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훼미리마트·SK 페이스·풀무원 등 5개 기업에 148개 지하철 상가 약 6000~1만 개 장기 임대계약
했다가 지난해 말 취소
⊙ 전체 계약금액 약 1조4000억원
⊙ “관행대로 입찰”(공사) “유명 기업 임대장사 방치한 것”(임대업계 관계자)
했다가 지난해 말 취소
⊙ 전체 계약금액 약 1조4000억원
⊙ “관행대로 입찰”(공사) “유명 기업 임대장사 방치한 것”(임대업계 관계자)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가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해 온 1조4000억원 규모(전체 계약금)의 ‘해피존’ 사업을 지난해 말 돌연 중단한 것으로 월간조선 취재 결과 밝혀졌다.
해피존 사업은 자동 집표기 설치로 빈 공간이 된 5, 6, 7, 8호선 지하철 역무실을 상가와 휴게·문화공간 등으로 만드는 사업을 말한다. 현재 역무실이 비는 곳은 148개다. 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해피존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가 면적은 전체 약 10만㎡(약 3만평). 지하철 상가 크기는 대개 9.9㎡(3평)~16.5㎡(5평) 남짓이기 때문에 해피존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상가의 수는 약 6000~1만 개다.
이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측근이었던 음성직 도시철도공사 사장(전 서울시 대중교통개선담당 정책보좌관)이 2008년 9월 연임 이후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이다.
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9월 ‘해피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5개 기업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훼미리마트(보광), SK 페이스, 풀무원 등 5개 기업이 있다. 이제 남은 일은 공사 측이 우선협상대상자들과 협상을 벌여 가격을 정한 뒤 본계약만 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사 측은 지난해 12월 돌연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1조원대 사업 중단 이유?
‘해피존’ 사업이 어떤 이유 때문에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좌초됐을까?
월간조선 취재진을 만난 도시철도공사 홍보팀은 “입찰에 떨어진 사업자들의 투서와 진정서 때문에 감사원과 서울시로부터 집중적인 감사를 받았다”며 “특혜의혹을 받아 가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의혹을 받기 싫어서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말 도시철도공사의 말 그대로일까.
이 사업이 추진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출발부터 투서와 진정서의 싹은 충분했다. 부동산 임대업계에서는 이 사업의 수익이 20년(10년 계약, 10년 연장 가능)간 2조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이권이다. 그러나 조그만 상가들을 실제로 운영할 사람들은 대부분 중소 또는 영세업자들이다. 그럼에도 공사 측은 이 사업을 통째로 한 개 컨소시엄에 몰아주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임대업계에서는 “해피존 사업처럼 148개 역 전체를 묶어서 상가를 임대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부동산 임대업체 사장 A씨와 나눈 얘기다.
“도시철도공사가 ‘해피존’ 사업을 시작한 명분이 ‘대규모 공사를 해야 하니까 돈 많은 기업들이 임대사업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하지만 그건 핑계입니다. 해피존 사업은 148개 역 상가 임대사업을 한꺼번에 묶어 버렸기 때문에 대규모인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단일 역 하나로 떼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역무실 없애고 그곳에 상가나 휴식 공간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렵고 대단한 사업입니까. 지하철역에서 개별적으로 건설회사를 선정해 상가 바닥과 구획만 정해 놓으면, 임대받은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하면 되는 겁니다.”
―역마다 공사를 따로 하면 비용이 안 늘어납니까.
“별 차이가 없어요. 상가 임대를 받은 기업들도 건설회사에 공사를 맡기는 건 마찬가지예요. 상가 조성공사를 하느라 발생한 비용은 상가를 임대해 줄 때 임대료에 반영하면 됩니다. 이렇게 중소 자영업자들에게 직접 임대하는 방식으로 입찰을 하면, 수천 명의 자영업자들이 지하철 상가를 상대적으로 싸게 분양받아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쇼핑몰처럼 꾸미려고 일괄임대 방식 택해”
해피존 사업을 추진해 온 도시철도공사 측 얘기를 듣기 위해 이 회사 홍보팀에 연락을 했다. 도시철도공사 홍보팀장과 나눈 얘기다.
―몇 개 회사에 148개 역 상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해피존 사업은 단순히 상가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하철역 공간의 상업시설을 쇼핑몰처럼 만드는 게 목적이죠. 개별 상가 점포만 만들어 놓으면 지하철역이 시장처럼 돼 버립니다. 저희는 지하철역을 단순 상가가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아도 쇼핑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 전체를 통일된 디자인으로 꾸미고, 상가에 들어가는 가게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저희에게 관련 부서가 있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효율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해피존 사업으로 수천 개의 상가 공간이 나옵니다. 이를 도시철도공사가 직접 임대하면 공사의 이익도 더 커지고 자영업자들은 더 싼값에 상가를 분양받거나 임차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는 컨소시엄 기업들에 기본 보장금, 매출수수료 배분 방식으로 임대료를 받습니다. 기본 보장금은 영업 실적과 관계없이 저희에게 납부해야 하는 임대료며, 매출수수료는 매출이 증가하는 만큼 저희에게 납부하는 겁니다. 따라서 저희가 직접 임대를 하는 것만큼이나 공사의 임대수익도 늘어날 겁니다. 해피존 사업이 제대로 되면 매년 임대수익이 1200억원이 생길 것으로 예상합니다.”
―해피존 사업으로 일반 자영업자들은 공사 측과 직접 임대계약을 하지 못합니다. 컨소시엄 기업을 통해야 하니 더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148개 역에 있는 상가가 모두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닙니다. 승객이 적은 역은 장사가 안돼서 임대를 해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해피존 사업으로 주위 환경이 좋아지고, 장사가 잘되는 여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문제가 없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왜 사업을 중단했습니까.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이후 엄청난 투서와 음해가 있었습니다. 감사원과 서울시 감사도 몇 개월 동안 받았어요. 해피존 사업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협상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특혜의혹까지 받아 가며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해피존처럼 규모 큰 일괄임대는 처음”
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 두 곳의 지하철 관련 공기업은 지금까지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 왔다. 그러나 역(驛) 하나 정도를 통째로 한 기업에 줘서 임대하도록 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148개 역 상가 임대사업권을 모두 한 컨소시엄에 줘 중소 자영업자들은 아예 입찰의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서울메트로 관계자 K씨의 얘기다. 계속 그의 말이다.
“현재 두 공사의 지하철 상가 임대 방식은 전형적으로 임대사업자 배만 불리는 구조입니다. 지하철 상가 임대는 해피존 사업처럼, 전체 임대권을 한두 업체에 몰아줍니다. 예를 들어 종로1가 지하철 상가 임대를 할 때 구획을 나눠 상가 한 개씩 임대를 안 해 줘요. 상가에 배당된 부지가 약 330㎡(100평)라면 이 부지 전체를 임대해 주는 거예요. 덩치가 커지게 되니까 입찰보증금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입찰에서 아예 배제돼요.”
―(임대사업자는) 입찰을 받은 후에 상가를 나눠서 다시 파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입찰받은 사람 마음대로 10개든 20개든 나누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하철 사당역 9.9㎡를 월 100만원에 입찰받아서 400만~500만원에 재임대를 하는 거죠. 종로역이나 신도림역같이 장사가 잘되는 곳은 같은 넓이에 월 임대료가 800만~1000만원이 넘습니다. 대개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에서 받은 임대료보다 4~5배 이상 비싸게 재임대를 할 겁니다.”
―공사가 상가를 만들어서 개별 임대를 해 주면, 공사와 임대받은 사람 모두 이득이 되겠군요.
“그렇죠. 이번 해피존 사업은 계약금액이 1조4000억원입니다. 대기업들이 향후 임대장사를 해서 얼마나 수익을 낼까요. 아마 투자 금액의 2배는 남길 겁니다. 만약 도시철도공사 측이 해피존 사업을 직접 시행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해피존 사업을 할 때보다 적게 잡아도 1조원 넘는 수익을 추가로 올릴 수 있어요. 이 돈이면 도시철도공사 부채(2009년 1조1591억원) 가운데 상당액을 갚을 수 있어요. 대기업들이나 임대 재벌들에게 흘러갈 돈을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거죠.”
입찰보증금 700억원
―공사 측에서 인력이 부족해 직접 사업을 할 수 없는 건 아닙니까.
“지하철에 바닥 만들고 칸막이해서 상가 만드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건설업체들에 입찰 부치면 원하는 대로 상가를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도시철도공사 안에는 상가의 개발, 임대, 관리하는 사업운영팀이 있어요.”
부동산 임대업자 A씨는 “해피존 사업에서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무엇보다 입찰보증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입찰보증금으로 전체 계약금의 5%를 걸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전체 계약금액이 1조4000억원입니다. 즉 700억원을 걸지 못하면 입찰에 아예 참여도 못해요. 영세업자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은 겁니다. 저희 같은 영세 임대업체들은 들어갈 엄두조차 못 냈어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최근 들어 대기업들과 유명 중견기업들의 지하철 상가 진출이 크게 늘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2007년 도시철도공사 편의점 사업자로 선정돼, 지하철 상가에 편의점을 진출시켰다. 또 화장품업체 미샤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지하철 상가 매장을 90곳으로 늘렸다. LG생활건강이 직영하는 뷰티플렉스(화장품판매점)는 9호선 21개 역사에 매장을 열었다. GS리테일도 지난해부터 지하철 상가에서 도넛 전문점인 미스터도넛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A씨의 얘기를 더 들어 보자.
“지하철 상가는 경쟁업체가 들어오지 못해 독점이 가능해요. 예를 들어 편의점 한 곳이 들어서면, 다른 편의점은 못 들어오죠. 그래서 매장을 크게 낼 필요가 없고, 1년 내내 유동인구가 일정하게 확보됩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아 수익도 매우 안정적입니다.”
―편의점이나 화장품 회사들은 매장이 많아야 할 테니 해피존 사업처럼 상가를 많이 임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자신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기 위해 상가를 임대하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해피존 사업처럼 기업 한 곳이 수백 개의 상가를 임대해서 대부분을 재임대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대기업들이 은행에서 국민들이 맡겨 놓은 돈을 대출받아 사업하는 건 고용을 늘리고 투자를 하라는 거지 임대장사 하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임대업 재벌 얘기도 나와
수익성이 높은 만큼 지하철 상가 임대권을 따기 위한 로비도 치열하다고 한다. 경찰청 수사 관계자 B씨의 얘기다. B씨는 해피존과 관련해 현재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 상가는 ‘황금알 낳는’ 거위예요. 이 때문에 부동산 임대업자들이나 대기업이 상가 임대권을 따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월드컵 휘장판매사업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B씨에 따르면, 2002년 한일월드컵 휘장판매권을 가졌던 S씨는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여 지하철 역사마다 월드컵 홍보관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S씨 등은 엄청난 로비를 한 게 밝혀졌다. 이 때문에 정·관계, 체육계 인사들 여러 명이 구속됐다. 이 사건이 2002년 월드컵휘장납품 로비사건이다.
S씨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월드컵 홍보관을 다른 일반 상가로 바꿔 재임대해 주는 방식으로 지하철 2호선 잠실 지하철역 등 수백 개 지하철 역에서 엄청난 이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B씨는 “해피존 사업은 S씨 같은 임대업 재벌들에게 임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만든 사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해피존 사업은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 가운데 가장 대규모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상가를 한 컨소시엄에 몰아주려는 것부터 문제죠. 현재 우선협상대상자 컨소시엄 내에서 서로 지분을 놓고 다툼이 생겼어요. 컨소시엄의 주도격인 회사가 입찰보증금을 모두 냈다고 합니다. 다른 회사들은 입찰을 받으면 자기 지분만큼 계약금을 내기로 했죠. 막상 입찰을 따고 나니, 수익성이 생각 이상 좋거든요. 그러니 입찰보증금을 낸 회사는 자기 지분을 더 갖겠다고 주장하고, 다른 회사들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텨서 컨소시엄이 와해 위기에 있는 겁니다. 추가 계약금을 내지 못해서 본계약도 못 하고 있는 겁니다.”
―도시철도공사 측에서는 특혜의혹이 일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업을 중단했다고 하더군요.
“감사원과 서울시에서 계속 감사를 하고 있으니 골치 아팠겠죠. 그런 와중에, 입찰받은 컨소시엄은 추가 계약금을 주지 못하니, 본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입찰보증금을 낸 컨소시엄은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어떤 소송입니까.
“해피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송이죠.”
해피존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SK 컨소시엄’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다. 컨소시엄 측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우리 컨소시엄은 적법한 절차와 공고에 의거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도시철도공사 측의 일방적인 입찰 취소 결정 통보로 피해가 막대합니다. 탈락 업체의 음해성 민원 제기와 도시철도공사 상급기관의 감사의견에 따라 일방적으로 입찰이 취소됐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피존 사업으로 발생한 상가 대부분을 재임대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이번 사업은 특혜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희 컨소시엄은 관련 기업들이 보유한 브랜드와 제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홍보하고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할 겁니다. 재임대 등의 부분은 사업계획상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1조원대의 사업이 어쩌면 이렇게 진행될 수 있었을까.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가 그동안 역 1~2개에서 시행하던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148개 일괄임대’를 결정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중소 임대업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입찰 조건을 까다롭게 한 것일까. 도시철도공사가 이 사업을 중단한 배경이 감사원과 서울시의 감사 때문이었다면 우선 그 감사 결과부터 공개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해피존 사업은 자동 집표기 설치로 빈 공간이 된 5, 6, 7, 8호선 지하철 역무실을 상가와 휴게·문화공간 등으로 만드는 사업을 말한다. 현재 역무실이 비는 곳은 148개다. 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해피존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가 면적은 전체 약 10만㎡(약 3만평). 지하철 상가 크기는 대개 9.9㎡(3평)~16.5㎡(5평) 남짓이기 때문에 해피존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상가의 수는 약 6000~1만 개다.
이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측근이었던 음성직 도시철도공사 사장(전 서울시 대중교통개선담당 정책보좌관)이 2008년 9월 연임 이후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이다.
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9월 ‘해피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5개 기업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훼미리마트(보광), SK 페이스, 풀무원 등 5개 기업이 있다. 이제 남은 일은 공사 측이 우선협상대상자들과 협상을 벌여 가격을 정한 뒤 본계약만 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사 측은 지난해 12월 돌연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1조원대 사업 중단 이유?
‘해피존’ 사업이 어떤 이유 때문에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좌초됐을까?
월간조선 취재진을 만난 도시철도공사 홍보팀은 “입찰에 떨어진 사업자들의 투서와 진정서 때문에 감사원과 서울시로부터 집중적인 감사를 받았다”며 “특혜의혹을 받아 가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의혹을 받기 싫어서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말 도시철도공사의 말 그대로일까.
이 사업이 추진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출발부터 투서와 진정서의 싹은 충분했다. 부동산 임대업계에서는 이 사업의 수익이 20년(10년 계약, 10년 연장 가능)간 2조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이권이다. 그러나 조그만 상가들을 실제로 운영할 사람들은 대부분 중소 또는 영세업자들이다. 그럼에도 공사 측은 이 사업을 통째로 한 개 컨소시엄에 몰아주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임대업계에서는 “해피존 사업처럼 148개 역 전체를 묶어서 상가를 임대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부동산 임대업체 사장 A씨와 나눈 얘기다.
“도시철도공사가 ‘해피존’ 사업을 시작한 명분이 ‘대규모 공사를 해야 하니까 돈 많은 기업들이 임대사업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하지만 그건 핑계입니다. 해피존 사업은 148개 역 상가 임대사업을 한꺼번에 묶어 버렸기 때문에 대규모인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단일 역 하나로 떼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역무실 없애고 그곳에 상가나 휴식 공간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렵고 대단한 사업입니까. 지하철역에서 개별적으로 건설회사를 선정해 상가 바닥과 구획만 정해 놓으면, 임대받은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하면 되는 겁니다.”
―역마다 공사를 따로 하면 비용이 안 늘어납니까.
“별 차이가 없어요. 상가 임대를 받은 기업들도 건설회사에 공사를 맡기는 건 마찬가지예요. 상가 조성공사를 하느라 발생한 비용은 상가를 임대해 줄 때 임대료에 반영하면 됩니다. 이렇게 중소 자영업자들에게 직접 임대하는 방식으로 입찰을 하면, 수천 명의 자영업자들이 지하철 상가를 상대적으로 싸게 분양받아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쇼핑몰처럼 꾸미려고 일괄임대 방식 택해”
해피존 사업을 추진해 온 도시철도공사 측 얘기를 듣기 위해 이 회사 홍보팀에 연락을 했다. 도시철도공사 홍보팀장과 나눈 얘기다.
―몇 개 회사에 148개 역 상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해피존 사업은 단순히 상가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하철역 공간의 상업시설을 쇼핑몰처럼 만드는 게 목적이죠. 개별 상가 점포만 만들어 놓으면 지하철역이 시장처럼 돼 버립니다. 저희는 지하철역을 단순 상가가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아도 쇼핑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 전체를 통일된 디자인으로 꾸미고, 상가에 들어가는 가게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저희에게 관련 부서가 있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효율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해피존 사업으로 수천 개의 상가 공간이 나옵니다. 이를 도시철도공사가 직접 임대하면 공사의 이익도 더 커지고 자영업자들은 더 싼값에 상가를 분양받거나 임차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는 컨소시엄 기업들에 기본 보장금, 매출수수료 배분 방식으로 임대료를 받습니다. 기본 보장금은 영업 실적과 관계없이 저희에게 납부해야 하는 임대료며, 매출수수료는 매출이 증가하는 만큼 저희에게 납부하는 겁니다. 따라서 저희가 직접 임대를 하는 것만큼이나 공사의 임대수익도 늘어날 겁니다. 해피존 사업이 제대로 되면 매년 임대수익이 1200억원이 생길 것으로 예상합니다.”
―해피존 사업으로 일반 자영업자들은 공사 측과 직접 임대계약을 하지 못합니다. 컨소시엄 기업을 통해야 하니 더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148개 역에 있는 상가가 모두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닙니다. 승객이 적은 역은 장사가 안돼서 임대를 해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해피존 사업으로 주위 환경이 좋아지고, 장사가 잘되는 여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문제가 없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왜 사업을 중단했습니까.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이후 엄청난 투서와 음해가 있었습니다. 감사원과 서울시 감사도 몇 개월 동안 받았어요. 해피존 사업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협상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특혜의혹까지 받아 가며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해피존처럼 규모 큰 일괄임대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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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존 사업은 지하철 5~8호선 148개 역에 약 6000~1만 개의 상가를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
“현재 두 공사의 지하철 상가 임대 방식은 전형적으로 임대사업자 배만 불리는 구조입니다. 지하철 상가 임대는 해피존 사업처럼, 전체 임대권을 한두 업체에 몰아줍니다. 예를 들어 종로1가 지하철 상가 임대를 할 때 구획을 나눠 상가 한 개씩 임대를 안 해 줘요. 상가에 배당된 부지가 약 330㎡(100평)라면 이 부지 전체를 임대해 주는 거예요. 덩치가 커지게 되니까 입찰보증금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입찰에서 아예 배제돼요.”
―(임대사업자는) 입찰을 받은 후에 상가를 나눠서 다시 파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입찰받은 사람 마음대로 10개든 20개든 나누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하철 사당역 9.9㎡를 월 100만원에 입찰받아서 400만~500만원에 재임대를 하는 거죠. 종로역이나 신도림역같이 장사가 잘되는 곳은 같은 넓이에 월 임대료가 800만~1000만원이 넘습니다. 대개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에서 받은 임대료보다 4~5배 이상 비싸게 재임대를 할 겁니다.”
―공사가 상가를 만들어서 개별 임대를 해 주면, 공사와 임대받은 사람 모두 이득이 되겠군요.
“그렇죠. 이번 해피존 사업은 계약금액이 1조4000억원입니다. 대기업들이 향후 임대장사를 해서 얼마나 수익을 낼까요. 아마 투자 금액의 2배는 남길 겁니다. 만약 도시철도공사 측이 해피존 사업을 직접 시행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해피존 사업을 할 때보다 적게 잡아도 1조원 넘는 수익을 추가로 올릴 수 있어요. 이 돈이면 도시철도공사 부채(2009년 1조1591억원) 가운데 상당액을 갚을 수 있어요. 대기업들이나 임대 재벌들에게 흘러갈 돈을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거죠.”
입찰보증금 700억원
―공사 측에서 인력이 부족해 직접 사업을 할 수 없는 건 아닙니까.
“지하철에 바닥 만들고 칸막이해서 상가 만드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건설업체들에 입찰 부치면 원하는 대로 상가를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도시철도공사 안에는 상가의 개발, 임대, 관리하는 사업운영팀이 있어요.”
부동산 임대업자 A씨는 “해피존 사업에서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무엇보다 입찰보증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입찰보증금으로 전체 계약금의 5%를 걸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전체 계약금액이 1조4000억원입니다. 즉 700억원을 걸지 못하면 입찰에 아예 참여도 못해요. 영세업자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은 겁니다. 저희 같은 영세 임대업체들은 들어갈 엄두조차 못 냈어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최근 들어 대기업들과 유명 중견기업들의 지하철 상가 진출이 크게 늘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2007년 도시철도공사 편의점 사업자로 선정돼, 지하철 상가에 편의점을 진출시켰다. 또 화장품업체 미샤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지하철 상가 매장을 90곳으로 늘렸다. LG생활건강이 직영하는 뷰티플렉스(화장품판매점)는 9호선 21개 역사에 매장을 열었다. GS리테일도 지난해부터 지하철 상가에서 도넛 전문점인 미스터도넛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A씨의 얘기를 더 들어 보자.
“지하철 상가는 경쟁업체가 들어오지 못해 독점이 가능해요. 예를 들어 편의점 한 곳이 들어서면, 다른 편의점은 못 들어오죠. 그래서 매장을 크게 낼 필요가 없고, 1년 내내 유동인구가 일정하게 확보됩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아 수익도 매우 안정적입니다.”
―편의점이나 화장품 회사들은 매장이 많아야 할 테니 해피존 사업처럼 상가를 많이 임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자신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기 위해 상가를 임대하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해피존 사업처럼 기업 한 곳이 수백 개의 상가를 임대해서 대부분을 재임대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대기업들이 은행에서 국민들이 맡겨 놓은 돈을 대출받아 사업하는 건 고용을 늘리고 투자를 하라는 거지 임대장사 하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임대업 재벌 얘기도 나와
수익성이 높은 만큼 지하철 상가 임대권을 따기 위한 로비도 치열하다고 한다. 경찰청 수사 관계자 B씨의 얘기다. B씨는 해피존과 관련해 현재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 상가는 ‘황금알 낳는’ 거위예요. 이 때문에 부동산 임대업자들이나 대기업이 상가 임대권을 따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월드컵 휘장판매사업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B씨에 따르면, 2002년 한일월드컵 휘장판매권을 가졌던 S씨는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여 지하철 역사마다 월드컵 홍보관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S씨 등은 엄청난 로비를 한 게 밝혀졌다. 이 때문에 정·관계, 체육계 인사들 여러 명이 구속됐다. 이 사건이 2002년 월드컵휘장납품 로비사건이다.
S씨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월드컵 홍보관을 다른 일반 상가로 바꿔 재임대해 주는 방식으로 지하철 2호선 잠실 지하철역 등 수백 개 지하철 역에서 엄청난 이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B씨는 “해피존 사업은 S씨 같은 임대업 재벌들에게 임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만든 사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해피존 사업은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 가운데 가장 대규모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상가를 한 컨소시엄에 몰아주려는 것부터 문제죠. 현재 우선협상대상자 컨소시엄 내에서 서로 지분을 놓고 다툼이 생겼어요. 컨소시엄의 주도격인 회사가 입찰보증금을 모두 냈다고 합니다. 다른 회사들은 입찰을 받으면 자기 지분만큼 계약금을 내기로 했죠. 막상 입찰을 따고 나니, 수익성이 생각 이상 좋거든요. 그러니 입찰보증금을 낸 회사는 자기 지분을 더 갖겠다고 주장하고, 다른 회사들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텨서 컨소시엄이 와해 위기에 있는 겁니다. 추가 계약금을 내지 못해서 본계약도 못 하고 있는 겁니다.”
―도시철도공사 측에서는 특혜의혹이 일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업을 중단했다고 하더군요.
“감사원과 서울시에서 계속 감사를 하고 있으니 골치 아팠겠죠. 그런 와중에, 입찰받은 컨소시엄은 추가 계약금을 주지 못하니, 본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입찰보증금을 낸 컨소시엄은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어떤 소송입니까.
“해피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송이죠.”
해피존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SK 컨소시엄’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다. 컨소시엄 측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우리 컨소시엄은 적법한 절차와 공고에 의거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도시철도공사 측의 일방적인 입찰 취소 결정 통보로 피해가 막대합니다. 탈락 업체의 음해성 민원 제기와 도시철도공사 상급기관의 감사의견에 따라 일방적으로 입찰이 취소됐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피존 사업으로 발생한 상가 대부분을 재임대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이번 사업은 특혜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희 컨소시엄은 관련 기업들이 보유한 브랜드와 제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홍보하고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할 겁니다. 재임대 등의 부분은 사업계획상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1조원대의 사업이 어쩌면 이렇게 진행될 수 있었을까.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가 그동안 역 1~2개에서 시행하던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148개 일괄임대’를 결정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중소 임대업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입찰 조건을 까다롭게 한 것일까. 도시철도공사가 이 사업을 중단한 배경이 감사원과 서울시의 감사 때문이었다면 우선 그 감사 결과부터 공개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