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비율 조합원 149명에 1명. 하나의 노조에 평균 3.6명의 전임자 활동. 이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평균 3.1명보다 16%나 많은 수치
⊙ 13년 유예된 ‘복수노조·전임자 無임금’ 시행 앞으로 2달…勞使政 정면충돌 양상
⊙ 현대자동차 노조 전임자 단체협약상 98명을 둘 수 있지만 현재는 217명
⊙ 美·日·유럽 등 선진국은 노조 전임자 임금 노조가 부담
⊙ 일본 노조는 전체 조합비 중 인건비 비중 34.7%, 한국은 2.7%에 불과
⊙ 13년 유예된 ‘복수노조·전임자 無임금’ 시행 앞으로 2달…勞使政 정면충돌 양상
⊙ 현대자동차 노조 전임자 단체협약상 98명을 둘 수 있지만 현재는 217명
⊙ 美·日·유럽 등 선진국은 노조 전임자 임금 노조가 부담
⊙ 일본 노조는 전체 조합비 중 인건비 비중 34.7%, 한국은 2.7%에 불과
- 지난 10월 8일 한국노총은 노조전임자 무임금과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반대하며 ‘사활을 건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사진은 투쟁 선포식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노총 관계자들.
‘전초전, 전면전, 死活(사활) 건 투쟁, 6자회담, 시한폭탄….’
남북 문제를 다룬 단어가 아니다. 2010년 시행 예정인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 현안을 놓고 노동계, 財界(재계), 정부 사이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다룬 말들이다.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3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제정되면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 지급이 명시적으로 금지되고 개별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은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을 절충해 2001년까지 적용을 유예했다.
2001년 2월이 되자 勞使政(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따른 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07년 이후로 그 시행이 유예됐고, 2006년 12월 30일 노조법이 개정돼 또다시 올해 말까지 유예됐다.
유예 기간이 끝나고 시행일이 다가올 때마다 勞使(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엇갈려 두 차례나 법 시행을 뒤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별다른 법 개정 절차가 없는 한 올해 12월 31일까지 유예 기간이 마감되고, 내년 1월부터 개별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되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 지급이 금지된다.
13년간 총 세 차례 유예 진통을 겪은 법규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 노사정은 또다시 첨예한 입장차를 나타내며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10월 말 국회의원 재·보선이 끝난 후 11월부터 관련 입법 논의가 본격화돼 12월 초 정기국회 종료일까지 노동계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정기국회에서 논의 시기에 맞춰 총파업을 비롯한 대규모 투쟁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년간 해결을 미뤄온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문제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후진적 노사관계의 틀을 새롭게 바로잡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 개혁과제다. 이제는 결론을 낼 때가 됐다.”
지난 10월 1일 취임한 任太熙(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취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법 시행 직전마다 노사정 입장이 평행선을 달려 세 차례나 미뤄졌던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무임금을 이번엔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任太熙 장관, “원칙대로 시행”
취임 전 인사청문회 때부터 “원칙대로 시행”을 주장해 온 임 장관의 강경한 입장에 노동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노동계는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 중단이 노조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며 현행법 규정의 삭제를 요구하는 입장이다.
現(현) 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이던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 및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면서 지난 10월 7일부터 “노사정위원회 논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위 불참을 공식 확인한 후, “정부가 노동자를 ‘벌레’ 취급하고 있다”며 對(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또 “한국노총, 민노총, 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 등 6자 대표가 참여하는 회의를 제안한다”며 별도 회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같은 날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박유기 신임 위원장도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허용 등 내용이 포함된 노동관계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兩大(양대) 노총이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 가운데, 재계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대한상의 孫京植(손경식) 회장은 10월 8일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복수노조의 폐단을 감내할 길이 없으며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도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내년부터 시행돼야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은 교섭 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와 재계 입장이 모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사정의 난해한 이해관계 방정식은 법이 처음 제정된 1997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해 노동계는 “지급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재계와 정부는 “전면 금지”를 내세우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의 경우, 노동계는 각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재계와 정부는 창구 단일화 조건으로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재계와 달리 양 사안에 대해 원칙 안에서 어느 정도 보완과 절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勞政(노정) 양측의 의견 대립은 지난 10월 12일 임태희 장관과 민노총 임성규 위원장의 상견례 자리에서도 드러났다. 임 위원장은 이날 임 장관에게 “장관은 명함만 노동부 장관으로 갖고 다니지 말라”면서 “현재 기업을 대표하는 사람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노동부 장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며 정부 방침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임 장관은 “노동운동이 이제 바뀔 때가 됐다는 요구가 많다”면서 “민노총도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노조 전임자가 使側으로부터 받는 임금 연간 총 4288억원
충돌은 국회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7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秋美愛(추미애) 환경노동위 위원장과 임태희 장관의 舌戰(설전)이 벌어졌다. 추 위원장은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노사 발전의 걸림돌로 선포하고 어두운 관점으로 보면 노동정책을 제대로 이끌겠느냐”면서 “기업을 대변하는 관점에서 그렇게 본다면 노동부 首長(수장)으로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고 발언했다.
임 장관은 “이제는 고쳐야 한다. 원칙에 입각해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정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8년 현재 전국 3977개 노조에 약 1만명의 노조 전임자를 두고 있다. 조합원 149명당 1명의 전임자가 있는 셈이다.
이는 2005년(153명)보다 줄어든 수치로, 근로자 수에 비해 노조 전임자 수가 더 많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노조에 평균 3.6명의 전임자가 있으며, 이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평균 3.1명보다 약 16%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자 중 약 56%가 평균임금을 받고 있으며, 평균임금 미만을 받는 전임자는 16%, 평균임금 이상을 받는 전임자는 28%다. 전임자가 받는 임금은 총 4288억원으로, 2005년의 3439억원보다 849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연간 임금은 100인 미만의 노조가 2635만원인 반면, 1000인 이상의 노조는 5318만원인 것으로 조사돼 조합원 규모가 커질수록 1인당 임금도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조합비 기준으로 충당할 수 있는 전임자의 수는 100명 미만 노조의 경우 0.5명, 100~299명은 1.6명, 300~999명은 3.9명, 1000명 이상은 23.9명이다.
현재 100명 미만 노조가 평균 1.3명의 전임자를 보유하고 있고, 100명 이상도 각각 1.9명(100~299명), 3.7명(300~999명), 24.6명(1000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임자 무임금 규정이 시행되면 100명 미만 노조는 조합비 전체로도 전임자 임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전체 노조 중 65%는 100명 미만의 노조다. 100명 이상 노조도 조합비 대부분이 전임자 임금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노동계는 “전임자가 없는 노조는 교섭준비와 교섭과정에서 사용자에 비해 열세에 놓인다”며 조합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했다. 노조활동의 위축은 산별연맹과 전국중앙조직에도 확대돼 민노총과 한국노총 등 국내 노동단체의 운영에 상당한 지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 전임자 수 확대 계속 요구”
재계는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조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현재 많은 노조가 단협 과정에서 의무적 교섭사항이 아닌 노조 전임자 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노조 전임자 문제를 투쟁과 파업의 명분으로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연월차 휴가수당과 연장근로수당 등 혜택도 논란거리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노조 전임자의 추가적 혜택은 ‘연월차 휴가 및 대체수당’ ‘연장근로수당’ ‘출퇴근시간 등의 면제’ ‘차량지원’ ‘출장비(유류비) 지원’ ‘휴대전화 요금’ ‘전임기간 종료시 상위직 복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총은 “노조 전임자의 특권화·권력화는 노동운동의 본질을 왜곡시키면서 노조 전임자의 지위 쟁취가 노동운동의 목표로 변질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노조 지도부의 비리, 전임기간 장기화로 인한 근로분위기 저해, 기업의 부담 과중과 경영 악화, 노사관계 악화 등 폐해가 전임자 문제로 인해 발생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총에 따르면, ‘노조 전임자 수 및 노조 전임자 처우 문제가 임금 단체협상이 지연되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2006년 조사에서 ‘매우 그렇다’(16%), ‘그렇다’(25%), ‘보통이다’(34%), ‘그렇지 않다’(24%), ‘절대 그렇지 않다’(1%)란 결과가 나와 노조 전임자 문제가 노사관계 불안의 잠재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총의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는 현재 217명의 노조 전임자를 두고 있다. 단체협약상 98명을 둘 수 있지만 두 배 이상 많은 전임자가 있는 셈이다. 이 중 노조 내부 전임자는 82명, 나머지는 금속노조 파견(11명), 민노총 파견(5명), 임시상근자(119명) 등이다.
이와 별개로 사실상 전임자 지위라고 볼 수 있는 484명의 사업부 대표와 대의원들이 있어, 실제 전임자 수는 600명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연봉은 평균 6600만원이다. 현대차의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총액은 137억원으로, 조합비 103억원보다 더 많다.
전임자 급여 지원은 노조의 조합비 지출 구조의 변화로 이어진다. <중앙일보> 9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합비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일본의 경우 전체 조합비 중 34.7%가 인건비로 지출된다. 반면 한국은 인건비 지출이 2.7%에 불과하고, 나머지 조합비가 사업비로 지출된다.
덕분에 일본이 24.7%의 조합비를 사업비로 쓰는 반면, 한국의 사업비 비중은 조합비의 57.8%에 이른다.
“노조 간부는 파업해도 임금 받고, 타결되면 격려금 챙겨”
전임자 임금은 노조 조직률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영국 28.4%, 독일 22.3%, 일본 19.4% 등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노조 전임자 인건비를 조합비로 충당하는 외국의 노조 지휘부는 조직률 유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보다 많은 조합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직원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 구호보다는 조합원의 복지와 관련된 정책과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 노조 지휘부는 인건비를 사측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률 하락에 둔감하다. 결국 노조의 존재와 활동을 알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강성투쟁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비슷한 국내 대기업들은 노조 전임자 무임금 규정이 내년부터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임자 급여 지급이 기업경영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전임자 지위 유지를 위해 비효율적인 투쟁 사례가 자주 발생해 기업의 유·무형적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전임자 임금 137억원은 전체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전면 파업 등 노조 투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가적 피해 규모(손실액)는 연간 5232억원(2008년 기준)에 이른다.
전임자의 역할은 주로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회사 측과 협상 전략을 짜는 데 있지만, 노사갈등이 심한 사업장의 경우 파업 전략에 전임자들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權赫泰(권혁태) 노동부 노사갈등대책과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 간부는 파업을 해도 임금을 받고, 타결되면 격려금까지 챙기는 이중의 혜택을 본다”고 했다. 특별대우와 함께 조합원을 이끄는 사실상 ‘절대권력’의 자리다 보니 노조 내 각 계파 간 전임자와 위원장을 배출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복수노조 문제, 社內 현실에 따라 입장차
현재 노동계는 “전임자 임금을 노사 자율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재계는 “전임자 임금을 사측이 부담하는 것이 오히려 노조의 자율을 방해한다”면서 노조 자주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전임자 임금의 조합비 충당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노사자율 존중이라는 노동계의 명분은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해결방안이라기보다는 잘못된 관행에 대한 집착과 기득권 고수를 위한 자의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노사관계 회복과 같은 미시적 사안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정부가 확실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경제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전임자 임금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는 표현과 추미애 국회 환노위 위원장의 ‘독재정권이 날치기한 법으로 노조의 뿌리를 뽑으려 한다’는 발언은 기본적인 설득력도 없고 사실마저 왜곡한 억지 주장”이라며 “이런 주장으로 인해 노사정이 만족할 만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근본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노조가 부담한다. 미국 노동관계법 제158조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 또는 재정적 지원 기타 원조를 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단, 노사관계 관련 노무제공(산업안전, 단체협상, 고충처리 등)을 한 경우, 그에 대한 보수 지급은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1949년 노동조합법 개정 후 사용자로부터 경비원조를 받는 노조의 조합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 노동조합법 제7조에 따르면, 노조 운동을 위한 경비지급에 대해 경리상의 원조를 주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전임 임원의 경우, 임금은 단위노조의 조합비에서 지불하고, 종업원으로서의 籍(적)은 유지하지만 신분은 무급 휴직 처리한다. 비전임 임원의 급여는 일반종업원과 같이 회사가 지불하지만,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을 할 경우 해당 시간만큼의 임금이 삭감된다.
영국은 사용자가 노조에 어떠한 금전 및 물질적 지원을 하지 않으며, 노조 측에서도 자주성 유지를 위해 사용자 측에 금전 등 기타 물질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프랑스는 산업별 노조체제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차원의 노조 전임자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국단위 조직지부 분회로 조직된 노조 전임자는 임금을 노조 재정에서 충당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번 복수노조 허용 사안에 대해선 국내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이 더욱 복잡하다.
현대차 등 대형 노조를 보유한 기업들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시행하기 위해 어떻게든 복수노조 허용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전제한 것으로, 한편에선 노조 설립의 자유를 통해 다수의 中小(중소) 노조가 社內(사내)에 들어설 경우, 기존 대형 노조의 힘이 약화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타협 없는 투쟁
삼성과 포스코 등 노사관계가 비교적 원만하거나 노조가 없는 기업은 복수노조 허용을 피하고 싶은 것이 속내다. 다른 노조가 생겨 기존 노사관계를 깨는 것보다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면서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삼성은 지난 2006년 세 번째 유예 당시 최대 수혜자로 꼽혔다. 당시 無(무)노조 역사를 끝낼 복수노조 허용이 유예됐고,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전임자가 없는 삼성엔 무관한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법 제정 이후 13년간 방치된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다. 당시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을 원했고, 재계와 정부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원했다. 당시 여야 정치권은 이 두 사안을 ‘빅딜’하여 동시 추진키로 하는 법을 통과시킨 후유증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 등 양대 노총은 ‘타협없는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민노총은 오는 11월 중 국제 노동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 10월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6~8일 독일에서 열린 국제노총(ITUC)에 참석한 임성규 민노총 위원장은 “ITUC 및 OECD 산하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 한국의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또 “국제심포지엄 개최 배경에는 전임자 임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려는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 노동계의 심각한 우려가 작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청와대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2010년 1월 1일부터 법규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鄭正佶(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지난 10월 9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불합리한 노사문화 관행 및 제도를 개선해 법과 원칙에 입각한 자율과 책임의 노사관계가 구축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3년 유예된 법률의 운명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와 관련, 노사정위 소속 공익위원들이 지난 7월 내놓은 대안인 ‘타임오프(Time-off)제’는 노사 양측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태다. 타임오프제란 노조 전임자의 노조업무 활동시간(고충처리, 단체교섭 등)을 규정하고 이 시간의 활동을 유급으로 인정하자는 제도다.
재계는 타임오프제가 전임자 임금을 사실상 공식화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기존 노조 전임자에 대한 근태와 급여를 인정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교섭 때마다 대상과 범위를 놓고 노사 간 분쟁이 커져 혼란만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노무 관계자는 “타임오프제가 받아들여질 경우, 결국 노조는 타임오프제 확대를 통해 전임자 인정과 동일한 혜택을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반대 입장이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은 법으로 강제할 사항이 아니라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노동계도 재계와 마찬가지로 타임오프제가 실시될 경우 범위와 대상을 놓고 일어날 노사 갈등을 우려했다.
공은 결국 정부에 넘어갔다. 지난 2006년 당시 盧武鉉(노무현) 정부도 처음엔 법 시행 입장이었지만, 노사의 강한 반발로 결국 세 번째 유예안을 받아들였다. 3년이 지난 현재, 노사의 ‘예견된 반발’이 시작됐고, 정부는 “확고한 의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시행일까 유예일까, ‘13년 해묵은 법’의 결과가 궁금해지는 11월이다.⊙
▣ 전임자 無임금·복수노조 허용 관련 법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 제24조(노동조합의 전임자)
①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이하 “전임자”라 한다)는 그 전임기간 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
⊙ 제81조(부당노동행위) 사용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이하 “부당노동행위”라 한다)를 할 수 없다.
4.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다만,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사용자와 협의 또는 교섭하는 것을 사용자가 허용함은 무방하며, 또한 근로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 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최소한의 규모의 노동조합사무소의 제공은 예외로 한다.
⊙ 부칙 제6조(노동조합 전임자에 관한 적용의 특례)
①제24조 제2항 및 제81조 제4호의 규정(노동조합의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에 관한 규정에 한한다)은 이를 2009년 12월 31일까지 적용하지 아니한다.
②노동조합과 사용자는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규모를 노사협의에 의하여 점진적으로 축소하도록 노력하되, 이 경우 그 재원을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에 사용하도록 한다.
⊙ 제5조(노동조합의 조직가입)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
⊙ 부칙 제5조(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경과조치)
①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경우에는 제5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2009년 12월 31일까지는 그 노동조합과 조직 대상을 같이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
남북 문제를 다룬 단어가 아니다. 2010년 시행 예정인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 현안을 놓고 노동계, 財界(재계), 정부 사이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다룬 말들이다.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3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제정되면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 지급이 명시적으로 금지되고 개별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은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을 절충해 2001년까지 적용을 유예했다.
2001년 2월이 되자 勞使政(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따른 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07년 이후로 그 시행이 유예됐고, 2006년 12월 30일 노조법이 개정돼 또다시 올해 말까지 유예됐다.
유예 기간이 끝나고 시행일이 다가올 때마다 勞使(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엇갈려 두 차례나 법 시행을 뒤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별다른 법 개정 절차가 없는 한 올해 12월 31일까지 유예 기간이 마감되고, 내년 1월부터 개별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되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 지급이 금지된다.
13년간 총 세 차례 유예 진통을 겪은 법규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 노사정은 또다시 첨예한 입장차를 나타내며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10월 말 국회의원 재·보선이 끝난 후 11월부터 관련 입법 논의가 본격화돼 12월 초 정기국회 종료일까지 노동계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정기국회에서 논의 시기에 맞춰 총파업을 비롯한 대규모 투쟁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년간 해결을 미뤄온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문제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후진적 노사관계의 틀을 새롭게 바로잡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 개혁과제다. 이제는 결론을 낼 때가 됐다.”
지난 10월 1일 취임한 任太熙(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취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법 시행 직전마다 노사정 입장이 평행선을 달려 세 차례나 미뤄졌던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무임금을 이번엔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任太熙 장관, “원칙대로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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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12월 한국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 앞에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허용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임자 무임금을 규정한 법규 시행은 두 차례 더 유예됐다. |
現(현) 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이던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 및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면서 지난 10월 7일부터 “노사정위원회 논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위 불참을 공식 확인한 후, “정부가 노동자를 ‘벌레’ 취급하고 있다”며 對(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또 “한국노총, 민노총, 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 등 6자 대표가 참여하는 회의를 제안한다”며 별도 회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같은 날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박유기 신임 위원장도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허용 등 내용이 포함된 노동관계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兩大(양대) 노총이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 가운데, 재계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대한상의 孫京植(손경식) 회장은 10월 8일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복수노조의 폐단을 감내할 길이 없으며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도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내년부터 시행돼야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은 교섭 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와 재계 입장이 모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사정의 난해한 이해관계 방정식은 법이 처음 제정된 1997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해 노동계는 “지급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재계와 정부는 “전면 금지”를 내세우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의 경우, 노동계는 각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재계와 정부는 창구 단일화 조건으로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재계와 달리 양 사안에 대해 원칙 안에서 어느 정도 보완과 절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勞政(노정) 양측의 의견 대립은 지난 10월 12일 임태희 장관과 민노총 임성규 위원장의 상견례 자리에서도 드러났다. 임 위원장은 이날 임 장관에게 “장관은 명함만 노동부 장관으로 갖고 다니지 말라”면서 “현재 기업을 대표하는 사람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노동부 장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며 정부 방침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임 장관은 “노동운동이 이제 바뀔 때가 됐다는 요구가 많다”면서 “민노총도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노조 전임자가 使側으로부터 받는 임금 연간 총 4288억원
충돌은 국회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7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秋美愛(추미애) 환경노동위 위원장과 임태희 장관의 舌戰(설전)이 벌어졌다. 추 위원장은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노사 발전의 걸림돌로 선포하고 어두운 관점으로 보면 노동정책을 제대로 이끌겠느냐”면서 “기업을 대변하는 관점에서 그렇게 본다면 노동부 首長(수장)으로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고 발언했다.
임 장관은 “이제는 고쳐야 한다. 원칙에 입각해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정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8년 현재 전국 3977개 노조에 약 1만명의 노조 전임자를 두고 있다. 조합원 149명당 1명의 전임자가 있는 셈이다.
이는 2005년(153명)보다 줄어든 수치로, 근로자 수에 비해 노조 전임자 수가 더 많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노조에 평균 3.6명의 전임자가 있으며, 이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평균 3.1명보다 약 16%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자 중 약 56%가 평균임금을 받고 있으며, 평균임금 미만을 받는 전임자는 16%, 평균임금 이상을 받는 전임자는 28%다. 전임자가 받는 임금은 총 4288억원으로, 2005년의 3439억원보다 849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연간 임금은 100인 미만의 노조가 2635만원인 반면, 1000인 이상의 노조는 5318만원인 것으로 조사돼 조합원 규모가 커질수록 1인당 임금도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조합비 기준으로 충당할 수 있는 전임자의 수는 100명 미만 노조의 경우 0.5명, 100~299명은 1.6명, 300~999명은 3.9명, 1000명 이상은 23.9명이다.
현재 100명 미만 노조가 평균 1.3명의 전임자를 보유하고 있고, 100명 이상도 각각 1.9명(100~299명), 3.7명(300~999명), 24.6명(1000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임자 무임금 규정이 시행되면 100명 미만 노조는 조합비 전체로도 전임자 임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전체 노조 중 65%는 100명 미만의 노조다. 100명 이상 노조도 조합비 대부분이 전임자 임금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노동계는 “전임자가 없는 노조는 교섭준비와 교섭과정에서 사용자에 비해 열세에 놓인다”며 조합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했다. 노조활동의 위축은 산별연맹과 전국중앙조직에도 확대돼 민노총과 한국노총 등 국내 노동단체의 운영에 상당한 지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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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한국노총(10월 5일)과 민노총(10월 12일)을 방문해 장석춘 위원장(한국노총)과 임성규 위원장(민노총)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민노총 임 위원장은 임 장관에게 “명함만 노동부장관으로 갖고 다니지 말라”며 정부 방침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
“노조, 전임자 수 확대 계속 요구”
재계는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조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현재 많은 노조가 단협 과정에서 의무적 교섭사항이 아닌 노조 전임자 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노조 전임자 문제를 투쟁과 파업의 명분으로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연월차 휴가수당과 연장근로수당 등 혜택도 논란거리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노조 전임자의 추가적 혜택은 ‘연월차 휴가 및 대체수당’ ‘연장근로수당’ ‘출퇴근시간 등의 면제’ ‘차량지원’ ‘출장비(유류비) 지원’ ‘휴대전화 요금’ ‘전임기간 종료시 상위직 복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총은 “노조 전임자의 특권화·권력화는 노동운동의 본질을 왜곡시키면서 노조 전임자의 지위 쟁취가 노동운동의 목표로 변질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노조 지도부의 비리, 전임기간 장기화로 인한 근로분위기 저해, 기업의 부담 과중과 경영 악화, 노사관계 악화 등 폐해가 전임자 문제로 인해 발생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총에 따르면, ‘노조 전임자 수 및 노조 전임자 처우 문제가 임금 단체협상이 지연되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2006년 조사에서 ‘매우 그렇다’(16%), ‘그렇다’(25%), ‘보통이다’(34%), ‘그렇지 않다’(24%), ‘절대 그렇지 않다’(1%)란 결과가 나와 노조 전임자 문제가 노사관계 불안의 잠재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총의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는 현재 217명의 노조 전임자를 두고 있다. 단체협약상 98명을 둘 수 있지만 두 배 이상 많은 전임자가 있는 셈이다. 이 중 노조 내부 전임자는 82명, 나머지는 금속노조 파견(11명), 민노총 파견(5명), 임시상근자(119명) 등이다.
이와 별개로 사실상 전임자 지위라고 볼 수 있는 484명의 사업부 대표와 대의원들이 있어, 실제 전임자 수는 600명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연봉은 평균 6600만원이다. 현대차의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총액은 137억원으로, 조합비 103억원보다 더 많다.
전임자 급여 지원은 노조의 조합비 지출 구조의 변화로 이어진다. <중앙일보> 9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합비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일본의 경우 전체 조합비 중 34.7%가 인건비로 지출된다. 반면 한국은 인건비 지출이 2.7%에 불과하고, 나머지 조합비가 사업비로 지출된다.
덕분에 일본이 24.7%의 조합비를 사업비로 쓰는 반면, 한국의 사업비 비중은 조합비의 57.8%에 이른다.
“노조 간부는 파업해도 임금 받고, 타결되면 격려금 챙겨”
전임자 임금은 노조 조직률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영국 28.4%, 독일 22.3%, 일본 19.4% 등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노조 전임자 인건비를 조합비로 충당하는 외국의 노조 지휘부는 조직률 유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보다 많은 조합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직원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 구호보다는 조합원의 복지와 관련된 정책과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 노조 지휘부는 인건비를 사측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률 하락에 둔감하다. 결국 노조의 존재와 활동을 알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강성투쟁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비슷한 국내 대기업들은 노조 전임자 무임금 규정이 내년부터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임자 급여 지급이 기업경영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전임자 지위 유지를 위해 비효율적인 투쟁 사례가 자주 발생해 기업의 유·무형적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전임자 임금 137억원은 전체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전면 파업 등 노조 투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가적 피해 규모(손실액)는 연간 5232억원(2008년 기준)에 이른다.
전임자의 역할은 주로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회사 측과 협상 전략을 짜는 데 있지만, 노사갈등이 심한 사업장의 경우 파업 전략에 전임자들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權赫泰(권혁태) 노동부 노사갈등대책과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 간부는 파업을 해도 임금을 받고, 타결되면 격려금까지 챙기는 이중의 혜택을 본다”고 했다. 특별대우와 함께 조합원을 이끄는 사실상 ‘절대권력’의 자리다 보니 노조 내 각 계파 간 전임자와 위원장을 배출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복수노조 문제, 社內 현실에 따라 입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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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태희 노동부 장관(왼쪽)과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지난 10월 7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전임자 무임금과 복수노조 허용 등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다. |
재계는 노사관계 회복과 같은 미시적 사안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정부가 확실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경제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전임자 임금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는 표현과 추미애 국회 환노위 위원장의 ‘독재정권이 날치기한 법으로 노조의 뿌리를 뽑으려 한다’는 발언은 기본적인 설득력도 없고 사실마저 왜곡한 억지 주장”이라며 “이런 주장으로 인해 노사정이 만족할 만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근본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노조가 부담한다. 미국 노동관계법 제158조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 또는 재정적 지원 기타 원조를 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단, 노사관계 관련 노무제공(산업안전, 단체협상, 고충처리 등)을 한 경우, 그에 대한 보수 지급은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1949년 노동조합법 개정 후 사용자로부터 경비원조를 받는 노조의 조합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 노동조합법 제7조에 따르면, 노조 운동을 위한 경비지급에 대해 경리상의 원조를 주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전임 임원의 경우, 임금은 단위노조의 조합비에서 지불하고, 종업원으로서의 籍(적)은 유지하지만 신분은 무급 휴직 처리한다. 비전임 임원의 급여는 일반종업원과 같이 회사가 지불하지만,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을 할 경우 해당 시간만큼의 임금이 삭감된다.
영국은 사용자가 노조에 어떠한 금전 및 물질적 지원을 하지 않으며, 노조 측에서도 자주성 유지를 위해 사용자 측에 금전 등 기타 물질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프랑스는 산업별 노조체제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차원의 노조 전임자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국단위 조직지부 분회로 조직된 노조 전임자는 임금을 노조 재정에서 충당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번 복수노조 허용 사안에 대해선 국내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이 더욱 복잡하다.
현대차 등 대형 노조를 보유한 기업들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시행하기 위해 어떻게든 복수노조 허용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전제한 것으로, 한편에선 노조 설립의 자유를 통해 다수의 中小(중소) 노조가 社內(사내)에 들어설 경우, 기존 대형 노조의 힘이 약화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타협 없는 투쟁
삼성과 포스코 등 노사관계가 비교적 원만하거나 노조가 없는 기업은 복수노조 허용을 피하고 싶은 것이 속내다. 다른 노조가 생겨 기존 노사관계를 깨는 것보다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면서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삼성은 지난 2006년 세 번째 유예 당시 최대 수혜자로 꼽혔다. 당시 無(무)노조 역사를 끝낼 복수노조 허용이 유예됐고,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전임자가 없는 삼성엔 무관한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법 제정 이후 13년간 방치된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다. 당시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을 원했고, 재계와 정부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원했다. 당시 여야 정치권은 이 두 사안을 ‘빅딜’하여 동시 추진키로 하는 법을 통과시킨 후유증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 등 양대 노총은 ‘타협없는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민노총은 오는 11월 중 국제 노동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 10월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6~8일 독일에서 열린 국제노총(ITUC)에 참석한 임성규 민노총 위원장은 “ITUC 및 OECD 산하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 한국의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또 “국제심포지엄 개최 배경에는 전임자 임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려는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 노동계의 심각한 우려가 작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청와대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2010년 1월 1일부터 법규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鄭正佶(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지난 10월 9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불합리한 노사문화 관행 및 제도를 개선해 법과 원칙에 입각한 자율과 책임의 노사관계가 구축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3년 유예된 법률의 운명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와 관련, 노사정위 소속 공익위원들이 지난 7월 내놓은 대안인 ‘타임오프(Time-off)제’는 노사 양측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태다. 타임오프제란 노조 전임자의 노조업무 활동시간(고충처리, 단체교섭 등)을 규정하고 이 시간의 활동을 유급으로 인정하자는 제도다.
재계는 타임오프제가 전임자 임금을 사실상 공식화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기존 노조 전임자에 대한 근태와 급여를 인정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교섭 때마다 대상과 범위를 놓고 노사 간 분쟁이 커져 혼란만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노무 관계자는 “타임오프제가 받아들여질 경우, 결국 노조는 타임오프제 확대를 통해 전임자 인정과 동일한 혜택을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반대 입장이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은 법으로 강제할 사항이 아니라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노동계도 재계와 마찬가지로 타임오프제가 실시될 경우 범위와 대상을 놓고 일어날 노사 갈등을 우려했다.
공은 결국 정부에 넘어갔다. 지난 2006년 당시 盧武鉉(노무현) 정부도 처음엔 법 시행 입장이었지만, 노사의 강한 반발로 결국 세 번째 유예안을 받아들였다. 3년이 지난 현재, 노사의 ‘예견된 반발’이 시작됐고, 정부는 “확고한 의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시행일까 유예일까, ‘13년 해묵은 법’의 결과가 궁금해지는 11월이다.⊙
▣ 전임자 無임금·복수노조 허용 관련 법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 제24조(노동조합의 전임자)
①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이하 “전임자”라 한다)는 그 전임기간 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
⊙ 제81조(부당노동행위) 사용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이하 “부당노동행위”라 한다)를 할 수 없다.
4.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다만,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사용자와 협의 또는 교섭하는 것을 사용자가 허용함은 무방하며, 또한 근로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 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최소한의 규모의 노동조합사무소의 제공은 예외로 한다.
⊙ 부칙 제6조(노동조합 전임자에 관한 적용의 특례)
①제24조 제2항 및 제81조 제4호의 규정(노동조합의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에 관한 규정에 한한다)은 이를 2009년 12월 31일까지 적용하지 아니한다.
②노동조합과 사용자는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규모를 노사협의에 의하여 점진적으로 축소하도록 노력하되, 이 경우 그 재원을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에 사용하도록 한다.
⊙ 제5조(노동조합의 조직가입)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
⊙ 부칙 제5조(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경과조치)
①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경우에는 제5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2009년 12월 31일까지는 그 노동조합과 조직 대상을 같이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