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국내 기업 주식 보유율 5% 넘는 기업 285개, 10% 넘는 기업 95개(2017년 기준)
⊙ 국민연금, 삼성전자 10%·SK하이닉스 9.05%·현대차 8.19%·LG화학 9.81% 등 보유(지난 4월 8일 기준)
⊙ “국민연금이 적대적 M&A 나설 경우 지분율 20~30%인 그룹은 모두 힘들어진다”(대기업 임원)
⊙ 국민연금, 대한항공 주총장에서 勝·한진칼 주총장에선 敗… 주주권 행사한 첫 사례
⊙ 연금 운용 잘못해 수십조원 손실이 나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 국민연금, 삼성전자 10%·SK하이닉스 9.05%·현대차 8.19%·LG화학 9.81% 등 보유(지난 4월 8일 기준)
⊙ “국민연금이 적대적 M&A 나설 경우 지분율 20~30%인 그룹은 모두 힘들어진다”(대기업 임원)
⊙ 국민연금, 대한항공 주총장에서 勝·한진칼 주총장에선 敗… 주주권 행사한 첫 사례
⊙ 연금 운용 잘못해 수십조원 손실이 나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 지난 3월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故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잃었다. 국민연금은 주총 전날, 조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할 것을 피력했다.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을 활용해 대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해 재벌을 개혁하고, 기업을 통한 수익모델로서 개성공단 2000만 평 개발을 추진한다.〉
일명 ‘드루킹’ USB에 담긴 내용이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지난 2018년 8월에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고, 세상에 알려졌다. ‘국민연금을 이용해 재벌을 개혁한다’는 대목에 재계는 흠칫 놀라면서도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느냐’고 했다.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탕! 탕! 탕!”
지난 3월 28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장에서 우기홍 이사회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우 의장은 “의결 총수의 73.8%가 참석했고, 그중 찬성 64.1%, 반대 35.9%였다. 정관상 의결 정족수인 3분의 2 찬성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을) 부결한다”고 선언했다.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로 취임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년 만에 경영권을 잃는 순간이었다.
대한항공은 (주)한진칼이 전체 지분의 29.96%, 국민연금이 11.7%, 소액주주가 57.62%(2018년 12월 31일 기준)를 갖고 있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주주는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은 주총 하루 전날 ‘조 회장의 사내이사직 연임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발표했고 결국 뜻을 이뤘다. 국민연금이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해 재계에 영향력을 끼친 첫 사례로 기록됐다.
故 조양호 회장만을 겨냥한 국민연금
다음 날 국민연금은 또 한 번 힘을 과시하려 했다.
지난 3월 29일, 대한항공의 최대 주주이자 한진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 주총이 열렸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한진그룹의 주력사)→손자회사를 아우르는 형태다. 한진칼의 주주 구성은 조양호 회장 일가가 28.93%(보통주 기준), 그레이스홀딩스가 12.66%(일명 강성부 펀드), 국민연금이 6.64%(2018년 12월 31일 기준)를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대해서도 경영 참여를 선언한 상태였다. 국민연금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월 1일 “한진칼에 대해 제한적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박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은 중요하고 명백한 위법 활동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 대해서만 수탁자로서 주주 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주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대다수의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 활동을 통해 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의 안건으로 ‘임원이 횡령·배임을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에는 임원직에서 자동 해임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정관 변경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조양호 회장을 겨냥한 주총 안건이었다. 당시 조 회장은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한진칼 정관 변경안은 주총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진칼은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연금 측의 정관 변경안은) 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서 조 회장을 끌어내리는 데에는 성공했고,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서 끌어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대한항공 주총에서 경영권을 상실한 조 회장은 불과 열흘 뒤에 세상을 떠났다. 한진그룹 측은 “폐 수술을 받아 요양 중이던 조 회장이 주총 이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은 “문재인 정권이 조양호 회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의 국치일”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던 날 한 대기업 임원은 “우리나라 자본주의 역사의 국치일(國恥日)”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연금이 누구를 위해 있는 조직인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의 역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강력한 주주 권한을 행사한다는 배경부터 말이 안 됩니다.”
― 왜 그렇습니까.
“국민연금은 ‘명백한 위법 활동’을 한 기업에 대해 수탁자로서 주주 권한을 행사한다는데, 한진칼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조양호 회장이 포토라인에 18번 섰고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한 차례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국민연금은 미리 ‘명백한 위법 활동’이라고 전제했습니다.
‘위법 활동으로 인해 국민의 자산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이 문제는 ‘물컵 투척 사건’이 시작입니다. 물컵 투척 사건으로 인해 대한항공에 대한 여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국민연금이 이를 문제 삼으려면 물컵 사건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또 주가 하락에 따라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자산이 얼마나 심각하게 손실을 보았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한 기업인을 끌어내린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 어렵지 않을까요.
“국민연금이 주주 권한 행사를 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배경은 수익 구조 극대화입니다. ‘주가’나 ‘회사의 가치’에 대한 ‘가격’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 대한항공, 한진칼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얘기대로라면 ‘선량한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문제가 있는 기업에만 나서겠다’는 것인데 그 기준이 대체 무엇입니까. 선량한 기업과 나쁜 기업은 누가 결정합니까? 인터넷 댓글 다는 사람들이 ‘나쁜 기업, 악덕 경영주’라고 하면 모두 나쁜 기업이 됩니까. 다분히 정치적이고 인민재판의 성향이 농후한 일을 하겠다는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의 의견도 비슷하다. 전경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무죄(조양호 회장의 횡령·배임을 의미)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반하는 결과이며,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선례(先例)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국민연금의 조 회장 건을 심의한 과정을 보면서 깊이 있는 논의 없이 여론에 휩쓸려 결정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컵 사건’에도 대한항공 영업이익률이 아시아나항공보다 높아”
조동근 전(前)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얘기다.
“도덕과 법은 다른 척도입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했다고 해도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회장을 사내이사에서 끌어내리려면 그가 지배해온 한진그룹의 경영성과가 경쟁업체에 비해 낮고, 그것이 조양호 회장의 경영판단 실수에서 온 경우여야 합니다. 어디에도 그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오너 갑질이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추락시켰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런 주장은 ‘무오류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 ‘무오류의 함정’이요?
“조현아 땅콩 회항은 2014년 12월 5일에 발생했습니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주가가 폭락했어야 하지만 한진칼의 주가는 2015년 5월까지 오히려 올랐습니다. 조현아 물컵 투척 사건은 2018년 4월 15일에 일어났습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가는 내렸습니다.
만일 이것이 오너 갑질에 따른 것이라면 당시 오너 갑질이 없었던 경쟁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주가 역시 똑같이 내렸습니다. ‘오너의 갑질이 기업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주가 이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땅콩 회항이 일어난 이후의 2016 ~18년까지 재무제표를 보면 대한항공의 수익률이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훨씬 웃돕니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률은 9.55%(2016년), 7.77%(2017년), 5.86% (2018년)였습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4.45%, 4.43%, 3.67%였습니다.
영업이익률은 그 기업의 ‘실물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대한항공의 기업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을 대한항공에서 끌어내린 날, 또 다른 그룹의 임원은 이런 얘기를 했다.
“국민연금을 30년 넘게 내고 있습니다. 저는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을 지지합니다. 오너 경영인이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해야 그 회사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엄밀히 따져 조 회장의 자식과 부인이 갑질을 한 것이지, 경영인 조양호 회장이 갑질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민연금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납부자인 제 뜻에 반하는 의결권을 강행한 것입니다. 이건 어디 가서 항의해야 합니까?”
644조원 굴리는 국민연금의 막강 파워

국민연금은 막강한 조직이다. 2018년 11월 현재 가입자 2194만명, 기금 644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특수직 종사자(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 등)를 제외한 18세 이상~60세 미만의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은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몹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도해지·중간정산이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제도는 ▲가입자의 자격관리 ▲연금 보험료 부과 및 징수 ▲여유자금의 관리 및 운용 ▲연금 지급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큰 두 축은 수급자에게 연금 지급 등을 하는 ‘제도 운용’과 쌓인 돈을 운용하는 ‘기금 운용’이다.
국민연금의 644조원이 과연 국민의 돈이냐, 아니면 공단의 돈이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반(半)강제적으로 대다수의 국민 지갑에서 나온 돈이고, 보험회사의 돈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가입자들이 낸 돈이다. 국민연금이나 보험회사 돈이나 모두 ‘언젠가는 가입자에게 되돌려줘야 할 돈’이라는 점에서 두 회사의 재정상태표를 한번 보자.
국민연금의 재정상태표(2017년 12월 31일 기준)를 보면 총자산 620조원 중 자본 520조, 부채 100조원으로 돼 있다. 삼성생명의 재무상태표(2018년 12월 31일 기준)는 총자산 250조원 중 자본 20조, 부채 230조원으로 돼 있다. 쉽게 말해 삼성생명은 총 250조원 중 230조를 빚, 즉 고객에게 돌려줄 돈으로 서류상 잡았다는 것이다. 똑같이 국민(혹은 고객)의 돈인데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을 적용받고, 보험회사는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전혀 문제는 없다.
대기업에서 투자 업무를 하는 한 임원은 “재무제표상으로만 놓고 보면 삼성생명은 부채 230조원, 잘못 운영했을 경우 고객이 달라고 하면 당장 줘야 하는 금액으로 장부상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재무제표상 고객이 낸 돈이 부채가 아닌, 순자산의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다”며 “국민연금과 일반 보험회사가 고객의 돈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JP모건 CEO랑 수익률 경쟁하는 형국”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청와대에서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를 열고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두 달 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이 ‘강력한 권한’을 내세워 많은 기업의 생살여탈권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재계의 시선이 주목됐다. 첫 번째 쟁점은 왜 국민연금의 기금 사용 권한을 정부에서 좌지우지하느냐는 것이다.
국민연금 출범 첫해에 조성된 기금은 약 5200억원으로 기금운용부에서 공공자금으로 예탁해 운용됐다. 1998년에 기금운용부는 기금운용실로 승격되고, 이듬해에 기금운용본부가 만들어졌다.
1999년에 공공자금기금관리법이 개정되면서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이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뀌었다. 즉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한항공 경영권 운운은, 그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의 자격으로 말한 것이었다.
최광 전(前) 국민연금 이사장은 “공무원이 기금을 운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1년에 5~6회 열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장관이 1년에 12~15시간을 관심 가져서 어떻게 600조원의 기금을 운용할 수 있습니까. 공무원 중에 전문가가 있습니까. 매일 24시간 365일 내내 투입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1년에 15시간 투입하는 현재의 책임 구도로는 문제입니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경쟁자는 JP모건, UBS, Blackstone 등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입니다. 기금운용위원장으로서 기금 운용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전문적 소양이 없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연금 운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으니 별수 없지 않습니까.
“보건복지부 산하에 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입니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공적 연금이기에 정부가 관여해야 한다면, 이는 기금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감독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직접 국민연금 기금을 두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기획재정부 장관이든 정부가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으면 됩니다.”
기금 운용 책임지는 사람 없어
지난 2018년 10월에 만든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기존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던 ‘의결권 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한 것이다. 조동근 전 명지대 교수의 얘기다.
“국민연금 기금운영회는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만든 조직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검토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4명 중 9명이 산하 연구기관 추천이거나 노동계 인사들입니다.
14명 중 9명이 찬성하면 모든 의안이 통과됩니다. 국민연금을 굴리는 데 돈 굴리는 것과 상관 없는 노동계가 들어간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민간 기업에서 직접 수십조 단위의 기금을 운용하는 이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데 보건복지부가 웬 말입니까. 자금 투자에 대한 투자의 기본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최대한 오랫동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운영을 하는지 걱정이 됩니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을 잘못할 경우에 누가 책임지는지를 현재의 제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좀 더 설명을 해주자면요.
“민간 보험 상품 중 국민연금과 유사한 상품으로 변액 개인연금이 있는데, 이 상품의 경우에도 최소한 원금 이상은 보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만일 운용 손실을 본다면, 회사 주주가 돈을 넣어서 고객에게 약속한 금액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원금 보전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국민이 월 10만원을 냈지만, 나중에 9만원을 주든 8만원을 주든 상관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운용 손실에 대해 온전히 국민이 책임을 지는 구조입니다.”
― 기금 고갈을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 아닙니까.
“최소한의 적절 투자 수익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투자 손실이 생겼을 때 시장만 탓하면 됩니다. 책임 소재를 묻거나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책임지고 평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2018년 기금 손실 15조원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왜 정부에서 굴리느냐, 왜 손해를 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느냐고 지적하지만, 국민연금이 이렇게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연금법에 그렇게 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는 겁니다. 전문가 집단이 앞으로 기금 운용을 맡으라고 법으로 결정하면, 국민연금은 ‘그렇게 하겠다’고 할 겁니다. 국민연금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민연금을 굴리는 권한을 정부에 준 국회가 문제입니다.”
― 왜 이렇게 세팅이 된 것입니까.
“국민에게 지급하는 연금이다 보니 초창기에 국가에서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누적 연금 금액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기금 규모가 늘어나면 그에 맞게 기금 운용을 전문가 집단에 맡기고, 법령을 고쳐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 흡사 ‘유치원생이었던 국민연금이 오늘날 대학생의 체격을 갖췄는데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식으로 들립니다.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국회의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이를 심각하게 여겨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00조원이 넘는 기금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운용위원회에서 맡고 있지만, 기금의 수익에 관한 책임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널뛰기를 반복했다. 2018년에는 마이너스 1.5%로 확정됐다. 기금 손실액은 15조원이었다.
조동근 전 명지대 교수는 “기금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처음이다. 국민연금이 아닌 민간 기금에서 이런 정도의 원금 손실을 기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해보라. 기금 운용 책임자는 책임을 추궁당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런 손실을 내고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국민 돈을 잘못 관리한 데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만일 막대한 손실을 본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대통령,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공단이사장, 기금운용본부장 누구인가. 현재의 법 규정, 제도, 관행 어디를 봐도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도 경쟁체제로 바꿔야”
국민연금을 정부, 즉 공무원이 운용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얘기와 함께 일부에서는 기금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해 칼을 빼 들었던 배경이 되는 것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한 것이고, 또 앞으로도 국내 기업의 주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의 얘기다.
“국민연금이 2017년 말에 국내 주식에 투자한 규모는 131조원이 넘습니다. 국내 주식 시가총액의 6.96%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국내 기업 주식 보유율이 5%가 넘는 기업이 285개에 달하고, 10%가 넘는 기업도 95개나 됩니다.
하지만 기금 운용을 전문가 집단이 했다면 저는 이렇게 많은 돈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금 운용은 무한(無限) 경쟁의 범(汎)세계적인 업무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기금을 운용했다면 국내 주식보다는 해외 주식으로의 비중을 늘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국내 주식에 투자해서 기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금운용본부 조직도 경쟁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 어떻게 말입니까.
“현재의 600조원대인 기금 규모는 곧 1000조원을 돌파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총 책임자인 CIO(Chief Investment Officer)는 한 명뿐입니다. 한 명의 CIO가 관리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입니다. 국내투자 담당 CIO와 해외투자 담당 CIO로 하든지, 아니면 자산별로 주식투자 담당 CIO, 채권투자 담당 CIO, 대체투자 CIO로 해야 합니다.”
“기업 경영권 간섭은 기금 운용 기본 성격에 어긋나”
현재 국민연금의 투자 분포는 해외 주식 20%, 국내 주식 18%, 국내 채권 45%, 해외 채권 3% 정도다. 캐나다 연금의 경우에는 일반 상장주식 투자 30%, 연금채권 11%, 나머지 대체투자 50~60%다. 물론 자산을 몇 %로 배분해야 하느냐에 대한 정답은 없다.
민간 기업에서 수십조 단위의 자금을 운용하는 이의 말이다.
“연금은 통상 인플레이션 비율(inflation rate)보다 수익률이 높아야 합니다. 고로 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을 수 있는 자산을 사야 하는데 채권은 전혀 그런 자산이 아닙니다. 채권은 알다시피 가장 수익률이 낮습니다. 궁극적으로 돈을 많이 벌면 되는 기관이니까 부동산에 투자하든지, 아예 한 기업을 사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연기금 운영의 기본 목표는 기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데 연금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국내 기업 주식에 투자해 국내 기업 경영권에 간섭하겠다는 것은 기금 운용의 기본 성격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 운용 책임 소재를 이유로 복수의 CIO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CIO들끼리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한 사람이 수익을 내고, 다른 사람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익을 내지 못한 사람이 수익을 낸 경쟁자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가 됩니다. 이런 경쟁 체제라면 단순히 ‘물컵을 던졌으니 주가가 내릴 것이다’라는 주먹구구식 사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국민연금의 ‘사기업 경영권 개입의 논거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조동근 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 논거는 국민연금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국민연금법 제1조는 ‘목적’으로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록합니다. 제3조의 2는 ‘국가의 책무’ 조항에서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 급여가 안정적, 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국민연금법 어디를 보더라도 경영 개입을 위한 의결권 행사를 ‘명시적’으로 주문한 조항이 없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민연금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스로 역할을 자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대적 M&A 난무할 가능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이지만, 전체 굴리는 돈의 액수 때문에 재계는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시가총액 50위권의 한국 회사 중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가 아닌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상위 20위 기업의 국민연금 주식 비중(2019년 4월 8일 기준)을 보자. 삼성전자 10%, SK하이닉스 9.05%, 현대차 8.19%, LG화학 9.81%, 셀트리온 5.59%, 포스코 10.72%, LG생활건강 7.08%, 현대모비스 10.01%, 신한지주 9.38%, 삼성물산 6.23%, 네이버 9.48%, SK텔레콤 9.76%, SK 8.34%, KB금융 9.5%, 삼성SDS 5.32%, SK이노베이션 9.6%, 삼성생명 5.29%다.
이들 회사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통상 20~30%대다. 대기업 임원은 “국민연금이 적대적 M&A를 하겠다고 나설 경우에 지분율이 20~30%인 그룹은 모두 힘들어진다”고 했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0%대인 기업은 국민연금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연금의 지분이 7~10%라고 할 때 이들이 한두 명과만 손을 맞잡아도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적대적 M&A입니다.
국민연금이 ‘나와 힘을 합치자. 주가를 올릴 수 있다’라고 하면 여기에 반대할 외국인이나 국내 펀드가 있을까요. 외국인 투자자나 펀드가 기업에 투자하는 목적은 주가 상승을 통한 수익 창출인데, 국민연금이 이 역할을 할 테니 힘을 보태 달라고 하면 거절할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국민연금발(發) 움직임으로 외국인 투자자, 펀드가 가세해 그룹 경영권이 흔들리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특수관계인들이 외부 우호세력과 손잡아 이를 저지한다면요.
“백기사지요. 하지만 10년, 20년 가는 백기사가 어디 있습니까. 결국은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목적으로 기업 주식을 사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주주 간 이해 상충이 벌어지면 언제까지 백기사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조동근 전 명지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마음먹고 기업 경영권에 개입하겠다고 나설 경우에 경제 생태계에 굉장한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기금 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 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물론이며, 주식 투자자들이 회사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얘기다.
“오늘날 주식 투자의 기본은 ‘소유’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한국 주식 투자자의 매매 회전율은 전(全)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습니다. 3~6개월이 지나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주주들을 왜 회사의 중요 결정에 참여시키는지, 큰 실익과 중대한 명분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 국민연금은 앞으로 기업의 지배구조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태세인데요.
“기관투자자들도 상당히 단기 투자 성향을 보입니다. 금방 팔고 나갈 주식에 대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비롯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자격이 있는지 고려해봐야 합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금기금 사회주의의 도구가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연금기금이 도입됐을 때 연금기금 사회주의를 우려한 바 있습니다. 그는 ‘근로자들이 기금의 주인이니까 자신들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설 경우 문제가 있다. 노조가 기업 경영권에 간섭을 할 것’이라며 기금연금으로 인한 사회주의화를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을 통해서 사실상 정부가 연금기금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 이미 연금기금 사회주의가 시작된 것일까요.
“적어도 정부가 연금 정치를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연금을 활용해서 환경(Enviroment), 사회적(Social), 지배구조(Government)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ESG’ 문제에 국민의 돈을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민간 기업의 한 임원은 “국민연금은 국가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복지부 등 정부 부처의 산하 기관이어서는 곤란하다”며 “연금을 낸 국민의 대표들이 움직여야 하는 기관인데 마치 정부는 자기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해도 되는 돈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을 이용해 회사 경영권을 흔들어보겠다는 것은 기금 운용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며 직권 남용으로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한 다음 날, 자유한국당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반대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부결된 것과 관련해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국민연금의 개입은 기업의 자율성과 자유시장 질서를 전면 훼손했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김명연 의원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철저히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기업 경영권에 집착하다 보면 그 임무를 위해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명 ‘드루킹’ USB에 담긴 내용이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지난 2018년 8월에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고, 세상에 알려졌다. ‘국민연금을 이용해 재벌을 개혁한다’는 대목에 재계는 흠칫 놀라면서도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느냐’고 했다.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탕! 탕! 탕!”
지난 3월 28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장에서 우기홍 이사회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우 의장은 “의결 총수의 73.8%가 참석했고, 그중 찬성 64.1%, 반대 35.9%였다. 정관상 의결 정족수인 3분의 2 찬성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을) 부결한다”고 선언했다.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로 취임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년 만에 경영권을 잃는 순간이었다.
대한항공은 (주)한진칼이 전체 지분의 29.96%, 국민연금이 11.7%, 소액주주가 57.62%(2018년 12월 31일 기준)를 갖고 있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주주는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은 주총 하루 전날 ‘조 회장의 사내이사직 연임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발표했고 결국 뜻을 이뤘다. 국민연금이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해 재계에 영향력을 끼친 첫 사례로 기록됐다.
故 조양호 회장만을 겨냥한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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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1일 기자들과 만나 “한진칼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
지난 3월 29일, 대한항공의 최대 주주이자 한진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 주총이 열렸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한진그룹의 주력사)→손자회사를 아우르는 형태다. 한진칼의 주주 구성은 조양호 회장 일가가 28.93%(보통주 기준), 그레이스홀딩스가 12.66%(일명 강성부 펀드), 국민연금이 6.64%(2018년 12월 31일 기준)를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대해서도 경영 참여를 선언한 상태였다. 국민연금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월 1일 “한진칼에 대해 제한적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박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은 중요하고 명백한 위법 활동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 대해서만 수탁자로서 주주 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주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대다수의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 활동을 통해 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의 안건으로 ‘임원이 횡령·배임을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에는 임원직에서 자동 해임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정관 변경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조양호 회장을 겨냥한 주총 안건이었다. 당시 조 회장은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한진칼 정관 변경안은 주총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진칼은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연금 측의 정관 변경안은) 부결됐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서 조 회장을 끌어내리는 데에는 성공했고,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서 끌어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대한항공 주총에서 경영권을 상실한 조 회장은 불과 열흘 뒤에 세상을 떠났다. 한진그룹 측은 “폐 수술을 받아 요양 중이던 조 회장이 주총 이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은 “문재인 정권이 조양호 회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의 국치일”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던 날 한 대기업 임원은 “우리나라 자본주의 역사의 국치일(國恥日)”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연금이 누구를 위해 있는 조직인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의 역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강력한 주주 권한을 행사한다는 배경부터 말이 안 됩니다.”
― 왜 그렇습니까.
“국민연금은 ‘명백한 위법 활동’을 한 기업에 대해 수탁자로서 주주 권한을 행사한다는데, 한진칼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조양호 회장이 포토라인에 18번 섰고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한 차례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국민연금은 미리 ‘명백한 위법 활동’이라고 전제했습니다.
‘위법 활동으로 인해 국민의 자산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이 문제는 ‘물컵 투척 사건’이 시작입니다. 물컵 투척 사건으로 인해 대한항공에 대한 여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국민연금이 이를 문제 삼으려면 물컵 사건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또 주가 하락에 따라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자산이 얼마나 심각하게 손실을 보았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한 기업인을 끌어내린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 어렵지 않을까요.
“국민연금이 주주 권한 행사를 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배경은 수익 구조 극대화입니다. ‘주가’나 ‘회사의 가치’에 대한 ‘가격’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 대한항공, 한진칼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얘기대로라면 ‘선량한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문제가 있는 기업에만 나서겠다’는 것인데 그 기준이 대체 무엇입니까. 선량한 기업과 나쁜 기업은 누가 결정합니까? 인터넷 댓글 다는 사람들이 ‘나쁜 기업, 악덕 경영주’라고 하면 모두 나쁜 기업이 됩니까. 다분히 정치적이고 인민재판의 성향이 농후한 일을 하겠다는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의 의견도 비슷하다. 전경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무죄(조양호 회장의 횡령·배임을 의미)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반하는 결과이며,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선례(先例)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국민연금의 조 회장 건을 심의한 과정을 보면서 깊이 있는 논의 없이 여론에 휩쓸려 결정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컵 사건’에도 대한항공 영업이익률이 아시아나항공보다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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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도덕과 법은 다른 척도입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했다고 해도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회장을 사내이사에서 끌어내리려면 그가 지배해온 한진그룹의 경영성과가 경쟁업체에 비해 낮고, 그것이 조양호 회장의 경영판단 실수에서 온 경우여야 합니다. 어디에도 그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오너 갑질이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추락시켰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런 주장은 ‘무오류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 ‘무오류의 함정’이요?
“조현아 땅콩 회항은 2014년 12월 5일에 발생했습니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주가가 폭락했어야 하지만 한진칼의 주가는 2015년 5월까지 오히려 올랐습니다. 조현아 물컵 투척 사건은 2018년 4월 15일에 일어났습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가는 내렸습니다.
만일 이것이 오너 갑질에 따른 것이라면 당시 오너 갑질이 없었던 경쟁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주가 역시 똑같이 내렸습니다. ‘오너의 갑질이 기업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주가 이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땅콩 회항이 일어난 이후의 2016 ~18년까지 재무제표를 보면 대한항공의 수익률이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훨씬 웃돕니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률은 9.55%(2016년), 7.77%(2017년), 5.86% (2018년)였습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4.45%, 4.43%, 3.67%였습니다.
영업이익률은 그 기업의 ‘실물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대한항공의 기업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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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전 명지대 교수는 “대한항공의 오너갑질이 문제라면 오너 갑질이 없었던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올라야 한다. 하지만 두 회사의 주가 흐름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고로 ‘물컵 투척 사건’과 ‘대한항공 주가’의 관계가 미미했다는 것이다. |
“국민연금을 30년 넘게 내고 있습니다. 저는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을 지지합니다. 오너 경영인이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해야 그 회사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엄밀히 따져 조 회장의 자식과 부인이 갑질을 한 것이지, 경영인 조양호 회장이 갑질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민연금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납부자인 제 뜻에 반하는 의결권을 강행한 것입니다. 이건 어디 가서 항의해야 합니까?”

국민연금은 막강한 조직이다. 2018년 11월 현재 가입자 2194만명, 기금 644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특수직 종사자(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 등)를 제외한 18세 이상~60세 미만의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은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몹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도해지·중간정산이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제도는 ▲가입자의 자격관리 ▲연금 보험료 부과 및 징수 ▲여유자금의 관리 및 운용 ▲연금 지급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큰 두 축은 수급자에게 연금 지급 등을 하는 ‘제도 운용’과 쌓인 돈을 운용하는 ‘기금 운용’이다.
국민연금의 644조원이 과연 국민의 돈이냐, 아니면 공단의 돈이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반(半)강제적으로 대다수의 국민 지갑에서 나온 돈이고, 보험회사의 돈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가입자들이 낸 돈이다. 국민연금이나 보험회사 돈이나 모두 ‘언젠가는 가입자에게 되돌려줘야 할 돈’이라는 점에서 두 회사의 재정상태표를 한번 보자.
국민연금의 재정상태표(2017년 12월 31일 기준)를 보면 총자산 620조원 중 자본 520조, 부채 100조원으로 돼 있다. 삼성생명의 재무상태표(2018년 12월 31일 기준)는 총자산 250조원 중 자본 20조, 부채 230조원으로 돼 있다. 쉽게 말해 삼성생명은 총 250조원 중 230조를 빚, 즉 고객에게 돌려줄 돈으로 서류상 잡았다는 것이다. 똑같이 국민(혹은 고객)의 돈인데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을 적용받고, 보험회사는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전혀 문제는 없다.
대기업에서 투자 업무를 하는 한 임원은 “재무제표상으로만 놓고 보면 삼성생명은 부채 230조원, 잘못 운영했을 경우 고객이 달라고 하면 당장 줘야 하는 금액으로 장부상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재무제표상 고객이 낸 돈이 부채가 아닌, 순자산의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다”며 “국민연금과 일반 보험회사가 고객의 돈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JP모건 CEO랑 수익률 경쟁하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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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 |
국민연금이 ‘강력한 권한’을 내세워 많은 기업의 생살여탈권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재계의 시선이 주목됐다. 첫 번째 쟁점은 왜 국민연금의 기금 사용 권한을 정부에서 좌지우지하느냐는 것이다.
국민연금 출범 첫해에 조성된 기금은 약 5200억원으로 기금운용부에서 공공자금으로 예탁해 운용됐다. 1998년에 기금운용부는 기금운용실로 승격되고, 이듬해에 기금운용본부가 만들어졌다.
1999년에 공공자금기금관리법이 개정되면서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이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뀌었다. 즉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한항공 경영권 운운은, 그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의 자격으로 말한 것이었다.
최광 전(前) 국민연금 이사장은 “공무원이 기금을 운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1년에 5~6회 열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장관이 1년에 12~15시간을 관심 가져서 어떻게 600조원의 기금을 운용할 수 있습니까. 공무원 중에 전문가가 있습니까. 매일 24시간 365일 내내 투입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1년에 15시간 투입하는 현재의 책임 구도로는 문제입니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경쟁자는 JP모건, UBS, Blackstone 등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입니다. 기금운용위원장으로서 기금 운용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전문적 소양이 없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연금 운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으니 별수 없지 않습니까.
“보건복지부 산하에 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입니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공적 연금이기에 정부가 관여해야 한다면, 이는 기금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감독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직접 국민연금 기금을 두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기획재정부 장관이든 정부가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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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직원들이 지난 2018년 5월 12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가족 갑질을 규탄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
“국민연금 기금운영회는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만든 조직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검토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4명 중 9명이 산하 연구기관 추천이거나 노동계 인사들입니다.
14명 중 9명이 찬성하면 모든 의안이 통과됩니다. 국민연금을 굴리는 데 돈 굴리는 것과 상관 없는 노동계가 들어간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민간 기업에서 직접 수십조 단위의 기금을 운용하는 이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데 보건복지부가 웬 말입니까. 자금 투자에 대한 투자의 기본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최대한 오랫동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운영을 하는지 걱정이 됩니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을 잘못할 경우에 누가 책임지는지를 현재의 제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좀 더 설명을 해주자면요.
“민간 보험 상품 중 국민연금과 유사한 상품으로 변액 개인연금이 있는데, 이 상품의 경우에도 최소한 원금 이상은 보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만일 운용 손실을 본다면, 회사 주주가 돈을 넣어서 고객에게 약속한 금액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원금 보전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국민이 월 10만원을 냈지만, 나중에 9만원을 주든 8만원을 주든 상관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운용 손실에 대해 온전히 국민이 책임을 지는 구조입니다.”
― 기금 고갈을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 아닙니까.
“최소한의 적절 투자 수익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투자 손실이 생겼을 때 시장만 탓하면 됩니다. 책임 소재를 묻거나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책임지고 평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2018년 기금 손실 15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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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왜 정부에서 굴리느냐, 왜 손해를 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느냐고 지적하지만, 국민연금이 이렇게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연금법에 그렇게 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는 겁니다. 전문가 집단이 앞으로 기금 운용을 맡으라고 법으로 결정하면, 국민연금은 ‘그렇게 하겠다’고 할 겁니다. 국민연금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민연금을 굴리는 권한을 정부에 준 국회가 문제입니다.”
― 왜 이렇게 세팅이 된 것입니까.
“국민에게 지급하는 연금이다 보니 초창기에 국가에서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누적 연금 금액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기금 규모가 늘어나면 그에 맞게 기금 운용을 전문가 집단에 맡기고, 법령을 고쳐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 흡사 ‘유치원생이었던 국민연금이 오늘날 대학생의 체격을 갖췄는데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식으로 들립니다.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국회의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이를 심각하게 여겨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00조원이 넘는 기금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운용위원회에서 맡고 있지만, 기금의 수익에 관한 책임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널뛰기를 반복했다. 2018년에는 마이너스 1.5%로 확정됐다. 기금 손실액은 15조원이었다.
조동근 전 명지대 교수는 “기금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처음이다. 국민연금이 아닌 민간 기금에서 이런 정도의 원금 손실을 기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해보라. 기금 운용 책임자는 책임을 추궁당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런 손실을 내고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국민 돈을 잘못 관리한 데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만일 막대한 손실을 본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대통령,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공단이사장, 기금운용본부장 누구인가. 현재의 법 규정, 제도, 관행 어디를 봐도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도 경쟁체제로 바꿔야”
국민연금을 정부, 즉 공무원이 운용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얘기와 함께 일부에서는 기금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해 칼을 빼 들었던 배경이 되는 것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한 것이고, 또 앞으로도 국내 기업의 주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의 얘기다.
“국민연금이 2017년 말에 국내 주식에 투자한 규모는 131조원이 넘습니다. 국내 주식 시가총액의 6.96%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국내 기업 주식 보유율이 5%가 넘는 기업이 285개에 달하고, 10%가 넘는 기업도 95개나 됩니다.
하지만 기금 운용을 전문가 집단이 했다면 저는 이렇게 많은 돈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금 운용은 무한(無限) 경쟁의 범(汎)세계적인 업무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기금을 운용했다면 국내 주식보다는 해외 주식으로의 비중을 늘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국내 주식에 투자해서 기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금운용본부 조직도 경쟁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 어떻게 말입니까.
“현재의 600조원대인 기금 규모는 곧 1000조원을 돌파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총 책임자인 CIO(Chief Investment Officer)는 한 명뿐입니다. 한 명의 CIO가 관리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입니다. 국내투자 담당 CIO와 해외투자 담당 CIO로 하든지, 아니면 자산별로 주식투자 담당 CIO, 채권투자 담당 CIO, 대체투자 CIO로 해야 합니다.”
“기업 경영권 간섭은 기금 운용 기본 성격에 어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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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운용의 주체자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민간 기업에서 수십조 단위의 자금을 운용하는 이의 말이다.
“연금은 통상 인플레이션 비율(inflation rate)보다 수익률이 높아야 합니다. 고로 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을 수 있는 자산을 사야 하는데 채권은 전혀 그런 자산이 아닙니다. 채권은 알다시피 가장 수익률이 낮습니다. 궁극적으로 돈을 많이 벌면 되는 기관이니까 부동산에 투자하든지, 아예 한 기업을 사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연기금 운영의 기본 목표는 기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데 연금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국내 기업 주식에 투자해 국내 기업 경영권에 간섭하겠다는 것은 기금 운용의 기본 성격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 운용 책임 소재를 이유로 복수의 CIO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CIO들끼리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한 사람이 수익을 내고, 다른 사람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익을 내지 못한 사람이 수익을 낸 경쟁자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가 됩니다. 이런 경쟁 체제라면 단순히 ‘물컵을 던졌으니 주가가 내릴 것이다’라는 주먹구구식 사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국민연금의 ‘사기업 경영권 개입의 논거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조동근 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 논거는 국민연금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국민연금법 제1조는 ‘목적’으로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록합니다. 제3조의 2는 ‘국가의 책무’ 조항에서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 급여가 안정적, 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국민연금법 어디를 보더라도 경영 개입을 위한 의결권 행사를 ‘명시적’으로 주문한 조항이 없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민연금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스로 역할을 자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대적 M&A 난무할 가능성

시가총액 상위 20위 기업의 국민연금 주식 비중(2019년 4월 8일 기준)을 보자. 삼성전자 10%, SK하이닉스 9.05%, 현대차 8.19%, LG화학 9.81%, 셀트리온 5.59%, 포스코 10.72%, LG생활건강 7.08%, 현대모비스 10.01%, 신한지주 9.38%, 삼성물산 6.23%, 네이버 9.48%, SK텔레콤 9.76%, SK 8.34%, KB금융 9.5%, 삼성SDS 5.32%, SK이노베이션 9.6%, 삼성생명 5.29%다.
이들 회사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통상 20~30%대다. 대기업 임원은 “국민연금이 적대적 M&A를 하겠다고 나설 경우에 지분율이 20~30%인 그룹은 모두 힘들어진다”고 했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0%대인 기업은 국민연금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연금의 지분이 7~10%라고 할 때 이들이 한두 명과만 손을 맞잡아도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적대적 M&A입니다.
국민연금이 ‘나와 힘을 합치자. 주가를 올릴 수 있다’라고 하면 여기에 반대할 외국인이나 국내 펀드가 있을까요. 외국인 투자자나 펀드가 기업에 투자하는 목적은 주가 상승을 통한 수익 창출인데, 국민연금이 이 역할을 할 테니 힘을 보태 달라고 하면 거절할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국민연금발(發) 움직임으로 외국인 투자자, 펀드가 가세해 그룹 경영권이 흔들리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특수관계인들이 외부 우호세력과 손잡아 이를 저지한다면요.
“백기사지요. 하지만 10년, 20년 가는 백기사가 어디 있습니까. 결국은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목적으로 기업 주식을 사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주주 간 이해 상충이 벌어지면 언제까지 백기사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조동근 전 명지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마음먹고 기업 경영권에 개입하겠다고 나설 경우에 경제 생태계에 굉장한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기금 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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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은 “문재인 정권이 조양호 회장을 죽게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음. |
“오늘날 주식 투자의 기본은 ‘소유’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한국 주식 투자자의 매매 회전율은 전(全)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습니다. 3~6개월이 지나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주주들을 왜 회사의 중요 결정에 참여시키는지, 큰 실익과 중대한 명분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 국민연금은 앞으로 기업의 지배구조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태세인데요.
“기관투자자들도 상당히 단기 투자 성향을 보입니다. 금방 팔고 나갈 주식에 대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비롯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자격이 있는지 고려해봐야 합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금기금 사회주의의 도구가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연금기금이 도입됐을 때 연금기금 사회주의를 우려한 바 있습니다. 그는 ‘근로자들이 기금의 주인이니까 자신들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설 경우 문제가 있다. 노조가 기업 경영권에 간섭을 할 것’이라며 기금연금으로 인한 사회주의화를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을 통해서 사실상 정부가 연금기금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 이미 연금기금 사회주의가 시작된 것일까요.
“적어도 정부가 연금 정치를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연금을 활용해서 환경(Enviroment), 사회적(Social), 지배구조(Government)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ESG’ 문제에 국민의 돈을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민간 기업의 한 임원은 “국민연금은 국가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복지부 등 정부 부처의 산하 기관이어서는 곤란하다”며 “연금을 낸 국민의 대표들이 움직여야 하는 기관인데 마치 정부는 자기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해도 되는 돈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을 이용해 회사 경영권을 흔들어보겠다는 것은 기금 운용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며 직권 남용으로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한 다음 날, 자유한국당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반대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부결된 것과 관련해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국민연금의 개입은 기업의 자율성과 자유시장 질서를 전면 훼손했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김명연 의원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철저히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기업 경영권에 집착하다 보면 그 임무를 위해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