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창업… 제조업체 매칭플랫폼 ‘카파’ 서비스 운영
⊙ 美 실리콘밸리 싱귤래리티대학 연수 후 벤처사업가로 제2의 인생
⊙ 우주선 탑승자를 이소연씨로 바꾸게 했던 교재 열람 사건의 전말
고산
1976년생. 한영외고·서울대 수학과 졸업, 美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수료 /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근무, 타이드 인스티튜트 대표 역임. 現 에이팀벤처스 대표
⊙ 美 실리콘밸리 싱귤래리티대학 연수 후 벤처사업가로 제2의 인생
⊙ 우주선 탑승자를 이소연씨로 바꾸게 했던 교재 열람 사건의 전말
고산
1976년생. 한영외고·서울대 수학과 졸업, 美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수료 /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근무, 타이드 인스티튜트 대표 역임. 現 에이팀벤처스 대표
13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비운의 사나이’로 기억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으로 뽑혀 러시아에서 훈련받고 우주 비행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기회를 놓쳤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후 유학과 비영리법인 설립 등을 거쳐 그는 어엿한 벤처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그가 창업해 대표를 맡고 있는 에이팀벤처스는 제조업 분야의 고객이 온라인에서 도면과 함께 부품이나 시제품 등의 제작을 의뢰(견적 요청)하면 이를 적합한 제조업체와 연결해주는 ‘카파(CAPA)’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에게 어울릴 법한 남녀를 매칭시켜주는 ‘커플매니저’처럼 고객에게 맞는 제조업체를 연결해준다고 해서 일명 ‘제조업체 매칭플랫폼’이라고도 부른다. 우주인 후보가 아닌, 기업가로서 고산을 만났다.
― 어떻게 지냈습니까.
“스타트업을 시작해 이것저것 하다 보니 꽤 시간이 흘렀네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사람들은 여태 걸어온 길을 갈 지(之)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외고 중국어과를 나와서 공대에 진학했고, 같은 학교를 두 번이나 갔죠. (그는 1995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시험을 치러 1996년 서울대 수학과에 들어갔다.) 삼성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 우주인에 도전하고,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그러다 현재 사업하고 있으니까 의아해할 겁니다.(웃음)”
― 평범한 40대의 길은 아니었네요.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먼 목표를 세팅하고 매진하지만, 저는 주어진 상황에 맞추면서 살았습니다. 한 걸음 가다 보면 제가 모르는 길이 펼쳐지고, 그러면 거기에 맞추다 또 다른 길이 보이면 그리로 갔죠. 장대한 장기 목표는 없었지만 ‘이렇게 살아보자’는 방향성은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 싱귤래리티대학 연수 과정에서 접한 ‘10억명 이상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였습니다.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삶은 다 연결돼 있었어요. 우주인에 도전했을 때까지가 인생 1막이었다면, 지금은 2막입니다.”
‘카파’는 제조업계의 ‘배달의 민족’ 같은 서비스
고산 대표는 현재 카파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제조 외주 플랫폼 업체 에이팀벤처스를 운영 중이다. 산업용 부품이나 시제품 제작 등이 필요한 업체와 이를 공급하는 제조업체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B2B 비즈니스라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고, 아직까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활성화된 비즈니스는 아니다.
“제조 생태계의 네이버, 쿠팡과 같은 서비스입니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가격을 비교하고 구매 결정을 해 배송받습니다.
제조업계에는 그런 플랫폼이 없었어요.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자 하는 중소기업들은 제조업체를 알음알음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공급업체들은 고객을 다양하게 찾고 싶어도 새로운 고객을 만날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보니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에만 납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제조시장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고객들은 ‘내가 필요한 부품이나 제품을 만들어줄 업체를 일일이 찾으러 다니지 않고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없을까’ 하는 니즈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제조업체들은 ‘배달의 민족 같은 곳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제조업체에는 이런 플랫폼이 없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에이팀벤처스의 카파(http://capa.ai)서비스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고객들은 자신이 필요한 제품이나 부품의 도면과 요청 사항을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견적을 요청한다. 견적 문의가 이뤄지면 카파에 가입한 제조사로 알림 메시지가 발송된다. 최신 3D 프린팅부터 CNC공작기계, 사출성형, 판금, 주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공 방식을 취급하는 카파의 2000여(공정 기준) 파트너 제조업체 가운데 고객의 주문 요건에 맞는 업체들이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자사에서 제작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고객에게 예상견적을 작성해 발송한다. 고객은 제조업체들이 보내준 여러 견적을 비교하고 채팅을 통해 상담을 받은 뒤 이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거래를 확정 짓는다.
정보의 ‘구글’, 유통의 ‘아마존’, 제조의 ‘CAPA’
고산 대표의 얘기다.
“고객은 원하는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를 빠르게 찾고 제조 단가를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제조 파트너사와 한 번 거래를 시작하면 쉽게 바꾸지 못했습니다. 좋은 부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받는다면 문제가 없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파트너사를 바꿔야 하고, 또 비슷한 품질이라면 단가가 더 싼 곳으로 바꿔야죠. 사업이 확장되면 새로운 부품도 공급받아야 했고요. 그런데 네트워크 한계가 있어 애먹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 제조업체 측도 비슷한 애로사항이 있었겠죠.
“그렇죠. 기존 고객들에게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했습니다. 산업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자동차 부품업계는 전기차 시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큰 기업의 하청업체로만 살기에 한계가 있고, 새로운 채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소통의 장, 온라인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 고객들이 음식을 주문하듯이 설비를 납품받는 곳이네요.
“‘3분만 투자해 도면과 요청사항을 업로드하면 24시간 이내에 평균 7개 제조업체로부터 견적 제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모토입니다. 정보의 플랫폼에 ‘구글’이 있고, 유통의 플랫폼에 ‘아마존’이 있다면 제조의 플랫폼에는 ‘CAPA’가 있습니다.”
고객과 제조사가 100% 온라인에서 원스톱으로 진행
― 물론 음식 플랫폼과 제조업 플랫폼은 많이 다르겠지요.
“짜장면은 만드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배달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제조는 주문하는 고객도 도면을 비롯해 자신이 주문하려는 제품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제조에 대한 지식, 경험이 없는 고객과의 소통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조업계에서 ‘제품 생산비용의 절반이 인건비라면, 인건비의 절반은 기술적인 요구 사항을 논의하고 가격을 협상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고객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소리입니다.
카파는 고객과 제조업체가 오해 없이 쉽고 정확하게 소통하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고객의 도면을 안전하고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카파 클라우드(Cloud), 고객과 제조업체가 실시간으로 도면을 동시에 보면서 채팅하는 카파 커넥트, 도면의 특징적 형상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제조가 불가능한 디자인을 사전에 걸러내는 카파 AI처럼 최신 IT기술을 접목해나갈 것입니다. 중간에 전문가가 없더라도 고객과 제조업체가 부담 없이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는 공간이 될 겁니다.”
― 모든 것이 원스톱, 온라인에서 이뤄진다고요.
“여전히 제조업계는 보통 고객과 제조사가 직접 만나거나 도면을 이메일로 보내고 이를 보면서 전화로 상담합니다. 하지만 카파를 이용하면 전화가 필요 없습니다. 고객이 올린 도면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요구 사항을 올리면 제조사가 답하고, 양쪽이 채팅을 통해 조율하면 끝입니다. 고객과 제조사가 협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재 국내 제조업 플랫폼 시장에서 카파가 달성 가능한 매출 규모는 1000억원, 국내 잠재 시장 규모는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9월 처음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1년, 최근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지난 8월엔 제조업계의 비수기임에도 고객들의 견적 요청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재 카파는 무료 서비스 중이다. 앞으로도 고객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파트너(제조업체) 측에 월(月) 정액제 등을 도입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 창업지원기관에서 받은 충격으로 사업 시작
제조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였지만, 고산 대표는 “이제 시작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그가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다. 비록 우주 비행은 실패했지만, 과학 정책을 계속 연구하고 싶던 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간 근무했다. 선진 과학기술 정책을 배우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지원해 입학 허가를 받았다. 2010년 하버드로 떠나기 전 우연히 실리콘밸리의 싱귤래리티대학(창업지원기관)에서 하는 10주짜리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10년 이내 10억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칠 프로젝트를 찾아라!’
이 한 줄이 고산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싱귤래리티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스케일부터 달랐어요. 전(全) 세계에서 선발된 80명의 젊은이에게 ‘10억명에게 영향을 미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10억명이라, 그것도 10년 이내에,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목표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느낌이 정말 강렬했습니다. 거기 있던 친구들도 대부분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주인을 꿈꿨을 때와 자꾸 오버랩되더군요. 우주 여행이든, 세상에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모두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싱귤래리티에서 말했던 많은 일이 현실이 됐습니다. 테슬라, 자율주행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 누가 알았나요. 그때 목표를 높게 잡아보자,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이었죠.”
고산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의 10주 동안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꿈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을 갔는데 그곳은 사뭇 달랐다. 케네디스쿨이 문제를 사회・정치적인 관점에서 풀려고 한다면, 싱귤래리티대학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세상과 접목시키자는 프런티어 정신이 있었다. 고산 대표에게는 후자가 더 마음에 끌렸다.
3D 프린터 실패를 발판으로 제조업 플랫폼 시작
하버드대학에서 1년 만에 돌아온 그는 2011년,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차렸다. ‘타이드(TIDE)’는 ‘테크놀로지(Technology),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 디자인(Design), 엔터프리너십(Entrepreneurship)’을 말한다. 자본금은 100만원, 이명박 정부 들어 창업이 다시 열풍이 불던 때였다. 한국 청년들이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도록 미국의 싱귤래리티대학 같은 기관을 목표로 했다. 회사는 제법 잘나갔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해외에서 창업대회도 열었다. 타이드 인스티튜트가 한국판 싱귤래리티대학을 표방하며 개설한 ‘타이드 인비전 유니버시티(TIDE Envision University)’는 올해 4기를 운영 중이고, 최근엔 의과학 분야 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하는 ‘TEU-MED 과정’을 신설해 수강생 모집에 나섰다.
타이드가 어느 정도 자리 잡는 것을 본 그는 2013년에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했다. 그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봤으니, 이번에는 내가 직접 플레이어로서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처음 접한 ‘3D 프린터’의 기술 특허가 만료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3D 프린터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사실상 실패였다.
고산 대표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조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3D 프린터로 제조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제품 제작과 양산까지 시간이 많이 들었고, 실패로 돌아갔다”며 “제조업의 특성을 깊이 알게 된 데에 만족해야 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방식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들을 위한 자유로운 판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제조업 플랫폼’을 다음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고, 수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에 이른 것이 바로 카파 서비스다. 주목받는 투자업체인 알토스벤처스가 그에게 자금을 댔다. 그는 카파 플랫폼을 해외로 들고 나가 글로벌 온라인 제조 플랫폼으로 성장시킨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전 세계 플랫폼 업체들이 합병이나 증시 상장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본격적인 플랫폼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중 누가 제조업계의 ‘아마존’이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카파는 고객과 제조업체를 매칭시키는 서비스를 좀 더 고도화하는 중입니다. 3D 도면을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제조 가능 여부를 검증하고, 비용을 자동으로 판단하는 등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특히 플랫폼 비즈니스는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낮아서 해외 진출이 쉽습니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다음에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우주 비행 경험보다 나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중요”
― 우주인과 제조업 플랫폼 사업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음, 저는 많이 다르지 않다고 봐요. 우주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설령 나갔다고 해도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결과물이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불모지에 가까운 플랫폼 비즈니스를 국내에 안착시키고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고산 대표의 우주인 시절 얘기를 물을까 말까 고민했다. 자신의 자랑거리가 아닌 질문을 던질 때 대다수의 사람은 “그 얘기는 빼고 합시다”라며 손사래 친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달랐다. 일생 그의 이름 앞에 ‘우주인 고산’이 따라다닐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후보였다가 최종 1인에 들지 못했을 때 주위에서 우려가 컸습니다. ‘괜찮으냐’ ‘힘내라’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하도 하니까 ‘내가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 소위 말하는 맷집이 강한 편인가 봐요.
“아, 그건 맞아요.(웃음) 우주를 다녀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제가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남들이 비운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걱정해도 괜찮은데 저는 나름 잘 극복을 했거든요. 실은 두 번의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재미있습니다.”
고산 대표가 여러 이력을 거친 것은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이 일조했다. 수학이 전공이었지만, 컴퓨터 비전에 꽂혀 석사 1학년은 이경무(李炅武) 서울공대 전기공학부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했다. 요즘은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된 화두지만 1990년대 후반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던 때였다. 자정까지 연구하는 날도 많았고, 틈나면 산악회 회원들과 암벽 등반을 하고 복싱도 했다. 그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재밌었다. 인지과학, 인공지능에 일찍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람을 알아가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푹 빠졌던 것 같다”고 했다.
우주인에 지원한 것은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가 미국 유학 중에 추천해서였다. 그는 “천문을 좋아했던 아내와 같이 지원하기로 했는데 나만 지원하게 됐다. 우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멋진 프로젝트에 참여해보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김우식(金宇植) 과학기술 부총리 주도하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축이 된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프로젝트’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사람이 지원했고, 6개월간의 테스트가 진행됐다. 경쟁률은 3만6000대 1. 고산 대표가 첫 우주인 후보로, 그의 백업으로 이소연씨가 뽑혔다. 두 사람은 2007년 초,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로 훈련을 위해 떠났다.
세금이 투입된 국가 프로젝트라 배워야 한다는 의욕이 앞서
그의 얘기다.
“뉴스에 나오던 건 우주 발사체고, 우주선은 맨 위에 있는 땅콩처럼 생긴 작은 캡슐이에요. 그곳에 인공위성, 핵탄두, 우주선을 실을 수 있는 거죠. 우주 발사를 통해 지구를 벗어나고 나중에 캡슐만 귀환합니다. 캡슐은 조종석, 우주 정거장까지 가는 동안 생활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조종석은 3개인데 가운데와 왼쪽은 러시아 동료가 맡고, 저는 오른쪽 조종을 맡았습니다. 3명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훈련받는 일은 없고, 저는 제 역할에 맞는 훈련, 생활 훈련을 했습니다.”
― 1년 가까이 훈련받았죠.
“네. 제가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상상한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우주선은 최첨단 기기로 무장돼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령 우주복을 입고 밀봉할 때 고무줄을 감습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기지니까 그럴 수 있는데 좀 뜻밖이었죠. 또 우리는 국가 프로젝트라서 발사 일정이 정해져 있었지만, 러시아 우주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기회 속에 훈련만 하고 있었습니다.”
― 우주선에 승선하기 한 달 전에 탑승자가 이소연씨로 교체됐죠.
“러시아 친구를 통해 구한, 우주인 훈련에 도움될 만한 교재를 열람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 기술이라는 것이 러시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미국・유럽・일본 우주인들이 모두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습니다. 우주인이 교체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죠. 러시아 우주센터에서 1년 동안 훈련받으면서 후반 들어서는 개인 자습을 하라고 하고 시간 때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이전까지 대단한 애국자는 아니었는데요, 막상 대한민국 대표로 러시아 우주센터에 가면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대한민국 최초라는 역사 위에 있고, 국책 프로젝트로 400억원이나 투입됐는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갈수록 배움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까, 국가 세금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 시작한 일인데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욕이 컸습니다.”
― 일부에서는 정부 지시로 교재를 반출하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했는데요.
“제 개인 판단이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내가 국민 세금으로 여기까지 와서 자습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 배워야 할 것 다 배우자’는 의지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지식을 갖추고 싶었습니다.”
러시아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고 대표의 자격을 박탈하고, 그와 함께 훈련하던 이소연씨로 바통을 터치했다. 불과 한 달 뒤인 2008년 4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서 한국인 이소연씨를 태운 우주선이 발사됐다. 고 대표는 이 자리까지 함께 따라가고 귀국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아
귀국한 그는 우주 분야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근무했다. 비록 우주선 승선에는 실패했지만, 그동안 배운 지식을 후대를 위해 하나도 빠짐없이 남기겠단 생각을 했다.
“비록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진 못했지만, 그 경험을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할 수 없었습니다. 제 경험을 모두 종합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에 이바지하려고 마음먹었죠. 강의도 많이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우주인’이라고 답하는 이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당연하기도 한데, 제 입장에서는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국책 프로젝트로 시작했으니 앞으로 우주 분야에 우리나라도 뛰어들 수 있도록 제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때까지만 해도 우주 관련 분야에 계속 몸담고 싶었군요.
“부채 의식이 제일 컸습니다. 국민 세금 쓰고 돌아왔다는…. 우주 비행을 했더라면 또 다른 경험을 했겠지만, 주위 생각만큼 아쉽지 않았던 건 제 노력이 많이 투입되지 않아서입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최소 몇 년을,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그 목표를 향해 질주하잖습니까. 그런데 러시아에서 우주선 출발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훈련하는 우주인을 보면서 ‘나는 운이 좋아서 여기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노력은 그들 앞에서는 별것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 경험을 어떻게든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선진 정책 기술을 배우려고 유학을 떠난 건데, 인생의 전환점이 됐네요.”
― 테슬라, 아마존 등 CEO들이 우주에 관심이 높습니다. 불가능으로 여기던 우주 여행이 현실이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을 태운 버진갤럭틱이 얼마 전에 유인 비행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우주에 정말 갔네!’라며 감동하지만 저는 거기에 숨은 노력을 알잖습니까.
버진갤럭틱이 처음 우주선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이 무려 17년 전입니다. 반대로 첫 발사 이후에 17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을 태우고 우주로 나간 겁니다. 시험 비행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도 있고, 긴 시간을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기며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무언가 된 것이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많은 멋진 이벤트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공 발사에 환호할 때 그 뒤에서 묵묵히 일한 사람들을 떠올렸군요.
“경험했으니까요. 누가 먼저 우주인을 배출하느냐, 얼마나 멀리 가느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다가 뜻하지 않게 인생 궤도가 바뀔 수도 있고,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어떤 것에 의미를 두느냐는 것은 본인만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 그래서 2021년 고산씨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요.
“에이팀벤처스가 사람들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회사로 크는 일입니다. 저는 우주인이라는 단어가 ‘도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세상에 없는 플랫폼을 개척하는 지금도 저는 도전하는 중입니다.”
우주인이든 사업가든, 아니면 또 다른 모습이든 그에게는 ‘모험가’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릴 것 같다.⊙
그가 창업해 대표를 맡고 있는 에이팀벤처스는 제조업 분야의 고객이 온라인에서 도면과 함께 부품이나 시제품 등의 제작을 의뢰(견적 요청)하면 이를 적합한 제조업체와 연결해주는 ‘카파(CAPA)’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에게 어울릴 법한 남녀를 매칭시켜주는 ‘커플매니저’처럼 고객에게 맞는 제조업체를 연결해준다고 해서 일명 ‘제조업체 매칭플랫폼’이라고도 부른다. 우주인 후보가 아닌, 기업가로서 고산을 만났다.
― 어떻게 지냈습니까.
“스타트업을 시작해 이것저것 하다 보니 꽤 시간이 흘렀네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사람들은 여태 걸어온 길을 갈 지(之)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외고 중국어과를 나와서 공대에 진학했고, 같은 학교를 두 번이나 갔죠. (그는 1995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시험을 치러 1996년 서울대 수학과에 들어갔다.) 삼성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 우주인에 도전하고,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그러다 현재 사업하고 있으니까 의아해할 겁니다.(웃음)”
― 평범한 40대의 길은 아니었네요.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먼 목표를 세팅하고 매진하지만, 저는 주어진 상황에 맞추면서 살았습니다. 한 걸음 가다 보면 제가 모르는 길이 펼쳐지고, 그러면 거기에 맞추다 또 다른 길이 보이면 그리로 갔죠. 장대한 장기 목표는 없었지만 ‘이렇게 살아보자’는 방향성은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 싱귤래리티대학 연수 과정에서 접한 ‘10억명 이상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였습니다.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삶은 다 연결돼 있었어요. 우주인에 도전했을 때까지가 인생 1막이었다면, 지금은 2막입니다.”
‘카파’는 제조업계의 ‘배달의 민족’ 같은 서비스
고산 대표는 현재 카파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제조 외주 플랫폼 업체 에이팀벤처스를 운영 중이다. 산업용 부품이나 시제품 제작 등이 필요한 업체와 이를 공급하는 제조업체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B2B 비즈니스라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고, 아직까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활성화된 비즈니스는 아니다.
“제조 생태계의 네이버, 쿠팡과 같은 서비스입니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가격을 비교하고 구매 결정을 해 배송받습니다.
제조업계에는 그런 플랫폼이 없었어요.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자 하는 중소기업들은 제조업체를 알음알음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공급업체들은 고객을 다양하게 찾고 싶어도 새로운 고객을 만날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보니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에만 납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제조시장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고객들은 ‘내가 필요한 부품이나 제품을 만들어줄 업체를 일일이 찾으러 다니지 않고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없을까’ 하는 니즈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제조업체들은 ‘배달의 민족 같은 곳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제조업체에는 이런 플랫폼이 없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에이팀벤처스의 카파(http://capa.ai)서비스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고객들은 자신이 필요한 제품이나 부품의 도면과 요청 사항을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견적을 요청한다. 견적 문의가 이뤄지면 카파에 가입한 제조사로 알림 메시지가 발송된다. 최신 3D 프린팅부터 CNC공작기계, 사출성형, 판금, 주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공 방식을 취급하는 카파의 2000여(공정 기준) 파트너 제조업체 가운데 고객의 주문 요건에 맞는 업체들이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자사에서 제작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고객에게 예상견적을 작성해 발송한다. 고객은 제조업체들이 보내준 여러 견적을 비교하고 채팅을 통해 상담을 받은 뒤 이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거래를 확정 짓는다.
정보의 ‘구글’, 유통의 ‘아마존’, 제조의 ‘CAPA’
고산 대표의 얘기다.
“고객은 원하는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를 빠르게 찾고 제조 단가를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제조 파트너사와 한 번 거래를 시작하면 쉽게 바꾸지 못했습니다. 좋은 부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받는다면 문제가 없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파트너사를 바꿔야 하고, 또 비슷한 품질이라면 단가가 더 싼 곳으로 바꿔야죠. 사업이 확장되면 새로운 부품도 공급받아야 했고요. 그런데 네트워크 한계가 있어 애먹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 제조업체 측도 비슷한 애로사항이 있었겠죠.
“그렇죠. 기존 고객들에게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했습니다. 산업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자동차 부품업계는 전기차 시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큰 기업의 하청업체로만 살기에 한계가 있고, 새로운 채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소통의 장, 온라인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 고객들이 음식을 주문하듯이 설비를 납품받는 곳이네요.
“‘3분만 투자해 도면과 요청사항을 업로드하면 24시간 이내에 평균 7개 제조업체로부터 견적 제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모토입니다. 정보의 플랫폼에 ‘구글’이 있고, 유통의 플랫폼에 ‘아마존’이 있다면 제조의 플랫폼에는 ‘CAPA’가 있습니다.”
고객과 제조사가 100% 온라인에서 원스톱으로 진행
― 물론 음식 플랫폼과 제조업 플랫폼은 많이 다르겠지요.
“짜장면은 만드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배달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제조는 주문하는 고객도 도면을 비롯해 자신이 주문하려는 제품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제조에 대한 지식, 경험이 없는 고객과의 소통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조업계에서 ‘제품 생산비용의 절반이 인건비라면, 인건비의 절반은 기술적인 요구 사항을 논의하고 가격을 협상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고객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소리입니다.
카파는 고객과 제조업체가 오해 없이 쉽고 정확하게 소통하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고객의 도면을 안전하고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카파 클라우드(Cloud), 고객과 제조업체가 실시간으로 도면을 동시에 보면서 채팅하는 카파 커넥트, 도면의 특징적 형상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제조가 불가능한 디자인을 사전에 걸러내는 카파 AI처럼 최신 IT기술을 접목해나갈 것입니다. 중간에 전문가가 없더라도 고객과 제조업체가 부담 없이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는 공간이 될 겁니다.”
― 모든 것이 원스톱, 온라인에서 이뤄진다고요.
“여전히 제조업계는 보통 고객과 제조사가 직접 만나거나 도면을 이메일로 보내고 이를 보면서 전화로 상담합니다. 하지만 카파를 이용하면 전화가 필요 없습니다. 고객이 올린 도면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요구 사항을 올리면 제조사가 답하고, 양쪽이 채팅을 통해 조율하면 끝입니다. 고객과 제조사가 협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재 국내 제조업 플랫폼 시장에서 카파가 달성 가능한 매출 규모는 1000억원, 국내 잠재 시장 규모는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9월 처음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1년, 최근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지난 8월엔 제조업계의 비수기임에도 고객들의 견적 요청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재 카파는 무료 서비스 중이다. 앞으로도 고객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파트너(제조업체) 측에 월(月) 정액제 등을 도입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 |
2008년 4월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 비행에 나설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고산씨가 최종 선정됐다. 사진=조선DB |
그가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다. 비록 우주 비행은 실패했지만, 과학 정책을 계속 연구하고 싶던 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간 근무했다. 선진 과학기술 정책을 배우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지원해 입학 허가를 받았다. 2010년 하버드로 떠나기 전 우연히 실리콘밸리의 싱귤래리티대학(창업지원기관)에서 하는 10주짜리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10년 이내 10억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칠 프로젝트를 찾아라!’
이 한 줄이 고산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싱귤래리티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스케일부터 달랐어요. 전(全) 세계에서 선발된 80명의 젊은이에게 ‘10억명에게 영향을 미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10억명이라, 그것도 10년 이내에,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목표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느낌이 정말 강렬했습니다. 거기 있던 친구들도 대부분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주인을 꿈꿨을 때와 자꾸 오버랩되더군요. 우주 여행이든, 세상에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모두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싱귤래리티에서 말했던 많은 일이 현실이 됐습니다. 테슬라, 자율주행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 누가 알았나요. 그때 목표를 높게 잡아보자,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이었죠.”
고산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의 10주 동안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꿈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을 갔는데 그곳은 사뭇 달랐다. 케네디스쿨이 문제를 사회・정치적인 관점에서 풀려고 한다면, 싱귤래리티대학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세상과 접목시키자는 프런티어 정신이 있었다. 고산 대표에게는 후자가 더 마음에 끌렸다.
3D 프린터 실패를 발판으로 제조업 플랫폼 시작
하버드대학에서 1년 만에 돌아온 그는 2011년,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차렸다. ‘타이드(TIDE)’는 ‘테크놀로지(Technology),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 디자인(Design), 엔터프리너십(Entrepreneurship)’을 말한다. 자본금은 100만원, 이명박 정부 들어 창업이 다시 열풍이 불던 때였다. 한국 청년들이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도록 미국의 싱귤래리티대학 같은 기관을 목표로 했다. 회사는 제법 잘나갔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해외에서 창업대회도 열었다. 타이드 인스티튜트가 한국판 싱귤래리티대학을 표방하며 개설한 ‘타이드 인비전 유니버시티(TIDE Envision University)’는 올해 4기를 운영 중이고, 최근엔 의과학 분야 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하는 ‘TEU-MED 과정’을 신설해 수강생 모집에 나섰다.
타이드가 어느 정도 자리 잡는 것을 본 그는 2013년에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했다. 그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봤으니, 이번에는 내가 직접 플레이어로서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처음 접한 ‘3D 프린터’의 기술 특허가 만료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3D 프린터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사실상 실패였다.
고산 대표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조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3D 프린터로 제조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제품 제작과 양산까지 시간이 많이 들었고, 실패로 돌아갔다”며 “제조업의 특성을 깊이 알게 된 데에 만족해야 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방식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들을 위한 자유로운 판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제조업 플랫폼’을 다음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고, 수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에 이른 것이 바로 카파 서비스다. 주목받는 투자업체인 알토스벤처스가 그에게 자금을 댔다. 그는 카파 플랫폼을 해외로 들고 나가 글로벌 온라인 제조 플랫폼으로 성장시킨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전 세계 플랫폼 업체들이 합병이나 증시 상장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본격적인 플랫폼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중 누가 제조업계의 ‘아마존’이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카파는 고객과 제조업체를 매칭시키는 서비스를 좀 더 고도화하는 중입니다. 3D 도면을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제조 가능 여부를 검증하고, 비용을 자동으로 판단하는 등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특히 플랫폼 비즈니스는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낮아서 해외 진출이 쉽습니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다음에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우주 비행 경험보다 나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중요”
― 우주인과 제조업 플랫폼 사업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음, 저는 많이 다르지 않다고 봐요. 우주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설령 나갔다고 해도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결과물이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불모지에 가까운 플랫폼 비즈니스를 국내에 안착시키고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고산 대표의 우주인 시절 얘기를 물을까 말까 고민했다. 자신의 자랑거리가 아닌 질문을 던질 때 대다수의 사람은 “그 얘기는 빼고 합시다”라며 손사래 친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달랐다. 일생 그의 이름 앞에 ‘우주인 고산’이 따라다닐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후보였다가 최종 1인에 들지 못했을 때 주위에서 우려가 컸습니다. ‘괜찮으냐’ ‘힘내라’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하도 하니까 ‘내가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 소위 말하는 맷집이 강한 편인가 봐요.
“아, 그건 맞아요.(웃음) 우주를 다녀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제가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남들이 비운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걱정해도 괜찮은데 저는 나름 잘 극복을 했거든요. 실은 두 번의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재미있습니다.”
고산 대표가 여러 이력을 거친 것은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이 일조했다. 수학이 전공이었지만, 컴퓨터 비전에 꽂혀 석사 1학년은 이경무(李炅武) 서울공대 전기공학부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했다. 요즘은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된 화두지만 1990년대 후반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던 때였다. 자정까지 연구하는 날도 많았고, 틈나면 산악회 회원들과 암벽 등반을 하고 복싱도 했다. 그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재밌었다. 인지과학, 인공지능에 일찍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람을 알아가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푹 빠졌던 것 같다”고 했다.
우주인에 지원한 것은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가 미국 유학 중에 추천해서였다. 그는 “천문을 좋아했던 아내와 같이 지원하기로 했는데 나만 지원하게 됐다. 우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멋진 프로젝트에 참여해보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김우식(金宇植) 과학기술 부총리 주도하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축이 된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프로젝트’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사람이 지원했고, 6개월간의 테스트가 진행됐다. 경쟁률은 3만6000대 1. 고산 대표가 첫 우주인 후보로, 그의 백업으로 이소연씨가 뽑혔다. 두 사람은 2007년 초,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로 훈련을 위해 떠났다.
![]() |
지난 7월 27일 박진(왼쪽에서 세 번째) 국민의힘 의원의 ‘스타트업 간담회’ 당시 함께한 고산(왼쪽에서 네 번째) 대표와 직원들. 사진=에이팀벤처스 제공 |
“뉴스에 나오던 건 우주 발사체고, 우주선은 맨 위에 있는 땅콩처럼 생긴 작은 캡슐이에요. 그곳에 인공위성, 핵탄두, 우주선을 실을 수 있는 거죠. 우주 발사를 통해 지구를 벗어나고 나중에 캡슐만 귀환합니다. 캡슐은 조종석, 우주 정거장까지 가는 동안 생활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조종석은 3개인데 가운데와 왼쪽은 러시아 동료가 맡고, 저는 오른쪽 조종을 맡았습니다. 3명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훈련받는 일은 없고, 저는 제 역할에 맞는 훈련, 생활 훈련을 했습니다.”
― 1년 가까이 훈련받았죠.
“네. 제가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상상한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우주선은 최첨단 기기로 무장돼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령 우주복을 입고 밀봉할 때 고무줄을 감습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기지니까 그럴 수 있는데 좀 뜻밖이었죠. 또 우리는 국가 프로젝트라서 발사 일정이 정해져 있었지만, 러시아 우주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기회 속에 훈련만 하고 있었습니다.”
― 우주선에 승선하기 한 달 전에 탑승자가 이소연씨로 교체됐죠.
“러시아 친구를 통해 구한, 우주인 훈련에 도움될 만한 교재를 열람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 기술이라는 것이 러시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미국・유럽・일본 우주인들이 모두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습니다. 우주인이 교체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죠. 러시아 우주센터에서 1년 동안 훈련받으면서 후반 들어서는 개인 자습을 하라고 하고 시간 때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이전까지 대단한 애국자는 아니었는데요, 막상 대한민국 대표로 러시아 우주센터에 가면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대한민국 최초라는 역사 위에 있고, 국책 프로젝트로 400억원이나 투입됐는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갈수록 배움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까, 국가 세금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 시작한 일인데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욕이 컸습니다.”
― 일부에서는 정부 지시로 교재를 반출하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했는데요.
“제 개인 판단이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내가 국민 세금으로 여기까지 와서 자습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 배워야 할 것 다 배우자’는 의지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지식을 갖추고 싶었습니다.”
러시아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고 대표의 자격을 박탈하고, 그와 함께 훈련하던 이소연씨로 바통을 터치했다. 불과 한 달 뒤인 2008년 4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서 한국인 이소연씨를 태운 우주선이 발사됐다. 고 대표는 이 자리까지 함께 따라가고 귀국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아
귀국한 그는 우주 분야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근무했다. 비록 우주선 승선에는 실패했지만, 그동안 배운 지식을 후대를 위해 하나도 빠짐없이 남기겠단 생각을 했다.
“비록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진 못했지만, 그 경험을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할 수 없었습니다. 제 경험을 모두 종합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에 이바지하려고 마음먹었죠. 강의도 많이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우주인’이라고 답하는 이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당연하기도 한데, 제 입장에서는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국책 프로젝트로 시작했으니 앞으로 우주 분야에 우리나라도 뛰어들 수 있도록 제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때까지만 해도 우주 관련 분야에 계속 몸담고 싶었군요.
“부채 의식이 제일 컸습니다. 국민 세금 쓰고 돌아왔다는…. 우주 비행을 했더라면 또 다른 경험을 했겠지만, 주위 생각만큼 아쉽지 않았던 건 제 노력이 많이 투입되지 않아서입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최소 몇 년을,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그 목표를 향해 질주하잖습니까. 그런데 러시아에서 우주선 출발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훈련하는 우주인을 보면서 ‘나는 운이 좋아서 여기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노력은 그들 앞에서는 별것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 경험을 어떻게든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선진 정책 기술을 배우려고 유학을 떠난 건데, 인생의 전환점이 됐네요.”
― 테슬라, 아마존 등 CEO들이 우주에 관심이 높습니다. 불가능으로 여기던 우주 여행이 현실이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을 태운 버진갤럭틱이 얼마 전에 유인 비행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우주에 정말 갔네!’라며 감동하지만 저는 거기에 숨은 노력을 알잖습니까.
버진갤럭틱이 처음 우주선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이 무려 17년 전입니다. 반대로 첫 발사 이후에 17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을 태우고 우주로 나간 겁니다. 시험 비행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도 있고, 긴 시간을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기며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무언가 된 것이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많은 멋진 이벤트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공 발사에 환호할 때 그 뒤에서 묵묵히 일한 사람들을 떠올렸군요.
“경험했으니까요. 누가 먼저 우주인을 배출하느냐, 얼마나 멀리 가느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다가 뜻하지 않게 인생 궤도가 바뀔 수도 있고,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어떤 것에 의미를 두느냐는 것은 본인만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 그래서 2021년 고산씨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요.
“에이팀벤처스가 사람들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회사로 크는 일입니다. 저는 우주인이라는 단어가 ‘도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세상에 없는 플랫폼을 개척하는 지금도 저는 도전하는 중입니다.”
우주인이든 사업가든, 아니면 또 다른 모습이든 그에게는 ‘모험가’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