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종플루 대공습을 계기로 국내의 전문가 집단을 모아 효과적인 백신, 차세대 치료제 후보를 발굴하고, R&D 연구기반을 구축하여 백신을 구걸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나라에 공급해 줄 수 있는 인프라 구축하자
成百麟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 1955년 대전 출생.
⊙ 서울대 약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 석사, MIT 유전공학 박사,
옥스퍼드大 대학원 바이러스학 박사 후 연구원.
⊙ 대한백신학회 이사, 한국산업미생물학회 국제간사, 기술표준원 전문위원 역임.
⊙ 現 유엔 생물무기금지국제협약 정부대표, 영국국제인명기관 부의장, 프로테온 대표이사.
⊙ 상훈: ‘20세기를 빛낸 2000명의 학자’ 수록(미국 인명기관, 1999년),
글로벌 500 수록(Barons Who’s Who, 2000년).
成百麟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 1955년 대전 출생.
⊙ 서울대 약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 석사, MIT 유전공학 박사,
옥스퍼드大 대학원 바이러스학 박사 후 연구원.
⊙ 대한백신학회 이사, 한국산업미생물학회 국제간사, 기술표준원 전문위원 역임.
⊙ 現 유엔 생물무기금지국제협약 정부대표, 영국국제인명기관 부의장, 프로테온 대표이사.
⊙ 상훈: ‘20세기를 빛낸 2000명의 학자’ 수록(미국 인명기관, 1999년),
글로벌 500 수록(Barons Who’s Who, 2000년).
-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확산되는 가운데, 마스크를 쓴 일본학생들이 한일스포츠교류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6월 11일(한국시각)을 기해 인플루엔자 유행 경보(pandemic alert)를 최고 단계인 대유행(pandemic) 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앞서 WHO는 4월 한 달 동안 두 번에 걸쳐 유행경보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이는 신종플루가 이미 국지적 발생을 넘어선 세계적인 확산에 의한 위기상황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WHO는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막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더 이상 환자 집계가 무의미함을 시사했다. 신종플루의 감염 속도는 역대 최고 속도이며, 지난 한 세기 동안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발생했던 아시아독감(1957)과 홍콩독감(1968) 때보다 더 빠른 확산을 보이고 있다.
아마 올해 연말까지 전 세계 신종플루 감염환자는 수십만 명에 이르며 사망자는 수천 명, 아니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초기 아메리카 대륙에 국한됐던 사망자가 호주, 아시아 및 유럽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이와 관련, 모든 나라는 신종플루의 예방백신과 치료제의 비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신종플루에 의한 전체 사망률(사망자/감염환자 백분율)은 각국에 따라 편차를 보이고 있으나 0.2~1% 수준으로 일반 계절성 독감의 0.05%보다 8~10배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주목할 사항은 계절형 독감은 주로 호흡기감염 증세를 나타내는 데 비해 신종플루는 폐를 포함하는 호흡기를 감염해 重症(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사망자 중 대부분이 폐렴과의 합병증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1918년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되고, 감염자 중 2%가 사망해 4000만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스페인독감의 경우도 비슷한 합병증에 의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난 세기 동안 70만명과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독감과 아시아독감의 경우, 사망률이 0.1% 수준이었다. 해외 전문기관이 예측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신종플루에 의해 전 인류의 30%가 감염된다면 사망자 수는 홍콩독감 및 아시아독감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감염자 대비 사망자가 극히 적은 약 0.2% 수준을 보이는 것에 대해 혹자는 우리의 主食(주식)인 김치의 효과로 해석하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호흡기성 사망자에 대한 사망요인 분석이 초기에 진행되지 않았고, 다른 호흡기성 질병과의 2차 감염 여부를 판단할 시설과 인력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WHO가 경보 수위를 계속 올리는 이유
앞으로 어떤 형태로 신종플루가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의 견해는 다소 비관적이다. 가장 낙관적인 견해로는 몇 개월 지속되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다. 10여 년 전 급속도로 발생돼 2주 내에 30여 개국으로 확산됐고, 감염자 8000여 명, 사망자 800여 명을 유발한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경우와 유사하다.
사스는 현재 사그라져 아직까지 재발하지 않았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로는 첫째, 인체감염은 확산되나 점차 병원성이 감소돼 사망률이 낮은 바이러스로 遷移(천이)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매년 겨울에 유행하는 유행성(계절형) 독감으로 정착할 것이다.
둘째, 현재의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면서 병원성이 증대돼 전파력과 사망률이 높은 팬데믹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난 세기 우리가 경험한 홍콩독감, 아시아독감의 재판, 더 나아가 이보다 더 큰 팬데믹을 예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가능성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
신종플루를 1918년도에 대유행했던 스페인독감과 비교하면 그 위력은 매우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O가 경종의 수위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연초까지 전 세계를 휩쓸던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를 벌써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인체 감염을 유발했던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와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는 원래 조류만을 감염하는 바이러스로 알려져 왔으나 1997년 홍콩에서 발병해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지속적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해 약 400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은 60% 이상으로 매우 높지만, 이는 닭과 같은 조류로부터의 직접적 감염에 의한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만약 H5N1형 바이러스와 신종플루(H1N1)가 서로 섞일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극단적인 경우 신종플루처럼 인체감염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AI처럼 감염자 2명 중 한 명이 사망하는 바이러스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90년 전 스페인독감 사례가 자꾸 떠오른다. 이는 독감바이러스 유전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독감바이러스는 흥미롭게도 유전자가 총 8개의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두 개의 다른 독감바이러스가 한 세포에 동시에 감염할 경우, 감염된 세포 내에서 서로 유전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천문학적인 변종 바이러스 출현 예상
간단하게 계산해 보아도 28개의 조합이 가능하며, 256개의 변종이 나올 수 있다. 기존에 알려진 독감바이러스 종류가 수백 개에 달함을 고려할 경우,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변종의 수는 천문학적 숫자가 된다. 이 때문에 매년 高熱(고열)을 동반하는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남아 지역에 잠적한 H5N1형 바이러스와 겨울에 北上(북상)이 예견되는 H1N1 신종플루 사이에 나타날 이런 조합을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신종플루는 타입으로 분류할 때 新種(신종)이라기보다는 구형에 가까운 바이러스다. H와 N은 바이러스 표면 항원 단백질로서 타입에 따라 여러 개의 亞型(아형), 즉 H의 경우 9종(H1~H9), N의 경우 16종(N1~N16)으로 분류한다.
발견된 순서로 숫자를 붙이기 때문에 H1N1 형은 가장 먼저 발견한 아형에 속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1930년 초에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는 H1N1형, 1957년 아시아독감은 H2N2형, 1968년 홍콩독감은 H3N2형이고, 1997년부터 인체감염을 시작한 조류인플루엔자가 H5N1형이라는 식이다. 이보다 앞선 1918년 스페인독감도 H1N1형이다.
신종플루의 H와 N은 2개의 다른 바이러스 표면항원(H:Hemagglutinin, N:Neuraminidase)을 의미한다. H는 바이러스가 세포감염 초기에 세포 표면에 부착되기 위해 세포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에 부착해 초기감염을 도와주는 단백질이다.<그림 1>
일단 세포 내로 침입한 바이러스는 세포 내에서 자기 유전자 복제를 진행하며, 이후 이 유전자가 바이러스 형태로 조립돼 감염된 세포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때 잘 떨어져야만 다른 세포로의 감염을 확장할 수 있다.
N단백질, 즉 뉴라미니다제 효소가 작용하여 감염된 세포로부터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떨어지는 것을 도와준다. 예컨대 방문의 손잡이를 파괴함으로써 문을 부수고 나오는 격이다. 즉 H와 N은 감염 초기에 세포 부착, 말기에 세포로부터의 탈피라는 상이한 작용을 거듭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증식하게 된다.
만일 가위 역할을 하는 N 뉴라미니다제를 고장 내는 물질이 있다면 효과적인 감염치료제가 될 수 있다. 독감바이러스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신종플루의 경우, 바이러스형 표면, 즉 껍질만 보면 구형에 속하나 유전자 조성으로 보면 매우 독특한 新種(신종)이다. 즉 신종플루는 8개의 유전자 조각이 3종의 다른 바이러스의 조합(인체감염바이러스, 조류바이러스 및 돼지감염 바이러스)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돼지바이러스 유전자는 2개의 다른 돼지로부터 유래됨을 고려할 때 4개의 바이러스가 서로 섞인 셈이다.<그림 2>
새로운 면역증강제 개발
1998년 北美(북미) 대륙에서 발생한 돼지독감 바이러스에다가 1992년 아시아·유럽에서 유행했던 돼지바이러스의 유전자와의 추가적인 조합이 일어난 것이다. WHO가 초기에 돼지독감(swine flu)으로 명명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18년 H1N1형 스페인독감도 조류로부터 유래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며, 사람에게 적응해 인체독감 바이러스가 된 것임을 상기해 볼 때, 바이러스의 유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현재 사람을 감염하는 모든 감염균과 바이러스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유래(Zoonosis: 人獸(인수)공통 감염증)됐기 때문이다.
신종플루를 포함한 팬데믹에 의한 인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예방백신과 치료제의 비축을 들 수 있다. 예방백신의 경우 대부분 수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이로부터 백신용 바이러스를 생산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신종플루의 경우 일반적인 유행성 독감백신에 비해 수정란에서 생산할 때 생산성이 매우 떨어진다. 아울러 신종플루는 비교적 면역성이 낮아 1회 접종으로는 충분한 예방력을 유도하지 못해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 세계 생산시설을 모두 가동해도 전 인류의 극히 일부만 접종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는 기존 백신의 효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면역증강제(adjuvant)의 사용이다. 즉 이를 사용해 기존 백신 접종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동일한 예방효과를 낸다는 개념이다.
정부의 고민
이 경우 추가적인 임상연구를 통해 면역증강제가 부작용 없이 안전하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방안은 수정란 대신 세포배양법에 의한 백신생산기술이다. 일단 유사시 H5N1형 같은 高(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農家(농가)에 발생해 養鷄(양계)가 폐사하면 수정란의 공급이 중단될 것이다. 이는 수정란을 사용하는 독감백신 생산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수정란 대체 세포배양에 의한 백신생산 기술개발이 중요하다.
예방백신을 사용하는 선제적 대응 외에도 타미플루와 항바이러스 치료제 사용도 필수적이다. 타미플루는 <그림 1>에서 보듯 가위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항원 뉴라미니다제의 沮害劑(저해제)다. 그러나 H1N1형 유행성 독감바이러스의 98%가 타미플루에 耐性(내성)을 나타낸다는 점이 문제다.
일본에서는 타미플루를 복용한 청소년 중에서 자살사건과 같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신종플루는 아직 내성이 없으나 내성바이러스의 출현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다행히도 또 다른 치료제인 ‘릴렌자’는 아직 신종플루에 대해 효과적이다. 따라서 향후 각국에서는 당분간 타미플루 외에 릴렌자의 備蓄(비축)이 상대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플루 발생과 관련해 정부의 대책이 효과적이었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늑장대응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도 신종플루의 발생시점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이야말로 우선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지난 4월 27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인플루엔자백신학회에서 필자를 비롯해 당시 모인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신종플루 소식을 접했다. 변화무쌍한 유전자 변이를 고려할 때 신종플루의 발생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용서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백신의 조기생산과 비축에 관한 사회적인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대해 논의는 지속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백신이나 치료제 비축의 비용편익분석은 보험료 산정과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우리가 매년 자동차 보험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보험료 효과를 보기 위해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고를 대비해 매년 보험료를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지 않아 보험금을 탈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고민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일단 유사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비축에는 장기간의 시간과 엄청난 國庫(국고)가 요구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확산되지 않을 경우, 국민으로부터의 필요 이상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에 직면한다.
역설적이기는 하나 국가가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일 것이다. 즉 국가가 국민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백신과 치료제를 비축하고,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이 확산되지 않아 그동안 소요된 비용이 모두 損費(손비) 처리되는 것이다. 국가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는 기회다
신종플루 대책과 관련해 과학적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망률 60%를 상회할 정도로 毒性(독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AI의 높은 사망률은 바이러스 자체의 독성보다는 오히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체의 과민반응에 의한 것이다.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관장하는 호르몬인 사이토카인과 면역 세포들이 과다하게 반응함으로써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마디로 강한 면역 체계 때문에 사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체가 새로운 침입자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나타내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를 죽일 뿐 아니라 인체에까지 심한 손상을 초래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진행되는 신종플루 대책은 국민보호를 넘어 막대한 국고손실을 가져올 것이며, 과민하게 반응하는 국민은 사재기 등 사회 경제의 불안을 폭발시킬 것이다. 이런 과민반응이야말로 이 전염균이 우리를 유도하는 술책임을 간파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정부의 대책이 항상 死後藥房門(사후약방문)이라고 비난받을 정도로 단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건 발생 때마다 국민의 불만을 조기에 잠재우기 위한 단기처방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의 公敵(공적) 인플루엔자의 정체를 다시 들여다보자. 인플루엔자는 유전자의 특성상 현재의 H1N1형 ‘신종플루’ 외에도 또 다른 신종플루로 발전할 것이다. 이미 지난 10년간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와 H9N2형, H7N7형 조류바이러스, 그리고 최근 H1N1형 신종플루 발생을 미뤄볼 때 예측 가능한 일이다.
플루의 확산속도는 지구촌에서 사람의 이동속도가 증가함에 비례해 증가할 것이다. 아니 플루의 잠복기보다 우리의 세계여행 속도가 빠르며, 이런 인류의 문명발전을 되돌려 놓지 않는 이상 팬데믹의 확산은 지속될 것이다.
백신 비축과 항바이러스제의 내성 문제는 내년, 내후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쳇바퀴를 계속할 것인가? 이제 국가는 초동 대응의 차원을 넘어 최소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장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전문가 집단을 모으고 구성해 효과적인 백신, 차세대 치료제 후보를 발굴하고, R&D 연구기반을 구축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이제는 백신을 구걸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나라에 공급하고 세계적 이슈를 선도하는 생명공학 허브국가로 발돋움할 기회로 역이용해야 할 때가 왔다.⊙
WHO는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막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더 이상 환자 집계가 무의미함을 시사했다. 신종플루의 감염 속도는 역대 최고 속도이며, 지난 한 세기 동안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발생했던 아시아독감(1957)과 홍콩독감(1968) 때보다 더 빠른 확산을 보이고 있다.
아마 올해 연말까지 전 세계 신종플루 감염환자는 수십만 명에 이르며 사망자는 수천 명, 아니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초기 아메리카 대륙에 국한됐던 사망자가 호주, 아시아 및 유럽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이와 관련, 모든 나라는 신종플루의 예방백신과 치료제의 비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신종플루에 의한 전체 사망률(사망자/감염환자 백분율)은 각국에 따라 편차를 보이고 있으나 0.2~1% 수준으로 일반 계절성 독감의 0.05%보다 8~10배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주목할 사항은 계절형 독감은 주로 호흡기감염 증세를 나타내는 데 비해 신종플루는 폐를 포함하는 호흡기를 감염해 重症(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사망자 중 대부분이 폐렴과의 합병증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1918년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되고, 감염자 중 2%가 사망해 4000만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스페인독감의 경우도 비슷한 합병증에 의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난 세기 동안 70만명과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독감과 아시아독감의 경우, 사망률이 0.1% 수준이었다. 해외 전문기관이 예측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신종플루에 의해 전 인류의 30%가 감염된다면 사망자 수는 홍콩독감 및 아시아독감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감염자 대비 사망자가 극히 적은 약 0.2% 수준을 보이는 것에 대해 혹자는 우리의 主食(주식)인 김치의 효과로 해석하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호흡기성 사망자에 대한 사망요인 분석이 초기에 진행되지 않았고, 다른 호흡기성 질병과의 2차 감염 여부를 판단할 시설과 인력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WHO가 경보 수위를 계속 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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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 스페인독감이 대유행할 당시, 미국 캔자스주의 한 응급병원에 환자들이 줄지어 누워 있다. |
사스는 현재 사그라져 아직까지 재발하지 않았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로는 첫째, 인체감염은 확산되나 점차 병원성이 감소돼 사망률이 낮은 바이러스로 遷移(천이)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매년 겨울에 유행하는 유행성(계절형) 독감으로 정착할 것이다.
둘째, 현재의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면서 병원성이 증대돼 전파력과 사망률이 높은 팬데믹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난 세기 우리가 경험한 홍콩독감, 아시아독감의 재판, 더 나아가 이보다 더 큰 팬데믹을 예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가능성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
신종플루를 1918년도에 대유행했던 스페인독감과 비교하면 그 위력은 매우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O가 경종의 수위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연초까지 전 세계를 휩쓸던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를 벌써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인체 감염을 유발했던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와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는 원래 조류만을 감염하는 바이러스로 알려져 왔으나 1997년 홍콩에서 발병해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지속적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해 약 400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은 60% 이상으로 매우 높지만, 이는 닭과 같은 조류로부터의 직접적 감염에 의한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만약 H5N1형 바이러스와 신종플루(H1N1)가 서로 섞일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극단적인 경우 신종플루처럼 인체감염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AI처럼 감염자 2명 중 한 명이 사망하는 바이러스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90년 전 스페인독감 사례가 자꾸 떠오른다. 이는 독감바이러스 유전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독감바이러스는 흥미롭게도 유전자가 총 8개의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두 개의 다른 독감바이러스가 한 세포에 동시에 감염할 경우, 감염된 세포 내에서 서로 유전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천문학적인 변종 바이러스 출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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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가 신종플루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최근 한 번만 맞아도 면역 효과를 낼 수 있는 백신 생산을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
실제로 신종플루는 타입으로 분류할 때 新種(신종)이라기보다는 구형에 가까운 바이러스다. H와 N은 바이러스 표면 항원 단백질로서 타입에 따라 여러 개의 亞型(아형), 즉 H의 경우 9종(H1~H9), N의 경우 16종(N1~N16)으로 분류한다.
발견된 순서로 숫자를 붙이기 때문에 H1N1 형은 가장 먼저 발견한 아형에 속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1930년 초에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는 H1N1형, 1957년 아시아독감은 H2N2형, 1968년 홍콩독감은 H3N2형이고, 1997년부터 인체감염을 시작한 조류인플루엔자가 H5N1형이라는 식이다. 이보다 앞선 1918년 스페인독감도 H1N1형이다.
신종플루의 H와 N은 2개의 다른 바이러스 표면항원(H:Hemagglutinin, N:Neuraminidase)을 의미한다. H는 바이러스가 세포감염 초기에 세포 표면에 부착되기 위해 세포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에 부착해 초기감염을 도와주는 단백질이다.<그림 1>
일단 세포 내로 침입한 바이러스는 세포 내에서 자기 유전자 복제를 진행하며, 이후 이 유전자가 바이러스 형태로 조립돼 감염된 세포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때 잘 떨어져야만 다른 세포로의 감염을 확장할 수 있다.
N단백질, 즉 뉴라미니다제 효소가 작용하여 감염된 세포로부터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떨어지는 것을 도와준다. 예컨대 방문의 손잡이를 파괴함으로써 문을 부수고 나오는 격이다. 즉 H와 N은 감염 초기에 세포 부착, 말기에 세포로부터의 탈피라는 상이한 작용을 거듭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증식하게 된다.
만일 가위 역할을 하는 N 뉴라미니다제를 고장 내는 물질이 있다면 효과적인 감염치료제가 될 수 있다. 독감바이러스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신종플루의 경우, 바이러스형 표면, 즉 껍질만 보면 구형에 속하나 유전자 조성으로 보면 매우 독특한 新種(신종)이다. 즉 신종플루는 8개의 유전자 조각이 3종의 다른 바이러스의 조합(인체감염바이러스, 조류바이러스 및 돼지감염 바이러스)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돼지바이러스 유전자는 2개의 다른 돼지로부터 유래됨을 고려할 때 4개의 바이러스가 서로 섞인 셈이다.<그림 2>
새로운 면역증강제 개발
1998년 北美(북미) 대륙에서 발생한 돼지독감 바이러스에다가 1992년 아시아·유럽에서 유행했던 돼지바이러스의 유전자와의 추가적인 조합이 일어난 것이다. WHO가 초기에 돼지독감(swine flu)으로 명명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18년 H1N1형 스페인독감도 조류로부터 유래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며, 사람에게 적응해 인체독감 바이러스가 된 것임을 상기해 볼 때, 바이러스의 유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현재 사람을 감염하는 모든 감염균과 바이러스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유래(Zoonosis: 人獸(인수)공통 감염증)됐기 때문이다.
신종플루를 포함한 팬데믹에 의한 인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예방백신과 치료제의 비축을 들 수 있다. 예방백신의 경우 대부분 수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이로부터 백신용 바이러스를 생산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신종플루의 경우 일반적인 유행성 독감백신에 비해 수정란에서 생산할 때 생산성이 매우 떨어진다. 아울러 신종플루는 비교적 면역성이 낮아 1회 접종으로는 충분한 예방력을 유도하지 못해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 세계 생산시설을 모두 가동해도 전 인류의 극히 일부만 접종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는 기존 백신의 효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면역증강제(adjuvant)의 사용이다. 즉 이를 사용해 기존 백신 접종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동일한 예방효과를 낸다는 개념이다.
정부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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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6일 인천시내 한 대형 할인마트에서 여직원들이 카트를 소독하고 있다. |
예방백신을 사용하는 선제적 대응 외에도 타미플루와 항바이러스 치료제 사용도 필수적이다. 타미플루는 <그림 1>에서 보듯 가위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항원 뉴라미니다제의 沮害劑(저해제)다. 그러나 H1N1형 유행성 독감바이러스의 98%가 타미플루에 耐性(내성)을 나타낸다는 점이 문제다.
일본에서는 타미플루를 복용한 청소년 중에서 자살사건과 같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신종플루는 아직 내성이 없으나 내성바이러스의 출현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다행히도 또 다른 치료제인 ‘릴렌자’는 아직 신종플루에 대해 효과적이다. 따라서 향후 각국에서는 당분간 타미플루 외에 릴렌자의 備蓄(비축)이 상대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플루 발생과 관련해 정부의 대책이 효과적이었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늑장대응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도 신종플루의 발생시점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이야말로 우선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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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플루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이 시작된 지난 9월 7일 서울 구로 고대병원 진료실에서 임상시험 참여자가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
그러나 백신의 조기생산과 비축에 관한 사회적인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대해 논의는 지속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백신이나 치료제 비축의 비용편익분석은 보험료 산정과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우리가 매년 자동차 보험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보험료 효과를 보기 위해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고를 대비해 매년 보험료를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지 않아 보험금을 탈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고민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일단 유사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비축에는 장기간의 시간과 엄청난 國庫(국고)가 요구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확산되지 않을 경우, 국민으로부터의 필요 이상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에 직면한다.
역설적이기는 하나 국가가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일 것이다. 즉 국가가 국민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백신과 치료제를 비축하고,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이 확산되지 않아 그동안 소요된 비용이 모두 損費(손비) 처리되는 것이다. 국가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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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점약국으로 지정된 대전의 한 약국에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쌓여 있다. |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관장하는 호르몬인 사이토카인과 면역 세포들이 과다하게 반응함으로써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마디로 강한 면역 체계 때문에 사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체가 새로운 침입자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나타내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를 죽일 뿐 아니라 인체에까지 심한 손상을 초래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진행되는 신종플루 대책은 국민보호를 넘어 막대한 국고손실을 가져올 것이며, 과민하게 반응하는 국민은 사재기 등 사회 경제의 불안을 폭발시킬 것이다. 이런 과민반응이야말로 이 전염균이 우리를 유도하는 술책임을 간파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정부의 대책이 항상 死後藥房門(사후약방문)이라고 비난받을 정도로 단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건 발생 때마다 국민의 불만을 조기에 잠재우기 위한 단기처방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의 公敵(공적) 인플루엔자의 정체를 다시 들여다보자. 인플루엔자는 유전자의 특성상 현재의 H1N1형 ‘신종플루’ 외에도 또 다른 신종플루로 발전할 것이다. 이미 지난 10년간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와 H9N2형, H7N7형 조류바이러스, 그리고 최근 H1N1형 신종플루 발생을 미뤄볼 때 예측 가능한 일이다.
플루의 확산속도는 지구촌에서 사람의 이동속도가 증가함에 비례해 증가할 것이다. 아니 플루의 잠복기보다 우리의 세계여행 속도가 빠르며, 이런 인류의 문명발전을 되돌려 놓지 않는 이상 팬데믹의 확산은 지속될 것이다.
백신 비축과 항바이러스제의 내성 문제는 내년, 내후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쳇바퀴를 계속할 것인가? 이제 국가는 초동 대응의 차원을 넘어 최소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장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전문가 집단을 모으고 구성해 효과적인 백신, 차세대 치료제 후보를 발굴하고, R&D 연구기반을 구축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이제는 백신을 구걸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나라에 공급하고 세계적 이슈를 선도하는 생명공학 허브국가로 발돋움할 기회로 역이용해야 할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