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제119조 2항·일명 ‘김종인 조항’)
⊙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해결 못 하면 국민이 할 것”
⊙ 경제민주화, 경제 3법뿐 아니라 노동 개혁·연금 개혁도 추진
⊙ 경제민주화, 총론은 있으나 각론은 없어… 내부서도 답답
⊙ “6공 경제수석 시절 재벌과 갈등이 오늘날 재벌 개혁·경제민주화로 발전”
⊙ “(헌법상) 경제의 민주화는 官治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했던 것”(헌법 개정 참여 현경대 전 의원)
⊙ “2022 대선 앞두고 새로운 경제민주화 등장할 것”
⊙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해결 못 하면 국민이 할 것”
⊙ 경제민주화, 경제 3법뿐 아니라 노동 개혁·연금 개혁도 추진
⊙ 경제민주화, 총론은 있으나 각론은 없어… 내부서도 답답
⊙ “6공 경제수석 시절 재벌과 갈등이 오늘날 재벌 개혁·경제민주화로 발전”
⊙ “(헌법상) 경제의 민주화는 官治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했던 것”(헌법 개정 참여 현경대 전 의원)
⊙ “2022 대선 앞두고 새로운 경제민주화 등장할 것”
- 2016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 사진=조선DB
지난 9월 정기 국회가 열리자 ‘경제 3법’이 화두가 됐다. 일부에선 ‘공정경제 3법’, 다른 쪽에선 ‘기업규제 3법’이라 부른다. ‘경제민주화’의 각론(各論)이기도 한 이 3법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말한다.
국민의힘 김종인(金鍾仁·80) 비상대책위원장은 3법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3법 입법을 주도하는 정부·여당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전속고발권 폐지’ 등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취약해진다’고 주장한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란,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사내·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제도다.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된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해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현행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다. 일반 시민·주주 등의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 도입됐는데,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김종인 10분, 이낙연 20분
3법 입법이 정치권에서 본격 논의되자 재계는 여야 대표를 찾아갔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은 지난 9월 22일 김종인 위원장을 오전에, 민주당 이낙연 대표를 오후에 만났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은 비공개였고 10분 만에 끝났다. 이 대표와는 20분을 만났다. 10분은 공개 발언 및 포토 타임이었다. 박 회장은 양쪽 모두로부터 원론적인 이야기만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양당 대표를 찾아 경제 3법을 비롯한 기업 관련 법안에 우려를 표했다.
보수 정당은 시장친화적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왜 보수 정당의 대표는 재계를 대표하는 재벌 총수를 10분밖에 만나지 않았을까. 그가 걸어온 길을 알면 그가 재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조부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 선생이다. 가인은 신간회를 이끌었고, 독립운동가 변론에도 앞장섰다. 1940년생인 김종인 위원장은 만 4세던 해에 부친을 여의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1963년 가인이 야권의 구심점이 돼 민정당(民政黨) 대표최고위원을 맡자 23세의 청년 김종인은 가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77세의 연로한 할아버지를 지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할아버지를 모신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인의 각서는 믿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가인이 1964년 1월 세상을 떠나자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갔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세부 전공은 재정학이며, 논문 제목은 〈개발도상국가에 있어서의 분배와 재분배〉이다.
귀국한 뒤 1973년 3월에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1974년 박정희 정부에서 처음으로 정부 정책에 참여했다.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 고(故) 김정렴 비서실장이 그의 처삼촌이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 정부 시절 ▲부가가치세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도입 등에 자신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간접세의 일종인 부가가치세 도입이 당시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부가가치세 도입 논의 과정에서는 반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1977년에 시행됐다.
중산층을 두껍게 만들어 사회를 안정시키겠다는 목적으로 1976년에는 재형저축을 탄생시켰다. 근로자들이 저축하면 이자를 더 얹어주고 세금 혜택까지 줬다.
오늘날 국민건강보험의 원형인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제도(1977년 7월 시행)’ 역시 자신이 주도해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종인 교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각에서 그의 국보위 경력을 문제 삼는데, 그는 “부가가치세 폐지를 막기 위해 참여했다”고 항변한다. 5공이 출범하자 조세 전문가로 민정당 전국구 의원(11·12대)이 됐다.
5공 경제 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1983년부터 시행한 예산 동결·긴축으로 노태우 정부 중후반까지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당시 정부 예산을 동결하는 바람에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이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고 평가한다.
1986년에는 ‘직선제 헌법’이라 부르는 6공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 헌법개정개헌안 10인 기초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김종인 조항’이라 부르는 119조 2항, 경제의 민주화 조항을 관철했다”고 말했다.
6공의 경제수석으로 재벌에 맞서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1989년 7월~1990년 3월)을 하다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1990년 3월~1992년 3월)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후 그는 재벌과 마찰을 빚는다.
김종인 위원장의 주변인들은 “6공 경제수석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재벌 개혁 의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5공 때부터 재벌과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6공 때는 토지매각과 주력 업종 제한 등 각종 대기업 규제책을 내보이며 재벌과의 사이가 더 멀어졌다. 김종인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가 대기업의 활동을 적절하게 제어했다고 평가한다.
1986~1989년 사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흑자가 330억 달러에 달했다. 기업들은 이 중 130억 달러를 업무와는 무관한 국내 토지 매입에 썼다. 김 위원장은 이를 ‘재벌의 땅 투기’라고 표현했다. 5공 출범 이후 1987년까지만 해도 땅값 상승률은 연평균 10% 내외였는데, 재벌의 땅 투기로 1988년(30%), 1989년(32%), 1990년(20.6%)에 걸쳐 지가(地價)가 급등했다고 말한다.
1990년 김종인 경제수석은 취임 직후 노태우 대통령에게 “재벌 총수들이 비업무용 땅을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해서 재벌이 갖고 있던 토지 1800만 평(약 5950만㎡)을 매각하게 했다. 이어 30대 재벌까지 동참해 5000만 평(약 1억6529만㎡)을 자연 매각했다고 한다. 이후 토지 가격 상승률은 1991년(12.8%)과 1992년(1%) 들어 안정을 찾았다.
그는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도 자신이 만든 경제민주화 조항(제119조 2항) 덕분이라고 말한다.
1991년 김종인 경제수석은 기업의 여러 업종 진출을 제한하고 대표 업종 3가지만 주력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우리 기업이 특기를 갖는 주력 업종에 집중해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기업들이 이것저것 만물상처럼 사업을 늘어놓고 그중 잘되는 것이 생기면 그것으로 ‘돌려막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비판한다. 김종인 위원장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과잉(중복) 투자, 과잉 시설, 과잉 부채로 이어졌고, IMF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재벌과 있었던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전자 산업이 주력인 재벌이었는데 느닷없이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 내가 경제수석으로 있는 동안에는 자동차 사업을 허가해주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다. 그랬더니 전직 총리, 장관, 대통령 측근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엄청나게 로비를 해댔다. … “5000억원씩 10년 동안 적자를 내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 아닌가. 기업의 자산을 개인의 쌈짓돈 정도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배어 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생각이다. …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나니 2개월 만에 그 재벌의 자동차 사업은 승인이 떨어졌다. IMF가 터지면서 결국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 그렇게 5조원가량을 허공에 날렸다.〉(《영원한 권력은 없다》(2020), p.247~249)
▲‘경제민주화는 사회주의 하자는 게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국민경제의 발전단계에서 특정 시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정신’
▲‘경제민주화의 핵심 요지는 거대 경제 세력이 사회의 모든 세력을 지배하는 것을 막자는 것’
▲‘경제민주화는 본질적으로 기업경영 시스템을 바꾸는 쪽으로 접근해야’
▲‘경제민주화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하지 못하는 일을 보이는 손(정부)이 하는 것’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
▲‘경제민주화를 정치권이 실행하지 못하면 국민이 직접 경제민주화를 실행하려 들 것이다’
경제민주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와 유사
김종인 위원장은 한국식 경제민주화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이 택한 경제 운용 방식이다. 시장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에 중점을 둔다. 그는 “경제민주화가 독일의 경제민주주의와 용어가 비슷하지만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내용상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자 하는 원리이지 사회주의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일부 학자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를 독일의 경제민주주의에서 차용했다고 비판한다. 독일식 경제민주주의는 사회주의적 전통에 기반한 개념으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힐퍼딩(Rudolf Hilferding)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 단계로 설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도 이른바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경제민주화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1890년 미국 최초의 독점금지법인 ‘셔먼(Sherman)법’을 통해 미국판 경제민주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후 법무부에 독점금지국을 설치해 카르텔(기업연합)과 트러스트(기업합병)를 처벌하기 시작했다. 1911년에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스탠더드 오일, 아메리칸 토바코 등이 소송을 통해 기업이 분리되기까지 했다.
2016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강연에서 그는 경제민주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기업인이 “경제민주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민주화’란 표현이 들어 있어 거부감은 있다. ‘경제합리화’나 ‘선진화’ 등 좋은 말이 있는데 왜 민주화인가”라고 질문했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반발로 나온 개념이다.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 단계와 역사를 볼 때 부(富)가 경제는 물론 사회의 여러 측면을 권위적으로 지배해왔다. 바로 이런 불합리한 점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경제도 민주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민주화는 로비를 통해 의회를 압박하는 거대 경제 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2017), p.91)
헌법 개정 당시에는 자신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고도 말했다.
〈정주영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경련과 토론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아직 개헌의 방향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상당히 위협적인 자세였지만 좋다고 했다. … 정주영 회장이 진두지휘해 전경련을 옹호하는 학자와 언론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 ‘자본주의는 기업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토론을 했다.) 정주영 회장이 “김 위원, 오해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무엇을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위의 책, p.85~86)
전두환, 처음에는 ‘경제민주화’ 조항 반대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으려고 하자 처음엔 전두환 대통령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전두환이 헌법 초안을 읽고는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내용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더니 유독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해서만 빼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뺄 수 없다고 말했다. …
“지금이야 정치 세력이 경제 세력에 비해 권한이 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경제 세력이 정치 세력을 앞지르게 될 것이고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움직이려는 욕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 세력은 언제든 위헌 소송을 걸어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려 들 것이다. 그때 그들을 제어할 헌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두환이 이 말을 듣고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냥 그대로 넣어야겠군”이라는 한마디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포함되었다.〉(《영원한 권력은 없다》, p.180~181)
김종인 위원장은 “거대 경제 세력(재벌)이 로펌까지 장악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경제민주화 조항마저 없다면 수많은 경제 관련 법과 제도, 조항들이 위헌 여부를 묻는 소송에 휘말려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민주화는 관치에서 탈피를 의미
6공 헌법 개정에 참여했던 현경대 전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해석에 문제를 제기한다. 당시 헌법 개정안 기초소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현 전 의원은 “당시 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는 관치경제로부터의 민주화를 의미했다”며 “그간 정부 주도의 경제 활동에서 벗어나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이어 “경제 도약을 위해 정부(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 조항의 취지이며, 1인 1표의 민주주의 정치 원칙을 경제에 적용해 부(富)를 평등하게 나눠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 조항 중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이라는 부분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란, 정부 주도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 가계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라며 “헌법 개정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바꾸고 이마저 5년 후 폐지한 것도 민간 자율성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남재희 전 의원은 언론을 통해 “김 위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에 심취했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국가의 조정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라는 발상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질서경제학회의 반박
헌법재판소(헌재)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해석할까. 헌재에서 20여 년간 헌법을 연구한 한 변호사는 “경제와 민주주의는 모순되는 가치이며,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도 정치적 구호에 불과해 헌법 재판 시 (용어 그 자체는) 참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논자에 따라 정치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간의 헌재 판례로 볼 때, 이 용어를 (구속력 있는) 규범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은 정치적 수사(修辭)로 받아들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는 조화할 수 없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이지만, 경제는 합리성을 내세웁니다. 주식을 예로 들자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 수만큼 의결권을 갖는 것 아닙니까. 경제에 어떻게 1인 1표의 원칙을 부여할 수 있습니까. 다만 119조 2항에 나타난 구체적인 표현(‘남용을 방지’ ‘규제와 조정’)을 통해 관련 내용을 판단합니다.”
지난 10월 6일, 한국질서경제학회는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질서경제학회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정부가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만을 담당하고 경제활동은 개인의 자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국가 주도의 경제관과 마구잡이 기업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민주화의 본질과 논거가 제시되기보다는 당위성만이 강조됐다”며 “부족하다 싶으면 ‘패러다임’ ‘시대정신’ ‘헌법 가치’라는 단어를 동원해 경제민주화를 정당화해왔다”고 했다. 조 명예교수는 “헌법 119조의 제1항과 2항은 원칙과 보칙의 관계”라면서 “1항과 2항을 연결하면, ‘자유와 창의를 경제상의 기본질서로 하되, 필요한 경우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로 축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항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문구를 빼더라도 의미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산별노조 전환 주장
경제 3법에 찬성한 김 위원장은 곧이어 ‘노동 개혁’도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동 개혁 없이는 한국형 뉴딜도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여당은 ‘노동 개혁’이라는 용어가 나오자 반발했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경제 3법과 노동 개혁을 서로 맞바꾸는 것은 아니다. 경제 3법은 김종인 위원장이 2012년부터 추진해온 작품이고, 노동 개혁 역시 우리 당이 주장해왔다. 우리가 추진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 3법뿐만 아니라 노동 개혁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표 노동 개혁의 핵심은 아직 구체화한 내용이 없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차별 해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플랫폼 노동자 처우 마련 등 원론적인 내용만 있다. 김종인표 노동 개혁의 핵심은 지금의 기업노조를 산별노조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 노조가 모두 기업노조를 골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조=기업노조’라는 인식만 갖고 있다고 말한다. 5공 당시 지금의 형태인 기업노조에서 탈피해 산업·직능별 노조를 기본으로 하고, 기업에는 노동조합이나 외부 노조의 지부가 존재하지 않는 방식을 구상한 적이 있다. 여기에 기업가·사무직·현장직이 모두 참여하는 노사협의체 방식의 노동관계법 개정을 추진했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도 동의했으나 전경련이 나서는 바람에 결국 지금의 기업노조 체제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산업·직능별 노조란, 금속노조·금융노조와 같이 산업별로 구성된 노조를 말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지금과 같은 산별노조는 모두 기업노조를 기반으로 한 연합체 수준이라 존재 의미 자체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별 노조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잘나가는 대기업 노조는 중소기업 노조를 흔들고,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별 노조를 산업별 직능 노조로 바꾸면, 임금이나 처우 협상 시 특정 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발생하지 않아 특정 기업의 근로자만이 아닌 전체 근로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취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대기업(기업별) 노조는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 이익을 챙겨 노총이 개입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정치적인 투쟁 이슈를 찾는 데만 골몰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자신들이 관리하기 쉬우니 기업별 노조를 채택했다고 한다. 그는 노조 체제가 정비되지 않으면 소득 분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소득 분배는 노동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할 때 노동자들의 시위가 빈번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노동관련법 정비를 제안했다. 기업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재편하자고 말이다. 그때 강력하게 반대했던 대기업 총수가 있었다. 그의 주장이 바로 “내가 만든 기업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식이었다. … 그 회사는 노조 때문에 큰 몸살을 앓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귀족노조로 이래저래 지탄을 받고 있다. 돈으로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던 그 대기업 총수는 그 문제 말고도 여러 가지 악연으로 나와 대립했다.〉(《영원한 권력은 없다》, p.123)
노조의 경영 참여 주장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에는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도 있다. 이는 독일 방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국은 전쟁 특수를 누린 독일의 주요 산업(철광, 석탄 등)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노조를 기업 경영에 참여시켰다. 이 제도가 독일에 널리 퍼져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라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1951년 독일에서는 산업 구조의 주요 의사 결정에 노동자의 경영 참여제도를 도입했다. 경영자와 노동자 측이 절반씩 참여해 회사의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운영하니 노동조합의 투쟁 형태가 확 바뀐 것이다. 원래 노사관계란 갈등의 관계이다. 그런데 독일의 노동조합은 1960년대 협동주의에 입각한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게 됐다. 그 이후 1960~1970년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선 노사분규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 p.176)
김 위원장이 말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의사공동결정권’이라고도 한다. 노사가 공동으로 기업의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노조가 기업 경영에 참여해 노사가 신뢰 관계를 구축하면 서로 이익이 된다는 입장이다. 독일은 2000명 이상 직원을 둔 기업이 감사위원회 구성의 절반을 근로자가 추천한 인사들로 임명하는 제도가 있다.
김 위원장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가의 힘이 워낙 강하니 정부가 개입해 노동조합의 힘, 대항력을 키우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독일은 노조의 경영 참여로 원만한 기업환경을 유지하고 있을까. 독일에서 경제를 공부한 권혁철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독일식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는 독일에서도 문제가 많다”며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했다. 역시 독일에서 공부한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는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에 대해 “기업의 발전보다는 자신들의 처우 개선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의 덩치를 불려 세계 경쟁력을 키우기보단,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만 몰두해 근시안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는 비판이다.
“고도성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김종인)
김종인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박정희 콤플렉스, 성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고도성장 콤플렉스는 대기업 중심의 기업관・경제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IMF 당시가 한국 경제의 문제인 재벌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경제 권력의 사회 장악이 심화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교육과 보육, 무상급식을 복지 문제가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출산의 원인은 교육과 보육의 어려움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출산율은 곧 총인구와 생산가능 인구로 이어진다.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성장동력은 멈춘다. 0~5세 보육 문제는 미래 성장을 위한 노동력 확보라는 경제정책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조세부담률을 높여 세금을 마련하고 예산의 구조 개혁을 동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활용하자고 한다. 국민연금을 출산장려기금으로 활용하고,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해 생산가능 인구가 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연금 제도가 처음 거론될 때 무조건 자본을 축적하는 ‘민간 보험’ 형태가 아닌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이 노인을 먹여 살리는 ‘부과 방식’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부과 방식이란, 현재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못하는 노인을 먹여 살리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된 형식처럼,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먹여 살리고, 이 젊은 세대가 나이 들면 또 다른 젊은 세대가 이들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그는 지금의 국민연금 운용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장부상에는 많은 돈이 적립돼 있지만, 주식에 투자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느라 정작 돈이 필요할 때는 현금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가 가속하는 사회에서는 연기금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기금으로 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노인들의 노후생활에도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 자체가 성역화”
경제민주화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 여럿에게 연락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경제민주화에 대해 묻고 싶다’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 한 의원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조금이라도 평소에 가진 생각이 있으시지 않나요’라고 재차 물어도 그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완곡한 어투로 ‘답하기 곤란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국민의힘 D의원은 “위원장이 내세우는 핵심 의제인데 함부로 논했다가는 큰 문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대다수는 “경제민주화의 총론, 취지는 알겠는데, 각론, 세부 내용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통계청장을 지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강남 병)은 “당내 의원들이 경제민주화의 총론에는 찬성하나 각론에선 각자 의견이 나뉠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관련 법 중 공론화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디테일(세부내용·각론)을 더 다뤄야 한다”고 했다.
“취지에는 공감해요. 사실 각론을 다들 몰라 혼선이 있는 것 같아요. 막연하게는 잡히겠는데…. 경제민주화라는 것에 대해 아주 뚜렷한 청사진을 내놓은 적은 없잖아요.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처럼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민주화 그 자체가 성역화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확대된 경우도 있죠. 취지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악용된 부분도 있어 안타깝습니다.”(국민의힘 관계자 M)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세세히 알려주진 않고 ‘나만 믿고 따라와’라는 느낌이에요.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론도 분명 갖고 있을 텐데, 말을 쉽고 간결하게 하는 것을 선호하니 그 세부 내용을 말하진 않아요.
‘경제민주화는 어떻다’고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내가 무엇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식이죠.
독일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고, 결정적으로는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전경련과 맞섰던 경험이 지금의 성향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그때의 경험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재벌 개혁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국민의힘 Y 비대위원)
“2020년에 맞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필요”
경제전문가로 경실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 그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각론, 실체가 있다고 말한다. 이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일각에선 재벌해체까지 주장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말하는 의미는 ‘공정한 질서를 확립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 국회에서 구체적인 법안을 만들어냈고, 입법 운동도 펼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경제 3법 내용 중 감사위원 선출 시 총수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치는 조정해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실체’를 잡을 수도 없고, 각론을 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분야의 접근 방식과 시각을 다양하게 만드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구호로만 써먹고 폐기했잖아요. 정작 구체화·실체화해 각론으로 만들진 않았잖아요. 그래놓고 ‘실체가 없다’는 프레임만 씌웠죠.”(비대위원 김현아)
국민의힘 김병민 비대위원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김종인표 경제민주화가 등장하리라 전망했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가 모호하다는 말보다는,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공정경제 3법처럼 각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이 2012년 처음 발표했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 시대에 맞는, 2020년에 맞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IT업 발달, 근로 형태의 변화 등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당의 공약으로 이러한 변화상을 담아낸 그 구체적인 각론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경제 3법은 밀린 숙제 같은 것”
— 법을 몇 개 바꿔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너무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지금 추진하는 경제 3법은 10년 전에 미처 하지 못한 것을 마지못해 하는 밀린 숙제 같은 것이랄까요. 지금 논의되는 내용에 노동 개혁, 연금 개혁, 재정 개혁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단순한 현안이 아닙니다. 총체적인 내용을 다뤄야 합니다. 국가 공동체의 앞길을 막는, 도저히 누구도 손을 대지 않으려는 개혁 의제들을 김종인 위원장이 하나둘 끄집어내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김종인 위원장과 함께 일했던 경제학자 출신 G 전 의원.
“그분 스타일이 총론만 말하고 각론은 이야길 잘 안 해요. 각론은 있어요. 다만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논의할 내용과 수정할 내용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재벌의 행동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기업지배구조는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 오너 리스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죠. 경제민주화를 ‘도 아니면 모(all or nothing)’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성린 전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공약을 구상했다.
“본인이 경제민주화가 뭔지를 확실하게 말하지 않아요. 당에서도 헷갈리고, 사람들도 헷갈려요. ‘김종인식 경제민주화’는 크게 재벌 개혁과 사회적 불평등 완화인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어요.
재벌 개혁의 핵심은 두 가지예요. 불공정 거래 행위 해소, 경영권의 불법·편법 상속 제한.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보세요. 옛날처럼 그렇게 상속 못 합니다. 재벌의 불공정 거래도 해소해나가고 있잖아요. 미진한 점이 있으면 토론을 해 풀어나가야죠. 지금은 말을 아예 못 하게 해요. 경제민주화에 대해 논박하면 친재벌로 몰아가요. 기업이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꺼내면 온통 달려들고….”
“디테일에 유의해야”
“헌법에도 명시돼 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그 자체를 반대할 순 없어요. 다만, 그 조항이 ‘기업의 활동을 옥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경제민주화를 하면 마치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사라지고, 동반 성장할 것 같아 보이지만,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버전에는 모두 차이가 있어요. 지금 거론되는 ‘공정 경제 3법’과 김종인식 경제민주화는 세부 내용이 또 달라요. 디테일에 유의해야 해요. 김종인식 재벌규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재벌의 경영권을 제약하자는 내용이 핵심이에요.”(경제학자 출신 F 전 의원)
“김 위원장이 경실모를 이끌 때 ‘대기업 특권 내려놓기’를 주장했어요. 경제민주화는 헌법상 용어지만 추상이잖아요. 기업규제적 성격이 강하고. ‘위법·부당한 기업경영행위에 대한 경제정의의 실현’이라는 표현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김 위원장에게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국민의힘 C 의원)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 다르다는 점이에요.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중에는 독일처럼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가 있어요. 또 누구는 재벌 개혁, 누구는 재벌 해체, 누구는 불공정 거래 해소 등…. 어느 순간 협의의 경제민주화에서 광의의 경제민주화로 변질됐어요. 뭐든 경제민주화에 포함시켜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죠.”(기획재정부 차관 출신 K 의원)
“그분(김종인)만이 논할 수 있는 주제가 돼버렸다”
“경제민주화, 다른 사람이 함부로 이야기 꺼내기 힘들어요. 그분만이 논할 수 있는 주제가 돼버렸어요. 각론이 분명 있을 텐데 그걸 공개를 안 하시네요. 오히려 공개를 하면 신비감이 떨어지니까 공개를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정작 공개해봤더니 ‘별거 없다’는 반응이 나와선 안 되잖아요. 저는 김종인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봅니다.”(국민의힘 E 의원)
“경제민주화는 붕 떠 있는 개념어예요. 구체적인 정의도 아직 없잖아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다 달라요. 이러한 의견을 다 담아낸 경제민주화는 분명 문제가 있을 겁니다.
보수진영에서는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잖아요. 우선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좁고 명확하게 세워야 해요. 이를 바탕으로 소외된 계층을 보호하고,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면, 보수진영에서도 동의할 겁니다.”(국민의힘 J 의원 )
“김종인 위원장이 추진하는 의제들에 원론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분이 정치력이 아주 뛰어나셔요. 근데 소통이 안 돼요. 경제민주화가 구체적으로 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참….”(국민의힘 S 의원)
기업인 출신 국민의힘 의원 W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각론은 의원들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잖아요.
“어디까지 경제민주화라고 말하는지에 대한 범위, 정의가 필요하긴 하죠. 개인적으로 막연히 시대적 흐름에 따라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 답답하지 않으세요?
“위원장은 담론을 이야기해야지, 너무 구체화하면 또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위에서 너무 세부적으로 이야길 하면 밑에서는 안 움직이니까요. 의원들끼리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들 공부를 더 해야죠.”
세계은행 출신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비례)은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는 보수의 논리로 말하는 것이지만, 진영 논리에 빠지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진보·보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의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세부 각론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金鍾仁·80) 비상대책위원장은 3법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3법 입법을 주도하는 정부·여당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전속고발권 폐지’ 등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취약해진다’고 주장한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란,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사내·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제도다.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된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해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현행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다. 일반 시민·주주 등의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 도입됐는데,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김종인 10분, 이낙연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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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19일,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앞줄 가운데)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들. 김종인 위원장은 뒷줄 오른쪽 두 번째. 김 위원장은 자신이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 역을 맡았다고 말한다. 사진=조선DB |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양당 대표를 찾아 경제 3법을 비롯한 기업 관련 법안에 우려를 표했다.
보수 정당은 시장친화적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왜 보수 정당의 대표는 재계를 대표하는 재벌 총수를 10분밖에 만나지 않았을까. 그가 걸어온 길을 알면 그가 재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조부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 선생이다. 가인은 신간회를 이끌었고, 독립운동가 변론에도 앞장섰다. 1940년생인 김종인 위원장은 만 4세던 해에 부친을 여의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1963년 가인이 야권의 구심점이 돼 민정당(民政黨) 대표최고위원을 맡자 23세의 청년 김종인은 가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77세의 연로한 할아버지를 지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할아버지를 모신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인의 각서는 믿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가인이 1964년 1월 세상을 떠나자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갔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세부 전공은 재정학이며, 논문 제목은 〈개발도상국가에 있어서의 분배와 재분배〉이다.
귀국한 뒤 1973년 3월에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1974년 박정희 정부에서 처음으로 정부 정책에 참여했다.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 고(故) 김정렴 비서실장이 그의 처삼촌이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 정부 시절 ▲부가가치세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도입 등에 자신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간접세의 일종인 부가가치세 도입이 당시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부가가치세 도입 논의 과정에서는 반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1977년에 시행됐다.
중산층을 두껍게 만들어 사회를 안정시키겠다는 목적으로 1976년에는 재형저축을 탄생시켰다. 근로자들이 저축하면 이자를 더 얹어주고 세금 혜택까지 줬다.
오늘날 국민건강보험의 원형인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제도(1977년 7월 시행)’ 역시 자신이 주도해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종인 교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각에서 그의 국보위 경력을 문제 삼는데, 그는 “부가가치세 폐지를 막기 위해 참여했다”고 항변한다. 5공이 출범하자 조세 전문가로 민정당 전국구 의원(11·12대)이 됐다.
5공 경제 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1983년부터 시행한 예산 동결·긴축으로 노태우 정부 중후반까지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당시 정부 예산을 동결하는 바람에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이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고 평가한다.
1986년에는 ‘직선제 헌법’이라 부르는 6공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 헌법개정개헌안 10인 기초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김종인 조항’이라 부르는 119조 2항, 경제의 민주화 조항을 관철했다”고 말했다.
6공의 경제수석으로 재벌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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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9일, 19대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에 참석한 김종인 위원장. 당시 그는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을 총괄하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직을 맡고 있었다. 사진=조선DB |
김종인 위원장의 주변인들은 “6공 경제수석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재벌 개혁 의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5공 때부터 재벌과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6공 때는 토지매각과 주력 업종 제한 등 각종 대기업 규제책을 내보이며 재벌과의 사이가 더 멀어졌다. 김종인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가 대기업의 활동을 적절하게 제어했다고 평가한다.
1986~1989년 사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흑자가 330억 달러에 달했다. 기업들은 이 중 130억 달러를 업무와는 무관한 국내 토지 매입에 썼다. 김 위원장은 이를 ‘재벌의 땅 투기’라고 표현했다. 5공 출범 이후 1987년까지만 해도 땅값 상승률은 연평균 10% 내외였는데, 재벌의 땅 투기로 1988년(30%), 1989년(32%), 1990년(20.6%)에 걸쳐 지가(地價)가 급등했다고 말한다.
1990년 김종인 경제수석은 취임 직후 노태우 대통령에게 “재벌 총수들이 비업무용 땅을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해서 재벌이 갖고 있던 토지 1800만 평(약 5950만㎡)을 매각하게 했다. 이어 30대 재벌까지 동참해 5000만 평(약 1억6529만㎡)을 자연 매각했다고 한다. 이후 토지 가격 상승률은 1991년(12.8%)과 1992년(1%) 들어 안정을 찾았다.
그는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도 자신이 만든 경제민주화 조항(제119조 2항) 덕분이라고 말한다.
1991년 김종인 경제수석은 기업의 여러 업종 진출을 제한하고 대표 업종 3가지만 주력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우리 기업이 특기를 갖는 주력 업종에 집중해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기업들이 이것저것 만물상처럼 사업을 늘어놓고 그중 잘되는 것이 생기면 그것으로 ‘돌려막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비판한다. 김종인 위원장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과잉(중복) 투자, 과잉 시설, 과잉 부채로 이어졌고, IMF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재벌과 있었던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전자 산업이 주력인 재벌이었는데 느닷없이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 내가 경제수석으로 있는 동안에는 자동차 사업을 허가해주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다. 그랬더니 전직 총리, 장관, 대통령 측근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엄청나게 로비를 해댔다. … “5000억원씩 10년 동안 적자를 내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 아닌가. 기업의 자산을 개인의 쌈짓돈 정도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배어 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생각이다. …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나니 2개월 만에 그 재벌의 자동차 사업은 승인이 떨어졌다. IMF가 터지면서 결국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 그렇게 5조원가량을 허공에 날렸다.〉(《영원한 권력은 없다》(2020), p.247~249)
▲‘경제민주화는 사회주의 하자는 게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국민경제의 발전단계에서 특정 시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정신’
▲‘경제민주화의 핵심 요지는 거대 경제 세력이 사회의 모든 세력을 지배하는 것을 막자는 것’
▲‘경제민주화는 본질적으로 기업경영 시스템을 바꾸는 쪽으로 접근해야’
▲‘경제민주화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하지 못하는 일을 보이는 손(정부)이 하는 것’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
▲‘경제민주화를 정치권이 실행하지 못하면 국민이 직접 경제민주화를 실행하려 들 것이다’
경제민주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와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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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종인 비대위원. 이 둘은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을 한 달가량 남겨두고 갈라선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당선됐지만, 이후 ‘경제민주화’ 노선을 폐기하고 ‘창조경제’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정체 불명의 단어’라고 비판했다. 사진=조선DB |
일부 학자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를 독일의 경제민주주의에서 차용했다고 비판한다. 독일식 경제민주주의는 사회주의적 전통에 기반한 개념으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힐퍼딩(Rudolf Hilferding)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 단계로 설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도 이른바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경제민주화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1890년 미국 최초의 독점금지법인 ‘셔먼(Sherman)법’을 통해 미국판 경제민주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후 법무부에 독점금지국을 설치해 카르텔(기업연합)과 트러스트(기업합병)를 처벌하기 시작했다. 1911년에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스탠더드 오일, 아메리칸 토바코 등이 소송을 통해 기업이 분리되기까지 했다.
2016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강연에서 그는 경제민주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기업인이 “경제민주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민주화’란 표현이 들어 있어 거부감은 있다. ‘경제합리화’나 ‘선진화’ 등 좋은 말이 있는데 왜 민주화인가”라고 질문했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반발로 나온 개념이다.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 단계와 역사를 볼 때 부(富)가 경제는 물론 사회의 여러 측면을 권위적으로 지배해왔다. 바로 이런 불합리한 점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경제도 민주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민주화는 로비를 통해 의회를 압박하는 거대 경제 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2017), p.91)
헌법 개정 당시에는 자신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고도 말했다.
〈정주영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경련과 토론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아직 개헌의 방향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상당히 위협적인 자세였지만 좋다고 했다. … 정주영 회장이 진두지휘해 전경련을 옹호하는 학자와 언론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 ‘자본주의는 기업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토론을 했다.) 정주영 회장이 “김 위원, 오해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무엇을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위의 책, p.85~86)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으려고 하자 처음엔 전두환 대통령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전두환이 헌법 초안을 읽고는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내용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더니 유독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해서만 빼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뺄 수 없다고 말했다. …
“지금이야 정치 세력이 경제 세력에 비해 권한이 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경제 세력이 정치 세력을 앞지르게 될 것이고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움직이려는 욕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 세력은 언제든 위헌 소송을 걸어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려 들 것이다. 그때 그들을 제어할 헌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두환이 이 말을 듣고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냥 그대로 넣어야겠군”이라는 한마디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포함되었다.〉(《영원한 권력은 없다》, p.180~181)
김종인 위원장은 “거대 경제 세력(재벌)이 로펌까지 장악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경제민주화 조항마저 없다면 수많은 경제 관련 법과 제도, 조항들이 위헌 여부를 묻는 소송에 휘말려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민주화는 관치에서 탈피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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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5일,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위원장. 이 선거에서 그는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들었다. 사진=조선DB |
현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 조항 중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이라는 부분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란, 정부 주도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 가계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라며 “헌법 개정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바꾸고 이마저 5년 후 폐지한 것도 민간 자율성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남재희 전 의원은 언론을 통해 “김 위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에 심취했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국가의 조정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라는 발상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헌재)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해석할까. 헌재에서 20여 년간 헌법을 연구한 한 변호사는 “경제와 민주주의는 모순되는 가치이며,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도 정치적 구호에 불과해 헌법 재판 시 (용어 그 자체는) 참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논자에 따라 정치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간의 헌재 판례로 볼 때, 이 용어를 (구속력 있는) 규범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은 정치적 수사(修辭)로 받아들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는 조화할 수 없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이지만, 경제는 합리성을 내세웁니다. 주식을 예로 들자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 수만큼 의결권을 갖는 것 아닙니까. 경제에 어떻게 1인 1표의 원칙을 부여할 수 있습니까. 다만 119조 2항에 나타난 구체적인 표현(‘남용을 방지’ ‘규제와 조정’)을 통해 관련 내용을 판단합니다.”
지난 10월 6일, 한국질서경제학회는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질서경제학회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정부가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만을 담당하고 경제활동은 개인의 자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국가 주도의 경제관과 마구잡이 기업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민주화의 본질과 논거가 제시되기보다는 당위성만이 강조됐다”며 “부족하다 싶으면 ‘패러다임’ ‘시대정신’ ‘헌법 가치’라는 단어를 동원해 경제민주화를 정당화해왔다”고 했다. 조 명예교수는 “헌법 119조의 제1항과 2항은 원칙과 보칙의 관계”라면서 “1항과 2항을 연결하면, ‘자유와 창의를 경제상의 기본질서로 하되, 필요한 경우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로 축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항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문구를 빼더라도 의미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산별노조 전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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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경제 3법’과 함께 ‘노동 개혁’을 언급하자 지난 10월 6일 노조가 즉각 반응했다. 민주노총이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경제 3법과 노동 개혁을 서로 맞바꾸는 것은 아니다. 경제 3법은 김종인 위원장이 2012년부터 추진해온 작품이고, 노동 개혁 역시 우리 당이 주장해왔다. 우리가 추진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 3법뿐만 아니라 노동 개혁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표 노동 개혁의 핵심은 아직 구체화한 내용이 없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차별 해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플랫폼 노동자 처우 마련 등 원론적인 내용만 있다. 김종인표 노동 개혁의 핵심은 지금의 기업노조를 산별노조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 노조가 모두 기업노조를 골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조=기업노조’라는 인식만 갖고 있다고 말한다. 5공 당시 지금의 형태인 기업노조에서 탈피해 산업·직능별 노조를 기본으로 하고, 기업에는 노동조합이나 외부 노조의 지부가 존재하지 않는 방식을 구상한 적이 있다. 여기에 기업가·사무직·현장직이 모두 참여하는 노사협의체 방식의 노동관계법 개정을 추진했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도 동의했으나 전경련이 나서는 바람에 결국 지금의 기업노조 체제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산업·직능별 노조란, 금속노조·금융노조와 같이 산업별로 구성된 노조를 말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지금과 같은 산별노조는 모두 기업노조를 기반으로 한 연합체 수준이라 존재 의미 자체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별 노조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잘나가는 대기업 노조는 중소기업 노조를 흔들고,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별 노조를 산업별 직능 노조로 바꾸면, 임금이나 처우 협상 시 특정 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발생하지 않아 특정 기업의 근로자만이 아닌 전체 근로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취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대기업(기업별) 노조는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 이익을 챙겨 노총이 개입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정치적인 투쟁 이슈를 찾는 데만 골몰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자신들이 관리하기 쉬우니 기업별 노조를 채택했다고 한다. 그는 노조 체제가 정비되지 않으면 소득 분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소득 분배는 노동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할 때 노동자들의 시위가 빈번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노동관련법 정비를 제안했다. 기업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재편하자고 말이다. 그때 강력하게 반대했던 대기업 총수가 있었다. 그의 주장이 바로 “내가 만든 기업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식이었다. … 그 회사는 노조 때문에 큰 몸살을 앓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귀족노조로 이래저래 지탄을 받고 있다. 돈으로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던 그 대기업 총수는 그 문제 말고도 여러 가지 악연으로 나와 대립했다.〉(《영원한 권력은 없다》, p.123)
노조의 경영 참여 주장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에는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도 있다. 이는 독일 방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국은 전쟁 특수를 누린 독일의 주요 산업(철광, 석탄 등)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노조를 기업 경영에 참여시켰다. 이 제도가 독일에 널리 퍼져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라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1951년 독일에서는 산업 구조의 주요 의사 결정에 노동자의 경영 참여제도를 도입했다. 경영자와 노동자 측이 절반씩 참여해 회사의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운영하니 노동조합의 투쟁 형태가 확 바뀐 것이다. 원래 노사관계란 갈등의 관계이다. 그런데 독일의 노동조합은 1960년대 협동주의에 입각한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게 됐다. 그 이후 1960~1970년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선 노사분규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 p.176)
김 위원장이 말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의사공동결정권’이라고도 한다. 노사가 공동으로 기업의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노조가 기업 경영에 참여해 노사가 신뢰 관계를 구축하면 서로 이익이 된다는 입장이다. 독일은 2000명 이상 직원을 둔 기업이 감사위원회 구성의 절반을 근로자가 추천한 인사들로 임명하는 제도가 있다.
김 위원장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가의 힘이 워낙 강하니 정부가 개입해 노동조합의 힘, 대항력을 키우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독일은 노조의 경영 참여로 원만한 기업환경을 유지하고 있을까. 독일에서 경제를 공부한 권혁철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독일식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는 독일에서도 문제가 많다”며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했다. 역시 독일에서 공부한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는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에 대해 “기업의 발전보다는 자신들의 처우 개선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의 덩치를 불려 세계 경쟁력을 키우기보단,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만 몰두해 근시안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는 비판이다.
“고도성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김종인)
김종인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박정희 콤플렉스, 성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고도성장 콤플렉스는 대기업 중심의 기업관・경제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IMF 당시가 한국 경제의 문제인 재벌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경제 권력의 사회 장악이 심화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교육과 보육, 무상급식을 복지 문제가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출산의 원인은 교육과 보육의 어려움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출산율은 곧 총인구와 생산가능 인구로 이어진다.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성장동력은 멈춘다. 0~5세 보육 문제는 미래 성장을 위한 노동력 확보라는 경제정책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조세부담률을 높여 세금을 마련하고 예산의 구조 개혁을 동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활용하자고 한다. 국민연금을 출산장려기금으로 활용하고,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해 생산가능 인구가 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연금 제도가 처음 거론될 때 무조건 자본을 축적하는 ‘민간 보험’ 형태가 아닌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이 노인을 먹여 살리는 ‘부과 방식’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부과 방식이란, 현재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못하는 노인을 먹여 살리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된 형식처럼,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먹여 살리고, 이 젊은 세대가 나이 들면 또 다른 젊은 세대가 이들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그는 지금의 국민연금 운용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장부상에는 많은 돈이 적립돼 있지만, 주식에 투자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느라 정작 돈이 필요할 때는 현금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가 가속하는 사회에서는 연기금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기금으로 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노인들의 노후생활에도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 자체가 성역화”
경제민주화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 여럿에게 연락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경제민주화에 대해 묻고 싶다’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 한 의원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조금이라도 평소에 가진 생각이 있으시지 않나요’라고 재차 물어도 그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완곡한 어투로 ‘답하기 곤란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국민의힘 D의원은 “위원장이 내세우는 핵심 의제인데 함부로 논했다가는 큰 문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대다수는 “경제민주화의 총론, 취지는 알겠는데, 각론, 세부 내용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통계청장을 지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강남 병)은 “당내 의원들이 경제민주화의 총론에는 찬성하나 각론에선 각자 의견이 나뉠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관련 법 중 공론화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디테일(세부내용·각론)을 더 다뤄야 한다”고 했다.
“취지에는 공감해요. 사실 각론을 다들 몰라 혼선이 있는 것 같아요. 막연하게는 잡히겠는데…. 경제민주화라는 것에 대해 아주 뚜렷한 청사진을 내놓은 적은 없잖아요.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처럼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민주화 그 자체가 성역화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확대된 경우도 있죠. 취지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악용된 부분도 있어 안타깝습니다.”(국민의힘 관계자 M)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세세히 알려주진 않고 ‘나만 믿고 따라와’라는 느낌이에요.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론도 분명 갖고 있을 텐데, 말을 쉽고 간결하게 하는 것을 선호하니 그 세부 내용을 말하진 않아요.
‘경제민주화는 어떻다’고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내가 무엇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식이죠.
독일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고, 결정적으로는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전경련과 맞섰던 경험이 지금의 성향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그때의 경험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재벌 개혁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국민의힘 Y 비대위원)
“2020년에 맞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필요”
경제전문가로 경실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 그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각론, 실체가 있다고 말한다. 이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일각에선 재벌해체까지 주장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말하는 의미는 ‘공정한 질서를 확립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 국회에서 구체적인 법안을 만들어냈고, 입법 운동도 펼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경제 3법 내용 중 감사위원 선출 시 총수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치는 조정해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실체’를 잡을 수도 없고, 각론을 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분야의 접근 방식과 시각을 다양하게 만드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구호로만 써먹고 폐기했잖아요. 정작 구체화·실체화해 각론으로 만들진 않았잖아요. 그래놓고 ‘실체가 없다’는 프레임만 씌웠죠.”(비대위원 김현아)
국민의힘 김병민 비대위원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김종인표 경제민주화가 등장하리라 전망했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가 모호하다는 말보다는,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공정경제 3법처럼 각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이 2012년 처음 발표했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 시대에 맞는, 2020년에 맞는 김종인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IT업 발달, 근로 형태의 변화 등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당의 공약으로 이러한 변화상을 담아낸 그 구체적인 각론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경제 3법은 밀린 숙제 같은 것”
— 법을 몇 개 바꿔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너무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지금 추진하는 경제 3법은 10년 전에 미처 하지 못한 것을 마지못해 하는 밀린 숙제 같은 것이랄까요. 지금 논의되는 내용에 노동 개혁, 연금 개혁, 재정 개혁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단순한 현안이 아닙니다. 총체적인 내용을 다뤄야 합니다. 국가 공동체의 앞길을 막는, 도저히 누구도 손을 대지 않으려는 개혁 의제들을 김종인 위원장이 하나둘 끄집어내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김종인 위원장과 함께 일했던 경제학자 출신 G 전 의원.
“그분 스타일이 총론만 말하고 각론은 이야길 잘 안 해요. 각론은 있어요. 다만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논의할 내용과 수정할 내용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재벌의 행동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기업지배구조는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 오너 리스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죠. 경제민주화를 ‘도 아니면 모(all or nothing)’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성린 전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공약을 구상했다.
“본인이 경제민주화가 뭔지를 확실하게 말하지 않아요. 당에서도 헷갈리고, 사람들도 헷갈려요. ‘김종인식 경제민주화’는 크게 재벌 개혁과 사회적 불평등 완화인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어요.
재벌 개혁의 핵심은 두 가지예요. 불공정 거래 행위 해소, 경영권의 불법·편법 상속 제한.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보세요. 옛날처럼 그렇게 상속 못 합니다. 재벌의 불공정 거래도 해소해나가고 있잖아요. 미진한 점이 있으면 토론을 해 풀어나가야죠. 지금은 말을 아예 못 하게 해요. 경제민주화에 대해 논박하면 친재벌로 몰아가요. 기업이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꺼내면 온통 달려들고….”
“디테일에 유의해야”
“헌법에도 명시돼 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그 자체를 반대할 순 없어요. 다만, 그 조항이 ‘기업의 활동을 옥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경제민주화를 하면 마치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사라지고, 동반 성장할 것 같아 보이지만,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버전에는 모두 차이가 있어요. 지금 거론되는 ‘공정 경제 3법’과 김종인식 경제민주화는 세부 내용이 또 달라요. 디테일에 유의해야 해요. 김종인식 재벌규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재벌의 경영권을 제약하자는 내용이 핵심이에요.”(경제학자 출신 F 전 의원)
“김 위원장이 경실모를 이끌 때 ‘대기업 특권 내려놓기’를 주장했어요. 경제민주화는 헌법상 용어지만 추상이잖아요. 기업규제적 성격이 강하고. ‘위법·부당한 기업경영행위에 대한 경제정의의 실현’이라는 표현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김 위원장에게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국민의힘 C 의원)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 다르다는 점이에요.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중에는 독일처럼 노조의 기업 경영 참여가 있어요. 또 누구는 재벌 개혁, 누구는 재벌 해체, 누구는 불공정 거래 해소 등…. 어느 순간 협의의 경제민주화에서 광의의 경제민주화로 변질됐어요. 뭐든 경제민주화에 포함시켜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죠.”(기획재정부 차관 출신 K 의원)
“그분(김종인)만이 논할 수 있는 주제가 돼버렸다”
“경제민주화, 다른 사람이 함부로 이야기 꺼내기 힘들어요. 그분만이 논할 수 있는 주제가 돼버렸어요. 각론이 분명 있을 텐데 그걸 공개를 안 하시네요. 오히려 공개를 하면 신비감이 떨어지니까 공개를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정작 공개해봤더니 ‘별거 없다’는 반응이 나와선 안 되잖아요. 저는 김종인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봅니다.”(국민의힘 E 의원)
“경제민주화는 붕 떠 있는 개념어예요. 구체적인 정의도 아직 없잖아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다 달라요. 이러한 의견을 다 담아낸 경제민주화는 분명 문제가 있을 겁니다.
보수진영에서는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잖아요. 우선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좁고 명확하게 세워야 해요. 이를 바탕으로 소외된 계층을 보호하고,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면, 보수진영에서도 동의할 겁니다.”(국민의힘 J 의원 )
“김종인 위원장이 추진하는 의제들에 원론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분이 정치력이 아주 뛰어나셔요. 근데 소통이 안 돼요. 경제민주화가 구체적으로 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참….”(국민의힘 S 의원)
기업인 출신 국민의힘 의원 W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각론은 의원들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잖아요.
“어디까지 경제민주화라고 말하는지에 대한 범위, 정의가 필요하긴 하죠. 개인적으로 막연히 시대적 흐름에 따라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 답답하지 않으세요?
“위원장은 담론을 이야기해야지, 너무 구체화하면 또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위에서 너무 세부적으로 이야길 하면 밑에서는 안 움직이니까요. 의원들끼리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들 공부를 더 해야죠.”
세계은행 출신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비례)은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는 보수의 논리로 말하는 것이지만, 진영 논리에 빠지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진보·보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의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세부 각론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