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병에 맞춰서 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돈에 맞춰서 진료할 수밖에 없는 구조
⊙ “상위 20%의 잘되는 의원이 전체 의료계 매출의 80%를 가져가는 속칭 ‘2080’구조 고착”
⊙ 내과의원들 중 헝그리 닥터가 30% 넘어
⊙ 중·소형 병원의 부도율 10%
⊙ 올해 들어 개원의원보다 폐업의원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
⊙ “상위 20%의 잘되는 의원이 전체 의료계 매출의 80%를 가져가는 속칭 ‘2080’구조 고착”
⊙ 내과의원들 중 헝그리 닥터가 30% 넘어
⊙ 중·소형 병원의 부도율 10%
⊙ 올해 들어 개원의원보다 폐업의원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
- 2004년 2월 전국에서 모인 대한의사협회 회원 2만여 명이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에서 의료수가 인상분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참 난감하네요. 우리나라 의료현실이 워낙 뒤죽박죽이라…. 지금 開院醫(개원의)들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습니다. 정말 죽지 못해 병원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의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코웃음도 치지 않죠.”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에서 파티마의원을 운영하는 張賢載(장현재ㆍ49) 원장은 “개원의들은 능력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겁이 나 주변에 드러내 놓고 힘들다는 이야기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며 “언제부터 이 나라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현재 노원구 의사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제 경영난에 허덕이다 자살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이야깃거리도 아니다”라며 “개인의원들은 줄줄이 폐업을 하고, 중소병원은 도산하고 있는데도 우리 국민이 의료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돈만 밝히거나,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의 의료 酬價(수가)나 의료환경으로는 개인의원들이 더 버틸 수가 없어요.”
장 원장은 “자료에 의하면 38세에 개원해 44세에 폐업하는 개원의들이 가장 많은데 이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문을 닫고 奉職醫師(봉직의사, Pay Doctor)로 돌아가는 의사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봉직의도 경쟁이 높아서 급여가 떨어지고 있고, 의사들이 응급실 당직을 하며 연명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는 개원하는 의료기관 보다 폐원하는 의료기관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폐업신고를 한 病醫院(병·의원)은 2006년 1901곳, 2007년 2147곳, 2008년 2218곳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개원 비율은 2007년 38.6%에서 2008년에는 37.2%로 줄었다.
2008년 대한의사협회(회장 慶晩浩)의 ‘의원 경영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負債(부채)를 안고 있는 의원이 전체 의원의 46%에 달하고, 의원 1곳당 평균 부채는 3억9159만원, 이들이 부담하고 있는 이자비용은 월 평균 251만원으로 나타났다. 또 의원 개설에는 평균 5억3893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과의원이 처한 상황
그렇다면 실제로 동네병원들은 어떤 상황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슐다이스외과를 찾았다. 필자가 병원을 찾은 시간은 월요일 오후 2시. 점심시간 직후라서 대기실에 손님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병원은 한산했다. 李同一(이동일·44) 원장이 필자를 맞았다.
“개인병원이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원장님 병원도 손님이 없는 겁니까?”
이 원장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개인병원 원장이 언론에 대놓고 ‘우리 병원은 손님이 없다’고 광고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근근이 운영할 정도는 되니까 하는 거죠.”
사실 필자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여러 번 ‘딜레마’에 빠졌다. 개원의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취재하려고 했으나 선뜻 나서는 의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렵게 취재에 응해 준 개원의를 ‘잘 안되는 병원’의 사례에 집어넣어 소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환자’만 취급하는 동네의원들은 운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개원의 사례’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슐다이스외과는 탈장과 맹장염, 치질 수술 등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의원이다. 이 원장은 5년 전 이 병원을 개원했다. 맹장염의 경우 노원구에서 유일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원이라고 한다. 슐다이스외과는 수술환자 같은 입원 환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병실 4개와 12개의 베드(침대)가 갖춰져 있다. 당직 간호사를 포함, 5명의 간호사가 근무한다.
이동일 원장은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려면 하루에 입원수술이 1건 이상, 한 달에 30건은 되어야 유지를 할 수 있다”며 “현재 우리 병원의 경우 그 정도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개인의원이 한 달에 30건의 수술을 하면 페이 닥터(봉직의) 수준의 소득을 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개인의원은 이 정도 소득을 보고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죠. 그래서 동네의 외과클리닉(외과의원)이 자꾸 없어지고 있습니다. 외과클리닉이 없어지니까, 국민은 모든 수술은 종합병원에서만 하는 줄 알고 그쪽으로만 몰립니다.”
외과의원의 90%가 다른 쪽으로 轉科한 상태
외과수술이 종합병원으로만 몰리기 때문에 외과의원은 더욱 개원을 못하고, 주변에 외과의원이 없으니까 의료소비자(국민)는 당연히 종합병원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종합병원은 진료비에 30~50% 할증이 붙기 때문에 국민이 불필요한 의료비를 많이 지출한다는 데 있습니다. 또 사람이 많이 몰리면서 점점 수술하는 공장처럼 변하고 있어 의료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도 종합병원에만 환자가 몰리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의료환경으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사 구성을 보면 병원의 페이 닥터로 50% 정도가 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개원가에 흩어져 있습니다. 페이 닥터들 절반 이상은 準(준) 종합병원인 중소형 병원에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개원 대기상태에 있고, 종합병원 의사들도 피라미드형 인력 구조 때문에 결국은 밀려나 개원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개원가가 쓰러지면 이 사람들은 공중에 붕 떠버리게 됩니다.”
―이 원장님 의원의 경우 노원구의 외과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탈장과 맹장염 수술도 하고 있고, 인근 區民(구민)까지 합하면 잠재적 손님이 많을 텐데, 그렇다면 일종의 독점 영업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지요.
“종합병원들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은연중에 자기들이 안전하다는 광고를 많이 합니다. 특히 작은 성형 의료사고라도 한 번 나 보세요. 언론은 ‘개인병원’에서 수술하다가 사고 났다고 강조합니다. 언론에 개인병원의 사소한 수술 부작용이 보도되면 그 불똥은 곧바로 수술을 하는 외과병원으로 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것이 쌓이면서 국민은 은연중에 개인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내가 맹장과 탈장 수술을 많이 했고,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나도 손님들이 느끼는 그런 불안감까지 극복해 내기란 어렵습니다.”
이동일 원장은 “지금 외과의원의 90%가 내과나 소아과, 가정의학과로 전과를 한 상태”라며 “외과의원을 한다고 해도 리스크가 큰 수술은 안 하고, 수술위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하지정맥류나 비만수술 쪽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일반의로 개업했다가 외과가 좋아 외과의원을 개업했습니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할 줄 알았어요. 솔직히 개원가의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외과의원을 하라고 권할 수가 없습니다.”
“알아서 먹고살라는 뜻”
이 원장은 “개원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낮은 의료수가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며 “의료환경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우리나라의 수가제도는 1970년대 만들어진 이후 크게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현재 낮은 의료수가는 도시화가 그다지 진행되지 않은 1970년대 정해진 것입니다. 당시는 병원임차료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고, 의사들도 약값에서 마진을 많이 남길 때니까 큰 불만이 없었죠. 지금은 임차료도 비싸졌고, 高價(고가) 장비도 많이 사야 하는 등 의료환경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맹장염 한 건 수술하는 데 기준수가가 20만원인데, 맹장염 수술 한 건을 하자면 의사 한 명, 간호사 두 명을 포함 최소 세 명이 필요합니다. 20만원에 인건비, 재료비, 임차료 등이 다 포함되지만, 의료소송에 대한 리스크 비용은 포함이 안되어 있어요. 제 경험으로 볼 때 외과의원은 지금보다 수가가 세 배는 인상돼야 수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의사들을 이렇게 살인적인 低(저)수가로 묶어 놓고 알아서 생존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과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필자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을지내과를 찾았다. 필자가 이 병원을 찾아갔을 때 李正敦(이정돈·50) 원장은 심한 목감기에 걸려 있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몸이 이렇게 안 좋아도 개인의원 원장은 쉬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과의원의 경우 연간 평균 매출이 2억4000만원을 넘는 의원 비율이 50%가 안됩니다. 서울지역만 보면 30% 수준입니다. 연 2억4000만원이면 한 달에 2000만원 정도의 매출입니다. 여기에 개업할 때 보통 3억원 정도를 빌리는데 이에 대한 이자 200만원, 간호사 두 명에 400만원, 월세 200만~300만원, 의료소모품비, 잡비, 통신비 등을 합치면 고정 지출비용이 1200만~1400만원 정도 나갑니다. 여기서 남는 돈을 집에 가져갑니다. 의사는 고도의 전문직인데 다른 전문직종과 비교했을 때 비참한 게 사실이죠.”
이정돈 을지내과 의원 원장은 “요즘 하루 평균 50명의 환자도 보지 못한다”며 달력에 표시해 둔 외래환자 진료 숫자를 월별로 통계 낸 자료를 보여주었다. 1월 50명, 2월 40명, 3월 44명, 4월 42명, 5월 44명, 6월 38명이었다. 개원가에서는 보통 하루 환자 50명 정도를 진료할 때 병원의 현상유지 정도를 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이 원장의 설명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60명은 봤어요. 작년에는 재작년 대비 18% 정도 매출이 줄었고, 올해는 또 작년보다 5% 정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물리치료사를 한 명 고용했는데 지출만 더 늘어났습니다. 물리치료사가 환자를 하루에 20명 정도 보는데, 진료비가 한 명당 3900원입니다. 그럴 경우 하루 약 8만원, 25일 하면 200만원입니다. 이 돈으로 물리치료사 월급 주고 나면 없어요. 이익 때문이 아니라 잠재적인 환자 유치 차원에서 물리치료를 하는 거죠.”
전국 의사 약 10만명, 매년 3500명씩 졸업생 배출
―환자 50명을 본다고 했을 때 한 달에 얼마의 매출이 발생하나요.
“우리 병원의 손님은 전부 급여(건강보험지급) 환자니까 손님당 하루에 1만원 혹은 1만2000원 정도의 진료비를 부담합니다. 1만2000원으로 계산하면 하루 60만원, 한 달 1500만원입니다. 여기에 내과니까 내시경 검사 등 비급여 진료로 액수가 좀 늘어나죠. 그러니 60명을 본다고 해도 월 매출이 2000만원 초반대에서 맴돕니다.”
―영업시간을 좀 늘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해 봐야 신규 환자가 창출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시간대만 분산됩니다. 간호사 비용도 더 발생하고요.”
―주변에 경쟁 내과의원이 많습니까.
“여기서 200m 주변에 내과 세 곳과 가정의학과 두 곳이 있어요.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도 자꾸 병원이 느는 이유는 전문의 자격증 따서 큰 병원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 큰 병원에서는 신규 의사들이 자꾸 들어오니까 나이 먹어서도 계속 월급 받고 있기도 어렵습니다. 1500만원 월급 받으려면 병원 오너에게 2000만원은 벌어 줘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입니까?”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의사는 10만명 정도이며, 매년 3500명씩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올해 초 치른 전문의 자격시험에는 약 3000명이 응시해서 97%의 합격률을 보였다.
―의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당장 가장 먼저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수가 현실화죠. 현재의 의료수가는 원가의 70%가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1만원 진료비로 하루 50명을 보는 구조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답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이런 여건에서는 현실적으로 의원 경영이 어려운데, 지금처럼 저수가로 묶어 놓는 것은 의사보고 딴짓 해서 돈 벌어서 알아서 먹고살라는 뜻이죠.”
이 원장은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서 병원을 열든, 경력이 30년이든, 1년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의료수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아무리 환자를 열심히 치료해도 의원 경영환경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작년에 어느 병원에서 월급 1500만원에 스카우트 제의가 왔는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선뜻 옮기지 못한 이유는 큰 병원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릅니다. 그 후에는 대책이 없어요. 그런 현실적인 두려움 때문에 차마 병원을 정리하지 못하겠더군요. 요즘은 월급 500만~600만원 받는 페이 닥터도 경쟁이 심해 자리가 없습니다.”
내과의원 중 ‘헝그리 닥터’가 30%
이 원장은 “8년 전 부모님이 살고 있던 집을 판 돈 3억3000만원으로 개원했다”며 “지금도 그 돈을 갚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과 개원하는 데 3억5000만원 정도는 우습게 들어갑니다. 보증금 5000만원, 권리금 6000만~7000만원, 대장내시경 장비 6000만원, 기타 의료기기 1억원, 인테리어 7000만원….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3억8000만원 가까이 들잖습니까. 3억원 투자해서 이 고생할 것 같으면 그 돈으로 이자받고 사는 게 더 편하죠. 부모님 고생 안 시키고….”
―의사를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친구들이 의사라고 하면 고소득자인 줄 알고, 집안에서도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득이 빤하기 때문에 막상 경조사 때나 친척 아이들 용돈 줄 때는 부담이 되죠. 저는 아직 외국에 한 번도 못 가봤습니다. 휴가도 3박4일 이상 내 본 적도 없고요. 그래도 주변에 하루 30명 환자 보는 친구보다는 낫습니다. 내과의원 家(가)에서 헝그리 닥터가 30%가 넘습니다.”
이동일 원장의 이 말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林錦子(임금자) 연구위원은 “의사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드러내 놓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임 박사의 말.
“의사들 대부분이 학교 다닐 때는 톱(Top)을 달렸던 이들입니다. 개인병원을 하는 분들도 자기사업을 하는 건데, 의사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어려운 모습을 주변에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취재 중 개인의원을 운영하다 힘이 들어 그만두고 월급의사를 하는 S(51)씨를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나는 경영에 실패한 의사인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며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는 충북 음성, 대전 등지에서 개원의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현재는 서울의 한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선교 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S 과장의 말.
“몇 년 전 한 종합병원에 근무했는데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 의사 15명이 모두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서로 이야기하지 않다가 무슨 계기로 그 이야기를 하게 돼서 알게 된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 대부분 한 번 개원했던 분들이었는데, 일단 개원했다 접으면 빚이 2억~3억원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됩니다. 의사들은 신용으로 2억원을 대출해 주니까 빚 내기도 쉬워요. 그러니 대부분이 準(준) 신용불량자죠.”
심평원이 의사를 잠재적 비도덕 집단으로 간주
―개인의원은 왜 그만두셨습니까.
“저는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의 축을 종합병원 위주로 끌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의원의 정당한 의료행위를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수술을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놓아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왜 의원에서 이런 수술을 했느냐’며 의료비를 삭감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개별 의원에서 수가 청구를 하면 심평원에서는 ‘준다’ ‘못 준다’는 것을 코드로 표시해서 의원에 돌려보냅니다. 그것을 보고 재청구나 삭감된 진료항목을 알 수 있어요. 어느 날 저는 디스크 환자를 수술해서 200만원을 청구했는데, 건보공단에서 1만원을 입금해 놓고는 재청구하라는 코드를 부여했습니다. 의사들은 바쁘기 때문에 1만원 정도의 재청구 코드가 오면 대부분 약값에서 삭감되나 보다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수술한 환자 진료비를 그렇게 한 것을 알고 기가 막혔습니다.”
S 과장은 “재청구 진료비는 3개월 내 재청구를 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심평원은 평소에도 자신 있게 ‘너희가 아무리 의료수가를 올려도 우리는 모두 다시 토해내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비도덕적으로 한 것도 없는데 심평원이나 건강보험공단은 의사를 이런 식으로 잠재적 비도덕 집단이라고 전제해 놓고 정책을 펴니까 의사로서 프라이드가 없어지더군요. 그 외에도 환자들에게 좋은 약 못 쓰게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S 과장은 “우리나라의 의료 문제는 거대한 시한폭탄을 안고 가면서 서로 모른 척 회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급여환자 진료해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에 똑똑한 의사들이 돈이 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쪽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건 국가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하루에 80명의 환자를 보면 웬만큼 생활은 할 수 있는데, 교통 발달로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몰리기 때문에 의사들의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S 과장은 “국내 의료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욕심을 버렸다”며 “조만간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다니면서 인생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제가 일하는 병원은 180베드인데 한 달에 1억원씩 적자가 난다고 들었습니다. 적자 난 금액은 기독교 단체에서 메워 주고 있습니다. 환자 숫자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는 400베드 이상이 되어야 흑자입니다. 300베드는 현상 유지, 200베드는 도산입니다.”
치료방법, 약 사용까지 획일적으로 규정
경기도립의료원인 의정부병원 金永贊(김영찬ㆍ53) 원장은 서울 강남에서 남성클리닉을 운영하다 그만두고 현재는 의정부병원장을 맡고 있다. 김 원장은 1990년 초반 국내에 남성갱년기 문제를 처음 소개하고, 그 분야 진료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남성 클리닉을 하면서 이름이 알려져 돈을 많이 벌었으나 다시는 개인병원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들을 걸면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의사들이 본의 아니게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도 많습니다. 진료상 필요한 항생제도 잘못 썼다가는 진료비가 삭감되기 때문에 쓸 수가 없어요.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의사의 경험이나 환자 상태에 따라 더 좋은 치료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에서는 치료방법부터, 약 사용까지 획일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마음대로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김영찬 원장은 “의사 입장에서 비급여 약품 중에 병에 잘 듣는 약이 있어서 환자 동의하에 쓰더라도 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도 걸립니다. 그러고는 그 약값의 몇 배를 물어야 합니다. 잘하려고 할수록 잘못했다는 소리밖에 듣는 것이 없으니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병원을 운영합니까.
그리고 솔직히 현재의 수가제도에서 개원의들이 살아남기 위해 환자에게 이것저것 비급여 항목을 갖다 붙여서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도 환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다 걸리게 돼 있습니다.”
―김 원장 주변에서 개원의를 하다가 그만둔 동료 의사들을 자주 보셨습니까.
“비일비재하죠. 저와 친한 유명한 교수 두 분이 개업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쉬고 있습니다. 비뇨기과는 환자가 고정된 편이라 병원을 운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고정된 환자를 가지고 영업을 하려니까 질환을 자꾸 개발해야 하죠. 예를 들어 예전에 없던 음경확대술 같은 것이 그런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나눠 가질 게 없으니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 원장께서 운영한 의원은 잘됐다면서 굳이 의원을 그만둘 이유가 있었습니까.
“저는 예전부터 교수가 되고 싶어서 미국 유학도 하고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개원의를 하면서도 남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제가 가진 지식으로 좀 더 큰 틀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병원장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현행 의료법에서는 병원을 키우면 키울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저촉되는 항목이 늘어납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너희도 한번 당해 봐라”
―정부에서도 개원의들이 처한 문제점을 잘 알 텐데 왜 제도개선을 하지 않는다고 보시는지요.
“지금의 제도는 의사는 비록 피해를 보지만 많은 사람이 싼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보고 유지하는 것이겠죠. 문제는 이런 제도가 의사의 희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문제가 곪아서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죠.”
김영찬 원장은 “의료정책이나 제도보다 의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환자들이 의사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국민 중에는 아직도 1970~80년대 의사들에게 가졌던 반감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솔직히 100명이면 100명의 의사가 모두 잘 먹고 잘살았거든요. 이제 와서 어렵다고 하니 국민들은 속으로 ‘너희도 한번 당해 봐라’ 하는 거죠.”
100~300베드 규모의 중소병원들의 상황도 개원가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료계에서는 중소기업 수준인 매출 300억원 정도에 상시 근로자 300인 정도이면 중소병원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다. 우리나라 중소병원은 요양병원까지 합해 1900개 정도 된다. 대한병원협회에 의하면 2008년 들어서 중소병원의 부도율이 10%를 넘어섰다.
대한중소병원협의회 權泳郁(권영욱·54·천안충무병원 이사장) 회장은 “우리나라의 병원 총수가 2100개인데 그중에 1940여 개가 중소병원”이라며 “중소병원 중 630개가 의료법인이고, 1100개 정도가 개인병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병원은 과거에는 병상 가동률이 60~80% 정도 되었으나, 지금은 40~60% 수준으로 떨어져 병원 운영을 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고 밝혔다.
2008년 보건복지부에서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 대한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평균 의료수익 순이익률은 2.0%로, 이는 제조업 5.3%, 서비스업 4.6%에 비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욱 회장의 설명이다.
“중소병원이 어려운 것은 의료시스템 문제 때문입니다. 현재 1차, 2차, 3차 진료 순으로 나뉘어 있는 의료전달 체계가 붕괴되어 대학병원 위주로 환자가 몰리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대형 종합병원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너도나도 종합병원行
권 회장은 “현재 1900개 중소병원에서 대한민국 의료급여 환자의 90%, 응급환자의 80%를 담당하고 있다”며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간 의료기관이 없어지면 의료마비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중소병원이 문을 닫으면 상급병원이 중소병원을 인수해서 프렌차이즈 형태로 운영할 텐데 그렇게 되면 의료비가 더 비싸지고,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루빨리 의료체계를 바로잡아 병원의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의원, 중소병원, 대학병원이 각자 역할에 맞는 일을 해야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어요.”
권 원장은 “대학병원은 중환자를 보고, 연구중심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新藥(신약) 하나만 잘 개발해도 100조원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데 대학병원이 외래환자 유치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은 제약, 신의료기술, 바이오, 장비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해서 의료 선진국의 한 軸(축)을 담당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런 방향에서 의료정책을 이끌어 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의원이나 중소병원은 질병예방산업, 검진산업, 기타 진료에 매진할 수 있고, 국민의료비도 줄어들고, 건보재정도 튼튼해질 것입니다.”
권 회장은 “어쨌든 지금은 개원의, 중소병원, 대학병원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며 “이는 근본적으로 의료제도가 저수가·고효율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의사회 羅賢(나현·54·가든안과의원 원장) 회장은 “의사회 선거 때문에 110군데의 의원을 다녔는데 진료 환자를 보기 어려웠다”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전과 달리 의사들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이제는 아무리 힘들다고 이야기해 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포기한 것 같습니다. 의료수가는 오르지 않지, 환자는 줄어들지, 규제와 통제는 많지, 수입은 주는데 지출은 계속 늘기만 하지…. 의사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나현 회장은 “개원의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의 양극화 현상”이라며 “상위 20%의 잘되는 의원이 전체 의료계 매출의 80%를 가져가는 속칭 ‘2080’구조가 고착되어 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자기 전문 분야도 아닌 의사들이 미용이나 성형 쪽으로 몰리겠습니까. 산부인과는 이미 많이 문을 닫았고, 있는 병원도 거의 파산 직전입니다. 소아과도 마찬가지고요. 또 차등수가제라 해서 환자가 75명 이상 되면 건강보험공단은 수가를 100% 전액을 주지 않고, 일정 비율로 깎아서 주는데, 이 세상 어느 상거래 행위에 이런 규정이 있습니까.”
醫藥분업으로 의원 결정적 타격
나현 회장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병에 맞춰서 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의료수가에 맞춰서 진료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崔宗鉉(최종현) 사무총장은 “정부는 능력은 안되면서 보장성만 강화해 주려고 하다 보니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담뱃세로 건강보험 재정이 2조원가량 흑자로 돌아서자 정부는 2006년 곧바로 병원 食代(식대)를 보험처리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본인 부담률 20%). 의료계에서는 그렇게 하면 금방 재정이 적자가 난다고 반대했는데, 결국 강행했습니다. 그러자 6개월도 안 가서 재정이 악화됐어요. 이런 것이 능력은 안되는데 추진한 대표적인 선심성 행정의 사례입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매년 ‘의원 경영실태 조사’라는 보고서를 발행한다. 이 조사를 진행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임금자 연구위원을 만나 우리나라 개원의가 처해 있는 전반적 상황에 대해 들어 보았다.
임금자 박사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시장규모(약국 포함)는 2000년 13조원에서 2008년 35조원으로 증가했다”며 “시장 규모가 커졌으면 이 시장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의 경영성과도 상당히 향상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의원의 건강보험시장 점유율(급여비 점유율)은 2000년에 35%였습니다. 그러나 이 비율이 매년 감소하여 2008년에는 23%로 떨어집니다. 약국이나 종합병원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급격히 감소한 곳은 의원밖에 없습니다. 결국 의료계에서 건강보험 총액을 놓고 서로 나눠 가져야 하는 구조에서 약국이 상대적으로 운영이 좋아졌고, 의원 경영환경은 악화됐다는 뜻입니다.”
임 박사는 “의료기관을 하나의 사업체로 봤을 때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은 약품판매 사업부문 하나를 강제로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문제는 의약품에서 나오던 수익을 대체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의원당 건강보험 매출액(건강보험 급여비) 변동 추세를 살펴보면 의약분업을 한 2001년 2억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2006년에 가서도 매출은 2억7400만원에 그쳤다. 임금자 박사의 설명이다.
의사 희생 계속 강요하면…
“2001년에 의료수가를 그 전해에 비해 14% 정도 올렸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것은 의사들을 의약분업에 참여시키려는 당근 정책이었습니다. 14%를 올려도 당시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의 80%에 불과했으니까,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범위에서 올린 것이죠. 어쨌든 그렇게 해서 2001년 의원당 매출이 2000년에 비해 좀 늘었는데, 그 다음해부터 수가를 확 깎아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에 가서야 2001년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임 박사는 “2006년 수가가 2001년 수준이면 그 사이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수가가 올랐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철저하게 정부에 속은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원가수준에 도달하려면 현재의 수가보다 33.3%가 증가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 국민은 100원짜리 상품을 75원에 사 가는 격”이라면서 “이는 건강보험은 원가 이하로 서비스를 하되, 대신 비보험 진료를 많이 해서 이익을 내 의원을 운영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의사협회의 ‘의원 경영실태조사’에 의하면 2008년 의원을 찾는 외래환자 수는 2007년 하루 평균 63.6명이었으나, 2008년에는 58.8명으로 4.6명이 감소했다. 개원의들은 週(주) 6일 진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 가운데 90% 이상은 토요일인데도 5시간 이상을 진료하고 있었다. 조사대상 의원의 13.1%는 주 7일 진료를 하고 있었다.
의원의 주당 평균 진료시간은 55.5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보다 15.5시간 더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경영실태조사에서 ‘경영수입에 따른 현재의 심정’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52.5%) 의원들이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계속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할 만하다’고 대답한 의원은 37%, ‘변함없이 좋다’라는 응답은 全無(전무)했다.
개원의들이 바라는 의원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는 응답 의원의 40.6%가 ‘수가 수준을 개선해 달라’는 항목을 선택했다.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항목은 ‘수가 구조를 개선해 달라(28.9%)’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을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가느냐’는 질문에는 23.9%가 ‘대체의학으로 시술한다’고 대답해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비만클리닉(14.9%)과 타과진료(14.9%)라는 응답이 같은 비율로 나왔고, 건강기능식품판매(9%), 성형(10.4%)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임 박사는 “의원들이 오죽 어려우면 자기 전공을 회피하고 다른 것을 하려고 하는지 국민과 정책 당국자들이 좀 알았으면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의료공급자를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몰아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어요. 의사에게 희생만 강요하면 한 세대 안에 의사가 사라질 겁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에서 파티마의원을 운영하는 張賢載(장현재ㆍ49) 원장은 “개원의들은 능력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겁이 나 주변에 드러내 놓고 힘들다는 이야기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며 “언제부터 이 나라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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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현재 노원구 의사회 회장(파티마의원 원장). |
“의사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돈만 밝히거나,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의 의료 酬價(수가)나 의료환경으로는 개인의원들이 더 버틸 수가 없어요.”
장 원장은 “자료에 의하면 38세에 개원해 44세에 폐업하는 개원의들이 가장 많은데 이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문을 닫고 奉職醫師(봉직의사, Pay Doctor)로 돌아가는 의사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봉직의도 경쟁이 높아서 급여가 떨어지고 있고, 의사들이 응급실 당직을 하며 연명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는 개원하는 의료기관 보다 폐원하는 의료기관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폐업신고를 한 病醫院(병·의원)은 2006년 1901곳, 2007년 2147곳, 2008년 2218곳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개원 비율은 2007년 38.6%에서 2008년에는 37.2%로 줄었다.
2008년 대한의사협회(회장 慶晩浩)의 ‘의원 경영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負債(부채)를 안고 있는 의원이 전체 의원의 46%에 달하고, 의원 1곳당 평균 부채는 3억9159만원, 이들이 부담하고 있는 이자비용은 월 평균 251만원으로 나타났다. 또 의원 개설에는 평균 5억3893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과의원이 처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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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8월 의약 분업이 결정돼 전국의 동네의원들이 폐업을 하자, 종합병원은 보호자 대기실까지 환자가 몰려들었다. 사진은 당시 서울대병원. |
“개인병원이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원장님 병원도 손님이 없는 겁니까?”
이 원장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개인병원 원장이 언론에 대놓고 ‘우리 병원은 손님이 없다’고 광고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근근이 운영할 정도는 되니까 하는 거죠.”
사실 필자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여러 번 ‘딜레마’에 빠졌다. 개원의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취재하려고 했으나 선뜻 나서는 의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렵게 취재에 응해 준 개원의를 ‘잘 안되는 병원’의 사례에 집어넣어 소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환자’만 취급하는 동네의원들은 운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개원의 사례’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슐다이스외과는 탈장과 맹장염, 치질 수술 등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의원이다. 이 원장은 5년 전 이 병원을 개원했다. 맹장염의 경우 노원구에서 유일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원이라고 한다. 슐다이스외과는 수술환자 같은 입원 환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병실 4개와 12개의 베드(침대)가 갖춰져 있다. 당직 간호사를 포함, 5명의 간호사가 근무한다.
이동일 원장은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려면 하루에 입원수술이 1건 이상, 한 달에 30건은 되어야 유지를 할 수 있다”며 “현재 우리 병원의 경우 그 정도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개인의원이 한 달에 30건의 수술을 하면 페이 닥터(봉직의) 수준의 소득을 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개인의원은 이 정도 소득을 보고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죠. 그래서 동네의 외과클리닉(외과의원)이 자꾸 없어지고 있습니다. 외과클리닉이 없어지니까, 국민은 모든 수술은 종합병원에서만 하는 줄 알고 그쪽으로만 몰립니다.”
외과의원의 90%가 다른 쪽으로 轉科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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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일 슐다이스외과 원장. |
“문제는 종합병원은 진료비에 30~50% 할증이 붙기 때문에 국민이 불필요한 의료비를 많이 지출한다는 데 있습니다. 또 사람이 많이 몰리면서 점점 수술하는 공장처럼 변하고 있어 의료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도 종합병원에만 환자가 몰리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의료환경으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사 구성을 보면 병원의 페이 닥터로 50% 정도가 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개원가에 흩어져 있습니다. 페이 닥터들 절반 이상은 準(준) 종합병원인 중소형 병원에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개원 대기상태에 있고, 종합병원 의사들도 피라미드형 인력 구조 때문에 결국은 밀려나 개원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개원가가 쓰러지면 이 사람들은 공중에 붕 떠버리게 됩니다.”
―이 원장님 의원의 경우 노원구의 외과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탈장과 맹장염 수술도 하고 있고, 인근 區民(구민)까지 합하면 잠재적 손님이 많을 텐데, 그렇다면 일종의 독점 영업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지요.
“종합병원들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은연중에 자기들이 안전하다는 광고를 많이 합니다. 특히 작은 성형 의료사고라도 한 번 나 보세요. 언론은 ‘개인병원’에서 수술하다가 사고 났다고 강조합니다. 언론에 개인병원의 사소한 수술 부작용이 보도되면 그 불똥은 곧바로 수술을 하는 외과병원으로 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것이 쌓이면서 국민은 은연중에 개인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내가 맹장과 탈장 수술을 많이 했고,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나도 손님들이 느끼는 그런 불안감까지 극복해 내기란 어렵습니다.”
이동일 원장은 “지금 외과의원의 90%가 내과나 소아과, 가정의학과로 전과를 한 상태”라며 “외과의원을 한다고 해도 리스크가 큰 수술은 안 하고, 수술위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하지정맥류나 비만수술 쪽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일반의로 개업했다가 외과가 좋아 외과의원을 개업했습니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할 줄 알았어요. 솔직히 개원가의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외과의원을 하라고 권할 수가 없습니다.”
“알아서 먹고살라는 뜻”
이 원장은 “개원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낮은 의료수가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며 “의료환경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우리나라의 수가제도는 1970년대 만들어진 이후 크게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현재 낮은 의료수가는 도시화가 그다지 진행되지 않은 1970년대 정해진 것입니다. 당시는 병원임차료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고, 의사들도 약값에서 마진을 많이 남길 때니까 큰 불만이 없었죠. 지금은 임차료도 비싸졌고, 高價(고가) 장비도 많이 사야 하는 등 의료환경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맹장염 한 건 수술하는 데 기준수가가 20만원인데, 맹장염 수술 한 건을 하자면 의사 한 명, 간호사 두 명을 포함 최소 세 명이 필요합니다. 20만원에 인건비, 재료비, 임차료 등이 다 포함되지만, 의료소송에 대한 리스크 비용은 포함이 안되어 있어요. 제 경험으로 볼 때 외과의원은 지금보다 수가가 세 배는 인상돼야 수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의사들을 이렇게 살인적인 低(저)수가로 묶어 놓고 알아서 생존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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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돈 을지내과 원장. |
“내과의원의 경우 연간 평균 매출이 2억4000만원을 넘는 의원 비율이 50%가 안됩니다. 서울지역만 보면 30% 수준입니다. 연 2억4000만원이면 한 달에 2000만원 정도의 매출입니다. 여기에 개업할 때 보통 3억원 정도를 빌리는데 이에 대한 이자 200만원, 간호사 두 명에 400만원, 월세 200만~300만원, 의료소모품비, 잡비, 통신비 등을 합치면 고정 지출비용이 1200만~1400만원 정도 나갑니다. 여기서 남는 돈을 집에 가져갑니다. 의사는 고도의 전문직인데 다른 전문직종과 비교했을 때 비참한 게 사실이죠.”
이정돈 을지내과 의원 원장은 “요즘 하루 평균 50명의 환자도 보지 못한다”며 달력에 표시해 둔 외래환자 진료 숫자를 월별로 통계 낸 자료를 보여주었다. 1월 50명, 2월 40명, 3월 44명, 4월 42명, 5월 44명, 6월 38명이었다. 개원가에서는 보통 하루 환자 50명 정도를 진료할 때 병원의 현상유지 정도를 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이 원장의 설명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60명은 봤어요. 작년에는 재작년 대비 18% 정도 매출이 줄었고, 올해는 또 작년보다 5% 정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물리치료사를 한 명 고용했는데 지출만 더 늘어났습니다. 물리치료사가 환자를 하루에 20명 정도 보는데, 진료비가 한 명당 3900원입니다. 그럴 경우 하루 약 8만원, 25일 하면 200만원입니다. 이 돈으로 물리치료사 월급 주고 나면 없어요. 이익 때문이 아니라 잠재적인 환자 유치 차원에서 물리치료를 하는 거죠.”
전국 의사 약 10만명, 매년 3500명씩 졸업생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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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 환자로 북적이는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소한 질병에도 종합병원을 찾는다. |
“우리 병원의 손님은 전부 급여(건강보험지급) 환자니까 손님당 하루에 1만원 혹은 1만2000원 정도의 진료비를 부담합니다. 1만2000원으로 계산하면 하루 60만원, 한 달 1500만원입니다. 여기에 내과니까 내시경 검사 등 비급여 진료로 액수가 좀 늘어나죠. 그러니 60명을 본다고 해도 월 매출이 2000만원 초반대에서 맴돕니다.”
―영업시간을 좀 늘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해 봐야 신규 환자가 창출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시간대만 분산됩니다. 간호사 비용도 더 발생하고요.”
―주변에 경쟁 내과의원이 많습니까.
“여기서 200m 주변에 내과 세 곳과 가정의학과 두 곳이 있어요.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도 자꾸 병원이 느는 이유는 전문의 자격증 따서 큰 병원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 큰 병원에서는 신규 의사들이 자꾸 들어오니까 나이 먹어서도 계속 월급 받고 있기도 어렵습니다. 1500만원 월급 받으려면 병원 오너에게 2000만원은 벌어 줘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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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2월 여의도 광장에서 의사와 의료인 가족 3만여 명이 정부의 의약분업 실행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의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당장 가장 먼저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수가 현실화죠. 현재의 의료수가는 원가의 70%가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1만원 진료비로 하루 50명을 보는 구조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답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이런 여건에서는 현실적으로 의원 경영이 어려운데, 지금처럼 저수가로 묶어 놓는 것은 의사보고 딴짓 해서 돈 벌어서 알아서 먹고살라는 뜻이죠.”
이 원장은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서 병원을 열든, 경력이 30년이든, 1년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의료수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아무리 환자를 열심히 치료해도 의원 경영환경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작년에 어느 병원에서 월급 1500만원에 스카우트 제의가 왔는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선뜻 옮기지 못한 이유는 큰 병원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릅니다. 그 후에는 대책이 없어요. 그런 현실적인 두려움 때문에 차마 병원을 정리하지 못하겠더군요. 요즘은 월급 500만~600만원 받는 페이 닥터도 경쟁이 심해 자리가 없습니다.”
내과의원 중 ‘헝그리 닥터’가 30%
이 원장은 “8년 전 부모님이 살고 있던 집을 판 돈 3억3000만원으로 개원했다”며 “지금도 그 돈을 갚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과 개원하는 데 3억5000만원 정도는 우습게 들어갑니다. 보증금 5000만원, 권리금 6000만~7000만원, 대장내시경 장비 6000만원, 기타 의료기기 1억원, 인테리어 7000만원….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3억8000만원 가까이 들잖습니까. 3억원 투자해서 이 고생할 것 같으면 그 돈으로 이자받고 사는 게 더 편하죠. 부모님 고생 안 시키고….”
―의사를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친구들이 의사라고 하면 고소득자인 줄 알고, 집안에서도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득이 빤하기 때문에 막상 경조사 때나 친척 아이들 용돈 줄 때는 부담이 되죠. 저는 아직 외국에 한 번도 못 가봤습니다. 휴가도 3박4일 이상 내 본 적도 없고요. 그래도 주변에 하루 30명 환자 보는 친구보다는 낫습니다. 내과의원 家(가)에서 헝그리 닥터가 30%가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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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의사들 대부분이 학교 다닐 때는 톱(Top)을 달렸던 이들입니다. 개인병원을 하는 분들도 자기사업을 하는 건데, 의사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어려운 모습을 주변에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취재 중 개인의원을 운영하다 힘이 들어 그만두고 월급의사를 하는 S(51)씨를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나는 경영에 실패한 의사인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며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는 충북 음성, 대전 등지에서 개원의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현재는 서울의 한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선교 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S 과장의 말.
“몇 년 전 한 종합병원에 근무했는데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 의사 15명이 모두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서로 이야기하지 않다가 무슨 계기로 그 이야기를 하게 돼서 알게 된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 대부분 한 번 개원했던 분들이었는데, 일단 개원했다 접으면 빚이 2억~3억원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됩니다. 의사들은 신용으로 2억원을 대출해 주니까 빚 내기도 쉬워요. 그러니 대부분이 準(준) 신용불량자죠.”
심평원이 의사를 잠재적 비도덕 집단으로 간주
―개인의원은 왜 그만두셨습니까.
“저는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의 축을 종합병원 위주로 끌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의원의 정당한 의료행위를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수술을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놓아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왜 의원에서 이런 수술을 했느냐’며 의료비를 삭감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개별 의원에서 수가 청구를 하면 심평원에서는 ‘준다’ ‘못 준다’는 것을 코드로 표시해서 의원에 돌려보냅니다. 그것을 보고 재청구나 삭감된 진료항목을 알 수 있어요. 어느 날 저는 디스크 환자를 수술해서 200만원을 청구했는데, 건보공단에서 1만원을 입금해 놓고는 재청구하라는 코드를 부여했습니다. 의사들은 바쁘기 때문에 1만원 정도의 재청구 코드가 오면 대부분 약값에서 삭감되나 보다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수술한 환자 진료비를 그렇게 한 것을 알고 기가 막혔습니다.”
S 과장은 “재청구 진료비는 3개월 내 재청구를 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심평원은 평소에도 자신 있게 ‘너희가 아무리 의료수가를 올려도 우리는 모두 다시 토해내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비도덕적으로 한 것도 없는데 심평원이나 건강보험공단은 의사를 이런 식으로 잠재적 비도덕 집단이라고 전제해 놓고 정책을 펴니까 의사로서 프라이드가 없어지더군요. 그 외에도 환자들에게 좋은 약 못 쓰게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S 과장은 “우리나라의 의료 문제는 거대한 시한폭탄을 안고 가면서 서로 모른 척 회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급여환자 진료해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에 똑똑한 의사들이 돈이 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쪽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건 국가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하루에 80명의 환자를 보면 웬만큼 생활은 할 수 있는데, 교통 발달로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몰리기 때문에 의사들의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S 과장은 “국내 의료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욕심을 버렸다”며 “조만간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다니면서 인생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제가 일하는 병원은 180베드인데 한 달에 1억원씩 적자가 난다고 들었습니다. 적자 난 금액은 기독교 단체에서 메워 주고 있습니다. 환자 숫자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는 400베드 이상이 되어야 흑자입니다. 300베드는 현상 유지, 200베드는 도산입니다.”
치료방법, 약 사용까지 획일적으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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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찬 의정부병원 원장(경기도립의료원). |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들을 걸면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의사들이 본의 아니게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도 많습니다. 진료상 필요한 항생제도 잘못 썼다가는 진료비가 삭감되기 때문에 쓸 수가 없어요.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의사의 경험이나 환자 상태에 따라 더 좋은 치료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에서는 치료방법부터, 약 사용까지 획일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마음대로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김영찬 원장은 “의사 입장에서 비급여 약품 중에 병에 잘 듣는 약이 있어서 환자 동의하에 쓰더라도 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도 걸립니다. 그러고는 그 약값의 몇 배를 물어야 합니다. 잘하려고 할수록 잘못했다는 소리밖에 듣는 것이 없으니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병원을 운영합니까.
그리고 솔직히 현재의 수가제도에서 개원의들이 살아남기 위해 환자에게 이것저것 비급여 항목을 갖다 붙여서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도 환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다 걸리게 돼 있습니다.”
―김 원장 주변에서 개원의를 하다가 그만둔 동료 의사들을 자주 보셨습니까.
“비일비재하죠. 저와 친한 유명한 교수 두 분이 개업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쉬고 있습니다. 비뇨기과는 환자가 고정된 편이라 병원을 운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고정된 환자를 가지고 영업을 하려니까 질환을 자꾸 개발해야 하죠. 예를 들어 예전에 없던 음경확대술 같은 것이 그런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나눠 가질 게 없으니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 원장께서 운영한 의원은 잘됐다면서 굳이 의원을 그만둘 이유가 있었습니까.
“저는 예전부터 교수가 되고 싶어서 미국 유학도 하고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개원의를 하면서도 남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제가 가진 지식으로 좀 더 큰 틀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병원장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현행 의료법에서는 병원을 키우면 키울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저촉되는 항목이 늘어납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너희도 한번 당해 봐라”
―정부에서도 개원의들이 처한 문제점을 잘 알 텐데 왜 제도개선을 하지 않는다고 보시는지요.
“지금의 제도는 의사는 비록 피해를 보지만 많은 사람이 싼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보고 유지하는 것이겠죠. 문제는 이런 제도가 의사의 희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문제가 곪아서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죠.”
김영찬 원장은 “의료정책이나 제도보다 의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환자들이 의사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국민 중에는 아직도 1970~80년대 의사들에게 가졌던 반감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솔직히 100명이면 100명의 의사가 모두 잘 먹고 잘살았거든요. 이제 와서 어렵다고 하니 국민들은 속으로 ‘너희도 한번 당해 봐라’ 하는 거죠.”
100~300베드 규모의 중소병원들의 상황도 개원가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료계에서는 중소기업 수준인 매출 300억원 정도에 상시 근로자 300인 정도이면 중소병원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다. 우리나라 중소병원은 요양병원까지 합해 1900개 정도 된다. 대한병원협회에 의하면 2008년 들어서 중소병원의 부도율이 10%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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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욱 대한중소병원협의회 회장(천안충무병원 이사장). |
그는 “중소병원은 과거에는 병상 가동률이 60~80% 정도 되었으나, 지금은 40~60% 수준으로 떨어져 병원 운영을 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고 밝혔다.
2008년 보건복지부에서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 대한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평균 의료수익 순이익률은 2.0%로, 이는 제조업 5.3%, 서비스업 4.6%에 비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욱 회장의 설명이다.
“중소병원이 어려운 것은 의료시스템 문제 때문입니다. 현재 1차, 2차, 3차 진료 순으로 나뉘어 있는 의료전달 체계가 붕괴되어 대학병원 위주로 환자가 몰리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대형 종합병원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너도나도 종합병원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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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의 한 종합병원 신생아실. 출산 감소의 영향 때문에 신생아실이 썰렁하다. 동네의 산부인과 병원은 낮은 수가와 저출산 등으로 이미 상당수가 도산한 상태다. |
“중소병원이 문을 닫으면 상급병원이 중소병원을 인수해서 프렌차이즈 형태로 운영할 텐데 그렇게 되면 의료비가 더 비싸지고,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루빨리 의료체계를 바로잡아 병원의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의원, 중소병원, 대학병원이 각자 역할에 맞는 일을 해야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어요.”
권 원장은 “대학병원은 중환자를 보고, 연구중심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新藥(신약) 하나만 잘 개발해도 100조원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데 대학병원이 외래환자 유치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은 제약, 신의료기술, 바이오, 장비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해서 의료 선진국의 한 軸(축)을 담당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런 방향에서 의료정책을 이끌어 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의원이나 중소병원은 질병예방산업, 검진산업, 기타 진료에 매진할 수 있고, 국민의료비도 줄어들고, 건보재정도 튼튼해질 것입니다.”
권 회장은 “어쨌든 지금은 개원의, 중소병원, 대학병원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며 “이는 근본적으로 의료제도가 저수가·고효율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의사회 羅賢(나현·54·가든안과의원 원장) 회장은 “의사회 선거 때문에 110군데의 의원을 다녔는데 진료 환자를 보기 어려웠다”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전과 달리 의사들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이제는 아무리 힘들다고 이야기해 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포기한 것 같습니다. 의료수가는 오르지 않지, 환자는 줄어들지, 규제와 통제는 많지, 수입은 주는데 지출은 계속 늘기만 하지…. 의사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나현 회장은 “개원의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의 양극화 현상”이라며 “상위 20%의 잘되는 의원이 전체 의료계 매출의 80%를 가져가는 속칭 ‘2080’구조가 고착되어 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자기 전문 분야도 아닌 의사들이 미용이나 성형 쪽으로 몰리겠습니까. 산부인과는 이미 많이 문을 닫았고, 있는 병원도 거의 파산 직전입니다. 소아과도 마찬가지고요. 또 차등수가제라 해서 환자가 75명 이상 되면 건강보험공단은 수가를 100% 전액을 주지 않고, 일정 비율로 깎아서 주는데, 이 세상 어느 상거래 행위에 이런 규정이 있습니까.”
醫藥분업으로 의원 결정적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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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현 서울시 의사회 회장(가든안과의원 원장). |
대한의사협회 崔宗鉉(최종현) 사무총장은 “정부는 능력은 안되면서 보장성만 강화해 주려고 하다 보니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담뱃세로 건강보험 재정이 2조원가량 흑자로 돌아서자 정부는 2006년 곧바로 병원 食代(식대)를 보험처리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본인 부담률 20%). 의료계에서는 그렇게 하면 금방 재정이 적자가 난다고 반대했는데, 결국 강행했습니다. 그러자 6개월도 안 가서 재정이 악화됐어요. 이런 것이 능력은 안되는데 추진한 대표적인 선심성 행정의 사례입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매년 ‘의원 경영실태 조사’라는 보고서를 발행한다. 이 조사를 진행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임금자 연구위원을 만나 우리나라 개원의가 처해 있는 전반적 상황에 대해 들어 보았다.
임금자 박사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시장규모(약국 포함)는 2000년 13조원에서 2008년 35조원으로 증가했다”며 “시장 규모가 커졌으면 이 시장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의 경영성과도 상당히 향상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의원의 건강보험시장 점유율(급여비 점유율)은 2000년에 35%였습니다. 그러나 이 비율이 매년 감소하여 2008년에는 23%로 떨어집니다. 약국이나 종합병원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급격히 감소한 곳은 의원밖에 없습니다. 결국 의료계에서 건강보험 총액을 놓고 서로 나눠 가져야 하는 구조에서 약국이 상대적으로 운영이 좋아졌고, 의원 경영환경은 악화됐다는 뜻입니다.”
임 박사는 “의료기관을 하나의 사업체로 봤을 때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은 약품판매 사업부문 하나를 강제로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문제는 의약품에서 나오던 수익을 대체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의원당 건강보험 매출액(건강보험 급여비) 변동 추세를 살펴보면 의약분업을 한 2001년 2억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2006년에 가서도 매출은 2억7400만원에 그쳤다. 임금자 박사의 설명이다.
의사 희생 계속 강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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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A성형외과 의원에서 방학을 맞은 여고생들이 성형 상담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개원의들이 건강보험의 비급여 진료가 많은 성형과 미용분야로 몰리고 있다. |
임 박사는 “2006년 수가가 2001년 수준이면 그 사이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수가가 올랐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철저하게 정부에 속은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원가수준에 도달하려면 현재의 수가보다 33.3%가 증가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 국민은 100원짜리 상품을 75원에 사 가는 격”이라면서 “이는 건강보험은 원가 이하로 서비스를 하되, 대신 비보험 진료를 많이 해서 이익을 내 의원을 운영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의사협회의 ‘의원 경영실태조사’에 의하면 2008년 의원을 찾는 외래환자 수는 2007년 하루 평균 63.6명이었으나, 2008년에는 58.8명으로 4.6명이 감소했다. 개원의들은 週(주) 6일 진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 가운데 90% 이상은 토요일인데도 5시간 이상을 진료하고 있었다. 조사대상 의원의 13.1%는 주 7일 진료를 하고 있었다.
의원의 주당 평균 진료시간은 55.5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보다 15.5시간 더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경영실태조사에서 ‘경영수입에 따른 현재의 심정’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52.5%) 의원들이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계속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할 만하다’고 대답한 의원은 37%, ‘변함없이 좋다’라는 응답은 全無(전무)했다.
개원의들이 바라는 의원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는 응답 의원의 40.6%가 ‘수가 수준을 개선해 달라’는 항목을 선택했다.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항목은 ‘수가 구조를 개선해 달라(28.9%)’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을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가느냐’는 질문에는 23.9%가 ‘대체의학으로 시술한다’고 대답해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비만클리닉(14.9%)과 타과진료(14.9%)라는 응답이 같은 비율로 나왔고, 건강기능식품판매(9%), 성형(10.4%)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임 박사는 “의원들이 오죽 어려우면 자기 전공을 회피하고 다른 것을 하려고 하는지 국민과 정책 당국자들이 좀 알았으면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의료공급자를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몰아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어요. 의사에게 희생만 강요하면 한 세대 안에 의사가 사라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