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기 개발은 장시간, 거액 투자해야 하고 수익 회수에도 10년 이상 걸려
⊙ 완제기 시장의 80%가 민간용… 일본·중국은 이미 앞서 나가
⊙ 두 번의 중형 항공기 개발 사업… 전문가 의견 무시하고 현실 고려 안 해 결국 실패
⊙ 20t·16인승 규모의 비즈니스 제트 항공기 개발하면 민수기 시장 진입 성공할 것
趙辰洙
⊙ 59세.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 미국 퍼듀대 항공공학 박사.
⊙ 한국항공우주학회 회장(전임),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기술원 이사, 한국항공우주산업 산학위원장,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이사, 대한민국 공군정책발전 자문위원,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
⊙ 완제기 시장의 80%가 민간용… 일본·중국은 이미 앞서 나가
⊙ 두 번의 중형 항공기 개발 사업… 전문가 의견 무시하고 현실 고려 안 해 결국 실패
⊙ 20t·16인승 규모의 비즈니스 제트 항공기 개발하면 민수기 시장 진입 성공할 것
趙辰洙
⊙ 59세.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 미국 퍼듀대 항공공학 박사.
⊙ 한국항공우주학회 회장(전임),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기술원 이사, 한국항공우주산업 산학위원장,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이사, 대한민국 공군정책발전 자문위원,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
미국 포드의 영국 법인에서 면허를 받아 ‘코티나’를 조립·생산하던 현대자동차는 1974년 10월 30일 개막된 제55회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자동차박람회에 ‘포니’ 시제품을 출품했다. ‘포니’는 당시 우리의 자동차 기술력이 열악해서 일본 미쓰비시 랜서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탈리아 디자인을 입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16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고유 모델’ 승용차를 갖게 된 것이다. 이어 1976년 2월 울산에서 첫 생산에 들어간 후 한국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국산 자동차 5대를 에콰도르에 수출했다. ‘포니’는 당시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던 C(Compact)-Segment에 도전한 소형 승용차로, 내수(內需)는 몰라도 한 대라도 수출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포니’ 탄생 이후
우리나라 언론은 신생마 ‘포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온 국민의 가슴엔 ‘과학입국’ 의지가 불타올랐으며 인재들이 자동차 업계로 몰려들었고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호 열풍이 불었다. 이어 후륜 구동이던 ‘포니’의 후속 전륜 구동인 ‘엑셀’이 개발되어 1985년에 사상 첫 미국 진출에 성공했고, 3년간 30만 대를 생산했다. 현재 현대자동차는 연간 420만 대 이상을 전 세계 공장에서 생산하는 세계 제5위의 자동차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전형적인 완제품 수입 → 정비산업 → 부분 조립 생산 → 완제품 면허 생산 → 독자개발 단계를 거쳐 발달했다. ‘포니’라는 우리 고유 모델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항공산업도 완제품 수입, 항공기들의 창정비(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사업을 거쳐 1970~80년대의 조립 생산(500MD 헬리콥터, 제공호 KF-5 전투기), 1990년대의 KF-16 면허 생산을 거쳤다. 한국 최초 ‘고유 모델’ 항공기인 KT-1은 터보프롭(가스터빈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하는 방식) 기본 훈련기로, 1988년에 개발이 결정돼 1996년에 시험비행을 성공한 후 1999년부터 양산했다.
2002년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초음속 고등 훈련기인 T-50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포니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록히드 마틴과 같은 외국 기술의 도움을 상당히 받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음속(亞音速) 비행기와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기술집약체인 초음속 고유 모델 항공기의 세계 12번째 생산국이 된 것이다. 1975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자주국방을 위해 우리도 80년대 중반엔 최신예 전투기를 생산할 것”이라고 선언한 지 37년, 1982년 최초의 국산 조립 전투기 ‘제공호’가 나온 지 30년 만이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항공산업은 자동차나 조선산업과 큰 차이점이 있다.
우선 항공기 개발에는 긴 기간과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가며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Long period, Large investment and late return). 예를 들어 1988년 대한민국 공군이 F-4 전투기의 대체 소요를 제기한 후 개발은 4년 뒤인 1992년에 시작됐고(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시험비행은 10년 뒤에야 성공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거금 2조1000억원 정도의 개발비가 들어갔다. 더디기로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일명 보라매 사업)가 더하다. 2002년 공군의 소요 제기 후 13년 만인 올해에서야 개발방식이 결정됐다. 8조7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하며 사업 시작 후 10년 정도 지나야 별도의 예산으로 공군의 전력화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파급효과 큰 항공산업
또한 항공기는 수십만 개(자동차는 수만 개) 이상의 부품으로 기종당 수백~수천 대(자동차는 수만~수십만 대)를 만드는 노동집약적 고부가가치 제조산업이다. 자동차처럼 자동라인으로 조립할 수 없고 전량 고급 기술인력이 조립, 제작해야 한다. 항공산업은 선진국들이 핵심(核心)기술 이전을 기피하며 철저한 성능 및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인증(Certification)’ 요구로 진입장벽을 높이 쌓아놓고 있기도 하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 KF-X도 중요 구성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기술이전 금지(Export License)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일반 소비자에게 팔리기 전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세계 각 정부는 저마다의 공업제품 인증 기준을 만들어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KS, 일본의 JIS, 미국의 UL, 독일의 DIN 등이다. 이런 인증 절차의 이면에는 타국 제품의 국내 진입을 억제하는 ‘자국 제품보호 효과’가 있다. 과거 금성전자 등 한국 회사들이 전기, 전자 제품들을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UL’을 획득했다고 큰 기사가 나곤 했다.
미국 보잉의 B777이나 유럽 에어버스사의 A380 같은 민항기는 수백 명의 승객을 동시에 태운다. 사고(事故) 시 엄청난 인명 손실을 동반하기 때문에 공산품 중에서 가장 엄격한 인증 기준을 적용한다. 그런데 민수기(民需機)의 경우 미국의 인증제도가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모든 민수기에 대한 ‘자격시험’으로 통한다. 모든 민항기는 미국 연방항공청(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의 연방항공법(FAR·Federal Aviation Regulation)에 의한 인증 절차를 통과해야 전 세계 공항에서 이착륙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수출도 할 수 있다. 한 기종을 개발해서 미국 FAA의 인증을 받으려면 5~10년의 기간과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그런데 항공산업을 제대로만 일으켜놓으면 수익은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 항공기는 보통 구입 후 30년 이상 사용하는데, 사용기간 동안 들어가는 총 수명주기비용(LCC·Life Cycle Cost)은 해당 항공기 판매가의 3~4배에 달한다. 즉 한번 항공기를 판매하면 거의 평생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항공산업은 정밀기계, 전자, 통신, 컴퓨터, 신소재, GPS 등 첨단산업을 요소기술로 하는 기술집약적 시스템 종합산업(System Integration Industry)으로, 21세기 첨단산업을 선도하며 타(他) 산업에 대한 연관효과와 기술의 파급효과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크다. 우리가 민수기 개발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첨단 기술보유국으로서의 국가위상 제고와 안보에 직결되는 자주국방 능력 보유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중추(中樞)산업이기도 하다.
한국 항공산업의 현주소
하지만 현재 우리의 능력으로는 항공산업을 선점하고 있는 선진국들과 경쟁하며 시장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항공기는 최소한 100대 이상의 수요를 확신할 수 있어야 개발을 검토할 수 있다. 게다가 자국의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한국과 이스라엘은 자국방위를 위해 군수기 관련 기술을 확보하면서 항공산업을 키워왔다.
우리보다 몇 수 우위의 항공 기술력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완성 군용기의 100% 생산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세계적 비즈니스 제트기 회사인 미국 걸프스트림의 G150, G280 기종을 OEM으로 생산, 누적 납품 대수가 수백 대를 넘고 있다. 한국은 기종당 100대 정도의 군(軍) 소요(내수) 덕분에 그나마 KT-1 터보프롭 기본 훈련기, T-50 계열(TA-50 전술 입문기 및 FA-50 경공격기 포함) 초음속 항공기, KUH 기동헬기와 같은 군용기 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이제 비즈니스 제트기나 중소형 제트 여객기와 같은 민수용 제트기 완성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본 체력은 갖춘 셈이다.
최근에는 KT-1(대당 가격 약 600만 달러)과 T-50 계열기(대당 가격 약 2500만 달러)의 수출도 달성했다(표1·2 참조). 일반적으로 군용기는 미국의 군사규격(MIL-SPEC)에 따라 개발·시험·생산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민수기와 달리 앞서 언급한 미국 FAA의 연방항공법에 따른 인증 절차를 밟지 않고도 수입국에서 성능만 인정하면 양국 협상으로 수출할 수 있다. 우리가 군용기 완성품을 수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의 항공산업 규모는 항공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걸음마 수준이다. 2013년 우리나라 항공산업 매출액은 27억 달러로 미국과 비교했을 때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매출액 구성을 살펴보면 군수 완제기가 37%를 차지한다. T-50, KT-1 등 군수기의 양산·수출로 인해 이런 수치를 달성한 것이다. 그 외는 항공 기체, 부품 등 초보적인 품목을 생산, 판매한다. 일부 보잉이나 에어버스 같은 대형기 회사에 구조물 등의 서브 시스템도 납품하고 있다.
국내 항공우주산업 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항상 적자를 기록해 왔다. 1990년대부터 20억 달러대를 유지하던 무역수지 적자폭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11년 사상 최대치인 35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21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그림1 참조). 이는 통계가 잘 잡히지 않는 군수기 수입액을 제외한 숫자다. 실제로는 적자폭이 더 크다.
현재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매출액 대비 세계 15위이다. 국내 유일의 완성기 체계 종합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세계 49위의 항공업체이다.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은 각각 17위와 35위를 차지하고 있다(표3·4 참조). 한국의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산업 등이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항공산업 수준은 너무 떨어져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한국의 항공산업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나날이 늘고 있는 세계 항공산업계에서 도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산 민간용 항공기를 본 적이 있는가?
2014년 전 세계 항공산업 시장 규모는 5500억 달러(약 600조원)이다. 그중 완제기 시장은 전체의 50%인 2700억 달러(약 300조원)이며 엔진 및 엔진MRO(정비)가 24.3%, MRO(엔진MRO 제외) 12.3% 그리고 항공기 부품이 14.5%를 차지하고 있다. 2700억 달러 규모의 전 세계 완제기 시장에서 군수기는 18%, 민간용 항공기는 약 82%를 차지하고 있다(그림2 참조). 즉 항공산업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군용기보다는 민간용 완제기 시장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반드시 한국이 시작해야 될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항공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아 신흥공업국이 민간용 완제기 사업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연방항공법(FAR)에 의한 인증 절차 제도 중에 ‘FAR Part 25’(돈을 받고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민항기급)가 있는데, 한국에서 민간용 제트 여객기를 개발해도 FAR Part 25급 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수출할 수 있다. 즉 미 연방항공청의 FAR에 의한 인증을 받지 못한 민간용 항공기를 도입할 나라가 지구상에는 거의 없다.
이런 사례가 있다. 스페인과 인도네시아가 합작해 터보프롭 군용 수송기인 CN-235를 개발한 적이 있는데 스페인은 CN-235를 여객기로 개조해 미국 연방항공청의 FAR Part 25급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FAA로부터 인증을 획득하지 못해 민간 항공기로 수출할 길이 막혀버렸다. 우리 군도 사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산(産) CN-235는 군용 수송기로만 도입한 것이다. 물론 미국 FAA의 인증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생산국 내에서는 판매, 운영할 수 있다. 하나 이는 중국처럼 넓고 국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전 세계 모든 민간용 항공기 개발사들은 신규 항공기 개발 시 5~10년간 인증 절차를 진행한다. 인증 경험이 많은 개발사는 5년 이내에 인증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재로서는 항공 선진국들만 수익을 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필자를 비롯한 국내 항공 전문가들은 2007년 국토교통부로부터 민간 항공기 관련 용역을 받아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민간용 완제기 시장 진입을 위한 첫 단추로 일본의 ‘혼다제트’와 같은 초경량제트기(VLJ·Very Light Jet)로 미국의 ‘FAR Part 23’ 인증을 먼저 받고 이를 발판으로 민간용 제트 여객기 카테고리인 ‘FAR Part 25’로 연결해 민간용 완제기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예산상의 문제로 4인승 자가용급 가솔린 엔진 프로펠러기(KC-100)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펠러기를 통해 미국 FAA와 우리나라 정부 간 FAR Part 23급 상호항공안전협정(BASA·Bilateral Aviation Safety Agreement)을 체결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이다.
KAI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KC-100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마침내 개발에 성공, 국토교통부의 감항인증(비행기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다는 증명)을 받았다. KC-100 군용을 개조해 공군 비행실습용 훈련기로 23대를 납품할 예정이다. 조만간 미국 연방항공청으로부터 FAR Part 23급 인증서도 받는다. 이는 BASA 체결로 이어져 우리나라가 Part 23급의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고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KC-100은 동급의 외국 항공기보다 비싸 민간용으로 국내외 판로를 찾기가 어렵다. KC-100 같은 프로펠러 자가용 비행기는 외국의 경우 개인 사업자들(소규모 비행기 제조업체)이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나 KAI와 같은 완제기 업체가 나서서 할 사업은 아니다. 외국 제품의 경우 대당 가격도 수억 원에 불과하다. 우리로서는 KC-100과 같은 프로펠러기로는 기술, 산업적 파급 효과도 적고 고용창출도 기대하기 어렵다.
1994년 우리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총 2790억원을 투자해 50인승~100인승 규모의 터보팬 중형 제트 여객기인 K-100을 개발하기로 하고 항우연과 항공 관련 업계(삼성항공 주관으로 대우중공업·대한항공·한라중공업 등 13개 업체, 1999년 정부는 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을 합병해 항공 통합법인 KAI 설립) 공동으로 한국 중형 항공기 사업조합(KCDC·Korea Commercial Aircraft Development Consortium)을 설립했다.
두 번의 중형 항공기 개발 사업 실패 경험
항우연은 설계검증, 시험평가, 인증, 사업관리를 담당하고 KCDC는 최종조립 및 부품·소재를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중국과 합작하는 방향으로 가다가 최종 조립장 위치 문제, 중국 측의 한국의 참여지분 축소 요구로 1996년 협상이 파기됐다. 이후 유럽과 이스라엘 업체들과 인수, 합작을 타진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사업 추진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되자 1999년 사업은 종결됐다.
약 10년 후 2010년 상반기에 정부(산업부)는 ‘차세대 중형 항공기’ 사업의 예산타당성 검토를 통과시키고 1조1000억원(정부 7700억원·민간 3300억원) 예산으로 100석급 이하의 중형 항공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부 주도 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항우연을 중심으로 KAI와 대한항공을 참여시켜 ‘차세대 중형 항공기 사업단’을 꾸렸다.
그런데 국내 항공 전문가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사업단과 정부는 용역을 준 외국 항공조사 전문업체의 보고서를 근거로 국내 수요(내수)조차도 전혀 없는 90인승 터보프롭 여객기 개발이 ‘틈새시장’으로 ‘블루오션’에 진입하는 길이라고 단정하고 탐색 개발을 시작했다. 민간용 완제기의 경우, 개발 사양 중 터보팬이냐 터보프롭이냐 하는 항공기 추진 방식과 항공기의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항공기의 성능, 개발비, 정비, 운용, 시장 등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당시 정부는 유럽 에어버스의 모회사였던 EADS와 협상에 들어갔다. 진척이 없자 이번에는 캐나다의 B사(社)와 접촉, 정부 주도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종 협상 과정에서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그 후 새로운 파트너로 브라질의 E사, 유럽의 F사, R사 등과 협상을 벌였으나 모두 무산됐다. 해외업체는 기술 이전 및 판로 개척이 불투명한 비행기 개발에 대한 투자 및 협력을 거부한 것이다. 결국 2013년 예산 302억원 중 88%가 불용(不用)처리됐고 이듬해 과제는 소멸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거대한 민간용 완제기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친 셈이다. 이 두 번의 개발 실패에 대해 어떤 이는 직접 개발비를 투입한 것도 아니고, 사용하지 못한 예산은 국고로 환수됐기 때문에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은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쓸 기회를 놓치고 특히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민간 항공기 개발 시점을 놓쳐 결과적으로 항공 선진국들과의 기술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국이 소위 ‘중형 항공기 개발 사업’을 위해 25년간 외국 정부·업체들과 협상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던 동안 일본과 중국은 90인승급 중형 제트 여객기를 개발해 현재 상용화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중국은 블루오션 항해 준비 완료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항공 강국의 면모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 직접 제작한 전투기, 폭격기, 수송기들이 전장(戰場)에서 맹활약했다. 패망한 일본은 항공산업의 불씨를 살리려고 각종 군용기의 원 제작사였던 미쓰비시중공업을 앞세워 1962년 YS-11이라는 60인승 터보프롭 여객기를 개발했다. YS-11 항공기는 성능이 우수한 지역 간 여객기(Regional Airliner)로 평가됐지만 182대만 생산하고 수익성이 악화돼 생산을 중단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50년이 지난 2014년 10월 18일, 일본 최초의 제트여객기인 ‘미쓰비시 리저널 제트(MRJ)’를 선보였다. 현재 일본 항공사인 ANA와 JAL뿐만 아니라 미국과 미얀마 등 6개 항공사로부터 400대 이상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황이다. 이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주문량이다. 일본 국내 항공사들은 내년 봄 시험비행이 끝나면 준비기간을 거친 후 2017년부터 MRJ를 본격 운항할 예정이다. 2018년까지 판매 대수를 1000대로 늘려 2020년대 세계 중소형 제트 여객기 시장의 50%를 차지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1948년 자전거에 엔진을 단 오토바이 제조업체로 출발한 혼다는 자동차 사업 성공을 바탕으로 항공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민간 항공기 중 스포츠카라고 불리는 소형 자가용 비즈니스 제트기인 ‘혼다제트’ 개발 사업을 1986년 기획한 후 약 30년 만에 상업화에 성공했다. 2014년 7월 미국 위스콘신주(州)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혼다 비즈니스 제트기 1호기를 공개했다. 혼다제트는 2개의 소형 엔진이 날개 위에 장착된 초고속, 초경량 개인 제트기이다. 혼다제트는 기체를 탄소섬유로 만들어 경쟁기종보다 연비 효율이 10% 이상 높으며, 최고 속도는 동급 항공기 가운데 가장 빠른 420노트(시속 770Km)다. VLJ급에 보기 드문 화장실을 갖춘 7인승 혼다제트의 대당 가격은 약 50억원이다. 이미 100대 이상을 수주했다.
중국의 항공산업도 일본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폭발적인 자국 내 수요 증가가 항공기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중국 항공기 제작업체인 코맥(CO MAC)은 국내 운항을 목표로 하는 제트 여객기인 ARJ 양산에 돌입했다. 첫 운항은 중국 항공사 청두항공이 기록할 예정이다. 최근 완성기 1호기를 인도받아 상업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 항공사들이 ARJ를 구입하면서 계약 대수는 이미 300대를 돌파했다. 현재 미국의 FAR Part 25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항공청과 유럽항공안전기구(EASA)로부터 2017년까지 인증을 받는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물론 자국 내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작년 말 미국에 사상 처음으로 소형 민수 완제기인 19인승 터보프롭 Y-12F(대당 200만 달러) 20대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항공기 제작업체 코맥은 조만간 세계 3위 민항기 제조업체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민간용 제트 완제기 사업, 시작이 반이다
지난달 17일 국내 언론은 일제히 ‘대한항공 국내 항공 사상 최대인 13조원 규모의 제트 여객기 100대 신규 도입’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내용인즉 대한항공이 파리 에어쇼 기간에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사로부터 중·단거리 기종인 보잉 B737맥스-8 기종 50대(확정 구매 30대·옵션 구매 20대)와 에어버스 A321네오 50대(확정 구매 30대·옵션 구매 20대) 등 차세대 제트 여객기 총 100대를 오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민간용 완제기를 단 한 대도 수출 못 하는 한국으로 볼 때 13조원이라는 금액만큼 고스란히 무역수지 적자로 남게 된다. 항공 전문가로서 이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제주항공, 티웨이, 이스타, 진에어, 부산에어 등 국적 저비용항공사들이 도입하게 될 제트 여객기들의 가격을 합치게 되면 수십조 원의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할 것이다. 한국이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써온 ‘수입대체’ 전략은 민간 항공기 분야에선 무용지물인 것 같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우리 고유 모델의 민간용 제트 완제기 개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자체 기술로 초음속 비행기를 개발한 세계 12번째 국가이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5위를 차지하는 기술력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첨단 항공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인 항공전자(Avionics)의 기반이 되는 ICT 분야도 세계적 수준이다. 이러한 한국의 경험과 강점을 항공산업에 적극 활용, 민간용 제트 여객기를 개발해 수입대체는 물론 외화벌이 효자 품목으로 만들어야 한다. 막대한 개발비가 들어가므로 항공기 인증-국토교통부, 요소기술-미래부, 부품산업-산업부, 파생형 군수기-국방부 등의 다(多)부처 공동사업으로 수행해 민수기 개발 노하우 및 인증 획득 노하우를 쌓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고유 모델의 민간 항공기를 개발해 세계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FAR Part 25급의 인증 획득이 필수적이다. 우선 기종을 잘 선택해야 한다. 항공기 추진 방식, 크기도 중요하고 현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의 수준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술적,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파급효과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항공기 개발과 인증 비용은 대상 항공기 크기의 몇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70~80인승 이상 크기의 항공기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시작하는 단계에선 리스크가 너무 크다. 특히 최근 실패한 ‘차세대 중형 항공기’ 사업처럼 틈새시장론을 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t 내외, 16인승 규모의 비즈니스 제트 클래스의 항공기를 선택하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의 주력 상품인 T-50 계열 항공기의 기술력에 가장 가깝고 군(정찰기·지휘기 및 초계기 등), 관(감시·의료·긴급 용도기 등) 및 민간(그룹 전용기 및 국내/동남아 기반 전세기 등) 부문에서의 내수를 상당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요도 많고 경쟁도 치열한 기종이지만 수입대체로 내수를 확보하며 서서히 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술·가격 경쟁력을 차근차근 확보해 나갈 수 있다.
한국카본 등 중견기업 중심의 컨소시엄도 고려해야
외국 선진 협력사의 선정과 참여기업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대부분 항공 관련 국책사업에는 KAI나 대한항공과 같은 대기업이 경쟁을 벌여왔다. 대한항공은 KF-X 경쟁에서 탈락한 후 MRO 사업에 전념하고 있고 한국의 유일한 완성기 업체인 KAI는 KF-X 및 LCH/LAH(소형민수헬기 및 소형무장헬기 사업)에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KAI가 민간용 제트 완제기 사업을 추진할 시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최근 항공 부문의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카본’ 같은 중견기업들을 주축으로 컨소시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우리와 같이 공동 개발할 선진 외국 업체는 해당 기종을 전문적으로 설계, 개발한 경험이 많고 우리의 약한 부분을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개발비를 우리가 대고 기술투자만 하겠다는 외국 업체는 배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가격의 4분의 1은 엔진이 차지한다. 아쉽게도 우리 영공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여객기, 전투기, 헬리콥터들은 100% 외국산 제트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엔진은 항공기 구성품 중 가장 많은 소모성 부품을 사용하므로 수명주기비용(LCC)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엔진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제어기술과 터빈 블레이드 제조 및 재료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일본은 Honda-Jet, MRJ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제트엔진도 개발하고 있다. 한국도 KF-X 사업이나 민수 제트 완제기 사업을 시작할 경우 제트엔진 국산화(國産化)도 반드시 같이 추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지난 두 번의 중형 항공기 개발 실패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철저한 기획과 준비로 국산 민간용 제트 완제기 개발 사업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포니’ 탄생 이후
우리나라 언론은 신생마 ‘포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온 국민의 가슴엔 ‘과학입국’ 의지가 불타올랐으며 인재들이 자동차 업계로 몰려들었고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호 열풍이 불었다. 이어 후륜 구동이던 ‘포니’의 후속 전륜 구동인 ‘엑셀’이 개발되어 1985년에 사상 첫 미국 진출에 성공했고, 3년간 30만 대를 생산했다. 현재 현대자동차는 연간 420만 대 이상을 전 세계 공장에서 생산하는 세계 제5위의 자동차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전형적인 완제품 수입 → 정비산업 → 부분 조립 생산 → 완제품 면허 생산 → 독자개발 단계를 거쳐 발달했다. ‘포니’라는 우리 고유 모델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항공산업도 완제품 수입, 항공기들의 창정비(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사업을 거쳐 1970~80년대의 조립 생산(500MD 헬리콥터, 제공호 KF-5 전투기), 1990년대의 KF-16 면허 생산을 거쳤다. 한국 최초 ‘고유 모델’ 항공기인 KT-1은 터보프롭(가스터빈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하는 방식) 기본 훈련기로, 1988년에 개발이 결정돼 1996년에 시험비행을 성공한 후 1999년부터 양산했다.
2002년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초음속 고등 훈련기인 T-50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포니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록히드 마틴과 같은 외국 기술의 도움을 상당히 받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음속(亞音速) 비행기와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기술집약체인 초음속 고유 모델 항공기의 세계 12번째 생산국이 된 것이다. 1975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자주국방을 위해 우리도 80년대 중반엔 최신예 전투기를 생산할 것”이라고 선언한 지 37년, 1982년 최초의 국산 조립 전투기 ‘제공호’가 나온 지 30년 만이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항공산업은 자동차나 조선산업과 큰 차이점이 있다.
우선 항공기 개발에는 긴 기간과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가며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Long period, Large investment and late return). 예를 들어 1988년 대한민국 공군이 F-4 전투기의 대체 소요를 제기한 후 개발은 4년 뒤인 1992년에 시작됐고(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시험비행은 10년 뒤에야 성공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거금 2조1000억원 정도의 개발비가 들어갔다. 더디기로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일명 보라매 사업)가 더하다. 2002년 공군의 소요 제기 후 13년 만인 올해에서야 개발방식이 결정됐다. 8조7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하며 사업 시작 후 10년 정도 지나야 별도의 예산으로 공군의 전력화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파급효과 큰 항공산업
또한 항공기는 수십만 개(자동차는 수만 개) 이상의 부품으로 기종당 수백~수천 대(자동차는 수만~수십만 대)를 만드는 노동집약적 고부가가치 제조산업이다. 자동차처럼 자동라인으로 조립할 수 없고 전량 고급 기술인력이 조립, 제작해야 한다. 항공산업은 선진국들이 핵심(核心)기술 이전을 기피하며 철저한 성능 및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인증(Certification)’ 요구로 진입장벽을 높이 쌓아놓고 있기도 하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 KF-X도 중요 구성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기술이전 금지(Export License)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일반 소비자에게 팔리기 전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세계 각 정부는 저마다의 공업제품 인증 기준을 만들어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KS, 일본의 JIS, 미국의 UL, 독일의 DIN 등이다. 이런 인증 절차의 이면에는 타국 제품의 국내 진입을 억제하는 ‘자국 제품보호 효과’가 있다. 과거 금성전자 등 한국 회사들이 전기, 전자 제품들을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UL’을 획득했다고 큰 기사가 나곤 했다.
미국 보잉의 B777이나 유럽 에어버스사의 A380 같은 민항기는 수백 명의 승객을 동시에 태운다. 사고(事故) 시 엄청난 인명 손실을 동반하기 때문에 공산품 중에서 가장 엄격한 인증 기준을 적용한다. 그런데 민수기(民需機)의 경우 미국의 인증제도가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모든 민수기에 대한 ‘자격시험’으로 통한다. 모든 민항기는 미국 연방항공청(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의 연방항공법(FAR·Federal Aviation Regulation)에 의한 인증 절차를 통과해야 전 세계 공항에서 이착륙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수출도 할 수 있다. 한 기종을 개발해서 미국 FAA의 인증을 받으려면 5~10년의 기간과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그런데 항공산업을 제대로만 일으켜놓으면 수익은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 항공기는 보통 구입 후 30년 이상 사용하는데, 사용기간 동안 들어가는 총 수명주기비용(LCC·Life Cycle Cost)은 해당 항공기 판매가의 3~4배에 달한다. 즉 한번 항공기를 판매하면 거의 평생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항공산업은 정밀기계, 전자, 통신, 컴퓨터, 신소재, GPS 등 첨단산업을 요소기술로 하는 기술집약적 시스템 종합산업(System Integration Industry)으로, 21세기 첨단산업을 선도하며 타(他) 산업에 대한 연관효과와 기술의 파급효과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크다. 우리가 민수기 개발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첨단 기술보유국으로서의 국가위상 제고와 안보에 직결되는 자주국방 능력 보유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중추(中樞)산업이기도 하다.
한국 항공산업의 현주소
하지만 현재 우리의 능력으로는 항공산업을 선점하고 있는 선진국들과 경쟁하며 시장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항공기는 최소한 100대 이상의 수요를 확신할 수 있어야 개발을 검토할 수 있다. 게다가 자국의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한국과 이스라엘은 자국방위를 위해 군수기 관련 기술을 확보하면서 항공산업을 키워왔다.
우리보다 몇 수 우위의 항공 기술력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완성 군용기의 100% 생산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세계적 비즈니스 제트기 회사인 미국 걸프스트림의 G150, G280 기종을 OEM으로 생산, 누적 납품 대수가 수백 대를 넘고 있다. 한국은 기종당 100대 정도의 군(軍) 소요(내수) 덕분에 그나마 KT-1 터보프롭 기본 훈련기, T-50 계열(TA-50 전술 입문기 및 FA-50 경공격기 포함) 초음속 항공기, KUH 기동헬기와 같은 군용기 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이제 비즈니스 제트기나 중소형 제트 여객기와 같은 민수용 제트기 완성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본 체력은 갖춘 셈이다.
최근에는 KT-1(대당 가격 약 600만 달러)과 T-50 계열기(대당 가격 약 2500만 달러)의 수출도 달성했다(표1·2 참조). 일반적으로 군용기는 미국의 군사규격(MIL-SPEC)에 따라 개발·시험·생산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민수기와 달리 앞서 언급한 미국 FAA의 연방항공법에 따른 인증 절차를 밟지 않고도 수입국에서 성능만 인정하면 양국 협상으로 수출할 수 있다. 우리가 군용기 완성품을 수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의 항공산업 규모는 항공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걸음마 수준이다. 2013년 우리나라 항공산업 매출액은 27억 달러로 미국과 비교했을 때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매출액 구성을 살펴보면 군수 완제기가 37%를 차지한다. T-50, KT-1 등 군수기의 양산·수출로 인해 이런 수치를 달성한 것이다. 그 외는 항공 기체, 부품 등 초보적인 품목을 생산, 판매한다. 일부 보잉이나 에어버스 같은 대형기 회사에 구조물 등의 서브 시스템도 납품하고 있다.
국내 항공우주산업 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항상 적자를 기록해 왔다. 1990년대부터 20억 달러대를 유지하던 무역수지 적자폭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11년 사상 최대치인 35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21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그림1 참조). 이는 통계가 잘 잡히지 않는 군수기 수입액을 제외한 숫자다. 실제로는 적자폭이 더 크다.
현재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매출액 대비 세계 15위이다. 국내 유일의 완성기 체계 종합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세계 49위의 항공업체이다.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은 각각 17위와 35위를 차지하고 있다(표3·4 참조). 한국의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산업 등이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항공산업 수준은 너무 떨어져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한국의 항공산업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나날이 늘고 있는 세계 항공산업계에서 도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산 민간용 항공기를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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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KAI의 4인승 프로펠러기 KC-100. |
반드시 한국이 시작해야 될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항공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아 신흥공업국이 민간용 완제기 사업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연방항공법(FAR)에 의한 인증 절차 제도 중에 ‘FAR Part 25’(돈을 받고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민항기급)가 있는데, 한국에서 민간용 제트 여객기를 개발해도 FAR Part 25급 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수출할 수 있다. 즉 미 연방항공청의 FAR에 의한 인증을 받지 못한 민간용 항공기를 도입할 나라가 지구상에는 거의 없다.
이런 사례가 있다. 스페인과 인도네시아가 합작해 터보프롭 군용 수송기인 CN-235를 개발한 적이 있는데 스페인은 CN-235를 여객기로 개조해 미국 연방항공청의 FAR Part 25급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FAA로부터 인증을 획득하지 못해 민간 항공기로 수출할 길이 막혀버렸다. 우리 군도 사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산(産) CN-235는 군용 수송기로만 도입한 것이다. 물론 미국 FAA의 인증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생산국 내에서는 판매, 운영할 수 있다. 하나 이는 중국처럼 넓고 국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전 세계 모든 민간용 항공기 개발사들은 신규 항공기 개발 시 5~10년간 인증 절차를 진행한다. 인증 경험이 많은 개발사는 5년 이내에 인증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재로서는 항공 선진국들만 수익을 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필자를 비롯한 국내 항공 전문가들은 2007년 국토교통부로부터 민간 항공기 관련 용역을 받아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민간용 완제기 시장 진입을 위한 첫 단추로 일본의 ‘혼다제트’와 같은 초경량제트기(VLJ·Very Light Jet)로 미국의 ‘FAR Part 23’ 인증을 먼저 받고 이를 발판으로 민간용 제트 여객기 카테고리인 ‘FAR Part 25’로 연결해 민간용 완제기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예산상의 문제로 4인승 자가용급 가솔린 엔진 프로펠러기(KC-100)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펠러기를 통해 미국 FAA와 우리나라 정부 간 FAR Part 23급 상호항공안전협정(BASA·Bilateral Aviation Safety Agreement)을 체결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이다.
KAI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KC-100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마침내 개발에 성공, 국토교통부의 감항인증(비행기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다는 증명)을 받았다. KC-100 군용을 개조해 공군 비행실습용 훈련기로 23대를 납품할 예정이다. 조만간 미국 연방항공청으로부터 FAR Part 23급 인증서도 받는다. 이는 BASA 체결로 이어져 우리나라가 Part 23급의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고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KC-100은 동급의 외국 항공기보다 비싸 민간용으로 국내외 판로를 찾기가 어렵다. KC-100 같은 프로펠러 자가용 비행기는 외국의 경우 개인 사업자들(소규모 비행기 제조업체)이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나 KAI와 같은 완제기 업체가 나서서 할 사업은 아니다. 외국 제품의 경우 대당 가격도 수억 원에 불과하다. 우리로서는 KC-100과 같은 프로펠러기로는 기술, 산업적 파급 효과도 적고 고용창출도 기대하기 어렵다.
1994년 우리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총 2790억원을 투자해 50인승~100인승 규모의 터보팬 중형 제트 여객기인 K-100을 개발하기로 하고 항우연과 항공 관련 업계(삼성항공 주관으로 대우중공업·대한항공·한라중공업 등 13개 업체, 1999년 정부는 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을 합병해 항공 통합법인 KAI 설립) 공동으로 한국 중형 항공기 사업조합(KCDC·Korea Commercial Aircraft Development Consortium)을 설립했다.
두 번의 중형 항공기 개발 사업 실패 경험
항우연은 설계검증, 시험평가, 인증, 사업관리를 담당하고 KCDC는 최종조립 및 부품·소재를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중국과 합작하는 방향으로 가다가 최종 조립장 위치 문제, 중국 측의 한국의 참여지분 축소 요구로 1996년 협상이 파기됐다. 이후 유럽과 이스라엘 업체들과 인수, 합작을 타진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사업 추진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되자 1999년 사업은 종결됐다.
약 10년 후 2010년 상반기에 정부(산업부)는 ‘차세대 중형 항공기’ 사업의 예산타당성 검토를 통과시키고 1조1000억원(정부 7700억원·민간 3300억원) 예산으로 100석급 이하의 중형 항공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부 주도 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항우연을 중심으로 KAI와 대한항공을 참여시켜 ‘차세대 중형 항공기 사업단’을 꾸렸다.
그런데 국내 항공 전문가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사업단과 정부는 용역을 준 외국 항공조사 전문업체의 보고서를 근거로 국내 수요(내수)조차도 전혀 없는 90인승 터보프롭 여객기 개발이 ‘틈새시장’으로 ‘블루오션’에 진입하는 길이라고 단정하고 탐색 개발을 시작했다. 민간용 완제기의 경우, 개발 사양 중 터보팬이냐 터보프롭이냐 하는 항공기 추진 방식과 항공기의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항공기의 성능, 개발비, 정비, 운용, 시장 등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당시 정부는 유럽 에어버스의 모회사였던 EADS와 협상에 들어갔다. 진척이 없자 이번에는 캐나다의 B사(社)와 접촉, 정부 주도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종 협상 과정에서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그 후 새로운 파트너로 브라질의 E사, 유럽의 F사, R사 등과 협상을 벌였으나 모두 무산됐다. 해외업체는 기술 이전 및 판로 개척이 불투명한 비행기 개발에 대한 투자 및 협력을 거부한 것이다. 결국 2013년 예산 302억원 중 88%가 불용(不用)처리됐고 이듬해 과제는 소멸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거대한 민간용 완제기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친 셈이다. 이 두 번의 개발 실패에 대해 어떤 이는 직접 개발비를 투입한 것도 아니고, 사용하지 못한 예산은 국고로 환수됐기 때문에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은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쓸 기회를 놓치고 특히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민간 항공기 개발 시점을 놓쳐 결과적으로 항공 선진국들과의 기술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국이 소위 ‘중형 항공기 개발 사업’을 위해 25년간 외국 정부·업체들과 협상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던 동안 일본과 중국은 90인승급 중형 제트 여객기를 개발해 현재 상용화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중국은 블루오션 항해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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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혼다의 7인승 HONDAJET 비즈니스 제트기. |
미쓰비시중공업은 50년이 지난 2014년 10월 18일, 일본 최초의 제트여객기인 ‘미쓰비시 리저널 제트(MRJ)’를 선보였다. 현재 일본 항공사인 ANA와 JAL뿐만 아니라 미국과 미얀마 등 6개 항공사로부터 400대 이상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황이다. 이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주문량이다. 일본 국내 항공사들은 내년 봄 시험비행이 끝나면 준비기간을 거친 후 2017년부터 MRJ를 본격 운항할 예정이다. 2018년까지 판매 대수를 1000대로 늘려 2020년대 세계 중소형 제트 여객기 시장의 50%를 차지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1948년 자전거에 엔진을 단 오토바이 제조업체로 출발한 혼다는 자동차 사업 성공을 바탕으로 항공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민간 항공기 중 스포츠카라고 불리는 소형 자가용 비즈니스 제트기인 ‘혼다제트’ 개발 사업을 1986년 기획한 후 약 30년 만에 상업화에 성공했다. 2014년 7월 미국 위스콘신주(州)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혼다 비즈니스 제트기 1호기를 공개했다. 혼다제트는 2개의 소형 엔진이 날개 위에 장착된 초고속, 초경량 개인 제트기이다. 혼다제트는 기체를 탄소섬유로 만들어 경쟁기종보다 연비 효율이 10% 이상 높으며, 최고 속도는 동급 항공기 가운데 가장 빠른 420노트(시속 770Km)다. VLJ급에 보기 드문 화장실을 갖춘 7인승 혼다제트의 대당 가격은 약 50억원이다. 이미 100대 이상을 수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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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COMAC의 78~95인승 ARJ 제트 여객기. |
중국 항공기 제작업체인 코맥(CO MAC)은 국내 운항을 목표로 하는 제트 여객기인 ARJ 양산에 돌입했다. 첫 운항은 중국 항공사 청두항공이 기록할 예정이다. 최근 완성기 1호기를 인도받아 상업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 항공사들이 ARJ를 구입하면서 계약 대수는 이미 300대를 돌파했다. 현재 미국의 FAR Part 25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항공청과 유럽항공안전기구(EASA)로부터 2017년까지 인증을 받는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물론 자국 내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작년 말 미국에 사상 처음으로 소형 민수 완제기인 19인승 터보프롭 Y-12F(대당 200만 달러) 20대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항공기 제작업체 코맥은 조만간 세계 3위 민항기 제조업체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민간용 제트 완제기 사업, 시작이 반이다
지난달 17일 국내 언론은 일제히 ‘대한항공 국내 항공 사상 최대인 13조원 규모의 제트 여객기 100대 신규 도입’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내용인즉 대한항공이 파리 에어쇼 기간에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사로부터 중·단거리 기종인 보잉 B737맥스-8 기종 50대(확정 구매 30대·옵션 구매 20대)와 에어버스 A321네오 50대(확정 구매 30대·옵션 구매 20대) 등 차세대 제트 여객기 총 100대를 오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민간용 완제기를 단 한 대도 수출 못 하는 한국으로 볼 때 13조원이라는 금액만큼 고스란히 무역수지 적자로 남게 된다. 항공 전문가로서 이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제주항공, 티웨이, 이스타, 진에어, 부산에어 등 국적 저비용항공사들이 도입하게 될 제트 여객기들의 가격을 합치게 되면 수십조 원의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할 것이다. 한국이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써온 ‘수입대체’ 전략은 민간 항공기 분야에선 무용지물인 것 같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우리 고유 모델의 민간용 제트 완제기 개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자체 기술로 초음속 비행기를 개발한 세계 12번째 국가이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5위를 차지하는 기술력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첨단 항공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인 항공전자(Avionics)의 기반이 되는 ICT 분야도 세계적 수준이다. 이러한 한국의 경험과 강점을 항공산업에 적극 활용, 민간용 제트 여객기를 개발해 수입대체는 물론 외화벌이 효자 품목으로 만들어야 한다. 막대한 개발비가 들어가므로 항공기 인증-국토교통부, 요소기술-미래부, 부품산업-산업부, 파생형 군수기-국방부 등의 다(多)부처 공동사업으로 수행해 민수기 개발 노하우 및 인증 획득 노하우를 쌓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고유 모델의 민간 항공기를 개발해 세계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FAR Part 25급의 인증 획득이 필수적이다. 우선 기종을 잘 선택해야 한다. 항공기 추진 방식, 크기도 중요하고 현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의 수준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술적,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파급효과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항공기 개발과 인증 비용은 대상 항공기 크기의 몇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70~80인승 이상 크기의 항공기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시작하는 단계에선 리스크가 너무 크다. 특히 최근 실패한 ‘차세대 중형 항공기’ 사업처럼 틈새시장론을 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t 내외, 16인승 규모의 비즈니스 제트 클래스의 항공기를 선택하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의 주력 상품인 T-50 계열 항공기의 기술력에 가장 가깝고 군(정찰기·지휘기 및 초계기 등), 관(감시·의료·긴급 용도기 등) 및 민간(그룹 전용기 및 국내/동남아 기반 전세기 등) 부문에서의 내수를 상당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요도 많고 경쟁도 치열한 기종이지만 수입대체로 내수를 확보하며 서서히 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술·가격 경쟁력을 차근차근 확보해 나갈 수 있다.
한국카본 등 중견기업 중심의 컨소시엄도 고려해야
외국 선진 협력사의 선정과 참여기업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대부분 항공 관련 국책사업에는 KAI나 대한항공과 같은 대기업이 경쟁을 벌여왔다. 대한항공은 KF-X 경쟁에서 탈락한 후 MRO 사업에 전념하고 있고 한국의 유일한 완성기 업체인 KAI는 KF-X 및 LCH/LAH(소형민수헬기 및 소형무장헬기 사업)에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KAI가 민간용 제트 완제기 사업을 추진할 시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최근 항공 부문의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카본’ 같은 중견기업들을 주축으로 컨소시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우리와 같이 공동 개발할 선진 외국 업체는 해당 기종을 전문적으로 설계, 개발한 경험이 많고 우리의 약한 부분을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개발비를 우리가 대고 기술투자만 하겠다는 외국 업체는 배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가격의 4분의 1은 엔진이 차지한다. 아쉽게도 우리 영공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여객기, 전투기, 헬리콥터들은 100% 외국산 제트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엔진은 항공기 구성품 중 가장 많은 소모성 부품을 사용하므로 수명주기비용(LCC)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엔진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제어기술과 터빈 블레이드 제조 및 재료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일본은 Honda-Jet, MRJ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제트엔진도 개발하고 있다. 한국도 KF-X 사업이나 민수 제트 완제기 사업을 시작할 경우 제트엔진 국산화(國産化)도 반드시 같이 추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지난 두 번의 중형 항공기 개발 실패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철저한 기획과 준비로 국산 민간용 제트 완제기 개발 사업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