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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탄핵 정국 속에서 경제 중심 잡고 있는 이창용 韓銀 총재

“뛰어난 실력, 다양한 경험… 정치인으로서 자질·매력 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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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문외한도 알아들을 수 있는 직설적 화법이 매력
⊙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인수위 동의 얻어 임명
⊙ 33살에 서울대 교수 임용, 이론·실무 겸비한 천재 경제학자
⊙ “저성장 문제를 재정·통화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은 나라 망가지는 지름길”
⊙ “정치적 수사 동원해 발언” 비판도… 정치권, ‘시끄러운 한은’에 대해 ‘정치권 진출 위한 이 총재의 포석’ 의심
⊙ 韓銀 노조, “거대담론 제시는 잘하고 있지만 내부 경영에는 관심 적어”

李昌鏞
1960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하버드대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美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임. 現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 정책 방향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고민 좀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2025년 1월 2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한 국무위원들을 향해)
 
  “로제 ‘APT’ 때문에 아파트 값 오를까 고민.”(2024년 10월 30일, 서강대 강연)
 
  “갭투자 하고 싶다면 금융 비용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하고 하라.”(2024년 10월 11일 기자 간담회에서 영끌족에게)
 
  “대학, 성적순으로 뽑는 게 가장 공정한 건 아니다.”(2024년 9월 30일, 한은 총재로는 처음으로 기획재정부 방문해)
 
 
  韓銀寺 총재
 
  한국은행(한은) 27대 이창용 총재. 키 192cm의 장신에 직설적인 화법이 인상적이다.
 
  이창용 이전의 한은 총재들은 중앙은행 수장(首長)의 발언이 국가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표현이 조심스러웠다. 이 때문에 경제 문외한은 감을 잡기 힘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식이었다. 전임 이주열 총재는 25~26대 연임을 해 8년 동안 재직했는데, 당시 한은이 너무나 조용하다고 해서 ‘한은사(韓銀寺)’라는 별칭이 있었다.
 
  하지만 현 이창용 총재는 빚을 내 아파트를 사겠다는 이들에게 “금리가 예전처럼 1%대로 떨어져서 비용 부담이 금방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신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경고를 드리겠다”(2023년 10월 19일)는 식으로 말한다. 경제를 몰라도 ‘아, 조심해야겠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맥락조차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
 
 
  “시끄러운 韓銀 만들겠다”
 
  이 총재는 표현만 직설적인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중앙은행 총재로서 활동 범위도 넓다. 한국은행법 제1조 1항은 이렇다.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
 
  통화신용정책을 바탕으로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게 한은의 제1 역할이지만, 이 총재 취임 후 한은은 통화신용정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경제 문제에도 관심을 보인다.
 

  총재 취임을 앞두고는 “시끄러운 한은을 만들겠다”고 했다. 총재 자신뿐만 아니라 한은 구성원이 전문성을 발휘하며 각자 목소리를 내라는 의미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학 신입생 지역 할당 선발 ▲농산물 수입 ▲외국인 근로자 도입 등이 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창용 총재는 1960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생이며 서화가인 옥산(玉山) 이우(李瑀·1542~1609년)의 16대 종손(宗孫)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 총재를 ‘천재’라고 표현한다. 이런 이 총재도 대학은 1년 늦게 들어갔다. 첫해 입시에서 예비 1번으로 낙방해 서울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다음 해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는데, 주변에는 “시험 채점이 잘못돼 재수를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동기들도 “왠지 그럴 거 같다”고 받아줬다고 한다. 사회대를 수석으로 졸업해 동기들 사이에서 ‘수석 낙방, 수석 졸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로런스 서머스 전 美 재무장관의 애제자
 
이창용 총재의 스승 로런스 서머스 미국 전 재무부 장관. 사진=조선DB
  1984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유학 시절 농구를 하다가 무릎과 인대를 다쳐 군 면제를 받았다.
 
  하버드대에서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의 지도 아래 학위를 받았고 그의 애제자로 알려져 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서머스 전 장관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이창용 교수가 IMF 국장직을 맡았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이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다. 지도교수의 추천 덕분인지 이 총재는 2014년 2월 IMF 아시아·태평양담당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총재는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에서 공부했다. 덕분에 오롯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교수 초빙이 있어 서울에 와서 최 회장님께 인사드렸는데, 혼을 내셨다. ‘서울에 와서 교수 하라고 너한테 투자를 (그렇게) 많이 한 줄 아느냐, 미국이나 전 세계에서 경쟁해서 능력을 키워 오라고 했더니,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일 준다고 들어오느냐’고 크게 혼쭐내셨다”고 했다. 이 총재는 “그때 들어왔으면 편하게 교수 하고 있었을 텐데, 항상 더 높은 곳을 보고 경쟁하고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높은 곳을 향하게끔 하신 것들이 회장님 계실 때 많이 배운 점”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1989~94년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세계은행 방문연구원과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현실 참여에 관심이 많아, 경제학이 이론과 학문에 그치는 걸 넘어 실제 활용돼 사회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4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을 때 나이가 만 33살이었다. 아버지(이재곤)도 서울대 공대 교수로 있어 부자가 같은 학교에서 동시에 학생을 가르쳤다. 이 총재는 교수 시절에도 한국채권연구원 이사, 산업은행 감사 등을 겸임하면서 현실 참여적 성향을 이어갔다. 정부 정책 자문과 용역에도 참여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금융 분야)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으로 활동했고 2008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공직으로 진출했다. 교수 출신이 공직에 임명되면 학교에는 휴직계를 낸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융위 부위원장 임명을 앞두고 교수직 사직서를 냈다.
 
 
  코로나 때문에 죽다 살아나
 
  2011년부터 2013년까지 ADB에서 일했고 2014년부터 8년 동안 IMF에서 아태국장으로 일했다. 이후 문재인-윤석열 정부 과도기인 2022년 4월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IMF에서 근무 막바지 창궐한 코로나19에 걸려 크게 앓아, 주변에는 “죽다 살아났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중간에 쉬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총재는 20대 대선이 치러지기 전인 2024년 1월 말경 청와대로부터 여러 총재 후보 중 한 명에 포함돼 인사 검증 동의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고는 대선(그해 3월 9일)이 끝나고 2주 뒤인 3월 23일에 청와대로부터 지명 절차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검증하고 임명한 것이다. 이 총재는 이주열 전 총재가 연임하기에 앞서서도 한은 총재 후보군으로 분류된 바 있다.
 
  왜 이 총재는 한은 수장(首長)이 되길 원했을까?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이 크게 악화됐을 때가 내 삶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며 “다행히 회복된 후 두 번째 삶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고, 한은 총재 후보자로 지명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한 번 국가경제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 응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가 임명될 당시 신구(新舊) 두 권력은 이 총재 임명을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윤석열 인수위는 이 총재 임명에 대해 겉으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 다 끝난 정권이 한은 총재를 임명하느냐’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청와대는 ‘총재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총재 임명 당시 윤석열 당선인 측에 동의를 구했다’는 입장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총재가 취임하자 ‘(율곡 어머니 신사임당의 고향인) 강릉 출신의 친윤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뒤에서 힘을 쓴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과도기에 임명됐다는 이유로 현 정부는 이 총재를 현 정권 사람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있다. 상징적인 사건이 ‘이창용 총리설’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박이다. 2024년 11월 중순부터 이창용 총재가 한덕수 국무총리의 추천으로 후임 총리로 임명될 거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에 11월 28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뜬소문이고, 웃긴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같은 날 이 총재는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재 업무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만 했다.
 
 
  “이창용은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왼쪽)가 추경 필요성에 대해 입장을 밝히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지난 1월 22일 한국은행을 찾았다. 사진=뉴시스
  대통령실은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 총재와 가까운 A씨는 “이창용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가 일머리뿐만 아니라 정치적 감각도 상당히 뛰어나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같은 달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는 조기 대선을 언급했다. 이에 여권 일각 소수는 ‘이창용 대선 후보론’을 언급했다. 그 배경에는 ‘여당에서 후보만 잘 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검사 출신이나 다선(多選) 정치인보다는 경제통이면서 참신함을 가진 인물이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평소 한은 총재로서 보인 행보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높았다.
 
  이창용 총재 주변에선 이 ‘대망론’을 어떻게 볼까? 이 총재와 대학 동기이고 행시 출신인 C씨는 “비현실적인 낭설”이라며 “뜬금없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는 D씨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선 조직과 시간, 돈이 필요하다. 만약 탄핵이 인용되면 늦어도 6월 전에 선거할 텐데 이 총재는 준비도 하지 않았고, 지금부터 준비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E씨도 “어떻게든 대선에서 이겨보기 위한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해 보인다. 만약 우리 당에서 영입 의사를 밝힌다고 해도 이 총재가 이에 응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창용의 경제관
 
유경준 전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시스
  이 총재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함께 다닌 유경준(전 통계청장) 전 국민의힘 의원은 “앞으로 중도 통합형 후보가 대중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총재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매력이 있다”면서도 “탄핵 정국에서 불안정한 경제를 관리하는 게 지금 이 총재의 역할”이라고 했다. 유 전 의원은 “지금은 국가경제가 우선이다. 자신이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해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유 전 의원의 평이다.
 
  “이 총재는 실력도 뛰어나고 다양한 경험도 있습니다. 대체로 한은 총재들은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자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냅니다. 개인의 정치적 영달 또는 어떤 이익을 얻고자 자기 의견을 강하게 밝히는 게 아니에요.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국가에 필요한 의제를 던져 관심을 유발하는 거죠. 남들은 못 하는 걸 하고 있어요. 이 총재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오지랖이 넓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조용한 한은’보다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한은이 국민경제와 국가 미래를 위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또 정치와 경제는 분리할 수 없어요.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에도 국가경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겁니다. 저는 이 총재가 상황에 알맞게 행보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총재는 정치적 감각도 아주 우수합니다.”
 
  이 총재는 한국이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잠재성장률을 올려야 하고 신(新)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경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으로 ▲지역 거점 도시(2~3곳) 집중 투자 ▲수도권 대학 신입생 선발 시 지역별 비례 선발 ▲노령화 대응을 위한 외국인 노동자 도입 ▲농산물 공급 경로 다양화 ▲최저임금 차등 지급 ▲서비스 부문 규제 혁신 등을 제시한다. 이 총재 취임사 중 일부를 소개한다.
 
  〈과거와 같이 정부가 산업 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새워 일한다고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과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이 수반되지만 이를 감수하고 구조 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분배 노력을 서둘러야 합니다. 구조 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문제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합니다. 디지털 경제와 녹색금융,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생존 문제라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합시다.〉
 
 
  최상목과 이창용
 
이창용 총재는 2024년 9월 30일 한은 총재로는 처음으로 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 왼쪽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사진=기획재정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現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경제 금융 당국 수장(首長) 회의체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를 ‘F4’라고 한다.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한다. 관가에서는 최상목 부총리와 이창용 총재 사이가 아주 조화롭다고 평가한다. 기재부 공무원 F씨는 “일반적으로 기재부와 한국은행은 사이가 좋지 않다”며 “최 부총리와 이 총재의 관계가 좋은 건 이례적인 사례”라고 했다.
 
  2024년 9월 30일 한은 총재로는 최초로 이 총재가 답방(答訪) 형식으로 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 당시 최 부총리는 “한은 총재가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이날 방문에서도 화제를 만들었다. 앞서 같은 해 8월 27일 한은은 〈BOK(한국은행) 이슈노트: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대학 입시의 지역 편중 현상으로 주요 상위권 대학에서 서울 출신 학생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지역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요지였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통해) 서울에 집중된 입시 경쟁을 지역적으로 분산시켜 수도권 인구 집중, 서울 주택 가격 상승, 저출산 및 만혼 등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강남 역(逆)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자들이 기재부를 방문한 이 총재에게 ‘지역별 대학 비례 선발제’에 대해 묻자 이 총재는 “우리(한국 사회)는 성적순으로 대학 신입생을 뽑는 게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빠져 있다. 세계 어디를 다녀도 어느 대학이나 다양성을 위해 (신입생을) 뽑는다”며 “강남에 사는 게 잘못이 아니라,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최상목 부총리와 이 총재는 상부상조하는 모양새다. 이틀 뒤인 10월 2일 최 부총리는 한국 경제를 타이태닉호에 비유해 “암초를 발견하면 이미 늦고, 발견하기 전에 항로를 바꿔야 한다”며 이 총재의 구조 개혁 제안을 옹호했다. 올해 1월 2일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2인을 임명한 것을 두고 일부 국무위원이 최 대행 면전에서 반발하자 이 총재는 기자들 앞에서 “(국가경제를 위해) 고민 좀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노력해야 할 시점에 비난하면 되느냐”며 최 대행을 옹호했다.
 
 
  “대입 제도 개선 안 하면 우리 사회 난제 해결 못 해”
 
  이창용 총재는 대입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 난제를 풀 수 없다고 봐왔다. 그는 20년 넘도록 국내 입시 제도 개선에 대해 의견을 밝혀왔다. 2003년 서울대 김광억 인류학과 교수, 김대일 경제학부 부교수, 서이종 사회학과 부교수와 공동 집필한 논문 〈입시제도의 변화: 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부모 학력 및 직업에 따른 자녀의 입학률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서울의 강남 8학군 부유층 자녀의 입학률 프리미엄도 뚜렷하게 추정된다. 이는 그간 평준화 정책을 통해 교육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에 따른 자녀 입학률 격차가 확대되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는 공교육 부실에 따라 사교육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결과로서,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평준화 정책의 수정 등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엘리트주의’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엘리트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관점이다. 2024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창립 50주년 축하 기고문에서 이 총재는 “지금 사회 전체가 포퓰리즘으로 가고 엘리티시즘(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박도 커지는데, 사실 엘리트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비용이 유치원 교육 비용보다 싸다는 점”이라며 “대학만 가면 교육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학 때부터 학문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좋은 대학을 가려고 진을 다 빼고, 대학 들어가면 ‘쉬는 모드’에 들어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추경 주장했지만, 민주당과는 차이
 
이창용 총재는 비상계엄 다음 날인 2024년 12월 4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경제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기획재정부
  이창용 총재는 지난 1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 불안에 작년 4분기 성장률이 0.2%를 밑돌 수 있다. 통화 정책만으로 경기 부양은 무리다.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졌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통화 정책 외에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추경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가급적 빨리, 15~20조원 규모로, 선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당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이 또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이유였다. 추경 발언 6일 후인 1월 22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국은행을 찾았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물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금융시장 동향과 해외 시장 움직임 등을 청취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 총재가) 활발하게 의견 개진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그 속사정과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방문을 결정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한은 총재의 추경 발언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전 국민 25만원 지급 주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추경과 이 총재가 이야기하는 추경은 목적이 다르다. 이 총재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지원’이 골자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최저임금 급격 인상에 비판적이다. 2024년 3월에는 최저임금 차등화의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돌봄 서비스’에서 비용을 낮춰야 고령화·저출산이라는 한국의 고질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돌봄 비용이 자기 급여의 2분의 1을 넘길 수 있어 추후 잠재성장률 하락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돌봄 서비스에 최저임금을 다소 낮게 적용하면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양대 노총이 한은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였다.
 
 
  국책기관 지방 이전 반대
 
  사과 값이 비싸질 것에 대비해 농산물을 수입해야 한다고 해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2024년 6월 이 총재는 한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농산물 물가가 유독 높다며 수입 확대 필요성을 밝혔다. “사과처럼 전혀 수입하지 않으면 농가 보호에는 좋은 정책일지 모르지만,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농식품부는 “(한은은) 농업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수입을 많이 한다고 해서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큰 연관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창용 총재는 지금과 같은 수도권 과밀 현상, 집값 인상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혁신도시’(10곳, 노무현 정부에서 특별법으로 제정) 대신 정주(定住) 여건이 좋은 2~3개 ‘거점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세계 어느 국가나 주요 도시 또는 핵심 지역의 주택 가격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려는 정책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고 효율적이지도 않아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해당 지역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의 주거 환경 및 기반을 개선함으로써 수요 전환을 통한 중장기적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국책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데도 반대한다. 특히 한은 이전에 대해서는 “한은이 최종 대부자 기능을 수행하고 지급 결제 제도를 운영·감시해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므로 수도인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저소득층, 빈곤 노인층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적 복지 확대가 먼저 이루어져서 이들에 대한 복지 지원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된 이후에 기본소득이 이루어져야 맞는 순서라고 했다.
 
 
  “금리 인하 失機” 비판도
 
  정치권에서는 ‘시끄러운 한은’ ‘싱크탱크로서의 한은’에 대해 “정치권 진출을 위한 이 총재의 포석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에 한은은 “한국은행은 저출생·고령화, 수도권 집중 등 구조적 문제는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 물가 및 금융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한국은행 본연의 업무인 통화 정책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구조 개혁 현안 등 우리 경제의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한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 주요국에서도 중앙은행이 싱크탱크로서 노동, 교육 등 다양한 경제 현안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이다”라며 “최근 한은의 구조 개혁 관련 연구 활동을 정치적 활동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크게 2가지, 한은 임직원 처우 개선 문제와 2024년 ‘금리 인하 실기론(失機論)’이다.
 
  한국은행은 2023년 1월 기준금리를 3.50%로 정한 후 2024년 8월까지 유지하다가 같은 해 10월 0.25%, 11월 0.25% 연속 인하했다. 지난 1월 16일 현재 기준금리는 3.00%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잘못된 전망으로 경기를 판단해 2024년 8월 적절한 금리 인하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한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늦었다는 비판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다. 그는 “경제성장률, 금융 안정, 물가 안정을 한꺼번에 보고 1년 뒤에 평가해 달라. (8월에 금리를 내리지 않아) 금융 안정에 상당히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한은 경제모형실 추정에 따르면 금리 인하가 GDP(국내총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1년 정도 걸린다.
 
  이에 대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경제가 안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 역시 여기에 발목 잡히지 않았는지 생각한다”라며 “세계 경제 기조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리 실기론에 대해선 “정부는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을 하지만 지금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 기준금리 차이가 있어 한은으로선 환율, 물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실기인지 적기(適期)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정답이 없으므로 속단하긴 어렵다”고 했다.
 
 
  “중앙은행 총재 영역 이상의 발언”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사진=뉴시스
  한은 외환연구팀장, 통화연구실장을 지낸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잘하는 편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오 대표는 “지금 기업 상황이 어려워 고용 시장은 불안하고, 자영업자 또한 무너지고 있다. 수출액을 늘리려면 환율이 올라가 줘야 유리한데 (이 총재는) 환율을 올리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으면서 건설업 부도는 증가하고 동시에 부동산 PF(대상 사업의 미래 현금 흐름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기법) 자산 부실 여파가 커지고 있다. 정작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에 금리를 내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금리를 내리지 않는 사이에 자영업자가 겪는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 대표는 이 총재의 최근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발언도 문제 삼았다. 그는 “중앙은행은 한국은행법에 명시된 목적만 보고 움직여야 하는데, (이창용 총재가)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정치적인 수사(修辭)를 동원해 발언하는 것 같다”면서 “강남 지역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 제한을 주장한다든지, 강남 지역 교육열이 집값을 계속해서 끌어올리는 요인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건 중앙은행 총재 영역 이상의 발언”이라고 했다.
 
  기자들은 이창용 총재를 어떻게 볼까?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긍정적’이라는 평이 많다. 앞뒤를 재거나 빙빙 돌리지 않고 핵심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한은 총재 취임 1년을 맞아 가진 기자 간담회(2023년 5월 25일)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한 예다.
 
  〈5~10년 내 노후 빈곤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해결하려면 노동·연금·교육을 포함해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문제는, 개혁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이해 당사자 간 사회적 타협이 어려워 진척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고3 때 평생의 전공을 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저출산, 노인 문제를 생각하면 이민, 해외 노동자 활용, 임금 체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데 진척이 없다.
 
  반도체 수출이 안 된다고 하는데, 서비스 수출도 있다. 우리 의료산업도 얼마나 발전했나. 10년 전부터 의료산업 국제화를 통해 서비스업이 발전해 왔는데, 우리가 한 걸음도 못 가는 사이에 태국과 싱가포르가 지역 의료 허브가 됐다.〉

 
 
  韓銀 노조가 말하는 총재
 
2014년 1월 7일 이창용 당시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2014 세계시장 진출 전략설명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총재는 취임을 앞두고 “한은의 유능한 직원이 열악한 처우 때문에 떠나고 있다.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이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고임금을 받는 직군(職群)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임금 인상률이 공무원 수준이다. 이 때문에 똑똑한 젊은 직원들은 일찍 떠난다. 이 총재 취임 전과 후를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취임 초만 해도 이 총재에 대한 직원들의 긍정적 평가는 약 56% 수준이었다. 한국은행 노조 관계자는 “취임 초나 지금이나 이 총재에 대한 평가는 비슷하다”면서 “수장의 역할을 두고 명(明)과 암(暗)이 나뉜다. (총재가) 외부 활동에 대해선 관심이 많지만 내부 경영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은이 대외적 활동을 늘리며 ‘시끄러운 한은’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 취임 후 조직 문화 측면에선 이전 총재들과 비교할 때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로 개선됐어요. 이전에는 한은 특유의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굉장히 강했죠. 이 때문에 외부와의 교류도 적었고요. 이 총재 취임 후 고리타분한 문화가 완전 싹 사라진 건 아니지만, 새로운 총재 덕분에 과거보다 개방적이고 좀 더 수평적인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임직원 처우 개선은 기대에 못 미칩니다. 그중 큰 이유가 한은에 대한 일종의 관리 감독을 기재부에서 하다 보니 총재가 기존 틀을 굳이 깨려고는 하지 않는 듯해요. 인사에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직전 총재는 특정 학교 출신을 주요 보직에 임명했어요. 8년 동안 이런 문제가 누적됐죠. 신임 총재가 이런 잘못된 관행이나 문화를 바로잡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내부 경영이나 인사 문제에 무관심하더라고요. 어떤 거대담론, 사회적 의제를 제안하고 개발하는 데는 관심이 많으신 듯한데, 이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직원들의 복지 향상과 처우 개선을 위해 내부 경영에 더 신경 쓰고 노력해 주었으면 합니다.”
 
 
  제자들이 말하는 이창용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사진=가천대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생들은 ‘교수 이창용’을 어떻게 기억할까? 가천대 경영학부 전성민(92학번) 교수는 학부생일 때 이창용 교수의 제안을 받고 연구실 조교로 일했다. 그는 “이 교수는 경제 데이터를 다루면서 엑셀 파일을 사용했다. 당시 경제학도가 엑셀을 쓸 일이 없었는데, 학생들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그만큼 선진 문물을 일찍 도입한 교수였다”고 했다. 이어 “그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전자게시판을 운영해 거시경제이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질문할 수 있었다. 그 게시판 관리를 내가 했는데 그때 경험이 인터넷 분야에서 내 경력을 시작하는 데 굉장히 의미 있는 영향을 줬다”고 했다.
 
  전 교수는 “다른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강도로 수업했지만 이 교수는 3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시간을 꽉 채워 수업했다. 지금도 한국은행 브리핑을 보면 정책을 추진할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인과 변수를 설명하시는데, 교수 시절부터 다양한 자료를 놓고 거시경제를 설명했다”고 기억했다. 또 “자신을 케인스주의자나 통화주의자 등으로 국한하려 하지 않았다. 실용주의에 가까웠고, 경제적 필요에 따라 특정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의였다”고 했다.
 
  이 총재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전 교수는 “거시경제학자로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거시경제학은 국가, 사회, 행정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며 “일각에서 ‘중앙은행 총재 직분 이상의 발언’이라고 비판하지만, 거시경제 현황을 놓고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본다”고 했다.
 
  전 교수는 “졸업 후 IBM에 취직했을 때 이 교수가 축하해 줬다”며 “이후 개인 사업을 했는데 ‘개인 비즈니스가 잘돼야 우리 경제가 잘된다’며 격려해 줬고, 뒤늦게 공부를 이어갔을 때도 응원해 줬다. 그 덕에 지금 교수가 됐으니 내겐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중간고사 문제 ‘오늘의 주가지수는?’
 
  96학번인 조윤영 세계은행 선임연구원은 서울대 경제학부 홈페이지 동문 인터뷰란에 학부 시절 자신의 진로 선택에 이창용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 연구원은 “학부 때 IMF 사태가 일어났다. 주변 친구들은 일찍부터 확실한 진로를 찾아 행정고시나 사법시험, CPA(공인회계사)를 많이 했다. 나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이창용 교수의 거시경제학 수업을 수강했는데, 교수님께서 ‘시간을 두고 진로를 결정해도 괜찮으며, 다른 친구들과 같은 진로를 걸을 필요는 없다’고 많은 격려를 해줬다.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장학재단에서 공부하며 유학의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 교수의 거시경제 수업을 들은 한 졸업생은 “중간고사 때 1번 문제가 ‘오늘의 주가지수는?’이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이론에만 매몰되지 않고 현실과 접점을 두는 수업 방식이 좋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호탕한 성격에 권위의식이 없는 걸로도 알려져 있다. 전성민 교수는 “격의 없이 학생들과 어울리는 분이었다. 당시 권위적인 교수가 많았는데, 이 교수는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함께 농구를 했던 기억도 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창용 교수에게 경제학을 배운 권혁욱(權赫旭·경제학) 니혼대 교수는 “이 총재가 한승수(韓昇洙) 전 총리의 조교 출신이고 하버드대에서도 거시경제이론과 경제정책을 아우르는 로런스 서머스가 그의 지도교수였다”고 말했다.
 
  “한승수 교수는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을 조교로 뽑았다고 하죠. 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정책 입안을 능숙하게 하는 방법을 서머스 전 장관에게 제대로 배웠을 겁니다. 서머스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시장에) 정부개입을 인정하는 ‘뉴 케이지언(New Keynesian)’을 견지합니다.
 
  한마디로 경제이론과 실제를 다 아는 특출한 인재인데, 지도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199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할 때도 거시경제학 분야에서 제일 업적이 많았고, 매우 잘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사실 연구와 교육 둘 다를 잘하기 힘들어요.”
 
 
  “유약한 학자처럼 보이지 않아”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IMF 총재. 사진=AP 뉴시스
  이어지는 권혁욱 교수의 말이다.
 
  “성격도 밝고 정(情)도 깊으신 분입니다. 단언하지만 경제학자들 중에 이 교수를 나쁘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총재께서 IMF 국장으로 계실 때 저를 한 달간 객원 연구원으로 받아 주셨어요. 뛰어난 재능을 뒷받침하는 스태미너도 가지고 있어서 유약한 학자처럼 보이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창용 교수와 《경제학 원론》 등을 공저한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총재는 워낙 성품이 서글서글한 데다가 장난기도 제법 있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고 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IMF 총재는 3년 전 이 총재의 IMF 퇴임을 앞두고 “그와 함께 일한 영광을 누린 사람들은 그의 동료 간의 협조·협력 관계와 친절함 그리고 뛰어난 유머 감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가슴 깊은 곳까지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였으며, APD(아시아태평양국) 직원들의 웰빙을 위해 전념했다”고 했다. 한국은행 내부 관계자는 “회식할 때도 실무진의 의견을 듣고 이에 따라 음식 메뉴를 정한다”고 말했다.
 
  이주열 전 총재 역시 이 총재를 두고 “학식과 정책 운용 경험, 국제 네트워크 등 여러 면에서 출중한 분이다. 저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조언드릴 것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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