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低성장 추세 지속… 불확실성 증가, 구조조정 지연, 기득권층의 저항, 공공자원 비효율적 배분,
인구고령화가 원인
⊙ 연공서열 중심의 노동시장 혁파하고 창의력 높이는 교육정책으로 바꾸는 게 국가성장 지름길
⊙ 정부 먼저 가시적 성과 내놓아야… 정책 발표만으로는 국민적 지지 얻지 못해
⊙ 정책수립은 10% 집행은 90%… 정책집행 모니터링·평가 强度 높여야
金俊經
⊙ 59세.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캠퍼스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팀장·연구조정실장·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부원장, 대통령실 재정경제2비서관 역임. 現 KDI 원장 겸 국제정책대학원 총장.
인구고령화가 원인
⊙ 연공서열 중심의 노동시장 혁파하고 창의력 높이는 교육정책으로 바꾸는 게 국가성장 지름길
⊙ 정부 먼저 가시적 성과 내놓아야… 정책 발표만으로는 국민적 지지 얻지 못해
⊙ 정책수립은 10% 집행은 90%… 정책집행 모니터링·평가 强度 높여야
金俊經
⊙ 59세.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캠퍼스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팀장·연구조정실장·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부원장, 대통령실 재정경제2비서관 역임. 現 KDI 원장 겸 국제정책대학원 총장.
- 김준경 KDI 원장은 “국가 전 분야에서 구조개혁이 시급하며 지속성장을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개혁이 절실하다”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선제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김준경(金俊經)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 원장이 최근 경영인 모임, 학술 세미나, 대학 강연 등에 참석해 강조해 온 내용이다. 2015년도 국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김 원장은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 진단했다. 국내 최고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이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관계(政官界)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투자, 산업 등 거시경제 전문가인 김준경 원장은 20년 가까이 KDI에 근무하며 거시경제팀장·연구조정실장·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등을 지냈다. 지난 정부 때는 청와대 재정경제2비서관으로 일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들어 KDI 원장을 맡은 그에게 ‘2015 대한민국 국가 성장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먼저 새해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우선 글로벌 위기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과 유럽의 경우 민간 부문의 부채비율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선진국 정부의 부채(負債)가 급증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5년도 세계 경제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인상, 유로존의 더딘 경제회복, 중국의 성장률에 대한 우려로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는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KDI는 2015년도 한국 경제 성장률을 3.5% 내외로 전망했습니다.
“2014년도 경상수지가 900억 달러를 조금 넘을 것 같은데 2015년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세계 경제가 어려운 만큼 국내에 산적해 있는 구조적 문제를 얼마만큼 해결하느냐에 따라 성장률이 다를 것으로 봅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요컨대 저(低)성장이 추세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지속됐던 추격경제에서 탈피해 선도(先導)경제로 진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내야 할 상황에서 불확실성의 증가, 구조조정의 지연, 기득권층의 지대(地帶)추구 행위 지속, 공공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인구고령화 등으로 저성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조개혁 실패로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한 일본과 이탈리아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진입한 이후 성장이 급속히 둔화됐는데 우리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요.”
—기업의 수익성도 해마다 악화되고 있습니다.
“통계치를 보니 현재 우리 제조업의 수익성은 IMF 외환위기 이후 현재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조선, 철강 분야에서 수익성이 악화됐어요. 서비스 부문의 수익성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상장(上場)회사의 영업이익률도 2014년도 상반기의 경우 4.6%를 기록,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요.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를 제외한 대기업의 수익률이 중소기업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고(高)임금, 기업규제 심화 등으로 기업활동이 어렵다 보니 기업의 해외생산도 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량의 4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앞으로 80%까지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공기업의 영업이익 부진도 심각해요. 한국전력, 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 부채 상위 10개 공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재정(財政)지원을 전제로 최고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지요.”
스스로 구조조정하는 게 쉽지 않아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고 보는데요.
“저는 그 문제를 ‘사회 통합 저하’로 표현합니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이동성이 낮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세대 간 갈등이 확대되면서 지역 간 소득 격차 또한 심화되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불평등한 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 중 하나는 노력의 성과에 대해 젊은이들의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나라 20~30대들의 회의감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년층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얼마 전 세계적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인 알바레즈앤마살(Alvarez & Marsal·A&M)과 앨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의 창업자인 브라이언 마살 회장이 방한(訪韓)해 ‘한국 시장에 구조조정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말은 국내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요.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의 구조개혁이 절실하죠.”
—제대로 될까요. 뭐가 걸림돌이라 생각합니까.
“과거 IMF 사태 때는 IMF에 의해 사실상 반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아요. 일본이 장기간 불황에 빠진 이유를 따지고 보면 스스로 구조개혁을 못 해서였습니다. 뼈아픈 개혁 대신 포퓰리즘 정책만 횡행했습니다. 그래서 정권 교체만 잦았지요.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해요.”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적 공감대와 정치적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부 부문에서 먼저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해요. 비전을 제시하고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는 구조조정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단순히 정책만 발표해서는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역대 정권도 개혁을 내걸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동의해요. 노동시장, 교육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개혁하겠다고 했지요. 그러다가 흐지부지됐습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실천했느냐에 달려 있어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죠. 개혁을 실천하려면 국민들이 지지해 줘야 해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주 중요합니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정부가 앞장서서 개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기업 혁신, 공무원 연금 개혁 등에서 정부가 고통을 감수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해요. 일본처럼 구조조정에 실패한 나라는 국민의 신뢰가 없어서였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의 리더십이 관건
김준경 원장은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이 어떻게 구조조정에 성공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가계든 기업, 정부든 부채를 줄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채 감축이란 구조조정 단행에 따른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지요. 결국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해요. 부동산 모기지론에 따른 가계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었던 미국의 경우, 모기지론 규모를 꾸준히 축소하는 쪽으로 정책을 폈습니다. 이와 함께 양적 완화를 통해 고용과 투자도 개선했지요. 그 결과 부실채권 비율이 줄고 경기는 회복단계에 접어들었어요. 미국 사례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주택 압류제도가 그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주택 소유권을 채권단에 넘기는 제도입니다. 그 무렵 집을 잃은 많은 미국인은 텐트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는 폭동은 전혀 없었어요. 실제로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텐트로 쫓겨났던 사람들이 다시 고용되고 회생하게 되었지요.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정부 정책에 순응하고 자기 책임의식하에 새 출발을 다짐했던 겁니다.”
모방경제로는 살아남기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요.
“글쎄요.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신뢰 문제겠지요.”
—박근혜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 연금 개혁, 잘 될까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봐야겠지요. 사실 이게 하나의 모멘텀이 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실천의지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요. 공기업의 부채를 줄이는 것이나 민영화, 구조조정 등 모든 게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 시점에서 정부가 뭔가를 보여줘야 해요.”
—2015년 한 해는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가름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집권 3년 차이면서 동시에 전국 단위의 선거도 없어 정부 정책에 집중할 수 있는 한 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욕을 얻어먹더라도 개혁할 건 해야 할 텐데 결단력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공무원 연금 개혁 문제도 공무원노조의 저항에 주춤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혁에는 이해가 엇갈리는 세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정권 때든 저항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리더십, 대통령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공무원을 포함한 국민 전체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경제 부문만 보더라도 대통령의 철학이 아쉽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정권 초기에 공기업 개혁, 공공 부문 개혁을 꺼냈다가 얼마 후 공공 부문 부채감소를 거론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규제개혁을 얘기했고, 최경환 부총리 체제가 들어선 후에는 경기부양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경제철학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글쎄요. 박근혜 정부의 경제철학이라 하면 당연히 창조경제를 들 수 있지요. 저는 아주 좋은 캐치프레이즈라고 봅니다.”
—어떤 측면에서요.
“과거 극빈국(極貧國)이었던 우리가 선진국 문턱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모방경제 단계에서는 앞서 가는 나라를 열심히 따라만 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모방으로서는 살아남기도 어려워요. 모방이 아닌 창의(創意), 창조(創造)가 발전의 핵심인 거죠. 창조경제를 통해 구미(歐美) 선진국, OECD 국가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노인 빈곤율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
—사실 창조경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창조경제를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게 뭡니까.
“노동시장 혁신과 교육개혁으로 요약할 수 있지요. 노동시장부터 말씀드리죠. 가장 큰 문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입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빨리 바꿔야 해요. 직무와 성과에 관계없이 오래 일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전제는 과거 모방경제에서 통하던 얘기입니다. 지금은 경륜보다 창의적이고 말랑말랑한 아이디어가 더 중요해요.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됩니다. 현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는 이런 측면에서 맥을 제대로 짚었다고 봅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정규직을 쉽게 해고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임금피크제도나 직무성과급제도 등을 통해 업무효율을 내고,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년을 연장시켜 주는 제도를 점차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나이 든 직원도 다시 교육을 받고 새로운 업무에서 효율을 내도록 하는 거지요. 그게 안 되니까 조기 명예퇴직자가 늘고 고령의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등으로 회사를 떠난 50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통닭집을 낸다는 이른바 ‘치킨집 쇼크’가 향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8%로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공식 은퇴연령(60세)과 실질 은퇴연령(남성 71세·여성 70세)의 격차가 외국에 비해 매우 큰 편인데도 불구하고요.”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것은 권한이 강한 노동조합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노조의 경우 민간 부문에 비해 공기업 부문이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노조 조직률만 봐도 그래요. 민간 부문은 10%에 불과한데 공기업의 노조 조직률은 60%가 넘어요. 이게 걸림돌입니다. 공공 부문부터 모범을 보여야 해요.”
—교육 부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중 교육 부문이 가장 약해 보입니다. 모방경제 때는 아는 게 힘이었어요. 그런데 창조경제 시대에는 문제해결 능력이 더 중요해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구성원 간 소통 확대 등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해요.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과정을 이른바 프로젝트 베이스 러닝(PBL) 방식으로 바꿔야 해요.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부처들이 교육혁신을 통해 창조경제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청년 고용률이 낮은 편입니다. 이는 기업 규제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것과 관련이 있어요. 청년 고용률이 높은 국가는 기업 규제가 낮다는 게 통계 수치로 나타나요. 우리의 경우 서비스 부문의 개혁도 시급합니다. 예를 들어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전문 자격사 양성에 제약을 받고 있어요. 이런 현실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고 있지요.”
정책 수단이 모방경제 시절에 머물러 있어
—경기부양과 관련해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 부양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계 부문의 전체 자산(資産) 중 80%가량이 부동산입니다. 선진국은 60% 이하입니다. 그만큼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요. 현 경제팀이 부동산 정책을 중요시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부동산담보대출과 관련해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를 더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이 기간 내에 개별 가계의 부동산담보대출 상환을 장기분할 상환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가정이 대출이자만 갚고 있는 상황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원금을 갚도록 해야 해요. 가계 부채의 위험성이 큰 만큼 통화당국과 감독당국이 합심해서 정책공조를 펴야 합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구조개혁과 경기부양을 위해 시급히 궤도 수정해야 할 대목은 뭐라고 봅니까.
“창조경제라는 정책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정책수단이 과거 모방경제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거기에 맞는 변혁수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정책수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집행입니다. 과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정책수립은 5%, 집행은 95%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정책수립은 10%, 집행은 90%’라고 했습니다. 과감히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수(內需)시장은 여전히 침체입니다. 묘안(妙案)이 없을까요.
“내수는 결국 소비와 투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규제 때문에 투자가 안 되는 경우가 상당 부분 있다고 봐요. 국내 투자도 그렇고 외국인 투자도 마찬가지죠. 규제 완화, 규제 개혁으로 투자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해요. 지역균형발전을 한다고 경제자유구역을 설치해 놓고 실제로는 규제를 그대로 놔두는 전시행정 말고요. 의료, 관광, 법률 등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서비스 분야의 개혁, 개방이 필요합니다.”
—현오석(玄旿錫) 전 부총리도 과거 KDI 원장 시절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만 정부에 들어간 후 평소의 소신을 정책으로 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현오석 부총리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 이전의 정부 시절에도 서비스 분야 개혁 얘기는 다 나왔습니다. 실천, 즉 집행 여부가 문제죠. 그래서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보다 더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조금 낙관적으로 봅니다. 일본처럼 가지는 않을 거예요. 우선 부동산 버블이 일본보다 심하지 않아요. 두 번째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20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연구를 해왔습니다.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라 봐요.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많고, 일할 의지가 있는 분들도 많아요. 규제개혁과 법률, 의료, 관광 등 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면 동북아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거시·통화·금융정책 운용방향
—희망적으로 보는군요. 그렇다면 2015년도 거시, 통화, 금융정책의 운용방향을 설정한다면.
“확장적 재정정책과 함께 공기업 부채와 공적 연금 등 공공 부문에 대한 개혁을 적극 단행해야 해요. 이를 통해 경제혁신이 국민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중앙은행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향, 고착화되지 않도록 물가안정 목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적극 나타내야 해요. 아울러 관계 당국은 가계 대출의 위험성을 사전에 진단하고 가계 등 민간 부문이 도산, 붕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합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책 집행 과정을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의 발전경험과 사례를 통해 ‘굿 거버넌스’의 정의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수출확대가 국가 제1 목표였던 시절 월간수출확대회의를 매월 열어 지역별·품목별 수출실적을 점검하고 정책지원을 통해 성과를 냈습니다. 과거 1970년대 초에 실시했던 산림녹화 사업도 좋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이 벌목(伐木)으로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는데 기존의 산림녹화 정책이 모니터링과 사후 평가를 하지 않아 실패로 막을 내릴 무렵, 검목관(檢木官) 제도를 도입해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조림 상황과 활착률을 검목관의 성과와 연동시켰고, 한 지역의 검목관이 타 지역의 조림 상황을 조사하는 ‘교차검목’을 시행해 정책의 이행률을 높였습니다. 결국 ‘굿 거버넌스’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과정을 모니터링·평가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提高)하는 것이지요.”
—과거 권위주의적이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무원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던 때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공무원 사회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집행 여부를 확인하는 국민점검반이 설치됐습니다. 목표치를 보다 명확히 하고 각 부처의 정책 집행 정도를 점검하는 강도도 높였어요. 2015년에는 정부의 경제개혁 방향을 구조개혁으로 집약해야 합니다. 아울러 공무원 인사제도도 바꿔야 해요. 우리나라 공직 임용제도는 다른 국가에 비해 폐쇄적입니다. 공무원이 은퇴 후 어느 기관에 재취업하든 나라를 위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그 재취업의 과정이 투명하고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실주의와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겠지요.”
—2013년 5월 원장으로 취임한 후 그해 연말 KDI는 세종시로 이전했습니다. 세종시대의 KDI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까.
“원장으로 취임한 후 연구원들에게 ‘국책연구기관인 KDI의 요체는 과제’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어떤 주제로 어떤 연구를 하느냐가 중요해요. 시의적절하고 국가적 임팩트가 있는 어젠다를 정해 좋은 연구결과를 내왔다고 봅니다. KDI는 일본의 경제위기를 세밀히 살펴보며 여러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도 마련하고 있어요. 또한 KDI의 연구성과물을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대(對)국민 홍보 기능도 강화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 盡人事待天命
—KDI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대표적 ‘소신파’로 알려졌는데요.
“KDI는 설립 당시부터 정부에 예속되지 않은 독립 국책연구기관으로 보장을 받았습니다. 정부에 예속되면 공무원이 하라는 것만 하는, 정부의 하부기관에 불과하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판단이었지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물들을 원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나라를 위해 정부기관에 조언(助言)하는 것이 KDI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가까이 KDI에 몸담아 오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 해서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박정희 정부의 최장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金正濂) 실장이 부친인데 평소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 강조하신 게 있습니까.
“이런 말씀드리는 게 뭐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당신께서도 그러셨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업무 성과를 냈을 때 자신보다 동료나 부하에게 공(功)을 돌리는 모습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과거 청와대에 계실 때 좋은 성과나 아이디어를 보고할 때면 항상 해당 관료들이 대통령께 직접 보고를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김준경(金俊經)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 원장이 최근 경영인 모임, 학술 세미나, 대학 강연 등에 참석해 강조해 온 내용이다. 2015년도 국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김 원장은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 진단했다. 국내 최고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이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관계(政官界)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투자, 산업 등 거시경제 전문가인 김준경 원장은 20년 가까이 KDI에 근무하며 거시경제팀장·연구조정실장·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등을 지냈다. 지난 정부 때는 청와대 재정경제2비서관으로 일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들어 KDI 원장을 맡은 그에게 ‘2015 대한민국 국가 성장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먼저 새해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우선 글로벌 위기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과 유럽의 경우 민간 부문의 부채비율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선진국 정부의 부채(負債)가 급증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5년도 세계 경제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인상, 유로존의 더딘 경제회복, 중국의 성장률에 대한 우려로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는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KDI는 2015년도 한국 경제 성장률을 3.5% 내외로 전망했습니다.
“2014년도 경상수지가 900억 달러를 조금 넘을 것 같은데 2015년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세계 경제가 어려운 만큼 국내에 산적해 있는 구조적 문제를 얼마만큼 해결하느냐에 따라 성장률이 다를 것으로 봅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요컨대 저(低)성장이 추세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지속됐던 추격경제에서 탈피해 선도(先導)경제로 진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내야 할 상황에서 불확실성의 증가, 구조조정의 지연, 기득권층의 지대(地帶)추구 행위 지속, 공공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인구고령화 등으로 저성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조개혁 실패로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한 일본과 이탈리아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진입한 이후 성장이 급속히 둔화됐는데 우리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요.”
—기업의 수익성도 해마다 악화되고 있습니다.
“통계치를 보니 현재 우리 제조업의 수익성은 IMF 외환위기 이후 현재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조선, 철강 분야에서 수익성이 악화됐어요. 서비스 부문의 수익성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상장(上場)회사의 영업이익률도 2014년도 상반기의 경우 4.6%를 기록,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요.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를 제외한 대기업의 수익률이 중소기업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고(高)임금, 기업규제 심화 등으로 기업활동이 어렵다 보니 기업의 해외생산도 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량의 4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앞으로 80%까지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공기업의 영업이익 부진도 심각해요. 한국전력, 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 부채 상위 10개 공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재정(財政)지원을 전제로 최고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지요.”
스스로 구조조정하는 게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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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홍릉시대를 접고 세종시로 이전한 KDI 전경.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관으로, 국익을 위한 시의적절한 연구성과물을 내놓는 게 핵심 역할이다. |
“저는 그 문제를 ‘사회 통합 저하’로 표현합니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이동성이 낮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세대 간 갈등이 확대되면서 지역 간 소득 격차 또한 심화되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불평등한 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 중 하나는 노력의 성과에 대해 젊은이들의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나라 20~30대들의 회의감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년층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얼마 전 세계적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인 알바레즈앤마살(Alvarez & Marsal·A&M)과 앨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의 창업자인 브라이언 마살 회장이 방한(訪韓)해 ‘한국 시장에 구조조정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말은 국내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요.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의 구조개혁이 절실하죠.”
—제대로 될까요. 뭐가 걸림돌이라 생각합니까.
“과거 IMF 사태 때는 IMF에 의해 사실상 반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아요. 일본이 장기간 불황에 빠진 이유를 따지고 보면 스스로 구조개혁을 못 해서였습니다. 뼈아픈 개혁 대신 포퓰리즘 정책만 횡행했습니다. 그래서 정권 교체만 잦았지요.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해요.”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적 공감대와 정치적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부 부문에서 먼저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해요. 비전을 제시하고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는 구조조정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단순히 정책만 발표해서는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역대 정권도 개혁을 내걸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동의해요. 노동시장, 교육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개혁하겠다고 했지요. 그러다가 흐지부지됐습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실천했느냐에 달려 있어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죠. 개혁을 실천하려면 국민들이 지지해 줘야 해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주 중요합니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정부가 앞장서서 개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기업 혁신, 공무원 연금 개혁 등에서 정부가 고통을 감수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해요. 일본처럼 구조조정에 실패한 나라는 국민의 신뢰가 없어서였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의 리더십이 관건
김준경 원장은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이 어떻게 구조조정에 성공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가계든 기업, 정부든 부채를 줄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채 감축이란 구조조정 단행에 따른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지요. 결국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해요. 부동산 모기지론에 따른 가계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었던 미국의 경우, 모기지론 규모를 꾸준히 축소하는 쪽으로 정책을 폈습니다. 이와 함께 양적 완화를 통해 고용과 투자도 개선했지요. 그 결과 부실채권 비율이 줄고 경기는 회복단계에 접어들었어요. 미국 사례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주택 압류제도가 그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주택 소유권을 채권단에 넘기는 제도입니다. 그 무렵 집을 잃은 많은 미국인은 텐트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는 폭동은 전혀 없었어요. 실제로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텐트로 쫓겨났던 사람들이 다시 고용되고 회생하게 되었지요.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정부 정책에 순응하고 자기 책임의식하에 새 출발을 다짐했던 겁니다.”
모방경제로는 살아남기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요.
“글쎄요.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신뢰 문제겠지요.”
—박근혜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 연금 개혁, 잘 될까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봐야겠지요. 사실 이게 하나의 모멘텀이 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실천의지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요. 공기업의 부채를 줄이는 것이나 민영화, 구조조정 등 모든 게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 시점에서 정부가 뭔가를 보여줘야 해요.”
—2015년 한 해는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가름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집권 3년 차이면서 동시에 전국 단위의 선거도 없어 정부 정책에 집중할 수 있는 한 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욕을 얻어먹더라도 개혁할 건 해야 할 텐데 결단력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공무원 연금 개혁 문제도 공무원노조의 저항에 주춤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혁에는 이해가 엇갈리는 세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정권 때든 저항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리더십, 대통령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공무원을 포함한 국민 전체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경제 부문만 보더라도 대통령의 철학이 아쉽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정권 초기에 공기업 개혁, 공공 부문 개혁을 꺼냈다가 얼마 후 공공 부문 부채감소를 거론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규제개혁을 얘기했고, 최경환 부총리 체제가 들어선 후에는 경기부양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경제철학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글쎄요. 박근혜 정부의 경제철학이라 하면 당연히 창조경제를 들 수 있지요. 저는 아주 좋은 캐치프레이즈라고 봅니다.”
—어떤 측면에서요.
“과거 극빈국(極貧國)이었던 우리가 선진국 문턱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모방경제 단계에서는 앞서 가는 나라를 열심히 따라만 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모방으로서는 살아남기도 어려워요. 모방이 아닌 창의(創意), 창조(創造)가 발전의 핵심인 거죠. 창조경제를 통해 구미(歐美) 선진국, OECD 국가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노인 빈곤율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
—사실 창조경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창조경제를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게 뭡니까.
“노동시장 혁신과 교육개혁으로 요약할 수 있지요. 노동시장부터 말씀드리죠. 가장 큰 문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입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빨리 바꿔야 해요. 직무와 성과에 관계없이 오래 일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전제는 과거 모방경제에서 통하던 얘기입니다. 지금은 경륜보다 창의적이고 말랑말랑한 아이디어가 더 중요해요.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됩니다. 현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는 이런 측면에서 맥을 제대로 짚었다고 봅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정규직을 쉽게 해고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임금피크제도나 직무성과급제도 등을 통해 업무효율을 내고,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년을 연장시켜 주는 제도를 점차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나이 든 직원도 다시 교육을 받고 새로운 업무에서 효율을 내도록 하는 거지요. 그게 안 되니까 조기 명예퇴직자가 늘고 고령의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등으로 회사를 떠난 50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통닭집을 낸다는 이른바 ‘치킨집 쇼크’가 향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8%로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공식 은퇴연령(60세)과 실질 은퇴연령(남성 71세·여성 70세)의 격차가 외국에 비해 매우 큰 편인데도 불구하고요.”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것은 권한이 강한 노동조합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노조의 경우 민간 부문에 비해 공기업 부문이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노조 조직률만 봐도 그래요. 민간 부문은 10%에 불과한데 공기업의 노조 조직률은 60%가 넘어요. 이게 걸림돌입니다. 공공 부문부터 모범을 보여야 해요.”
—교육 부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중 교육 부문이 가장 약해 보입니다. 모방경제 때는 아는 게 힘이었어요. 그런데 창조경제 시대에는 문제해결 능력이 더 중요해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구성원 간 소통 확대 등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해요.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과정을 이른바 프로젝트 베이스 러닝(PBL) 방식으로 바꿔야 해요.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부처들이 교육혁신을 통해 창조경제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청년 고용률이 낮은 편입니다. 이는 기업 규제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것과 관련이 있어요. 청년 고용률이 높은 국가는 기업 규제가 낮다는 게 통계 수치로 나타나요. 우리의 경우 서비스 부문의 개혁도 시급합니다. 예를 들어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전문 자격사 양성에 제약을 받고 있어요. 이런 현실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고 있지요.”
정책 수단이 모방경제 시절에 머물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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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차에 따른 임금상승 국제비교(제조업). 자료: 노동연구원(2011) |
“우리나라 가계 부문의 전체 자산(資産) 중 80%가량이 부동산입니다. 선진국은 60% 이하입니다. 그만큼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요. 현 경제팀이 부동산 정책을 중요시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부동산담보대출과 관련해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를 더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이 기간 내에 개별 가계의 부동산담보대출 상환을 장기분할 상환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가정이 대출이자만 갚고 있는 상황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원금을 갚도록 해야 해요. 가계 부채의 위험성이 큰 만큼 통화당국과 감독당국이 합심해서 정책공조를 펴야 합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구조개혁과 경기부양을 위해 시급히 궤도 수정해야 할 대목은 뭐라고 봅니까.
“창조경제라는 정책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정책수단이 과거 모방경제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거기에 맞는 변혁수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정책수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집행입니다. 과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정책수립은 5%, 집행은 95%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정책수립은 10%, 집행은 90%’라고 했습니다. 과감히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수(內需)시장은 여전히 침체입니다. 묘안(妙案)이 없을까요.
“내수는 결국 소비와 투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규제 때문에 투자가 안 되는 경우가 상당 부분 있다고 봐요. 국내 투자도 그렇고 외국인 투자도 마찬가지죠. 규제 완화, 규제 개혁으로 투자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해요. 지역균형발전을 한다고 경제자유구역을 설치해 놓고 실제로는 규제를 그대로 놔두는 전시행정 말고요. 의료, 관광, 법률 등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서비스 분야의 개혁, 개방이 필요합니다.”
—현오석(玄旿錫) 전 부총리도 과거 KDI 원장 시절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만 정부에 들어간 후 평소의 소신을 정책으로 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현오석 부총리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 이전의 정부 시절에도 서비스 분야 개혁 얘기는 다 나왔습니다. 실천, 즉 집행 여부가 문제죠. 그래서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보다 더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조금 낙관적으로 봅니다. 일본처럼 가지는 않을 거예요. 우선 부동산 버블이 일본보다 심하지 않아요. 두 번째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20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연구를 해왔습니다.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라 봐요.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많고, 일할 의지가 있는 분들도 많아요. 규제개혁과 법률, 의료, 관광 등 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면 동북아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거시·통화·금융정책 운용방향
—희망적으로 보는군요. 그렇다면 2015년도 거시, 통화, 금융정책의 운용방향을 설정한다면.
“확장적 재정정책과 함께 공기업 부채와 공적 연금 등 공공 부문에 대한 개혁을 적극 단행해야 해요. 이를 통해 경제혁신이 국민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중앙은행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향, 고착화되지 않도록 물가안정 목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적극 나타내야 해요. 아울러 관계 당국은 가계 대출의 위험성을 사전에 진단하고 가계 등 민간 부문이 도산, 붕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합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책 집행 과정을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의 발전경험과 사례를 통해 ‘굿 거버넌스’의 정의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수출확대가 국가 제1 목표였던 시절 월간수출확대회의를 매월 열어 지역별·품목별 수출실적을 점검하고 정책지원을 통해 성과를 냈습니다. 과거 1970년대 초에 실시했던 산림녹화 사업도 좋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이 벌목(伐木)으로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는데 기존의 산림녹화 정책이 모니터링과 사후 평가를 하지 않아 실패로 막을 내릴 무렵, 검목관(檢木官) 제도를 도입해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조림 상황과 활착률을 검목관의 성과와 연동시켰고, 한 지역의 검목관이 타 지역의 조림 상황을 조사하는 ‘교차검목’을 시행해 정책의 이행률을 높였습니다. 결국 ‘굿 거버넌스’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과정을 모니터링·평가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提高)하는 것이지요.”
—과거 권위주의적이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무원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던 때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공무원 사회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집행 여부를 확인하는 국민점검반이 설치됐습니다. 목표치를 보다 명확히 하고 각 부처의 정책 집행 정도를 점검하는 강도도 높였어요. 2015년에는 정부의 경제개혁 방향을 구조개혁으로 집약해야 합니다. 아울러 공무원 인사제도도 바꿔야 해요. 우리나라 공직 임용제도는 다른 국가에 비해 폐쇄적입니다. 공무원이 은퇴 후 어느 기관에 재취업하든 나라를 위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그 재취업의 과정이 투명하고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실주의와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겠지요.”
—2013년 5월 원장으로 취임한 후 그해 연말 KDI는 세종시로 이전했습니다. 세종시대의 KDI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까.
“원장으로 취임한 후 연구원들에게 ‘국책연구기관인 KDI의 요체는 과제’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어떤 주제로 어떤 연구를 하느냐가 중요해요. 시의적절하고 국가적 임팩트가 있는 어젠다를 정해 좋은 연구결과를 내왔다고 봅니다. KDI는 일본의 경제위기를 세밀히 살펴보며 여러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도 마련하고 있어요. 또한 KDI의 연구성과물을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대(對)국민 홍보 기능도 강화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 盡人事待天命
—KDI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대표적 ‘소신파’로 알려졌는데요.
“KDI는 설립 당시부터 정부에 예속되지 않은 독립 국책연구기관으로 보장을 받았습니다. 정부에 예속되면 공무원이 하라는 것만 하는, 정부의 하부기관에 불과하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판단이었지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물들을 원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나라를 위해 정부기관에 조언(助言)하는 것이 KDI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가까이 KDI에 몸담아 오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 해서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박정희 정부의 최장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金正濂) 실장이 부친인데 평소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 강조하신 게 있습니까.
“이런 말씀드리는 게 뭐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당신께서도 그러셨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업무 성과를 냈을 때 자신보다 동료나 부하에게 공(功)을 돌리는 모습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과거 청와대에 계실 때 좋은 성과나 아이디어를 보고할 때면 항상 해당 관료들이 대통령께 직접 보고를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