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뿐만 아니라 우주센터, 명품 아웃렛, APEC
주민들이 모두 반대, 타 지역이 어부지리. 국회의원 3명 모두 야당, 도지사는 무소속…
“4·3 사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제주도의 恨이에요. 이런 땅에 다시 군사기지를 세우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육지의 군대가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아 놓고 다시 그 땅에 군사기지를 설치해서 국가 이익을 도모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강우일 신부)
⊙ 토착 좌파 환경단체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일부 목사와 야당의 합작품
⊙ “제주 특유의 폐쇄성과 ‘괸당’ 의식이 국책 사업 무력화와 제주 발전 무력화로 이어져”
주민들이 모두 반대, 타 지역이 어부지리. 국회의원 3명 모두 야당, 도지사는 무소속…
“4·3 사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제주도의 恨이에요. 이런 땅에 다시 군사기지를 세우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육지의 군대가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아 놓고 다시 그 땅에 군사기지를 설치해서 국가 이익을 도모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강우일 신부)
⊙ 토착 좌파 환경단체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일부 목사와 야당의 합작품
⊙ “제주 특유의 폐쇄성과 ‘괸당’ 의식이 국책 사업 무력화와 제주 발전 무력화로 이어져”
-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소속 회원들이 2009년 5월 14일 제주시 삼도2동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명요청운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金泰煥(김태환·67)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2주일 전인 지난 8월 초. 주민소환 투표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잘 모르겠다”였다. 공항에서 내려 만난 택시기사부터, 제주도청 공무원, 대학교 전 총장·교수, 지역 언론인, 일반 시민, 제주도 국회의원 등은 한결같이 “왜 이 지경까지 갔는지 정말로 답답하다”고 했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주민소환운동본부 쪽 인사들은 “김태환 지사의 독선과 전횡 때문에 주민소환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한 그룹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이른바 ‘뭍사람’들이다. 이들은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은 제주도민들의 폐쇄성에서 비롯됐다”며 “중앙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과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6일 제주도에서는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열렸다. 투표 결과, 최종 투표율은 11%(제주시 10.5%, 서귀포시 12.2%). 현행 주민소환법상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 유효투표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소환이 확정된다. 하지만 투표자가 3분의 1 미만일 경우, 개표조차 하지 않는다.
개표조차 해보지 못한 투표를 위해 제주도민들은 지방비 19억8000만원을 썼다. 김 지사는 투표가 열리기 전 25일 동안 도지사직 직무정지를 당했다. 제주도 경총(경영자총협회) K씨는 “주민소환 투표로 인한 실제 손실은 선거비용 이상일 것”이라며 “투표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8월 26일 주민소환 투표가 무산된 후, 김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투표율이 11%에 그친 건 주민소환 청구에 명분과 실리가 없었다 것을 말한다”며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일부 주민들과 주민소환운동본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주민소환 투표는 불법선거였다. 김태환 지사에 대한 심판은 계속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오마이뉴스> 8월 28일 인터넷판은 강정마을 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낸다. 독한 놈이 이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으로 촉발
제주도에서 주민소환 투표를 하게 된 건,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들어설 제주 해군기지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金泳三(김영삼) 대통령 시절 결정됐다. 해군은 1996년 4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2008년까지 제주에 해군기지를 확보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제주도민들이 반발했다. 관광지인 제주도에 군사시설이 들어오는 게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몇 년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2년 정부는 ‘民軍(민군) 복합형 관광美港(미항)’이란 이름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공식 발표했다. 해군기지 외에 15만t급 크루즈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해양공원형 군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마저도 건설예정지 주민들과 지역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초 해군기지의 완공기한 1년을 남겨둔 지난 2007년 5월, 김태환 지사는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 5년여를 끌어오던 제주 해군기지 사업을 수용했다. 당시 제주도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만 19세 이상 제주도민 1500명 가운데 60.4%(1차), 54.3%(2차)가 찬성했다. 반대는 각각 31.1%, 38.2%였다.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였던 제주 위미, 화순, 강정마을 주민들 1000명을 대상으로도 두 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 찬성 비율이 높게 나온 곳은 강정마을이 속한 서귀포시 대청동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찬성 비율이 55.1%(1차), 56%(2차)였고 반대는 각각 36%와 38.2%였다. 제주도 金大勳(김대훈) 자치행정과장의 얘기다.
“원래 해군기지 건설 후보 1순위는 화순이었는데 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대상지역을 위미로 옮겼어요. 여기서도 주민들이 반대해 마지막 대안으로 꼽힌 곳이 강정마을입니다. 2007년 4월 마을 자체적으로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약 60%의 주민이 찬성, 해군과 제주도가 강정마을을 건설 예정지로 정하고 건설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끼어들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어요.”
갈등만 부추긴 MBC PD수첩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은 서귀포시에서 서쪽으로 약 8㎞, 중문 컨벤션센터에서 동쪽으로 4㎞ 떨어져 있는 인구 약 1900명의 어촌 마을이다. 강정마을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尹太政(윤태정·54) 前(전) 마을회장은 마을회장 당시 해군기지 건설을 주도했다.
그는 현재 강정 해군기지 추진위원장이다. 윤 위원장은 “月刊朝鮮도 MBC PD수첩처럼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들 얘기는 한마디도 안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MBC PD수첩은 2009년 5월 5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윤태정 위원장의 말이다.
“4월 초에 PD수첩에서 연락이 와서는 ‘주민들의 갈등해소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이 광우병 파동 일으킨 사람들인데 무슨 갈등을 치유한다는 거냐’고 하자 ‘공정하게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약 두 시간 동안 취재에 응해 줬더니만 참, 이런 천하의 나쁜 놈들….”
―찬성하는 분들에게 불리하게 방송이 나갔나요.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찬성하는 우리 마을 주민들 얘기는 한마디도 안 나갔소. 전부 반대하는 주민들 얘기, 땅이 수용되는 주민이 ‘쇼’하면서 우는 장면만 나갑디다. 그걸 보면, 찬성하는 주민들은 매국노고, 천하의 나쁜 놈으로 알겠더라고.”
윤 위원장은 “환경단체와 민노당 쪽 사람들, MBC 같은 언론들이 끼어들어서 마을 전체가 두 동강 나고, 제주도 전체가 어려움에 처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강정마을 출신인 이형두 전 서귀포시장이 처음으로 ‘우리가 해군기지를 유치해서 강정마을을 발전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을회장으로 있을 때,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81명의 동의를 얻었어요. 저희 마을 향약에 ‘주민 51명 이상이 모여서 마을총회를 열면 마을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요. 마을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 의견을 냈고, 도청에서 여론조사를 두 번 했는데 모두 찬성 의견이 높게 나왔습니다. 모든 게 결정되고 나니까, 손 놓고 있던 일부 주민들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환경단체들이 극렬하게 반대하기 시작하더군요. 환경단체들은 아예 진을 치고 마을 주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어떤 단체들이 마을에 들어온 겁니까.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주민자치연대 등 이름도 못 들어 본 단체들, 민노당, 천주교 신부, 목사 등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죄다 왔어요. 이들은 마을회관에 반대운동본부를 차려 놓고, 마을 주민들에게 띠 두르고 시위하는 법, 반대논리 등을 가르쳤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아이들 못 보내게 막아”
―반대논리가 뭐였습니까.
“‘환경이 파괴된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다’ 등등의 논리로 무조건 해군기지 건설은 안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더니 ‘한 번 기지가 들어서면 계속 다른 기지가 들어서서 결국 모두 쫓겨난다’는 식으로 주민들을 선동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측량하러 오면 ‘해군기지 뒤에 공군 비행장을 지으려고 왔다’고 선동하더니, 나중에는 ‘결국 항공모함이 들어와서 일본처럼 미군들이 마을 여자들을 강간할 거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윤태정 위원장에 따르면, 해군기지 반대운동본부 측은 2007년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이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국방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강정초등학교는 매년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한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반대운동본부 측에서 ‘평화 의식을 해치고, 폭력적인 사상에 물든다’며 참가를 막았다고 한다. 강정초등학교 교사 P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려고 학생들이 학교에 모이자 반대운동본부 측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등교하는 것도 막았어요.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걸 막는 게 말이 됩니까? ‘군 행사에 참여하면 나쁜 사상에 물든다’니 저 사람들은 남의 나라 사람들인가요?”
다시 윤태정 위원장과의 얘기.
―처음 마을회관에서 총회를 할 때는 반대 주민들이 왜 가만히 있었죠?
“회장인 저와 몇몇 마을 어른들이 ‘해군기지 유치하겠다’고 했을 때 ‘설마 가능하겠어?’ 한 거죠. 마을 총회 방을 붙이고 알려도 ‘니들이 해 봐야 해군기지 유치 못한다’ 이런 반응이었어요. 저희 마을은 해군기지 건설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별로 언급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더했죠. ‘지금까지 얘기 나왔던 위미나 화순에 건설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주민투표에 이어 제주도 전체 여론조사, 지역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더 높게 나오니까 깜짝 놀란 겁니다.”
―강정마을에 있는 해녀들은 찬성을 했더군요.
“저희 마을에 해녀들이 100여 명 있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해녀들이 가장 피해를 입어요. 인근 위미 지역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지 못한 것도 해녀들이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 해녀들은 ‘죽을 때까지 물질할 것도 아니고 마을 발전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찬성했습니다. 해군에서 보상비만 약 70억원을 썼습니다.”
주민들 贊反으로 갈려 갈등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보상비가 적어서 반대하는 건 아닙니까.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보상비를 받는 주민들은 일부밖에 없어요. 지금 반대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보상비와 관계 없는 분들이에요. 물론 자기 집이 수용되는 주민들 가운데 보상비에 불만이 있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 주민은 ‘그냥 싫다’는 겁니다. 정부나 제주도청에서 ‘차라리 보상비 더 달라고 하면 해결하기 편하겠다’고 해요. 무조건 우리 마을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된다는 겁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500명 때문에 도지사 소환운동 투표까지 하게 된 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쎄요. 주위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이 서명운동 하니까 그냥 서명해 줬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도지사가 더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면 이렇게까지 안됐을지 모르지.”
강정 마을회관 정면에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김태환 도지사 소환’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삭발한 주민들, 마실 나온 듯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노인들이 한데 섞여 마을회관은 어수선했다. 회관 사무실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회 회원들이 서류작성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 한쪽에서 강동균 현 강정마을회장을 만났다.
―지난 2007년 4월 강정마을 주민들이 마을 총회를 열어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반대를 한 이유가 뭡니까.
“마을 임시총회가 잘못된 겁니다. 당시 마을회장 등 일부 주민들이 규약을 어기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총회를 열었어요. 마을에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마다 임시총회를 열어요. 임시총회를 열려면 총회일과 공고일을 뺀 1주일의 기간이 필요한데 前(전) 마을회장은 3일밖에 공고를 하지 않았어요. 마을 방송도 단 한 차례 했고요. 그건 마을 향약 위반입니다.”
―당시 마을총회 참석 인원수가 부족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 절반 정도가 총회를 열었다는 걸 몰랐어요. 게다가 마을총회 안건이 ‘해군기지 유치’ 건이 아닌 ‘해군기지 관련’ 건이었어요. 공고는 그렇게 해 놓고 실제 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 건으로 상정을 한 겁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해놓고, 자기들끼리 만장일치로 박수치고 기자회견해서 유치신청을 한 겁니다.”
“냉전 종식시킨 평화의 섬이라 군사시설은 안 된다”
―마을 주민들이 다시 투표를 했다고 하더군요.
“2007년 8월 10일에 주민들이 모여 윤태정 전 마을회장을 해임했고, 8월 20일에 마을 주민 752명이 참석해서 해군기지 유치에 대해 다시 투표를 했습니다. 참석자의 94%인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했어요. 그런데 도청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주관한 여론조사만을 근거로 마을 주민들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현재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을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놓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강동균 現(현) 마을회장 측은 윤태정 前(전) 마을회장 측이 해군기지 유치건의를 한 건 잘못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마을 규약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태정 마을회장 측은 모두 7차례 회의를 거쳐 마을 주민들의 합의를 얻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시 강동균 현 마을회장과 나눈 얘기다.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유치 찬성 주민들이 제대로 주민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겁니까.
“시작도 문제였고, 더 큰 문제는 해군기지 건설 논의가 시작된 1993년부터 2007년까지 강정마을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화순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고 생각했죠. 거기에 군항이 있거든요. 그런데 화순 주민들이 반대하고 위미에서 해녀들이 반대하자, 느닷없이 우리 마을이 후보지가 된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 반대하니까 강정도 안된다는 건가요.
“제주도는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때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게 말이 됩니까? 제주도가 어떤 섬이에요. 고르바초프가 제주도에 와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동서냉전을 와해시키고 평화를 지킨 섬입니다. 게다가 우리 主敵(주적)은 북한인데, 제주도와 북한이 얼마나 멉니까? 주적과 싸우려면 뭍에다 기지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05년 1월 27일 노무현 前(전) 대통령은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선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3無(무) 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 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강우일 주교: “4·3 사태는 인종말살 사건”
다시 강 회장과 나눈 얘기다.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도시사가 주민소환 투표까지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태환 지사는 당연히 주민소환이 돼야 할 사람이에요. 도지사가 돼서 모든 현안을 밀어붙이기만 하지 협의를 하지 않아요. 저희가 이 문제 때문에 국회에도 십수 차례 다녔어요. 지난 국회 때는 민노당 출신 의원들이 많아서 저희를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은 도와주는 분들이 천주교 신부님들밖에 없어요.”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천주교 중앙 성당에서 姜禹一(강우일·64) 주교와 고병수 보좌신부를 만났다. 강 주교는 김 지사 주민소환 청구 서명이 한창이던 지난 5월 14일 천주교 제주교구 소속 사제들에게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호소’라는 글을 보냈다.
그는 이 글에서 “제주도민을 위해서나 국민 전체를 위해서라도 ‘세계 평화의 섬’ 제주 땅에 건설하려는 해군기지는 동북아 긴장을 새롭게 불러오는 등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일 뿐, 교회의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의 서신 내용이 알려지면서 제주는 더욱 들끓었다.
―강 주교께서는 일관되게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셨습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입니까.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에 들어와 유일하게 ‘제노사이드’(인종 말살)를 겪은 지역입니다. 제주도민들이 겪은 4·3 사태는 좌우 대립에서 나온 단순 학살사건이 아니에요. 당시 20만명이던 제주도에서 4·3 사태 때문에 죽은 사람이 무려 3만명이에요. 이 가운데 빨치산 활동을 하면서 무장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2000명이 채 안됩니다. 제주도의 집집마다 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지역에 다시 군사시설을 짓는다는 걸 종교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어요.”
―노무현 정권 시절에 4·3 사태에 대해 재평가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국제적으로 4·3 사태 같은 ‘제노사이드’가 일어났으면 戰犯(전범)재판으로 하는 게 관례입니다. 일본, 독일에서도 전범재판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4·3 사태에 대해서는 60년 동안 겨우 노무현 정부 시절 보고서 달랑 하나 만들고, 기념관 세운 겁니다. 이건 대한민국 역사의 치욕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민주국가로 발전하고 싶으면, 보고서로 끝날 게 아니라 성찰과 반성, 더 나아가 국가 원수 차원에서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도대체 왜 주민소환 투표를 했을까?
―과거의 아픔과 국가 이익을 위한 기지 건설은 구분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4·3 사태는 단지 과거의 아픔이 아닙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제주도의 恨(한)이에요. 이런 땅에 다시 군사기지를 세우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육지의 군대가 수많은 사람을 짓밟아 놓고 다시 그 땅에 군사기지를 설치해서 국가 이익을 도모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역사인식이 결여됐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군대를 둘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북한의 위험이 있는 이상 최소한의 군비를 정당방위 차원에서 확보하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것까지 교회가 반대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제주도에 새로운 해군기지를 짓는 건 과잉 군비확대라고 봅니다.”
―해군기지 건설 문제 때문에 도지사 소환투표까지 가게 됐습니다. 불필요한 행정공백이 생기고 비용이 나가는 것 아닙니까.
“주민소환 투표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이런 파국까지 가는 걸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서 안타깝습니다.”
김태환 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주장하는 논리는 앞서 만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강우일 주교와 고병수 신부의 주장과 일치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김태환 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신청하자 김 지사는 제주도청 홍보팀장을 통해 “주민소환과 관련해서는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고, 주민소환운동본부를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며칠 동안 제주도에서 취재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필자는 迷宮(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제주도 행정을 책임지는 도지사를 소환투표하려는 분명한 이유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소환의 직접적인 이유는 해군기지 건설이지만, 누구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 하나 때문에 주민소환 투표까지 가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제주도민들의 ‘괸당’ 의식이 작동
취재기간 동안 필자가 제주도에서 만난 외지인들은 주민소환에 대해 냉소적이며 비판적이었다. 서울 출신인 제주대 A교수는 “제주도 사람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용어가 제주 사투리로 친척을 말하는 ‘괸당’”이라며 “이번 주민소환 투표는 제주도민들의 ‘괸당’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신문을 볼 때 부음란부터 봅니다. 만약 어느 집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면 엄청나게 비난을 당합니다. 한집 건너면 친척이고 두 집 건너면 친구예요. 이 상황에서 강정마을 사람들이 주민소환 서명을 받으러 다닐 때,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은 서명을 해 주더군요. 제 주위 교수들 가운데 ‘아는 사람들이 서명해 달라고 해서 해줬다’는 분들이 여럿 있어요. 김태환 지사도 문제가 많았어요. 이 양반이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괸당’ 의식 때문에 엉거주춤한 거예요. 김 지사 주변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실제 주민소환 투표에서 투표율이 저조한 건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근본적으로는 주민소환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것도 괸당 의식이 작용한 거예요. 처음 주민소환운동본부에서 예상 투표인원을 약 10만명 이상으로 잡았어요. 왜냐면 주민소환 청구 서명인원이 약 5만명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꾸로 김태환 지사의 괸당들이 움직이니까, 주민들 마음이 약해진 거죠. ‘우리 괸당이 투표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내가 투표하면 곤란해지겠지’라는 마음이에요. 결국 뚜껑을 열어 보니 서명 인원보다 적은 약 4만명이 투표를 한 겁니다.”
제주도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B씨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처음 제주도에 박물관을 건설하겠다고 왔을 때 제주도 생활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외지 사람들이 제주도에 와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실하게 깨닫게 됐어요. 제주도 사람들의 ‘뭍사람’에 대한 배타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이들의 배타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중요한 건 제주도민들이 ‘우리가 대한민국의 일원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해요. 제주도민들이 항상 얘기하는 게 ‘역사적으로 중앙에서 제주도를 얼마나 수탈했는지 아느냐’ 하는 겁니다. 제주도민들의 역사의식은 문제가 있어요.”
우주센터·APEC·아웃렛 유치 모두 반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이들이 말하는 과거란 고려, 조선 때로 거슬러 갑니다. 이때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보내 제주도 사람들을 착취했다는 거예요. 고려 시절 몽골 침략 때, 몽골인들이 제주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고려, 조선 때 수탈 안 당한 지역이 어디 있습니까? 몽골 침략 때는 고려 왕들이 피란을 간 강화도를 제외하고 全(전) 국토가 쑥대밭이 됐어요. 그런데 제주도민들은 자기들만 착취당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착취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주도가 가장 많이 수탈당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계급사회였던 과거의 ‘양반-상민’이라는 계급구조를 비판해야지, 어떻게 중앙, 뭍에 의해 수탈당했다고 합니까? 이건 자신들이 ‘고려-조선-대한민국’의 일원이 아니라, ‘탐라국-제주국’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린 겁니다.”
―제주도에서 외지인들이 사업하기가 무척 어렵겠군요.
“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도 사업하기 어려워요. 해군기지 건설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제주도에 진출하려다 뜻을 접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얼마 전 전 국민의 눈길이 쏠렸던 나로호 발사 기지인 전남 고흥의 우주센터는 원래 제주도에 건설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주도 환경단체 등 도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전남이 재빨리 유치에 성공했다. 제주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우주센터 건립을 반대하던 환경단체들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도 대거 뛰어들었다고 한다.
우주센터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APEC 유치 건도 제주도민들과 제주 정치인들이 엉거주춤 하는 동안 부산에 내주고 말았다. 月刊朝鮮 2006년 6월호 기사 ‘환상만 가득한 섬 제주’의 일부다.
<제주도는 도약의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제주지역의 한 방송국 보도국 관계자는 “제주는 개발을 하려고 하면 언제나 반대에 부딪힌다”고 했다.
“제주를 체계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존재해 왔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좋은 개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한라산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카를 설치하려 했고, 우주센터도 유치하려 했습니다. 모두 환경단체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습니다.”>
다시 B씨의 얘기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명품 대형 아웃렛(할인매장)도 원래 제주도에 들어설 계획이었어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제주도나 아웃렛 회사 모두 윈윈하는 아이템이었죠. 그러나 제주시 상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유치에 실패했어요. 상인들의 괸당이 모두 제주도민인데, 아웃렛이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대형 아웃렛을 건설하면 환경파괴에 교통이 불편해질 거라고 환경단체들이 반대했습니다.”
“육지 사람은 빼앗아 가는 사람”
―제주도에 아웃렛이나 백화점이 없었나요.
“세계적인 관광지라고 선전하는 제주도에 지금 유명 백화점 한 곳이 없습니다. 서울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와서 쇼핑을 못해요.”
月刊朝鮮 2006년 6월 ‘환상만 가득한 섬, 제주’ 기사에 따르면 ‘제주도연구회’ 회장을 지낸 제주대 사회학과 申幸澈(신행철·69) 명예교수는 제주도의 배타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제주의 배타성은 얼마 없는 것조차 빼앗기지 않으려는 배타성, 피해의식에 기인한 배타성입니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육지 사람은 나쁜 사람, 육지 사람은 사기꾼’이란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제주 사람들에게 외부 사람들은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몽골의 침략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제주로 내려온 관리들까지 대부분 악랄한 수탈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섬은 자원이 제약된 곳입니다. 제주도는 화산토양이라 토지 생산성도 떨어집니다. 자원이 제약적인 사회에서 외부 사람들은 전체 자원을 나눠 먹는 사람, 빼앗아 먹는 사람으로 비칩니다.”
제주大 前(전) 총장 K씨는 “제주도 사람들은 아직 농경사회 마인드를 지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는 현재 1차산업 비중이 전국 평균(3%)보다 훨씬 높은 14%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아직도 농경사회 마인드로 살아갑니다. ‘괸당’ 의식과 외지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이런 성향이 제주발전의 무력화로 이어지는 겁니다.”
제주도의 각종 개발사업이 실패한 주요한 배후에는 이 지역 환경단체들이 있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참여환경연대, 곶자왈환경연대 등 이들 환경단체는 중앙과 연결되지 않은 토종 환경단체가 대부분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제주산업정보대 교양학부 K 교수는 “아나키스트 전통이 강한 제주지역 특성이 제주도의 괸당 의식과 맞물려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며 이렇게 설명했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불러서 오해가 많지만, 아나키즘은 부당한 국가권력을 부정할 뿐, 현실을 외면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자치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게 정확합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을 부정했어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 평등과 상호협조의 자치조합만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기를 바랐죠.
아나키즘은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방식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사회주의가 들어왔지만 제주도 전체를 지배한 이념은 아나키즘이었어요.”
뿌리 깊은 아나키즘과 ‘괸당’ 의식이 결합
1920년대 제주도에 사회주의 사상을 처음 전파한 사람은 金明植(김명식)이다. 김명식은 초기 동아일보 主筆(주필) 출신으로 제주도에서는 ‘朝天(조천) 김씨’라 불리는 명가의 후손이었다. 1915년 그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과에 유학, 이곳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배웠다. 1920년 귀국한 그는 사회혁명당 창립대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된다.
김명식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배운 후배 한 명이 아나키스트인 高順欽(고순흠)이다. 고씨는 나중에 在日(재일)민단 제2대 단장을 지냈다. 그의 영향으로 1929년 제주도에는 아나키즘 열풍이 번졌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高秉禧(고병희)가 당시 동아일보에 ‘제주도는 공산주의 사회건설보다 아나키즘 사회를 건설하는 게 어느 편으로 보든지 좋다’고 말한 발언이 실릴 정도였다.(이영권 <새로 쓰는 제주사> 참조)
다시 K 교수의 설명이다.
“고병희 등 아나키스트들은 1929년 ‘우리계’라는 아나키즘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인층이 주도했으나, 제주 특유의 공동체 전통 때문에 광범위한 단체로 확산됐어요. 이들은 매달 3원씩 3년간 식산은행에 곗돈을 예치하면서 소비조합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향후 소비조합뿐만 아니라 교통기관, 생산분야까지 조합 형태로 장악하려는 계획이었죠.”
―아나키스트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까.
“이들은 아나키즘과 제주도 특유의 괸당 의식이 결합해 지배자인 일본을 배척하고 제주도민 자치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리계’의 파괴력을 눈치챈 일제가 65명을 검거하고 우리계를 파괴하면서 제주도 아나키즘 운동은 유야무야됐지만 그 전통은 여전히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시민사회단체들도 아나키즘 전통 때문에 중앙과 관련없는 독립 단체가 많은 겁니까.
“맞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중앙의 권력도 싫고, 중앙과 연계된 사회단체들도 싫어합니다. 주민소환 운동을 주도한 단체들은 1980년대 운동권이 세력을 떨칠 때는 없던 단체였어요. 단체 핵심멤버들이 대학생일 때는 전대협, 한총련 등 전국 단체 산하에서 활동하다, 30~40대가 되면서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단체를 만든 겁니다. 이게 제주도 사람 특유의 성향입니다.”
뭐든지 반대만…
―제주도가 지난 2006년 특별자치도가 됐습니다. 역사적인 전통과 제주도민들의 성향이 어떻든 국제자유도시를 꿈꾸는 제주도가 더 이상 스스로가 쳐둔 한계에 갇히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제주도민들은 외부의 시선을 잘 알고 있고, 스스로도 문제가 뭔지 알아요. 하지만 현실을 보면 우주센터, APEC, 해군기지, 아웃렛 사업 등 모두 반대만 합니다. 중앙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제주도가 발전하려면 중앙정부의 지원을 적극 끌어내야 하는데, 국회의원 3명 모두 야당 출신이고 도지사는 무소속이에요. 게다가 무소속 도지사가 국책사업인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한다고 5만명이 주민소환 청구 서명을 해버렸습니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게 제주도입니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주민소환운동본부 쪽 인사들은 “김태환 지사의 독선과 전횡 때문에 주민소환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한 그룹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이른바 ‘뭍사람’들이다. 이들은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은 제주도민들의 폐쇄성에서 비롯됐다”며 “중앙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과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6일 제주도에서는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열렸다. 투표 결과, 최종 투표율은 11%(제주시 10.5%, 서귀포시 12.2%). 현행 주민소환법상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 유효투표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소환이 확정된다. 하지만 투표자가 3분의 1 미만일 경우, 개표조차 하지 않는다.
개표조차 해보지 못한 투표를 위해 제주도민들은 지방비 19억8000만원을 썼다. 김 지사는 투표가 열리기 전 25일 동안 도지사직 직무정지를 당했다. 제주도 경총(경영자총협회) K씨는 “주민소환 투표로 인한 실제 손실은 선거비용 이상일 것”이라며 “투표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8월 26일 주민소환 투표가 무산된 후, 김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투표율이 11%에 그친 건 주민소환 청구에 명분과 실리가 없었다 것을 말한다”며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일부 주민들과 주민소환운동본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주민소환 투표는 불법선거였다. 김태환 지사에 대한 심판은 계속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오마이뉴스> 8월 28일 인터넷판은 강정마을 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낸다. 독한 놈이 이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으로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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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환 제주도지사(오른쪽)가 2008년 9월 11일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개발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몇 년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2년 정부는 ‘民軍(민군) 복합형 관광美港(미항)’이란 이름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공식 발표했다. 해군기지 외에 15만t급 크루즈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해양공원형 군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마저도 건설예정지 주민들과 지역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초 해군기지의 완공기한 1년을 남겨둔 지난 2007년 5월, 김태환 지사는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 5년여를 끌어오던 제주 해군기지 사업을 수용했다. 당시 제주도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만 19세 이상 제주도민 1500명 가운데 60.4%(1차), 54.3%(2차)가 찬성했다. 반대는 각각 31.1%, 38.2%였다.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였던 제주 위미, 화순, 강정마을 주민들 1000명을 대상으로도 두 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 찬성 비율이 높게 나온 곳은 강정마을이 속한 서귀포시 대청동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찬성 비율이 55.1%(1차), 56%(2차)였고 반대는 각각 36%와 38.2%였다. 제주도 金大勳(김대훈) 자치행정과장의 얘기다.
“원래 해군기지 건설 후보 1순위는 화순이었는데 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대상지역을 위미로 옮겼어요. 여기서도 주민들이 반대해 마지막 대안으로 꼽힌 곳이 강정마을입니다. 2007년 4월 마을 자체적으로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약 60%의 주민이 찬성, 해군과 제주도가 강정마을을 건설 예정지로 정하고 건설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끼어들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어요.”
갈등만 부추긴 MBC PD수첩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은 서귀포시에서 서쪽으로 약 8㎞, 중문 컨벤션센터에서 동쪽으로 4㎞ 떨어져 있는 인구 약 1900명의 어촌 마을이다. 강정마을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尹太政(윤태정·54) 前(전) 마을회장은 마을회장 당시 해군기지 건설을 주도했다.
그는 현재 강정 해군기지 추진위원장이다. 윤 위원장은 “月刊朝鮮도 MBC PD수첩처럼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들 얘기는 한마디도 안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MBC PD수첩은 2009년 5월 5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윤태정 위원장의 말이다.
“4월 초에 PD수첩에서 연락이 와서는 ‘주민들의 갈등해소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이 광우병 파동 일으킨 사람들인데 무슨 갈등을 치유한다는 거냐’고 하자 ‘공정하게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약 두 시간 동안 취재에 응해 줬더니만 참, 이런 천하의 나쁜 놈들….”
―찬성하는 분들에게 불리하게 방송이 나갔나요.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찬성하는 우리 마을 주민들 얘기는 한마디도 안 나갔소. 전부 반대하는 주민들 얘기, 땅이 수용되는 주민이 ‘쇼’하면서 우는 장면만 나갑디다. 그걸 보면, 찬성하는 주민들은 매국노고, 천하의 나쁜 놈으로 알겠더라고.”
윤 위원장은 “환경단체와 민노당 쪽 사람들, MBC 같은 언론들이 끼어들어서 마을 전체가 두 동강 나고, 제주도 전체가 어려움에 처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강정마을 출신인 이형두 전 서귀포시장이 처음으로 ‘우리가 해군기지를 유치해서 강정마을을 발전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을회장으로 있을 때,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81명의 동의를 얻었어요. 저희 마을 향약에 ‘주민 51명 이상이 모여서 마을총회를 열면 마을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요. 마을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 의견을 냈고, 도청에서 여론조사를 두 번 했는데 모두 찬성 의견이 높게 나왔습니다. 모든 게 결정되고 나니까, 손 놓고 있던 일부 주민들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환경단체들이 극렬하게 반대하기 시작하더군요. 환경단체들은 아예 진을 치고 마을 주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어떤 단체들이 마을에 들어온 겁니까.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주민자치연대 등 이름도 못 들어 본 단체들, 민노당, 천주교 신부, 목사 등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죄다 왔어요. 이들은 마을회관에 반대운동본부를 차려 놓고, 마을 주민들에게 띠 두르고 시위하는 법, 반대논리 등을 가르쳤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아이들 못 보내게 막아”
―반대논리가 뭐였습니까.
“‘환경이 파괴된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다’ 등등의 논리로 무조건 해군기지 건설은 안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더니 ‘한 번 기지가 들어서면 계속 다른 기지가 들어서서 결국 모두 쫓겨난다’는 식으로 주민들을 선동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측량하러 오면 ‘해군기지 뒤에 공군 비행장을 지으려고 왔다’고 선동하더니, 나중에는 ‘결국 항공모함이 들어와서 일본처럼 미군들이 마을 여자들을 강간할 거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윤태정 위원장에 따르면, 해군기지 반대운동본부 측은 2007년 강정초등학교 학생들이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국방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강정초등학교는 매년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한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반대운동본부 측에서 ‘평화 의식을 해치고, 폭력적인 사상에 물든다’며 참가를 막았다고 한다. 강정초등학교 교사 P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려고 학생들이 학교에 모이자 반대운동본부 측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등교하는 것도 막았어요.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걸 막는 게 말이 됩니까? ‘군 행사에 참여하면 나쁜 사상에 물든다’니 저 사람들은 남의 나라 사람들인가요?”
다시 윤태정 위원장과의 얘기.
―처음 마을회관에서 총회를 할 때는 반대 주민들이 왜 가만히 있었죠?
“회장인 저와 몇몇 마을 어른들이 ‘해군기지 유치하겠다’고 했을 때 ‘설마 가능하겠어?’ 한 거죠. 마을 총회 방을 붙이고 알려도 ‘니들이 해 봐야 해군기지 유치 못한다’ 이런 반응이었어요. 저희 마을은 해군기지 건설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별로 언급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더했죠. ‘지금까지 얘기 나왔던 위미나 화순에 건설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주민투표에 이어 제주도 전체 여론조사, 지역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더 높게 나오니까 깜짝 놀란 겁니다.”
―강정마을에 있는 해녀들은 찬성을 했더군요.
“저희 마을에 해녀들이 100여 명 있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해녀들이 가장 피해를 입어요. 인근 위미 지역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지 못한 것도 해녀들이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 해녀들은 ‘죽을 때까지 물질할 것도 아니고 마을 발전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찬성했습니다. 해군에서 보상비만 약 70억원을 썼습니다.”
주민들 贊反으로 갈려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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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기 때문에 군사기지가 건설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보상비를 받는 주민들은 일부밖에 없어요. 지금 반대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보상비와 관계 없는 분들이에요. 물론 자기 집이 수용되는 주민들 가운데 보상비에 불만이 있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 주민은 ‘그냥 싫다’는 겁니다. 정부나 제주도청에서 ‘차라리 보상비 더 달라고 하면 해결하기 편하겠다’고 해요. 무조건 우리 마을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된다는 겁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500명 때문에 도지사 소환운동 투표까지 하게 된 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쎄요. 주위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이 서명운동 하니까 그냥 서명해 줬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도지사가 더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면 이렇게까지 안됐을지 모르지.”
강정 마을회관 정면에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김태환 도지사 소환’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삭발한 주민들, 마실 나온 듯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노인들이 한데 섞여 마을회관은 어수선했다. 회관 사무실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회 회원들이 서류작성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 한쪽에서 강동균 현 강정마을회장을 만났다.
―지난 2007년 4월 강정마을 주민들이 마을 총회를 열어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반대를 한 이유가 뭡니까.
“마을 임시총회가 잘못된 겁니다. 당시 마을회장 등 일부 주민들이 규약을 어기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총회를 열었어요. 마을에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마다 임시총회를 열어요. 임시총회를 열려면 총회일과 공고일을 뺀 1주일의 기간이 필요한데 前(전) 마을회장은 3일밖에 공고를 하지 않았어요. 마을 방송도 단 한 차례 했고요. 그건 마을 향약 위반입니다.”
―당시 마을총회 참석 인원수가 부족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 절반 정도가 총회를 열었다는 걸 몰랐어요. 게다가 마을총회 안건이 ‘해군기지 유치’ 건이 아닌 ‘해군기지 관련’ 건이었어요. 공고는 그렇게 해 놓고 실제 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 건으로 상정을 한 겁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해놓고, 자기들끼리 만장일치로 박수치고 기자회견해서 유치신청을 한 겁니다.”
“냉전 종식시킨 평화의 섬이라 군사시설은 안 된다”
―마을 주민들이 다시 투표를 했다고 하더군요.
“2007년 8월 10일에 주민들이 모여 윤태정 전 마을회장을 해임했고, 8월 20일에 마을 주민 752명이 참석해서 해군기지 유치에 대해 다시 투표를 했습니다. 참석자의 94%인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했어요. 그런데 도청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주관한 여론조사만을 근거로 마을 주민들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현재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을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놓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강동균 現(현) 마을회장 측은 윤태정 前(전) 마을회장 측이 해군기지 유치건의를 한 건 잘못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마을 규약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태정 마을회장 측은 모두 7차례 회의를 거쳐 마을 주민들의 합의를 얻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시 강동균 현 마을회장과 나눈 얘기다.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유치 찬성 주민들이 제대로 주민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겁니까.
“시작도 문제였고, 더 큰 문제는 해군기지 건설 논의가 시작된 1993년부터 2007년까지 강정마을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화순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고 생각했죠. 거기에 군항이 있거든요. 그런데 화순 주민들이 반대하고 위미에서 해녀들이 반대하자, 느닷없이 우리 마을이 후보지가 된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 반대하니까 강정도 안된다는 건가요.
“제주도는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때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게 말이 됩니까? 제주도가 어떤 섬이에요. 고르바초프가 제주도에 와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동서냉전을 와해시키고 평화를 지킨 섬입니다. 게다가 우리 主敵(주적)은 북한인데, 제주도와 북한이 얼마나 멉니까? 주적과 싸우려면 뭍에다 기지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05년 1월 27일 노무현 前(전) 대통령은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선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3無(무) 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 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강우일 주교: “4·3 사태는 인종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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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는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 |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도시사가 주민소환 투표까지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태환 지사는 당연히 주민소환이 돼야 할 사람이에요. 도지사가 돼서 모든 현안을 밀어붙이기만 하지 협의를 하지 않아요. 저희가 이 문제 때문에 국회에도 십수 차례 다녔어요. 지난 국회 때는 민노당 출신 의원들이 많아서 저희를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은 도와주는 분들이 천주교 신부님들밖에 없어요.”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천주교 중앙 성당에서 姜禹一(강우일·64) 주교와 고병수 보좌신부를 만났다. 강 주교는 김 지사 주민소환 청구 서명이 한창이던 지난 5월 14일 천주교 제주교구 소속 사제들에게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호소’라는 글을 보냈다.
그는 이 글에서 “제주도민을 위해서나 국민 전체를 위해서라도 ‘세계 평화의 섬’ 제주 땅에 건설하려는 해군기지는 동북아 긴장을 새롭게 불러오는 등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일 뿐, 교회의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의 서신 내용이 알려지면서 제주는 더욱 들끓었다.
―강 주교께서는 일관되게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셨습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입니까.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에 들어와 유일하게 ‘제노사이드’(인종 말살)를 겪은 지역입니다. 제주도민들이 겪은 4·3 사태는 좌우 대립에서 나온 단순 학살사건이 아니에요. 당시 20만명이던 제주도에서 4·3 사태 때문에 죽은 사람이 무려 3만명이에요. 이 가운데 빨치산 활동을 하면서 무장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2000명이 채 안됩니다. 제주도의 집집마다 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지역에 다시 군사시설을 짓는다는 걸 종교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어요.”
―노무현 정권 시절에 4·3 사태에 대해 재평가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국제적으로 4·3 사태 같은 ‘제노사이드’가 일어났으면 戰犯(전범)재판으로 하는 게 관례입니다. 일본, 독일에서도 전범재판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4·3 사태에 대해서는 60년 동안 겨우 노무현 정부 시절 보고서 달랑 하나 만들고, 기념관 세운 겁니다. 이건 대한민국 역사의 치욕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민주국가로 발전하고 싶으면, 보고서로 끝날 게 아니라 성찰과 반성, 더 나아가 국가 원수 차원에서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도대체 왜 주민소환 투표를 했을까?
―과거의 아픔과 국가 이익을 위한 기지 건설은 구분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4·3 사태는 단지 과거의 아픔이 아닙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제주도의 恨(한)이에요. 이런 땅에 다시 군사기지를 세우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육지의 군대가 수많은 사람을 짓밟아 놓고 다시 그 땅에 군사기지를 설치해서 국가 이익을 도모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역사인식이 결여됐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군대를 둘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북한의 위험이 있는 이상 최소한의 군비를 정당방위 차원에서 확보하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것까지 교회가 반대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제주도에 새로운 해군기지를 짓는 건 과잉 군비확대라고 봅니다.”
―해군기지 건설 문제 때문에 도지사 소환투표까지 가게 됐습니다. 불필요한 행정공백이 생기고 비용이 나가는 것 아닙니까.
“주민소환 투표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이런 파국까지 가는 걸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서 안타깝습니다.”
김태환 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주장하는 논리는 앞서 만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강우일 주교와 고병수 신부의 주장과 일치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김태환 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신청하자 김 지사는 제주도청 홍보팀장을 통해 “주민소환과 관련해서는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고, 주민소환운동본부를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며칠 동안 제주도에서 취재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필자는 迷宮(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제주도 행정을 책임지는 도지사를 소환투표하려는 분명한 이유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소환의 직접적인 이유는 해군기지 건설이지만, 누구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 하나 때문에 주민소환 투표까지 가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제주도민들의 ‘괸당’ 의식이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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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26일 주민소환투표 결과가 공표될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 김태환 지사가 8월 6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도청을 나서고 있다. |
“제주도 사람들은 신문을 볼 때 부음란부터 봅니다. 만약 어느 집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면 엄청나게 비난을 당합니다. 한집 건너면 친척이고 두 집 건너면 친구예요. 이 상황에서 강정마을 사람들이 주민소환 서명을 받으러 다닐 때,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은 서명을 해 주더군요. 제 주위 교수들 가운데 ‘아는 사람들이 서명해 달라고 해서 해줬다’는 분들이 여럿 있어요. 김태환 지사도 문제가 많았어요. 이 양반이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괸당’ 의식 때문에 엉거주춤한 거예요. 김 지사 주변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실제 주민소환 투표에서 투표율이 저조한 건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근본적으로는 주민소환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것도 괸당 의식이 작용한 거예요. 처음 주민소환운동본부에서 예상 투표인원을 약 10만명 이상으로 잡았어요. 왜냐면 주민소환 청구 서명인원이 약 5만명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꾸로 김태환 지사의 괸당들이 움직이니까, 주민들 마음이 약해진 거죠. ‘우리 괸당이 투표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내가 투표하면 곤란해지겠지’라는 마음이에요. 결국 뚜껑을 열어 보니 서명 인원보다 적은 약 4만명이 투표를 한 겁니다.”
제주도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B씨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처음 제주도에 박물관을 건설하겠다고 왔을 때 제주도 생활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외지 사람들이 제주도에 와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실하게 깨닫게 됐어요. 제주도 사람들의 ‘뭍사람’에 대한 배타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이들의 배타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중요한 건 제주도민들이 ‘우리가 대한민국의 일원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해요. 제주도민들이 항상 얘기하는 게 ‘역사적으로 중앙에서 제주도를 얼마나 수탈했는지 아느냐’ 하는 겁니다. 제주도민들의 역사의식은 문제가 있어요.”
우주센터·APEC·아웃렛 유치 모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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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명품 아웃렛인 ‘신세계 첼시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원래 제주도에 들어서려 했으나 제주도민들의 반대로 여주에 건설됐다. |
“이들이 말하는 과거란 고려, 조선 때로 거슬러 갑니다. 이때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보내 제주도 사람들을 착취했다는 거예요. 고려 시절 몽골 침략 때, 몽골인들이 제주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고려, 조선 때 수탈 안 당한 지역이 어디 있습니까? 몽골 침략 때는 고려 왕들이 피란을 간 강화도를 제외하고 全(전) 국토가 쑥대밭이 됐어요. 그런데 제주도민들은 자기들만 착취당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착취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주도가 가장 많이 수탈당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계급사회였던 과거의 ‘양반-상민’이라는 계급구조를 비판해야지, 어떻게 중앙, 뭍에 의해 수탈당했다고 합니까? 이건 자신들이 ‘고려-조선-대한민국’의 일원이 아니라, ‘탐라국-제주국’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린 겁니다.”
―제주도에서 외지인들이 사업하기가 무척 어렵겠군요.
“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도 사업하기 어려워요. 해군기지 건설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제주도에 진출하려다 뜻을 접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얼마 전 전 국민의 눈길이 쏠렸던 나로호 발사 기지인 전남 고흥의 우주센터는 원래 제주도에 건설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주도 환경단체 등 도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전남이 재빨리 유치에 성공했다. 제주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우주센터 건립을 반대하던 환경단체들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도 대거 뛰어들었다고 한다.
우주센터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APEC 유치 건도 제주도민들과 제주 정치인들이 엉거주춤 하는 동안 부산에 내주고 말았다. 月刊朝鮮 2006년 6월호 기사 ‘환상만 가득한 섬 제주’의 일부다.
<제주도는 도약의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제주지역의 한 방송국 보도국 관계자는 “제주는 개발을 하려고 하면 언제나 반대에 부딪힌다”고 했다.
“제주를 체계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는 끊임없이 존재해 왔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좋은 개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한라산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카를 설치하려 했고, 우주센터도 유치하려 했습니다. 모두 환경단체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습니다.”>
다시 B씨의 얘기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명품 대형 아웃렛(할인매장)도 원래 제주도에 들어설 계획이었어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제주도나 아웃렛 회사 모두 윈윈하는 아이템이었죠. 그러나 제주시 상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유치에 실패했어요. 상인들의 괸당이 모두 제주도민인데, 아웃렛이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대형 아웃렛을 건설하면 환경파괴에 교통이 불편해질 거라고 환경단체들이 반대했습니다.”
“육지 사람은 빼앗아 가는 사람”
―제주도에 아웃렛이나 백화점이 없었나요.
“세계적인 관광지라고 선전하는 제주도에 지금 유명 백화점 한 곳이 없습니다. 서울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와서 쇼핑을 못해요.”
月刊朝鮮 2006년 6월 ‘환상만 가득한 섬, 제주’ 기사에 따르면 ‘제주도연구회’ 회장을 지낸 제주대 사회학과 申幸澈(신행철·69) 명예교수는 제주도의 배타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제주의 배타성은 얼마 없는 것조차 빼앗기지 않으려는 배타성, 피해의식에 기인한 배타성입니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육지 사람은 나쁜 사람, 육지 사람은 사기꾼’이란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제주 사람들에게 외부 사람들은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몽골의 침략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제주로 내려온 관리들까지 대부분 악랄한 수탈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섬은 자원이 제약된 곳입니다. 제주도는 화산토양이라 토지 생산성도 떨어집니다. 자원이 제약적인 사회에서 외부 사람들은 전체 자원을 나눠 먹는 사람, 빼앗아 먹는 사람으로 비칩니다.”
제주大 前(전) 총장 K씨는 “제주도 사람들은 아직 농경사회 마인드를 지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는 현재 1차산업 비중이 전국 평균(3%)보다 훨씬 높은 14%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아직도 농경사회 마인드로 살아갑니다. ‘괸당’ 의식과 외지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이런 성향이 제주발전의 무력화로 이어지는 겁니다.”
제주도의 각종 개발사업이 실패한 주요한 배후에는 이 지역 환경단체들이 있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참여환경연대, 곶자왈환경연대 등 이들 환경단체는 중앙과 연결되지 않은 토종 환경단체가 대부분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제주산업정보대 교양학부 K 교수는 “아나키스트 전통이 강한 제주지역 특성이 제주도의 괸당 의식과 맞물려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며 이렇게 설명했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불러서 오해가 많지만, 아나키즘은 부당한 국가권력을 부정할 뿐, 현실을 외면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자치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게 정확합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을 부정했어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 평등과 상호협조의 자치조합만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기를 바랐죠.
아나키즘은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방식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사회주의가 들어왔지만 제주도 전체를 지배한 이념은 아나키즘이었어요.”
뿌리 깊은 아나키즘과 ‘괸당’ 의식이 결합
1920년대 제주도에 사회주의 사상을 처음 전파한 사람은 金明植(김명식)이다. 김명식은 초기 동아일보 主筆(주필) 출신으로 제주도에서는 ‘朝天(조천) 김씨’라 불리는 명가의 후손이었다. 1915년 그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과에 유학, 이곳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배웠다. 1920년 귀국한 그는 사회혁명당 창립대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된다.
김명식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배운 후배 한 명이 아나키스트인 高順欽(고순흠)이다. 고씨는 나중에 在日(재일)민단 제2대 단장을 지냈다. 그의 영향으로 1929년 제주도에는 아나키즘 열풍이 번졌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高秉禧(고병희)가 당시 동아일보에 ‘제주도는 공산주의 사회건설보다 아나키즘 사회를 건설하는 게 어느 편으로 보든지 좋다’고 말한 발언이 실릴 정도였다.(이영권 <새로 쓰는 제주사> 참조)
다시 K 교수의 설명이다.
“고병희 등 아나키스트들은 1929년 ‘우리계’라는 아나키즘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인층이 주도했으나, 제주 특유의 공동체 전통 때문에 광범위한 단체로 확산됐어요. 이들은 매달 3원씩 3년간 식산은행에 곗돈을 예치하면서 소비조합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향후 소비조합뿐만 아니라 교통기관, 생산분야까지 조합 형태로 장악하려는 계획이었죠.”
―아나키스트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까.
“이들은 아나키즘과 제주도 특유의 괸당 의식이 결합해 지배자인 일본을 배척하고 제주도민 자치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리계’의 파괴력을 눈치챈 일제가 65명을 검거하고 우리계를 파괴하면서 제주도 아나키즘 운동은 유야무야됐지만 그 전통은 여전히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시민사회단체들도 아나키즘 전통 때문에 중앙과 관련없는 독립 단체가 많은 겁니까.
“맞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중앙의 권력도 싫고, 중앙과 연계된 사회단체들도 싫어합니다. 주민소환 운동을 주도한 단체들은 1980년대 운동권이 세력을 떨칠 때는 없던 단체였어요. 단체 핵심멤버들이 대학생일 때는 전대협, 한총련 등 전국 단체 산하에서 활동하다, 30~40대가 되면서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단체를 만든 겁니다. 이게 제주도 사람 특유의 성향입니다.”
뭐든지 반대만…
―제주도가 지난 2006년 특별자치도가 됐습니다. 역사적인 전통과 제주도민들의 성향이 어떻든 국제자유도시를 꿈꾸는 제주도가 더 이상 스스로가 쳐둔 한계에 갇히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제주도민들은 외부의 시선을 잘 알고 있고, 스스로도 문제가 뭔지 알아요. 하지만 현실을 보면 우주센터, APEC, 해군기지, 아웃렛 사업 등 모두 반대만 합니다. 중앙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제주도가 발전하려면 중앙정부의 지원을 적극 끌어내야 하는데, 국회의원 3명 모두 야당 출신이고 도지사는 무소속이에요. 게다가 무소속 도지사가 국책사업인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한다고 5만명이 주민소환 청구 서명을 해버렸습니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게 제주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