1월 관내 어린이공원 19곳과 근린공원 2곳을 금연·금주 청정공원으로 지정하고, 금연·금주 청정구역 지킴이를 배치한 것도 이 절주조례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길음어울림마당, 성북천산책로, 성북근린공원 등 3개소를 금연·금주청정공원으로 추가 지정했다.

금연·금주청정공원에 배치되는 지킴이들도 눈길을 끈다. 40명의 지킴이는 성북구 관내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2인1조로 1일 4시간씩 주 3일 활동하고, 월(月) 20만원의 보수(報酬)를 받는다. 노인일자리 사업과 연결되는 셈이다. 공원 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도 노인 지킴이들이 다가가 지적을 하면 “미안하다”며 담뱃불을 끄고 공원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성북구는 보건소 건강정책과 산하에 금연절주팀을 두고 있다. 서울시내 다른 보건소의 경우, 금연클리닉을 운영하는 사례는 있지만, 직제(職制)상 팀 단위의 전담조직을 두고 있는 곳은 성북구가 유일하다.

성인남성 흡연율 39.3%로 떨어져

성북구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청소년금연교실.

성북구의 이러한 노력은 종종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청소년금연클리닉’은 인력과 예산상의 한계 때문에 금년부터는 출장상담 대신 보건소 금연클리닉 내에 청소년 전용 상담코너를 운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금연거리로 지정된 성신여대 입구 하나로거리의 경우, 거리 흡연자나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성북구의 의지만큼 시민들이 따라와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북구의 노력은 여러 부문에서 결실을 거두고 있다. 서찬교 구청장이 취임하던 2002년 51.6% 수준이던 성북구의 성인남성 흡연율은 2008년 39.3%로 떨어졌다. 성북구는 금년까지 성인남성 흡연율을 30%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고로 작년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 성인남성 흡연율은 43.1%로 나타났다(한국금연운동협의회).

2004년 시작한 금연클리닉은 2006년까지 3915명이 등록, 이 중 45.2%가 금연에 성공했다(등록 6개월 후 성공률). 금연클리닉의 실적은 2007년부터 크게 올라간다. 2007년에는 2466명이 등록해 48.8%, 2008년에는 2735명이 등록해 54.1%가 금연에 성공했다. 작년에는 1만1924명이 금연클리닉의 상담을 받은 후 2861명이 등록해서 46.7%가 금연에 성공했다(‘찾아가는 금연클리닉’, ‘청소년금연클리닉’ 등 포함).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성북구는 2004년에는 ISO 9001 인증을 받았고, 2004~2006년 연속으로 서울시 금연부문 우수구로 선정됐다. 2003년 5월 ‘세계금연의 날’에는 한국금연운동협의회(회장 김일순)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작년 2월에는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성북구청장에게 성북구의 금연·절주정책을 격려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성북구의 금연 캠페인을 주도한 서찬교 구청장은 2005년 12월 성북구의 금연캠페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금연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연구>라는 논문으로 국민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악하늘길 개방

금연, 절주 다음은 무엇일까? 서찬교 구청장은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쉽고 재미있게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성북구는 그동안 북한산 생태숲, 북한산 숲체험장, 성북생태체험관, 성북근린공원 등을 조성했다.

이와 관련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악하늘길 산책로’다. 1968년 1·21사태 이후 40여 년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던 이 길은 작년 3월 성북천 발원지에서 숙정문안내소를 거쳐 말바위쉼터로 이어지는 1.4㎞ 길이의 제1산책로가 개방된 데 이어, 작년 9월에는 북악하늘길 제2산책로 1.9㎞ 구간이 개방됐다. 40여 년간 일반인의 발이 닿지 않은 이 길은 ‘서울 속의 DMZ’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제2산책로’는 ‘김신조 루트’라고도 알려져 있다. 서찬교 구청장에 의하면, 이 길은 작년 9월 제2산책로 개방행사 당시 김신조씨를 초청해 현장을 답사하면서 ‘김신조 루트’로 알려졌지만, 1·21사태 당시 일부 공비가 이쪽으로 달아나다가 군경(軍警)과 교전을 벌이기는 했어도 김신조씨가 이 루트로 침투해 들어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금년 2월에는 군인들의 순찰로였던 640m의 제3산책로가 시민들에게 열렸다. 서찬교 구청장은 “북악하늘길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명품(名品)산책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북악하늘길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서울시내 다른 지역은 물론, 포항·원주·부산 등 지방에서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한편 성북구는 2008년에는 노인복지와 공공위생 분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WHO(세계보건기구)로부터 2008 건강도시상(‘도시에서의 활기찬 노후생활과 보장’ 부문, ‘공중위생시설의 우수실천사례’)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