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발전국민위원이 본 미디어법] 상처만 남은 누더기법 : 월간조선

지난 7월 27일 미디어 관련 7개 법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작년 12월 4일 입법 예고한 지 8개월 만이었다.

이를 계기로 향후 방송을 비롯한 우리 미디어시장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승인절차를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이미 신규 사업자 구도를 놓고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제·개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영방송법(혹은 방송공사법)이나 미디어랩 관련 방송법 개정 등은 미디어법과 함께 방송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 정부 들어 처음 이루어지고 있는 KBS와 MBC, EBS 경영진 개편도 향후 방송 구조변화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한다.

방송시장의 총체적 위기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미디어법들이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개정된 내용들은 정책목표를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들이지 충분조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종법안 통과를 위한 정파 간의 이해조정 과정에서 원안보다 규제완화 범위가 축소됐다. 이런 미디어법 아래서 선뜻 방송시장에 진입하려는 사업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미디어법이 이렇게 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한다. 지금 우리 방송구도는 정치적 통제가 용이한 구조이고, 주요 방송사들은 정치적 상황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방송구도 개편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미디어법을 내놓으면서 “방송사업에 대한 칸막이식 규제를 없애고 경쟁을 촉진해 방송산업을 활성화하고, 다양성을 提高(제고)함으로써 시청자 선택의 기회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디어산업 활성화와 언론의 다양성 제고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서로 시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한 방송시장을 개선하고 방송사업의 불안정성을 제거하여, 제대로 된 언론매체로 기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의 두 목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우리 방송은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급속한 재원 고갈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그동안 우리 방송의 젖줄이었던 광고시장이 급속히 악화되어 올해에는 방송광고시장이 2000억원 이하 규모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 3사의 올 상반기 광고판매율은 前年(전년)대비 50%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광고 이외 다른 재원, 즉 공영방송 수신료나 유료방송시장의 시청요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금 공영방송 수신료는 1980년 신군부가 책정한 2500원에서 30년 가까이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공영방송사들의 방만하고 폐쇄적인 경영과 방송내용의 불공정성 시비 때문에 수신료 인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케이블TV, 위성방송과 같은 유료방송시장이 低價(저가)시장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그 이유는 모든 매체가 구조적·현실적 이유 때문에 지상파 방송 재전송 혹은 재활용 창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高(고)품질 방송콘텐츠로 시청자들의 구매를 촉진시키고, 여기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다시 콘텐츠 생산에 재투입하는 善(선)순환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로 인해 우리 방송시장에서 경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고, 결국 지상파 방송 독과점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열악한 시장환경에서는 어느 방송사업자도 안정적일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시장에 새로 진입한 대부분의 사업자는 극심한 자본경색과 수익모델 부재로 한계에 봉착해 있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위성 및 지상파 DMB와 같은 신규 사업자들은 한결같이 경영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콘텐츠 사업자인 채널사용 사업자들은 低價(저가) 시장에서 수익모델 창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서는 그동안 독과점체제 아래서 군림해 왔던 지상파 방송사들도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방송 기득권 세력의 반발

언노련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미디어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방송산업이 불안정하게 된 근본 이유는 이른바 ‘방송의 공익성’을 표방하는 公的(공적) 진입장벽들 때문이다. 대기업·신문사·외국자본 그리고 통신사업자를 이른바 ‘反(반)공익적 자본’으로 규정하면서 방송사업 진입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 제도적 장벽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존 사업자들은 자신들만이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공익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면서 그 같은 진입장벽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보도의 공정성이나 다양성은 독과점구조 아래서 더욱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방송규제기구나 주요 방송사의 경영진 교체와 관련된 논란과 갈등이 재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방송은 명목상 ‘시청자 주권’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방송사 종사자’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낡고 왜곡된 방송구조가 디지털 방송시대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기회를 가로막아 왔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내건 명분도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미디어법이 이런 배경과 취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지금의 독점적 지위 아래서 방송 권력을 누려온 사람들과, 지금의 방송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사람들의 반발은 예고된 것이었다.

지상파 방송 종사자 중심의 언론노조와, 그동안 방송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야당 민주당이 방송법을 포함한 미디어법 개정에 가장 강하게 반대해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 끝에 여야가 ‘한시적 휴전’을 위해 만든 기구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委)였다. 하지만 미디어위는 당초부터 한계를 가진 기구였다. 여야가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미디어위를 ‘遲延戰(지연전)의 場(장)’으로 생각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당은 미디어위를 통해 對(대)국민 설득과 여론수렴이라는 형식을 거치고 싶어했고, 야당은 미디어위를 미디어법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한 투쟁의 장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미디어위는 애초부터 회의진행방법, 공개여부, 논의주제, 의사일정 등 모든 사안에 대해 합의를 보기 어려운 기구였다. 심지어 미디어위의 종료시기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개정된 미디어법의 한계

미디어위를 반대투쟁의 장으로 생각한 야당 측 위원들은 법안 자체에 대한 논의는 생각조차 없었다. 결국 미디어위는 110일 동안 의사일정에 대한 야당 측 위원들의 문제제기로 논란만 일삼다가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종료됐다.

결국 지난 6월 19일 야당 측 위원들이 법안 내용이 아닌 여론조사 문제를 핑계로 퇴장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추천위원들에 의해 최종보고서가 제출됐다. 비록 전체 위원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 보고서는 미디어법과 관련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고, 그 내용은 최종법안에 대폭 반영됐다. 특히 2012년 디지털 전환 시점까지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신문사·대기업 진출 유보, 여론지배력 측정을 통한 사후 시장규제 방안 등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방송법 등 미디어법안은 7월 23일 국회의장 직권상정과 야당의 물리적 반대라는 보기 좋지 않은 모습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최종 통과된 방송법 개정안은 당초 원안보다 크게 후퇴했다.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상파 방송 참여 지분이 경영적으로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운 10% 이내로 하향 조정됐고, 그나마 2012년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 이후에야 경영권을 갖도록 했다.

이는 그런 주장을 펴온 일부 야당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한 타협의 결과였다. 하지만 정책목표와 규제합리성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2012년 이후라 하더라도 10%의 지분으로는 누구도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상파 방송 진입을 허용해 미디어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유예기간은 그대로 두더라도 참여 지분한도는 더 늘려야 한다.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 PP,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1인 지분을 원안 49%에서 30%로 낮춘 것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새롭게 진입한 신규 방송사업자들은 모두 시장 진입 2~3년 안에 자본경색으로 苦戰(고전)했다. 신규사업자가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해 채널에 대한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는 보통 3~4년 이상이 소요됐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사업자가 안정적으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인 지분을 49%로 늘려줄 필요가 있었다.

기존 사업자들도 디지털 전환 등을 위해서는 추가 자본증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경영학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30%로 지분을 하향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

논란 부를 매체 간 합산시청점유율 문제

여의도 KT 미디어본부 IPTV 방송센터 직원들이 주조정실에서 방송 화질을 점검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매체 간 합산시청점유율 제한규정’이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여론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 다양한 매체의 여론지배율을 합산해 사후규제를 한다는 것이 일리는 있다. 하지만 異種(이종) 매체 간에 시장점유율을 어떤 기준으로 단일 척도화할 수 있을까.

실제로 2007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신문·방송 간 소유규제 완화를 위해 ‘다양성 지수(diversity index)’를 제시했다가 바로 이 문제에 걸려 좌절했다. 모든 매체의 여론지배력을 측정하는데, 서로 다른 매체들에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가중치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시청률 1%와 신문구독률 1%를 어떤 비율로 합산할 것인가.

때문에 매체 간 합산 사후규제방식은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선뜻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개정 미디어법에 따라 ‘매체 간 합산시청점유율 제한규정’이 시행된다면 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도입하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는 셈이다.

매체 간 兼營(겸영)으로 여론지배력이 문제된다면, 각각의 신문과 방송시장에서 특정 비율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사업자는 다른 시장에 참여하는 데 제한을 두게 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고 합리적이다.

더구나 여론독점을 예방하기 위한 사후규제라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문제에 대한 보도·논평을 다루는 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더 나아가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매체’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다.

물론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구성해 지수를 개발하고 여론집중도를 평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건지, 다양성위원회 운영 역시 얼마나 권위를 가질 수 있을지 등이 미지수다.

공영방송법, 미디어랩 관련법이 더 큰 논란 부를 수도

이번에 통과된 미디어법은 ‘상처만 남은 누더기법’이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기존의 방송진입 장벽을 헐었다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가을 정기국회에서는 미디어법에 이어 공영방송법(혹은 방송공사법), 미디어랩 관련 법개정 등이 추진될 것이다. 이들 법들은 미디어법처럼 규제완화라는 추상적 목표와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는 법이 아니라, 법 개정 직후 바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들이다.

더구나 방송시장의 재원구조를 재편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충돌할 수도 있다. 자칫 이들 법과 방송법 개정 이후의 정책들이 잘못 어우러져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일관성과 투명성 확보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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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발전국민위원이 본 미디어법] 상처만 남은 누더기법

방송진입장벽 헐었다는 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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