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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라! ① SK이노베이션

정유·석유화학·전기차 배터리의 포트폴리오로 톱 글로벌 종합화학회사로 도약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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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을 산유국 반열에 올린 고 최종현 회장
⊙ 최태원 회장, ‘오지의 페루 가스전’ 진두지휘하며 사업 의지 불태워
⊙ ‘세계의 모든 전기차가 SK배터리로 달리는 그날까지’
전 세계 바다에서 석유자원개발을 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소비자물가 인상률만큼만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2018년도 임금 인상률 협상을 앞두고, SK이노베이션 노조가 먼저 사측에 제안을 했다. ‘자기 배 불리기’에 급급한 대다수 기업의 노조 행태에 비춰 보자면 참신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과 이정묵 노동조합위원장이 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에서 마주 앉았다. 노사가 마주 앉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은 없었다. 사측도, 노조도 모두 환한 표정이었다. ‘물가 인상률’과 ‘임금 인상률’을 연동시키는 안(案)은 국내 기업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소모적인 협상 관행을 벗어나 발전적인 노사 관계로 진화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노조의 파격 제안은 ‘노사가 상생하겠다’는 그룹의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기업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범 답안’, 이것이 향후 SK이노베이션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또 하나의 계기가 될는지 모른다.
 
 
  매출 46조2609억원, 영업이익 3조2343억원
 
  SK이노베이션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원유를 정제하는 회사에 불과했던 회사는 반 세대를 거치며 국내 최대의 에너지·화학 회사가 됐다. 회사의 이름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시작해 4번 바뀌었다. 1980년 당시 선경그룹에 인수되면서 ㈜유공으로, 1997년 10월에는 그룹 이름이 선경에서 SK로 바뀜에 따라 SK주식회사로 됐다. 2007년 SK그룹이 지주회사제를 도입했을 때 SK주식회사(지주회사)와 SK에너지(사업자회사, 현 SK이노베이션)로 분사된 후, 2011년 1월부터 현재의 SK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매출은 지난 2017년을 기준으로 46조2609억원, 영업이익 3조2343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회사는 김준 대표이사가 이끄는 SK이노베이션 산하에 SK에너지(조경목 대표이사), SK종합화학(김형건 대표이사), SK루브리컨츠(지동섭 대표이사), SK인천석유화학(최남규 대표이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송진화 대표이사)의 5개 자회사로 구성돼 있다.
 
  각사를 총괄하는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전(全) 세계의 주요 광구를 탐사하고 석유와 LNG를 생산해 대한민국의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석유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꼽히는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사업과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도 이곳에서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중 매출이 가장 높은 SK에너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정유회사로 울산컴플렉스에서 생산한 다양한 석유제품을 국내외로 수출하고 있다. 울산컴플렉스는 하루에 84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휘발유·경유·등유·LPG 등을 생산한다. SK에너지의 매출은 29조496억원, 영업이익 1조3475억원(이하 2017년 기준)이었다.
 
  SK종합화학은 대한석유공사 시절 부터 국내 최초로 방향족 제조공장(1970년)과 납사분해시설(1972년)을 가동해 국내 석유화학 산업 발전의 기틀을 제공한 곳이다. 석유화학제품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과 일상용품, 가전, 섬유 산업의 원재료인 벤젠·톨루엔 등을 생산하고 있다. 매출 11조3727억원, 영업이익 9618억원을 기록했다. SK루브리컨츠는 최고급 윤활유를 생산하는 회사이자 고급 윤활기유 시장 글로벌 1위로, 러시아·중국·미국 등 약 60개국에 윤활유 완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매출 3조4494억원, 영업이익 5049억원을 기록했다.
 
  대한석유공사에서 시작해 국내 원유 공급과 에너지를 책임져 온 SK이노베이션은 숱한 실패와 역경을 딛고 오늘날 ▲정유 ▲석유화학 ▲전기차 배터리에 이르는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갖춘 에너지석유화학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매출의 70%는 여전히 정유 사업에서 나오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비(非) 정유회사들이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 2017년을 기준으로, 영업이익(3조2343억원)의 64%가 석유화학·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에서 나왔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석유기업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에는 비정유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있다. 환경변화의 영향이 큰 정유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차세대 먹거리인 배터리·화학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해 지속 성장이 가능한 구조로 바꾸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은 취임 후 배터리·화학 등 비정유 사업에 오는 2020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이라는 한 지붕 아래, 때로는 힘을 합치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따로 또 같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이들 회사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유공 인수 3년 만에 부채비율 1160%에서 391%로 떨어뜨려
 
고(故) 최종현 회장. 고 최종현 회장은 제1차 석유파동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돈독한 관계로 원유를 공급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2년 50주년을 맞았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 처음 에너지 회사를 세우고,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세계로 수출하게 된 건 이노베이션입니다. 그 이노베이션으로 미래에도 대한민국을 에너지 강국으로 만드는 것은 SK이노베이션입니다.”
 
  광고 카피 속에는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이 쏟아내야 했던 눈물과 가슴 벅찬 환희의 순간,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걸어온 5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역사는 55년 전, 고래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던 울산의 작은 어촌 장생포에 대한석유공사 정유공장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 개발을 위해 정부 주도하에 정유공장, 제철공장을 짓고, 고속도로를 깔아 산업 발전의 기반을 다지던 때였다. 산업의 동력인 석유제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국내 경기와 물가가 불안정했다. 고(故) 최종현 회장은 원유확보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중동 석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 고 최종현 회장은 ‘정유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오늘날 에쓰오일이 들어서 있는 울산의 정유공장 위치에 15만 배럴 규모의 정유공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갑자기 터진 제1차 석유파동으로 무기한 보류되고 말았다. 정유공장 설립이 어려워지자, 고 최종현 회장은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 눈을 돌렸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세심한 공을 들였고, 굴지의 석유상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란을 중심으로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아랍의 적대국인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이유로 한국에 석유를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돈독한 관계였던 고 최종현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종전대로 원유 전량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공급받게 됐다. 고 최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계속 무역거래를 하며 네트워크를 쌓아 갔고, 결국 1980년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회자되는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고 최종현 회장은 유공 대표이사를 직접 맡을 정도로 회사를 챙겼다. 유공 대표이사 취임식에서 비장한 결심까지 내비쳤다.
 
  “우선, 석유의 안정 공급을 위해 선경(現 SK)이 갖고 있는 힘을 다해 경영에 임하겠다. 둘째, 정부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의 인수조건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충실히 이행하겠다. 셋째, 이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유공 주식 전부를 정부에 반납하고 선경의 경영에서도 손을 뗄 각오다.”
 
  1982년 7월, 대한석유공사의 상호는 주식회사 유공으로 바뀌었다. 선경이 인수하기 전에 1160%였던 대한석유공사의 부채 비율은 3년 만인 1983년 391%로 개선됐다. 매출은 1조9676억원에서 2조725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적자였던 회사는 1983년 197억원의 흑자를 내며, ‘선경의 유공’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유전 없는 나라도 산유국 될 수 있다”(고 최종현 SK회장)
 
SK이노베이션의 첫 번째 석유자원개발 성공 기념 자리. 맨 오른쪽이 고 최종현 회장.
  고 최종현 회장의 꿈은 단순히 유공을 인수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회사의 미래를 단순한 석유 정제업이 아닌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정하고, 이를 위해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제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매년 원유를 수입하는 데 막대한 외화를 쓰고 있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상황에서 수입에만 의존하다 보니, 산유국이 유가를 올릴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고 최종현 회장은 석유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석유개발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석유가 채취될 만한 전 세계의 광구 개발에 직접 뛰어들어 기름을 확보하는 것이 석유개발 사업이다.
 
  1983년의 어느 날, 회의실로 회사 중역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 임원이 석유개발 사업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회장님, 원유개발은 성공 확률이 5%밖에 안 됩니다. 사업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유 개발이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중역들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고 최종현 회장이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석유를 개발해야 하는 것은 국가적 사명이야. 우리 경제 대동맥을 책임질 기름이 꼭 필요하네.”
 
  단호한 고 최종현 회장의 얘기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가 입버릇처럼 해 오던 말은 “유전이 없는 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였다. 이후 그는 사내에 해외자원개발 담당 부서인 자원개발실을 만들어 직접 챙기기에 이르렀다.
 
  고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SK이노베이션의 원유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1983년 4월, 유공은 미국의 코노코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석유개발에 나섰다. 성과는 없었다. 실패, 실패, 또 실패….
 
  그러던 1984년 7월의 어느 날, 고 최종현 선대회장 집무실로 김항덕 당시 유공 사장이 노크도 없이 불쑥 들이닥쳤다. 손을 벌벌 떨며 서류를 내밀었다.
 
  “회, 회장님 터졌습니다. 초, 초대형입니다!”
 
  “왜 그리 호들갑이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리프 제1유정에서 석유가 나왔습니다. 매장량이 3억~4억 배럴은 된다고 합니다.”
 
  “뭐라고, 억? 정말 억 단위야?”
 
  고 최종현 선대 회장이 벌떡 일어났다. 북예멘 마리브 유전에서 깊이 4000m를 예정하고 시추를 시작했는데, 2000m도 채 되지 않은 지점에서 석유가 나온 것이다. 예상보다 빠른 결과였다. 몇 달 뒤부터 마리브 유전에서는 매일 15만 배럴의 원유가 쏟아졌다. 그리고 1985년 1월 20일, 유공해운 소속 Y위너스호가 북예멘에서 35만 배럴을 싣고 울산항으로 들어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국가의 산유국 발돋움, SK가 꿈꾸던 일이 실현되는 날이었다. 이후 마리브 유전은 20년 동안 하루 10만 배럴의 원유를 뽑아 올리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개선과 석유자원의 장기적이며 안정적 공급에 기여를 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유전개발 사업에 투입되는 돈은 웬만한 기업 하나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제조업에 실패하면 공장 시설이라도 남지만, 유전 개발은 신기루처럼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라 기업인’이라던 고 최종현 회장의 의지를 꺾을 이는 없었다.
 
  “개발 사업은 본래 1, 2년 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경상이익금의 일정 부분을 무조건 석유개발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실패했다고 참여한 사람을 문책해서는 안 된다. 실패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1991년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서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중 일부)
 
 
  1991년 울산에 9개 공장 합동 준공… 석유화학 수직 계열화 마침표
 
SK이노베이션은 1991년 울산컴플렉스에 9개 공장을 합동 준공했다.
  원유 정제업에서 석유개발 사업까지 영역을 넓힌 유공(現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전문기업으로의 꿈을 착실히 키워 나갔다. 원유를 분해하는 과정에서는 ‘나프타’라는 것이 생산된다. 이 화학물질은 플라스틱·섬유·고무 등의 기초원료로 사용돼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유공은 원유에서 추출되는 이 원료를 활용하면 충분히 회사를 수직계열화해 석유화학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유공은 1984년 신규 방향족 공장 건설을 시작해 울산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본격적으로 석유화학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화학사업추진부’를 신설(1986년)하고 이듬해에는 석유화학의 핵심 사업인 에틸렌(나프타 등 석유 유분을 열분해해 얻어지는 가스)·폴리올레핀(고분자화합물)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유공은 또 미국의 아코화학(ARCO)과 50 대 50으로 합작투자 계약을 맺고 유공아코화학을 만들었다. 유공아코화학은 울산컴플렉스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설립해, 1991년부터 본격적인 화학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의 모태이다. SK이노베이션의 탄탄한 사업 포트폴리오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던 셈이다.
 
  1991년 6월 15일, 유공 울산컴플렉스.
 
  고 최종현 회장과 김항덕 유공사장 등 중역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9개 신규 공장의 합동 준공식이 열렸다. 이날 준공된 신규 공장은 제4정유시설, 신규 휘발유 제조시설, 제2에틸렌 생산시설 등 9개. 신규 공장 건설에 투입된 공사비만 총 1조5000억원, 건설 기간은 1년11개월~3년으로 예상됐다. 이로써 선경은 석유화학 산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유개발에서부터 합성고무·합성섬유 원료 등 석유화학제품(SK종합화학)에 이르는 전 계열의 완전 수직 계열화를 이루는 데 마침표를 찍었다. 선경의 역사만이 아니라, 한국 산업사에도 길이 남을 하나의 금자탑이었다.
 
 
  최고급 윤활유 ‘지크(ZIC)’ 출시해 시장 뒤집어
 
SK이노베이션의 고품질 윤활유 ‘지크(ZIC)’. 석유류 제품의 브랜드 시대를 여는 데 일조했다.
  선경그룹의 숙원 사업인 석유화학 수직 계열화가 가시화될 즈음, 그룹은 변하는 세계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1988년 출범한 6공화국은 북방 정책을 추진하며 여러 차례 중국에 러브콜을 보내던 즈음이다. 양국 간 대화 채널로 민간기업인 SK그룹이 뽑혔다. ㈜선경 채널로 한중 교섭이 활성화되며 베이징에 무역대표부가 설치됐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선경이 1991년 2월에 베이징 사무소를 열었다. 유공은 이미 5년 전에 이탈리아, 중국 회사와 손을 잡고 홍콩석유화학유한공사를 만들어 합작법인에서 폴리스티렌을 홍콩·중국·동남아시아 지역에 수출하고 있었다. 모그룹인 선경과 중국의 돈독한 관계로 유공 역시 1993년 8월에 베이징 지사를 설립하면서, 대(對) 중국 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게 됐다. 특히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시노펙과 유공이 공동연구협력 계약을 체결(1994년12월)한 것은 향후 중국 에너지 사업 진출의 작은 씨앗이 됐다.
 
  원유, 석유개발 사업, 석유화학, 중국 진출….
 
  하지만 유공의 꿈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는 오늘날 고(高)품질 윤활유 생산 전문업체이자 윤활유의 주원료인 고급 윤활기유 글로벌 1위 업체로 성장했다. 고품질·고부가가치 등 최고급 제품에 대한 욕심은 1990년대 중반에 벌써 시작됐다. 당시 유공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기술 개발은 울산연구소와 인천고분자연구소가 맡고 있었다. 유공의 첫 번째 고품질 제품은 선박용 엔진오일 ‘슈퍼마’였다. ‘슈퍼마’는 1986~1991년의 6년 연구 끝에 개발된 상품으로, 선박용 엔진오일이 갖춰야 할 기능이 극대화된 제품이었다. 세계적인 선박 엔진 제조회사인 독일의 만(Man B&W), 프랑스의 필스틱(Pielstic)사의 OEM 승인을 얻는 등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첨단 SH급 엔진오일인 하이플로골드(1993년)는 국내 최초로 ILSAC(국제윤활유규격승인위원회)의 스타버스트 마크를 동시에 획득했다. 선박용 기름으로 자신감을 얻은 유공은 윤활유를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울산과 인천 연구소의 기능을 통합한 대덕연구원이 1993년 8월에 준공해 첨단 제품 개발을 도맡았다.
 
  1995년 윤활유의 원료인 ‘윤활기유’의 기술 소유권을 갖게 된 유공은 이 기유(원유에서 증류해 분리·정제한 광유)를 ‘YUBASE’라고 이름지었다. ‘YUBASE’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후에는 오늘날까지 최고의 윤활유로 평가받는 ‘지크(ZIC)’ 개발로 이어졌다. 당시 윤활유 사업을 담당했던 고보상 전 화학사업부문장의 증언이다.
 
  “그때까지 엔진오일 시장은 가격 위주의 경쟁이었다. 인지도와 품질로 승부하여 시장 점유율과 이익을 동시에 높이려는 유공의 마케팅은 엔진오일 시장을 가격 위주에서 브랜드 위주로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브랜드는 21세기를 상징하는 ‘ZIC’로 정했다. ‘ZIC’는 출시 2~3년 만에 제 값을 받으면서, 시장 점유율이 35%에 달하면서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ZIC’의 원료인 ‘YUBASE’는 품질 규격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과 일본 시장에도 국내 최초로 진출했다. 네덜란드에 3만 배럴(1995년 12월), 일본에 7000배럴(1996년 1월)을 수출했다. ‘ZIC’와 같은 시기에 고청정 휘발유 ‘엔크린’도 국내 최초로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울산컴플렉스, 하루 81만 배럴 생산하는 세계 최대 정유공장으로
 
  유공은 1996년 9월에 울산컴플렉스 내 1만 평 부지에 제5석유정제 시설을 완공하고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이 시설로 울산컴플렉스의 원유정제 능력은 하루 81만 배럴로 늘어나 단일 공장 규모로 세계 최대의 정유공장으로 부상했다. ㈜유공의 사명은 1997년 SK주식회사로 바뀌었다.
 
  1998년 1월 5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고 최종현 회장을 비롯한 관계사 구성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新) CI 선포식이 열렸다. 이날 임직원들은 ‘우리의 다짐’을 통해 진정한 SUPEX 추구로 글로벌 시대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해 ‘고객이 OK 할 때까지, 세계가 OK 할 때까지’ SK라는 이름으로 21세기를 열어 나갈 것을 결의했다. 섬유 중심으로 성장한 ‘선경’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의 유망 사업인 에너지와 정보통신의 ‘SK’로 재구성했다. 그해 여름, 고 최종현 회장이 지병으로 작고를 한 뒤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대표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국내외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IMF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위기는 SK그룹에도 타격을 줬다. SK그룹은 주요 계열사 지분 해외 매각, 비핵심 자산 매각 추진 등으로 그룹 새판 짜기에 나섰다. 그 결과, SK주식회사는 미국 《포천》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신망받는 기업’(1998년 10월) 278개 중 하나로 선정됐고, 정유 부문에서 14위를 기록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과거 유공(현 SK주식회사)에 대한 열정은 최태원 회장이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2000년대 중반 고유가 문제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최대 변수로 지목되면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던 때였다.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최 회장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국가 경제안정을 위해 SK가 지난 20여 년간 추진해 온 해외 유전개발 사업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조직개편을 통해 해외석유개발 등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R&I 부문을 신설해 신규 광구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최태원 회장, 모두의 만류 뿌리치고 아마존 밀림 페루 현장 찾아가며 사업 의지
 
아마존 밀림에 있던 페루 카미시아 유전.
  북예멘 마리브에서부터 시작해 환희와 격정이 교차했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남미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개발권인 ‘페루 카미시아 유·가스전’과 브라질 BM-C-8광구에서 빛을 발했다.
 
  확인된 매장량만 가스 8조7000억 입방피트, 원유 20억5000만 배럴, 아마존 밀림, 해발 4700m가 넘는 안데스 산맥, 아마존 강….
 
  이 모든 단어가 남미 최대 천연가스 광구를 상징한다. 막대한 양의 가스와 원유가 있어 누구나 노리지만,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 곳. 송유관 공사를 하려면 아마존 밀림을 거쳐 해발 4700m가 넘는 안데스 산맥을 넘어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 장장 730km를 가야 하는 험난한 길, 그리고 물이 삽시간에 불어나는 아마존 강의 훼방은 덤인 곳. SK이노베이션이 이곳 개발권을 따내 송유관 공사를 벌였는데,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말이 무색지 않았다. 당시 리카르도 페레이 SK이노베이션 현지 지사장은 “송유관 공사에 1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투입됐고, 공사 도중 사망자가 발생했다. 카미시아 유전과 가스전 생산시설 완공은 죽음을 무릅쓴 난공사였다”고 회고했다.
 
SK 최태원 회장이 2007년 10월 초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페루 카미시아 유전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최태원 회장의 페루 LNG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2007년 10월에는 페루 현장으로 직접 날아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상황에 풍토병, 아마존 밀림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만류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아마존 밀림의 카미시아(88광구)를 직접 찾아 시추 현장을 둘러보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2010년 6월 10일, 마침내 페루 LNG공장이 준공됐다. 페루 LNG 생산기지는 88광구와 56광구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가스관을 통해 끌어와 액화천연가스로 가공해 북미로 수출하는 프로젝트다. 그간 단순 광구 개발에 그쳤던 기존 자원 개발 사업을 ‘광구 개발-생산-수송-제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로 완성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가스로 우리나라 소비자가 2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지구 정 반대 편에 있는 페루,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생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하는 이 나라를 SK이노베이션은 ‘제2의 울산공장’이라고 부른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08년에 인천석유화학을 인수해 아·태 지역에서 4번째로 큰 석유화학 회사로 거듭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전 세계 16개국 26개 광구의 4개 LNG프로젝트에서 자원을 개발 중이며, 약 5억 배럴의 보유 매장량과 일일 평균 6만5000배럴 규모의 생산량을 확보하고 있다.
 
 
  10년 투자의 결실, 2차전지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 공장에서 엔지니어가 생산된 배터리 셀을 들어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또 다른 변신을 선택했다. 기술 기반의 글로벌 종합에너지 기업 도약과 함께 4개 회사로 분할해 독자 경영을 하기로 했다. 4사 체제로 바꾼 뒤 맞이한 2012년 창립 50주년에서 SK이노베이션은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했다. SK이노베이션 상반기 매출의 70%를 수출로 벌어들인 것이다. SK에너지가 200억 달러, SK종합화학이 60억 달러, SK루브리컨츠가 10억 달러를 수출해 SK이노베이션 계열 4사가 총 270억 달러를 수출했다. SK에너지의 수출품 중 고청정 휘발유인 ‘엔크린’은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세계 10여개 산유국으로 역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SK루브리컨츠의 윤활기유는 세계 고급 윤활기유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윤활유 완제품 대표 브랜드인 ‘ZIC’는 혹한의 러시아부터 중동지역으로까지 수출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종합 에너지화학 그룹으로서의 지위를 느긋하게 느낄 법도 하거늘, SK이노베이션은 신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사실 회사가 정유업에만 치중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정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정유업계의 실적은 유가의 등락이 아니라, 수급 상황에 따른 정제 마진 개선에 영향을 받습니다. 정제 마진은 공장을 돌려 생산된 석유 또는 화학 제품의 가격과 원유나 컨덴세이트 등 원료의 도입 단가와의 차이입니다. 원유의 시세는 트레이딩 시장에서 결정됩니다. 두바이유 등 원료들은 매일 매일 수시로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원유를 사들이는 수요자 측에서 가격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또 생산된 제품의 판매 가격은 트레이딩 시장인 싱가포르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사실상 공급자는 가격 결정권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유회사들은 정제 마진을 개선해 회사 수익을 높이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SK이노베이션은 알파고의 대국 알고리즘 같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최적의 운영 방식을 정유, 화학 제품 생산에 적용한다. 이런 빅테이터 기반의 운영 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업 자체에서 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SK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눈을 돌린 곳은 전기자동차용(用) 배터리인 2차전지 사업이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의 말이다.
 
  “모바일 기기 수요가 늘면서 전력원인 리튬이온 2차전지의 수요가 함께 늘고 있던 때였습니다. 향후 하이브리드차에 리튬이온 2차전지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시장 규모가 급성장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회사가 보유한 폴리에틸렌 생산기술, 화학공정기술을 바탕으로 LiBS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상업화에 성공했습니다. 또 당시 SKC는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LiPB)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통합 개발이 효율적이라고 봐서, SKC, SK케미칼 등으로 분산돼 있던 2차전지 개발 조직을 SK이노베이션으로 통합시켰습니다.”
 
  — LG화학, 삼성SDI 등과 비교할 때 너무 늦게 출발한 것 아닙니까.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총괄한 뒤 2009년부터 상업화가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후발주자였지만 ‘선수주 후증설’이라는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독일의 다임러 그룹과 협력했고, 국내에서는 현대·기아차와 상호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맺었습니다.”
 
  — 경험도 없는 회사에서 수주부터 하는 것이 가능했습니까.
 
  “다임러 그룹 밑에 미쓰비시후소가 하이브리드 상용차를 개발 중이었는데 저희가 배터리 공급업체로 뽑혔습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상업화에 성공한 배터리 핵심 부품인 LiBS 제조 기술, 30년 이상 축적된 박막코팅 기술, 배터리팩 등 관련 기술을 높게 평가해 줬습니다.”
 
  그렇게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미쓰비시후소 하이브리드 트럭 ‘칸터 에코’가 세상에 처음으로 빛을 봤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사양 첫 전기 수퍼카 모델인 ‘SLS AMG E-CELL’의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업체로 공식 선정(2011년 1월)됐다.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9월, 충남 서산에 전기차 배터리 전용 공장을 지었다.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최태원 회장이 2차전지에 얼마나 관심이 지대한지를 알 수 있는 글귀가 있다.
 
  〈모든 자동차가 우리 밧데리로 달리는 그날까지, 휘발유를 대체하는 그 순간까지 SK밧데리TEAM은 계속 달립니다. 나도 같이 달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2012년 최태원)
 
  국내 최초의 정유사로 출발한 SK이노베이션은 오늘날 본업인 정유업을 넘어 석유화학, 윤활유를 비롯해 해외자원개발 사업, 전기차 배터리 및 소재 사업 등으로 그 영역을 무한대로 넓혀 가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하게 비즈니스 모델 바꾸자”(2016년, 최태원 회장)
 
SK이노베이션의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진두지휘 중인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최태원 회장은 2016년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경영 회의 자리에서 ‘딥 체인지(Deep Change)’라는 화두를 던졌다. 최 회장은 “과거 성공이나 관행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딥 체인지’는 기업의 사업구조 혁신을 넘어 조직과 문화, 자산구조 등 전반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변화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서든 데스(Sudden Death)’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SK그룹의 주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이 주문을 즉각 받아들였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딥 체인지를 ▲기존 사업의 차별적 경쟁력 확보 ▲지속 성장이 가능한 신사업 육성의 두 가지 방향으로 잡았다. 김 사장은 “잘하던 것은 훨씬 더 잘하고, 안 하던 것은 새롭게 잘하자”고 경영 방침을 정했다.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김준 사장이 꾀하는 혁신은 조직 내 자유로운 소통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는 ‘할 말 하는 문화’라고 정의했다. 쉬운 말인 듯 보이지만, 조직에서 ‘할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익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할 말을 하는 문화’가 있어야 구성원들로부터 혁신 DNA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0년까지 배터리, 화학 등 비정유 사업에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2024년까지 석유화학기업 글로벌 10위권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태원 회장이 재작년 ‘딥 체인지’ DNA를 설파한 때가 1.0 버전이었다면, 김준 사장이 올해 추진하는 ‘딥 체인지’는 2.0 버전이다. 석유사업 중심의 ‘잘하고 있는 것은 더 잘하고’, 비석유 에너지와 화학 중심의 ‘안 하던 것은 새롭게 잘하겠다’는 포부다.
 
  김 사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차세대 먹거리로 배터리·화학 분야에 대한 집중적 투자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을 지속 성장이 가능한 구조로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이 수익·재무 구조를 최적화하고 외생 변수를 줄이는 노력으로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선 지 3년이다. 이제 ‘딥 체인지 2.0’을 가속화해 ‘글로벌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혁신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2012년 제5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구성원들의 염원을 담은 타임캡슐 봉인식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SK이노베이션의 노조는 회사와 충돌하기 위한 소모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 2018년 임단협을 앞두고 국내 최초로 임금 인상률을 물가에 연동한 것과 기본급 1%를 행복나눔기금 형태로 사회적 상생에 기부하기로 한 것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SK이노베이션 노조는 임금협상을 단 일주일 만에 마무리지었다. 업계에서 본받아야 할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노사 관계 모델이다.
 
  이런 파격적인 결과물이 가능했던 것은 SK그룹을 이끌어 오는 ‘한솥밥 한식구 DNA’다. SK의 노사 문화는 재계에서도 유명한 ‘한솥밥 문화’다. 고 최종현 회장은 노사 간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식구끼리 싸우면 집안이 어떻게 되겠는가. 한 식구가 합심해 제품을 만들어 싸움은 밖에서 다른 경쟁업체와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SK이노베이션의 성공 키워드는 ‘도전’, ‘창의’ 그리고 ‘긍정’이다. 도전은 기업 성장의 숙명적 과제다. 과감한 도전 없이 행복한 성공도 없는 것이 SK이노베이션의 도전 정신이다. 하지만 무조건 도전만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창의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바로 ‘긍정’이다.
 
  반 세기를 넘나들며 기업이 겪는 성공과 실패, 환희와 눈물,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SK이노베이션에 꼭 어울리는 단어다. SK이노베이션이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 대한민국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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