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화웨이가 무선 분야 장악… 미국, 화웨이 등 중국 통신 기업에 대한 제재 강화”
⊙ “국내 공공·민간 분야의 데이터센터, 외국산이 사실상 90% 이상 장악”
⊙ 우리나라는 통신 속도 면에서 유선 세계 25위, 무선 6위(2024년 기준)
⊙ “중국 통신사, 동남아 모 국가에서 통신사별로 수 테라 용량의 통화 내역을 감청하듯 가져가”
⊙ “통신 설비는 국가 안보와 직결. 통신 자립 없는 국가는 군대 없는 국가와 마찬가지”(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
⊙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에 들어가는 통신 네트워크 장비… 상당수 외국산
⊙ “국내 공공·민간 분야의 데이터센터, 외국산이 사실상 90% 이상 장악”
⊙ 우리나라는 통신 속도 면에서 유선 세계 25위, 무선 6위(2024년 기준)
⊙ “중국 통신사, 동남아 모 국가에서 통신사별로 수 테라 용량의 통화 내역을 감청하듯 가져가”
⊙ “통신 설비는 국가 안보와 직결. 통신 자립 없는 국가는 군대 없는 국가와 마찬가지”(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
⊙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에 들어가는 통신 네트워크 장비… 상당수 외국산
- 프랑스 정부가 2020년 7월,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는 통신사에 3~8년의 사업 면허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들의 통신사업 면허 갱신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IT 강국.
우리는 대한민국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나라는 단말기, 네트워크 모두에 5세대 이동통신의 후속 차원 기술인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5G는 스마트폰만으로 게임을 즐기고, VR을 통해 언제든지 가상세계에 가까워지는 기술이다.
하지만 국내 통신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5G 시대를 최초로 열면 IT 강국일까요? 통신망을 구성하는 내부 기기는 국산이 아니라 중국산(産)을 쓰고 있는데요? 2020년까지 한국은 유선·무선 통신 속도 면에서 최상위권이었지만, 2024년 현재 통신 속도 면에서 유선은 세계 25위, 무선은 6위입니다. 저희는 이렇게 봅니다. 몸뚱이는 허약한테, 체구가 좋아 보이게 풍성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요.”
트럼프 시대의 뜨거운 감자 ‘화웨이’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이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현실화가 됐고, 반도체·통신 네트워크·플랫폼 AI 등 ICT 산업 분야에 대한 제재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 중에서도 ‘화웨이’는 미·중 제재의 상징이다. 화웨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 장비 및 스마트폰 제조 업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5월 15일,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5G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화웨이와 미국 기업 간의 거래가 즉시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명령의 근거로 든 것은 ‘화웨이와 관련 회사가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구글은 2019년에 미국 규정을 준수해 화웨이가 모바일 기기에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했고, 엔비디아는 2022년부터 인공지능(AI) 칩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까지 화웨이에 반도체,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는 노키아나 에릭슨의 5G 장비를 도입하면 금융 지원을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다.
트럼프의 화웨이 때리기는 국내 기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의 행정 명령이 발동할 때에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고, SK텔레콤과 KT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화웨이를 놓고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2기 행정부에서 ‘화웨이’는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5G와 LTE 혼재돼 사용”
한 통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동맹국의 충성, 헌신, 무자비한 전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화웨이가 끼칠 파장을 말하기에 앞서서 우리나라가 과연 IT 강국인지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5G 통신국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LTE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정부가 5G를 비단일 규격으로 허용했기 때문에 LTE 서비스를 사실상 5G처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우리나라가 ‘속 빈 강정 ICT 강대국’이라고 말합니다.”
― LTE는 4G 이동통신기술이고, 5G는 4G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통신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기술 아닙니까.
“다르지만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겉은 5G, 속은 LTE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SK텔레콤, LG유플러스는 여전히 LTE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요금은 5G급으로 인상해서 받고 있습니다.”
― LTE도 아주 빠르니까, 요금제 부문만 손본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요.
“통신사의 시설 투자가 정체되어 인터넷 속도가 이미 우하향화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6G로 상향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 분명히 올 텐데,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큽니다.”
세계 통신 네트워크 시장은 240조원 규모로 미국(유선)과 중국(무선), EU가 3분(分)하고 있다. 유선 시장 대(對) 무선 시장의 비율은 7 대 3 정도다. 유선 시장은 시스코(CISCO)를 앞세운 미국이 사실상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중국의 화웨이가 무선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무선 우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화웨이 등 중국 통신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왔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는 무선 분야에서 세계 5위(점유율 5.7%) 수준이다.
삼성전자, 무선 분야에서 세계 5위
통신업계 한 관계자가 말한 바로는 선진산업국가의 국가 독점 통신체제는 1980년대 중반에 민간경쟁통신체제로 전환됐다. 우리나라는 유선전화 서비스에서 셀룰러 이동전화(1988년), 초고속 인터넷(1999년) 서비스, 이동전화 서비스로 발전했다. 1990년대 중반에 WTO 출범 등으로 정부는 신규 서비스 출시, 시장구조 개편 등에 개입했고, 현재 유선 전화는 위축된 추세이고, 이동통신과 초고속 인터넷은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3곳이 지배하고 있다.
초창기의 전기통신 서비스 시장은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들이 통신망 전송 장비를 직접 제조해 판매하며 형성됐다. 정부에서는 ‘공동개발’이라는 테두리로 묶어 우리가 자체 개발한 통신 장비를 통신사가 쓰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통신 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수익성이 낮은 통신 장비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IMF를 전후한 시점이다. 이때 대기업들의 스핀오프로 인해, 대기업에 몸담았던 이들이 통신 네트워크 장비 회사를 만들어 독립했다. 벤처라고 불렸던 이들은 여전히 중견, 중소업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통신 네트워크 장비 회사 200여 개가 있고, 이 중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곳은 10여 곳이다. 이들은 유무선 통신 네트워크 장비인 백본망 대용량 ROADM 제품, 광케이블, 스위치, 커넥터 등을 생산한다.
쉽게 말하자면, 고객(또는 기관)은 유무선 통신을 이용해 커뮤니케이트하고 이를 제공하는 곳은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3사, 그리고 이들 통신사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은 통신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중소업체로 3단 구조로 되어 있는 형태다. 일반인들로서는 유무선 통신 업체를 선정할 때, KT·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휴대폰이 잘 터지는지’ ‘속도는 빠른지’ ‘요금제는 합당한지’가 선택지가 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무선 네트워크 통신 업체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가진 곳이 중국의 ‘화웨이’이기 때문에 최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통신 네트워크 사업 지원, 2024년 전면 중단
업계 한 관계자가 말한 바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내 통신 네트워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출연사업으로 ‘네트워크 산업 육성 기반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의미를 축소했고, 2024년 5월에는 기획재정부가 이를 전면 중단했다. 국산(國産) 네트워크 사업을 지원하다 없애버린 것이다. 현재 통신 네트워크 산업의 인프라 선진화를 주도하는 국가는 중동, 중국,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이다. 우리의 통신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때 즈음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를 육성했다.
한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중국은 트럼프가 봉쇄 전략을 선택하자,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지해 화웨이는 중국 내 시장의 90%를 장악했습니다. 이후 미국, 유럽, 일본이 봉쇄됨에 따라서 우회 공략 대상으로 한국을 점찍고 중동, 동남아 지역에 대한 수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 화웨이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데에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있었군요.
“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는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를 만나 ‘통신 설비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며 통신 자립이 없는 국가는 군대가 없는 국가와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통신 네트워크 산업을 단순 사업이 아닌 국가 안보 및 군사적 개념으로 인식한 것이죠. 이후 중국의 화웨이와 2대 통신 기업인 ZTE는 2024년부터 가격 덤핑, 거액 기부금 형식 등으로 국내 통신 3사를 공략했습니다.”
―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 대응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몇몇 국가가 통신 네트워크 산업을 국가 안보로 인식했지만 우리는 국산화를 선도하거나, 통신 네트워크 시장에서 국산화율을 최소 몇%로 해야 한다는 원칙 등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에 네트워크 사업 인력의 30% 가까이를 계열사로 전환 배치했습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흔들리는 국내 기업
― 통신 네트워크 산업은 주요 산업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소리네요.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저가 공세를 이어갔고, 우리나라는 AI 신사업에 투자하느라 통신 네트워크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이 저가로 장비를 공급하겠다고 하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경영상 이점이 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 통신 3사가 모두 중국의 저가 공세에 흔들렸습니까.
“화웨이는 2024년 10월에 KT에 대폭 가격 인하를 조건으로 KT의 전송망 노후 설비를 리뉴얼해 줄 것을 제안했고, KT는 이를 검토 후에 2025년 사업추진계획에 반영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SK에는 2024년 상반기에 노후 장비인 LTE급을 무상으로 철거해 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5G 신규 장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우리나라 통신망 구조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령 A라는 회사가 통신망을 임차해서 사용할 경우에 임차 기간은 3~5년이다. 임차 기간이 지나면 A사는 통신망을 교체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통신 3사에 제안을 한다. 통신 3사는 네트워크 업체들로부터 가격·조건 등을 제안받아서 최고 결정권자인 A라는 곳에 제안한다.
통신 3사는 우리나라 업체뿐 아니라 화웨이·시스코 등 해외 업체로부터 가격과 모든 조건을 제안받는다. A 업체는 네트워크 업체들로부터 일일이 제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괄수주로 가격과 각종 조건을 고려해 통신사를 선택하게 된다. 고로 네트워크 업체로서는 ‘통신 3사에 납품을 할 수 있느냐’ ‘그 업체가 A라는 곳에서 최종 수주를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이 해당 업계의 매출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업체는 이동통신 사업자로부터의 시설·장비 발주가 매출의 75%일 정도로 통신사 의존형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국, 중국산 부품 사용 시 보안 우려”
국내 통신사에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한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LTE를 세계 최초로 개통하고, 5G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사용하는 부품은 중국산이 많습니다. 미국이 중국산을 사용하면 보안의 위험이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자국 제품이 아니라 중국산 제품을 사용합니다.”
― 중국산 제품 사용 시 보안 위험이 있다는 것은 무슨 소리입니까.
“제품을 납품할 때 자체적으로 칩을 심어놨다고 쳐보죠. 마음먹고 그것을 작동시키면 통신으로 이뤄지는 모든 정보를 탈취할 수 있습니다. 통화 내역, 통신망에 보관된 사진 모든 것을요.”
― 가정하자면 개개인의 통신 기록 모두가 네트워크 제공 업체에 털릴 수 있습니까.
“실제로 2023년 중국의 통신 업체가 동남아에 있는 국가의 정보를 탈취해 가져간 사례가 있습니다. 통신사별로 수 테라 용량의 통화 내역을 감청(監聽)하듯이 가져갔습니다.”
― 그것들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습니까.
“누구와 통화했는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신사는 주파수만 통제할 뿐 설비 기기까지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 현대사회는 휴대폰과 신용카드가 필수인데, 그렇다면 자기 국가의 제품만 써야 한다는 소리입니까.
“인도의 경우, 통신망뿐 아니라 네트워크 장비까지 전부 자국산을 쓰고자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보안 탈취 우려’를 얘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네트워크 장비는 하드웨어니까,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이런 보안 탈취를 막으면 되지 않습니까.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통신사의 주장이 그겁니다. ‘철저한 소프트웨어 보안 프로그램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만으로 하드웨어가 갖춘 보안 탈취 기술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것이 미국이 오늘날 화웨이를 막은 이유고요.”
― 그런 이슈라면 우리나라도 화웨이 제품을 쓰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미국이 화웨이 때리기에 나선 이후 우리나라 통신 3사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금융사는 화웨이가 제공한 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아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이 껍데기만 바꿔서 우리에게 납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중국의 전송 장비 중 광소자와 같은 제품은 미국이 제재하니까 라벨을 바꿔서 한국산으로 둔갑시키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한국산 네트워크 장비만 사용하겠다고 통신 3사가 기준을 제시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국산의 기준이 너무나 애매합니다. 가령 반도체 장비 중 일부를 중국에서 가져와서 우리나라에서 어셈블리(조립)하면 과연 국산화 장비율이 몇%인 걸까요?”
중국산 제품을 통신 3사가 쓸 수밖에 없는 이유
또 다른 네트워크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이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쓰는 업체들조차 제재하겠다고 하니, 우리 또한 중국산 장비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 공기업에서 통신망 교체를 할 경우에, 통신 3사가 최대한 중국 장비 업체와 컨소시엄을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 아무래도 미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지요.
“미국에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나라 공기업, 공공단체는 아예 통신 3사에 발주할 때부터 ‘중국산 제품은 가급적 배제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기업은 차치하고, 민간 기업의 경우 중국산 네트워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월등해서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내 통신사 입장에서는 최종 제안을 할 때 가격을 무시할 수 없는데, 국내산 네트워크 장비 업체를 컨소시엄에 넣을 경우 중국 업체를 넣었을 때보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최종 입찰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 부분이 굉장한 부담이 되는 거죠.”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통신은 국가 산업의 기간망이고, 통신망을 구축하는 네트워크 산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정부 차원에서 도울 방법은 없을까.
통신 네트워크 기업들로 구성된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는 2022년 ‘국산 네트워크 장비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소스코드 보유 여부와 제품개발 계획서, 개발 시료 구매 내역, 개발 산출물 등 국내 개발 여부와 부품 수급, 생산공정 등 국내 생산 여부 판단 기준에 따라 국산 제품에 인증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국내 생산은 A등급, 국내 개발 해외 생산은 B등급을 받는다. 회사가 인증을 받을 경우 네트워크산업협회 차원에서 인증 제품에 대한 사후 관리를 진행한다. 앞서 2020년 4월, 조달청은 공공기관이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입찰 업체에 가점을 부과하는 ‘국산제품활용기여도’ 항목을 마련했다.
‘바이 코리아 퍼스트’ 필요
한 관계자의 얘기다.
“현실적으로 통신 3사가 가격이 싼 제품을 제공하는 업체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특정 회사에 납품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싼 가격에 납품하겠다는 회사가 있는데 굳이 왜 비싼 국산을 선택해야 하는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기업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논리로만 통신망을 꾸려가는 것이 과연 국익(國益)을 위한 것일까요? 통신사들이 국가적 기반 산업의 중요성을 방치한 채 무책임하게 외산(外産) 장비 도입을 하는 것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통신이 국가 안보와 연관 있는 사업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에서는 국산화율 제고를 통해 코어(core)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 코리아 퍼스트(BUY KOREA FIRST)’ 개념의 법 제도를 정부와 국회가 적극 발굴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 자국산에 프리미엄을 주면 국제법 위반이 될 수도 있는데요.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 산업 보호 육성을 위해 안보를 공개적인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안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선순위를 갖는 만큼 정부가 얼마만큼 의지를 갖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보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최소 50%는 국산 장비로 대체,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공공·민간 분야의 데이터센터는 통신 산업의 핵심 분야지만 외국산이 사실상 90% 이상 장악하고 있는 만큼 국산화율 제고를 시급히 추진해야 합니다. 네트워크를 개별 산업으로 보지 말고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는 인식에서 접근하는 것이 트럼프 2기 시대를 헤쳐나갈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나라는 단말기, 네트워크 모두에 5세대 이동통신의 후속 차원 기술인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5G는 스마트폰만으로 게임을 즐기고, VR을 통해 언제든지 가상세계에 가까워지는 기술이다.
하지만 국내 통신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5G 시대를 최초로 열면 IT 강국일까요? 통신망을 구성하는 내부 기기는 국산이 아니라 중국산(産)을 쓰고 있는데요? 2020년까지 한국은 유선·무선 통신 속도 면에서 최상위권이었지만, 2024년 현재 통신 속도 면에서 유선은 세계 25위, 무선은 6위입니다. 저희는 이렇게 봅니다. 몸뚱이는 허약한테, 체구가 좋아 보이게 풍성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요.”
트럼프 시대의 뜨거운 감자 ‘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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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5월 23일(현지시각), 대중국 관세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과 목장주 등에 대한 16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
이 중에서도 ‘화웨이’는 미·중 제재의 상징이다. 화웨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 장비 및 스마트폰 제조 업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5월 15일,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5G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화웨이와 미국 기업 간의 거래가 즉시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명령의 근거로 든 것은 ‘화웨이와 관련 회사가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구글은 2019년에 미국 규정을 준수해 화웨이가 모바일 기기에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했고, 엔비디아는 2022년부터 인공지능(AI) 칩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까지 화웨이에 반도체,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는 노키아나 에릭슨의 5G 장비를 도입하면 금융 지원을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다.
트럼프의 화웨이 때리기는 국내 기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의 행정 명령이 발동할 때에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고, SK텔레콤과 KT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화웨이를 놓고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2기 행정부에서 ‘화웨이’는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5G와 LTE 혼재돼 사용”
한 통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동맹국의 충성, 헌신, 무자비한 전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화웨이가 끼칠 파장을 말하기에 앞서서 우리나라가 과연 IT 강국인지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5G 통신국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LTE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정부가 5G를 비단일 규격으로 허용했기 때문에 LTE 서비스를 사실상 5G처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우리나라가 ‘속 빈 강정 ICT 강대국’이라고 말합니다.”
― LTE는 4G 이동통신기술이고, 5G는 4G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통신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기술 아닙니까.
“다르지만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겉은 5G, 속은 LTE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SK텔레콤, LG유플러스는 여전히 LTE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요금은 5G급으로 인상해서 받고 있습니다.”
― LTE도 아주 빠르니까, 요금제 부문만 손본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요.
“통신사의 시설 투자가 정체되어 인터넷 속도가 이미 우하향화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6G로 상향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 분명히 올 텐데,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큽니다.”
세계 통신 네트워크 시장은 240조원 규모로 미국(유선)과 중국(무선), EU가 3분(分)하고 있다. 유선 시장 대(對) 무선 시장의 비율은 7 대 3 정도다. 유선 시장은 시스코(CISCO)를 앞세운 미국이 사실상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중국의 화웨이가 무선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무선 우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화웨이 등 중국 통신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왔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는 무선 분야에서 세계 5위(점유율 5.7%) 수준이다.
삼성전자, 무선 분야에서 세계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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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휴대폰 판매 매장의 이통 3사 로고의 모습. 사진=뉴시스 |
초창기의 전기통신 서비스 시장은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들이 통신망 전송 장비를 직접 제조해 판매하며 형성됐다. 정부에서는 ‘공동개발’이라는 테두리로 묶어 우리가 자체 개발한 통신 장비를 통신사가 쓰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통신 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수익성이 낮은 통신 장비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IMF를 전후한 시점이다. 이때 대기업들의 스핀오프로 인해, 대기업에 몸담았던 이들이 통신 네트워크 장비 회사를 만들어 독립했다. 벤처라고 불렸던 이들은 여전히 중견, 중소업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통신 네트워크 장비 회사 200여 개가 있고, 이 중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곳은 10여 곳이다. 이들은 유무선 통신 네트워크 장비인 백본망 대용량 ROADM 제품, 광케이블, 스위치, 커넥터 등을 생산한다.
쉽게 말하자면, 고객(또는 기관)은 유무선 통신을 이용해 커뮤니케이트하고 이를 제공하는 곳은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3사, 그리고 이들 통신사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은 통신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중소업체로 3단 구조로 되어 있는 형태다. 일반인들로서는 유무선 통신 업체를 선정할 때, KT·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휴대폰이 잘 터지는지’ ‘속도는 빠른지’ ‘요금제는 합당한지’가 선택지가 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무선 네트워크 통신 업체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가진 곳이 중국의 ‘화웨이’이기 때문에 최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통신 네트워크 사업 지원, 2024년 전면 중단
업계 한 관계자가 말한 바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내 통신 네트워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출연사업으로 ‘네트워크 산업 육성 기반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의미를 축소했고, 2024년 5월에는 기획재정부가 이를 전면 중단했다. 국산(國産) 네트워크 사업을 지원하다 없애버린 것이다. 현재 통신 네트워크 산업의 인프라 선진화를 주도하는 국가는 중동, 중국,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이다. 우리의 통신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때 즈음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를 육성했다.
한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중국은 트럼프가 봉쇄 전략을 선택하자,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지해 화웨이는 중국 내 시장의 90%를 장악했습니다. 이후 미국, 유럽, 일본이 봉쇄됨에 따라서 우회 공략 대상으로 한국을 점찍고 중동, 동남아 지역에 대한 수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 화웨이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데에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있었군요.
“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는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를 만나 ‘통신 설비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며 통신 자립이 없는 국가는 군대가 없는 국가와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통신 네트워크 산업을 단순 사업이 아닌 국가 안보 및 군사적 개념으로 인식한 것이죠. 이후 중국의 화웨이와 2대 통신 기업인 ZTE는 2024년부터 가격 덤핑, 거액 기부금 형식 등으로 국내 통신 3사를 공략했습니다.”
―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 대응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몇몇 국가가 통신 네트워크 산업을 국가 안보로 인식했지만 우리는 국산화를 선도하거나, 통신 네트워크 시장에서 국산화율을 최소 몇%로 해야 한다는 원칙 등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에 네트워크 사업 인력의 30% 가까이를 계열사로 전환 배치했습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흔들리는 국내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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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화웨이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문재인 정부의 전략 부재와 향후 대응방안’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뉴시스 |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저가 공세를 이어갔고, 우리나라는 AI 신사업에 투자하느라 통신 네트워크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이 저가로 장비를 공급하겠다고 하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경영상 이점이 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 통신 3사가 모두 중국의 저가 공세에 흔들렸습니까.
“화웨이는 2024년 10월에 KT에 대폭 가격 인하를 조건으로 KT의 전송망 노후 설비를 리뉴얼해 줄 것을 제안했고, KT는 이를 검토 후에 2025년 사업추진계획에 반영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SK에는 2024년 상반기에 노후 장비인 LTE급을 무상으로 철거해 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5G 신규 장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우리나라 통신망 구조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령 A라는 회사가 통신망을 임차해서 사용할 경우에 임차 기간은 3~5년이다. 임차 기간이 지나면 A사는 통신망을 교체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통신 3사에 제안을 한다. 통신 3사는 네트워크 업체들로부터 가격·조건 등을 제안받아서 최고 결정권자인 A라는 곳에 제안한다.
통신 3사는 우리나라 업체뿐 아니라 화웨이·시스코 등 해외 업체로부터 가격과 모든 조건을 제안받는다. A 업체는 네트워크 업체들로부터 일일이 제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괄수주로 가격과 각종 조건을 고려해 통신사를 선택하게 된다. 고로 네트워크 업체로서는 ‘통신 3사에 납품을 할 수 있느냐’ ‘그 업체가 A라는 곳에서 최종 수주를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이 해당 업계의 매출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업체는 이동통신 사업자로부터의 시설·장비 발주가 매출의 75%일 정도로 통신사 의존형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국, 중국산 부품 사용 시 보안 우려”
국내 통신사에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한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LTE를 세계 최초로 개통하고, 5G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사용하는 부품은 중국산이 많습니다. 미국이 중국산을 사용하면 보안의 위험이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자국 제품이 아니라 중국산 제품을 사용합니다.”
― 중국산 제품 사용 시 보안 위험이 있다는 것은 무슨 소리입니까.
“제품을 납품할 때 자체적으로 칩을 심어놨다고 쳐보죠. 마음먹고 그것을 작동시키면 통신으로 이뤄지는 모든 정보를 탈취할 수 있습니다. 통화 내역, 통신망에 보관된 사진 모든 것을요.”
― 가정하자면 개개인의 통신 기록 모두가 네트워크 제공 업체에 털릴 수 있습니까.
“실제로 2023년 중국의 통신 업체가 동남아에 있는 국가의 정보를 탈취해 가져간 사례가 있습니다. 통신사별로 수 테라 용량의 통화 내역을 감청(監聽)하듯이 가져갔습니다.”
― 그것들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습니까.
“누구와 통화했는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신사는 주파수만 통제할 뿐 설비 기기까지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 현대사회는 휴대폰과 신용카드가 필수인데, 그렇다면 자기 국가의 제품만 써야 한다는 소리입니까.
“인도의 경우, 통신망뿐 아니라 네트워크 장비까지 전부 자국산을 쓰고자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보안 탈취 우려’를 얘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네트워크 장비는 하드웨어니까,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이런 보안 탈취를 막으면 되지 않습니까.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통신사의 주장이 그겁니다. ‘철저한 소프트웨어 보안 프로그램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술만으로 하드웨어가 갖춘 보안 탈취 기술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것이 미국이 오늘날 화웨이를 막은 이유고요.”
― 그런 이슈라면 우리나라도 화웨이 제품을 쓰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미국이 화웨이 때리기에 나선 이후 우리나라 통신 3사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금융사는 화웨이가 제공한 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아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이 껍데기만 바꿔서 우리에게 납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중국의 전송 장비 중 광소자와 같은 제품은 미국이 제재하니까 라벨을 바꿔서 한국산으로 둔갑시키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한국산 네트워크 장비만 사용하겠다고 통신 3사가 기준을 제시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국산의 기준이 너무나 애매합니다. 가령 반도체 장비 중 일부를 중국에서 가져와서 우리나라에서 어셈블리(조립)하면 과연 국산화 장비율이 몇%인 걸까요?”
중국산 제품을 통신 3사가 쓸 수밖에 없는 이유
또 다른 네트워크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이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쓰는 업체들조차 제재하겠다고 하니, 우리 또한 중국산 장비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 공기업에서 통신망 교체를 할 경우에, 통신 3사가 최대한 중국 장비 업체와 컨소시엄을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 아무래도 미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지요.
“미국에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나라 공기업, 공공단체는 아예 통신 3사에 발주할 때부터 ‘중국산 제품은 가급적 배제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기업은 차치하고, 민간 기업의 경우 중국산 네트워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월등해서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내 통신사 입장에서는 최종 제안을 할 때 가격을 무시할 수 없는데, 국내산 네트워크 장비 업체를 컨소시엄에 넣을 경우 중국 업체를 넣었을 때보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최종 입찰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 부분이 굉장한 부담이 되는 거죠.”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통신은 국가 산업의 기간망이고, 통신망을 구축하는 네트워크 산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정부 차원에서 도울 방법은 없을까.
통신 네트워크 기업들로 구성된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는 2022년 ‘국산 네트워크 장비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소스코드 보유 여부와 제품개발 계획서, 개발 시료 구매 내역, 개발 산출물 등 국내 개발 여부와 부품 수급, 생산공정 등 국내 생산 여부 판단 기준에 따라 국산 제품에 인증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국내 생산은 A등급, 국내 개발 해외 생산은 B등급을 받는다. 회사가 인증을 받을 경우 네트워크산업협회 차원에서 인증 제품에 대한 사후 관리를 진행한다. 앞서 2020년 4월, 조달청은 공공기관이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입찰 업체에 가점을 부과하는 ‘국산제품활용기여도’ 항목을 마련했다.
‘바이 코리아 퍼스트’ 필요
한 관계자의 얘기다.
“현실적으로 통신 3사가 가격이 싼 제품을 제공하는 업체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특정 회사에 납품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싼 가격에 납품하겠다는 회사가 있는데 굳이 왜 비싼 국산을 선택해야 하는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기업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논리로만 통신망을 꾸려가는 것이 과연 국익(國益)을 위한 것일까요? 통신사들이 국가적 기반 산업의 중요성을 방치한 채 무책임하게 외산(外産) 장비 도입을 하는 것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통신이 국가 안보와 연관 있는 사업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에서는 국산화율 제고를 통해 코어(core)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 코리아 퍼스트(BUY KOREA FIRST)’ 개념의 법 제도를 정부와 국회가 적극 발굴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 자국산에 프리미엄을 주면 국제법 위반이 될 수도 있는데요.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 산업 보호 육성을 위해 안보를 공개적인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안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선순위를 갖는 만큼 정부가 얼마만큼 의지를 갖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보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최소 50%는 국산 장비로 대체,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히 공공·민간 분야의 데이터센터는 통신 산업의 핵심 분야지만 외국산이 사실상 90% 이상 장악하고 있는 만큼 국산화율 제고를 시급히 추진해야 합니다. 네트워크를 개별 산업으로 보지 말고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는 인식에서 접근하는 것이 트럼프 2기 시대를 헤쳐나갈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