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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초대형 복합경제위기가 온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얻을 교훈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90년대 日 재정지출 확대, 공적자금 투입 정책과 유사

글 :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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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카이 세대’의 긴 그림자… 버블경제 몰락, ICT 산업 붕괴, 취업 빙하기, 低출산
⊙ 1993~2000년까지 125조 엔 경기부양 쏟아부어… 버블경제 붕괴는 日 내부모순 원인
⊙ 과거 日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80% 장악… ICT 혁명 외면으로 장기 침체
⊙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등 경직된 고용시스템이 ICT 투자 막아

權赫旭
1967년생. 경북대 무역학과, 서울대 대학원 졸업. 일본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역임. 現 니혼대 경제학과 교수 /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무역산업연구소’ 자문연구원, 일본 문부과학성 ‘과학기술정책국책연구소’ 방문연구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의 전자상점이 밀집해 있었던 도쿄 아키하바라. 지금은 대형 복합 전자 제품 매장에 밀려 많이 쇠퇴하였다.
  일본 경제는 1991년 ‘버블경제 붕괴’라는 경제위기 이후에 기록적인 저(低)성장을 경험했다. 198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모범적이었던, 일본 경제가 왜 갑자기 쇠퇴해서 저성장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두 갈래로 이루어졌다. 그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도 실시됐다.
 
  먼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는 1998년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 경제는 유효수요 부족으로 유동성 함정에 걸려 장기 침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해결 방안으로 과감한 재정정책과 인플레이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확대 금융정책을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참고로 ‘유효수요(effective demand·有效需要)’란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을 갖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욕구를 말한다. 시장에서 확실한 구매력을 뒷받침하는 수요다. 반면 구매력에 관계없이 물건을 갖고자 하는 것은 ‘절대적 수요’라고 한다.
 
  크루그먼의 이 같은 진단과 처방은 표준적인 케인스 경제학 입장과 다르지 않다.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가 1938년에 언급한 “과잉저축으로 인한 수요부족과 인구감소로 저성장이 지속된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케인스 경제학의 관점에서 일본의 경제학자들도 유효수요의 부족 원인으로 투자와 소비의 감소, 경기악화로 부실채권 처리가 늦어져 금융의 자원 배분 기능의 마비 등을 지적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에 따라 일본 정부와 많은 경제 전문가는 버블 붕괴 이후의 경기 후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재정과 금융정책으로 유효수요를 만들어내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9차례에 걸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실시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에 사용된 재정지출 총액은 125조 엔(현재 환율로 1402조원)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금액이었다.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1994년에서 2005년까지 7차례의 소득세를 감면하는 감세(減稅)정책을 실시했다. 총 감세액은 20조 엔(224조원)이었다. 버블 붕괴로 자산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에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대출하던 관행을 가진 일본의 금융기관은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을 갖게 되었고, 결국 1991년에서 2000년 사이에 16개 은행, 14개 신용금고와 62개 신용조합이 도산했다.
 

  연쇄도산의 위험 앞에서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서 일본은 104조 엔(1166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경기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그림 1〉에서 보듯이 정부부채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부채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재정정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1999년 2월에 금융정책으로 처음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2000년 8월에 일시 중단했지만, 2001년 3월에 재도입한 이후 2006년 2월까지 양적(量的)완화 정책과 더불어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했다.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과감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으로 생긴 유효수요의 증가가 소득증가로, 소득증가가 소비증가로, 소비증가와 금리하락으로 투자도 증가해서 소득증가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찾았던 연구와 그에 따른 정책 처방은 막대한 재정지출과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이 실시되었음에도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 유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경제의 내부 모순과 실패한 경제정책
 

  잃어버린 20년의 단초가 된 버블경제 붕괴 이후 다른 경제적인 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98년의 아시아 통화위기, 2001년의 IT 버블 붕괴,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 그리고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충격이 이어져 왔다. 〈그림 2〉는 1991년을 기준(1991=1)으로 한 주요 경제 변수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1991년 버블경제의 붕괴 시점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나라 경제 변수를 이어놓은 것처럼 확연히 다른 추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에서는 경제성장의 지표인 명목・실질 GDP가 위기 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버블경제의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에서는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솔로(Robert Solow) 경제성장모델과 같은 표준적인 경제성장 이론에 의하면 자산가치의 붕괴로 인한 금융 충격이 일인당 소득에 장기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제성장 이론은 지난 20년 동안 일본 경제에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잃어버린 20년 동안에 있었던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는 외생적인 충격인 데 반해 버블경제의 붕괴는 일본 경제 내부의 모순에 의해서 발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림 2〉에서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가 내부의 모순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취업률이다. 경기와 관계없이 40년 동안 일정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외생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충격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경제 내부의 힘으로 회복될 수 있지만,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서 발생한 구조적인 충격은 재정・금융정책과 같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회복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경험은 일시적인 방편이 오히려 경제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 원인은…
 

  버블경제의 붕괴 시점에 일본 경제의 실질 GDP가 급락한 것은 유효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총요소 생산성(TFP) 상승률의 급격한 하락에 있었음을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레스콧(Prescott) 교수와 일본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하야시 후미오(林文夫·Hayashi Fumio)가 논문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총요소 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란 정해진 노동, 자본, 원자재 등 ‘눈에 보이는’ 생산요소 외에 기술개발이나 노사관계 경영혁신 같은 ‘눈에 안 보이는’ 부문이 얼마나 많은 상품을 생산해내는지를 나타내는 생산효율성 지표를 일컫는다.
 
  〈그림 3〉은 일본산업생산성 데이터베이스 2015(JIP Database 2015: https://www.rieti.go.jp/en/database/JIP2015/)를 이용해서 실질 GDP를 노동투입, 자본투입과 생산성의 기여로 요인 분해를 한 결과이다. 이러한 요인 분해 방법을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라고 부른다.
 

  그림에서 보듯이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는 〈그림 2〉의 장기 추이처럼 전혀 다른 나라의 결과처럼 판이하게 다르다. 〈그림 4〉는 일본의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같은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사람을 위한 필요한 자본이 적어서 기업투자도 감소하기 때문에 요소투입을 통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성마저 하락하면 경제성장의 동력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프레스콧과 하야시가 지적한 것처럼 80년대에 비해서 90년대에 TFP 상승률의 기여가 마이너스로 극단적으로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버블경제의 붕괴에 따른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가동률의 변화만으로 이렇게까지 크게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 갑자기 생산성이 크게 하락하였는지를 밝히는 많은 실증연구가 있었다. 이 실증연구들은 생산성 하락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인 기업이 오히려 시장에서 퇴출하는 이상한 현상, 즉 시장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았고, 지나친 규제와 경직적인 고용관행 등으로 인한 높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인 기업의 진입을 저해하여 시장경제의 경쟁 기능의 약화에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둘째, 은행이 국제금융 업무를 보기 위해서 필요한 BIS규제(자기자본비율 8%)에 맞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이 심각한 부실채권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회복 가능성이 낮은 대기업에 지속해서 대출과 금리감면을 해주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을 시장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한 데에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소위 좀비기업 가설이다.
 
  셋째, 1990년대 후반의 미국의 높은 생산성 상승을 이끌었던 ICT(정보통신기술) 투자가 일본에서는 ICT 기술을 많이 이용해야 하는 도소매업 등에서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즉 ICT 투자 과소 가설이다.
 
  위의 세 가설 중에서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가설은 ICT 투자 과소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1995년 이후에 일어난 ICT 혁명은 생산구조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운영과 구조를 바꾸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패러다임 변화에 잘 적응한 미국은 일본과 대조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ICT 혁명 이후에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e베이 등 수많은 새로운 기업이 출현해 새로운 투자가 일어났고, 일반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인 ICT같이 외부성이 큰 자산에의 투자는 새로운 투자를 불러일으켜 새로운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계속 탄생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버블 붕괴 이전에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80%를 장악했던 일본이 현재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단 한 기업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패러다임 변화 외면한 日 ICT산업의 몰락
 
  ICT 시대의 상징인 컴퓨터, 휴대폰, SNS에서 일본 기업의 존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ICT 혁명의 흐름에서 뒤처지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과거 일본의 눈부신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복리후생,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직적인 고용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현재도 신입사원의 공채제도를 운용하면서, 전통적인 고용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시스템 안에서는 우수한 인력은 모두 대기업에 안주해 있기 때문에 새롭게 창업한 기업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져 ICT 혁명에 맞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나타나 투자를 주도하기가 어렵다. 또한 연공임금제와 종신고용제를 유지해야 하는 대기업도 인력의 고령화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도에서 ICT 기술을 도입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위해서 ICT 기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ICT 기술에 따른 외부경제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이즈미 정부(2001~2006)는 고용시스템에 대한 구조개혁을 실시하려고 했지만, 강고한 대기업 정규직 시스템에는 손을 대지 않는 대신에 비정규직을 쉽게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개혁을 마무리하고 만다.
 
  즉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강하게 온존하면서,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에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더 쉽게 채용할 수 있도록 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노동자 파견의 적용대상과 기간을 확대하는 노동자 파견법의 개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 소득격차가 더 심하게 되면서, 그 원인이 구조개혁에 있다는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구조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일본의 생산성도 높아지지 않았다.
 
  정리하면,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이유는 내부의 구조적인 모순에 기인한 면이 많음에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쉽게 경기부양 정책을 다년간 실시했다는 점에서, 원인 진단과 처방에 잘못이 있었다. 물론 이후에 제대로 된 진단이 있었지만, 기존 시스템, 즉 기득권에 손을 대는 개혁에까지 이르지 못함으로써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정규직 고용 보호가 가져온 잃어버린 세대
 
일본 도쿄 시내의 노인들 모습. 단카이 세대는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7~1949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196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쳐 1970~1990년대 경제 중흥기를 경험했다.
  일본의 1차 베이비 붐 세대를 ‘단카이(團塊)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1947년에서 1949년까지 3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로 총 806만명이 출생했다. 젊은 시절에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했고, 40대에 버블을 경험한 일본의 전성기를 함께한 세대이면서 동시에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저성장 시대에도 50대로 마지막까지 직장을 지킨 가장 축복받은 세대다.
 
  이들은 이제 70대로 의료보험과 연금 등으로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 세대 동안 앞에서 말한 일본적 고용 관행인 종신고용, 연공임금, 복리후생, 기업별 노조가 거의 지켜졌다. 단카이 세대의 아이들인 단카이 주니어 세대(1970~1974년 출생자)는 총 1000만명이 출생했고,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어릴 때 유복하게 자란 세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버블경제가 붕괴되어 청년들에 대한 실업률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구직자는 많은데, 경기 악화로 구인을 하는 기업이 적어서 취업 빙하기가 1993년에서 2003년까지 지속된다. 〈그림 5〉는 일본 청년(15~24세)들의 완전실업률의 추이를 보여준다.
 

  1992년부터 청년실업률이 상승하기 시작해서 2003년에 가장 높은 10.1%를 기록한 이후에 감소하기 시작한다.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소폭 상승했지만, 2010년 이후에 다시 감소하고 있다. 이 시절에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라는 구직 의사가 없이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수까지 포함하면 실업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일본 내각부는 15~39세 이하 니트는 69만6000명이라고 2010년에 추계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불황 가운데 단카이 세대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던 기업들이 이 세대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보다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아예 채용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세대와 비슷한 수의 사람이 있었음에도 일자리는 반도 있지 않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대가 아버지 세대와 다르지 않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었으면 2000년에서 2004년에 다시 한 번 베이비 붐이 일어나 일본의 인구감소 문제는 많이 완화되었을 것이다.
 
  2005년 일본의 출생률이 1.26으로 가장 낮았다는 사실이 아버지 세대 대신에 이 세대가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웅변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으로 종신고용, 연공임금, 복리후생 등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고용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앞에서 언급한 천문학적인 재정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자녀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고통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후의 의료보험과 연금문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공체험이 강하고 숫자 많은 세대가 자신들의 세계 전체를 지키고 유지하고자 한 욕심이 잃어버린 세대를 만들고,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완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나 한국의 대학처럼 성과에 기초한 정년보장제도, 인터넷 언론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처럼 프리랜서와 같이 외부 노동시장의 확립과 내부시장에서의 경쟁이 있었다면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에 주는 교훈
 
  한국은 법, 제도, 그리고 관행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다. 특히 정부 주도의 경제시스템에다 은행 중심의 자원 배분시스템, 강성 노동조합, 정규직을 보호하는 고용시스템이 거의 닮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률의 추세적인 하락, 물가와 이자율의 추이와 인구 동태를 볼 때 서서히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 들어 실시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일본의 1990년대 정책과 유사하다. 당시 일본의 재정지출 확대와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정책은 얼마 못 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이 하지 못한 구조개혁을 과감하게 실시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일본에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확대에 제약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중요한 경제 이슈인 만큼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고용과 교육은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아 교육개혁과 고용시스템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다음으로 재벌과 은행 중심의 자원배분시스템과 생산시스템을 개혁하고, 정치시스템도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신화에 매몰되면 미래는 더 어두울 것이다. 현재 일자리가 없어 희망마저 잃었다는 청년세대와 살고 있는 상황이, 우리 경제와 사회가 심각한 병에 걸려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이 심각한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지혜를 모아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혁명에 한국이 선제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다시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기술혁명에 맞는 인재로서 마음껏 일하며,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구조개혁을 과감하게 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사실,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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