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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니혼대 권혁욱 교수의 ‘韓日 경제전쟁’ 관전기

“삼성 이재용의 일본 출장… 日, 韓 급소 찔렀다는 의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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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산업혁명에 살아남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할지도”
⊙ “日 국민은 조용하지만, 韓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
⊙ “한국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 처분하면 韓日 마지노선 붕괴”
⊙ “경제전쟁 불길이 금융으로 옮아붙으면 한국 경제 최악 국면”

權赫旭
1967년생. 경북대 무역학과, 서울대 대학원, 일본 히토쓰바시대(一橋大) 박사(경제학) / 서울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역임. 現 니혼대 경제학과 교수 /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무역산업연구소’ 자문연구원, 일본 문부과학성 ‘과학기술정책국책연구소’ 방문연구원
지난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舊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 규탄 7차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년 후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작년 10월 말 있었던 대법원의 징용 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 이후 시계(視界) 제로 한일관계는 양국의 경제 전망을 매우 어둡게 만든다. 덩달아 일부 국민은 반일(反日), 혐한(嫌韓) 갈등을 원색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여기다 소비자물가가 지난 8월 사상 처음 하락(-0.04%)하면서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서비스와 물품 등의 물가 하락으로 기업과 가계의 투자·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일자리와 소득이 줄며 소비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말 이화여대에서 열린 국제경제학회 정책 심포지엄에 참석차 방한(訪韓)한 니혼대 경제학부 권혁욱(權赫旭·53) 교수를 8월 2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만났다. 경북대와 서울대 대학원, 히토쓰바시대(一橋大)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권 교수는 현재 학부생에게 기업 경제학(4학점),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경제학(4학점), 거시경제학(4학점)을, 대학원생에게 조직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나타났던 장기 불황,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란 홍역을 앓으며 오랫동안 경제 부활을 준비해왔다. 어쩌면 일본은 지금 한국 경제가 고민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시뮬레이션해 주고 또 해법을 제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권 교수는 일본의 장기 불황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日 기업, 과거 반세기 동안 변화 없었다”
 

  “한국 일정을 마치면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46번째 EARIE(산업경제학 연구를 위한 유럽학회) 연차대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유럽과 선진국은 4차 산업혁명(디지털 혁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조만간 새로운 기술혁명의 충격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상 이상일 거예요. 이 흐름을 잘 타는 나라가 부유한 나라가 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가 될 겁니다. 한일 양국 모두 힘을 합쳐 뛰어도 따라잡기 어려운데 과거에 매인 갈등으로 미래를 위해 에너지를 쓸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재일교포 3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점차 후진국이 되어간다”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손 회장은 “일본 기업의 많은 경영자는 계획을 만들 뿐 비전과 전략은 선배가 만들었던 것의 재탕이다. 쉽게 말하면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권 교수는 손 회장의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산업구조는 과거의 성공에 매여 있다. 최근 20년 사이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일본 기업은 과거 반세기 동안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명성을 잃고 퇴장하는 기업은 있어도 새롭게 도약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일본 전자산업의 몰락
 
  “1995년 ‘윈도 95’로 무장한 PC와 인터넷의 보급 이후 ICT(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혁명에 뒤처진 일본의 전자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컴퓨터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잃었죠.
 
  2007년 아이폰(iPhone) 출현은 또 어떤가요. 과거 피처폰(스마트폰 바로 직전의 휴대폰)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던 일본 전자기업은 피처폰 시장 전체를 잃어버렸죠. 새롭게 등장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을 찾을 수 없게 됐으니까요. 일본 전자산업이 자랑하던 디지털카메라, 내비게이션, 비디오카메라 역시 매출이 격감했죠.”
 
  권혁욱 교수는 일본 기업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삼성전자에 기술을 이전해준 명문 전자기업인 산요전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샤프펜슬 개발로 유명한 샤프는 대만기업으로 넘어갔다(샤프는 지난해 6월 도시바 PC 사업부를 인수한 상태). 또 글로벌 시장을 제패하던 소니는 전자기업에서 금융회사로 변신해 겨우 살아남았다. 1982년 판매된 PC-9800 제품군으로 이후 10여 년 동안 일본의 개인용 PC 시장 점유율 1위였던 NEC는 중국 컴퓨터 제조업체인 레노버(Lenovo)와 합작하는 곡절을 겪었다. 현재 NEC와 후지쓰는 레노버와 자본제휴 관계다. 권 교수의 말이다.
 
  “일본 전자산업의 전성기인 1980년대를 생각한다면 누가 지금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ICT 혁명의 흐름을 잘 탄 한국 기업과 달리 일본의 전자산업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전락했죠.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대표적인 산업이 전자산업인 셈이죠.”
 
  권 교수는 “일본의 주요 전자기업의 전체 이익이 삼성전자의 이익보다 낮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어떨까.
 
 
  도전에 직면한 日 자동차산업
 
  자동차산업만큼은, 그러니까 가솔린 엔진과 하이브리드 엔진 차량의 국제경쟁력만큼은 일본 자동차를 능가할 기업은 아직 없다. 권 교수는 “토요타로 대표되는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케이레쓰(系列)’라 불리는 일본 특유의 생산 시스템으로 마치 1980년대의 일본 전자업계처럼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전자산업의 ICT 혁명과 같은 ‘CASE’라 불리는 디지털 혁명이 도래하고 있다. CASE는 접속(Connected), 자동운전(Autonomous), 공유(Shared), 전동화(Electric)의 앞글자를 따온 말.
 
  “ICT 혁명의 총아(寵兒)인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우버(Uber) 등이 자동운전, 접속, 공유 등의 기술개발에 전력을 다하는 실정입니다. 또 내연(內燃)기관 자동차를 생산한 적이 없는 테슬라(Tesla)가 전기차를 양산하고 있어요. 일본도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미쓰비시 자동차와 닛산 자동차가 전기차 생산에 뛰어들었어요.”
 
  ―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축적된 내연기관 자동차 기술을 살릴 수 있는 연료전지 자동차인 수소자동차 개발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져 왔어요.
 
  “그렇죠. 기술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 관점에서 토요타의 수소자동차 선택은 다양한 귀결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자동차산업 혁명의 방향은 수소차가 아닌 전기차입니다.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자동제어 운전, 자동차의 모든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플랫폼 개발로 방향이 정해지게 되었죠.”
 
  “일본은 전자산업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작년부터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토요타는 올해 마쓰다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공동개발을 위한 자본제휴를 맺었다. 공동으로 전기자동차 기술개발 회사도 설립했다.
 
  여기다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기술 표준화를 위해 마쓰다 자동차, 스즈키 자동차, 미국의 포드 자동차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독자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을 연구하기 위한 토요타연구소(Toyota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해 5년간 10억 달러를 투입기로 했어요. 토요타를 중심으로 닛산과 미쓰비시를 제외한 전 자동차 회사와 전자통신사가 대동단결해 뒤처진 디지털 혁명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분위기입니다.”
 
  ―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일본이 몸부림을 치고 있군요.
 
  “일본은 자동차산업마저 ICT 혁명에 뒤처진 전자산업처럼 밀리면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쩌면 일본의 자동차 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한국 자동차 업계도 직면한 현실이죠. 한국도 각 기업이 독자적인 노력을 더해, 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기업연합이 요청되는 상황입니다.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가 눈앞에 와 있어요. 이 혁명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할지 몰라요.”
 
 
  “韓日, 경제 문제점 비슷”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11월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舊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징용공’이 아닌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사진=마이니치 신문.
  ― 현재 한국과 일본의 경제 국력을 비교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본 경제와 한국 경제는 성장의 과정, 산업구조, 고용 시스템, 자원배분 시스템과 법 제도 등이 일란성(一卵性) 쌍둥이처럼 유사합니다.”
 
  따지고 보면 외적인 요인에 정책 판단을 잘못하는 악재(惡材)까지 한일 양국은 닮은꼴이다. 경제 악화에 대한 비상등이 여러 곳에서 켜졌지만, 정책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버블경제 이후의 저(低)성장 기조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유는 일본 경제가 지닌 내재적인 구조 문제 때문이죠.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 대변되는 과도한 정규직 노동자의 보호와 기업특수기술(Firm specific skill)을 강조하는 기업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 문제는 현재 한국이 가진 문제와 비슷해요. 한국은 여기다 재벌 문제까지 안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가 장기적인 저성장과 엄청난 재정적자로 나타났다면, 한국 문제는 경제성장률의 추세적인 하락과 가계(家計)부채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어요.”
 
  권 교수는 “지금은, 과거에 이룩한 것을 기초로 새로운 시대의 승자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모든 것을 잃느냐의 새로운 ‘경제전쟁’의 시대”라고 했다.
 
  “작은 나라들은 서로 협력해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과거 문제로 다툴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일부 국내 경제학자들은 향후 일본 경제가 한국 경제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하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일본은 2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경험한 나라이고, 한국은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경제입니다. 일본 경제가 한일 간 마찰로 어려울 수는 있으나 그동안도 어려웠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성장만 해온 한국은 성장률이 떨어지면 견디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요.”
 
  일본의 수출규제 후 원화는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지난 7월과 8월 두 달여간 20개 주요 국가 통화 중에서 가장 큰 폭의 절하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증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원화의 절하를 부추겼다. 반면 엔화에는 돈이 몰려 달러·엔 환율은 105엔대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9월 5일 현재 1달러에 원화는 1207원이다. 1엔은 1136.48원이다. 여기다 국내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8월 국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6% 감소해 2018년 12월 이후 9개월 연속 감소세다.
 
  ― 한일 경제전쟁이 수출 하락에다 금융 분야 위기로 파급될 우려가 있어요.
 
  “금융 분야는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원화 가치가 급락하지 않는 한 큰 영향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늘고, 재정지출이 늘어나 원화 가치가 하락한다면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것이고, 그래서 원화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어요. 펀더멘털(Fundamental·경제기초)에서 금융으로 불길이 옮아붙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옮아붙으면 한국 경제는 최악의 국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금융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원화 가치를 지켜야 해요.”
 
 
  한국만 화이트리스트 배제
 
  일본 정부는 한국을 상대로 지난 7월 초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에 이어 8월 2일 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또한 한국을 제외시켜 버렸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27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제외한 것이다. 이 결정으로 한국은 일본산(産) 대부분의 품목에서 개별허가를 받아야 수입이 가능하게 됐다.
 
  ―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이유가 뭔가요? 일본도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개인청구권은 1965년에 맺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죠.
 
  대법원 판결에 동의할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의 해결 방안으로 규정된 제3국에 위원 인선을 위임하는 형태의 중재위원회 설치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지만, 한국 외교부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 6월 27~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일 양국 기업이 출연한 기금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했었죠.”
 
  당시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 이후 8개월여 만에 한일 기업이 ‘1+1’ 형태로 출연금을 내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결국 외교적 협상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 처분하는 절차를 시작하고자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
 
  권 교수는 “일본이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논의의 장으로 한국을 부르기 위해, 한국 산업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중요 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어요. 심지어 수출규제 이후에도 외교적으로 해결에 나서기보다 ‘경제전쟁’으로 상황을 몰아가는 모습을 보였죠.”
 
  ― 향후 일본의 대응을 어떻게 전망하나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한일 양국의 분쟁 해결 방안은 분명하고 일관되게 한일청구권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의 구성입니다.
 
  둘째, 국제법 절차에 따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처분이 진행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아마 둘째 요구사항이 마지노선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루비콘강을 건너면 한일관계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어요. 수출규제는 강화되고, 수입도 많이 줄어서 양국 간 무역은 급감하고, 민간교류도 아주 많이 약화될 수 있어요.”
 
  ― 일본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나요.
 
  “아직 비관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상황이 일본 정부의 기대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걱정입니다.”
 
 
  “日, 정치적으로 한국 기업 꼼짝 못 하게 해”
 
작년 10월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故 김규수씨 부인 최정호씨.
  ― 일본이 이렇게까지 완강한 이유가 뭔가요.
 
  “일본 자민당 정권의 지지기반은 기본적으로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한국의 전경련과 경총을 합한 조직)을 중심으로 한 기업입니다. 대법원의 판결로 배상 책임이 생긴 미쓰비시 중공업, 신일철주금(新日鉄住金)은 경단련의 중심 기업이죠.
 
  그래서 아베 정권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경제산업성에서 외무성과 관계없이 수출규제책을 꺼낸 것 같습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급히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보아 일본이 한국의 급소를 제대로 찔렀다고 생각해요.
 
  조직의 경제학에서 중요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락인(lock-in·기존 시스템 대체비용이 어마어마하여 기술 전환을 하지 못하는 상태)된 최종 생산물을 공급하는 기업에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홀드업(hold up·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한다는 의미) 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일본은 정치적으로 한국 기업을 홀드업 시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결과적으로 한국이 더 손해라는 뜻인가요.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공유한 경험이 있습니다. 보세요. 디지털 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격렬하게 무역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미국과 중국은 독자적으로 디지털 혁명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할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독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양국이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위한 협력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크게 다치는 쪽은 한국”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바라보는 일본 시각은 어떤가요.
 
  “문재인 정부는 주변 우방보다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 구축을 중시하고 있어요.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를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죠. 일본은 미국의 점령기에 만들어진 평화헌법의 규정에 따라 북한의 실제적 위협에도 일반적인 국가와 같은 대응을 할 수 없으니 걱정이 많을 수밖에요. 어쩌면 북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차이가 양국 간 안보의 공조(共助)에 균열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출구 전략은 무엇인가요.
 
  “안타깝지만 상황이 아주 안 좋아요. 위안부 문제는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호소했기에 국제적인 호응이 있었죠. 또 정치적 사안으로 협상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징용 배상 문제는 한국이 민족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호응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게다가 일본의 민족 감정까지 자극하고 있어요. 또 정치적 사안을 넘어 일본 기업의 문제이기에 선택 폭이 매우 좁은 상황이죠. 일본은 퇴로가 없다고 할까요?
 
  오랜 빈사(瀕死)상태를 거쳐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일본과 전쟁을 하면 크게 다치는 쪽은 한국이 아닐까요? 우리 중에 가난한 분들이 가장 심하게 다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 안타깝게도 현 정권에 의해 관제(官製) 민족주의가 횡행하고 있어요.
 
  “우리 정부가 민족 자존심으로 대응하면 일본에 빌미만 줄 뿐입니다, 일본 국민은 조용하지만, 한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요. 일본제품 불매운동, 관광 보이콧 등 일본의 ‘나쁜 우익’을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민족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호소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면 국제법의 절차에 따라 세계인 앞에 당당히 판단을 받는 방향으로 (징용 배상 문제를)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10월 하순에 열리는 나루히토(德仁) 천황 즉위식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 문제해결을 위한 정상화하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해요.”
 
 
  일본인의 역사의식
 
  실제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지난 7월 21일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 “즉위식인 10월 22일까지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인의 역사의식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늘 논란거리다. 재일교포, 재일조선인에 대한 배타적 인식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기인된 것은 아닐까. 심지어 혐한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극우(極右) 세력은 일본 사회 기저(基底)에 깔려 있는 자민족 중심의 차별을 정당화한다.
 
  ― 다소 막연한 질문입니다만,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어떻게 보시나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군정에 의해 천황제가 유지되었잖아요. 전쟁을 시작한 쇼와(昭和·히로히토 시대 연호) 시대가 전후(戰後) 44년 동안 이어졌기에 일본이 스스로 전후 처리를 할 수 없었어요. 헤이세이(平成·아키히토 시대 연호) 시대가 너무 늦게 시작되었고, 쇼와 시대와 반대로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일본 국민이 자부심을 많이 잃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변화된 시대와 경제 상황에 맞게 과거를 결산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반면 한국은 식민지 경험 세대가 주역인 1970~80년대에 일본과 협력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뤘잖아요. 일본으로부터 완성품을 수입하지 않는 대신(한국 정부의 완성품 수입규제가 존재했었다) 부품과 소재를 수입, 가공해 미국 등에 수출하면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달성했습니다.
 
  만약 전자·자동차·조선 산업에서 일본이 한국 정부에 완성품을 수입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지금과 달라졌을 거예요. 현재 우리 제품이 일본 시장에서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인 경로 의존이 있었어요.
 
  김대중 정권 때 처음으로 일본 문화의 수입이 풀렸는데 오히려 일본에서 한류(韓流) 붐이 일었고 지금도 여전하죠. 그러나 식민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정치의 중심에 선 21세기에 들어서는 반일감정이 격화되고 과거사 문제가 재(再)점화되는 상황입니다.”
 
 
  “한일 역사가 민족 이데올로기화되고 있어”
 
2013년 10월 18일,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회원 등 120여 명이 도쿄 거리에서 “한국인은 나가라” 등 혐한(嫌韓)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 일본 학계에서는, 양심적 지식인 사이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랄까, 제대로 된 근현대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한일이 불행한 과거를 서로 직시하게 된 것은 최근 15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한국의 진보 사학자들은 일본의 과거 리버럴한 입장에 선 연구를 확장하는 선에서 연구논문을 많이 발표했어요. 예컨대 일본제국의 극악함이나 악행을 드러내는 독립운동사적 관점에서요.
 
  한국 입장을 이해하는 논평과 기사를 많이 싣고 있는 《아사히 신문》과 같은 리버럴한 입장을 대변하는 매체들은 1960~70년대에 북한을 지지하는 논평도 실었죠. 최근 한국에서 우익지로 대변되는 《산케이》 역시 당시에는 한국 입장을 지지한 매체입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고, 국제적 위상이 저하되면서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나쁘지 않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를 ‘수정주의’라 부릅니다. 이런 (수정주의) 주장을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반영하려는 자민당 내의 파벌이 아베 총리가 속한 현재의 ‘호소다파’(회장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입니다. 이 파벌은 그동안 소수였기 때문에 모리 총리 이전에는 총리를 거의 배출하지 못한 파벌이죠. 고이즈미 총리 시절, 자민당 내의 파벌이 재구성되면서 최대 파벌로 부상했죠. 이 파벌은 우익이라기보다는 중도 우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일본 내 수정주의에 맞서 한국 내 진보적 사관에 기초한 근현대사 연구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일본의 극우적 연구를 자극하는 등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어요. 결국 진실과 왜곡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돼버렸고 (한일 역사가) 민족 이데올로기화되어 가는 상황입니다.
 
  한일은 양국이 갖고 있는 통설(通說)을 사실과 국제비교 관점에 기초해 새롭게 검증할 필요가 있어요. 불행한 과거에 대한 공통된 인식하에 미래를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언론에 일본 내 혐한 기사가 자주 소개되고 있다. 일부 혐한 집단은 도쿄 시내에서 가두행진을 벌이며 확성기를 사용해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혐오 발언)를 외치거나 조롱한다. 혐오와 차별은 일란성 쌍둥이다. 혐오는 차별적 구조에서 싹트고, 차별을 공고화한다. 물론 일본 내 한국인 사례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목격할 수 있다.
 
  ― 일본 내 혐한 분위기를 어떻게 분석하나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경제적인 힘의 차이가 컸던 1980년대와 90년대까지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어요.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구매력 기준의 1인당 국내 총생산에서 일본과 큰 차이가 없어지면서 달리 보게 됐어요.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미한 수준입니다. 오히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와 같은 K팝과 한국의 앞선 문화가 혐한을 압도합니다.”
 
 
  “한일, 서로 협력해서 이익”
 
  ― 일본의 관점에서 한국에서 불고 있는 불매운동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분업 시대에 ‘Made in Japan’보다 ‘Made in world’라는 관점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과 한국은 서로 협력해 세계적인 제품을 생산해서 양국이 크게 이익을 봐왔습니다. 삼성은 지금은 사라진 산요전기, LG전자는 히타치,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 포스코는 신일본제철에서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서 성장했어요.
 
  한일은 서로 배려하고 도우면서 양국의 비교우위에 맞게 산업구조를 조정하면서 세계 경제 대국인 미국, 유럽에 대응해온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브릭스(BRICS),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신흥공업국 발전에도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더 큰 이익을 향유(享有)할 수 있다고 봐요. 예전에 우리가 경험하고 공유해온 가치와 경험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어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일의 역사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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