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했다. 그러나 정부가 一刀兩斷 식으로 급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누수현상이 생겨 국민부담만 가중. 건강보험은 의약분업 시행 첫해부터 2003년까지 매년 1조∼2조원대의 적자발생. 이후 건강보험은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 등에서 적자를 메워 오고 있다.
⊙ 의사들: “醫藥분업은 정부가 내세웠던 건강보험 재정 절감, 약물 오남용 방지,
국민부담 감소 등 어느 하나 달성한 것이 없는 실패한 제도”
⊙ 약사들: “약제비 증가는 약사가 아니라 의사의 처방 탓, 이제 정착된 제도를 흔들면 안돼”
⊙ 보건당국: “약의 안전성, 투명성이 확보되어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최고의 개혁성공 모델”
취재지원 : 朴熙碩 月刊朝鮮 인턴기자〈pubmonth@chosun.com〉
⊙ 의사들: “醫藥분업은 정부가 내세웠던 건강보험 재정 절감, 약물 오남용 방지,
국민부담 감소 등 어느 하나 달성한 것이 없는 실패한 제도”
⊙ 약사들: “약제비 증가는 약사가 아니라 의사의 처방 탓, 이제 정착된 제도를 흔들면 안돼”
⊙ 보건당국: “약의 안전성, 투명성이 확보되어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최고의 개혁성공 모델”
취재지원 : 朴熙碩 月刊朝鮮 인턴기자〈pubmonth@chosun.com〉
- 2000년 2월 17일 서울 여의도 문화광장을 가득 메운 의사와 그 가족 3만7000여 명이 정부의 의약분업 실행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신종플루 예방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醫師(의사), 藥師(약사), 보건당국 사이에 펼쳐진 미묘한 신경전을 알아챘을 것이다.
신종플루가 빠르게 퍼지자 지난 10월 초 정부는 전국 치료 거점병원에서 신종플루 환자에 대해 抗(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등 일부 약품의 병원 내 조제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회장 金龜)는 즉각 성명을 내고 “院內(원내) 조제 허용은 醫藥(의약)분업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한의사협회(회장 慶滿浩)가 “환자들의 이동을 줄여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까지 곡해한다”며 약사회 측을 비난했다.
지난 10월 말에는 정부가 일선 의료기관에는 신종플루 확진 결과 없이 의심환자에게도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으로 표기)가 기자회견을 열어 “항바이러스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의사의 판단에 따라 처방해야 한다”며 정부의 조치를 비난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진료권까지 간섭하고 나서느냐는 불만의 표시였다.
이와 함께 의협은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병·의원에서 항바이러스제를 한시적으로 원내 조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환자들이 병원과 약국을 불필요하게 오가는 과정에서 신종플루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의협의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신종플루를 사이에 두고 의사, 약사, 정부가 사사건건 기 싸움을 벌이는 배경에는 의약분업이란 해묵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의약분업 시행을 두고 의사와 약사가 첨예하게 대립했고, 全(전) 의료기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당시 의약분업 반대를 주도했던 의사협회는 “이번 신종플루 사태를 통해 의약분업의 폐해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가 신종플루에 대해 전염병 위기단계 중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올려놓고도 의약분업이라는 원칙에 갇혀 감염자 확산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약사 측은 “의사들이 신종플루 사태를 이용해 의약분업의 원칙을 흔들려 하고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신종플루가 그렇게 전염성이 심각하면 모든 행사, 공연, 집회, 학교를 먼저 폐쇄하는 것이 순서”라며 “긴급질환이 발생할 때마다 원내 조제를 허용한다면 의약분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의사들, “의약분업은 실패한 제도”
내년이면 의약분업 10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이번 신종플루 사태를 두고 의사와 약사들이 보인 갈등에서 보듯이 의약분업은 아직까지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약분업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건강과 재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다.
이런 첨예한 문제일수록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논쟁을 해야만 사회 전체의 得(득)은 늘어나고 失(실)은 줄어들 것이다. 의료 전문가들도 “찬반이 팽팽했던 제도를 강제로 도입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정부가 한 번도 제대로 된 객관적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의사와 약사, 정부 사이에 어떤 입장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정부는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의 정책목적으로 ▲약물(항생제 등) 誤濫用(오남용)과 藥禍(약화) 사고로부터 국민건강 보호 ▲약사의 불법적인 임의조제 등 진료행위 근절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 발생으로 재정안정화에 기여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억제로 국민부담 감소 ▲의·약사의 전문성을 살려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등을 내세웠다.
10년 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金在正(김재정) 前(전) 의협 회장은 “의약분업은 정부가 내세웠던 당초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의사들이 의약분업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재정파탄이 뻔히 보이는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반대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우리는 준비 없이 의약분업을 시행하면 매년 1조5000억~4조4000억원의 추가 재정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부담이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주장을 무시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의약분업 첫해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났고, 장관이 교체되고 대통령이 對(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극심한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건강보험은 의약분업 시행 첫해부터 2003년까지 매년 1조∼2조원대의 적자가 났다. 이후 건강보험은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 등에서 적자를 메워 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보험재정 파탄의 가장 큰 원인은 의약분업에 따른 약제비의 급격한 증가”라고 주장했다.
약제비 OECD 평균보다 12.7%나 높아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원장 宋在聖)의 조사에 의하면 2008년 우리나라 약제비가 1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총 건강보험진료비는 35조원). 이는 2001년에 비해 약 2.5배 증가한 수치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민의료비 지출대비 약제비 비율이 20%대를 넘지 않고, OECD 평균은 16.7%인 데 비해 우리는 2008년 29.4%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약제비 증가 원인은 인구 노령화, 의약품 사용량 증가, 高價(고가) 약 처방 증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의약분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약사들의 조제료(조제비)가 약제비 증가의 主犯(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의협이 심평원 등의 자료를 분석한 바로는 조제비가 2000년에는 3896억원이었으나, 2007년에는 2조2909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이 기간 약국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조제료는 총 13조4571억원으로, 전체 약제비의 2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제료에는 조제료, 기술료, 약국관리료, 기본조제기술료, 복약지도료, 의약품관리료 등의 5가지 기술료가 포함되어 있다.
김 전 회장은 “이처럼 우리 국민이 조제료라는 명목으로 매년 2조3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추가 지출하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에서 김방철산부인과를 운영하는 金方喆(김방철) 원장은 의약분업 반대 투쟁 당시 의협의 보험이사직을 맡았었다. 그는 “의료계에서는 의약분업이 교과서적인 원칙과 같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 의약분업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의약분업의 근본적인 이유로 전문적인 약을 함부로 구입할 수 없게 하여 약물 오남용을 줄여 국민건강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의약분업 후 정부는 항생제 사용과 처방이 줄었다는 것을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심평원의 조사에 의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43%에서 2008년 31%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평원은 이에 대해 의약분업 후 의사에게는 신중한 처방을 유도하고, 약사가 처방을 확인하는 이중점검으로 의약품 사용의 투명성이 확보됐기 때문에 항생제 및 주사제 사용이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항생제 사용량 둘러싼 논란
하지만 국내 항생제 총생산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 자료에 의하면 국내 항생제 총생산실적은 2000년 9093억원에서 2007년 1조2848억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다만 병·의원에서 항생제 처방률은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데 의협은 “이는 정부의 강도 높은 진료비 삭감 정책과, 심평원이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약제 적정성(경제성) 평가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의약분업 후 실제로 항생제의 사용량이 줄어들었는지 여부를 두고 의사, 약사, 정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해 있는 상태다. 한 번도 모두가 신뢰할 만한 기준에서 작성된 통계가 제공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의협은 “현재로서는 항생제 생산 총량과 연간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 현황 중 항생제 약제비 청구 비율을 보는 수밖에 없다”며 “이 두 가지가 매년 증가하는 것만 봐도 의약분업으로 약물 오남용 방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방철 원장은 “제일 큰 문제는 약사들의 任意(임의)조제가 사실상 묵인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것을 그냥 두고 어떻게 의약분업을 한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직도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약국에 달려갑니다. 우리나라 1차 진료기관은 동네병원이 아니라 동네약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아무 약국에나 가서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해 보세요. 대부분의 약사가 곧바로 약을 골라서 건네 줄 겁니다. 이런 것을 허용하는 것은 진정한 의약분업이 아닙니다.”
각종 통계조사에 의하면 의약분업 후에도 약국에서 진료(주로 문진)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52~59%, 임의조제를 경험한 사람은 15~1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약분업 평가보고서에서 “전문의약품을 약사가 임의로 조제·판매하는 것은 의약분업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의약분업 초기인 2001년 당시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80%에 가까운 국민이 약국에서 자신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행태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민 대부분이 약국을 의료기관으로 잘못 판단하고 자신의 질병을 상담받고 치료받아 왔다는 뜻이다.
김방철 원장은 “현재 건강보험 제도하에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진료행위와 약사의 조제행위가 비슷한 가치를 가진 행위로 취급받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사는 환자가 오면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혜를 동원해서 진찰하고 처방을 합니다. 진찰은 問診(문진), 視診(시진), 聽診(청진), 觸診(촉진), 打診(타진) 등의 5가지 기본 진찰법과 함께 각종 장비를 동원해서 합니다. 이렇게 해서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데 약 1만5000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약사는 의사가 내린 처방에 따라 약을 건네 주는 행위를 하는데 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액수를 받습니다. 약값에 조제료가 붙기 때문인데, 조제료는 투약 일수에 따라 늘어납니다.”
조제료 논란
올해 대한약사회와 건강보험공단의 수가 협상 결과 내년도 약국 1일분 조제료는 3810원으로 잠정 결정됐다. 이 조제수가에 따르면 91일분 이상의 약을 지을 경우 1만4200원의 조제료가 발생한다. 현재 유행 중인 신종플루의 경우 치료약인 타미플루의 5일분을 처방할 때 약 4890원의 조제료가 발생한다.
김방철 원장은 “요즘 약국에서는 제약회사가 이미 조제해 놓은 약을 포장째 판매하기 때문에 사실상 조제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데도 소비자는 엄청난 조제료를 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병원의 넓이는 평균 215m²(65평)이고, 직원이 3명입니다. 길 건너에 있는 약국은 33m²(10평) 남짓한 규모에 약사 한 명이 있습니다. 우리 병원과 길건너 약국의 매출 규모는 몇 배나 차이가 나야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의사의 진료행위에 비해 약사들의 조제 행위는 경중을 논할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실은 의사와 약사의 행위가 같은 가치로 취급받고 있으니 의사들이 어떻게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의약분업을 찬성하는 입장에 섰던 약사회는 “의약분업은 국민건강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성공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의약분업 당시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로 표기)의 의약분업실행위원을 맡았던 元喜睦(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의약분업으로 환자들이 자기가 무슨 약을 먹는지 알 수 있게 약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원 의원은 약사회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원 의원의 설명이다.
“의약분업 후 의약품의 생산, 유통을 비롯한 처방과 조제 과정이 투명해지고 체계화됐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유·무형의 이익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의약분업 전에 약사의 임의조제가 연간 1억7000만 건이었는데 이는 모두 환자 개인 주머니에서 직접 지급된 돈입니다. 의약분업 후 임의조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이 직접 부담하던 돈이 줄었어요.”
원 의원은 “의약분업으로 조제료가 추가 발생했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의약분업 전에는 보험청구를 하지 않았으니 조제료가 통계에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의약분업 후 추가된 조제료는 통계에 잡히기 때문에 마치 내지 않던 돈을 더 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의사들이 選民의식에 빠져 있다”
원 의원은 의약분업 후 약제비가 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비싼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약분업 전에는 의사들이 마진을 많이 남기려고 싼 약을 처방하다 의약분업 후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갑자기 원본약(오리지널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약제비 값이 올라가죠. 이런 과정에서 복제약이 오리지널 약에 비해 같은 효능을 내는지를 평가하는 생물학적 동질성 시험제도가 도입됐습니다. 결국 제약회사들이 약의 품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간접효과까지 치면 의약분업 초기에 약제비 비용이 늘었다고 해서 국민부담이 터무니없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원 의원은 “의약분업하에서는 의사나 약사가 자기 책임하에 처방하고 조제해야 하는 것”이라며 “의사들이 너무 選民(선민)의식에 빠져 약사를 의료계의 동반자로 취급하지 않는 데서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약사의 조제료는 책임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사의 처방전을 약사가 점검하기 때문에 약물 오남용이 줄어들고, 처방과정이 투명해지게 됩니다. 의사와 약사들이 서로 직능 범위를 인정하고 상호 이해하면서 의약분업을 잘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의약분업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車興奉(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을 하지 않던 나라에서 제도를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공”이라며 “의사들이 주장하는 기준으로 의약분업의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의약분업으로 약의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국민이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약을 안전하게 사용함으로써 국민건강에 기여한 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듭니다.”
차 장관은 의약분업으로 보험재정이 악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의약분업이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약분업 전에 개인이 전부 부담하던 약값이 건강보험이라는 公的(공적)인 메커니즘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낀 돈은 생각하지 않고 추가로 나간 것만 계산하니까 보험재정 지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불만 이해한다”
차 장관은 “건강보험과 의약분업 제도에서 의사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우리 의료계와 정부가 의료시장 내의 갈등과 불신구조를 해결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제도, 수가제도, 의약분업은 정부가 강제로 시행한 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의 의견이 상당 부분 묵살됐기 때문에 의사들의 불신이 깊고, 의료정책에 대해 섭섭해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의사, 약사, 정부가 대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국민의료발전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이해관계 당사자가 국민건강이라는 大義(대의)를 위해 상시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으면 합니다.”
차 장관은 “의료정책이 본질적으로 정부와 의료인들 사이에 갈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인들은 전문성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 건강과 비용절감을 위해 의료인의 전문성에 개입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니 의료정책을 펼 때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이해당사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필자는 현행 의약분업 제도를 주도했던 김용익, 양봉민 교수에게도 의약분업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들 외에 의약분업 시행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교수나 의사들은 모두 “할 말이 없다”거나 “당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잘 모른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다만 이들 가운데 서울대 보건대학원 趙炳姬(조병희) 교수만이 전화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의약분업 당시 맡은 역할은.
“나는 보건사회학 전공 교수로서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약분업은 의사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강연활동 등을 통해 의약분업에 찬성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의약분업 추진 배경은 무엇입니까.
“약물 오남용을 막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의약분업으로 지금 약품 관리가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화되고 엄격해진 것은 큰 성공입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약품 사용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또 약제비나 의료비 상승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약제비 폭발적으로 증가”
―약물 사용이 엄격해졌는데 약물 사용량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항생제 같은 것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으니 관리가 엄격해졌지만, 의사의 처방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방은 의사의 전문 영역이라 의약분업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 규제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외래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우리는 아직도 주사와 항생제 처방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의사가 의약분업은 실패한 제도라고 주장하는데요.
“약의 조제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대신 처방권이 강화됐습니다. 의사들이 이미 자리가 잡힌 제도에 대해 좀 더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합니다. 신종플루를 계기로 조제권을 다시 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조병희 교수의 ‘의약품 관리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는 내용에 대해 유승모 의협 보험이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심평원 자료에 의하면 약국의 불법 대체조제가 2002년 8582건에서 2007년 15만6678건으로, 5년 사이에 18배가 증가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약품관리가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화됐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의사들이 처방한 것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성분이 비슷한 약으로 마음대로 불법 대체조제한 것이 저 정도인데 약사와 의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임의조제의 경우 얼마나 될지 집계가 되겠습니까?”
유승모 이사는 차흥봉 전 복지부 장관이 ‘약물 오남용을 막았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약제비 증가가 1999년과 의약분업을 한 2000년 한 해 사이에 4배나 늘어났고, 2001년에는 12배나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폭발적인 증가 속에서 항생제 오남용을 낮췄다고 하는 것은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생제 오남용을 막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거기에 수조원의 돈을 쓰는 나라가 있습니까?”
유 이사는 “현재 5가지로 구성된 약국의 조제료도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매년 발생하는 조제료가 평균 2조원이라고 봐도, 지난 10년간 누적된 조제료가 얼마입니까. 의사가 처방했으면 이미 기본 조제는 끝난 것인데 왜 또다시 조제 기술료가 들어갑니까. 복약 상의도 의사가 처방할 때 설명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순수 조제료만 줘야지 왜 추가로 혈세를 낭비합니까. 한 가지로 통합해서 조제료를 낮춰야 합니다.”
약값보다 조제료가 세 배나 더 비싸지기도
의협이 분석한 ‘질환에 따른 조제항목 및 약값 계산’에 의하면 혈압약 ‘노바스크’의 경우 30일분 조제를 하면 약값이 1만2540원, 조제료가 8982원이 발생해 약값과 조제료 비율이 58.3%대 41.7%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기에 걸렸을 때 만약 타이레놀, 페니라민, 암브록솔이라는 약을 3일치 처방했다고 가정할 경우 약값은 1176원, 조제료는 4238원으로 나타나, 약값과 조제료 비율이 21.7%대 78.3%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실제 약값보다 조제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주장이다.
의약분업으로 약제비가 증가했다는 논란에 대해 약사회 진윤희 홍보부장은 “약은 의사들이 처방하기 때문에 약제비 증가의 주범은 의사”라며 “약제비가 증가했다고 약사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들의 허물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려면 만성질환자들이 동일한 처방을 받기 위해 매번 병원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처방전 리필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전문의약품 중에도 안전성이 검증되거나, 응급성을 띤 것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서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천식으로 발작할 경우 곧바로 약을 흡입하지 못하면 사망하는데 언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습니까.”
약사회 진윤희 홍보부장의 처방전 리필제에 대해 李元奭(이원석) 여수 조은이비인후과 원장은 “아무리 단순한 약이라도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처방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고혈압 같은 경우 1회에 한 달치를 처방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보지 않고 처방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이 원장은 2004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의사가 처방을 내린 건에 대해 아무런 이익을 보지 않은 의사를 상대로 약값을 환수해 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소송이다.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의사의 처방을 통하지 않은 항생제 남용 상태는 어떤지 몰라도 의사의 항생제와 주사약 처방은 확실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의약분업 때문이 아니라 심평원에서 심사하고 벌칙을 주기 때문입니다. 현재 심평원은 약제비를 줄여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데 삭감하기 가장 좋은 명목이 항생제 처방입니다. 그 때문에 의사들이 항생제를 다량 처방하는 것처럼 호도하는데, 항생제는 쓸 때는 써야 하는 약입니다.”
의협, “선택분업이 대안”
필자가 접촉해 본 결과 의사와 약사는 비록 서로에 대한 불신감은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를 의약분업을 위해 협력해야 할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의약분업에 반대했던 의사들은 현행 의약분업에 대해 ‘실패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감지할 수 있었다.
崔德種(최덕종) 울산시 의사회장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신상진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위원장이 구속되자 직무대리를 맡아 강경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최 회장은 “의사들이 과거에 누렸던 기득권을 다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간지점’의 정책을 찾자는 건의를 하는 것인데 정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 의약분업 제도하에서 의사들이 주장하는 중간지점은 ‘선택분업’이었다. 선택분업이란 환자가 원내나 원외의 약국을 선택해서 약을 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김재정 전 의협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대형병원 소속 약사들의 경우 입원환자에 대해서는 이들이 조제할 수 있지만, 외래환자는 조제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며 “이는 진정한 의약분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이 있으면 모든 약사가 장소에 상관없이 조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의 선택분업 주장에 대해 약사회장을 지냈던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선택분업은 의약분업을 깨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아닌 학자들은 의약분업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丁炯先(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약분업과 국민보건의 영향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정 교수는 “의약분업 후 약제비는 증가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의 약값 부담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나라의 의약분업은 대단히 성공한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의사들은 현행 의약분업은 약사들을 위한 제도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공공정책을 편 사람들이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연구결과 약국 경영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약국 수입 증가의 가장 큰 이유가 의약분업 후 늘어난 외래진료량과 조제료 확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약분업은 어치피 해야 할 개혁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여건에서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다”
―의사의 진료행위에 비해 약사들의 조제료가 너무 높게 책정돼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그 부분도 저는 의사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제도적으로 손을 봐야 할 부분입니다. 5개 기술료를 조제료에 포함해 놓았는데 너무 높습니다. 의약분업 당시 약사들의 조제료가 높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도 반대급부로 수가를 많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의사들 수가는 다시 깎아내렸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약사들 입장이 굉장히 좋아진 상태로 지속된 것입니다.”
―의약분업 제도를 전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는 없습니까.
“의사와 약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도출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사실 병원과 약국의 담합 문제도 심각한데 감춰져 있거든요. 10년이 됐으면 장단점을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정형선 교수가 의약분업이 ‘성공한 개혁’이라는 평가를 내린 데 반해 丁相赫(정상혁) 이화여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현행 의약분업은 이도저도 아닌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정상혁 교수는 의약분업 정책 평가와 방향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정부 주장과 달리 의약분업을 통해 항생제든, 임의조제든, 스테로이드제든 뭐든 간에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는 제약회사의 관련 약품 매출 증가만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의사들이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더라도 의약분업 예외지역의 약국을 통해 엄청난 항생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의 약국과 제약회사 간에 무자료 거래도 엄청난데 이런 것들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정 교수는 “약사들이 환자를 문진 하고 약을 파는 것은 현행법으로 무면허 진료를 하는 범죄 행위인데 단속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정부의 의약분업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비난했다.
“약사 국가고시 시험과목에 질병에 대한 과목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나라 약사들은 마치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하도 말썽이 많으니까 아예 약대를 6년으로 늘려서 질병에 관한 과목을 넣으려고 합니다. 제가 약대 교과 과정을 볼 때 약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는 게 가능하다면 생물과 화학전공자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줘야 합니다.”
일반 의약품 소매점 판매 허용해야
정 교수는 “조제행위는 제약회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약국은 단순한 약품의 판매 기능만 하고 있다”며 “이런 제약 판매 분야에 고급 인재가 몰려 있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해”라고 주장했다.
“국가 인력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도 이런 고급 인력들은 제약회사의 R&D 분야에 집중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약사들이 당장 약을 파는 게 더 큰 이익을 내니까 모두 판매 행위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과연 조제된 약을 건네 주는데 매년 2조원 이상의 비용을 국가가 지불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예전처럼 다시 병원 내에 약국을 둬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어느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말씀드리면 이미 포장된 약을 단순히 판매만 하는 상황에서는 의약분업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그냥 의사들이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현재 의사들이 주장하는 선택분업제를 찬성합니다.”
―병원이 마진을 많이 남기기 위해 필요 없는 약을 처방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식으로 본다면 무슨 정책인들 펼 수 있습니까. 약사가 약을 팔면 아무 마진이 없겠습니까. 예전에는 약값의 리베이트를 감안해서 진료수가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의약분업시 약값 마진을 인정해 주고, 대신 수가를 낮추었던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리베이트를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정책을 펴면 안됩니다. 리베이트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철저한 감시를 하고, 세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가를 조정하면 병원도 약품을 싸게 구입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기존의 약국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나라는 약값이 너무 비쌉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해열제, 거담제, 콧물약, 기침약 등의 일반의약품(OTC: over the counter drug)은 일반 소매점 판매부터 허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OCT 약품까지 죄다 카운트 안쪽에 넣어 놓고, 소비자가 약값이나 성분을 전혀 알 수 없게 차단해 놓았습니다. 의약분업하는 나라 중에 이렇게 하는 곳은 없습니다.”
현재 미국, 영국을 비롯해 일본도 일반의약품의 95%를 일반 소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은 46년 만의 약사법 개정을 통해 올해 6월부터 주요 감기약, 해열진통제 등 전체 일반의약품의 95%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편의점 등 일반 소매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국민부담만 가중시켜
의협의 文靜林(문정림) 의무이사(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교수)는 “의약분업은 대표적인 정책실패 제도인데 정부가 강제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 것처럼 숨겨오면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며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잘못된 제도가 고착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초 의약분업의 정책적 순기능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는 실패한 제도가 아니라 정책적 기망(사기)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파탄의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니, 차등수가제니, 심사기준 강화니 하면서 의사들만 옥죄어 왔습니다.”
문 이사는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어느 한쪽 편만 들 것이 아니라 의사와 약사들의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중재와 협의를 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며 “의사와 약사들이 협의가 되지 않으면 정부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서 건강보험 업무 분야에 30여 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A씨는 “일본은 1970년대 말 의약분업 비율이 10%도 안됐지만 지금은 65% 정도 된다”며 “일본은 원내에서 조제를 할 경우 처방료를 올리는 것으로 분업을 유도할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의약분업은 엄청나게 불편하고, 경제적 비용도 증가하고, 시간에 따른 기회비용도 발생하는 제도입니다. 그 시간에 국민이 경제적 생산활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의약분업 과정에서 비용지출 당사자인 일반 국민의 목소리는 거의 무시됐습니다.”
A씨는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까 비용을 줄이면서 힘을 합쳐 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약국 조제료가 왜 그렇게 비싸졌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원래 약국은 약값 마진으로 운영을 하는 곳인데 의약분업을 하면서 구입가로 팔라고 하니까 당연히 생계 유지를 위해 조제료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약값에 마진을 주고 조제료를 낮추면 약제비를 엄청나게 절감할 수 있어요.”
의약분업은 원래 돈이 들게 되어 있는 제도였다. 결국 그 돈은 국민부담과 연계되기 때문에 정부는 처음 시작단계부터 한 푼이라도 국민부담을 줄이는 제도와 방법을 모색했어야 한다.
이왕 의약분업이 필요하다면 보다 신중하게 보험재정이 덜 들어가게 설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一刀兩斷(일도양단)식으로 급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누수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수현상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정부 공무원이나 의사, 약사가 아니라 필자와 같은 국민이기에 하는 말이다.⊙
▣ 의약분업 略史
2000년 7월 시행된 의약분업은 1963년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그 원칙이 규정돼 있었으나, 실제 시행은 유보됐다. 그러다 1993년 韓(한)·洋藥(양약) 간의 분쟁(약국에 한약 제조 판매를 허용하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의학계와 약학계의 갈등)을 계기로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이 정하는 날부터 의약분업을 하겠다는 것이 명문화됐다.
이후 잠잠하던 의약분업은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의약분업은 김대중 대통령의 大選(대선) 공약사항이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됐기 때문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총리자문기구로 ‘의료개혁위원회’가 발족, 3단계 의약분업 기본모형을 건의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본격 출범한 1998년 5월에 소비자단체, 언론, 공익대표, 의료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의약분업추진협의회’가 구성됐고, 이곳에서 의약분업의 시행방향이 결정됐다.
당시 의약분업의 골격을 짰던 핵심 인물이 金容益(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와 梁奉玟(양봉민) 서울대 보건학과 교수이며, 그 외 조병희, 김창엽, 조홍준, 이용수, 우석균 등 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참여했던 의사와 교수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5월 10일 의사회와 약사회, 시민단체가 의약분업 시행에 합의했다. 3자가 합의하자 車興奉(차흥봉) 당시 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실행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5·10 합의는 의료계 내부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합의문에 동의했던 유성회 의협회장은 의협 대의원 총회에서 불신임을 받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1999년 9월 의약분업 세부 시행안이 확정됐고,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약분업에 반대한 의협은 1999년 12월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를 만들어 金在正(김재정)씨를 위원장으로 선임했고, 김 위원장은 2000년 4월 의협 회장에 당선돼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이끌었다. 2000년 6월 약 1주일간 전국의 병·의원들이 의약분업에 반대해 집단 휴·폐업을 벌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 8월 약사법 개정안이 공포되고, 11월 醫藥政(의약정) 합의안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의약분업 시대가 열렸다.
신종플루가 빠르게 퍼지자 지난 10월 초 정부는 전국 치료 거점병원에서 신종플루 환자에 대해 抗(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등 일부 약품의 병원 내 조제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회장 金龜)는 즉각 성명을 내고 “院內(원내) 조제 허용은 醫藥(의약)분업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한의사협회(회장 慶滿浩)가 “환자들의 이동을 줄여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까지 곡해한다”며 약사회 측을 비난했다.
지난 10월 말에는 정부가 일선 의료기관에는 신종플루 확진 결과 없이 의심환자에게도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으로 표기)가 기자회견을 열어 “항바이러스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의사의 판단에 따라 처방해야 한다”며 정부의 조치를 비난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진료권까지 간섭하고 나서느냐는 불만의 표시였다.
이와 함께 의협은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병·의원에서 항바이러스제를 한시적으로 원내 조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환자들이 병원과 약국을 불필요하게 오가는 과정에서 신종플루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의협의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신종플루를 사이에 두고 의사, 약사, 정부가 사사건건 기 싸움을 벌이는 배경에는 의약분업이란 해묵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의약분업 시행을 두고 의사와 약사가 첨예하게 대립했고, 全(전) 의료기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당시 의약분업 반대를 주도했던 의사협회는 “이번 신종플루 사태를 통해 의약분업의 폐해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가 신종플루에 대해 전염병 위기단계 중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올려놓고도 의약분업이라는 원칙에 갇혀 감염자 확산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약사 측은 “의사들이 신종플루 사태를 이용해 의약분업의 원칙을 흔들려 하고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신종플루가 그렇게 전염성이 심각하면 모든 행사, 공연, 집회, 학교를 먼저 폐쇄하는 것이 순서”라며 “긴급질환이 발생할 때마다 원내 조제를 허용한다면 의약분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의사들, “의약분업은 실패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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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정 전 의사협회장. |
이런 첨예한 문제일수록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논쟁을 해야만 사회 전체의 得(득)은 늘어나고 失(실)은 줄어들 것이다. 의료 전문가들도 “찬반이 팽팽했던 제도를 강제로 도입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정부가 한 번도 제대로 된 객관적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의사와 약사, 정부 사이에 어떤 입장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정부는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의 정책목적으로 ▲약물(항생제 등) 誤濫用(오남용)과 藥禍(약화) 사고로부터 국민건강 보호 ▲약사의 불법적인 임의조제 등 진료행위 근절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 발생으로 재정안정화에 기여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억제로 국민부담 감소 ▲의·약사의 전문성을 살려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등을 내세웠다.
10년 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金在正(김재정) 前(전) 의협 회장은 “의약분업은 정부가 내세웠던 당초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의사들이 의약분업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재정파탄이 뻔히 보이는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반대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우리는 준비 없이 의약분업을 시행하면 매년 1조5000억~4조4000억원의 추가 재정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부담이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주장을 무시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의약분업 첫해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났고, 장관이 교체되고 대통령이 對(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극심한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건강보험은 의약분업 시행 첫해부터 2003년까지 매년 1조∼2조원대의 적자가 났다. 이후 건강보험은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 등에서 적자를 메워 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보험재정 파탄의 가장 큰 원인은 의약분업에 따른 약제비의 급격한 증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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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3월 19일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들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의약분업을 조기 시행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약제비 OECD 평균보다 12.7%나 높아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원장 宋在聖)의 조사에 의하면 2008년 우리나라 약제비가 1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총 건강보험진료비는 35조원). 이는 2001년에 비해 약 2.5배 증가한 수치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민의료비 지출대비 약제비 비율이 20%대를 넘지 않고, OECD 평균은 16.7%인 데 비해 우리는 2008년 29.4%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약제비 증가 원인은 인구 노령화, 의약품 사용량 증가, 高價(고가) 약 처방 증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의약분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약사들의 조제료(조제비)가 약제비 증가의 主犯(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의협이 심평원 등의 자료를 분석한 바로는 조제비가 2000년에는 3896억원이었으나, 2007년에는 2조2909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이 기간 약국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조제료는 총 13조4571억원으로, 전체 약제비의 2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제료에는 조제료, 기술료, 약국관리료, 기본조제기술료, 복약지도료, 의약품관리료 등의 5가지 기술료가 포함되어 있다.
김 전 회장은 “이처럼 우리 국민이 조제료라는 명목으로 매년 2조3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추가 지출하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에서 김방철산부인과를 운영하는 金方喆(김방철) 원장은 의약분업 반대 투쟁 당시 의협의 보험이사직을 맡았었다. 그는 “의료계에서는 의약분업이 교과서적인 원칙과 같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 의약분업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의약분업의 근본적인 이유로 전문적인 약을 함부로 구입할 수 없게 하여 약물 오남용을 줄여 국민건강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의약분업 후 정부는 항생제 사용과 처방이 줄었다는 것을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심평원의 조사에 의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43%에서 2008년 31%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평원은 이에 대해 의약분업 후 의사에게는 신중한 처방을 유도하고, 약사가 처방을 확인하는 이중점검으로 의약품 사용의 투명성이 확보됐기 때문에 항생제 및 주사제 사용이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항생제 사용량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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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철 전 의사협회 보험이사. |
의약분업 후 실제로 항생제의 사용량이 줄어들었는지 여부를 두고 의사, 약사, 정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해 있는 상태다. 한 번도 모두가 신뢰할 만한 기준에서 작성된 통계가 제공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의협은 “현재로서는 항생제 생산 총량과 연간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 현황 중 항생제 약제비 청구 비율을 보는 수밖에 없다”며 “이 두 가지가 매년 증가하는 것만 봐도 의약분업으로 약물 오남용 방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방철 원장은 “제일 큰 문제는 약사들의 任意(임의)조제가 사실상 묵인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것을 그냥 두고 어떻게 의약분업을 한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직도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약국에 달려갑니다. 우리나라 1차 진료기관은 동네병원이 아니라 동네약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아무 약국에나 가서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해 보세요. 대부분의 약사가 곧바로 약을 골라서 건네 줄 겁니다. 이런 것을 허용하는 것은 진정한 의약분업이 아닙니다.”
각종 통계조사에 의하면 의약분업 후에도 약국에서 진료(주로 문진)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52~59%, 임의조제를 경험한 사람은 15~1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약분업 평가보고서에서 “전문의약품을 약사가 임의로 조제·판매하는 것은 의약분업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의약분업 초기인 2001년 당시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80%에 가까운 국민이 약국에서 자신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행태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민 대부분이 약국을 의료기관으로 잘못 판단하고 자신의 질병을 상담받고 치료받아 왔다는 뜻이다.
김방철 원장은 “현재 건강보험 제도하에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진료행위와 약사의 조제행위가 비슷한 가치를 가진 행위로 취급받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사는 환자가 오면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혜를 동원해서 진찰하고 처방을 합니다. 진찰은 問診(문진), 視診(시진), 聽診(청진), 觸診(촉진), 打診(타진) 등의 5가지 기본 진찰법과 함께 각종 장비를 동원해서 합니다. 이렇게 해서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데 약 1만5000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약사는 의사가 내린 처방에 따라 약을 건네 주는 행위를 하는데 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액수를 받습니다. 약값에 조제료가 붙기 때문인데, 조제료는 투약 일수에 따라 늘어납니다.”
조제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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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약사회장 출신의 원희목 한나라당 국회의원. |
김방철 원장은 “요즘 약국에서는 제약회사가 이미 조제해 놓은 약을 포장째 판매하기 때문에 사실상 조제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데도 소비자는 엄청난 조제료를 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병원의 넓이는 평균 215m²(65평)이고, 직원이 3명입니다. 길 건너에 있는 약국은 33m²(10평) 남짓한 규모에 약사 한 명이 있습니다. 우리 병원과 길건너 약국의 매출 규모는 몇 배나 차이가 나야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의사의 진료행위에 비해 약사들의 조제 행위는 경중을 논할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실은 의사와 약사의 행위가 같은 가치로 취급받고 있으니 의사들이 어떻게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의약분업을 찬성하는 입장에 섰던 약사회는 “의약분업은 국민건강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성공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의약분업 당시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로 표기)의 의약분업실행위원을 맡았던 元喜睦(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의약분업으로 환자들이 자기가 무슨 약을 먹는지 알 수 있게 약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원 의원은 약사회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원 의원의 설명이다.
“의약분업 후 의약품의 생산, 유통을 비롯한 처방과 조제 과정이 투명해지고 체계화됐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유·무형의 이익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의약분업 전에 약사의 임의조제가 연간 1억7000만 건이었는데 이는 모두 환자 개인 주머니에서 직접 지급된 돈입니다. 의약분업 후 임의조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이 직접 부담하던 돈이 줄었어요.”
원 의원은 “의약분업으로 조제료가 추가 발생했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의약분업 전에는 보험청구를 하지 않았으니 조제료가 통계에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의약분업 후 추가된 조제료는 통계에 잡히기 때문에 마치 내지 않던 돈을 더 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의사들이 選民의식에 빠져 있다”
원 의원은 의약분업 후 약제비가 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비싼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약분업 전에는 의사들이 마진을 많이 남기려고 싼 약을 처방하다 의약분업 후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갑자기 원본약(오리지널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약제비 값이 올라가죠. 이런 과정에서 복제약이 오리지널 약에 비해 같은 효능을 내는지를 평가하는 생물학적 동질성 시험제도가 도입됐습니다. 결국 제약회사들이 약의 품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간접효과까지 치면 의약분업 초기에 약제비 비용이 늘었다고 해서 국민부담이 터무니없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원 의원은 “의약분업하에서는 의사나 약사가 자기 책임하에 처방하고 조제해야 하는 것”이라며 “의사들이 너무 選民(선민)의식에 빠져 약사를 의료계의 동반자로 취급하지 않는 데서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약사의 조제료는 책임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사의 처방전을 약사가 점검하기 때문에 약물 오남용이 줄어들고, 처방과정이 투명해지게 됩니다. 의사와 약사들이 서로 직능 범위를 인정하고 상호 이해하면서 의약분업을 잘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의약분업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車興奉(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을 하지 않던 나라에서 제도를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공”이라며 “의사들이 주장하는 기준으로 의약분업의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의약분업으로 약의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국민이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약을 안전하게 사용함으로써 국민건강에 기여한 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듭니다.”
차 장관은 의약분업으로 보험재정이 악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의약분업이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약분업 전에 개인이 전부 부담하던 약값이 건강보험이라는 公的(공적)인 메커니즘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낀 돈은 생각하지 않고 추가로 나간 것만 계산하니까 보험재정 지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불만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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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8월 12일 오후 연세대에서 열린 의사대회에 참가한 의사와 의대생들이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건강보험 제도, 수가제도, 의약분업은 정부가 강제로 시행한 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의 의견이 상당 부분 묵살됐기 때문에 의사들의 불신이 깊고, 의료정책에 대해 섭섭해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의사, 약사, 정부가 대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국민의료발전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이해관계 당사자가 국민건강이라는 大義(대의)를 위해 상시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으면 합니다.”
차 장관은 “의료정책이 본질적으로 정부와 의료인들 사이에 갈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인들은 전문성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 건강과 비용절감을 위해 의료인의 전문성에 개입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니 의료정책을 펼 때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이해당사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필자는 현행 의약분업 제도를 주도했던 김용익, 양봉민 교수에게도 의약분업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들 외에 의약분업 시행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교수나 의사들은 모두 “할 말이 없다”거나 “당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잘 모른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다만 이들 가운데 서울대 보건대학원 趙炳姬(조병희) 교수만이 전화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의약분업 당시 맡은 역할은.
“나는 보건사회학 전공 교수로서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약분업은 의사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강연활동 등을 통해 의약분업에 찬성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의약분업 추진 배경은 무엇입니까.
“약물 오남용을 막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의약분업으로 지금 약품 관리가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화되고 엄격해진 것은 큰 성공입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약품 사용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또 약제비나 의료비 상승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약제비 폭발적으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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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8월 2일 의약분업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서울의 한 약국을 둘러보고 있는 차흥봉 보건복지부 장관. |
“항생제 같은 것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으니 관리가 엄격해졌지만, 의사의 처방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방은 의사의 전문 영역이라 의약분업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 규제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외래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우리는 아직도 주사와 항생제 처방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의사가 의약분업은 실패한 제도라고 주장하는데요.
“약의 조제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대신 처방권이 강화됐습니다. 의사들이 이미 자리가 잡힌 제도에 대해 좀 더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합니다. 신종플루를 계기로 조제권을 다시 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조병희 교수의 ‘의약품 관리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는 내용에 대해 유승모 의협 보험이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심평원 자료에 의하면 약국의 불법 대체조제가 2002년 8582건에서 2007년 15만6678건으로, 5년 사이에 18배가 증가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약품관리가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화됐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의사들이 처방한 것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성분이 비슷한 약으로 마음대로 불법 대체조제한 것이 저 정도인데 약사와 의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임의조제의 경우 얼마나 될지 집계가 되겠습니까?”
유승모 이사는 차흥봉 전 복지부 장관이 ‘약물 오남용을 막았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약제비 증가가 1999년과 의약분업을 한 2000년 한 해 사이에 4배나 늘어났고, 2001년에는 12배나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폭발적인 증가 속에서 항생제 오남용을 낮췄다고 하는 것은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생제 오남용을 막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거기에 수조원의 돈을 쓰는 나라가 있습니까?”
유 이사는 “현재 5가지로 구성된 약국의 조제료도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매년 발생하는 조제료가 평균 2조원이라고 봐도, 지난 10년간 누적된 조제료가 얼마입니까. 의사가 처방했으면 이미 기본 조제는 끝난 것인데 왜 또다시 조제 기술료가 들어갑니까. 복약 상의도 의사가 처방할 때 설명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순수 조제료만 줘야지 왜 추가로 혈세를 낭비합니까. 한 가지로 통합해서 조제료를 낮춰야 합니다.”
약값보다 조제료가 세 배나 더 비싸지기도
의협이 분석한 ‘질환에 따른 조제항목 및 약값 계산’에 의하면 혈압약 ‘노바스크’의 경우 30일분 조제를 하면 약값이 1만2540원, 조제료가 8982원이 발생해 약값과 조제료 비율이 58.3%대 41.7%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기에 걸렸을 때 만약 타이레놀, 페니라민, 암브록솔이라는 약을 3일치 처방했다고 가정할 경우 약값은 1176원, 조제료는 4238원으로 나타나, 약값과 조제료 비율이 21.7%대 78.3%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실제 약값보다 조제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주장이다.
의약분업으로 약제비가 증가했다는 논란에 대해 약사회 진윤희 홍보부장은 “약은 의사들이 처방하기 때문에 약제비 증가의 주범은 의사”라며 “약제비가 증가했다고 약사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들의 허물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려면 만성질환자들이 동일한 처방을 받기 위해 매번 병원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처방전 리필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전문의약품 중에도 안전성이 검증되거나, 응급성을 띤 것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서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천식으로 발작할 경우 곧바로 약을 흡입하지 못하면 사망하는데 언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습니까.”
약사회 진윤희 홍보부장의 처방전 리필제에 대해 李元奭(이원석) 여수 조은이비인후과 원장은 “아무리 단순한 약이라도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처방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고혈압 같은 경우 1회에 한 달치를 처방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보지 않고 처방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이 원장은 2004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의사가 처방을 내린 건에 대해 아무런 이익을 보지 않은 의사를 상대로 약값을 환수해 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소송이다.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의사의 처방을 통하지 않은 항생제 남용 상태는 어떤지 몰라도 의사의 항생제와 주사약 처방은 확실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의약분업 때문이 아니라 심평원에서 심사하고 벌칙을 주기 때문입니다. 현재 심평원은 약제비를 줄여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데 삭감하기 가장 좋은 명목이 항생제 처방입니다. 그 때문에 의사들이 항생제를 다량 처방하는 것처럼 호도하는데, 항생제는 쓸 때는 써야 하는 약입니다.”
의협, “선택분업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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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
의약분업에 반대했던 의사들은 현행 의약분업에 대해 ‘실패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감지할 수 있었다.
崔德種(최덕종) 울산시 의사회장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신상진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위원장이 구속되자 직무대리를 맡아 강경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최 회장은 “의사들이 과거에 누렸던 기득권을 다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간지점’의 정책을 찾자는 건의를 하는 것인데 정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 의약분업 제도하에서 의사들이 주장하는 중간지점은 ‘선택분업’이었다. 선택분업이란 환자가 원내나 원외의 약국을 선택해서 약을 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김재정 전 의협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대형병원 소속 약사들의 경우 입원환자에 대해서는 이들이 조제할 수 있지만, 외래환자는 조제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며 “이는 진정한 의약분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이 있으면 모든 약사가 장소에 상관없이 조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의 선택분업 주장에 대해 약사회장을 지냈던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선택분업은 의약분업을 깨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아닌 학자들은 의약분업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丁炯先(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약분업과 국민보건의 영향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정 교수는 “의약분업 후 약제비는 증가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의 약값 부담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나라의 의약분업은 대단히 성공한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의사들은 현행 의약분업은 약사들을 위한 제도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공공정책을 편 사람들이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연구결과 약국 경영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약국 수입 증가의 가장 큰 이유가 의약분업 후 늘어난 외래진료량과 조제료 확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약분업은 어치피 해야 할 개혁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여건에서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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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국 조제실의 모습. 약제비가 급증하자 의사들은 약국의 조제료가 비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약사들은 의사가 고가의 약을 처방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
“그 부분도 저는 의사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제도적으로 손을 봐야 할 부분입니다. 5개 기술료를 조제료에 포함해 놓았는데 너무 높습니다. 의약분업 당시 약사들의 조제료가 높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도 반대급부로 수가를 많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의사들 수가는 다시 깎아내렸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약사들 입장이 굉장히 좋아진 상태로 지속된 것입니다.”
―의약분업 제도를 전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는 없습니까.
“의사와 약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도출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사실 병원과 약국의 담합 문제도 심각한데 감춰져 있거든요. 10년이 됐으면 장단점을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정형선 교수가 의약분업이 ‘성공한 개혁’이라는 평가를 내린 데 반해 丁相赫(정상혁) 이화여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현행 의약분업은 이도저도 아닌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정상혁 교수는 의약분업 정책 평가와 방향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정부 주장과 달리 의약분업을 통해 항생제든, 임의조제든, 스테로이드제든 뭐든 간에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는 제약회사의 관련 약품 매출 증가만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의사들이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더라도 의약분업 예외지역의 약국을 통해 엄청난 항생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의 약국과 제약회사 간에 무자료 거래도 엄청난데 이런 것들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정 교수는 “약사들이 환자를 문진 하고 약을 파는 것은 현행법으로 무면허 진료를 하는 범죄 행위인데 단속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정부의 의약분업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비난했다.
“약사 국가고시 시험과목에 질병에 대한 과목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나라 약사들은 마치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하도 말썽이 많으니까 아예 약대를 6년으로 늘려서 질병에 관한 과목을 넣으려고 합니다. 제가 약대 교과 과정을 볼 때 약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는 게 가능하다면 생물과 화학전공자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줘야 합니다.”
일반 의약품 소매점 판매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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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혁 이화여대 예방의학과 교수. |
“국가 인력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도 이런 고급 인력들은 제약회사의 R&D 분야에 집중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약사들이 당장 약을 파는 게 더 큰 이익을 내니까 모두 판매 행위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과연 조제된 약을 건네 주는데 매년 2조원 이상의 비용을 국가가 지불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예전처럼 다시 병원 내에 약국을 둬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어느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말씀드리면 이미 포장된 약을 단순히 판매만 하는 상황에서는 의약분업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그냥 의사들이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현재 의사들이 주장하는 선택분업제를 찬성합니다.”
―병원이 마진을 많이 남기기 위해 필요 없는 약을 처방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식으로 본다면 무슨 정책인들 펼 수 있습니까. 약사가 약을 팔면 아무 마진이 없겠습니까. 예전에는 약값의 리베이트를 감안해서 진료수가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의약분업시 약값 마진을 인정해 주고, 대신 수가를 낮추었던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리베이트를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정책을 펴면 안됩니다. 리베이트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철저한 감시를 하고, 세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가를 조정하면 병원도 약품을 싸게 구입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기존의 약국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나라는 약값이 너무 비쌉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해열제, 거담제, 콧물약, 기침약 등의 일반의약품(OTC: over the counter drug)은 일반 소매점 판매부터 허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OCT 약품까지 죄다 카운트 안쪽에 넣어 놓고, 소비자가 약값이나 성분을 전혀 알 수 없게 차단해 놓았습니다. 의약분업하는 나라 중에 이렇게 하는 곳은 없습니다.”
현재 미국, 영국을 비롯해 일본도 일반의약품의 95%를 일반 소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은 46년 만의 약사법 개정을 통해 올해 6월부터 주요 감기약, 해열진통제 등 전체 일반의약품의 95%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편의점 등 일반 소매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국민부담만 가중시켜
의협의 文靜林(문정림) 의무이사(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교수)는 “의약분업은 대표적인 정책실패 제도인데 정부가 강제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 것처럼 숨겨오면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며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잘못된 제도가 고착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초 의약분업의 정책적 순기능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는 실패한 제도가 아니라 정책적 기망(사기)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파탄의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니, 차등수가제니, 심사기준 강화니 하면서 의사들만 옥죄어 왔습니다.”
문 이사는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어느 한쪽 편만 들 것이 아니라 의사와 약사들의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중재와 협의를 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며 “의사와 약사들이 협의가 되지 않으면 정부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서 건강보험 업무 분야에 30여 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A씨는 “일본은 1970년대 말 의약분업 비율이 10%도 안됐지만 지금은 65% 정도 된다”며 “일본은 원내에서 조제를 할 경우 처방료를 올리는 것으로 분업을 유도할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의약분업은 엄청나게 불편하고, 경제적 비용도 증가하고, 시간에 따른 기회비용도 발생하는 제도입니다. 그 시간에 국민이 경제적 생산활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의약분업 과정에서 비용지출 당사자인 일반 국민의 목소리는 거의 무시됐습니다.”
A씨는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까 비용을 줄이면서 힘을 합쳐 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약국 조제료가 왜 그렇게 비싸졌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원래 약국은 약값 마진으로 운영을 하는 곳인데 의약분업을 하면서 구입가로 팔라고 하니까 당연히 생계 유지를 위해 조제료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약값에 마진을 주고 조제료를 낮추면 약제비를 엄청나게 절감할 수 있어요.”
의약분업은 원래 돈이 들게 되어 있는 제도였다. 결국 그 돈은 국민부담과 연계되기 때문에 정부는 처음 시작단계부터 한 푼이라도 국민부담을 줄이는 제도와 방법을 모색했어야 한다.
이왕 의약분업이 필요하다면 보다 신중하게 보험재정이 덜 들어가게 설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一刀兩斷(일도양단)식으로 급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누수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수현상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정부 공무원이나 의사, 약사가 아니라 필자와 같은 국민이기에 하는 말이다.⊙
▣ 의약분업 略史
2000년 7월 시행된 의약분업은 1963년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그 원칙이 규정돼 있었으나, 실제 시행은 유보됐다. 그러다 1993년 韓(한)·洋藥(양약) 간의 분쟁(약국에 한약 제조 판매를 허용하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의학계와 약학계의 갈등)을 계기로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이 정하는 날부터 의약분업을 하겠다는 것이 명문화됐다.
이후 잠잠하던 의약분업은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의약분업은 김대중 대통령의 大選(대선) 공약사항이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됐기 때문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총리자문기구로 ‘의료개혁위원회’가 발족, 3단계 의약분업 기본모형을 건의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본격 출범한 1998년 5월에 소비자단체, 언론, 공익대표, 의료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의약분업추진협의회’가 구성됐고, 이곳에서 의약분업의 시행방향이 결정됐다.
당시 의약분업의 골격을 짰던 핵심 인물이 金容益(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와 梁奉玟(양봉민) 서울대 보건학과 교수이며, 그 외 조병희, 김창엽, 조홍준, 이용수, 우석균 등 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참여했던 의사와 교수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5월 10일 의사회와 약사회, 시민단체가 의약분업 시행에 합의했다. 3자가 합의하자 車興奉(차흥봉) 당시 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실행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5·10 합의는 의료계 내부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합의문에 동의했던 유성회 의협회장은 의협 대의원 총회에서 불신임을 받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1999년 9월 의약분업 세부 시행안이 확정됐고,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약분업에 반대한 의협은 1999년 12월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를 만들어 金在正(김재정)씨를 위원장으로 선임했고, 김 위원장은 2000년 4월 의협 회장에 당선돼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이끌었다. 2000년 6월 약 1주일간 전국의 병·의원들이 의약분업에 반대해 집단 휴·폐업을 벌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 8월 약사법 개정안이 공포되고, 11월 醫藥政(의약정) 합의안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의약분업 시대가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