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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소식

SK하이닉스는 어떻게 강한 회사로 거듭났나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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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전자·LG반도체·하이닉스반도체·SK 출신이 어우러져 ‘위기극복 DNA’ 가져
⊙ 위기 때마다 노사(勞使)가 뼈를 깎는 노력, 채권단은 그런 회사를 믿고 R&D에 투자
⊙ 최태원 회장이 직접 반도체 공부해 인수… 출범식 날 임직원들과 5시간 맥주 파티
⊙ 6조3000억원(2016년), 10조3000억원(2017년) 투자하며 회사 부가가치 높여
하늘에서 본 SK하이닉스 전경.
  한 사람의 인생이 평생 탄탄대로일 수는 없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순간도 있고, 사상 최대의 실적으로 훨훨 나는 순간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SK하이닉스는 요즘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에 이 회사는 주인이 없었고, 주인이 되겠다며 나서는 곳도 없는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회사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노사(勞使)는 서로 밥그릇을 챙기기보다 뼈를 깎는 고통을 나눠 가졌다. 워크아웃으로 채권단의 관리하에 있었지만, 채권단은 이 회사의 경쟁력을 믿고 기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가 외면하고 있을 때, 반도체를 해 본 적도 없는 재벌그룹 총수는 자신이 직접 회사의 업(業)인 반도체를 공부해 가며 회사를 인수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로 거듭난 SK하이닉스의 오늘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최근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8년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 순위에서 SK하이닉스가 1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6위에서 네 계단을 뛰어올랐고, 브랜드 가치는 2조680억원으로 추산됐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은 30조1000억원, 순익은 10조6000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보다 75%, 순익은 무려 260%가 올랐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60조원으로, 국내 시가총액 순위 2위다. SK하이닉스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것은 지난 35년간 치열했던 반도체 시장 환경에서 강한 정신력과 혁신을 내세운 임직원들의 ‘위기극복 DNA’ 덕분이었다.
 
 
  세계 최초로 256Mb SD램 개발
 
1999년 1월 6일 반도체빅딜 결과 긴급회견을 하는 현대전자 김영환 사장.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했다.
  SK하이닉스를 얘기할 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설명해야 한다. 초창기는 현대전자산업 시절이고, 두 번째는 주인 없이 채권단의 관리를 받던 시절이다. 세 번째는 2012년 SK그룹으로 편입돼 SK하이닉스라는 이름을 달게 된 시점이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은 1949년 10월15일에 만들어진 국도건설㈜이다. 이후 회사는 1983년 2월, 현대전자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는 이듬해인 1984년 12월에 국내 최초로 16Kb S램 시험생산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5년 첫 번째 반도체 조립공장이 준공됐다. 1989년에는 회사 창립 6년 만에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위권 안에 진입했다. 회사는 1990년대 초에 메모리 반도체의 맹주였던 일본의 업체와 공동 개발 협력을 맺을 정도로 커졌다. 약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반도체 산업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이뤄 낸 가치 있는 성과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회사의 상승세가 이어졌고,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Mb SD램 개발에 성공했다.
 
  회사의 운세가 처음으로 바뀐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재벌 그룹들의 중복 투자를 막겠다며 ‘빅딜(big deal)’을 주도했다. LG그룹은 눈물을 삼키며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겼다. 현대전자는 1999년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하고 반도체 전문 기업으로 변신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에 대한 재벌그룹의 관심은 컸다. 현대그룹을 이끌던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도 하이닉스에 대해 애착이 컸다. 당시 현대전자 관계자는 “LG반도체와 합병해 규모를 키웠고 삼성전자와 경쟁 구도에 들어갔다. 직원들이 삼성전자를 넘어 전(全)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겠다며 들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제대로 된 반도체 기업으로 크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 버렸다. 반도체 외부 환경이 문제였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 시장은 사상 최악의 불경기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하이닉스의 회사채 3년 만기가 2001년에 집중돼 있었다. 종합전자회사였던 현대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으로 회사의 체질을 바꾸기로 하고, 당시 운영하고 있던 메모리 반도체 이외의 사업부들을 모두 팔아 치우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했다. 2001년 3월에 회사 이름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꿨다. 나름 특별 조치를 취한 것이었지만, 하이닉스반도체는 과다한 금융비용으로 휘청거리다가 부도의 위기에 처했다. 결국 하이닉스는 2001년 10월에 외환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의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현대전자산업으로서 쉼 없이 달려온 지 18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워크아웃 중에도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
 
하이닉스살리기 범도민비상대책위원회는 2002년 4월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하이닉스 헐값매각 반대 및 독자생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내 최고의 브레인들이라는 현대, LG 출신들이 뒤섞여 근무하는 하이닉스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회사의 역사가 긴 것은 아니었지만, 최첨단 소재인 반도체를 개발하고 국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회사가 워크아웃기업이라니 말이다.
 
  자포자기할 법도 한데, 하이닉스는 이 정도로 기가 꺾이지 않았다. 은행들의 관리를 받게 된 하이닉스는 스스로 자구책(自救策)을 마련했다. 노사의 적극적인 협력 아래 임직원들은 임금을 동결했다. 서로 순환 휴직을 하며 회사의 비용 절감에 나섰다.
 
  부족한 투자 여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2003년 4월에는 ST마이크로사(社)와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이듬해 2월에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하이닉스는 D램에 한정돼 있던 사업 구조를 낸드플래시까지 확장했다. 노사의 합심(合心)은 눈부셨다. 하이닉스는 2005년 7월에 원래 계획보다 1년이나 앞당겨 채권단의 공동 관리를 조기 졸업했다. 2003년 3분기부터 2007년 3분기까지 연속 17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한 차례 위기를 극복한 SK하이닉스는 2006년 10월에 중국 우시에 생산법인을 만들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중국 생산법인 설립은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간 안고 있던 통상 문제까지 해결해 줬다. 더불어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 시장의 선점 효과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이닉스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반도체 업계에서 2007~2008년은 ‘암흑기’로 불린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D램 가격이 폭락하면서 경기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이닉스의 2007년 4분기 매출은 1조850억원, 영업적자는 3180억원을 기록했다. 하이닉스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앞만 보고 달렸지만, 외부 환경은 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이닉스를 지켜보는 채권단의 판단은 달랐다. 하이닉스 관계자들은 “이 고비만 넘기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채권단을 설득했다. 채권단은 이 얘기를 믿고 두 차례나 유상증자를 했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하이닉스의 연구개발비로 활용됐다. 2006년 매출 대비 5.3%에 불과했던 R&D 투자는 2008년 10.8%까지 높아졌다. 회사의 연구개발 인력이 전체의 20%에 달했다.
 
  하이닉스가 전 세계 불황에 정면 대응하며 차분히 기술력을 개발할 즈음에 반도체의 경기는 계속 나빠졌다. 반도체 공급 과잉에, 2008년 미국발(發) 금융 위기까지 덮쳤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 간에 ‘치킨 게임(극단적 경쟁으로 치닫는 경우)’이 계속됐다. 독일의 키몬다와 일본의 엘피다 같은 업체들이 줄도산했다.
 
  1980년대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총 41군데였다. 1990년대에 23개로 줄었고, 반도체 암흑기를 넘긴 2008년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과 2~3개의 군소(群小)업체만 남게 됐다.
 
 
  효성그룹, 특혜설로 인수 포기
 
  주인이 있는 회사로서도 버티기 어려운 두 차례의 위기를 넘긴 하이닉스였지만, 회사에는 여전히 주인이 없었다. 하이닉스를 관리하고 있던 채권단은 무려 42개 업체에 ‘하이닉스 인수 의향’을 물었다. 유일하게 답을 한 곳은 효성그룹이었다. 하지만 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입찰 제안서를 내자 일부에서 ‘대통령 사돈 기업이다, 특혜다’라며 욕했다. 결국 효성그룹은 인수를 포기했다. 당시 발표문은 이랬다.
 
  〈하이닉스는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반도체라는 국가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임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한국 기업이 없었다. 효성은 대승적 차원에서 하이닉스 인수를 검토했으나, 세간에 제기되는 특혜 시비로 인해 인수 추진이 어렵게 됐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특혜 시비가 불거지면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 우리는 하이닉스를 포기하지만, 하루빨리 산업자본이 이 회사를 인수하기를 바란다.〉
 
  효성그룹의 안타까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포기 선언서였다. 하이닉스 사람들도 좌절했다. 당시 하이닉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제안서를 낸 곳이 두 곳이라면 모를까, 딱 한 군데였는데 특혜라니 말이 되느냐. 이제 한국 기업 중에 하이닉스를 인수할 곳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반도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시절이었다. 반도체는 공장 하나를 짓는 데만 3조~4조원이 소요된다. 회사 오너 입장에서 부담이 여간 아니다. 이로써 수년을 끌어온 하이닉스의 ‘새 주인 찾기’는 불발로 끝났다.
 
  업계에서는 ‘돈이 많다’는 이유로 SK그룹을 주목했다. 그룹의 규모로 보나, 자금 여력으로 보나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의 적임자라는 것이 시장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SK그룹은 “종전의 SK그룹 포트폴리오와 사업 연관성이 없다”며 수차례 인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오너인 최태원 회장은 어느새 반도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최태원, 내부 반대 무릅쓰고 하이닉스 인수
 
SK그룹은 하이닉스를 인수한 이후 수조 단위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0년, 서울의 모처에 반도체 전문가들을 불러모았다. ‘스터디 모임’이었는데 반도체의 기본 원리는 물론 반도체 역사, 세계적인 기술 동향 등을 망라하는 모임이었다. 최 회장은 스터디를 하면서 반도체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기로 마음을 먹은 시점은 2011년 상반기다. 하지만 최 회장의 의중에 대해 SK그룹 경영진 중 일부는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SK그룹의 주력 사업인 에너지·화학과 ICT 업무현황이 안정적인 사이클을 보이는 것과 달리 반도체는 업무현황의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인수하는 데 수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SK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 인수를 반대한 경영진들과 수차례 토론과 회의를 거치면서 오히려 하이닉스 인수의 필요성을 다졌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신중하지만 일단 결단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하이닉스 인수전에도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사업보국’을 경영이념으로 삼았던 최종현 선대(先代) 회장의 DNA를 물려받은 최 회장은 반도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 국가 차원은 물론 SK그룹의 체질을 바꿔 놓았습니다.”
 
  실제로 그룹 내에서 SK의 하이닉스 인수는 단순한 M&A가 아니다. SK그룹의 사업 체질 자체를 글로벌화해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다. SK그룹의 주력사인 SK텔레콤은 2011년 7월 8일,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전격 제출했다. 이로써 그룹은 대한석유공사 인수(1980년)와 한국이동통신 인수(1994년)를 통해 성장 축을 확보한 것처럼 하이닉스를 인수해 에너지·화학과 ICT라는 양대 성장 축에 ‘반도체’라는 제3의 성장축을 더했다.
 
  SK 측의 인수 제안에 하이닉스도 우려보다는 환영을 표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의 말이다.
 
  “SK텔레콤이 인수를 시도했던 2011년은 주주협의회가 추진한 2차 매각이 불발되고 3차 매각을 시도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으나, 사업의 변동성과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으로 다수가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일부는 인수 의사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SK가 반도체 경험이 없음에도 ‘하이닉스반도체’의 미래 가치와 구성원들의 능력을 믿고 인수를 결정해 주어 우려보다는 든든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실제 국내 기업 중에 반도체에 대한 경험이 있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이에 당시 하이닉스가 절실히 필요했던 부분은 반도체에 대한 경험보다도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지속적 투자 의지였습니다.”
 
  SK와 하이닉스의 결합은 실로 탁월한 조합이었다. 하이닉스로서는 무엇보다 탄탄한 ‘자본’이 필요했고, SK그룹은 ‘기술’과 ‘글로벌’이라는 요소를 갖춘 회사가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절실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며 확보한 하이닉스의 글로벌 비즈니스 노하우와 전 세계 15개국 이상에 펼쳐진 하이닉스의 해외 사업망은 SK그룹의 ICT 융합 트렌드를 기반으로 글로벌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이닉스 출신이 여전히 CEO 맡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12년 2월, 중국 우시에 있는 하이닉스 공장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SK그룹
  지난 2012년 2월 14일, SK텔레콤은 하이닉스의 주식인수 대금 납입을 완료했다. 하이닉스가 SK그룹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최태원 회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이닉스를 챙기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의 얘기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으로 SK그룹의 문화가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경영진이 일관성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줬고요. SK그룹으로 편입된 지 6년이 지났지만, 과거 하이닉스반도체 출신이 CEO를 맡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례입니다. 최태원 회장은 인수 직후 SK하이닉스 주요 임원 50여 명과 1대1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임원별로 30분~한 시간씩 대화하며 일하면서 어려운 점, 원하는 점을 묻고 담당 업무의 문제점, 개선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또 인수 직후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을 방문해 임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SK그룹 노사는 한솥밥 문화에 바탕을 두고 성장해 왔다. 노사가 힘을 합쳐 하이닉스를 더욱 굳건한 토대 위에 올려놓자’며 격려하며 사기를 북돋웠습니다.”
 
  최 회장은 인수 초기에 하이닉스 이천과 청주 등 국내 공장을 6차례 찾았고, 중국 우시공장도 두 차례나 방문했다. 특히 출범식이 있었던 2012년 3월 26일 밤에는 이천 본사 앞에서 직원들과 5시간가량 ‘맥주 소통’에 나섰다. 하이닉스의 직원들은 적잖이 감동을 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240여 명의 직원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열었다. 직원들은 ‘회장님이 술자리에 잠깐 들러 얼굴만 비친 뒤 가실 줄 알았는데 끝까지 테이블을 돌면서 직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SK그룹, 인수 첫해부터 하이닉스에 ‘돈 폭탄’
 
SK하이닉스 72단 256Gb 3D 낸드 개발 주역들이 웨이퍼, 칩, 개발 중인 1TB(테라바이트) SSD를 들고 있다.
  모그룹이 된 SK는 하이닉스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회사 인수 첫해에 총 3조8500억원을 쏟아부었다. 전년보다 무려 10% 늘어난 수치였다. 2012년은 반도체 경기 하락으로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축소하는 상황이었지만, SK하이닉스는 오히려 전년보다 10%나 늘어난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또 같은 해 6월에 이탈리아의 아이디어플래시(현 SK하이닉스 유럽 기술센터)와 미국의 컨트롤러 업체인 LAMD(현 SK하이닉스 메모리솔루션센터)를 인수했다. 또 같은 달에 청주의 M12 공장 준공식을 갖고, 세계 최고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낸드플래시 생산 기지로 가동에 들어갔다. 기술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R&D 투자도 늘렸다.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전인 2011년 연간 연구개발비는 8340억원 정도였는데, 2013년 1조원을 넘었고 2016년에는 2조원을 돌파했다. 2013년에는 회사 내 최고 기술 전문가인 박성욱 연구개발총괄을 CEO로 선임해 기술 및 책임경영을 강화했다.
 
  SK와 하이닉스의 결합에는 운도 따랐다. 하이닉스는 2012년 2분기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2013년, 2014년, 2015년, 2017년 모두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밖에서 SK하이닉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SK그룹 편입 당시 2조3000억원 규모의 신주 발행 등을 통해 재무적 안정성이 확보됐고, S&P, 무디스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2012년도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는 전년보다 2배 가까운 인원이 지원했다. SK하이닉스로서는 믿을 수 없는 분위기가 이어진 것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의 말이다.
 
  “구직자들이 회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와 비전도 중요하지만, 기업 문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과거 하이닉스반도체 시절에는 향후 어떤 곳이 주인이 될지 알 수 없어서 늘 기업 문화가 고민이었습니다. 최근 신입사원들을 보면 반도체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SK그룹 문화’를 택했다는 비중이 늘고 있어요. 그룹에 편입된 첫해인 2012년에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전년보다 2배 넘는 인원이 지원한 것은 ‘SK그룹 효과’가 분명했습니다.”
 
  — 회사의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요.
 
  “SK하이닉스는 주인이 없음에도 노사가 화합했습니다. 생존 위기 속에서 기업 회생이라는 단일 목표만 보고 달려왔죠. 하지만 회사의 주인이 없어서 장기적으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가 없어 여러 번 기회를 놓친 것도 사실입니다. 회사의 지분을 언젠가는 매각해야 하는 채권단이 대주주로 있을 때와 확실한 주인이 있을 때 분위기는 판이합니다. 예전에는 주주협의회의 매각 과정이 길어지면서 임직원들이 ‘왜 하이닉스의 가치를 몰라 주느냐’고 답답해했습니다. 그런데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10년 만에 다시 4대 그룹의 일원이 된다는 것에 기대가 컸습니다. 무엇보다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 첫해에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은 오늘날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토대가 됐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요.
 
  “SK텔레콤은 3조3700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했는데, 이 중에서 1조300억원은 채권단이 보유했던 지분(구주) 인수에 사용했고, 2조3400억원의 신주를 발행해 신주 발행 금액이 회사의 자본금으로 유입되는 구조였습니다. SK하이닉스는 신주발행에 따라 확충된 자본금 2조3000억원을 ‘마중물’로 활용해 업계에서 유일하게 전년 대비 10% 늘어난 시설투자를 단행했죠. 미세공정 전환을 위한 장비 투자 확대 및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청주 M12 공장 준공 등을 이어 갔습니다. 불황기에도 미래를 대비한 선제 투자를 통해 2016년 한 해를 제외하고 2013~2017년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기록할 수 있는 토대가 됐습니다.”
 
 
  SK그룹의 최대 캐시카우로 성장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고 줄곧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2016년도에 한 차례 위기가 왔다. 2015년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하면서 그해 4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또다시 임직원들의 ‘위기극복 DNA’와 그룹의 든든한 지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룹은 밖에서 데려온 ‘양자’를 배 아파 낳은 자식과 똑같이 여겼다. SK하이닉스는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6조3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지속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선제 투자를 통해 기술 및 원가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겠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2016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 2조5000억원, 2분기 3조원, 3분기 3조7000억원, 4분기 4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제 SK하이닉스는 더는 밖에서 데려온 자식이 아니라, SK그룹 최대의 캐시 카우가 됐다.
 
  SK하이닉스는 이제 고(高)품질, 고사양의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과거 반도체 산업은 생산능력 확대와 생산원가 절감이 핵심 경쟁요소였다. 하지만 이제는 공정 미세화에 따른 기술 개발의 난이도 증가와 투자 규모, 이에 따른 투자 대비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사업 환경이 바뀌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1x나노급 제품(20나노급 D램보다 원가절감 효과가 크다)을 양산하고 있다. 또 앞으로 고성능 컴퓨터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HBM2(고대역 메모리) 제품을 지난해 4분기부터 판매하고 있다. 세계 최고 속도의 GDDR6 그래픽D램은 앞으로 인공지능, 가상현실,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성장 산업에 필수적인 메모리 솔루션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하이닉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0조3000억원을 투자했다. 오는 2018년 말까지 2조2000억원을 투자해 충북 청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지을 예정이고, 9500억원을 투입해 중국 우시 D램 공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변화하지 않는 기업의 돌연사를 경고하며 ‘딥체인지(Deep Change)’를 주문했다. SK하이닉스도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체질 개선을 통해 1등 정신을 강화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갖고 있다. 특히 일하는 방식과 역량 강화 측면에서 변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수차례 꺾일 위기에서, 어찌 보면 주저 않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대한민국 간판 회사로 거듭난 SK하이닉스의 DNA에서 우리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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